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인 한 卷의 冊]『李鈺 全集』

不遇한 知識人과의 만남

鄭夏英(梨花女大 敎授)


  이 世上에 태어나서 살다 간 사람들 中에서 自己가 이룩한 만큼 認定받는 사람도 있지만, 相當한 業績을 남기고서도 一生을 苦難 속에 살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진 境遇가 許多하다. 나는 1970年代 初盤에 그런 사람을 冊을 通해서 만났다.

  大學院 時節에「沈生傳」을 처음으로 接하고, 그 作品의 높은 文學性에 感歎을 禁할 수 없었다. 身分이 다른 男女의 悲劇的 사랑을 다룬 이 漢文小說은 簡潔한 文體와 짜임새 있는 構成, 感動的 主題로 讀者의 心琴을 울리는 作品이었다. 이 作品의 作家가 바로 李鈺(1760(英祖 36)~1812(純祖 12))이었다. 그는 燕巖 朴趾源과 同時代를 살았고 文學的 才能에 있어서는 결코 燕巖에게 뒤지지 않았지만, 國文學 專攻者들에게조차도 生疎한 人物이었다. 그는 寒微한 家門에서 태어났고, 自己 所信을 굽히지 않았던 까닭에 出世의 길이 막혀 있었다. 게다가 自己 作品을 看守해 줄 변변한 後孫조차 없어서 그의 作品이 널리 流布되지 못했고, 그 結果 우리는 그의 作品을 쉽사리 만나볼 수 없었던 것이다.

  李鈺의 不幸은 그가 지은 작은 글에서 發端되었다. 그는 成均館 儒生으로서 正祖에게 지어 바친 글에서 當時에 流行하던 小說文體를 使用하였다. 이것은 임금의 强力한 文體反正 意志를 拒逆하는 일이어서 强한 譴責을 받았다. 그런데도 固執을 버리지 않고 다시 科擧 試驗에서 小說文體를 使用하자 嶺南 三嘉縣으로 充軍되는 罰을 받게 된다. 넉 달 동안의 軍隊 生活에서 풀려난 뒤로 그는 科擧의 꿈을 접고 故鄕인 京畿道 南陽으로 내려가 農事를 지으며 著作 活動을 하였다. 그는 文無子, 梅花外史, 絅錦子, 桃花流水館 主人이라는 號를 쓰면서 韻文과 散文을 넘나드는 作品 活動을 하였다. 그는 上層 知識人의 文學을 追求했으면서도 庶民 階層의 文學에 各別한 關心과 愛情을 보였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李鈺의 作品을 切親한 親舊 金礪가 모으고 校訂하여 自身의 文集인『潭庭叢書』에 收錄해 놓은 것은 그나마 多幸이었다. 11卷으로 된 그의 作品들은「沈生傳」以外에도 20餘 篇의 傳과 嶺南 紀行文, 書簡, 序跋, 記, 論, 說, 策 等 多樣한 形式을 띠고 있다. 이들 作品에는 作者의 豊富한 體驗과 世上을 보는 銳利한 觀察力이 잘 드러나 있어 文學史的으로 重要한 意義 가진다.

  別途의 冊으로 傳하는『藝林雜稗』에는 詩創作論과 더불어 65首로 된 漢詩「俚諺」이 들어 있다. 朝鮮 社會의 庶民 階層을 代表하는 네 部類의 女性들을 登場시켜 삶의 哀歡을 노래하고 있는데, 漢詩의 形式을 取하고 있으면서도 內容은 民謠風의 情緖를 담고 있다. 伽藍本『靑邱野談』에 따르면 漢文 戱曲「東廂記」도 그의 作品이라고 하니, 그의 文學的 才能이 實로 多樣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公開되지 않았던 李鈺의 文集 全貌가 近來에 公開되면서 그의 全作品이『李鈺 全集』으로 飜譯되어 나왔다. 이를 通해서 우리는 朝鮮時代를 代表하는 獨特한 文人 李鈺을 새롭게 만나고, 아울러 우리 傳統 文學의 格調 높은 作品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

<語文생활> 통권 제110호,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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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論說]

옛날 사람들의 多樣했던 語彙

安秀桔(서울大 名譽敎授)


  우리 어렸을 때 서울 뒷골목들은 생각보다 놀 거리가 적었다. 그래서 같이 놀아줄 아이들이 必要해서 옆집 大門에서 “인희야↗ 나와↗ 놀자↗”라는 말을 그리 쉽게 외쳐댔던 생각이 난다. 淸進洞, 그리고 公平洞 等 골목 속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大門 밖에는 어린아이 키 程度의 윗面이 傾斜진 시멘트 쓰레기桶이 하나씩 있었고 그 쓰레기桶 뒤에 유난히 다리 긴 거미들이 살았는데, 그것을 잡을까 말까 기웃거리고 있으면 “生鮮… 비웃드령!”을 외쳐대는 바지게 行商 아저씨의 으르렁거림이 들리곤 했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生命을 대단히 重視해서 살아 있는 動物과 죽어 있는 動物의 差異는 컸다. “비웃드령!” 하고 외치는 것은 지금 말로 “비웃을 들여 놓으셔요” 하는 말로, ‘비웃’이란 ‘靑魚’를 말하되 ‘靑魚’라는 말은 隱然中에 살아 있는 물고기 ‘靑魚’를 뜻했고, 이를 잡아서 그 살코기를 食用으로 가지고 다닐 때에는 ‘비웃’이었던 것이다.

  漢字로 ‘貊’字에서 ‘百’대신 ‘者’를 쓴 글字는 멧돼지 ‘豬’이고, ‘돼지 豕邊에 놈 者’, 즉 ‘猪’는 ‘돼지새끼’이고, 집돼지, 멧돼지 合해서 豕이지만 죽은 살코기를 생각할 때에는 豚으로 나타낸다. 옆에 肉달月邊이 있으니 肉으로 分類하는 것으로 봐도 首肯이 갈 것이다. 卽 죽은 다음에는 같은 글字를 쓰지 않는 것이다.

  같은 模樣으로 해서 살코기도 多年間 기른 成牛 고기는 ‘beefsteak(佛語로는 bifteck)’라고 부르지만, 송아지로 아직(먹이는 대로 살로 가서 斤數가 늘어나는 成長期의 끝點에서 잡아) 採算性이 높은 소의 살코기는 ‘veal’이라고 부르고, 그 어린 소는 살아 있을 때는 ‘calf’이다. ‘veal’은 엷은 살빛이고 구우면 곧 희뿌연 빛이 되며 veal에서 깊은 맛을 企待할 수는 없다. 지난 世紀까지만 해도 儉素했던 獨逸의 시골 푸줏간에는 平常時 ‘veal’밖에 없고 맛이 깊은 ‘beefsteak’가 必要하면 미리 注文을 해야 했다.

  이 ‘veal’을 國語院에서 ‘犢牛肉’이라 이름붙여 公告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지만, 于先 한 가지 差異點만 指摘하고 지나기로 한다. 그것은 正確하게 따져 商業的 目的으로 키울 만큼은 키운 ‘veal’과 우리나라 農村에서 옛날에 말하던 ‘어린 송아지 고기’와는 다르다는 點이다. 客談으로 英語 語彙를 說明하자면 암소와 수소는 각각 ‘cow’와 ‘bull’이고 ‘ox’는 빠른 成長을 爲해서 去勢해서 기른 수소이다.

  워드 프로세서에서 ‘시간’을 찍어서 漢字로 變換을 하면 豫定했던 ‘時間’은 안 나오고 ‘屍姦’이란 單語가 먼저 나와서 깜짝 놀라게 된다. 이때 ‘屍’는 ‘죽음(death)’을 겪은 ‘주검’, 卽 屍體이다. 英語의 境遇도 屍體는 ‘corpse’라고 다르게 부른다.

  韓國에서는 한동안 ‘주검’을 ‘死體’라고 말하는 記者들이 있더니 昨今은 亦是 ‘屍體’라고 쓰는 傾向이 늘어난 것 같다. 아마도 放送 關係에서 關心 갖는 有志들의 꾸준한 努力의 結實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동안 猛威를 떨쳤던 ‘먹거리’도 요새 ‘먹을 거리’로 가닥을 잡게 된 것 같다. 이러한 些少하게 보이는 ‘되잡음’의 效用을 믿는 것이 眞正한 知性人일 것이다.

  우리들의 話題로 돌아와서 上述한 바와 같이 ‘屍’라는 글字는 하나의 글字인데도 ‘專門 述語’인 셈이어서 生死를 가름하는 ‘corpse’에 該當되는 漢字를 아는 사람들은 ‘檢屍’ 等 亦是 ‘屍’字를 活用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제대로의 單語를 안 쓰고 풀어쓰게 되면 初等學校 學生과 마찬가지로 흔한 말에 偏重되어 單語 使用 頻度 分布에 ‘富益富 貧益貧’ 現象이 일어난다.

  反對로 述語를 제대로 찾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單語 使用 頻度 分布曲線(Zipf's curve)이 눕게 되어 그 言語는 內容 密度가 높은 ‘强力한 言語’가 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척 많지만 20年 前까지만 해도 그 옛날 書堂에서 千字文을 발板으로 出發을 했던 韓國 사람들 言語의 單語 發生(使用) 패턴은 英語나 中國語보다 그 分布가 더 平平해서 情報 密度의 見地에서 가장 强力한 것이었다.

  英語의 境遇는 第一 흔하게 使用(發生)하는 ‘the’가 大略 10分의 1을 차지하고(열 單語에 한 單語는 ‘the’) 두 番째 자주 發生하는 ‘of’가 그 2分의 1, 卽 거의 20分의 1, 세 番째로 자주 發生하는 ‘and’가 大略 30分의 1, 그리고 열 番째 자주 나타나는 ‘I’가 100分의 1 程度이다.

  이러한 規則性을 Zipf의 法則이라 하는데 놀랍게도 全世界 어느 言語나 모두가 다 大綱 이러한 規則性(對數 눈금으로 直線이라는 勾配만 다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韓國語의 境遇(30年 前) 가장 자주 發生하는 單語는 ‘것’으로 發生 確率은 2.285%니까 英語 ‘the’의 10%에 比해 出發點이 낮고, 따라서 Zipf의 曲線이 가장 누워 있는 言語이다. 이는 우리가 日常生活에서 쓰고 있는 低邊 單語數가 제법 많다는 뜻이 돼서 ‘韓國 사람 말 못해서 죽은 사람은 없다’라는 俗談에 根據가 된다고 하겠다.

  卑近한 例가 우리에게 ‘分岐’點이란 말은 흔하고 漢字를 쓰면 ‘分期’點하고도 區分이 되는데, 英語에서는 ‘bifurcation’이라는 라틴말級이 되고, 아니면 ‘forking’이라는 말, 卽 ‘포크’라는 食卓 單語를 손질해서 쓰게 된다. ‘forking’이란 單語는 우리말로 그 級을 比較했을 때 ‘사타구니’쯤 되는 것이다. 풀어쓰자면 ‘갈림’이 되는데 이때에는 ‘離別’리라는 말과 混同될 危險性이 있다.

  急變하고 있는 地球村에서 우리는 漢字 述語들을 다시 活用하고 지난날의 語彙를 回復해야 한다. 그리고 變해가는 時代에 日常的으로 새 單語를 만들어 쓸 줄 알아야만 未來가 있다고 할 것이다.

<語文생활> 통권 제110호,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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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隨想]

自筆 署名 有感

張鍾權(詩人 ․ 季刊 <리토피아> 主幹)


  創作物이 들어 있는 郵便物을 받으면 于先 表紙를 들치고 맨 앞張 面紙에 쓰여 있는 著者의 自筆 署名을 살피게 된다. ‘平素 베풀어 주신 關心과 사랑에 感謝드리며 그동안의 熱과 誠을 다한 作品集을 보내 드리오니 삼가 恩惠로운 가슴으로 챙겨 두시고 또 읽어 주시길 바라나이다.’라는 뜻의 文句가 大部分 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署名을 發見하면 보낸 이의 얼굴이 먼저 떠올라 환한 微笑가 퍼진다. 보낸 이의 고맙고 따스한 마음이 먼저 달려온다. 수고로운 그동안 作品 活動의 結果物을 누구보다 먼저 보아 주십사 보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그래서 아름다운 自筆 署名이 담긴 冊은 그 冊에 담긴 수고와 精神이 두 곱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읽는 이의 마음이 積極的일 것은 自明한 理致이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冊床 앞에 챙겨 두고 틈이 날 때마다 바라보게 된다. 보낸 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읽는 것도 즐겁다. 書架가 비좁아 헌 冊을 整理할 事情이 생겼을 때에도 署名이 담긴 冊은 끝내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면서 平生 그의 同志가 되기 마련이다.

  創作 印刷物은 그 自體로 所重한 것이다. 그러나 一次的으로는 機械文明의 냄새가 짙어서 人間的인 體溫을 느끼기가 어렵다. 勿論 內容을 읽어 가면서 充分히 著者의 냄새를 맡을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不拘하고 精誠이 가득 담긴 自筆 署名의 價値를 否認할 수는 없다. 이처럼 自筆 署名이 重要한 意味를 갖게 되는 것은 받는 이에게 肉筆을 通해 自身의 마음과 香氣를 最大限으로 傳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낸 이의 精誠과 香氣가 그대로 배어 있어서 더 고맙고, 自身을 眞正한 벗으로 여겨주거나, 아니면 尊敬스러운 對象으로 信賴해 주는 것 같아 또 고맙기 그지없다. 날로 刻薄해져 가는 現代社會에서 그래도 나를 認定하고 記憶해 주는 사람이 있어 더 感謝하는 마음이 생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香氣로운 人事말까지 곁들여 있으면 얼마나 感動的이겠는가.

  多年間의 作業을 通해 創作 作品集을 만들어 낸 분에게 그 結果物은 더할 수 없이 所重하다. 누구든 한사람이라도 讀者의 모습으로 다가와 自身의 精神的 産物을 읽어주길 苦待한다. 그런데 先輩, 同僚 할 것 없이 平素 잘 알고 지내던 知人들에게야 오죽하랴. 平素 顔面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한 番쯤 읽어 달라는 所望이 이 自筆 署名에 많이 담기게 된다. 어느 程度 讀者를 確保하고 있는 著述家들이야 아무래도 贈呈本을 많이 보내지는 않는다. 쓰기만 하면 읽어줄 사람은 따로 있어 幸福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래도 自身의 著書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多少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自身을 아껴주는 사람들에 對한 報答이고, 그리고 自身이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다는 强力한 證據이며 一種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단 한 마디의 文章으로 멋들어진 人事를 달아 보내는 自筆 署名은 받는 이에게 잔잔한 感動을 불러일으키기에 充分하다. 精誠을 다해 써 내려간 글씨들이 마치 받는 이가 世上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런 感情으로 冊을 읽어 들어가기 始作하면 그 內容은 當然히 理解의 速度가 빨라지며 企待 以上의 感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보내는 사람은 보내는 사람대로 받는 이마다 입장에 따라 다른 文句를 만들어 내느라 苦悶을 하기 마련이다. 著書를 만들어 내는 程度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作業을 通한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所重한 人間的 態度일지는 不問可知의 일이다. 反對로 대충대충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簡潔한 文句를 使用하여 휘갈겨대는 署名은 아니 함만 못한 境遇도 있을 수 있다. 그럴 境遇 形式的인 人事와 署名은 오히려 받는 이에게 不快感만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文句가 쓰여 있느냐, 어떤 筆體로 쓰여 있느냐,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이런 것들이 받는 이에게 미묘한 感情의 變化를 줄 수 있다. 그런 面에서 볼 때 分明히 自筆 署名 또한 나를 숨길 수 없는 거울일 수 있는 것이다. 받는 이에 對한 自身의 相對的 態度가 알게 모르게 傳達이 되기 때문이다.

  글은 勿論이지만 글씨 亦是 自身의 存在에 對한 속일 수 없는 痕迹이다. 우리는 平素 숱한 말과 글과 글씨로 因해 감춰 두었다고 생각했던 속마음을 사실은 猖披할 程度로까지 露出시켜 버리는 일을 자주 經驗한다. 조금만 더 神經을 쓰고, 조금만 더 自身을 낮추고, 조금만 더 相對方을 尊敬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작은 失手들이 두고두고 未安스럽게 하거나 荒唐하게 만드는 일이 없지 않은 것이다. 人事 文句에서부터 呼稱과 마무리까지 받는 이마다에 따른 精誠스러운 選擇이 얼마나 重要한지는 남의 著書를 받아볼 때 確然하게 알 수가 있다.

  精神없이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科學文明의 社會가 不安하고 危殆롭다. 따뜻하고 所重한 人間的 냄새가 자꾸만 退色하여 사라져 간다. 機械와 速度에 빠져든 世上은 어디를 向해 가는지도 모르고 덩달아 꼬리를 물고 달려간다. 이럴수록 人間的인 香氣가 必要하지 않을까. 나는 너를 생각한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意味가 있는 存在이다. 나는 當身을 尊敬한다. 그래서 當身은 나에게 希望이요 生命과 같은 存在이다.

  但 몇 줄의 아름다운 自筆 署名을 通해 人間的인 香氣와 信賴와 尊敬과 感謝의 마음을 보내고 받으면서 따뜻하고 甘味로운 人間味를 챙겨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듯하다. 機械文明 亦是 人間 精神의 所産이기는 하다. 그러나 人間 精神의 産物인 機械文明에 人間이 거꾸로 끌려가는 듯한 世上에 살면서 人間的인 自尊心을 지키고 交換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肯定的이며 可能性이 있는 世上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語文생활> 통권 제110호,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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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頭言]

무너지는 傳統

姜信沆(成均館大 名譽敎授)


  原來 우리네 言語生活 習慣으로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내뱉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事實은 傳統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있는 집안이라면 다 아는 일이다. 行列字를 따져서 意味深長하게 지은 사람의 이름은 옛날에는 이를 ‘冠名’이라고도 했는데, 그 이름을 가진 사람과 同一한 人格体로 여겨서 비록 子孫들이라고 하더라도 長成하면 마구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 代身 마련된 것이 ‘字’였다. ‘字’는 집안 어른이나 親舊들이 負擔없이 使用하였는데, 그렇다고 子孫들이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러한 言語習慣이 書簡文 形式에 남아 있었다. 客地에 나가 있는 子孫들은, 故鄕에 계신 父母님이나 祖父母님께 便紙를 올릴 때에는 便紙 겉封에 受信者인 父母님이나 祖父母님의 姓銜을 적는 것이 아니라 自己 이름을 적고 그 밑에 ‘本第入納’이라고 썼었다.

  이 習慣은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媤同生’을 ‘도련님’ 代身에 ‘미스터 김’, ‘媤누이’를 ‘작은 아씨’ 代身에 ‘미숙아’ 하는 집안이라면 몰라도, 父母님이나 媤父母님의 姓銜을 차마 함부로 적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自己 이름을 쓰고 그 밑에 ‘本第入納’이라고 써 왔다.

  그런데 어느날 集配員 어른께서 이게 무어냐고 묻더니, 自己가 모르는 말이니 앞으로 쓰지 말라고 하더란다. 이 말을 들으니, 한때 어느 機關에 있을 때, 내가 ‘敗北를’이라고 쓰면 上司가 ‘敗北을’이라고 고쳐 놓아서, 이 境遇는 ‘北(배)’라고 읽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벌컥 火를 내면서 自己가 모르는데 國民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하던 생각이 났다.

  年末年始에 참으로 많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年賀狀이 오고갔다. 千篇一律的으로 印刷된 글 밑에 署名이나 해서 보낸 카드가 많았으나 精誠껏 人事말을 쓰고, 겉封에서도 貴下 代身 敎授님, 先生님, 座下 等이라고 쓴 것이 있었다. 中國에서 온 카드는 勛鑒, 道鑒, 台啓, 啓, 收 等 더 多樣했다. 이들이 모두 發信者와 受信者와의 關係를 생각해서 골라 쓴 것들이다. 우리도 얼마 前까지만 해도 硯右, 侍史, 机下, 案下, 下鑑 等 여러 가지로 썼는데, 요 近來에는 受信者 이름만 달랑 써서 보내거나 受信者 이름 밑에 아무 職銜도 쓰지 않고 ‘님’만 쓰는 사람까지 생겨서 모든 面에서 傳統이 너무 쉽게 무너져 가는 것 같다.

  요 近來 某 日刊紙의 칼럼欄에 커다란 活字로 ‘硬直된 敬語 體系는 社會의 生氣를 옥죄는 사슬이다’라는 題目이 달린 글이 실려 있어서 깜짝 놀라 仔細히 읽어보니, 內容은 題目과 그렇게 一致되는 것이 아니어서 安心한 일이 있었다.

  아무쪼록 새해를 맞이하여 福 많이 받으시고(迎春納福),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萬事如意, 四季皆如意) 빌며, 無病長壽하시기(延年益壽) 빕니다.

<語文생활> 통권 제110호,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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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敎育國民運動]

漢字敎育國民運動 推進計劃


趣旨


  우리 民族은 歷史的으로 漢字와 한글, 두 가지 文字를 함께 使用해 왔다. 한글은 우리의 貴重한 文化遺産이며 國語의 가장 重要한 表記 手段이다. 아울러 漢字 또한 우리 文化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重要한 表記 手段임은 歷史的 ․ 現實的으로 否認할 수 없다.

  最近 日本에서는 初等學校에서 常用漢字 1,945字를 敎育하고, 現在 北韓도 1960年代부터 大學까지 漢字 3,000字를 敎育하는 等 漢字敎育이 擴大되고 있는 趨勢이다.

  漢字敎育의 擴大는 自國民의 言語能力 向上과 國際競爭力 强化는는 勿論, 文化交流를 爲해 반드시 必要하다는 認識에서 비롯된 結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글專用 施行 以後 敎育, 言論, 出版 等 漢字에 對한 基本 素養이 必要한 分野에서도 競爭力이 弱化됨은 勿論 大部分의 大學生들이 漢字를 몰라 敎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狀況을 各界의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

  最近에는 漢字文化圈 國家와 交易하고 있는 企業들이 漢字의 必要性을 切實히 깨닫고서 社員들의 漢字 能力을 테스트하고, 新入社員을 採用하면서 漢字 試驗을 보고 加算點을 주기 始作하자, 漢字 學習 붐이 일어나 많은 一般人과 學生들이 漢字를 익히기 爲해 努力하고 있다.

  비록 經濟的 目的 때문에 漢字를 重要하게 생각하는 傾向이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多幸이다. 그러나 資格을 갖추지 못한 非專門家로부터 注入式 暗記式으로 學習하는 것은 效果的인 漢字 學習을 妨害함은 勿論이며, 漢字敎育의 또 다른 重要한 目的인 人性敎育을 爲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漢字를 學習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豊富한 語彙力을 通해 한글과 漢字를 調和롭게 活用하고 더욱 水準 높은 國語生活을 營爲하게 하며 窮極的으로는 우리 文化를 發展시키고 國家競爭力을 强化시키는 데 寄與하고자, 傳統文化硏究會를 主軸으로 國語敎育硏究所(所長 李應百), 韓國漢字漢文敎育學會(會長 金慶洙), 漢字敎育活性化推進會(會長 鄭愚相)가 모여 ‘漢字敎育國民運動聯合’을 發足하였다.


漢字敎育國民運動聯合 發足


漢字는 國語의 基本!

漢字敎育으로 國語 能力 향상!

漢字敎育은 國家競爭力!

한글+漢字 國語之大本

          새의 양 날개

          수레의 두 바퀴


라는 標語 아래 本 聯合은, 漢字敎育을 强化하여, 國語 能力을 向上시키고 우리 文化를 創造的으로 發展시켜 東北亞時代의 中心 役割을 함으로써 窮極的으로는 國家競爭力을 强化하자는데 目的을 두고 있다.

  本 聯合은 그 동안 漢字敎育 活性化를 爲한 建議書, 住民登錄證 姓名 漢字倂記 陳情書, ‘國語基本法’을 바로잡기 爲한 國語 槪念과 漢字語 問題에 關한 建議書를 政府 및 官界 要路에 提出하여 國語敎育을 바로잡고자 努力해 왔다.

  또한 古典硏修院과 사이버書堂을 通해 10餘年間 無料로 漢字敎育을 해 왔고, 2004年부터는 漢字敎育 强化를 爲한 100萬 人 署名運動을 展開하고 있다.

  앞으로도 持續的으로 漢字敎育 國民運動을 展開하기 爲해 優先的으로 5個年 4次 計劃을 세우고, 漢字敎育 2,000萬 名을 目標로 活動하고 있다.

  이 運動을 展開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必要한 것은, 漢字文盲 退治運動의 中樞的 役割을 할 ‘漢字敎育센터’의 建立이라 생각한다. 現在 5個年 計劃으로 垈地 500坪, 建坪 1,200坪, 100億 豫算으로 2008年 建立을 推進하고 있다. 이 漢字敎育院이 建立되면 漢字敎育 國民運動의 母體 役割을 할 것이라 믿는다. 또 國學 關聯 學會에 開放할 豫定이며, 더불어 漢字敎育과 傳統文化의 發展에 많은 寄與를 하리라 企待한다.


漢字敎育國民運動聯合의 構成


  本 聯合은 顧問團, 共同代表, 共同執行委員長, 諮問委員, 指導委員, 運營委員, 弘報委員 等의 組織으로 運營하고 있으며, 앞으로 社會 各 分野別 地域別로 地部를 結成하여 活動할 豫定이다.

  現在 사이버書堂을 通해 漢字敎育 國民運動을 展開하고 있으며, 앞으로 多樣한 콘텐츠 開發로 興味를 誘發시켜 漢字敎育에의 參與를 誘導하고 效率的인 敎育 方案을 마련하여 敎育 效果를 높일 것이다.

  會員은 職場書堂, 學校書堂, 家庭書堂으로 크게 나누어 運營하고 있다.

  職場書堂은 任職員의 漢字 ․ 漢文敎育을 通한 業務能力 向上과 職場競爭力 强化를 目標로 한다. 團體의 代表를 顧問 및 名譽理事, 名譽會員 等으로 推戴하고 사이버書堂 ID를 20~2,000個를 支給한다.

  學校書堂은 先生과 學生의 漢字 ․ 漢文敎育을 通한 國語能力 및 學業成就度 向上과 人性敎育 實現을 目標로 한다. 學校 代表를 特別會員으로 推戴하고 사이버書堂 ID 10個를 支給한다.

  家庭書堂은 孫子에서 할아버지까지 온 家族의 漢字 ․ 漢文 學習과 人性敎育을 目標로 하며, 사이버書堂 ID를 支給한다.

 

推進 事業


  ‘漢字敎育國民運動聯合’에서 向後 繼續 推進할 事業은 매우 多樣하다.

  먼저 現在 漢字敎育센터의 役割을 擔當하고 있는 사이버書堂을 더욱 活性化하여, 온라인을 通한 質 좋은 漢字敎育을 充分히 普及하고자 한다.

  窮極의 目標는 漢字敎育院을 建立하고 20年 안에 2,000萬 名을 敎育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으로는 古典硏修院의 直接 講義를 通해 專門性과 大衆化를 目標로, 10年 동안 5萬 名을 敎育하겠다는 1次 計劃이 서 있다.

  또한 우리의 精神文化 形成에 影響을 준 各種 東洋古典의 飜譯은 國學硏究의 先決課題이므로, ‘東洋古典國譯事業’은 如前히 主力事業으로 繼續 推進할 것이다. 더불어 國學 및 東洋學 硏究 團體와 共同硏究를 通해 傳統文化를 發展시켜 나갈 것이며, 東洋學 專門圖書館을 開設하여 運營할 것이다.

  古典講座의 開設 및 이에 隨伴되는 硏究誌 發刊 ․ 講演會 開催 等의 事業을 꾸준히 推進할 것이다.

  아울러 傳統과 現代를 接木시키는 事業도 推進하여, 以前부터 展開해 온 古傳文化 相談 및 雅號부르기 運動을 꾸준히 推進하고, 더욱 發展시켜 多樣한 새文化振興事業을 展開할 것이다.

  漢字 ․ 漢文 讀解力 短期 課程을 마련하고, 漢字 ․ 漢文指導者 養成에 全力하여 實質的인 漢字敎育 活性化 方案을 마련할 것이다. 窮極에는 公認받은 漢字 ․ 漢文能力認證書 發給 制度를 마련하여 名實相符한 漢字敎育의 中樞的 役割을 擔當할 것이다.

  漢字 ․ 漢文敎育 正常化에 關한 內實 있는 講演會를 開催하고, 漢字 ․ 漢文 關聯 各種 競演大會도 開催하여 漢字 學習能力과 漢文 讀解力 診斷 및 强化에 힘쓸 것이다.


  日本의 石井 先生에 依하면 세 살 어린이의 95%가 漢字를 쉽게 익힌다고 한다.

  語文은 일찍 배우면 일찍 배울수록 그 效果가 높아진다고 한다. 이에 初等學校 以前부터 漢字敎育이 必要하다는 認識을 擴散시키고 그러한 方向으로 나아갈 것이다.

  專門的인 漢字敎育을 通해 國語敎育의 充實과 諸般 學力의 伸張을 꾀하고, 우리 文化의 傳統과 正體性을 確立시키고, 倫理道德 高揚과 美風良俗을 振作하고, 漢字文化圈에서의 紐帶를 强化할 것이다.

  우리 文化의 發展과 國家競爭力 强化를 爲해서는 漢字敎育이 꼭 必要하다고 異口同聲으로 말하고 있지만 政府의 한글專用 政策은 흔들림이 없다.

  우리 文化와 思想에 對한 제대로 된 認識과 깊은 知識을 갖추고 멀리 보는 視覺을 갖춘 責任 있는 指導者의 決斷을 鶴首苦待한다.

<전통문화> 2006년 가을호/통권 15호, 16~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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