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시가 아니다 세계사 시인선 139
이승훈 지음 / 세계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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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시(詩)’라는 것의 시작에서부터 함께 따라다녔다. 지금까지도 그 물음은 풀리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그 물음에 정답을 내어놓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까? 어쩌면 그것은 애초부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보 같은 질문이랄까!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지 않던가? 정의하려면 할수록 그것은 ‘오류’만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인류는 시를 태생시킨 이후 끊임없이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물고 늘어졌다.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모든 문학의 통칭(統稱)이 시였을 때부터 그 의미가 현저히 축소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는 변화했고 시의 정의도 늘상 바뀌어왔다. 어쩌면 시를 쓰는 저마다에게 시의 정의는 각각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적 정의에 입각해 시를 쓴다. 확고한 시의 정의가 없이 쓸 뿐이라고 반문하는 시인 나부랭이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시인은 정말 ‘나부랭이’일 것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이런 것이 시다.’라는 생각들을 품고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 나름의 시론(詩論)으로서 그의 시를 탄생시키는데 암묵적이나마 작용할 터이다. 시의 정의, 곧 시론이라는 것은 시에 대한 철학이다. 철학은 사유, 곧 생각인 바, 시론 없이 시를 쓴다는 것은 곧 ‘생각’ 없는 시를 쓴다는 것과 동의어다. 그럴 때 그것은 시가 아닐지 모른다.

  이렇게 시와 시론은 다른듯하면서 같고, 같은듯하면서 또 다르다. “시론과 시쓰기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는 불이(不二) 사상과 만나고 그런 점에서 시쓰기에 대한 사유는 시에 대한 사유이고 거꾸로 시에 대한 사유는 시쓰기에 대한 사유”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으니 그가 곧 이승훈이다. 이승훈의 이번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에서는 그의 시에 대한, 시쓰기에 대한, 시론에 대한 사유를 만날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시란 무엇이고, 그에게 시쓰기는 무엇인지에 관한 그의 시론을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세상에 내어놓고 있는 것이다.

  시를 쓰는 저마다에게 시론이 있을진대,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유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보편적인 시에 대한 관점에서 그리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여기 이승훈의 시론은 이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은 언어가 있기 때문이고 시는 죽음을 표상하는 언어를 매개로 이 죽음과 싸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는 이 언어, 현실, 상징계를 극복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언어와의 싸움이 아니라 언어를 버리는 시가 요구되고 이런 시는 언어도 환상이라는 인식을 동반한다.”고 말하는 시인에게는 시의 매개인 언어에 대한 극심한 부정이 보인다. 즉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그는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로부터 탈출할 때, 곧 언어를 매개로 하여 성립할 수밖에 없는 시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나는 현대시가 끝났다는 입장이고 내 시의 종말(end)이 내 시의 목적(end)이고 내 시의 목적이 내 시의 종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는 곧 시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왜 언어를 부정하고 시의 종말을 향해 가는가? 그것은 언어 자체의 어떤 모순에 대한 시인의 사유에 근거하는데, 이를테면 언어가 가지는 그 자체의 기호성, 상징성, 추상성에 의해 현실과, 사물과 본질을 극히 추상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언어로 탄생되는 시에는 곧 그 추상화와 상징화에 의해 본질과 진리가 왜곡된다. 그러니 곧 그 시는 가짜가 되어버린다. 본질적 현실과는 다른 시, 시와 삶, 시와 현실이 ‘경계’지어지고 분리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시와 삶, 시와 현실의 경계를 해체하는 데 있고 이런 해체를 통해 근대 부르주아 예술이 강조한 이른바 미적 자율성을 파괴하고 일상과 예술의 단절을 극복함에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나아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 충실하게 살면서 시는 순수한 초월의 세계를 노래”하는 그들의 현실과 그들의 시가 철저히 경계 지어진 지금의 시인들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관심은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리얼리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단다. 그가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언어로부터 탈출하는 것으로써 실현된다. 언어 자체가 현실과 시를 분리시키는 것을 극복하고 현실이 곧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의 ‘불이 사상’과 일맥으로 놓아도 될까? 나는 잘 그의 시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어떻게 언어로부터 해방되고 시를 쓸 수가 있을까? 정말 시의 종말을 고하기 위해 그는 시를 쓰는 것일까? 하여간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쩌면 허망하기까지 하고, 어떤 ‘정신병적’ 중얼거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는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미친 소리가 구원”이기 때문일까? 그의 궁극적 지향은 언어로부터의 해방이면서, 언어적 자폐(自閉)가 아닐까?

  그는 이런 그의 시론을 이 시집에 담으면서 독자에 대한 ‘우롱’을 감행한다. 시집의 표제와 동명의 시를 한 시지에 실었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제자의 편지 내용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이 글은 시가 아니라 표절이고 그러나 내 이름을 밝히고 제목을 붙였기 때문에 이 글은 표절이 아니고 표절이 아닌 것도 아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뒤샹은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작가 이름을 무트(Mutt)라고 적고 나는 제자 편지의 일부에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내 이름을 적고 시지에선 이 글을 그대로 수록한다.

  따라서 이 글은 시로 대접받은 셈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자. 이 글은 시가 아니다. 제자의 편지, 그것도 정신병에 시달리는 제자의 횡성수설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도 이상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이런 행위에 대해 아무도 이의가 없다는 점이고 이런 상황은 우리 시의 후진성, 소박성, 무지, 지적 태만과 통한다.”

 

  시인은 본인 스스로 ‘시아 아닌 것’을 시지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시로 대접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당대의 시인들, 비평가들, 독자들에 대한 우롱일 수 있겠다. 너희들에게는 도대체 시론이 있는 것이냐?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이냐? 시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느냐? 하는 경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런 응대가 없더란다. 행여 그가 미리 밝히고 있듯이 그것은 ‘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응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냥 ‘미친 소리’로 치부해 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그의 이러한 시론이 오늘날의 현실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시인은 이런 우롱은 이 시집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시집을 읽으면서 많이 허탈하고 한 정신병 환자의 중얼거림을 듣는 것 싶기도 했다. 많은 시인들이 언어의 극복을 염원하면서 시적 진실을 언어적 제약 없이 환히 드러내려고 노력해왔지만, 이 시인처럼 언어의 극도의 부정, 나아가 시의 종말을 고한 이는 없었다. 한편으론 충격이면서 한편으론 무시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시인 이승훈의 이러한 시론에 일말의 동의를 구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실과 시, 삶과 시는 분명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시인이 지향하는 언어적 해방의 자리에 여전히 시가 존재한다면 모를까, 그의 시의 종말 선고 또한 언어로서 감행되고 있음에서 볼 때 그는 이런 사유는 언어적 자폐의 지향처럼 보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시집이 아무런 풍파를 일으키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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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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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시인 백석은 혼자였다.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 전에는 측량보조원, 측량서기를 비롯해서 소작인 생활을 하기도 했단다. 일본의 뛰어난 시인 노리다께 가스오는 시인 백석에게 매료되어 있었던가 보다. 그를 찾아 만주의 안동까지 가서 만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 후 그를 추억하며 쓴 시가 「파[葱]」라는 시다.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

  벌써 스무 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벗, 백석이여, 살아 계신가요.

  살아 계십시오.

  백이라는 성과 석이라는 이름의 조선의 시인.

  ―  노리다께 가스오, 「파[葱]」,『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와사회, 1997.


  만주에를 찾아가서 만난 백석은 부엌에서 파를 들고 있었던가보다. “有朋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라 했으니, 술 한 잔 기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손수 부엌에서 술안주를 준비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순수한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20년이 지난 후에 시인 백석을 그리워하는, 국경을 넘어선 두 시인의 우정은 기릴 만하다. 이렇게 친구가 다녀간 후 1943년에 그에게 준 시 한편이 있다.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나 취했노라 ― 노리다께 가스오에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준 시에서 백석은 쓸쓸하니 푸념을 늘어놓는다. 백석의 시 중에서는 이 시를 제외하고는 이런 유(類)의 시를 볼 수가 없다. 절친한 친구였기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한다. 취할 수밖에 없는 백석. 그는 무엇 때문에 취했던 것일까? 술에 취하고 슬픔에 취하고, 그 인생 허무함에 취하고, 우리의 시인 백석은 그렇게 취해갔다.

 

  백석은 1935년 시「정주성」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36년에는 시집『사슴』을 200부 한정 발간하면서 당시 문단에 충격을 준다. 뛰어난 언어감각, 향토성 짙은 방언으로 시 속에 신화적, 동화적 세계를 펼쳐 놓으면서도,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김기림,「『사슴』을 안고」, 『조선일보』, 1936.1.29; 『내 사랑 백석』에서 재인용)다. 그 『사슴』시편들도 걸작이지만, 오늘날 백석의 절창으로는 북관에서의 시편들이나, 이후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과 같은 “떠돎 과정에서 생산된 이른바 북방 시편들”(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마음산책, 2006.)이 꼽힌다. 『사슴』과 그 이후의 북방 시편들과는 어떤 시적 변화가 있음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왜 백석은 떠돌며 그런 “외롭고 높고 쓸쓸한”(「흰 바람벽이 있어」) 시편들을 써내게 되었을까? 우리로서는 뛰어난 시편들을 가질 수 있었던 더없이 행복한 것일지 모르지만, 백석 시인 자신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었다. 그 키워드를 이 책 『내 사랑 백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야(子夜) 여사. 1936년 스물다섯의 백석은 다니던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여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그는 일찍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었다. 이때의 백석의 제자들은 그를 멋쟁이 서울 신사로 기억한다. 선생 백석은 선생으로서도 학생을 위하는 좋은 선생이었던가 보다. 무엇보다 함흥에서의 생활은 백석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순간이다. 그것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자야 여사를 그곳, 함흥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자야 여사는 백석이 붙여 준 아호다. 스승 금하선생으로부터 받은 예명은 김진향으로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릴 적 부친을 여의고 홀어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란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이후 그녀는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한다. 자야 여사의 일생도 그리 수월치 못한 운명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운명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예술적 혼은 기생이 됨으로써 꽃 피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기생이 되어 백석과 만나게 됨으로써 백석의 시적 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으니, 그의 기생됨은 불운한 가족사의 곡절이었으나, 우리에겐 또 다른 행운을 준 일대 사건은 아닐까?

 

  백석과 자야 여사의 첫 만남은 참 흥미롭다. 자야 여사는 주위의 도움으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게 되는데, 귀국 후 스승이 투옥되어 있는 함흥엘 찾아가게 된다. 함흥에 있게 되면서 그곳의 권번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을 때에, 백석은 근무하던 영생고보의 어느 송별회 자리에 참석했다가 자야 여사를 만나게 된다. 자야 여사가 추억하는 첫 만남의 장면은 이렇다.


  “당신은 첫 대면인 나에게 대뜸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곤 당신이 마신 술잔을 꼭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속으로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말없이 연거푸 기울이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당신의 말이 나의 귀를 놀라게 하고, 또 의심케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가물가물해지면서 바닥 모를 늪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술기운이 더해감에 따라 당신은 나의 손을 다시 움켜쥐었다.

  ― 마누라! 마누라!

  진작부터 자주 불러와서 익숙해진 듯한 말투로 당신은 무슨 애원이라도 하듯 자꾸만 보챘다.”


  정말이지 닭살 돋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이에 두고 하는 말일테다. 그런데 그 당시 이렇게 첫 만남에서부터 덥석 “오늘부터 내 마누라야”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야 서슴없이 좋다 싫다 하지만, 그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어쩌면 70년 전의 백석은 오늘날 신세대만큼이나 신세대적 연애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백석이 멋있어 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진으로 전하는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더라도 꾸밈없고 순수해 보이며, 곱고 흰 피부가 오늘날의 꽃미남에 비견될 정도다. 이런 백석에게 자야가 그날부터 ‘마누라’가 된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으리라.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 없이)


  우리에게 이 시는 잘 알려져 있는 백석의 시 중 하나다. 백석과 자야 여사의 사랑은 오늘날에도 이루기 쉬운 사랑은 아닐 것이다. 당시로서는 촉망받는 엘리트 백석과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기생과의 사랑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회가 그들의 사랑을 축복할 리는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랑은 많은 상처와 아픔을 남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은 자야와의 사랑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집안의 강제로 3번이나 혼인을 하기도 한 백석은 매번 첫날밤 신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다음날로 자야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은 아닐까?

 

  세상의 편견과 인습은 제도는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다. 그러니 이 세상을 버리고 둘 만이 오붓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공간으로 떠나고자 한다. 여기서 ‘나타샤’는 분명 자야 여사를 염두에 둔 것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깊은 산골 눈은 하얗게 내리고,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우는 장면의 어떤 환상처럼 여겨진다. 환상은 현실과는 양립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시 속에서 나타샤와의 사랑이 아름답게, 그리고 간절하게 그려질수록, 현실에서의 자야 여사와의 사랑은 힘겨워 지기만 한다.

 

  자야 여사는 몇 번의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이별’을 말하기에 백석은 너무나 순전한 사랑을 소유한 시인이었다. 세상의 강제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을 지속하고자 했던 시인 백석은 자야 여사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야 여사도 백석을 사랑하지만은 자신을 택하기에는 백석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염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백석 몰래 짐을 싸 도망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백석은 자야를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몇 번의 이별은 ‘연습’이었던 것일까? 결국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헤어짐을 길을 가게 된다.

 

  집안의 강제에 의해 세 번 씩이나 결혼을 하게 된 백석은 그때마다 자야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야 여사 또한 백석의 혼인이 마냥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백석은 더는 견딜 수 없어, 만주의 신경으로 갈 작정을 하고 자야 여사에게 같이 갈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자야 여사는 그런 백석을 따라 나설 수 없었다. 왜일까?


  “당신이 만주로 혼자 떠나시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은 순전히 뛰어넘을 수 없는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인 관습 때문이었다. 당신은 그것들로부터 아주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은 부모님의 강권으로 억지 장가를 몇 번씩이나 들고, 또 그 때문에 집을 뛰쳐나와서 정신적 번민도 무수히 겪었다. 게다가 그 동안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자야마저 한 달 동안이나 온다간다는 말이 없이 어디론가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어버린 것에 당신은 몹시 큰 충격을 받았던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훌쩍 떠나버리자는 백석을 따라나서기에는 백석이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다. 부모를 거역할 수 없어 몇 번이나 혼인을 치렀던 백석은 효자였다. 그러나 부모를 버리고 떠나버린다는 것은 백석을 불효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유학까지 다녀와 엘리트로서 사회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뛰어난 문인으로서도 유명한 그를 따라나서는 것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백석을 떼어 놓는 것을 의미했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자야 여사를 백석을 사랑하기에 백석에게 그것을 빼앗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함께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백석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 남아서 끝끝내 백석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자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백석은 묵묵히 떠나고 만다.

 

  백석이 떠나고 자야 여사는 수없이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런 백석의 떠낢이 우리에게 백석의 명편들을 남기게 해 주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이 자야를 떠났지만, 백석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자야 여사와의 추억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백석은 그런 추억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고 외로운 심사는 다양한 시편들에서 그 시들을 절창이 되게 한다. 어쩌면 이런 백석의 가슴 아픈 이별이 백석이라는 천재 시인이 꽃피기 위한 통과의례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백석의 시편들을 읽을 때에 자야 여사를 떠올리는 것은 그의 시를 더욱 가슴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열쇠가 되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자야 여사의 백석에 대해 추억하며 눈물로 써내려간 이 책 『내 사랑 백석』은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조각달이 서울을 희미히 비추고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섧게 울립니다.


  가을바람인들 어찌 무심히 듣겠어요?

  다 그리움을 돕는 것뿐입니다.


  어느 날에나 오랑캐 무찌르고

  임은 옥관에서 돌아올지요.

  ― 이백, 「子夜吳歌 三」(이원섭 역해, 「자야오가 3―다듬이질」, 『이백시선』, 현암사, 2006.)


  서점에 들렀다가 『자야오가』라는 당시선집을 샀는데, 그걸 본 백석이 대뜸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주어 그때부터 자야 여사로 불리게 된 것인데, 위의 시는 이백의 시 「자야오가」연작 중에 그 세 번째 수다. 오(吳)나라의 여인들을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멀리 전쟁터로 보내고 남편이 무사 귀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옷을 지어 남편이 있는 전쟁터로 보내겠다는 아내의 마음은 백석을 떠나보내고 못내 그리워하는 자야 여사의 심정과도 통하는 점이 있다. 백석이 붙여 준 이름 ‘자야’는 어쩌면 그들의 사랑의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참(詩讖)이라는 말이 새삼 되새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3년간의 자야 여사와의 사랑은 시인 백석의 자상함과 순수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당시 무성영화일 듯한 <클레오파트라>를 보러 가지는 자야 여사의 친구의 말에 자야 여사를 보며 “클레오파트라, 여기 있지 않소?” 했다는 백석은 정말이지 끔찍이도 자야 여사를 사랑했던가 보다. 그런가 하면 시인답게 시집을 펼쳐 맑은 목소리로 읽어 주던 장면을 자야 여사는 추억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런 사랑은 참으로 낭만적이며 열정적이었다. 그런 낭만과 열정은 새삼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 책 『내 사랑 백석』을 읽으면서 백석과 자야 여사와의 순전한 사랑에 깊이 감동하는 한편으로, 이 이야기가 참으로 낭만적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인 백석의 생애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지만(재북(在北) 시인이란 탓에 그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 백석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극히 적다.) 이런 소중한 자료를 토대로 그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한 편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의 삶과 소설이 영화화 된 것이 있지만, 백석의 이런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고 훌륭한 영화가 되기에 충분하리라고 본다. 이런 작업들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소중한 시인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귀한 역할을 담당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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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 바로읽기 - 백석 대표시 해설
백석 원작, 고형진 지음 / 현대문학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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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 그와의 인연은 조금은 남다르게 시작되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소모임으로 활동하던 시(詩)창작 동아리의 후배들이 성년의 날 선물로 백석의 시선집 한 권을 주었다.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유달리 흰 피부의, 요즘으로 치면 꽃미남, 완소남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준수한 외모의 한 청년이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와사회, 1997.)란 시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백석이란 시인은 그리 잘 알려지 있지 못 했다. "분단에 의해 묻혀진 세계적인 천재 시인"이란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나에게 이런 백석은 그때까지의 여타 시인들과는 유독 다르게 다가왔다.

우선, 그의 외모는 너무 잘생겼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이전의 시인들 중에서는 백석처럼 잘 생긴 이를 찾아보지 못했다. '천재 시인'이라는 그 시집의 수식어와 겹쳐지면서, 이런 시인을 왜 아직까지도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후 1930년대 후반의 짧은 활동과 분단 후 재북시인으로서 우리에게 '묻혀질' 수 밖에 없었던 사실 등등을 알게 되었다. 그 시집을 선물로 받고는 쉬엄쉬엄 묵혀두면서 틈틈이 읽어 갔다. 하지만 그의 시들을 읽어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못되었다. 무슨 암호같은, 외국어같은 평북지방의 방언들,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인 그의 시 형식들, 이를테면 끝없는 사물의 나열이라든가, 줄글과 같은 산문시형들로 시의 맛들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외모와는 사뭇 다르게 시들과 친해지기는 이런 난관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백석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을 이끌게 한 것은 그의 살아온 모습에서였다. 백석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두면서 틈틈이 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는 와중에 그의 삶의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알게되었다. 이를테면, 자야 여사와의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당신은 오늘부터 내 마누라요."라고 말하던 백석의 모습들을 알게되면서 '아 이 백석이란 시인은 참 멋진 사람이었구나!'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백석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구해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그에 대한 내력이라는 것은 해방 이후의 자취들 외에는 잘 알려진 것이 없었고, 그때까지의 백석 연구라는 것도 미진했기 때문이다.

백석이 해금되고 그에 대한 첫 연구가 바로 고형진의 「백석 시 연구」(고려대 석사학위논문, 1983.)다. 그 이후로 백석에 대한 연구가 대학의 논문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뿐, 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작업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동순에 의해서 『백석시전집』(창비, 1987.)이 80년대 후반에 출간 되었고, 이후 김학동, 김재용 등에 의해서 전집들이 엮겨져 나왔으며, 백석의 시 전반에 대한 연구나 그의 삶의 이력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거의 없다. 몇몇 문학사나 시비평 서적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언급된 것이 전부일 따름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석에 대해 보다 세세히 안다는 것은 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건국대출판부에서 나온 <문학의 이해와 감상>시리즈 『백석』(박혜숙, 1995.)이란 작은 책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백석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고 대중적 인지도 또한 그리 높지 못하다. 현행 국어교과서나 문학교과서에서 몇몇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 시들이 백석 시를 대표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 아니다. 분명 뛰어난 작품들이긴 하지만(「여승」, 「여우난곬족」,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고향」) 백석시의 전반적 특징들이랄 수 있는 '엮음'의 방식, 토속어의 사용, 다양한 인간 모습의 형상화 등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백석에 대한 편협적인 이해에 그칠 수 밖에 없으며, 백석의 본연의 시적 성취를 알기에는 모자람이 너무 크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짓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늙은이도 더부살이도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전문)

"이 시는 백석이 시도한 엮음의 표현형태가 또 하나의 새로운 미학적 기능을 발휘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모닥불의 현장을 묘사하면서 작품의 의미를 구축해나가는 시의 제작과정이 신선하여, 그의 개성이 분명하게 과시된 또 하나의 문제작으로 꼽을 수 있다."(186쪽)는 고형진의 언급에서처럼 이 시는 단순한 나열인 것 처럼 보이는 사물들, 인간 군상들의 열거를 통해 묘한 시적 성취를 이루어낸다. 이런 방식들을 고형진은 '엮음'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판소리 사설에서 사용되는 이러한 표현형태와 비교하면서 백석 시에 나타나는 모더니티한 모습에 전통적 명맥을 부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백석이 김소월보다 뛰어나도고 할 수 있는 점이 이것으로 근대적인 시의 형식과 전통적인 정서와 표현방식들을 절묘하게 접합시키면서 뛰어난 시적 성취를 이뤄낸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 멀은 산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적경」전문)

백석은 시적 장치에 무척이나 예민했었던 것 같다. 그의 시들이 무수한 나열의 시에서 오는 지루함이 아닌 것은 그가 곳곳에 다양한 시적 장치들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장치가 바로 제목이다. '적경'이란 말은 "고요한 경지의 경계, 또는 고요한 상태'라는 의미다. 한 폭의 수채화같은 이 시에 백석은 '고요함'을 부여하면서 '시의 정서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만든다. 또 다른 시를 보자.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멧새소리」전문)

기묘하다고 할 것이다. 시 어디에도 멧새는 등장하지 않는다. 명태와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자신의 초라하고 외롭고 쓸쓸한 모습을 부각시킨다. 여기에 교묘한 시적장치로서 배경음악을 추가시킨다. 추운 겨울 명태 사이를 오가며 찍찍 짹짹 울어대는 '멧새소리'를 떠올려 보면, 이 시의 묘미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백석의 뛰어남을 볼 수 있는 시들은 많다. 그 중에서도 그의 연애시편들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그는 정열적인 사랑을 한 만큼, 뛰어난 연애시편들도 엮어내고 있다. 외지로 떠돌면서 삶의 고노와 외로움들을 읊어낸 시편들, 어린 날의 추억들과 평북지방은 여러 문화적 일상적 모습들을 한편의 동화처럼, 신화처럼 엮어내고 있는 시들 모두가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고형진의 『백석시 바로읽기』는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백석의 시들 중 60여 편을 골라 각각의 시에 섬세하고 세밀한 해설을 붙여주고 있다. 백석시를 읽어내는데 가장 애를 먹이는 평북 방언들에 대한 저자의 주석도 친절하다. 사실 해설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시 감상에 방해가 될 소지가 크다. 이 책의 작업들도 그런 염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백석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장벽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이 책이 충분히 해 줄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친절하고 세밀한 해설이 장점이면서, 이 장점을 독자들이 적절히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값지다고 할 것이다. 이 책으로 백석에게 매료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면 기쁜 일이다.

아직까지 백석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백석이란 뛰어난 시인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할 의무가 우리의 문학자들에게는 있다. 백석이 가지는 시와 삶의 매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충분히 호소력 있음을 나는 느낀다. 일례로 그의 삶과 사랑은 한편의 영화로 만들기에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의 시와 삶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백석을 알리는 작업들이 활발히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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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5-14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집에 있는데 아직 못 읽어 봤어요^^;
여담이지만 백석시를 읽으면 왠지 배가 고파지기도^^

멜기세덱 2007-05-1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시에는 참 먹을거리가 많이 나와요..ㅎㅎ 국수가 먹고 싶어지는군요...ㅎㅎ

apple 2008-04-2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뵙습니다. 질문이 있어서요.
저, 이 책에서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끊인다"로 나오나요?
혹시 "끓인다"가 아닌지 여쭙습니다.

멜기세덱 2008-04-25 23:30   좋아요 0 | URL
명백한 오타네요.ㅎㅎ 죄송합니다.

승주나무 2008-04-2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서을 엄청 좋아해서.. 백석 시 용어사전 같은 거를 옆에 놔두고 초록색 형광펜으로 단어를 칠하고 밑에 각주를 쓰면서 봤던 거 같아요. 그렇게 단어찾고 새기면서 봤던 책은 김유정과 백석이 처음일 듯 ㅋㅋ
이 책 좋은 것 같아요. 멜기 리뷰가 더욱 물이 오른 것 같네~~
요즘 많이는 안 쓰는 것 같지만 ㅋ
 
목련 전차 창비시선 264
손택수 지음 / 창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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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여름, 학교 구내서점엘 놀러 갔다가『목련전차』란 시집을 보고 집어 들었다. ‘목련’과 ‘전차(電車)’의 생소한 합성에서 오는 낯섦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전차(電車)’란 낱말은 지하에 숨어버려 꼬부랑 어르신네들께서나 부르실 뿐이지, 요즘 사람들에게 ‘전차’라 하면 우선 전차(戰車)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내가 먼저 떠올린 것이 이 전차(戰車)다. ‘이상도 하지!’ ‘목련’과 ‘전차’의 결합은 다분히 시적이면서도 뭔가 어울릴 법하지 못하다. 이 시집을 집어 들고 나와서는 꽤 오래 묵혀 두었다가 며칠 전에야 펼쳤다. 오래 묵혀둔 탓일까, 울림은 사뭇 커다랗다.


2.

  『장자』의 <응제왕>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해의 제왕은 숙(儵)이고, 북해의 제왕은 홀(忽)이며, 중앙의 제왕은 혼돈(混沌)이었다. 숙과 홀이 마침 혼돈의 나라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혼돈은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후의에 보답하고자 상의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7개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혼돈만이 없다. 우리가 뚫어줄까 봐.”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어주었는데 일곱째 날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강조 필자, 우리말 번역은 이인호,『장자 30구』, 89쪽에서 가져 옴.)



  이 우언(우화)은 “인간의 이지(理智)가 깨이게 되면 오히려 이지의 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인호, 위의 책)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은 모두 7개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다는 구절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여기서의 ‘구멍’은 생명을 지속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며 통로로써 인식된다. 우리 옛말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할 때의 ‘구멍’도 속되긴 하지만 이런 ‘생명의 통로’란 인식과 다르지 않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란 속담에서의 ‘구멍’은 넓은 의미에 ‘생명’ 유지의 통로이겠다. 이렇듯 우리의 언습(言習)에서 ‘구멍’은 질긴 삶과 인생의 의미를 서민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

구례 화엄사에 가서 보았다


절집 기둥 기둥마다

처마 처마마다

얼금 송송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


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환하게 뚫려 있구나    -「화엄 일박」부분.(강조 필자)


  홍용희는 <해설>에서 손택수의 시세계를 두고 ‘화엄의 견성’이란 말을 썼다. 견성(見性)이란 “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 본래의 성품인 자성을 깨달아 앎”을 말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곧 견성의 경지에 이르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成佛). 홍용희의 말처럼 “화엄 사상의 종지를 깨닫고 있는 것”이면서 “삼라만상의 우주적 존재원리를 체득하고 구현하는 화엄의 노래로 귀착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구멍’이 “환하게 뚫려 있”음을 통해서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호흡할 수 있는, 즉 ‘살아 있음’, 생명의 존속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손택수에게 있어 ‘구멍’의 중요성이랄 수 있다. 손택수는 그 ‘구멍’ 있음으로 호흡하고 박동(搏動)하는 삶의 제(諸)모습들에 천착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근원, 생명 유지의 가장 원초적 역할을 하는 ‘구멍’은 그의 시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 시집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放心」부분.


  ‘숨구멍’이 “확 열어젖”혀진 시적 화자를 떠올릴 때 우리는 그에게 삶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손택수에게 ‘구멍’의 열림은 생의 열림과 동일한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작용은 ‘방심(放心)’함으로 가능한 것이다. 마음을 굳게 닫혀 있음은 ‘구멍’의 막혀있음에 다름 아니다. ‘구멍’이 막혀있다는 것은 호흡 불능, 소통 불능으로 이어질 터이다. 따라서 ‘방심’은 곧 마음의 ‘구멍’을 뚫는, 생명유지의 필수적 과정인 것이다.

  「혼쥐 이야기」에서는 ‘할머니’의 “사람의 콧구멍 속에” 사는 ‘쥐 두 마리’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은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시속에 끌어 오면서 ‘구멍’의 이런 생명 유지의 수단의 기능이 옛이야기처럼 오랜 우리 삶의 지혜와 사상임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들숨 날숨 따라 들”고 나가는 쥐처럼 삶의 ‘구멍’은 어떤 조력자들이 있어야 뚫려질 수 있다.


3.

  앞에서 살펴 본 「放心」에서 ‘구멍’을 뚫리게 한 도우미는 ‘제비’다. 이 ‘제비’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시인은 ‘제비’에게 집을 빌려준다.(「제비에게 세를 주다」) ‘제비’는 어쩌면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 외로운 사람에게 유일한 소통의 존재일 수 있다. 세상의 고된 삶 속에서 ‘방심’은 불가능하고, 답답하고 꽉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제비’와 소통할 때 ‘구멍’은 ‘뻥’ 뚫리고 삶의 호흡은 유지되는 것이랄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삶의 지속과 생명의 유지는 자연과의 호흡/소통/교류를 통해서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의 시편들에서 이런 자연의 여러 모습들과 “구체적인 살림살이의 성정과 표정”(홍용희)들이 뒤섞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굽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


호밋날 끝에 돌 부딪는 소리, 강이 들을 껴안는다 한 굽이 두 굽이 살이 패는 아픔으로 저문 들을 품는다


乙, 乙, 乙 물새떼가 강을 들어올린다 천마리 만마리 천리 만리 소쿠라지는 울음소리―


까딱하면, 저 속으로 첨벙 뛰어들겠다  -「강이 날아오른다」전문.


  ‘강’과 ‘물새’와 ‘아낙’은 모두 乙의 모습으로 하나가 된다. 동일시되는 것이다. ‘들을 품는’ ‘강’의 아픔이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매”는 아낙의 아픔은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을 ‘들어올’리는 ‘물새떼’는 세상의 아픔을 저 높은 하늘로 ‘들어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 속에서처럼 자연과의 교감은 ‘아낙’의 궂은 삶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숨구멍’을 트이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구멍)이겠다. “나는 잠시 청둥오리 몸속에 있다 청둥오리 몸속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떨어진다”(「청둥오리떼 파다닥 멀어지기 직전」)는 이런 ‘구멍’ 뚫림은 한 방법인 것이다.


4.

  우리 인간들은 왜 이런 자연만물과 교감해야 할까? 세상적인 것에서 우리의 ‘숨구멍’을 뚫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은 7개의 구멍이 뚫려 세상에 나와 살아가면서, 천천히(어쩌면 무척 빠르게) 막혀간다. 우리가 태어난 날은 곧 죽음의 시작일 것이다. 세상은 그 구멍들을 서서히 막아가는 것이다. 죽음의 막힘을 세상의 여러 질곡(桎梏)을 통해 얻는 인간은 세상에서는 이런 ‘구멍’ 뚫림의 생명적 경험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 단칸집”(「제비에게 세를 주다」)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가난과 외로움의 막힘만이 있을 뿐이다.


스무살 무렵 나 안마시술소에서 일할 때, 현관 보이로 어서 옵쇼, 손님들 구두닦이로 밥 먹고 살 때


맹인 안마사들도 아가씨들도 다 비번을 내서 고향에 가고, 그날은 나와 새로 온 김양 누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날도 손님이 있겠어 누나 간판불 끄고 탕수육이나 시켜먹자, 그렇게 재차 졸라대고만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화근이라도 되었던가 그날따라 웬 손님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상한 구두코에 광을 내는 동안 퉤, 퉤 신세 한판을 하며 구두를 닦는 동안


누나는 술 취한 사내들을 혼자서 다 받아내었습니다 전표에 찍힌 스물셋 어디로도 귀향하지 못한 철새들을 하룻밤에 혼자서 다 받아주었습니다


날이 샜을 무렵엔 비틀비틀 분화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던 추석달   -「추석달」전문.


  세상에서는 ‘신세 한탄’을 할밖에 “어디로도 귀향”할 우리의 안식처는 없는 것이다.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보여주는 투사물로써 시인의 ‘구두’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쪽에 초라하게 낡은 한 켤레/…/상할 대로 상해 알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뒷굽은 닳을 대로 닳았고 반짝이던 코는 무참히 깨어져 있었습니다”(「매제의 구두」) 이런 ‘구두’의 모습은 곧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시인은 이런 우리의 삶, 곧 우리의 ‘구두’는 “죽음만이 벗겨줄 수 있네/죽음까지 껴 신고 가야 한다”(「살가죽구두」)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런 삶에서 어떻게 진정한 생명의 ‘구멍’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시인에게 ‘좋은 세상’, 곧 진정한 생명의 ‘구멍’이 존재하는 세상은 “젊으나 젊은것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자전거의 연애학」)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삶은 세상에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혼자서 살”수밖에 도리가 없다.


5.

  손택수의 시편들은 다분히 서정적이다. 생명의 근원인 ‘구멍’을 온 세상에 뚫고 다니는 그에게 가족과 세상 사람들과 산과 바다와 하늘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막힌 구멍을 바라볼 때에 서글픔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시편들에 짙게 깔린 애잔함은 그의 시를 깊은 서정으로 침전하게 하는 것이다.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없는

속없는 지아비를 빤히 올려다보는 빤스


누가 볼까 얼른 한달음에 뛰어내려가

단풍나무를 기어올랐다 나는

첫날밤처럼 구멍 난 단풍나무 빤스를 벗기며 내내

볼이 화끈거렸다


그 이후부터다, 단풍나무만 보면

단풍보다 내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단풍나무 빤스」전문.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건 분명 세상의 가난 탓이리라. 이 시를 읽어내면서는 웃음짓게 하지만, 그 웃음은 다분히 씁쓸하다.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그런 가난의 질곡으로부터 오는 애잔한 슬픔이고 미안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정은 짙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감상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유머가 있어서이다. 쓰라림과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유머로 풀어나가는 손택수의 재치에서 우리는 짙은 서정과 함께 언뜻 지나치는 웃음을 통해서 하나의 희망의 ‘구멍’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에서는 시인의 뛰어난 시적 감수성과 재치, 그리고 친근한 옛이야기와 솔직한 고백, 다양한 소재로부터의 깨달음 등이 뒤섞이면서 그의 시편들을 아름답게 꽃피우게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내, 매제,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 등의 친근한 가족과 이웃에서부터, 하늘과 바다와 산과 강과 멀고 먼 우주에까지, 그리고 자연 속에 거하는 ‘물새떼’, ‘제비’, ‘청둥오리떼’, ‘메주’, ‘홍어’, ‘명태’ 등 많은 생명들이 담겨져 이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손주의 고추를 잡고 가로수 밑에서 오줌을 뉜다 마음처럼 시원하게 나오질 않는지 쉬―, 쉬―, 하고 이어지는 할머니의 오줌 뉘는 소리


화장실에 갔다가 오줌이 나오질 않아 머쓱해질 때가 있다 시가 반짝 떠올라 책상 앞에 앉았는데 한 구절도 씌어지지 않아 애를 태울 때가 많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할머니의 오줌 뉘는 소리


무슨 주술처럼 시―, 시―,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노루오줌꽃이 터져나오듯 망울망울 남은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주며 따로 노는 몸과 마음을 한데 이어주는 소리  -「오줌 뉘는 소리」전문.(강조 필자)


  그의 시는 이렇듯 세상 모든 것들,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한데 이어주는’ 대소통의 ‘구멍’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분명 이 시집의 시편들은 내 마음에 커다란 울림 ‘구멍’을 뚫어 놓고 말았다.


6.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목련 전차」부분.


  꽃놀이 철이 언제 왔는지 모르게 끝물을 맞고 있다. 아! 이 봄엔 꽃놀이 한번 못가 보는구나! 전차는 전차(電車)임이 분명해졌다. 전차(電車)는 ‘레일’을 잃어버려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막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레일’이 있어 그 길 따라 ‘목련 전차’, ‘꽃전차’ 타고 꽃놀이 가고 싶어진다. 가슴 깊은 ‘구멍’으로 꽃내음 깊게 들이마시면서 우리 생명 깊게 호흡하면서.

  손택수 시인은 1998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등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단다. 그의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을 최근 냉큼 구입했다. 이 시집을 읽고 난 후의 울림이 작용한 것이다. 내쳐 읊어볼 작정이다.

  알고 보니, 『목련 전차』를 내기 몇 달 전,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아이세움, 2006.)를 냈다. 유난히 바다 시편들이 많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바닷가에서 오래 산 시인은 어떻게 바다와 ‘구멍’을 뚫어 호흡하는지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의 머리말을 보면 훔쳐볼 수 있다.


한번은 거제도 앞바다까지 배를 타고 나가 낚시도 잊은 채 오르내리는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긴 뒤 실컷 잠만 자고 온 적도 있다. 그때 내가 만난 파도의 리듬은 어머니 배에 배를 맞대고 젖을 빠는 아이처럼 근원적인 휴식감과 세계에 대한 밀착감을 선물해 주었던 것 같다.


  손택수라는 멋진 시인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요즘 같은 답답한 세상에서 손택수의 시편들은 우리를 숨 쉬게 하기에 충분할 것만 같다. 사람은 7개의 구멍이 뻥 뚫려 있어야 살 수가 있다. 우리 온몸의 생명 ‘구멍’들, 마음 ‘구멍’들을 ‘환하게 뚫’어야 이 험한 세상, 답답한 세상, 살맛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삶을 원하는 이들에게 손택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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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13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하시는 분답게 시를 어쩜 이리 세밀하게 맛보시고 안내해주시는지요.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
천양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천양희 시인. 그녀를 만난 건 요 몇달 전의 일이다. 오늘은 2007년 정해년. 돼지는 돼지인데, 600년에 한 번 온다는 황금돼지의 해란다. 황금박쥐가 아닌 황금돼지가 날아온지 꼭 1시간 37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막 천양희의 시 에세이를 고즈넉하게 읽고 말았다. 여기서 잠깐 천양희의 시 한 편 다시 새겨보자.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위눈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 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천양희 시인이 어느 해 신년시로 주었다는 <바람을 맞다>란 시다. 몇 년도의 신년시인지를 따져서 황금돼지해 벽두에는 아니올시다 하는 것은 어리석다. 시란 時와 같아서 흐르고 흘러 어느덧 또 한 번의 1월 1일이 왔으니, 여전히 오늘 이 벽두에는 이 시가 썩 잘 어울린다. 찬 바람이어도 좋으려니, '바람을 맞다'가 문득, 옛시인의 노래가 떠오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읊었던 발레리의 시구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천양희의 우리를 위한 신년의 희망찬 목소리는 2007년 새해의 찬바람을 맞고서 또 한 세상 열심히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라는 것에 다름아닐 터이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당신도 알고 있는가? 알지 못한다면, 이 책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를 읽어보시라. 내가 이 책을 2006년의 끝자락에서 읽고, 2007년 벽두에 되새기는 것은 다만 우연의 작용이었을까? 필연이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만은 우연치고는 제법 내게 느껴지는바 많고, 그 시의적절한 울림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를 되뇌이게 한 것은 꼭 이날의 나를 위한 변주곡처럼 느껴진다. 시와 함께 가는 해와 오는 해 사이에서 '거닐'었다는 것은 내게 허락되어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생 동안 행복했던 시간은 겨우 17시간이었다고 고백"한 괴테보다 내 지금까지의 여생에서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았을 것 같지 않지만, 이 행복한 시간은 빠지지 않고 계산되어져야 할 것 같다. 시를 만나는 기쁨은 그것이 사랑이었건 이별이었건 슬픔의 통곡이었건 간에, 행복한 시간에서 빠져서는 안 될 것이리라.

이 책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는 한 가슴여린 시인의 시 감상기라고나 할까? 그 시의 숲에서 울고 웃었던 한 여인의 살풀이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읽기만 해도 좋으련만, 천양희가 울고 웃었던 데서는 나도 모르게 울고 웃었고, 그녀의 살풀이 춤사위에 교묘히 빠져들었다. 같이 숲을 거닐었거니와 한동안은 그 숲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이 주옥같은 시들의 마을에서 누가 감히 탈출을 시도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반역을 꿈꿀 수 조차 없다. 아니 꿈꾸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함께 '시의 숲을 거닐'면서 나는 천양희의 길고 긴 시의 낭송을 듣는 듯 했다. 옛시인들이 남긴 가슴의 한 움큼 어린 그 무엇들을 천양희의 가슴울림으로 전해 들으면서, 그에 덧붙인 천양희의 감성어린 되새김을 내 가슴으로 담으면서, 한 구절 한 구절들이 마치 하나의 시와 같았다. 이 책은 그래서 한 편의 시라고 말하고 싶다. 제목은 "시의 숲을 거닐다". 천양희는 바로 이 시를 써내려간 것은 아닐까?

여기에 엮인 글들은 천양희 시인이 조선일보 <문학의 숲>에 연재한 것들이란다. 조선일보라는 것이 좀 꺼림직하지만 뭐 어떠랴? 이 주옥의 시편들도 조선일보의 독자들에게 골고루 은혜를 부어주어야 할 것을. 우리의 귀에 낯익은 듯한 구절들도 만날 수 있고, 또는 전혀 듣지 못했던 귀한 시구들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헤세에서 괴테, 발레리와 뮈세, 그리고 신석정과 백석에 이르기까지 귀하고 귀한 우리의 옛 시인들의 구구절절 귀한 엑기스들이 들어 있다. 몇 구절 맛좀 볼까?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들어보자.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것 / 아름다움을 헤아릴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의 현재 살아 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성공'이라니? 그러고 보면 나는 '성공'한 사람일까? 우리 어머니가 있지 않은가? 그래, 적어도 난 단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봄직 하다.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 <슬픔>의 이 시구절은 어떤가?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내게 남은 진실이라는 것은 '이따금 울어'보지도 못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닐까? "사랑은 시인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랑은 시인에게 의미가 없다"고 뮈세는 말했다. 아 그래서 난 시인이 못되나 보다. 앞으론 나도 나의 진실을 찾아서 '이따금 울어'보아야 겠다.

예세닌과 마야코스프키의 죽음을 넘은 시의 대화를 한 번 볼까? 예세닌이 죽기 전에 <안녕 내 친구>라는 시를 남겼는데, 그 마지막 구절에서 "이 세상에서 죽음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건만 / 삶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네"라고 읊었다. 여기에 그의 죽음을 가슴아파한 마야코스프키는 이렇게 답했다 한다.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네 / 살아내는 것이 더 어렵다네." 절친한 친구를 잃은 마야코스프키는 그 "살아내는 것"의 어려움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또한 자살을 하고 만다.

유치환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에서처럼 <그리움>은 우리를 어쩔 수 없게한다. 그래서 이 '그리움'은 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천년을 가도 변하지 않을 시의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다. 우리의 천상 시인 천상병의 시도 한 번 보자.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아! 천상병의 헤맑은 웃음이 떠오르면서 천상병 그는 천상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천상 시인이란 걸 다시 한번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그에게 무슨 '생활'이 부유해서 '걱정'이 없었을까? 그깟 대학 나와서 뭐하나 제대로 해 본 것 없으니 '부족' 없었다 말할텐가? '시인'이라는 그 명함이 뭐에 그리 '명예'로왔던가? '아내', 이것은 인정하자, 천상병 시인의 사모님은 참 아름다우시다. 세상에 천상병의 천씨 손을 내어놓지 못한 것은 그에게는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정 행복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 모든 것에 만족하고 즐거움을 찾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던 시구를 떠오릴때, 천상병은 그래도 웃음지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그 주옥의 시 줄기들의 몇몇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구구절절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천금과 같은 노래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래서 '주옥'이라는 과장법의 수식어구는 이 책에 있어서 만큼은 결코 과장법의 수사가 아니다. 아니 너무 평범하기까지 하다.

대부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이다. 우리의 상식과 교양의 수준에서 몇몇의 이름은 떠올리고, 몇몇의 시구들은 읊조려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상식과 교양의 수준의 지평은 넓어질 수 있고, 깊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시인 수팅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외에도 세계적 시인, 천재적 시인들과 얽힌 기묘한 이야기들, 에피소드들을 곁들이고 있어 재미 또한 남다르다. 천양희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시의 숲을 거닐' 당신에게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나는 읊어본다. 사는 것이 슬픔이어도 좋고, 그리움이어도 좋다. "이따금 울어'볼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것이 내게 '진실'로 남을테니 말이다. 삶의 진실은 다른데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의 옛시인들이 눈물 흘리고 가슴시리게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시들에 분명 우리 삶의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아!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라던 백석의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 시구들을 이 밤에 읽어보고 싶어진다. 나는 '시의 숲'에서 당분간 나올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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