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生活 바로잡기> 한글專用論과 國漢混用論의 虛實(5)

말과 뜻과 소리와 글자

鄭琦鎬(仁荷大 人文學部 名譽敎授)


  글은 ‘말의 소리’(1914年 刊行된 周時經 先生의 冊 標題이기도 하다.)를 적은 것이요 글자는 소리를 적는 符號다. 우리에게는 世界 最高의 한글이라는 소리 符號가 있다. 그러니 한글만 쓰면 되고 한글만 써야한다.―우리의 停滯가 漢字 때문이라는 20世紀 初 以來의 專用論의 이 金科玉條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言語의 基本 公理를 내세운 ‘소리’얘기를 또 들어도 ‘事實’은 別般 새롭지도 않다. 이 學術的 公理도 모르는, 도깨비씨름 얘기 같은 混用論이라 하지만 公理가 그렇게 밖에 解說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으니 ‘事實’은 別般 부끄럽지도 않다.

  筆者는 “恣意的 音聲 記號의 體系”라는 어려운 말을 제대로 理解할 能力도 없으며, 그 公理 뒤의 理論이 어떻게 展開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言語學의 門外漢이지만 그저 常識으로 생각해 보자.

  言語(말)는 사람의 생각을 規制하고 사람의 생각을 表現 ․ 傳達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뜻’이다. 그 뜻이 소리로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뜻과 分離된 소리는 말의 次元이 아니다. 그저 物理的인 소리(空氣의 振動), 動物의 울음소리를 말이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形態의 ‘素’라 해도 뜻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 ‘말의 소리’는 뜻에 따라 各各 달라지는 構造物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하나 다르게 짜여진 소리 덩어리’다. 그것이 “恣意的 (音聲) 記號의 體系”라는 것일 게다. 專用論者(言語學者?)는 ‘恣意的’ ‘體系’같은 ‘소리’ 다음의 말의 ‘뜻’을 모르는 模樣이다. 그리고 ‘소리만’ 내세운다. 그 소리 덩어리(體系)를 어떤 글자로 어떻게 적느냐 하는 것까지 言語 公理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적힌 文字(表音) 構造가 말의 소리 構造와 一致하는 法도 別로 없다. 一例로 英語를 볼 때 alphabet 26字와 소리 덩어리 表記의 一定한 對應關係는 없다. ‘man make banana party daughter’―그 글자들의 ‘짜임’의 個別性도 그렇거니와 그 속의 ‘a’만 보더라도 그 소리는 ‘æ ei ə ɘ: ɑ ɑ: ɔ: …’ 等으로 다르다. ‘소리 적는 符號(글자)’를 익혔다고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中-高 그 위에 大學까지 그 많은 時間 配定으로 英語 敎育 받고 얼마나 英‘語’를 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말이 되기 위해 入力되어야 할 單位가 다만 소리 그 소리 符號 單位인 것은 아니다. 表音文字의 宿命이다. 그런데 글은 말의 소리를 적은 것, 글자는 소리 적는 符號일 뿐이라고 强調하는 專用論者의 뜻은 무엇인가. 公理를 提示한 다음에도 “言語는 文字 記號의 體系가 아니다.”라고 덧붙이고 “文字와 關係없이 理解하는 것이 言語”라고 强調하니―一般은 소리말이면 그만이고 글자말은 있어도 없어도 相關없는 것으로 듣는다. 幼兒語, 日常語 말고 모든 知識語를 우리는 文字를 通해서 익힌다. 初等學校부터 ‘敎科書’를 通해 익힌다.

  말의 소리 소리글자만을 내세우는 것은 表音文字 漢字는 소리와 關係없는 文字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적어도 소리文字의 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소리글자들이 글자와 關係없는 뜻의 複雜한 構造物들을 따로 入力시키는 것과 달리 漢字는 한 소리 한 뜻을 同時에 入力한다. 初等學校 2千餘 字면 1萬餘 ‘語’를 쉽게 익힌다(後述). 2,000餘 字 익히기는 1萬餘 單語의 소리덩어리와 함께 익혀야 하는 소리말 敎育 配定時間의 몇 十分의 1이면 足할 것을 말과 글자의 次元을 뒤엎어 쉽고 어려운 逆의 論說을 일삼아 韓國人을 戱弄하다. (<語文생활> 통원 제109호,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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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政策> 元老에게 듣는다

金點坤 先生을 모시고


[金點坤 先生은 1932年 全南 光州에서 出生하였으며, 1946年 陸軍士官學校 1期로 卒業하였다. 1952年 9師團長을 歷任하는 等 여러 補職을 거쳐, 1962年 國防部 次官補를 끝으로 陸軍 小將으로 豫編하였다. 以後 1962~1988年까지 慶熙大 政治外交學科 敎授로 歷任하였으며(1971年 慶熙大 法學博士 取得) 現在는 平和硏究院長, 慶熙大 名譽敎授로 活動하고 있다. 賞勳으로는 太極武功勳章, 國民勳章 牧丹章 等이 있다. 韓國語文敎育硏究會 創立會員인 金點坤 先生을 모시고 語文運動에 對한 말씀을 들어보았다.]


鄭有和  先生님을 모시고 對談을 하게 되어 榮光입니다. 先生님께서는 韓國語文敎育硏究會 創立會員으로서 國漢混用 語文運動에 參與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運動에 參與하게 된 特別한 動機가 있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金點坤  특별한 動機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語文運動에 앞장서서 積極的으로 活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特別히 내세울 것도 없어요. 다만, 國漢混用을 하는 것이 必要한 智慧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創立會員으로 加入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러한 側面에서 語文運動을 支持한 셈이지요. 只今도 내 생각에는 變함이 없어요. 言語를 機能的인 面에서 본다면, 그것은 意思疏通입니다. 한글만 가지고 意思疏通을 하는 데에는 限界가 있어요. 當場 보세요. 우리의 傳統文化를 漢字 없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한글과 漢字가 調和를 이룰 때 우리 民族的인 것을 찾을 수 있어요.


鄭有和  一部 사람들 中에는 漢字 無用論을 主張하고 있습니다. 이에 對한 先生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金點坤  事實, 나는 늦둥이로 태어나서 큰兄님이랑 나이가 18살 差異가 납니다. 내가 어릴 때에 큰兄님께서는 放學을 맞아 故鄕에 오곤 했는데, 언젠가는 兄님께서 붓으로 千字文을 直接 써서 나에게 줬어요. 그 當時에는 너무 내가 어렸기 때문에 아무 뜻도 모르고 그냥 외우고 다녔어요. 나중에야 그것이 나에게는 매우 重要한 知的 資産이 된 것을 알았어요. 勿論 내가 特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요즘 아이들도 그렇게 暗記시키면 다 외울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다 理解까지 시켜주면 더 잘할 겁니다.

  漢字敎育은 有用합니다. 漢字를 배우지 않으면 知的 缺陷이 생기고 말지요. 漢字를 一方的으로 度外視하는 사람들을 달래서 漢字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한글만을 쓰면 民族主義를 實現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는 說得力이 弱합니다. 한글과 漢字 混用은 民族主義와는 相關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어렵기 때문에 漢字를 배우지 않으려고 할 뿐입니다. 初等學校 學生을 對象으로 實驗을 한 硏究를 본 적이 있어요. 漢字를 가르친 그룹과 가르치지 않은 그룹이 數學과 英語를 배울 때, 어느 그룹이 더 成果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豫想과 달리 漢字를 배운 그룹이 數學과 英語에서 더 成就度가 높았다는 겁니다. 漢字의 機能的인 面을 否定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約 2千字만 배우고 나면 그만큼 便한 게 또 없거든요.


鄭有和  陸軍 小將으로 豫編한 다음, 先生님께서는 慶熙大에서 敎鞭을 잡고 學生들을 指導해 왔습니다. 學生들을 가르치시면서 생긴 逸話가 있다면 紹介해 주세요.


金點坤  한番은 試驗 答案紙에 學生들의 이름을 모두 漢字로 쓰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學生들이 漢字를 잘 쓸 줄 모르니까 漢字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림 그리듯이 그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劃이 좀 複雜한 漢字는 이름 쓰는 칸을 벗어나 엄청난 큰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漢字를 쓴 學生들의 答案은 10點씩 깎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지요.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내 弟子 中에 中央情報部에 入社한 親舊가 있어요. 그렇다고 工夫를 썩 잘한 親舊는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어떻게 入社를 했느냐고? 그랬더니 바로 漢字 實力 때문에 붙었다는 거예요. 다른 應試生들은 거의 漢字를 몰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親舊들이 漢字 實力을 兼備할 수 있었을까요. 不平不滿을 했지만, 授業 때마다 내가 漢字를 꼭 쓰라고 했거든요. 그 德澤에 勤務하게 되었으니, 나를 만나면 늘 感謝하다고 人事를 해요.


鄭有和  先生님께서는 ‘濟州 4 ․ 3事件 眞相 糾明 및 犧牲者 名譽 回復委員會’에 委員으로 參與하시다가 辭退를 하셨습니다. 眞相 糾明에 對한 先生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金點坤  歷史에서 가장 重要한 것은 眞實입니다. 그리고 眞實을 바탕으로 歷史的 事實을 解釋해야 합니다. 지나쳐온 일의 順序를 바꾸거나 여러 가지 中에서 한 가지 事實만을 强調하게 되면, 歷史의 偏述이 나오게 됩니다. 濟州 4 ․ 3事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쪽만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가장 重要한 것은 罪가 없는 사람에게는 罪가 없다는 眞相을 確實하게 밝혀주는 것, 이것이 眞理라고 봅니다.


鄭有和  近來 들어 初 ․ 中 ․ 高 學生들뿐만이 아니라 一般 社會人들도 漢字敎育에 많은 關心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現場敎育에서도 그렇고, 政府 當局도 漢字敎育에 對하여 關心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對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金點坤  于先, 一線 敎師들이 漢字를 外面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問題입니다. 그래서 漢字를 가르칠 수 있는 敎師를 育成하거나, 旣存 敎師들에게 漢字敎育 硏修를 通해서라도 漢字敎育을 實施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個人的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敎師들에게 漢字敎育 特別手當이라도 줘야 합니다. 現實的 인센티브가 있어야 自負心을 가지고 敎育을 할 게 아닙니까. 말하자면 政策的으로 優待한다는 誠意라도 表示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우리가 常用하는 漢字는 中國 글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글로 受容하려는 態度가 必要합니다.

  마찬가지로 漢字를 工夫하는 學生들에게도 利點이 있어야 합니다. 漢檢 試驗 資格證만을 따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죠. 入試를 準備하고 있는 學生들이 漢字를 工夫하는데 얼마나 負擔이 되겠어요. 그런 狀況에서도 漢字를 工夫하고 있으니, 大學入試에도 漢字를 많이 出題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學習 認知에 漢字가 얼마나 重要한지를 理解하게 됩니다.


鄭有和  앞으로 韓國語文會가 나아가야 할 方向에 對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金點坤  言語는 學者를 爲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使用하는 大衆들을 爲해 存在하는 것입니다. 言語라는 것은 文化의 基本的인 要素이지요. 그래서 韓國語文會에서는 實生活에서 漢字를 쓸 수 있는 그러한 狀況을 制度的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鄭有和  對談에 應해 주셔서 感謝합니다. 康寧하시기를 祈願합니다.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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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한겨레신문> 11. 14. opinion 게재분 轉載


새 電子住民證 姓名에 漢字 倂記해야


박광민(韓國語文敎育硏究會 硏究委員)


  子息에게 부르기 좋고 瑞氣도 담긴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것은 이 世上 모든 父母의 바람일 것이다. 作名에 관해서는 ꡔ禮記ꡕ「曲禮」篇을 參考할 만하다.

  “子息의 이름을 지을 때는 나라 이름을 避하며, 해와 달로 짓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 나는 病名의 글자를 섞어 짓지 않으며, 山川의 이름으로 짓지 않는다.”

  이렇게 父母가 苦心하여 지어주신 이름은 各 個人에게 所重하고 象徵的인 意味를 갖는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름 外에 字를 지어서 이름 代身 불렀고, 成人이 되면 號를 지어 불렀다. 歷代 임금의 이름字 大部分에 平素에 잘 쓰이지 않는 漢字를 쓴 것은 百姓이 임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不便을 덜어주고자 함이었다. 只今까지도 우리는 남에게 自己 父母의 姓名을 紹介할 때 “○字 ○字를 쓰십니다.”라고 하여 敢히 父母 姓名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부르기조차 두려워하고 所重히 여겼던 것이 韓國人의 이름이다. ‘어찌어찌하면 내 姓을 간다.’는 말로 自己 確信을 表現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韓國人의 情緖에는 自己 姓名에 대한 自負心이 內在해 있는 것이다. 日帝 侵奪期에도 뜻있는 이들은 목숨 걸고 創氏改名을 拒否했고, 日帝의 劫迫에 못 이겨 姓과 이름을 바꾼 이들은 只今도 親日의 멍에에서 自由롭지 못하다.

  그렇게 지켜온 韓國人의 姓名이 危機를 맞았다. 行政自治部는 2009年부터 새로 發給할 새 電子住民證에 한글과 로마字를 倂記하고 漢字 姓名은 겉에는 보이지 않는 電子칩에 넣겠다고 한다. 判讀機가 있어야만 읽을 수 있으니 아주 뺀 것이나 마찬가지다.

  韓國人의 族譜 姓名에는 個人마다의 自己 뿌리가 담긴다. 그 姓氏와 行列字의 漢字를 보면 一家間 序階까지도 금세 알 수 있다. 韓國의 族譜를 最初로 硏究하고 電算化했던 美國 하버드大學의 故 와그너 博士는 “나는 曾祖父 以上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美國人들은 이제야 族譜에 關心을 갖고 뿌리 찾기를 始作했다. 舊韓末 學者인 鄭萬朝 先生은 ꡔ萬成大同譜ꡕ 序文에서 “옛날 中國 族譜는 4, 5代 記錄에 그쳤지만 韓國의 族譜는 始祖부터 詳記해 있다.”고 하였다.

  現行 한글表記法에서 ‘유’로 적게 되어 있는 姓氏는 ‘柳’ ‘劉’ ‘兪’ ‘庾’ 等이 있고 ‘신’ 氏는 ‘申’ ‘辛’ ‘愼’ 氏가 있다. 그 밖에 ‘鄭’ 氏와 ‘丁’ 氏, ‘趙’ 氏와 ‘曺’ 氏, ‘陳’ 氏와 ‘晉’ 氏, ‘姜’氏와 ‘康’ 氏, ‘朱’ 氏와 ‘周’ 氏 等 같은 한글 音의 姓氏는 많다. 새 住民證 姓名에서 漢字를 뺄 境遇 같은 한글 音을 가진 姓氏는 祖上이 다른데도 모두 한 個의 姓을 가진 一家가 될 판이요, 族親間의 序階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1999年에도 行政自治部는 住民登錄證 姓名을 한글만으로 表記하려다가 輿論에 밀려 한글과 漢字를 倂記한 적이 있다. ꡔ禮記ꡕ「曲禮」篇에는 ‘잘못을 알았으면 즉시 고쳐야 한다.’고 하였다. 行政自治部는 이제라도 새 住民證 姓名의 로마字 倂記 案을 廢棄하고 한글과 漢字 倂記로 바로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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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隨想>

專門用語를 소리로만 읊는 젊은이들

金允溟(檀國大 電子工學科 敎授)


  <한국경제신문> 2006년 11월 11일자 제1면 上段에 보도된 것을 보면, ‘글로벌 人的 資源 포럼’에서 미국 하버드大學 로버트 배로 교수는 “교육의 質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며, 科學과 數學 점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경제 성장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質을 높이고 科學과 數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미가 분명한 學術用語들을 많이 가진 좋은 言語가 있어야 한다. 그런 面에서 言語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無形의 基盤施設(infrastructure)이다.

  우리의 학문이나 기술 용어 대부분은 西歐에서 만들어진 것이 日本에 들어와 漢字化의 과정을 거친 다음, 우리나라에 떠밀려 들어왔다. 그것은 우리에게 幸運인가, 不幸인가? 그것을 不幸이라 치고, 全面的으로 뜯어고칠 생각을 한번 해보자면, 그 일은 너무나 엄청나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漢字 用語는 그냥 漢字로 적는다. 여기에는 아무런 反論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한글은 대단히 우수하여 모든 용어를 한글로 적어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지나친 自慢이며 근거 없는 盲信이다. 한글은 생각만큼 그렇게 萬能이지 않다. 한글은 영어와 같은 표음문자이지만, 言語史的 상황과 현재의 사용 환경이 서로 다르므로 동일한 주장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영어는 거의 모든 용어를 알파벳으로만 적고 있지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같은 소리文字이면서도 한글로는 잘 안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어는 소리문자라 하여도 알파벳 몇 字가 모이면 의미를 가지게 되어 있다. 漢字도 낱자마다 그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소리문자로 바꾸면 갑자기 그 의미를 잃게 되거나 不分明하게 된다. 여기에서 용어를 영어와 한글로 쓸 때 근본적 차이가 발생한다.

  專門用語의 정확한 의미 전달은 교육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용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지 않고서는 아무리 공부하여도 별 효과가 없다. 뜻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은 용어는 정확하게 사용되지 않고 살짝 變質되거나 誤解되어 사용된다.(이렇게 해서 언어는 또 進化해 간다.) 엄밀하게 定義된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해야 하는 학문 세계에서, 이것은 쥐약이다. 거의 모든 학술용어가 漢字로 된 우리나라에서 漢字 없이 학문을 擧論한다면 그것은 詐欺이며, 良心 不足이다. 용어의 정확한 의미 理解가 없이 ‘무어네, 마네’ 하면서 初 ․ 中 ․ 高 ․ 大學에서 敎育이라는 것이 行해지고 있다. 대학 교수들도 자기 세대는 한글 세대로서 漢字를 전혀 배우지 않았노라 하면서, 정확한 의미 解讀 없이 소리로만 전문 용어를 열심히 읊고 있다. 차라리 英語로만 가르치고 배워라. 그러면 自己欺滿은 避하리라.


  조상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녹아 있는 노래들의 深奧한 뜻은 漢字와 더불어 씌었을 때 더욱 감칠맛이 난다. 전통 사상이 잘 반영된 俗歌體의 頌佛歌詞이며, 지금도 放送으로 간간이 들을 수 있는 悔心曲의 첫머리를 純 한글로만 적어보겠다.


일심으로 정념 아 아미이로 타불.

억조창생은 다 만민시주님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인간세상에 다 나온 은덕을랑 남녀노소가 잊지를 마소.

건명전의 법화경이로구나 곤명전의 은중경이로다.

우리 부모 날 비실제 백일정성이며 산천기도라.

명산대찰을 다니시며 온갖 정성을 들이시니

힘든 남기 꺾어지며 공든 탑이 무너지랴 지성이면 감천이라.

                                              (별회심곡)


  위의 歌詞에 한자를 쓰지 않아 이해되지 않는 곳은 없지만, 거기에 漢字를 섞어서 다시 적어보겠다.


一心으로 精念 아 阿彌이로 陀佛.

億兆蒼生은 다 萬民施主님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人間世上에 다 나온 恩德을랑 男女老少가 잊지를 마소.

乾命前의 法華經이로구나 坤命前의 恩重經이로다.

우리 父母 날 비실제 百日精誠이며 山川祈禱라.

名山大刹을 다니시며 온갖 精誠을 들이시니

힘든 남기 꺾어지며 功든 塔이 무너지랴 至誠이면 感天이라.

                                              (別悔心曲)


  같은 노래 구절이지만 달리 적힌 두 노래를 읽어볼 때, 槪念이 구체화되어 마음에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確然히 다름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對應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언어가 基盤이 되어 받쳐주어야 한다. 自國 말과 글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민족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일종의 傲慢과 獨善이며, 언어적 鎖國이다. 우리말과 글이 풍족해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분량의 漢字를 숙달시켜 잘 활용되도록 하고, 적절한 외래어들을 우리말의 일부에 편입시켜서 새로운 뜻을 정확히 나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소리글자인 우리 한글이 세계적으로 널리 발음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한글은 母音價를 나타내는 것에는 큰 부족함이 없는 것 같으나, 子音價를 나타내기에는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의 f, r, v, z 발음 및 발음부호 θ(theta)를 지금의 한글로는 정확하게 나타낼 수가 없다. 물론 소리를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다른 자음들도 더 있고, 영어 아닌 다른 언어를 나타내기에 부족한 것들도 많이 있겠지만, 우선 영어 표기에 부족한 최소한의 몇 가지 音價를 생각해 보고, 이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한글 子音 몇 개와 母音 한두 개 만드는 것을 語文學界에 제안하는 바이다.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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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6-12-1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학자의 얘기여서 그런지 귀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네요. "자음 몇 개와 모음 한두 개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런 정도는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卷頭言>

‘素錢’ 이야기

文珷永(仁荷大 國語敎育科 敎授)


  우리나라가 素錢의 주요 輸出國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한 製品일 것 같은데 그 規格이나 硬度 등 때문에 상당한 技術力이 요구되는 産業이라고 한다. 數十年 素錢을 만들어 왔고 輸出 商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도 꽤 여러 해 됐을 법한데, ‘素錢’이 아직 ꡔ표준국어대사전ꡕ(1999)에도 登載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다수 言衆들에게는 여전히 新語인 셈이다.

  언젠가 專攻 授業 시간에 ‘소전’이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분명히 ‘소’를 짧게 發音했음에도, 대뜸 ‘小傳, 小錢, 小戰’ 등의 뜻을 얘기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떤 학생은 제법 ‘小篆’을 떠올리는 듯도 했다. 그러고 나서 칠판에 ‘素錢’을 써 주었다. 말로 물었을 때 기대했던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학생들에게 그 槪念 자체가 없었음이 분명한데도, 한동안 잠잠하다가 그 逐字的인 意味를 가지고 正答에 가까이 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하긴 漢字能力 4급 정도의 實力이라면 ‘素’의 ‘희다, 바탕, 소재…’와 ‘錢’의 ‘돈, 쇠돈…’의 知識을 가지고 기본적인 語義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터였다. 어쨌거나 그날 講義에 참여한 학생들은 앞으로 ‘素錢’에 관한 한, 얘기할 때나 글 한 구절 읽거나 적을 때, 산뜻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漢字의 造語力이고 漢字語의 힘이다.

  漢字는 너무 어려워서, 또는 남의 나라 글자여서 우리글에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머지않아 쉽고 과학적인 우리 글자 한글만 쓰게 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까지만 限時的으로 漢字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또 각종 出版物이나 印刷 媒體에 漢字 表記가 현저하게 줄어든 현상을 보고 한글전용이 定着 段階에 접어들었다고 誤判하기도 한다. 모두가 文字의 意義와 國語 語彙의 特性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잘못된 생각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漢字는 우리 글자이기도 한 것이고, 出版物이나 각종 媒體에 漢字가 줄어든 것은, 불필요하게 어려운 漢文투의 表現이 쓰이지 않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잘못된 文字政策과 國語敎育의 跛行으로 量産된 이른바 한글 世代를 겨냥하여 時流를 따를 수밖에 없는 出版界의 商術의 한 斷面이기도 한 것이다.

  年前에 우리나라 靑少年 非文解者의 비율이 20%라는 유네스코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全世界的으로 標準化된 기준을 적용해 조사한 결과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주어진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理解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섯 사람 중 한 명꼴이라는 얘기다. 한때 우리나라는, 가난하지만, 배우기 쉬운 한글과 義務敎育의 普及으로 文盲率이 4% 이하라고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初 ․ 中等學校에서 漢字를 제대로 敎育하던 時期의 얘기일 것이다. 쉽다는 한글도 어렵다는 漢字의 밑바탕이 있어야 그 眞價가 드러날 수 있다는 逆說的인 眞實을 가르쳐 주는 事例라고 할 것이다.

  漢字敎育은 한글專用 때까지의 過渡期에 ‘裁量活動’으로 대충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漢字는 東北亞時代 中國 ․ 日本과 交流하고 경쟁하는 데 쓰려고만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漢字는 우리 모두의 수준 높은 國語 能力을 든든히 하기 위해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語彙力의 바탕인 것이다.(<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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