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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제도'에 대한 칼럼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시간강사 제도'가 아직까지도 근본적 해결없이 지속되어 온 것은 분명 고등교육기관이라는 '대학'의 야만성과 폭력성, 그리고 악질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기반한다고 본다. 분명 미미한 하나의 변화의 단초이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하나 '근본적인' 해결로 나아갔으면 한다.

  '시간강사 제도', 근본적인 기로에 서다
  [김명인 칼럼]'겨우 존재하는 사람들'과 대법원 판결 2007-04-16

 세상에는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주변인들이며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유령과 같은 불안한 존재들이다. 이를 테면 고학력사회 속에 섬처럼 살아가는 고졸자, 혹은 그 이하의 저학력자들이 그렇고, 농촌 노인들이 그렇고 점점 늘어가는 실업자들이 그럴 것이다. 그들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고 중요한 노동력이자 생산력 기반이지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이 지상에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물질적, 정신적인 소외와 고통은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갚아야 할 잠재적인 빚으로 쌓여가고 있다.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 대학 강의의 40%를 책임 지다
  
  여기 또 하나의 겨우 존재하는 인간군이 있다. 그들은 시간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2005년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는 약 5만 명의 시간강사들이 존재하며 한국 대학의 시간강사 의존율은 40퍼센트라고 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5만 명의 시간강사들이 현재 한국의 대학교육의 40퍼센트를 감당하는 고등교육의 중추적 주체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에서 출석부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가는 사람들 열 명 중의 네 명이 그들인 셈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에서 그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학력과 학식, 그리고 인격에 관계없이 그 점에서 시간강사는 누구나 똑 같다. 강의실에서는 엄연히 '교수님'이지만 강의실 바깥에 나서는 순간 그들은 마치 허방을 밟는 것처럼 존재의 불안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
  
  대학에 따라서는 이들에게 휴게실이나 연구실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겉치레에 그치고 교직원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는 하지만 도서관 이용은 제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약간의 권리라는 것도 학기 중에 한할 뿐 그들이 아무리 한 대학에 오래 출강했다고 하더라도 방학 중에 그들의 대학 내 신분은 제로 상태가 된다. 대학에서 그들의 사회적 존재는 교수-교직원-학생-비정규 일용직(경비, 청소직 등)의 다음 서열로 최하층에 속한다. 그들은 계절적 일용잡급직인 것이다. 학기 중에 주어진 시간만큼 강의를 하고 그에 해당하는 강사료를 받는 것, 오직 그것만이 그들이 대학과 맺는 관계의 전부이고, 그 외의 부분에서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대학은 그들을 철저히 타자로 만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강의가 끝나자마자 보따리를 싸서 이 낯선 공간을 어서 떠나는 일뿐이다.
  
  그들이 대학 안에서만 불안한 것은 아니다. 대학 밖에서도 그들의 불안은 그대로 이어진다. 시간강사라는 직업(?)은 그저 명예직이고 어엿한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은 예외이지만 강사료를 기본수입으로 하여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의 대학 밖 사회 속에서의 존재 형태는 좋게 말해서 프리랜서고 솔직히 말하면 비정규직의 최악의 형태인 시간제 일용노동자(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 그 불안한 시간강사 직조차 안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못해서 그들은 그 어떤 생활상의 장기계획도 세울 수 없다. 그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학기 두 학기를 근근히 살아 나갈 뿐이다. 간혹 주 20시간 이상, 심지어는 3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강의를 하는 이른바 '강사재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재벌은 커녕 가족의 생계를 전적으로 강의에 의존하는 눈물겨운 슈퍼맨들이며 그런 기회 역시 결코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할 수 있을 때, 자리가 있을 때 거의 필사적으로 벌어두자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삶은 불안에 피폐까지 더한 것이 된다.
  
  '시간강사' 제도,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다
  
  며칠 전 대법원에서 시간강사들을 근로자로 인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산재보험료를 납부하는 것(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의 산재보험료 일부를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재판의 원고는 일부 사립대학들로 그들은 시간강사가 학교당국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고정급여를 받지 않으며 소속이 없기 때문에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간강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고 그에 따라 대학은 그들을 위한 산재보험료 부담의무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바로 그 논리야말로 그들의 열악한 비정규직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반론을 세워 원고 패소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시간강사의 근로자성(노동자적 본질)을 명확히 한 이 판결은 그러나 시간강사 문제의 매듭을 지은 판결이 아니라 시간강사 문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시간강사 제도는 시간강사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허구적 전제 위에서 오래도록 유지되어 온 제도이기 때문에 시간강사도 근로자라는, 그것도 아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확인되고 그 전제 아래 시간강사 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하면 그 제도는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강사가 조만간 전임교수가 되기 위한 일종의 도제 혹은 연수과정이던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지금도 일부 명문대나 지방 국립대 등의 일부 학과의 경우 그런 관행이나 인식이 아직 현실성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전임교수가 될 예비교수로서의 시간강사는 아무리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강사료가 적다고 해도 일종의 통과의례 삼아 시간강사 기간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수도 늘어나고 대학생 수도 늘어나 대학이 과거의 엘리트 교육기관이 아니라 대중교육기관으로 변신하게 되면서 대학은 늘어나는 교육수요의 처리를 저임금 시간강사들에게 분담시키게 되었고, 이는 점점 하나의 관행이자 제도로 굳어져 버리게 되었다. 그 결과 5만의 시간강사가 전체 대학교육의 40퍼센트를 감당하게 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수천만 원에 이르는 대학교수 1인의 연봉으로 최소한 서너 명의 시간강사에게 연간 강사료를 지급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대학들이 이 좋은 제도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대학들은 시간강사들에게 '조만간 전임교수가 될 예비교수들로서 당신들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돈을 주어 가면서 오히려 교육훈련을 시켜주는 것'이라는, 결국 '시간강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는 이데올로기 아래서 사실은 학문후속세대들의 고급 학술・교육 노동력을 고도로 착취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의 난립과 학위의 남발로 한편으로는 비싼 대학원 등록금을 받으면서 저임금 시간강사 예비군을 넉넉하게 확보하는 정책 또한 지속해 왔다.
  
  그 결과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시간강사들은 저임금과 불안한 생활에 쫓겨 창의적 연구와 학문선배들에 대한 선의의 학문적 경쟁의 기회를 잃어 가고, 전임교수들은 전임교수들 대로 전임동료들의 항상적 부족으로 교육, 연구, 행정부담의 3중고에 시달려 대학교육의 질은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는 슬로건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말은 이젠 지나가건 소도 웃을 말이 되어 버리고 지성의 깃발이 펄럭임을 멈춘 곳에서 경쟁적 시장주의가 대신 준동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놈의 경쟁력'을 온전히 갖추기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시간강사 제도라는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노골적 착취제도는 근절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쟁에는 '생산적 불안'이 필요한 법인데 시간강사라 불리는 수많은 학문후속세대들이 생산적 불안에 사로잡힐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하고 '생존적 불안'의 바다 위를 떠도는 상황에서 한국 대학의 세계적 경쟁력 싸움은 처음부터 지는 싸움일 수밖에 없다.
  
  대학 사회의 '비열한 안정' 뒤흔들 투쟁이 다가오고 있다
  
  시간강사는 비정규직 근로자다. 대학과 국가가 이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대학과 국가에게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하나는 시간강사 제도를 폐지, 혹은 최소화하여 현재의 시간강사들의 대다수를 일정한 유예기간과 평가과정을 거쳐 정규직 교육노동자, 즉 전임교수로 광범하게 채용하면서 대학교육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간강사 제도를 유지하되 그들에게 전임교수들에게 버금가는 당당한 교육노동자로서의 지위와 대우, 그리고 복지혜택을 제공하여 그들의 불안한 삶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는 당연히 현재의 대학원 교육체계와 학위부여 제도의 획기적 변화도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함께 이제 시간강사 문제는 하나의 사회적 이슈로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특히 올해 7월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 2년 뒤 시간강사들 역시 해고냐 정규직화냐 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 상태로 간다면 지금은 대학사회의 그늘에서 불안 속에 그저 겨우 존재해 왔던 그들은 더 열악한 존재의 불안상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이 이제 더 이상 '겨우 존재하는' 상태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그들의 희생 위에 존재해 온 대학사회의 비열한 안정을 뒤흔드는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감을 회복하는 길로 나서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시간강사의 현실에 대해서는 여러 채널을 통해 박노자 교수가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 문제는 대학당국과 시간강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정규직 대학교수들의 무게있는 발언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명인 교수의 이 칼럼은 그런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남의 일이 아닌 시간강사의 문제를 더이상 우리 대학사회의 정규직들이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럴때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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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4-1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근본적인' 시정이 필요하죠. 잘 보았습니다. 담아갈게요~
 

한미FTA가 타결되고 몇 주가 지난 지금이다. 이래저래 각 방송사들에서 관련 보도나 토론 등이 잇따랐고, 각 신문사들은 저마다 찬반이 분분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한미FTA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과반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갓 미국이라는 대제국에 편승해서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막연한 희망 섞인 긍정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든다.

한미FTA에 관련해서 최근 김명인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이번 협상 타결을 그는 80년 신군부세력의 쿠데타와 동일 선상에서 해석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한·미FTA에 부쳐]1980년 5월, 그리고 2007년 4월

2007년 04월 10일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주간〉

1980년 5월,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들은 꼭두각시 대통령 최규하와 ‘TK 대부’라 불리던 총리 신현확을 앞세우고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가고 있었다. 박정희의 죽음과 더불어 오랜 군사독재체제의 청산과 문민 민주주의의 정착을 갈망하던 재야인사, 학생, 시민 등 민주세력들은 비상계엄 해제와 군부세력 퇴진을 요구하며 연일 성명과 시위, 농성으로 신군부세력의 음험한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진력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했다.

-역사퇴행 ‘닮은 꼴’ 사건-

그 시절은 이른바 ‘안개정국’으로 신군부세력의 폭력적 집권야욕을 걱정하는 비관적 전망과 설마 다시 또 군사독재의 수렁으로 빠지기야 할까 하는 낙관적이고 순진한 전망이 하루하루 교차되던 ‘타는 목마름’의 시기였다.

하지만 신군부세력은 5월18일 0시를 기해 이른바 ‘비상계엄 확대조치’라는 이름으로 2차 쿠데타를 감행했다. 비극적인 광주학살이 뒤따랐고 민주세력은 초토화되었으며 역사의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돌게 되었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2007년 4월, 신군부세력에 대한 민주세력의 승리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6월 민주항쟁 20년을 맞는 이 봄에 반군부독재 민주세력 승리의 마지막 결실이라고 믿었던 노무현정권에 의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치명적인 결과를 걱정하며 협정 계획이 발표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연일 집회와 시위와 성명과 단식농성과 심지어 분신까지 하면서도, 어쩌면 협상이 결렬되지 않을까 한 가닥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민주정권을 가장한 신자유주의 정권은 27년 전 신군부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쿠데타적 FTA 시나리오를 그대로 밀어붙여 마침내 현실로 만들고 말았다.

80년 5월과 2007년 4월을 이렇게 동일시하는 것을 이른바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들’의 강변이요, 어불성설이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80년 5월은 전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저버린 시대착오적인 폭력적 권력탈취이고, 2007년 4월은 절차적 문제는 있지만 세계화와 개방이라는 대세를 앞서 선취한 불가피한 결단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두 사건은 그렇게 판이한 것일까.

80년 5월의 신군부 집권 과정이란 역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본질적으로 박정희식 쇄국주의를 깨뜨리고 전개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재편성 과정이었다. 그러면 2007년 4월의 이 FTA 협상 타결 과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관철이 종지부를 찍는 일인 것이다.

27년 전에 반민주적 신군부세력에 의한 폭력적 쿠데타의 형태로 시작되었던 그 하나의 과정이 27년 후인 지금엔 위장한 민주세력에 의한 헤게모니적 정책 집행이라는 형태로 완결되었을 뿐이다. 이 뚜렷한 동질성에 비하면 두 사건의 차별성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27년 전 신군부의 집권 앞에서 용비어천가를 드높이 불렀고 이 FTA 타결을 놓고 그동안 그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노무현정권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일부 언론사야말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두 사건의 동질성을 꿰뚫어 알고 있는 노회한 통찰자들이며, 87년체제를 운위하며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는 환상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 노무현정권과 386세력의 배신을 운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순진한 햇내기들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대안 촉구 머물러선 안돼-

지난 27년에 걸쳐 한국사회는 단지 하나의 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 FTA 타결은 이제 그 외의 다른 길, 다른 사회, 다른 국가로 가는 모든 대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마지막 봉인과도 같은 것이다.

이 앞에서 개방은 대세로되 절차상 문제가 있다거나 철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하는 논의들은 모두 한갓 투정에 불과하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투쟁이 진정 진보적인 투쟁이 되려면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투쟁으로 발전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칼럼과 관련해서 <오마이뉴스>의 백병규 기자의 간략한 논평이 있어 덧붙인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진실도, 기사도 디테일 속에 있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 꼭지 조간신문 리뷰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한미FTA 타결을 선언한 지 1주일이 조금 넘었다. 한미FTA에 대한, 이를 이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찬사와 칭송도 이제는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수그러들지 않는, 아니 못하는 사람과 신문들이 있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등등 절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지만, 한미FTA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는, 순응할 수 없는 신문과 인터넷 언론들….

아마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설령 진다하더라도, 아니 질 것이 뻔히 내다보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기로 한 듯하다. 그들이 지난 1주일여 돌고 돌아 도달한 지점은 '다시 민주주의의 문제'다.

FTA 반대 단체에 대한 보복적 지원금 중단이라니...

<한겨레>는 어제(10일) 오늘 위험 수위를 넘은 정부의 FTA 여론몰이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산하단체는 물론 산하 기관이나 기업까지를 총동원한 산업자원부의 FTA 과잉홍보 실태를 어제 1면 머리기사로 올린 데 이어 오늘은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정부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배제하라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을 폭로했다.

행정자치부의 지침은 엉뚱한 데서 드러났다. 인천 연수구에 있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측준비위원회 연수본부'라는 작은 사회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 중단이 발단이 됐다. 인천 연수구는 2002년부터 지원해오던 지원금을 올해는 중단했다. 지난해 8월 통일한마당 행사장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홍보물을 전시하는 등 국가 정책인 한미FTA를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인천 연수구의 총무과장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지난해 11월 행정자치부 장관 주재로 시·도 행정부지사․부시장 회의가 열린 뒤 내려온 지시에 따른 것"이다. 당시 회의 자료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금지'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기록돼 있다.

산하 단체에 기업까지 일사불란하게 동원한 한미FTA 홍보, 반대 단체에 대한 보복적 지원금 중단 조치…. 충격적이다. 지금이 도대체 언제인가. 70년대인가, 아니면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인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잘못 거슬러 온 것인가, 아니면, 내내 착각하고 살았던 것일까?

그리하여 <한겨레>의 어제와 오늘 1면 머리기사는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정치 시대에 살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강준만 "노무현, 역발상과 도박의 연속으로 점철돼 온 정치 이력"

오늘(11일) 그 같은 물음에 나름대로 답을 내놓고 있는 두 편의 칼럼이 눈에 띈다. <한국일보>에 실린 '강준만 칼럼-노무현과 박정희'와 <경향신문>에 실린 '1980년 5월, 그리고 2007년 4월'의 기가 막힌 '동질성'에 관한 김명인 교수(인하대)의 칼럼이다.

강준만 교수는 인간 '노무현'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 '노무현'은 "늘 역발상과 도박으로 커 온 인물"이라는 게 강준만 교수의 진단이다. "30대 중반까지 '민주화'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 "인권변호사로 변신했지만 '의식화교육'은 수박 겉핥기에 머물렀던 것 같"은 사람, "역발상과 도박의 연속으로 점철돼 온 정치 이력"의 소유자가 바로 '인간 노무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박정희는 왜 나오는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는 없지만 "굳이 찾자면 박정희"라고 보았다. 강 교수는 그 근거를 이렇게 제시했다.

"그(노 대통령)는 2004년 5월 연세대 특강에서 박정희는 절대 찬성할 수 없지만 박정희가 목숨을 걸고 한강 다리를 건넜다는 건 평가한다는 말을 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식으로 올인을 해 성공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바로 이 발언에 노무현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 있다. 노무현의 '동업자' 안희정도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 했는데, 노무현 사단의 의식 심연엔 박정희가 자리 잡고 있다. 노무현은 "나는 성격적으로 혁명을 좋아하는 편이다"고 했는데, 평화적 방법에 의한 혁명은 곧 '역발상에 근거한 도박'을 의미했다."


강 교수는 한미FTA는 이런 노대통령이 '국가주의적 의제'를 골라 도박을 한 것으로 보았다. 강 교수가 그러나 정작 주목한 것은 그 방법. "극우 인사 조갑제가 격찬한 것처럼 '초인적인 능력'으로 고압적인 밀어붙"인 방법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나 주장은 매도하거 단죄하는 방식으로 "전형적인 박정희식 방식"이라는 것이다.

김명인, "FTA 타결, 민주정권 가장한 신자유정권의 쿠데타"

<경향신문>에 실린 김명인 교수의 글은 보다 거칠고, 근원론적이다. 김 교수는 한미FTA 타결을 민주정권을 가장한 신자유정권의 '쿠데타'라고 규정지었다. 27년 전 신군부의 행태나 다름없다는 진단이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김명인 교수 스스로 "80년 5월과 2007년 4월을 동일시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들의 강변이요, 어불성설이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을 알고 있다. "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저버린 시대착오적인 폭력적 권력탈취(80년 5월)"와 "절차적 문제는 있지만 세계화와 개방이라는 대세를 앞서 선취한 불가피한 결단(한미FTA)"를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김명인 교수는 그러나 이 둘은 27년의 격차를 둔 '이란성 쌍생아'라고 단정한다. 조금 어렵지만 그대로 기록해보자.

"80년 5월의 신군부 집권 과정은 본질적으로 박정희식 쇄국주의를 깨뜨리고 전개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재편성 과정"이고 "2007년 4월의 한미FTA 협상 타결은 그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관철이 종지부를 찍는 일인 것이다."

김명인 교수의 이런 분석에서 주목할 점은 그 주어가 '미국'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의 재편은 바로 미국의 세계 질서 재편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손바닥 위에서 79년 궁정동의 총소리도, 12·12 쿠데타군의 기습 공략도, 5·17 쿠데타도 가능했고, 그 대미가 바로 한미FTA라는 풀이다.

이미 '시스템'은 거꾸로 돌기 시작한 지 한참 됐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중요한 건 '민주주의'다. 이런 평가도, 저런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물론 비판의 당사자로서는 참기 힘든 '비난'이며 '매도'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민주주의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한겨레>의 기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아니, 그 작은 사안 하나 갖고 무슨 호들갑이냐고? 시스템의 말단이 역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거대한 시스템'이 확실하게 거꾸로 돌기 시작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서울시 3% 강제 퇴출이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관철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미 '시스템'은 거꾸로 돌기 시작한 지 한참 됐다.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악마는 디테일(구체적인 세부 사항) 속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악마만 디테일 속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진실도, 기사도 디테일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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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MBC 100분 토론의 주제가 "3不 정책 고수냐 폐지냐"였다. 우연찮게도 오늘 내가 옮길 김명인 교수의 칼럼도 '3不 정책'에 관해서다. 우리의 손석희님께서 마지막 멘트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는데, 요즘은 이런 말을 잘 않하는 것 같다. 오히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다."(나의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한 것임)

  대통령은 누구를 기만하는가?
  [김명인 칼럼]3불정책 찬반론을 넘어서 2007-03-26

  교육문제라는 것이 워낙 난마같이 얽혀 있는, 대한민국 사회 최대의 미스테리이자 스캔들이고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여러 해째 시사문화 계간지를 만들어 내면서도 특집 한 번 못 만들고, 이런저런 매체에 칼럼을 기고한 지 꽤 오래면서도 제대로 된 글감으로 다루어 본 기억이 별로 없었으며, 대학교수로서도 학교사회 내에서조차 이렇다 할 발언을 한 적이 없다.(현재 국어교육과 교수다. 김명인 교수에겐 교육이라는 지독한 물음에 어떤 방식으로든 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덧씌워진 숙제라고나 할까?)
  
  지식인은 구체적 문제에 대해 구체적 대답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에 공감해 왔으면서도 한국의 교육 문제에 관한 한 그 명제는 늘 무기력했다. 교육문제에 관한 한 일종의 '올 오어 나싱'-혁명적 단절을 통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문제라고 밀쳐두었던 것인데 요즘 다시 '3불정책'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는 형세라서 대학교수로서의 나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쳐두었던 교육문제, '3불정책'으로 불붙다
  
  이 3불정책은 1998년 국민의 정부 시절에 확립된 대학입시 관련 기본 정책으로서 기여입학제 금지, 대학별 본고사 금지, 그리고 고교등급제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정책과 관련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대학입시 관련 논의가 있을 때마다 정부와 대학들 간에 오고 가는 단골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마침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라는 곳에서 '서울대 발전의 걸림돌'로 3불 정책을 지목했고, 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으며, 여기에 전직 서울대 총장이자 잠재적인 유력 대선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과 대통령이 그 폐지와 유지 양론으로 맞서고 또 여야가 입장이 갈리고 하는 와중에 그러지 않아도 교육문제라면 4000만이 전문가라는 한국사회에서 네티즌을 위시한 여론층들이 이 의제를 중심으로 술렁이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로서는 이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 절대 다수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립대 총장협의회에서 폐지 논의가 나왔다고는 하나 이른바 일부 메이저 사학들을 제외한 상당수의 사립대에서는 폐지 의견에 찬성한 바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고, 전반적으로 그 폐지는 중등교육의 서열화, 사교육의 전면화, 교육 양극화의 극한적 확대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판단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제부턴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산이 되어버린 일부 언론이 '3불정책 폐지' 여론을 집요하게 확산시키고 있을 뿐이다.
  
  '3불정책 반대론'은 차라리 솔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3불정책 반대론 혹은 폐지론은 윤리적으로는 잘못된 것일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3불정책 고수 입장은 교육의 극한적 서열화와 경쟁, 양극화, 정확히 말하면 계급화를 반대하는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지금 한국의 교육은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양극화, 계급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내신제가 있건 없건, 수능 등급제가 되건 말건, 대입제도가 매년 어떻게 손질되건 어떤 경우의 수가 제시되더라도 이미 한국 교육은 부모가 사교육에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을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차원으로 완전히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고교 등급을 매기고 본고사를 부활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검증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우수한 학생이란 것이 결국 사교육비로 성형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에 따라 고교 등급도 달라지고(특목고 열풍을 보라!), 본고사 성적도 결정된다(사교육의 끝없는 진화와 고도화를 보라!)고 볼 때, 결국 현재 계급교육으로서의 한국교육의 내용과 형식, 명과 실을 논리적으로 서로 부합되게 하자는, 형식논리상 자연스러운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일류대학들은 바로 현행 계급교육의 황금과실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며, 그 검증된 '돈 덩어리들'을 토대로 하여 일류대로서의 기득권도 유지하고 이른바 '국제경쟁력 강화'도 노려보겠다는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불행히도 돈은 있지만 아무리 퍼부어도 성적이 안 따라주어 일류대-상류계급의 순환구조에서 탈락하게 된 그 불우한 '돈 덩어리들'을 일부 구제해 주고 그 돈을 나누어 먹자는 논리이다. 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현실에 부합하는 입장인가?
  
  대통령, 국민을 기만하거나 자신을 기만하거나
  
  3불정책 폐지 불가론을 가장 강력하게 천명한 것은 대통령이다. 3불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입장은 국민 절대다수의 윤리적 감각에도 부합하고, 어쩌면 그의 신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대통령과 그가 이끌어 온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신념 및 정책과는 상호 부합하지 않는 모순된 입장이다.(어쩌면 그간 노무현은 모순의 사나이였다.)
  
  대학을 비롯한 교육과정 전체의 초점을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 맞춰놓고 채찍과 당근을 섞어가며 대학교육을 통제하여 계량적 서열화를 조장해 온 것이 참여정부가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참여정부가 이 흐름에 어떤 제동도 걸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3불정책 고수를 천명하기 전에 대통령은 교육정책에 관한 자신의 신념이 과연 무엇인지 먼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지금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신념이라면 그의 3불정책 고수 발언은 국민을 기만한 것이며, 교육 양극화와 계급화 저지가 신념이라면 그가 수반으로 있는 참여정부의 현행 교육정책이 그 자신을 기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교육을 할 것이냐'를 먼저 물어야
  
  결국 현재 3불정책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은 좋게 본다면 교육 계급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며, 현실의 전개과정보다 늘 지체되기 마련인 사회구성원들의 윤리감각, 혹은 국민정서라고 불리는 이데올로기적 잔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만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 교육에 필요하다면 부유층, 중산층, 빈곤층 가릴 것 없이 어떠한 성찰보다도 먼저 돈으로 해결할 생각부터 하는 이땅의 대다수 학부모들도 자기기만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자기기만의 그늘 속에서 대학과 교육부 관료와 교육이론가들과 사교육 업자들과 참고서, 교과서 출판자본들의 강고한 이해관계의 트러스트가 악성 종양처럼 한국교육 전체를 뒤덮어 회생불능의 상태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더욱 더 절망적인 것은 이 악성종양의 규모와 감염성에 질려 '올 오어 나싱'이라는 패배주의에 빠진 진보적 지식인사회의 무기력, 특히 대학교수들의 놀라운 무감각 혹은 순응주의일 것이다.
  
  부자 빈자 무차별하게 부과되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립서울대학교 교수들이 3불정책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는 이 기막힌 몰지성적 상황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나 역시 같은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이 구체적인 질문에 어떤 구체적인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자문하면 부끄러운 마음 감출 수가 없다.
  
  3불정책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어떤 교육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묻고, 헌법정신에 의거한 교육의 사회성과 공공성을 과연 지금의 한국사회가 수호해 나갈 의지와 능력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를 고민해야 하고, 그 판단에 따라 보다 근원적인 교육변혁, 나아가 사회변혁의 실천을 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밟아 가야 할 생각과 삶의 바른 순서일 것이다.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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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은 <프레시안>에 실린 지난 3월 6일자 칼럼이다.  시의성이 다소 떨어지는 소재일지 모르겠지만, 윤장호 하사의 죽음은 채 2달이 못 되었다. 세간에서 많이 잊혀진 듯한 느낌인데, 이 칼럼을 뒤늦게 소개하는 나로서는 윤장호 하사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을 되 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누가 그 청년을 바그람에 보냈는가
  [김명인 칼럼]'영웅론'을 부르는 국가주의 2007-03-06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미공군기지 위병소 앞에서 한국군 다산부대 소속 통역병 윤장호 하사가 아프간 무슬림전사의 자폭공격을 받고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머리 속 생각보다는 며칠 후 징병신체검사를 받게 되는 스무 살짜리 아들(무척 잘생겼다.)을 하나 두고 있는 보통 아버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생리적 아픔이 먼저 저릿하게 고개를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왜 하필 그 한 명이 너여야 했느냐'던 윤 하사 부모의 절규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아들을 군대에 보낸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은 하나같을 것이다.)
  
 
 
 
 
 
 
 

  베트남 전 종전 이후 한국군의 외국에서의 첫 전사 사례라고 하는 윤 하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지난 일주일 동안 많은 말들이 있었다. 미국 유학파 엘리트 청년의 죽음 자체를 안타까워하는 말들, 해외파견 한국군부대의 안전대책 미흡을 성토하는 말들, 위기지역에서의 조기철군을 주장하는 말들…. 해외 파견병력의 전면철수를 주장하는 견해도 적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파병의 불가피성은 수용하되 기본적으로 비전투병력인 해외 파견 한국군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럴 경우 철군을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 여론의 큰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큰 흐름 속에서 애국주의 혹은 국가주의의 목소리들도 적지 않게 들려오고 있었다. 우선 윤 하사를 영웅시하는 상당수의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파견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군 입대 자체를 피할 수도 있었던 그가 아프가니스탄 근무를 자원했다가 불의의 죽음을 당했으니 그는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조국의 부름을 받아 목숨을 바친' 영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부 네티즌들의 분위기 위에서 한 신문은 이를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자이툰 부대 소속으로 이라크에 자원 파견되는 몇몇 고위층 자제들의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쥬'적 실천과 한데 묶어서 미화하기에 이른다.
  
  물론 윤 하사가 이런저런 핑계로 병역을 기피하거나 입대를 하더라도 편안한 특기와 근무처만 찾아가는 특권・고위층 자제들이나 유학생들과 비교할 때 '윤리적으로' 올바른 청년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으며 이를 조금 과장해서 '영웅'이라 부르는 것도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조국의 부름을 받고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는 데에 이르면 그것은 설사 수사학적 과장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있다. 그것이 병역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신성한 의무이고 국가가 요구하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위험한 것이다. 거기엔 국가가 개인보다 언제나 우선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개인과 국가의 관계, 국가주의의 맹점들을 고종석의 글에서도 읽을 수 있다. 병역의 의무에 대한 비판은 한홍구, 박노자 등에 의해서 계속 비판되어져 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국가이성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국가가 보편타당한 인류적 감각에 비추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보다 더 많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사회의 구성원들은 늘 국가의 정책과 노선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국가의 판단이 그른 것이 분명한데도 그 판단에 따라 자신을 희생한다면 그는 현명한 국민, 바른 시민이 아니라 일개 노예적 신민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 윤하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부에서 일고 있는 '영웅론'에는 국가와 그 구성원 사이의 이런 이성적이고 민주적 관계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짚어두고 싶은 것이 있다. 흔히 병역의 의무를 국민의 절대의무로서 신성시하고 있는데 이른바 병역과 관련된 헌법상의 국민적 의무라는 것은 '국방・교육・ 근로・납세의 의무' 중의 하나인 국방의 의무이지 병역의 의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병역의 의무는 국방의 의무의 한 하위 범주일 뿐이라는 것이다. 국민은 국가가 외침에 의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병역에 복무하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수단과 노력을 동원하여 국가를 방어할 의무가 있지만, 그것이 곧 병역의 의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 병역의 의무는 국방의 의무와 배치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국가가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국민에게 병역을 강제하고, 그 침략전쟁으로 말미암아 거꾸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그때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국가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나라를 지킨다'는 범위를 벗어나 외국에 군대를 보낸다는 것은 그 어떤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국방의 의무'와는 무관한 일이다. 또 다른 한 신문은 우리가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이만큼 컸고, 세계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파병은 불가피하다고 강변하면서 역시 윤 하사를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애국청년'이라 부르고 있다. 국제사회에 진 빚을 갚는 것도 좋고 세계시장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파병 이외에, 그것도 미국이 저지른 아름답지 못한 전쟁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위한 파병이라는 방식 이외에 그러한 국제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그 신문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면, 우리는 정말로 전쟁을 원하지 않는 나라이고 평화를 원하는 민족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다시 생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냉전적 적대의식 속에서 수십년 째 60만 대군을 유지해 오고 전체 GDP 대비 3%에 육박하는 예산을 군사력의 유지 강화에 쏟아 부어 오는 동안, 우리사회는 알게 모르게 평화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냉전체제의 해체와 남북간 긴장완화로 국방상 위험요소가 분명히 줄어들고 있는데도 여전히 군사력 강화는 절대과제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이젠 어느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8개국에 2500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군사력 수출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군사력은 어느 정도 이상 팽창하면 그 자체의 논리에 의해 평화와 대립하게 되어 있다. 군사력을 외침으로부터 국가사회의 안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수준으로만 유지하고 그 필요량을 부단히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군사력은 팽창하고 팽창한 군사력은 속성상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위기상황을 늘 요구하게 되어 결국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
  
  과연 한국은 이러한 군사력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인가? 불행히도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군사력 절대주의적 사회분위기는 거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평화적이고 적대적인 세계인식과 폭력숭상의 문화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윤 하사의 선임병으로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 근무했던 한 청년이 한 일간지 기고에서 술회한 대로 우리는 오래 전부터 '무력과 호전성과 전쟁과 침략을 정당화하고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젖어 왔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군대를 양성해 왔다. 이런 사회는 여전히 불안하고 위험하다. 평화적이지 않다.
  
  평화는 무력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사회, 평화가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통해서 지켜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구성원 간에 이런 합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기는커녕 국익의 이름 아래, 국가주의의 그림자 아래 이런 합의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윤 하사라 불리는 한 청년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숭고하고 영웅적인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다.
  
  윤 하사의 죽음은 그가 아프가니스탄 근무를 자원했기 때문에 더 안타깝고 억울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에게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잘못된 것이라고, 그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특히 한국교회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히려 기독교(개신교)에서는 이번 전쟁을 마치 성전처럼 여기고 있는 분위기다. 얼마전 기독교TV에서 개신교계 고위층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한국교회가 얼마나 잘못 가고 있는가를 절감한 적이 있다. 북한은 마귀요, 미국은 하나님의 나라고, 우리를 마귀로부터 지켜주는 형제국, 즉 형님나라이니까 우리가 잘해야 한다는 그런 망령을 떨고 있던 것이었다. 신도들의 '아멘'소리가 우렁찼던 것은 더욱 맘을 아프게 한다.) 그가 스물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에게 그것은 세계평화의 길도, 애국의 길도, 효도의 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교육과 문화가 그로 하여금 억울하고 허망한 죽음의 길로 향하게 했다. 며칠 뒤면 징병검사를 받고 한두 해 내로 입대하게 될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아들과 같은 세대의 한 청년에게 억울한 죽음의 길을 자원하도록 방치한 후회가 가슴을 친 지난 일주일이었다.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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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4-1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해 마땅한 것을 다시금 새겨주었어요. 잘 보고 갑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www.pressian.com)에 김명인 교수(인하대 국어교육과)가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와 발맞추어 <金明仁 칼럼>란을 만든다. 여기서는 <프레시안> 뿐 아니라, 기타 매체에 기고한 김명인 교수의 글들도 걸리는 데로 옮겨오도록 한다. 얼마 전 김명인 교수의 칼럼을 모아 후마니타스에서 책으로 낸 적이 있기도 하다. 그만큼 김명인 교수의 칼럼은 읽음직스럽다.

 

 

 

 

<프레시안> 편집장의 소개글을 먼저 보도록 하자. 인상적인 부분이 꽤 있다.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한 '잠들지 않는' 예민한 지적과,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환부를 드러내 보일 정도의 치열한 자기성찰을 계속해 온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프레시안>을 통해 그의 사유의 일단을 선보이게 됐다.
  
  <김명인 칼럼>이라는 문패 아래 대략 격주 간격으로 선보일 이 칼럼은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걱정하며,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조근조근 따져보는 형식을 취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초대의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이 일련의 칼럼들을 통해 우리가 늘 친숙하게 생각하는 화두 속에서 어느날 낯선, 다시 곱씹어봐야 할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잠들지 않는'이라는 수식은 그의 기행문집 『잠들지 못하는 희망』에서 따온듯 하다. 간단히 그의 저서들을 일별해 보자.

 

 

 

 

『희망의 문학』(1990),『잠들지 못하는 희망』(1997), 『불을 찾아서』(2000),『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2000),『조연현 비극적 세계관과 파시즘 사이』(2004)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2004) 등이 있고 공저로는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2002),『살아있는 김수영』(2005),『신영복 함께 읽기』(2006),『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6』(2006) 등이 있다.


 

아시아는 어디에 있는가? - 여수의 비극과 한류 사이에서(2007-02-15)

  여수 출입국사무소의 불법체류자보호소 화재로 그곳에 '보호'되고 있던 불법체류 외국인 아홉 명이 죽고 열여덟 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들은 가까이는 중국, 멀리는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은 아시안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새로운 기회의 나라 대한민국이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에게 준 것은 결국 비참하게 죽을 기회뿐이었다.
  
  언론은 사건 이후 연일 보호시설의 열악한 인권실태와 가혹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대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획기적인 대책은 여전히 난망이고 죽은 이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사건은 곧 닥칠 추방의 운명에 지레 절망한, 한 재중국동포의 자포자기적 자해 방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그의 영혼은 육체적 죽음 이전에 이미 절망과 고통으로 먼저 질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은 이들 모두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수에서의 절망과 이 땅의 아시아 담론
  
  아시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나라에는 아시아 담론이 꽃을 피우고 있다. 세계사의 피해자, 아시아의 지정학적 희생자라는 사실을 특권화하면서 오랜 일국적 피해망상과 과대망상 사이를 왕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결엔가 아시아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는 형편이 되었다. 세계화와 개방화의 덕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시아를 입에 올릴 때는 세계를 입에 올릴 때와는 다른 뉘앙스가 있다. 세계는 아직도 따라잡지 못한 어떤 것으로서 여전히 선망을 수반하는 대상인 데 반해, 아시아는 우리와 대등하거나 우리에 못 미치는, 혹은 우리가 이미 앞질러버린 것에 대한 우월감을 수반하는 대상인 것이다.(이하 본문의 굵은 글씨는 옮긴이)
  
  그것은 이제 좀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 한국자본주의의 초과이윤 획득 혹은 이윤보전에 대한 욕망이 아시아의 상대적 저개발국으로 향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아시아는 이제 훌쩍 커버린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적 경쟁대상이거나 착취대상으로서 떠오른 것이다. 이른바 '한류 담론'이 대한민국을 발신자로 하고 아시아 각국을 수신자로 하는 새로운 문화전파론의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선진국' 일본에 대해서는 각축자의 포즈를 취하고 다른 아시아 각국들에 대해서는 전파자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자본주의의 이런 사정과 정확한 아날로지를 이루고 있다.
  
  지식인사회의 아시아 담론도 그 내밀한 맥락은 이와 그리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시대에서부터 오랜 동안 일국적 사유의 질곡 속에 갇혀 있던 진보적 담론들이 아시아를 발견하고 획득하게 된 맥락 역시 한반도를 이른바 '세계 근대사적 모순의 결절지점'으로서 인식론적으로 특권화하고, 그 토대 위에서 아시아를 관념적으로 대상화한 데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대안담론 구성이라는 맥락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아시아를 논할 때 무의식적으로 일본과 중국을 일차 파트너로 상정하고 그 나머지를 부차화하는 것, 즉 아시아를 관념 속에서 위계화하는 것이 한류를 포함한 한국자본이 아시아를 위계적으로 사유하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
  
  반면에 지식인 간의 네트워크의 수준을 넘어서 아시아 민중의 연대를 사유하고 행동하는, 보다 실천적인 아시아 담론들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사유의 중심은 한반도에 놓여 있게 마련이고 네트워크의 이니셔티브 역시 한국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경험을 '수출'한다는 발상과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시아 담론에선 왜 식민주의의 냄새가 날까?
  
  이처럼 한국에 있어서 아시아는 일종의 신개지이자 프론티어리즘의 대상으로 다가와 있다. 그리고 이런 신개지론, 프론티어리즘의 배후에는 알게 모르게 내셔널리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고, 그것은 조금 더 발전하면 일종의 식민주의의 논리와도 맥을 같이하게 된다. 식민주의의 본질은 차별화이며, 차별화는 상호주체성 없는 대상화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아시아 담론의 무의식에는 많건 적건 식민주의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나는 아시아의 연대라는 것은 '고통의 연대'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제국주의 지배와 식민주의의 질곡이라는 공통의 역사경험이 현재의 아시아 민중의 삶을 여전히 위협하고 식민화하고 있다면 아시아적 연대의 토대는 바로 그러한 식민화가 산출하고 있는 삶의 구체적 고통들을 함께 나누고 그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는 데에 있다는 뜻이다. 그럴싸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여전히 관념적이고 어쩐지 성에 차지 않는다. 왜냐 하면 아시아적 고통은 어디 평양에 있고, 오키나와에 있고, 반다아체에 있고, 스리랑카에 있고, 티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여기 바로 한반도의 바로 내 코 앞에서 먼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는데 정작 나는 그것을 제대로 나의 문제로 삼아 씨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우리 눈 앞에, 우리 코 앞에 있건만…
  
  북한사람, 조선족, 중국인, 몽골인, 베트남인,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미얀마인, 네팔인, 방글라데시인, 스리랑카인, 우즈베키스탄인…. 이처럼 수많은 아시아 민중들이 지금 바로 우리 곁에서 살인적 초과노동을 하고 착취당하고 손가락 잘리고 사기 당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도망다니고 밀입국하고 단속되고 '보호'되고 추방되고 때론 도둑질도 하고 살인도 하고 방화도 하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바로 여기 아시아 속의 '대한민국'이 있고, 대한민국 속의 아시아가 있는데 우리의 아시아 담론들은 어디를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아시아 담론을 운위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속의 아시아와 아시아 민중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신흥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민과 피식민 관계가 매일매일 연출하고 있는 이 적나라한 수라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이 안에서 아시아적 고통에 대한, 아니 세계적 규모와 차원의 고통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 바탕 위에서 아시아적 연대를 수행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모든 아시아 담론은 본질적으로 식민담론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아시아 담론, 즉 우리 안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적 인식들에 대한 비판을 이미 박노자 교수가 해온 바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특히나 동남아 및 아프리카, 아랍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에서 우리가 얼마나 냉혹하고 비인간적인지 그 실상들을 박노자 교수는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이를 통해 '우리 아시아'적 연대가 일어날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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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4-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명인 교수님의 이름과, 황해문화 이름이 콱! 박히네요. 잘 읽고 가요~

멜기세덱 2007-04-1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자주 들러 읽어주세요...꾸준히 올리려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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