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과 교수 학습론
박영목.한철우.윤희원 지음 / 교학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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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7차교육과정에서는 창의적 사고와 자기 주도적 학습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다. 그런 목표를 지향하여 교육과정이 설정되었고 각과목의 세부 항목들도 선정되었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몇 가지 전제를 가진다. 다시 말하면, 개개의 학생들이 창의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그 조건들이 교육과정에서의 말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 조건들이라는 것은 우선 각각의 학생들에게 창의성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저마다의 흥미와 관심과 재능이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집단 교육 구조의 현 우리 학교교육 현장과는 다분히 이질적 목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조건이다. 그러니까 창의적 사고를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에 맞는 그런 교육내용이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최상의 방법은 일대일의 맞춤형 학습방법 밖에는 없겠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학교교육에서는 그 최상의 방법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없을 수 밖에 없겠다.

여기에서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되는데, 일대일 맞춤형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효과적으로 그 목표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교사 일인당 학생수가 적정한 정도여야 한다. 그 적정선의 구체적 수치가 어떤 연구를 통해 밝혀졌는지는 모를 일이나, 적어도 OECD 회원국의 통계치에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가 그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조건들로는 사회구조적 문제들이겠다. 학력위주, 입시위주의 교육 중심의 사회 구조에서는 천편일률적 교육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창의적 사고는 허울좋은 목표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차교육과정은 이런 악조건들 속에서의 사투를 위해 몇몇 창의력 학습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그 중심에 '자기 주도적 학습'이 있다. 원론적으로는 창의성 개발이라는 것이 스스로의 의할 때 가능한 문제임을 볼 때 적합한 선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에서 말한 악조건들을 다만 회피하고자 하는 책략이라고도 보여진다. 말하자면 학교교육을 통해서는 창의성을 키워주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혼자서라도 알아서 해보라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얘기다. 결국 '창의적 사고'와 '자기 주도적 학습'은 교묘한 이해타산 가운데 책정된 목표 아닌 목표일 뿐이다.

현재 8차교육과정안이 이미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시행될 예정이다. 8차교육과정이 7차교육과정과 큰 틀에서는 차이를 두기는 어렵다. 교육과정의 변화는 아무래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겠다. 세대가 바뀌고 학생들의 제반사항들이 변화되는 상태에서 구시대적 발상에 의해 선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배운다는 것은 제대로 된 교육이기 어렵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구체적 모습들을 죄다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교육과정이 나름의 이런 변화를 적절히 반영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백년의 큰 계획이 서야한다는 것이 교육일진대, 이런 큰 계획이 그간의 교육과정에서 있었는가도 의문이고 앞으로의 교육과정에서도 있을는지 의문이긴 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아무리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서두에 말한 그런 교육 구조적, 사회적 문제들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무의미하고 폐해만 낳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런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회의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적 위치에서 교육을 멈출 수는 없다.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 그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실제적 대안들이 끊임없이 제기될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그 구체적 방법 가운데 하나인 실제 교수 학습 현장에서의 방법론들의 필요성이다. 지금의 대다수의 교육 현장에서는 그간의 천편일률적 주입식 수업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것은 앞서 말한 여러 조건들에 의해 강요되는 방법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은 노력부터라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효과적인 교수 학습 방법들이 연구되고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일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것을 일반 교사들의 책무로만 남겨서는 안된다. 일반 교사들이 스스로 수업을 연구하고 다양한 교수 방법과 교재들을 개발하는 노력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국어교육 전문 연구자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고, 그들에게 제시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당국에서 보다 주의를 기울여 선결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연구들과 그나마의 연구의 성과들은 너무나 부실하고 미약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 『국어과 교수 학습론』이 그래도 개중에서는 돋보이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교수 학습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어과 전반의 '교수 학습'에 관한 개론이다. 그러니까 국어과의 목표 및 성격, 내용, 그리고 교수 학습 방법, 평가에 대한 전반적 정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책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중심이 '교수 학습'과 '평가 방법'의 그나마의 구체성에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보다 가치있게 하기는 한다. 그러나 부족함을 지울 수는 없다.

교수 학습 방법에 대한 제시는 각 영역에서 단 하나의 수업모델을 구체화하여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한 차시의 수업 형태만이 들어있다. 평가 방법에 대한 모델들도 그리 구체적이지만은 않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보다 구체적 형태의 방법들이다. 국어 교육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다양한 연구와 개발을 통해 일선의 교사들에게 여러가지 방법들 중에 적합한 방법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을 내어 놓아야 한다. 이 책이 그 시발을 감당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일까? 이 책의 공저자들은 앞서 『국어교육학 원론』을 집필했던 분들이다. 많은 부분에서 이 책이나 그 책이나기도 하고, 부실하기 또한 매 한가지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이 책이 실제성 면에서는 좀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각 영역을 다룬 후 참고서지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 참고목록 중에서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국어교육 연구의 부실성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겠다. 앞으로의 국어과 각 영역별 교수 학습 방법론의 다양한 연구와 개발이 이뤄지고 좋은 성과들이 나와 일선 교사들의 참고 자료들이 풍부해져서 선택의 즐거움을 가져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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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우리말이 살아온 모습을 찾아서
시정곤 외 지음 / 고즈윈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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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이나 사자성어, 격언 같은 관용어구들의 그것들이 속한 사회에서 일종의 지침 혹은 교훈으로서 기능한다. 선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농축된 후인들에게 내리는 뼈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간혹 우리의 언설에 이런 관용어구를 곁들이면 제법 그 표현효과가 확연히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관용어구들 중에 어느 사회에서거나 빠지는 않는 것은 '말'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조사해 본 바는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가장 많은 속담이 이 '말'과 관련있다. 우리만 하더라도 일일이 꼽자면 꽤 긴 시간을 요할 터이다. 그런 관용어구가 전달하는 중심내용은 주로 '말 조심' 혹은 '말의 중요성' 등이다. 하나만 떠올리면 "말 한 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세 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언설도 흔하다. 이게 모두가 선인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깨달은 지혜다. 그들에게 '말'은 그만큼 중요했다는 걸 의미하는데, 이는 오늘에도 전혀 변함이 없다.

'언어적 인간(Home loquens)'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언어로부터 시작되었고, 인간이 끝나는 말은 언어가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 혹은 기타 생물들과 다른 점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인간의 사고의 운용도구라고도 할 만한데, 인간은 언어적으로 사고한다고 하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 머리 속의 생각이라는 것도 생각이라는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언어적으로 구성되어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이런 의미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이전에 인간은 언어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이 '언어'가 구성되고 형성되는 그 요소들이다. 언어가 다만 음성기호의 체계로서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수만가지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을 품고 있다. 사고와 사유의 기본틀도 언어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이 '언어'에 내재된 다양한 요소들, 그리고 그 언어가 구성되는 다양한 요소들의 양상들을 알지 않고는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사유하는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어떤 문화속에서 존재하는지 그 근원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학은 철학이다. 또다른 의미에서 언어학은 실용성을 포함한다. 우리가 언어의 본질을 이해할 때 다양한 문화와 그것이 존재하는 다원성을 존중하면서 기타 문화의 언어들을 습득하는데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언어 속에는 다양한 문화를 내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言語)라는 중복적 표현(言과 語가 모두 '말'이라는 의미를 대표로 가지지만, 엄밀히 따지자만 言은 음성언어를 語는 문자언어를 통칭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언어는 음성과 문자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이라는 큰 의미를 중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을 달리하여 '문화어'(여기서의 문화어는 북한의 '문화어'와는 구별된다. 여기서는 문화와 언어를 동격으로 혹은 언어가 문화를 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도 하나의 문화임으로 '문화어'도 중첩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라고 불리어도 좋을 것이다. 

현행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상에서 언어교육은 '국어'와 '영어'로 대별된다.(기타 외국어도 고등학교과정에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영향은 극히 적다.) 여기서 '영어'를 실용영어 중심으로 영어회화말하기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어 본질적 언어교육으로서는 기능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국어'에서 언어교육이 이뤄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학교과정에서 '언어의 사회성'이니 '자의성', '역사성' 등이 살짝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언어의 본질을 가르칠 수는 없다. '언어'에 대해 보다 심도있게 다룰 수 있는 시간은 고등학교 선택과목의 '문법' 시간이다. 그러나 이 과목은 선택과목에다가 문법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해 많은 학교에서 선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러니 현행 학교교육에서는 이 언어교육이, 특히 언어의 본질적 측면이 거의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이 책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는 그런 학교교육에서 하지 못하는, 특히 국어나 영어 시간에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있는, 언어의 본질적 모습을 꽤 훌륭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사실 문법책에서 다루는 언어의 본질적 측면은 거반 수박겉핥기 식이지만, 이 책에서는 쉽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심도 있게 언어를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문법책(국정교과서)와 함께 문법 과목의 교재로 채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제목이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지만, 이 책은 언어 전반의 본질적 특성들을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언어의 기원, 언어와 문화의 관계, 언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들, 언어와 금기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런 언어의 본질적 측면을 다루는 여타 언어학 개론서에서의 원론적 설명들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첫장의 시작은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넬(Nell)」(1995)"을 끌어들이면서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조목조목 풀어나간다.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가 유발될 수 밖에 없게한다.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영화, 기타 영상, 최근의 연예인이름, 다양한 광고와 이미지들을 가져와 설명한다. 이런 것들은 보다 친근하게 언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왜 효과적이냐 하면, 언어의 본질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구체적 언어 현상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구체적 언어 현상을 통해 언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 언어가 형성됨에 있어 고대의 토템적 성격은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는데는 일본의 만화영화 「원령공주」가 도입된다. '고맙습니다'가 곰과 관련된 토템에서 왔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언어가 가지는 주술성은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 의해 설명된다. 무슨 소리냐고?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타임머신을 타고 저 멀리 삼국시대로 간다면 그들과 우리가 말이 통할까? 이런 의문은 "김유신과 계백은 말이 통했을까?" 등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과 우리의 지명이나 명칭들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 언어 변화의 양상, 곧 언어의 역사성 혹은 자의성에 대해 배워볼 수도 있겠다. 또한 외래어의 유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것이 어떤 양상을 띄는지를 일본의 한류 신드롬을 일으킨 「겨울연가」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3장에서부터는 이 책이 왜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였을까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옛날 선조들은 우리말을 어떻게 공부했을까를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추적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언문이라고 치부되던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말이 소외되고 천시된 이들에 의해 유지보전 전승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도 같은 외국어 열풍도 우리의 역사속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또한 흥미롭다. 몇 백년 전의 부부의 사랑편지도 읽어볼 수 있다. 4장에서는 언어 속에 문화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양상을 살피고 있는데, 언어와 사고의 관계의 본질적 측면과, 연예인 김C를 등장시켜 우리의 이름짖기에 반영된 사회상을 살피고 있다. 이 책이 또한 가치있는 것은 5장에서 다루는 언어의 권력과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반드시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 책은 저자들 연구모임의 세 번째 결과물이다. 『우리말의 수수께끼』가 그 첫째인데, 거기서도 재미나게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두 번째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인데, 한국어의 소멸이라는 가상의 현실을 설정하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흥미롭게 구성해내고 있다. 두 번째 결과물은 조금 시의성이 있었고 그들 연구모임을 주된 항로는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말의 수수께끼』에 적자동생은 이 책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라고 본다. 어쨌건 정주리, 박영준, 시정곤, 최경봉 이 네 명의 젊은 국어학자들의 이런 작업들이 앞으로도 의미있는 결과물들을 내어주기를, 그리고 그들의 이런 작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특히 학생들에게 읽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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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수수께끼 - 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
시정곤 외 지음 / 김영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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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아니 역사(history)라는 것은 그 기록을 전제하는 고로 인류의 역사는 곧 언어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사유가 전적으로 언어로 이루어진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언어가 인간 사유의 폭과 깊이를 무한히 확장해 주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언어를 통한 인간의 사유, 곧 상상의 날개는 오늘날까지 인류의 높은 문명의 하늘로 날아 오르게 하였다. "인류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이러한 놀라운 발전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사고하고, 사물을 인식하며, 개념을 형성한다. 인간적 활동의 대부분에서 언어는 중요한 도구로써 기능한다. 그러나 그런 중요하고 유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언어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인류 문명의 시작 이전부터 있었왔고("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인류의 문명을 꽃피웠으며, 오늘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낸 이 언어에 대해 우리는 그 근본을 거의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태생적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이 언어에 대한 궁금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많은 이들, 즉 언어학자들이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이것은 비단 인류 초기, 즉 인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멀고 먼 시대의 고대 원시 언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언어의 모습들은 가까이는 500여년 전의 우리말, 우리글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말했을까? 오늘날 우리와 직접 대면하여 말을 해도 통할까? 하는 의문의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의 비밀, 말과 글의 담긴 수수께끼들은 무한히 많다. 원시시대부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에 이르기까지, 그 끝없는 비밀을 문을 오늘날의 언어학자들은 탐구하고 있다. 여기 우리말의 비밀을 찾는 젊은 국어학자들이 있어, 그 수수께끼의 문을 열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우리말의 수수께끼』에서는 멀리는 인류 초기의 언어에 대한 수수께끼부터 우리 말과 글의 역사, 그리고 우리글의 표기법에 담긴 숨은 이야기들까지를 흥미롭게 탐구하고 있다. 언어의 비밀은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과도 같다. 다만 그 미로를 헤쳐나가려는 땀과 열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기에 충분하다. 그 책에서도 우리말과 글의 비밀들을 속 시원히 밝혀내고 있진 못하지만,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가능성을 추측해 보는 젊은 국어학자들의 노력의 결과를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나로 하여금 기쁘게 한다.

이 책 『우리말의 수수께끼』는 2002년에 출간되었다. 박영준, 시정곤, 정주리, 최경봉 4명의 신진 국어학자들의 사뭇 유쾌한 모임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존재를 뒤늦게 안 것은 최근 읽은 『우리말이 사라진다면』덕분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기획에 재미를 느끼고 일독한 후, 이 책이 그들의 2번째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으며, 그들의 첫번째 흥미로운 탐구가 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가볍운 마음으로 그들의 첫번째 여행에 동참하기로 마음 굳게 먹고 이 책을 구해 읽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우리말이 사라진다면』의 서문에 3번째 작업을 준비 중에 있었다고 밝혔고, 이미 그 결과물이 세상에 나와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았다. 조금 있으면 그것도 찾아 읽을 것이다.(그 책은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란 제목을 달고 2006년에 출간되었다.)

『우리말의 수수께끼』에서는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말에 대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우리글에 대한 질문들, 그러니까 언어전반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문자의 역사에 숨긴 이야기들에 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구태여 다시 달자면 "우리글의 수수께끼"라 해야 좀더 정확할 듯도 하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 다루는 수수께끼들은, 우선 문자의 탄생 배경에 대한 궁금증으로 문을 연 후, 우리 글의 역사에 대한 수수께끼로 이어진다. 한글 창제를 기준으로 볼때, 창제 이전의 문자사, 창제 후의 문자사에 대한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덧붙여 근대이후 한글 맞춤법통일안 탄생의 비하인드까지를 쉽게 재밌게 풀어나가고 있다. 여러모로 우리글의 전체적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된다.

1장에서 다루고 있는 문자의 탄생에 대한 부분은 이 책의 프롤로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내용으로 별반 다른 언어관련 기본서에 다 나오는 내용인데, 보다 쉽게 풀이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글의 역사는 2장부터다. 우리글이 없던 시대에 우리는 한자를 빌어 사용해왔다. 향찰이니 이두니, 구결이니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한자를 빌려와 한문으로 기록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었지만, 이외에 우리말을 우리식으로 적되 한자를 이용하여 적는 방법이 바로 향찰과 이두와 구결인 것이다. 이 향찰, 이두, 구결에 대한 따분한 이야기들, 특히 한자만 나오면 치를 떠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조금은 다행스럽게도 쉬운 이해가 가능하도록 서술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어서 6장부터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무엇이었으니, 어떻게 훈민정음이 창제될 수 있었는지, 훈민정음 창제를 두고 세종과 최만리의 논쟁등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이어지는 것은 한글표기법과 관련한 문제들, 그리고 세종대왕의 업적, 나아가 미래 사회의 새 문자, 혹은 원시문자로의 회귀 가능서엥 대한 언급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전혀 새로울 바는 없다. 내용의 많은 부분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며, 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어차피 이 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씌여지고 있어서 일반인들을 생각해서 본다면, 조금씩 신선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잘 아는 것이면서도 거기에 신선함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시종일관 신선하면 어려우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끈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최만리와 세종대왕의 대결 부분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종대왕을 칭송하면서, 한글창제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최만리를 천리 만리 배척해 왔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 최만리의 철학과 사상을 고려하면서, 그가 왜 반대해야 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어쩌면 세종에게나 최만리에게나 백성은 '어리석었고', 이 어리석은 백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나름의 시각차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하는 결론을 주고 있다. 또 다른 대목은 박승빈과 최현배의 철자법 논쟁에 관한 부분이다. 최현배는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국어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에 반해, 박승빈은 나도 여기서 처음 들었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맞춤법규정이 이런 논쟁을 통해 성립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롭지만, 또한 논쟁이란 것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지만, 국어발전에 있어서 최현배의 승리만큼이나 박승빈의 패배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이 박승빈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가지게 해서 더욱 이 대목에 끌린다. 앞으로 철자법 논쟁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은 또다른 이책이 주는 기쁨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대중서로서뿐만 아니라, 국어학입문서로서 전공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들이 의도한 것같지는 않지만, 국어관련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필독서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가지게 되었다. 특히나 어렵다는 향찰, 이두, 구결 부분에서 조목조목 대조비교하여 설명, 해설한 부분은 어떤 전공서적의 해설보다도 좋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은 그 표제대로 '우리말'에 대한 역사 여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글'에 국한되어 있다. 백년전, 천년전의 우리 말을 재구성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 점에서 글은 자료가 그래도 남아 있어 말보다는 쉽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 책이 표방한 대로 '우리말'에 대해, 즉,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전반에 대해 그 의문의 수수께끼들을 찾아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를테면 신라사람과 고구려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대화를 했는지, 지금의 전라도 사투리가 500년 전에는 또 어땠을지 등 재미나고 유익한 주제들이 많을 것도 같다. 추후 이들의 작업이 보다 활발히 그리하여 우리말과 글의 비밀들의 재미나게 밝혀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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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육학 원론 - 제2판
박영목 지음 / 박이정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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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육학 원론』을 읽었다. 국어교육 전공자에게는 필수 기초 서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읽는다'는 낱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전공자에게 이 책은 전공서적, 강의교재이기 때문에 한층 가벼워 보이는 이 '읽는다'는 말과 격이 맞지 않는다고나할까? 내게 읽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것이지만, 전공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기분 좋지만은 않은, 괜한 부담 있는 그런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2째년 되는 지금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국어교육을 전공하면서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고 졸업했을까 의아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변명하자면, 사범대학의 제도적 허실을 첫번째로 지적할 수 있겠고, 나의 노골적 교과교육론 기피현상을 두번째로 들 수 있겠다. 군대가기전 기억도 나지 않는 강의 수강 이력(학점이 꽤나 좋지 않지만 낙제는 면했다.)에 힘입어 이 책과 씨름하지 않아도 되었다.(당시 이 책은 초판이 나와 있을 때이다.) 행운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제사 와서 고백하건데, 참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이제라도 한 번 읽어 본 것이 어딘가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많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의 교과교육론 시간에 이 책을 강의교재로 택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어교육 전공자들은 이 책을 한두 번쯤은 읽어내야할 큰 산이다. 필수 전공서적에 그 이름을 올리고, 반드시 읽어야할 책 쯤으로 언급될 뿐 가타부타 별 말들이 없어, 최근에 읽어낸 내가 이렇게 리뷰를 남기려 한다. 사실 많은 전공자들이 이 책으로 공부하면서 불만들을 토해내고 있지만, 이 책을 강의교재로 택하는 교수님들도 그러하지만, 별달리 말들이 없고 계속해서 이 책이 교재로 사용되는 이유는 이만한 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탈자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고, 내용이 중복되거나 삭제되기도 하고, 대부분이 외국 연구 논문 번역의 짜깁기라고 보여지는 이 책을 대신할 만한 국어교육학 원론서가 현재로선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국어교육이 시작된 것은 해방 이후라고 할 것이다. 미흡한 점이 많지만 교육과정이 성립되고 학교교육이 제도화 되면서 지금의 국어교육은 시작된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7차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있으며 곧 8차교육과정으로 바뀔 예정이다. 말이 8차라고 오래된 것 같지만, 70년에 못 미친다. 교육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교육과정은 수없이 바뀌어 왔다. 뭐 시대가 급속도로 변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다는 설명이 가능은 하겠지만, 여전히 졸속적 교육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은 없다. 지금은 국어교육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길지 않은 시간에 걸쳐 많은 것들이 변하고 그 변화에 국어교육 연구는 발을 맞추어 걸어오지 못한 바가 크다.

국어교육 초기 대부분의 교육이론들은 서양의 것을 수입해 온 것들이다. 그 사정이 지금이라고 나아진 바가 크지 않다. 사범대학에서는 국어교육 전공이라지만 국어학과 국문학 공부에만 치우쳐 있다. 교과교육론의 비중이 작을 뿐더러 강의 개설도 극소수 필수 과목들 뿐이다.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에 대한 전문가, 즉 국어교육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교수진이나 연구진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면 우리 국어교육의 현주소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 전문적 국어교육학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있고, 다양한 연구성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그것이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 책을 집필한 저자들도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책이 나온 것만 해도 우리로서는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이 책이 여전히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이 책은 1996년도에 초판이 발행되고 2003년에 제2판이 발행되었다. "초판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수정 보완하고자" 했다는 저자들의 말은 사실이지만, 미진한 점이 너무 많은 것이 탈이다. 여전히 외국논문들의 번역요약수록에 오자와 탈자, 내용 중복과 삭제등이 너무 심하다. 단어의 오탈자 및 잘못된 조사, 문장의 호응이 안 맞는다거나 하는 문제는 이해하겠지만, 3가지가 있다면서 첫째, 둘째만 하고 끝나는 등의 웃지못할 문제점들이 곳곳에 내재해 있는 점, 외국의 이론을 쉽게 설명한다던지, 우리 실정에 맞게 소화하여 소개하고 있지 못한 점, 앞서 서술했던 설명 내용들이 다른 제목으로 다시 서술된다던지 하는 점들의 문제들이 너무 많다.

이 책의 체제를 잠시 살펴보면, 제1부 국어교육학의 기초, 제2부 국어표현론, 제3부 국어이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제1부 국어교육학의 기초에서는 국어교육학의 연구 동향을 요약제시 한 것이 지나지 않으며, 필자들의 독자적인 집필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제3장 국어과 교사의 극히 일부분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제2부 국어표현론에서 또한 이러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작문이론에 대한 집중적 조명외에 표현에 해당하는 말하기는 상대적으로 부실하게 다루어 진다. 저자들의 관심 사항외에는 거반 부실한 요약만을 제시하고 있는 정도이다. 제3부 국어이해론에서도 '독서'에만 치중될 뿐이다. 전체적으로 체계와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국어교육학의 '원론'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다.

문제가 많으나 아직 이 많은 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분히 원론서라고 하는 것이 그간의 연구결과를 집약해서 주요 엑기스를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양한 이론들의 요약제시는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진정한 국어교육학의 원론서가 나오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균형있는, 나아가 현 우리의 국어교육의 현실에 맞게 독자적으로 수용되고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단점들이 앞으로의 국어교육 발전을 위한 진정한 국어교육학 원론서 출간의 촉매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400여 페이지 분량으로 두터운 편이지만, 보다 내용을 충실히하기 위해서는 보다 두꺼워질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나의 부끄러운 전공서적 탐독기(耽讀記)를 서둘러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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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사라진다면 - 2023년, 영어 식민지 대한민국을 가다
시정곤·정주리·장영준·박영준·최경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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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어 '열풍' 비슷한 바람이 불었다. 특히나 출판시장에서 그 바람은 거셌다. 현 사회의 이슈를 알아보려면 서점엘 가보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 관련 도서들이 즐비한 것을 보면 바람이 분 건 확실한 것 같다. 왜 그런 것인가 생각해 보니, '대입 논술'이라는 유난히 민감한 문제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도서들이 작문·논술 관련 참고서였지만, 그와 더불어 잘 포장된 문법책들, 한국어 어휘 관련 도서들도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 나왔다.

최근에 대학에서 영어 강의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는 발표들이 잇다르면서, 이제 이슈는 '영어'로 귀향한 것 같다. 영어는 항상 우리 사회에서 대접받는 손님, 아니 주인이었다. 이런 발표에 따라 우리 사회는 다시 영어 문제로 민감해졌고, 각종 방송 뉴스, 토론의 주제로 다뤄지면서 바람에 날개를 달았다. 영어를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21세기가 왔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대학의 영어 강의 비율을 대폭 늘리고, 나아가 잠시 고개 숙인듯 했던 영어 공용어화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그래서일까? '한국어 소멸'의 위기감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언어는 생성, 발전, 소멸한다. 마치 인간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지금까지 많은 언어들이 생성(발생)됐고, 많은 언어들이 발전했으며, 또한 많은 언어들이 소멸했고, 소멸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언어의 생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은 아닐까 한다. 지금의 단계에서는 언어가 소멸되는 단계, 그러면서 몇 개의 언어로 정리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학계의 보고에서도 어떤 언어가 새로이 생성되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수 천 개의 언어가 사라졌고,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어도 예외일 수 없다는 위기감은 항상 있어 왔으나 최근 다시 머리를 들이 밀고 있다. 왜일까?

한국어 '열풍' 비슷한 바람이 불었고, 다시 '영어'에 자리를 내주는 형세에 대한 반발에서 국면 전환의 전략일까? 말하자면, 출판 업계의 음모설 정도? 아무런 근거도 없는 주장이지만, 한국어 소멸 위기를 말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음모설 주장 만큼이나 좀 헤픈 느낌이 든다. SBS의 <웃찾사>의 한 코너에 이런 개그가 있다. 얼핏 어리숙하고 모자라 보이는 학생(주인공)이 다소 불량스러워 보이는 학생 둘이 나와 개그를 하는데, 불량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너 나한테 맞으면 죽어!" 정상적이라면 여기서는 쫄아야 맞겠지만, 이 개그의 웃음의 묘미는 이런 반전에 있었다. "에이!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나요." 이 개그에서처럼의 웃음을 주진 않지만, "한국어가 곧 죽을 것이다."라는 말에 "에이! 한국어가 그렇게 쉽게 죽나요."라는 대구를 해주고 싶은 것은 왜일까?

이 책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은 사실 1998년 복거일이 영어공용어화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그에 대한 반론의 제기의 성격을 띄고 기획, 출간된 것이다. 여기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정하면, 이렇게 되고, 이런 문제들이 생기고, 이렇기 때문에 한국어가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럼 또 이런 문제들이 있고 등등, 그런데도 영어 공용어를 하겠다는 것이냐? 이런 문제를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논하고 있다.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듯이 한국어도 이 책에서처럼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만큼 이 책의 주장들, 상상의 상황들이 다소 과격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과격한 상상들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분명 언어는 안쓰면 사라지게 돼 있다. 박물관에 보존된다고 해서 그 언어가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 공용어화는 결국 한국어의 소멸을 야기하게 될 것은 자명한 결과라고 하겠다. 하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기까지, 또한 영어 공용화 정책이 성공하기까지도 그리 쉬운 문제일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이 사라지면, 우리 민족의 전통, 정체성을 잃는다는 협박성 발언도 이제는 식상하다.

한국어가 사라진다, 그렇지 않다는 입장들을 좀 차지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영어 공용어화가 한국어를 살아지게 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영어 공용어화가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를 우선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본다. 영어가 왜 필요한가? 공용어, 나아가 모국어로서 영어를 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문제들에 차분하고 냉철하게 판단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 문제는 전문가들에게 숙제로 주면 좋겠다.

나는 기실 영어 공용어화를 절대 반대한다. 왜냐하면 나는 영어를 못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써는 영어를 못해도 하등의 지장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나뿐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영어가 싫고, 영어 공용화를 그렇기때문에 반대한다. 옛날 얘기 잠깐 하자면, 중학교 2학년때 지독한 영어 선생의 무지막지만 영어 단어 시험에 질려 그때부터 영어와 결별을 선언했다. 쪽지 시험을 통과 못하면 죽어라 패는데, 제깐엔 어케 통과나 해보자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영어 단어를 적어 놓고 컨닝을 하다고 들켜 정말 죽어라 맞은 안 좋은 추억이 있었더랬다. 하여간 영어가 나는 싫다.

그러나, 나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 그리고 중국어와 일본어, 여력이 된다면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을 배우고 싶다. 나아가 희랍어나 라틴어 등도 배우고 싶다. 독서를 하면서 이런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나는 영어가 너무 싫지만, 내가 필요로 하고 그럼으로써 노력하여 배우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목적은 영어로 된 책을 잘 읽는 것이다. 중국어를 배워서 한시를 멋드러지게(한시를 중국어로 읽으면 운이 산다.) 읊어보고 싶다. 일본어는 배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유럽 여행을 가보고 싶은데, 유럽의 한 나라 정도 언어를 배우고 싶다. 배우고 싶은 열정을 가진다면 그깟 언어 하나쯤은 충분히 익힐 수 있다는 자만이 나에게는 있다. 그런데 영어공용어화라? 뭘 그렇게까지.

우리 사회는 영어를 잘할 필요성이 있다.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큰 이유다. 직장에서도 영어를 강조한다. 그런데 따지는 것이 영어 성적이다.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 공용어가 영어가 아니라서 우리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대하는 우리 마음가짐의 문제이고, 교육의 문제이고, 사회제도의 문제이다. 그런 것을 바꿀 따름이지, 영어 공용어화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네덜란드의 택시기사는 5개국어를 하는 모습을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외국어의 필요성에 따라 언어를 배우고 익혔을 뿐이지, 대학입시, 취직을 위해 영어성적 따기에 심취한 것이 전혀 아님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소리만 잔뜩 했다. 이 책의 다소 과격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의 '영어'가 어떻게 잘못 걸어 왔는지를 따져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 많이 담겨 있다. 저자들의 의도는 한국어 사멸의 시나리오 작성에 있었겠지만, 그런 "쉽지 않은 죽음" 보다는 오히려 이런 쪽에서 나에겐 도움이 된 듯 하다. 다양한 자료들이 풍성한 것을 장점이라고 해야겠다. 참고로 영어공용어화 논쟁의 추이도 이 책을 통해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 어떤 허무맹랑한 주장과 반박, 논쟁이 오고가는지 따라가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로 추가할 수 있겠다. 

p.s. 사람이 쉽게 죽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자릴 빌어, 무참하게 죽어간 미국의 젊은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그런데, 미국 청년들의 죽음만 안타까울까? 총이 아닌 최첨착 무기로, 대형폭탄으로 수십명, 수백명이 죽어간 소식을 간간히 뉴스단신 정도로 전해져 올때 나의 마음이 씁쓸한 것은 왜일까? 모든 죽음은 슬프다. 지나치지 않다면 한국어 사멸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은 무용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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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21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공용화에 관한 가장 읽기 쉬운 책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이 책만으로는 양쪽 모두의 의견을 듣고 비판하기는 힘들죠. 저도 영어공용화 반대입니다. 필요한 사람들은 그 분들만 자체 공용어화 하시면 됩니다. 필요없는 이들에게까지 강요할 건 아니죠. :)

멜기세덱 2007-04-2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소설에선가, 영화에선가,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아빠, 엄마, 딸이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 그런 것도 재밌을거 같아요. 다양한 여러개의 언어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적, 인식적 풍성함을 준다고 생각해요. 영어공용어화보다는 다양한 언어 교육을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