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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자생활 백서 우리말 맞춤법.띄어쓰기 새로운 글쓰기의 보고 세상 모든 글쓰기 (랜덤하우스코리아) 6
정희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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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랜덤하우스에서 요번에 내놓은 <세상 모든 글쓰기>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고 본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말 맞춤법에 관한 6권과 외래어 표기법에 관한 7권에 특히 주목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놓은 것 중에 어문규범에 관한 것은 이 2권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글쓰기"에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이 거창한 기획은 여러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각 권에서 다루고 있으면서도 왜 이 어문규범을 2권 씩이나 포함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문규범이 글쓰기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이 맞춤법 관련 책은 시리즈의 1권을 차지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건 그렇고 이 시리즈가 다루고 있는 어문규범은 앞서 말했듯이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 만을 다루고 있는데, 추가적으로 표준어 규정과 로마자 표기법을 다루는 책도 나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일단 글쓰기의 기본을 갖추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어문규범이 글쓰기의 기본적 사항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어떤 것이건 그 기본을 갖춘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이다. 그 기본에 목을 매다보면 고루해지고 따분해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그 기본을 무시하면 그 이상을 이루기도 어렵다. 글쓰기에서 이 기본을 갖추는 것은 더욱 그렇다. 사실 이것은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갖추어 '가는' 것이어야 한다. 글을 쓰면서 항상 사전과 어문 규정집을 옆에 두고 틈나는 대로 찾아 살피는 것이 가장 미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일 뿐이다.

내가 "가장 미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을 때, 시중에 나와 있는 맞춤법 관련 해설서들이 저마다 자기 책들은 맞춤법을 명쾌하고 쉽게 가르쳐 준다고 뻥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맞춤법 또한 간단명료한 '왕도'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마다 자꾸 자기들 책만은 왕도를 알려주겠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보게 되고 결국은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후회가 그렇게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맞춤법을 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 그런 책이 또 한 권 추가된 듯 하다. 이 책 『현대문자생활 백서 우리말 맞춤법·띄어쓰기』(이하 『우리말 맞춤법』)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정확한 의사소통의 기준이 되는 어문 규범을 실생활의 친숙한 예를 통해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한 어문 규범 강의. 단순히 '어느 말이 옳은가?'만 물었던 기존의 학습서와는 달리 '왜 그것이 옳은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어문 규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우리말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 준다.  
   

이 설명만을 놓고 보면 이 책은 기존의 "'어느 말이 옳은가?'만 물었던" 것과의 차별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단순히 이게 옳고 저게 틀리다가 아니라, '왜 그것이 옳은가?', 즉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세한 설명'으로 말이다. 그런데 일단 이런 소개와 어긋나는 것은 '상세'하다는 것이다. 170여 쪽의 얄팍한 책자가 감당하기에 '상세'하다는 말은 이미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서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즉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한글 맞춤법을 이젠 외우지 않고도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인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우선 저자의 머리말을 간추려 읽어보자.

   
 

어문 규범을 주관하는 기관의 규범 담당자로서 맞춤법에 관한 문의를 받을 때마다 '어느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짧은 답을 하기보다 '왜 그러한 표기가 바른 표기인가?'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싶을 때가 많았다. 늘 쓰는 말을 통해 '한글 맞춤법'의 원리까지 이해하게 되면 비슷한 많은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일상의 예를 통해 맞춤법의 원리를 알아 나갈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했다. 즉, 용례와 함께 그 원리를 설명해 줌으로써 우리의 말 속에 일정한 원리와 규칙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은 매우 짧다. 하지만 실례를 통해 원리를 익히고 그 원리를 다른 용례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넓어지고 언어 표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와 같이 저자의 말 대로만 된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일단 한글 맞춤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이 책이 해주겠다는 것일까? 머리말에서만은 그럴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한글 맞춤법이 사실 뚜렷한 원리가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흔히 우리가 "문법에 맞게 말하고 쓴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맞는 것이면서 틀린 말이다. 문법이 있고 말과 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이 있고 문법이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문법은 기존의 말과 글을 어떤 법칙들로 짜맞춘 것이란 얘긴데, 이렇게 짜맞추다 보니 이런 문법이란 틀에 들어맞지 않는 말과 글이 다수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 따라서 어떤 법칙, 즉 원리로 우리말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말이, 특히 글쓰기기 무척 어려운 것이다. 문법학자들이, 국어학자들이 몇 십 년을 연구하고 있지만 이렇다면 명쾌한 설명을 못 내놓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이 얄팍한 책에서 그걸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은 무척 무모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 그것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볼 차례다. 저자는 이 책의 1장에서 "한글 맞춤법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무척이나 간단하다. 저자는 '한글 맞춤법' 제1장 제1항의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총칙을 들이밀면서 이게 무척이나 명쾌한 원리처럼 설명한다. 그런데 이건 총칙은 정말 애매모호하기 그지 없는 원칙 아닌 원칙이다. 소리나는 대로 적으면 소리나는 대로 적는 거지, 어법에 맞도록 함은 또 무엇인가? 소리나는 대로 쓰기도 하고, 어법에 맞도록 쓰기도 하는 것. 이것을 진정 원칙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척 민망하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한글 맞춤법은 형태주의, 곧 어법에 맞도록 형태를 밝혀 적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소리나는 대로 적기도 한다. 그렇다면 총칙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어법에 맞게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정도로. 한글 맞춤법 총칙 자체가 약간의 구라를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러한 원칙에 따라 실제 사용례를 통해 원리를 설명하겠다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어떤 국어학자도 불가능했던 것을, 해결하고 있는지 살표볼 차례다. 이 책의 2장 "한글 맞춤법의 실제"에서 그 포부를 펼치고 있다. 41쪽에 보면, 저자는 '날으는, 거칠은'이란 잘못된 표기를 설명하면서 "'노는'을 '놀으는'으로 쓰거나 '가는'을 '갈으는'으로 쓰는 일이 없는 것처럼"이라고 원리를 정하고, 이 원리에 따라 '날으는, 거칠은'도 '나는, 거친'으로 적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날(다)+은'이나 '거칠(다)+은'에서 작용하는 음운론적 원칙들에 대한 언급이 없이 그것을 원리라고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원리를 설명하겠다고 하면서 말하자면 잘 찍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 아닐까?

같은 쪽에 "그렇지만 '몇 월'이 [며둴]로 소리 나듯이 '몇 일'은 [며딜]로 소리 나기 때문에 '몇 일'로 적을 수 없다. 표준어가 [며칠]이므로 '며칠'로 적어야 한다."는 설명도 무책임하다. 사실 '며칠'이 '몇 일'이 아니고 '며칠'인 것은 아직 국어학적으로 논란이다. 의미적으로나 문법상으로 '며칠'은 사실 '몇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추측임을 전제로 설명하자면, 우리말에서 '일'이 '월'보다 먼저 존재했을 것이고, 이것은 아마도 '몇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언중들에 의해 오래 사용되면서 [며딜]이란 어려운 발음을 피해 [며칠]로 잘못 발음하는 것이 굳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아무튼 이런 추측이 저자의 설명보다 설득력이 없지는 않을 것같다.

   
  '먹-'의 경우에 '먹음[머금]'이 맞고 '먹슴[먹씀]'이 되지 않는다. '있읍니다'와 '있습니다'를 혼동하는 경우에도 '먹습니다[먹씀니다]'를 '먹읍니다[머급니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습니다'가 결합한 '있습니다'가 맞는 말임을 알 수 있다.(49쪽)  
   

이런 설명에 어떤 원리 원칙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저자의 설명 방식은 대부분이 이렇다. "이렇게 발음하니까 이렇게 적는다." 이런 것을 원리하고 할 수 있을까? 가령, 맞춤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분명 '있읍니다'였다. 그런데 이것이 개정후 '있습니다'가 됐다. 이것은 언중들이 '있읍니다'보다 '있습니다'로 많이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있읍니다]로 발음하고 '있읍니다'로 적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떤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인가? 결코 이 책은 아무런 원리와 설명을 그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단지 "니들 발음이 틀렸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53쪽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개굴거리다', '뻐꾹거리다'가 불가능하므로 '개굴이', '뻐꾹이'로 적지 않고 '개구리', '뻐꾸기'로 적는다." 사실 이것은 한글 맞춤법에서 가장 원리 원칙이 부재하는 항에 대한 설명이다. 한글 맞춤법 제23항은 이렇다. "'-하다'나 '-거리다'가 붙는 어근에 '-이'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 이 항의 [붙임]은 또 이렇다. "'-하다'나 '-거리다'가 붙을 수 없는 어근에 '-이'나 또는 다른 모음으로 시작되는 접미사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 이런 맞춤법 규정에 대한 설명이 고작 '개굴거리다'가 불가능하니까 '개굴이'가 아니고 '개구리'라니? 이런 자의적인 것을 원칙 원리라고 설명하는 것은 우미말 글의 맞춤법이 얼마나 조악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저자가 원리를 설명하겠다고 하지만 저자도 이 조악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땅의 누군가는 분명 '개굴거리다'가 왜 안되냐고 물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언제까지고 "니들은 틀리고 내가 맞아"라고 강요할텐가?

이런 같지 않은 설명은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76쪽에 다음과 같은 설명 또한 그렇다.

   
  '머릿말'이 아니라 '머리말'인 것은 소리가 [머리말]로 나기 때문이다. '인사말'도 [인사말]로 소리가 나므로 첫 번째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걸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여기서 무슨 원리를 찾을 수 있겠는가? 저자도 여기선 이게 얼마나 무책임한 설명인지를 인정하는 모양이다. 이 설명에 각주를 달아 "현실 발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자신의 발음을 기준으로 사이시옷의 개재 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결국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는 셈이다. 원리를 상세히 설명하겠다는 저자의 포부는 결국 무모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저자는 다시 한 번 명확히 고백하고 있다. 다음을 보자.

   
  '-이'와 '-히'로 끝나는 부사를 구분하기도 현실 발음을 기준으로는 결정하기 어렵다. [이]로만 소리가 나면 '-이'로 적고 [히]로도 소리가 나면 '-히'로 적는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발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음을 기준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82쪽)  
   

그런데 저자는 "발음을 기준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면서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계속 발음으로 원리인냥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이 책이 다른 기존의 맞춤법 책들과 하등 다를 게 없음을, 아니 오히려 책이 얄팍한 만큼 설명은 더욱 얄팍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으로는 <세상의 모든 글쓰기>를 다루겠다는 이 시리즈의 거창한 포부를 감당하는 기본을 갖추기는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미련한 방법이지만 매번 사전을 찾고 어문규범을 찾아가며 맞춤법을 익혀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이 다시금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끝으로 이 책이 못내 실망스럽지만, 이 책을 읽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한글 맞춤법을 익히고 바로 쓰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이 책의 몇 가지 잘못 된 곳을 교정해야 할 것을 적어두기로 한다.

34쪽 각주에서 편집과정의 실수 같은데, '같이'가 두 번 쓰이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이 책이 꼼꼼하지 못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이런 실수가 이 책의 신뢰도를 무척이나 바닥치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39쪽의 "'젖니'와 '논곱'의 차이"에서 저자는 '젖니'를 '젖이'로, '머릿니'를 '머릿이'로 적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현행 맞춤법 규정에도 어긋하고, 저자 말대로 그다지 합리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실 원래는 '이'가 아니라 '니'였다고 어문 규정집에서도 밝히고 있다. 자칫 저자의 이런 주장이 독자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기에 이런 주장은 저자의 사견임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56쪽 상단의 예문 중에서 '골라라'에 대한 분석으로 '고르-+-어라'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이는 당연히 '고르-+-아라'가 되어야 한다.

86쪽 박스에 닮긴 설명 중 '짧따랗다'는 '짤따랗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102쪽에서 '파생'을 "어떤 말의 앞에 붙어서 새로운 말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파생'을 바르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합성'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합성' 또한 "어떤 말의 앞에 붙어서 새로운 말을 형성"한다. '파생'은 "어떤 말의 앞이나 뒤에 접사가 붙어서, 그 말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더해 주는 것"을 말한다.

147쪽과 154쪽에서 온점을 '마침표'로 반점을 '쉼표'로 부르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그것을 허용하고 있는 사실을 저자는 모르고 있는 듯 하다.

167쪽 상단의 예문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를 들으며 소괄호 사용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잘못으로 보인다. 어문규정 부록의 '문장부호'에 따르면 소괄호는 "(1) 원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쓴다. (2) 특히 기호 또는 기호적인 구실을 하는 문자, 단어, 구에 쓴다. (3) 빈 자리임을 나타낼 적에 쓴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한 예문에서의 소괄호의 쓰임은 이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모호하다. 오히려 대괄호를 사용하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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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1-2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도 많고, 길게 쓰셔서 나름 좋은 책인가 보다 했더니
별이 고작 2개...? 우찌 이런 일이...@@@

순오기 2008-01-2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눈 부릅뜨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님이 쓰신 것 중에
"86쪽 박스에 닮긴 설명 중 '짤따랗다'는 '짤따랗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는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지, 예시가 똑같잖아요! ^^

멜기세덱 2008-01-22 13: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책에는 '짧따랗다'로 되어 있어서요. 이건 '짤따랗다'가 옳은 표기입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야~책이다 2008-02-2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출판사들이 더욱 책임감 있게 책을 출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말의 탄생 -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
최경봉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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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반포 561주년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며칠 전이었다. 5백여년 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이땅에 태어난 우리의 문자는 그 자체로 일대 사건이었다. 28개의 글자로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적어낼 수 있는 문자가 우리 손으로 탄생한 것이다. 음소문자에서 한층더 진화하여 자질문자의 탄생이었다. 과학적이며 논리적 체계로 가장 단순하고 간명하면서 그 소리의 가짓수는 풍부한 문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전에도 우리에겐 말이 있었지만, 훈민정음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 태어남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500여년을 지내오면서 어느덧 전국민의 90% 이상이 문자생활을 영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의 어느 문자도 이렇게 단기간에 최강의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한자를 보자. 기원전 2~3세기에 한반도에 전해졌다고 하지만, 수천년을 지내었어도 그 문자를 아는 사람은 30%에도 지나지 않았다. 로마자는 또한 어떠한가? 그 문자의 역사도 수천년이다. 그러면 그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한글을 아는 이에 못미친다. 사실 한글의 전래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조선왕조 내내 미약하게나마 전달되었을 뿐 그 사용이 전폭적인 것은 아니었다. 언문, 반절이란 다소 저급스런 이름으로 불리우면 아녀자들의 규방에서나, 어린 아이들의 글놀이에서나 쓰여 왔을 뿐, 그 시대의 지배적 문자로 기능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문자가 전국민의 90% 이상에게 사용될 수 있었던 시간은 최근 100년 간의 일이지 싶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말의 제2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화기말 제국열강의 위협속에 시달리던 시절, 일본 제국주의의 먹이감이 되어 강제 합방을 당하게 된 시 시절에, 이 반도의 지식인들은 저마다의 국민 계몽을 꿈꾸었다. 부국강병을 외치기도 하였도, 전 민족적 각성을 외쳤다. 그런 지식인들의 한편에서는 또다른 계몽과 각성의 일환으로 우리말 우리글을 정리정돈하는 일을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조선의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고자 열망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말은 또한번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고, 그 당시의 사전편찬의 과정과 경위를 조사하여 밝힌 저자 최경봉은 말한다. 여기 이 책 『우리말의 탄생』을 읽고 나면, 어느새 저자의 그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말의 제2의 탄생. 그것은 어느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당시 어떤 체계나 자료도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 나라의 말을 총체적으로 수집 정리한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에 다름없다. 그러나 그들은 헤딩하기로 마음먹었다. 각계의 인사들 또한 우리말 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사전 편찬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계파를 막론하고 이 사전의 발간을 후원했는데, 여기에는 최남선의 이름도 보인다. 주시경의 영향을 받은 그의 제자들이 모여 만든 조선어학회를 위시해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한 여러 노력들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의 매우 번거롭고 힘겨운 것들이었다.

각계의 후원과 동조가 있긴 했지만, 일제 강점하의 시기에서 위축될대로 위축된 우리말의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일제시기에 그 사전이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일제의 억압에 의해 일제말기에는 사전 편찬에 치명적인 사건, 즉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 사전 편찬에 각고에 노력을 다한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옥사를 하기까지에 이른다. 우여곡절의 사전 편찬 작업은 이런 사건으로 인하여 그 원고까지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이 숲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해방과 함께 잃어버렸던 원고를 다시 찾으면서 결국은 그 사전이 해방후 빛을 보게된다. 사전은 총 6권으로 10여년에 걸친 작업끝에 완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왜 이런 피나는 노력을 그들은 했던 것일까? 그깟 사전이 무슨 소용이길래 이렇게도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고통을 감수했던 것일까? 그것은 어떤 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종대왕이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듯이, 이 당시의 지식은들도 우리말을 통한 조선 민중의 각성을 통해 다시금 잃어버린 민족과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가히 우리말이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었다. 그것이 민족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이었던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끝내 그 시작을 함께한 이들이 그 사전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대를 이어 결국은 빛을 발하게 된데에는 그들의 이런 정신과 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얼마전 금강산에서 남북의 지식인들이 통일 사전을 편찬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는 어쩌면 우리말의 제3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이 통일사전을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있어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들의 말과 글을 아우르는 이 사전은 또 한 번은 우리말의 탄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반포 561돌을 지내면서 세종대왕의 위대한 유산인 한글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임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우리말, 우리글의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은 일제시기 우리말 사전에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다. 그 노력은 아직 끝나서는 안된다. 통일 사전을 위하여, 우리말이 다시금 새롭게 태어날 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최초의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정신을 되새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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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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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御製訓民正音" 『훈민정음 언해』에는 세종의 서문이 실려있다. '언해(諺解)'란 우리말로 풀었다는 얘기다.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우리말 번역서가 바로 『훈민정음 언해』다. 한문으로 된『해례본』을 우리말로 풀긴 했지만 국한혼용으로 되어 있고, 한자에는 한글로 음을 표기했다. 『언해』의 한자음표기를 되는 대로 읽어보면 대략 "솅종엉졩훈민정음"(고어 표기를 여기서는 하기가 어렵다. '엉'의 첫 소리는 꼭지가 달린 이응(옛이응)이다. 즉, 음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 어떻게 발음할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음'은 여린 이응으로 'ㅎ'에서 위의 한 획을 없앤 것이다. 'ㅇ'과 'ㅎ'의 중간 정도의 발음이지 싶다.)의 코맹맹이 소리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읽으면 "안된다."

이걸 바로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라고 하는데, 오늘날의 한자음대로라면 '세종어제훈민정음'이 된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이상음을 추구했다. 그래서 초성, 중성, 종성을 모두 갖춰야만 했다. 그래서 '세, 어, 제'에 모두 'ㅇ'을 붙인 것이다. 이를 감안하고 읽어본다면 "셰종어졔' 쯤 되겠다. 오늘날 "세종어제훈민정음"인데, 이말은 "세종이 어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제'를 빼고 이해하면 무난하다. 그런데, 문제는 세종이 '어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엊그제 만들었는지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직의 국어교사들은 간혹 말한다. "10월 9일이 무슨 날이지?"라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많이들 잘 모른다고.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이긴 한데, 한글을 만든 날은 아니고, 반포한 날이다. 북한은 1월 15일이 한글날이다.(조선글 기념일) 왜냐하면 이날이 기록상 한글(훈민정음)을 만든 날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가 기념하는 '한글날'이 언제인지 잘 모른다는 것은 좀 찝찝하다. 그 찝찝함의 근저에는 10월 9일이 휴일이 아니란 사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안타까운 것일까? 여하건간에 왜 한글날을 안 노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열린 날(開天) 만큼이나 백성의 눈이 열린 날도 중요할 듯 싶은데, 두 날을 다 놀면 한국 경제가 거꾸러질지 모른다는 우려는 짜증을 나게 한다. 오늘날의 국경일 혹은 기념일은 휴일이 아닌 이상에는 그나마 기억이라도 해주는 배려를 찾기는 힘들지 않은가?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지 올해로 561년째다. 이 날을 기념한 것은 100년도 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가갸'날이라고 불렀다. '가갸거겨고교구규'하던 것에서 앞 두 글자를 따다 붙은 것이다. 이게 몇 해 후 한글날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11월 초였는데, 이 책에 반포일이 9월 상순으로 되어 있어 오늘의 10월 9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이날 저날, 이 이름 저 이름으로 자주 바뀌었지만, 그것은 그만큼이나 이 한글날을 어지간히도 중요히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글날을 놀았던 것이 아닌가?

여기서 "한글날엔 놀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그 업적을 또한 칭송해야 하겠다. 흔히들 세종대왕께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문자를 창제했다느니,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글자라고 치켜주면서 아주 그냥 별발광을 다하도록 요란이지만, 그 요란도 나름 의미는 있다. 나는 그 요란을 떨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날만큼은 세종께 감사하고 싶다. 민중의 눈과 귀가 열린 날, 이 날 한글날은 어쩌면 개천절에 버금갈 소중한 날은 아닐까?

잡설이 길었다. 김슬옹의 이 책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은 이것이 왜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의의, 창제 과정의 우여곡절과 비하인드 스토리, 훈민정음이 있기까지의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 나아가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대한 착실한 해설, 그리고 그것의 보급과 발전의 향로, 한글의 발전성까지를 작은 이 책에 꼼꼼히 담아두고 있다.

대강은 다들 아는 내용이 태반일테지만, 그 숨겨진 뒷얘기들과 보다 자세한 훈민정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재미를 더해준다. ㄱ에서 ㅋ이 나오고, ㄴ에서 ㄷ, ㅌ이, ㅅ에서 ㅈ, ㅊ이 나오는 이 무척이나 단순명료한 원리가 오늘날 디지털 매체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대강 앎의 자세함을 더하게 해주기도 한다. 보다 이 책이 의미를 갖는 것은, 훈민정음에 담긴 다양한 창제 배경과 세종의 노고, 그리고 그의 비전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이름에 그 대부분이 담겨 있지 않은가? 백성을 생각하는 세종의 마음은 오늘날에도 배울 바가 농후하다. 다만 그것이 제왕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서 말이다.

이것이 가히 문자혁명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세종은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으로 당시의 혼란스럽던 한자음을 정리하고자 한 것을 들 수 있다. '바른 소리'란 이름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누구는 모란이라고 읽고, 누구는 목단이라고 읽는 것은 혼란스럽다. 그것을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혁명이 가지고 있는 그 이전 것과의 단절의 성격을 이 훈민정음은 그리 달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세종이 직접 지은 『월인천강지곡』이라던가, 각종 언해본 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즉, 지금까지 사용한 한문에서 한자를 가져오면서도 그것을 읽고 말하기 편하게 훈민정음을 덧쓰는 방법으로 조화를 추구하고자 한 세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이고 우수하며, 뛰어난 문자라는 사실은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주의같은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조심스럽게 우려된다. 저자가 탄식하듯이 서울대 권장도서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들었느니 마느니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좀 우습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이 고서를 굳이 읽은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우리가 쓰는 이 문자의 여러 특성과 장점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우여곡절의 배경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필요하지 싶다.

전세계 상용문자 중 그 창제자가 또렷이 알려진 유일한 문자, 문자 발전 단계상 현재까지 가장 진화된 것으로 인정되는 문자, 21세기 디지털시대에 그 적용력이 단연 돗보이는 문자, 바로 한글이라는 자부심은 가져도 무리될 것은 없겠다는 소리다. 달달달 한자 외우기에 허우적 되고 있었을지 모를 이땅의 수백만 학생들에게 그 공포에서 해방시켜 준 것만으로도 이들이 한글날을 기억해주어야 할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제3세계의 문자없는 나라에 한글을 전수하자는 주장들도 그리 곱게만은 들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소리만도 아닐 것이다. 여하간 한글을 널리 전하는 것은 보람스런 일이다. 소리문자로서의 한글의 우수성은 입증된 상태이기도 하다. 그것이 문자없는 이들에게 쉽게 자기네 말을 적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 나쁘겠는가? 우리말을 쓰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한 말이다. 세종이 대왕인 이유가 비단 훈민정음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훈민정음 하나로도 충분하기도 하다. 그만큼 오늘날 우리를 편하게 쓰고 말하게 해 주지 않았는가? 그래,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여 편하게 하다면 세종이 웃을 일이다.

뒤죽박죽 야밤의 리뷰를 빨리 정리하자. ①한글날 놀자. ②안 놀더라도 좀 기억하고 기념해야 되지 않겠나? 요즘 애들이 10월 9일은 한글날이라는 사실을 한 대 줘박아서라도 알게는 해야지 싶다. ③한글을 좀 널리 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나름대로 귀한 일이다. ④한글이 세계최고니, 뭐니 하는 요란은 좀 자제할 필요가 있고, 한글에 대해 우리가 좀 관심을 가지고 알 필요도 있다. 자 이렇게 정리했으니, 이 책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을 찬찬히 읽어보지 않겠는가? 어느새 12시가 넘어 561년 된 한글날이 되었다. 오늘만큼은 세종도 생각하고, 그가 '어제' 만들지 않고, 오래 전에 만든 훈민정음을 되돌아보자. 이 책은 오늘 읽히어 더욱 값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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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기의 한글, 이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from 리카르도의 정보 꾸러미 상자 2007-10-09 13:27 
    #언어란 욕구의 분출 도구 (예전에도 한자어가 없어져야 한다고 적은적이 있습니다만..) 한자가 없어져야하는이유는.. 언어의 음악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선.. 영어, 또는 알파벳에서 음악이 발달하게된 이유를 생각해볼필요가 있습니다. 영어에는 랩이나 시(현대시), 또는 뮤직컬등의 운율적인 요소들이 많이 발달했습니다. 음가하나하나마다 독립적인 발달로 라임 이라는게 있어서이지요 즉 비슷한 소리의 반복이라든지, 비슷한 문장의 반복이라든지... 그런 영어나..
 
 
심술 2007-10-09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 한글이 세계최고라는 선생님들의 말을 냉소적으로 듣는 반항심 많은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었는데 뉴질랜드 대학 다니면서 우연히 읽은 어느 외국 언어학자 글에서 한글이 현존 글자 가운데서는 가장 과학적이란 대목을 보고는 기뻤어요. 아무래도 외국생활 하면 사람이 애국적으로 되는 거 같아요. 그래도 멜기님의 4번엔 동의해요. 멍석 펴 주면 하던 짓도 안 한다는 옛말이 사실임을 이젠 알므로.

멜기세덱 2007-10-09 00:31   좋아요 0 | URL
동의하면, 추천은 하나 해주어야 합니다.ㅋㅋㅋㅋ

멜기세덱 2007-10-0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글에서 "훈민정음을 만든지 올해로 561년째"라는 말은 좀 수정이 필요할듯하네요. 우리의 한글날 기준이 『훈민정음 해례본』반포일(집필 완성일)인 1446년 9월 상순(음력)이니까, 반포한지 561년, 창제한지 564년(창제일 1443년 12월 30일(음력))이겠네요.

심술 2007-10-09 0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천했시와요.

마늘빵 2007-10-09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념 리뷰군요! :) 참고루 모르는 분들 있을까봐, 한글날은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멜기세덱 2007-10-09 10:28   좋아요 1 | URL
맞아요, 국경일이라죠...
근데, 왜 안 노냐고요? ㅋㅋㅋㅋㅋㅋ

순오기 2007-10-09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책 서평단 신청했다가 미역국~~ 님의 글 읽고 장바구니에 담아 지릅니다!
물론 추천도 확실하게~꽉~~누르고요 ^*^
정말 노는 날 아니라고 한글날도 모른다는 건 너무해요~~ 저는 독서회에서 10월은 한글날 기념하기 위한 도서를 선정하는 것으로 저의 한글 사랑을 표현합니다!
국경일이지만 공휴일이 아니라 놀지 않는 날!

멜기세덱 2007-10-09 10:28   좋아요 1 | URL
저도 미역국~~~먹었어요. 서평단...ㅋㅋ

시비돌이 2007-10-09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지은 다음날의 보고서인가 보군요. '세종이 어제 훈민정음을 지었다'
아, 또 즐찾이 줄겠구나. ㅠ.ㅜ

멜기세덱 2007-10-09 17:55   좋아요 1 | URL
제 즐찾을 줄이시려는 음모시죠?

시비돌이 2007-10-09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구 한글을 반포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멜기세덱 2007-10-09 17:55   좋아요 1 | URL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내신거에요, 지금....ㅋㅋㅋ
 
국어지식 교육론 국어교육연구소 연구총서 6
김광해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7년 8월
평점 :
품절


최근 7차교육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러 '새로운 교육과정'이 공시되었다. 이르면 2009년도부터 8차교육과정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百年之大計"라는 말을 무색케 할 정도로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은 우리나라의 주먹구구식 교육정책이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잘못된 것은 빨리 바꾸는 것이 나은 점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 바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뀌느냐에 있을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입안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는 7차교육과정이 적용되고는 있으나 '새로운 교육과정'이 마련되면서 8차교육과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형성되었다. 여기서의 관심 주제는 국어교육 내에서의 국어지식교육의 현황이다. 국어교육이 실용적 기능교육을 중시하면서 국어지식교육의 비중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7차교육과정상에서 국어지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문법>은 선택과목으로, 이를 택하는 학교가 거의 없을 정도이니, 국어지식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중~고1까지의 국어시간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자꾸 밀려나고 있는 판국이다. 국어교육학자들 가운데는 이러한 것을 대세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논의가 되고는 있지만 앞으로도 국어지식교육의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국어지식교육의 효용과 필요성, 그리고 그것의 효육적인 교육목표 달성의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할 것이다.

김광해 교수는 6차교육과정을 주도적으로 마련한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국어지식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어지식교육의 새로운 방법적 측면을 6차교육과정에 반영하였다. 김광해 교수의 견해가 100%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영향에 힘입어, 그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주입식 교수학습방법에 대한 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 책 『국어지식 교육론』은 6차교육과정에서 일부 반영되었던 국어지식의 교수학급방법 개선에 대한 김광해 교수의 연구성과를 엮은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국어교육에서의 국어지식의 위상과 필요성, 나아가 바람직한 교수학습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국어지식교육이 국어교육에 있어 상호보완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간의 주입식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가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탐구학습을 도입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간의 국어교육 흐름이 실요성 위주의 기능교육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과 아울러 국어지식교육이 소외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면서 그는 국어지식교육이 가지는 "교육적 가치와 필요성"을 찾고자 한다. 그가 제시하는 국어지식교육의 필요성은 '우리말 알기'와 '우리말 가꾸기'로 정리된다. 이것은 "문학영역이나 기능영역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내용"으로써 국어지식교육에서만이 다룰 수 있는 부분이며, 따라서 국어지식은 그 자체로서 필요성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현재 국어지식이 더이상의 외면을 받는 길은 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1부 "국어지식 교육의 전개"에서 이러한 작업을 전개한다. 국어교육과 국어지식교육이 어떤한 관계에서 정립되어야 하며, 그 가운데 국어지식교육이 가져야할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국어지식교육이 국어교육에 있어 어떤 필요성을 지니는가를 그간의 국어지식교육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면서 밝히고 있다. 국어지식교육의 정체성과 필요성을 정립한 후에는 그는 국어지식교육 방법의 방향전환을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단순암기식 주입방법에서 탐구학습에로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탐구학습은 국어지식교육에 있어 보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현재 7차 교육과정상에서 이러한 탐구학습은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실정이며 앞으로 바뀔 교육과정에서도 자기주도적이며 능동적이고 창이적인 방법으로 '탐구학습'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기초를 저자 김광해는 이 책을 통해 다져 왔던 것이다.

제1부에서 탐구학습에 대한 기본적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면, 제2부에서는 그것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제2부 "탐구 학습의 실제"는 국어지식의 다양한 장면에서의 탐구학습 적용 사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례들이 단지 학부생들의 보고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은 보고서라 하더라도 그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고, 탐구학습이 실제의 교육현장에서 적용될 것인 만큼, 학부생들의 보고서는 그 실제적 상황을 제대로 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탐구학습사례들이 그야말로 재판삼판의 일률적인 학습방법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김광해 교수의 '탐구학습'에 대한 실제 사례 연구가 부족했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1997년에 출간되어 현 시점에서는 여실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당시 김광해 교수의 탐구학습에 대한 연구성과는 비교적 신선한 시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부족함은 당시로서는 그 신선함에 상실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국어지식탐구』라는 책을 통해 보다 자료를 보완하고 실제 적용될 사례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실상 탐구학습은 현장에서의 교사가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연구한 후에라야 제대로 시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광해 교수는 지금까지의 연구가 매우 부족함을 절감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례들과 이에 따른 효과적인 자료들이 개발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지금에서는 그 효용이 다 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기초를 마련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사족이지만, 저자 김광해 선생께 한마디 충언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책의 초판이 1997년에 <국어교육연구소연구총서6>로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이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최근으로 보여지는 초판 제6쇄본이 2006년 9월 20일에 출간되었다. 그 기간동안 교육과정은 제6차에서 제7차로 바뀌었고, 지금은 '새로운 교육과정'이 마련되어 곧 제8차 교육과정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에 버젓이 이 책의 초판 그대로를 제6쇄로 찍어냈다는 것은 다소간 저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교육과정이 바뀐 이상 미세한 부분에서나마 수정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앞으로 이 책의 개정판이 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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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0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자! 화이팅.

멜기세덱 2007-09-03 20:32   좋아요 0 | URL
'힘내자'로 순화(<아무 데나 'fighting'? 나랑 싸우자는 겐가?>(http://blog.aladdin.co.kr/criticahn/1122998) 참조) ㅋㅋㅋ
근데 왠 파이팅?

마늘빵 2007-09-03 22:21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저도 그 생각 했습니다만, 영어를 번역한걸로 보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어는 감염되는 것이라고 봤을 때, 이미 콩글리쉬화 해서 우리말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멜기세덱 2007-09-03 23:13   좋아요 0 | URL
하하하. 같은 '하하하'인데 왜 이리도 분위기가 다를까요.ㅋㅋ
감염되는 건 좋은데, 그게 오염이라면 문제가 있지 싶어요.ㅎㅎ 파이팅은 여전히 전투적이니까 말이에요...ㅋㅋ

302moon 2007-09-0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어떻게 바뀌느냐가 중요한데, 과연 결과는 어떨지. 국어가 밀리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합니다. 저는 문법 과목 정말 좋아했는데, 주위 동생들을 보면 많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이 쓴 책은 수시로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안 그런 분들 종종 보이더라고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멜기세덱 2007-09-03 23: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문법도 알고보면 참 재밌는게 많은데요.ㅎㅎ 사실 김광해 교수는 여러모로 바쁘실 거에요. 강의도 열심히 하시고, 연구도 많이 하시고....다만 개정판이 좀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에서 내뱉은 말이구요, 김광해 교수가 바쁜 가운데도 시간을 좀 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랍니다.ㅎㅎㅎ

길손 2007-10-0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해 교수님은 몇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개정판을 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리고 새로 개정된 교육과정은 "8차 교육과정"이란 말 대신 "2007년 개정 교육과정" 또는 그냥 "새 교육과정"이라고 하기로 한 것으로 압니다.

멜기세덱 2007-10-07 22:40   좋아요 0 | URL
이런, 김광해 교수님이 돌아가셨군요. 문법교육에 있어 그 공로가 적지 않으신데....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예, 말씀하신대로 "새로운 교육과정"이라고 한다지요.

들곶 2008-05-1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입니다. 돌아가셨다니 ㅠㅠ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2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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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학 입시에서 본격적으로 논술 평가가 도입되고 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교육정책, 특히 대학 입시 정책은 정책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들쑥날쑥 날림 정책이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평가를 반영하겠다는 논의는 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번 입시부터는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학 입시에 목맨 사람들은 또 난리다. 고3들은 논술학원까지 다니느라 난리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학원에서 논술을 배운다고 난리다. 이 난리의 중심에는 학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야 어쩌겠는가? 날림 정책으로 인해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릴 뿐이다. 학부모들은 논술에 좋다는 학원이니, 과외니 찾기 여념없다. 그도 부족해서 논술에 좋다고 나오는 책들은 죄다들 꿰고 있다. 고3들은 물론이거니와, 중학생, 심지어 멋 모르고 놀아도 될 초등학생들까지 그들 부모들의 열화와 같은 논술 열기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 이 아니 불쌍한가?

최근에 글쓰기 관련 도서들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런 경향을 교묘히 반영한다. 논술에 가장 기본은 '글쓰기'겠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것이어서 대학 입시에서의 논술 평가에는 그다지 실효를 주지는 못 한다. 그러나 이 기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현실이니, 이 맹점을 출판사들이 간파하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게대가 무슨 논술 특효약처럼 선전을 해대니 이런 시류와 더불어 잘 팔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글쓰기 관련 도서들과 함께 '국어학' 관련 도서들도 이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 대부분이 문법, 그 중에서도 맞춤법 등의 어문규정과 어휘, 문장론 등을 다루는 그야말로 문법책이다. 이것들 또한 '글쓰기'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사항이겠다. 그러나 이것들의 홍보전략 또한 그 기본됨의 불과함을 넘어 무슨 논술의 지름길인냥 한다는 데에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문법책들이 이른바 대한민국의 대표 '국어책'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느 국어책이 달랑 '문법' 만을 다룬단 말인가? 말하자면, 이들 '국어책'들은 다분히 사기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기성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이하 『국밥』)가 아닐까 한다.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국어 실력'만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국어 선생도 '국어 실력'이 있어 밥 먹고 산다기에는 좀 어폐가 있어 보인다. 그 선생들이 다분히 '국어 실력'으로 밥 먹고 사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는 어렵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시류에 편승하는 교묘함과 아울러 제목의 이 다분한 사기성은 열 달 만에 나온 두 번째 책 『국밥 - 낱말편2』에 이런 띠지를 하나 달게 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국어책"이는 자랑이 보락색 띠지에 세로로 걸려있다. 앞서도 말했거니와 이 책이 엄밀히 '국어책'은 아니기에 이 자랑 또한 거짓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울러 이 책의 이런 상업적 전략이 얼마나 성공했고, 논술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열기에 찬 학부모, 학생들이 얼마나 우롱당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의 이런 사기성과 거짓말이 애당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올해 초에 이 책 첫 권을 사보게 된 것은, 과연 얼마나 잘 써놓았기에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고 떠벌리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호기심을 씁쓸함으로 마감했지만, 뭔가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 - 낱말편1』리뷰 참조 http://blog.aladin.co.kr/criticahn/1048754) 그 가능성은 '뉘앙스 사전'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어에 대한 연구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미치지 못했기에 이렇다할 만한 사전도 변변치 않다. 거기에 '뉘앙스 사전'에 대한 기대는 가소로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기대에 한 줄기 빛을 주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번째 책을 나오자마자 사들고 읽었던 것이다.

이 책의 상업적 전략에 대한 허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의외의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기에 나는 과감히 별 4개를 주었었고 이번 책에서도 예의 별 4개를 선뜻 주고 있다. 이 책이 분명하게 '뉘앙스 사전'을 표방했더라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리기는 힘들었겠으나, 나에게 별 5개를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나한테 별 5개 받자고 출판사가 '뉘앙스 사전'으로 제목을 바꿀 것은 만무할 것이다. 하여간에 이 책은 '국어책'이라고 보기에는 협소하고, "밥 먹여준다"는 뻥은 너무 지나치더라도, 그 담고 있는 내용인즉 한국어에 있어 아주 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시다'와 '들이켜다'의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들이켜다'의 어감이 '마시다'보다 급하고 강하다. 대부분의 언중들은 이 미묘한 차이를 자연적으로 감지하여 무의식적으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지만, 간혹 이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이런 뉘앙스 사전이 필요한 부분이 되겠다. 미묘한 말의 차이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은 보다 명확하고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가져오게 한다. 이것은 곧 우리의 언어생활은 보다 명쾌하고 풍요롭게 하는 첩경이 된다. '두렵다'와 '무섭다'의 구분도 자못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 언중의 현실이다. 이 둘의 의미차이는 대단히 크다. '두렵다'가 "공포의 원인이 내재"해 있는 것이라면 '무섭다'는 그 원인이 "외부의 사물"에 있다. 이도저도 아니고 다만 '무섭다'로 통일하는 것은 언어 안에 담긴 인간의 사고작용을 무시하는 것이다. 즉 현실의 문제에 대한 그 원인에 대한 사고의 판단이 내포된 의미 자체가 무시되고 획일화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를 궁핍하게 만들고 만다.

'좇다'와 '쫓다'의 심각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결같이 '쫓다'를 '좇는다'. '좇다'는 어떤 것을 "추구하거나 따르는 일"이고, '쫓다'는 잘 알듯이 무엇을 "몰아내거나 추적하는 일"을 말한다. 이 심각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발음의 유사에 천착해 우리는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 무분별함을 줄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뉘앙스 사전'인 것이다.

이런 '뉘앙스 사전'으로써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이 책은 지금까지 2권이 나왔지만, 그 두 권을 통들어도 다루고 있는 낱말이 그리 많지 못하다. 이 점은 사전으로서의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뉘앙스 사전'으로서 쉽고 간결한 설명과 다양한 삽화와 깔끔한 정리, 그리고 재밌게 풀어볼 수 있는 문제까지, 말의 '뉘앙스'를 익히고 연습하기에 아주 유효적절하다. 그래서 이 책이 좀 큼직한, 그야말로 '사전'이라고 부르기에 족한 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이 책까지 두 권이 나와 있으나, 10권까지는 나와야 좋은 '뉘앙스 사전'이 마련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이 책이 왜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면서 '국어책'을 표방했는지는 저자 중 한 명인 김철호의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국밥』은 스무 권까지 쓰는 게 목표다."라는 그의 얘기에서 이 책의 원대한 구상이 '뉘앙스 사전'에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국밥』이 두 권까지 나오면서 '낱말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앞으로 '문장편', '맞춤법', '말소리' 등의 시리즈로 계속 출간될 것이라 예상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 20권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문법책'을 내겠다는 심산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좀 아쉽다. 이 책이 애당초 『국밥』이 아니었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다. 『국밥』인 이상 앞으로 제대로 된 '뉘앙스 사전'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이제 마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20권으로 된 '문법책' 만들겠다는 저자의 가상함에 다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까지 '국어책'이라면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문법책'들이 다들 거기서 거기였던데 반해, 20권까지 찍어내면서 얼마나 제대로 된 '문법책' 만들 수 있을지 좀 의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제대로만 만든다면 20권짜리 '문법책'도 나름 의미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자들이 좀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 좋겠다 싶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권으로는 미미하기에 역량이 허락된다면 이 작업을 꾸준히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쉬움 남으면서 다음편이 아직은 '낱말편3'이었으면 하는 바람가지면서 리뷰를 마친다.

 

* 저자들이 뒷부분으로 가면서 좀 꼼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자나 비문법적 표현이 있어 여기에 적어둔다. 앞부분은 내가 대강대강 빠르게 읽어서 이런 것들을 세밀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뒷부분은 읽다가 확연히 눈에 띄는 것들이어서 이 책을 읽는 뒤의 독자제현들께 알려드리고자 한다.

296쪽의 예문 중에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선 차선으로 붙어."에서 '좌회선'은 '좌회전'의 오자로 보인다.

312쪽 두 번째 단락 세 번째 줄 중간에 "발음이 비슷하면서 느낌이 훨씬 강한"에서 '발음'은 '의미'로 바꿔야 한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발음'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책 뒤 저자들의 말 중 <김철호가 김철호를 말한다>의 첫째쪽 밑에서 7번째 줄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한층 깊여주기도 했다."에서 '깊여주다'라는 말은 비문이다. 저자는 "깊게 해 주다"는 의미로 "깊여(이어)주다"를 쓴 듯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동을 쓰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한층 깊게 해 줬다."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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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2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실력이 밥을 안 먹여주죠. 크흑... 슬퍼요!

멜기세덱 2007-08-24 09:51   좋아요 0 | URL
그것이 그닥 슬픈 일은 아닌거 같아요.ㅎㅎ 말 잘하면 좋을 때가 많으니깐, 어데가서도 국밥 한그릇을 얻어먹을 수 있겠죠...ㅎㅎㅎ
그러면 또 밥 먹여 주는 게 되네....ㅎㅎ 크흑...슬퍼요!

비로그인 2007-08-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리뷰 ^^/

멜기세덱 2007-08-24 09:56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사람 ^^/

나무하나 2007-10-1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저의 생각과 비슷하군요^^반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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