關關雎鳩(관관저구), 관관하며 우는 물수리는

在河之洲(재하지주), 황하의 모래톱에 노닐고

窈窕淑女(요조숙녀), 어질고 품위 있는 아가씨는

君子好逑(군자호구). 군자의 좋은 짝일세.

參差荇菜(참치행채), 크고 작은 마름풀을

左右流之(좌우유지), 이리저리 찾고

窈窕淑女(요조숙녀), 어질고 품위 있는 아가씨를

寤寐求之(오매구지). 자나깨나 구한다네.

- 『詩經』「관저(關雎)」편 첫 연.(김영 역)

물수리도 꽌꽌거리며 제 짝을 찾고, 정답게 모래밭 위를 거닌다. 남아가 장성하여 군자가 되어서는, 좋은 배필을 찾아야 하는 법. 저 들밭에서 이리저리 잘잘거리며 마름풀을 따는 처자들 중에, 군자의 배필이 될 요조숙녀는 누구일까?

누구일까? 『시경』의 이 「관저」편 첫 머리가 오늘은 유난히 새삼스러운 것은, 어느덧 나도 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關關雎鳩(관관저구)'가 더욱 벅차게 맴돌고, 나의 짝은 누구일까? 어디에 있을까? 이러다가 '오매' 단풍 들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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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8-01-1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이 시는 처음 고등학교 입학한 1학년 국어교과서 화랑의 후예에서 처음 배웠는데, 그때 참 옛날 사람들은 사랑노래도 참 멋스러웠구나 싶었다죠. 멜기님은 군자시니 요조숙녀만 있으면 될 터인데 마름풀 밭을 잘 살피셔야겠습니다.ㅎㅎ

멜기세덱 2008-01-07 23:52   좋아요 0 | URL
국어교과서에 그런거 있었어요? ㅎㅎ 근데, 그게 요새는 풀밭 찾아헤매면 아무도 없어요...ㅋㅋㅋ

로렌초의시종 2008-01-07 23:59   좋아요 0 | URL
예~ 요즘 가르치는 애들 교과서 보니까 빠진 것 같더라구요. 저희 6차 교육과정 때는 있었어요. 김동리 씨가 쓴 소설이었어요.(작가가 너무 구닥다리라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시를 읊었던 작중 인물(문제집 식 표현;;)은 별로 매력없었는데, 시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바람돌이 2008-01-0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노골적인 구애시가 시경에 있나요? 시경이 가지는 무게감과 안어울리긴 하지만 오히려 신선해서 좋네요. ㅎㅎ 멜기세덱님도 올해는 그럼 단풍들기전에 짝을 찾으시기를 바랄게요. ㅎㅎ

멜기세덱 2008-01-07 23:59   좋아요 0 | URL
시경이라는 게 당시 민가에서 불려지도 노래들을 채집하여 기록한 것들이 160여 편이라고 합니다. 이것 외에도 서정시들을 많이 담고 있죠. 특히나 공자는 이 관저편을 일러 "樂而不淫(낙이불음), 哀而不傷(애이불상).", 즉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낙이불음, 애이불사의 지극한 서정을 시경을 통해 맛보는 것도 운치가 있지 않을까요? 무게감을 조금 덜어내셔도 좋을 것 같아요.ㅎㅎ

이매지 2008-01-0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에는 멜기님의 짝을 꼭 만나시기를! ㅎㅎ
멜기님의 짝은 왠지 엄청난 포스를 가진 분이실 듯. :)

멜기세덱 2008-01-08 00:00   좋아요 0 | URL
그래야죠....
근데, 이제 저는 버리시는 건가요? ㅋㅋㅋ
글구, 저는 '엄청난 포스'를 감당 못해요...ㅋㅋ

이매지 2008-01-08 21:39   좋아요 0 | URL
아. 이 때 포스는
지와 덕을 겸비한 분이예요 ㅎㅎ
그나저나 전 멜기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ㅋㅋ

깐따삐야 2008-01-0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씨를 총각으로 바꾸고 군자를 깐따삐야로 바꾸면 완전 제 마음이네요.^^;

멜기세덱 2008-01-08 00:07   좋아요 0 | URL
ㅋㅋ, 뭘 새삼스레 찾으시려고....ㅋㅋ
너무 멀리서 찾지 마세요..ㅎㅎ

다락방 2008-01-08 12:49   좋아요 0 | URL
아가씨를 총각으로 바꾸고 군자를 다락방으로 바꾸면 완전 제 마음이네요.^^;

멜기세덱 2008-01-08 21:44   좋아요 0 | URL
이러면 되겠네요, 총각을 멜기로 바꾸면 만사오케이...?

다락방 2008-01-08 22:00   좋아요 0 | URL
아, 네. 그렇군요.
만사 오케이. 후훗


하하하하

2008-01-08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8-01-0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그만큼 외롭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거에요. 공개적인 구애뻬빠닷.

멜기세덱 2008-01-08 10:06   좋아요 0 | URL
오호ㅡ, 통재라, 군자의 마음을 소인이 어찌 알리요. ㅋㅋㅋ

무스탕 2008-01-0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조숙녀분 찾으시거든 꼭 자랑하세요~ ^^

멜기세덱 2008-01-08 10:07   좋아요 0 | URL
누가 뺐어갈까봐, 꼭꼭 숨겨둘래요...ㅋㅋ

웽스북스 2008-01-0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조숙녀가 저런 뜻이었군요- 나는 왜 요조숙녀 뜻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을까 (요조숙녀 하면 괜히 김희선이 젤 먼저 떠올라서 ㅎㅎ)

멜기세덱 2008-01-08 21:45   좋아요 0 | URL
그런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죠? 姚(예쁠 요)를 써도 좋을텐데...ㅋㅋ

순오기 2008-01-0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오매 단풍들것네~~는 영랑생가에 가면 절로 나와부러~~~~~~~~ㅋㅋ

멜기세덱 2008-01-08 21:47   좋아요 0 | URL
김영랑 생가가 어디였더라? 그런데 막 구경하고 다니면 참 좋겠는데요.ㅎㅎ
일단 요조숙녀부터 먼저 구하고요...ㅎㅎ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어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갈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 1939년 8월 作, 시집『오랑캐꽃』에 수록
(윤영천 편, 『李庸岳詩全集』, 창작과비평사, 1995. pp.95~6.)

이 시의 배경은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시절에 '북간도'의 어느 허름한 술막이다. 매서운 추위에 발을 얼리며 두만강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와, 석 달 전 바로 그 두만강을 먼저 건너와 이제는 이름없는 술집 작부로 전락한 "전라도 가시내"가 주인공이다.(윤영천 편, 같은 책, p.232. 참조) 1939년이란 시대의 암울을 생각해 보면, 이 시를 읽는 내내 엄숙해져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용악의 연애감각을 소홀히 할 수 있다.

추운 겨울 두만강을 남몰래 건너와 북간도에 이르러 피곤하고 고통스런 몸이라도 녹이려 어느 허름한 술막에 들어선 '함경도 사내'는 전라도 말을 쓰는 가시내, 이 술막의 작부에게 눈길이 간다. 보아하니 이 가시내도 저 먼길을 걸어 두만강을 건너 질긴 목숨이어가며 이 술막에 들어온 것이리라. 말하자면 동병상련. '까무스레한" 얼굴의 전라도 시골 가시내지만 어딘지 마음이 끌린 이 '함경도 사내'는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느냐는 의뭉스런 말로 수작을 부린다. 너의 눈은 "바다처럼 푸르"구나. 이 전라도 가시내는 '함경도 사내'의 이 고단수의 수작에 빙긋 웃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쳤다면 고작 술 한 잔이나 이 어여쁜 '전라도 가시내'에게 받아먹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함경도 사내'는 고단수다. 척 보면 딱이다. 이 가시내의 '까무스레한' 얼굴에도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이 가득하다는 것을. 이내 '전라도 가시내'는 이 사내에게 손목이 잡혀 힘없이 옆에 주저앉아 그 살아온 내력을, '가난한 이야기'를 눈물 반, 술 반으로 풀어낼 것이다.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메이자"는 이 당돌한 사내의 말 한 마디로 가슴속 응어리진 사연들을 풀어내고, 이내 옷고름 마저도 풀었을 것이리라.캬~

'전라도 가시내'가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분명 울긋불긋 온 산마다 단풍이 든 가을이다. 추운 겨울 북간도의 밤깊은 술막에서 가시내는 이내 고향산천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라 울먹이지 않았을까? "울 듯 울 듯 울지 않"으려고, 진한 농도 걸고, 슬그머니 손도 잡는 이 사내에게"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를 보였던가 보다. '함경도 사내'의 이 고단수의 수작은 끝내 성공하지 않았을까?

'전라도 가시내'의 사투리를 어설프게 써가면서 농도 주거니 받거니,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던 옛시절로 잠시잠깐 돌아가게 해 준 이 '함경도 사내'에게, 그 날 밤은 누구에게도 풀지 않았던 옷고름이며, 살짜기 눈물을 닦아내던 '초마폭'도 이내 풀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도 하룻밤. 추운 겨울 새벽 북간도의 술막의 어느 뒷방에서 문을 열고 초라한 사내가 무덤덤히 나와, '노래도 없이', '자욱도 없이' 얼음길을 걸어가는 풍경. 이 둘의 하룻밤 사랑은 꽤나 아름답지 않은가?

이 겨울날, 서른 즈음에, 이용악의 이 빼어난 시를 읽으며, 그 '함경도 사내'의 고단수의 수작을 이내 부러워하며, 잠도 오지 않는 새벽을 달랜다. 아, 나의 '전라도 가시내'는 어디에 있을까? 경상도 가시내도 좋고, 경기도 가시내도 좋을 것이다. 아무렴, 서울 깍쟁이는 어떠랴. 어느 가시내일지 모르지만, 나도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그래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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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2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멜기님의 멋진 해석에 아지매가 첫 흔적 남기는게 미안시럽구만유~~ ^^
멜기님의 '전라도 가시내' 빨리 만나기를 기원하며...... 아자아자!!
 

일요일 저녁 인천의 영풍문고에 심심해서 들렀다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매장 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시집 서가에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한국어 번역본을 보고 냉큼 집어들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이 책은 2003년에 출간된 것이니 그간 몇 차례 내 눈길로부터 외면 당하긴 했을 것이다. 그러던걸 냉큼 집어들어 사오고 보니, 올해가 『악의 꽃』출간 150주년이란다.

 

 

 

 

 

<인하대학신문> 제1088호(2007년 12월 10일)에 실린 인하대 프랑스문화 전공 이계진 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야 안 사실이다. 신문 한 면 전체에 큼직한 보들레르의 초상과 함께 꽤나 길게 게재된 이 글을 스크랩한다. 아무래도 이계진 교수가 나름대로 프랑스문학의 권위자이니만큼 그의 보들레르 읽기의 조언을 따라 올해 마무리를 이 책 『악의 꽃』으로 해보면 어떨까한다.

 

살아있는 '보들레르의 신화'
『악의 꽃』출간 150주년을 맞아

이계진(인하대 교수 · 프랑스문화)

‘세기의 시적 성서' 또는 ‘상징주의의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1857년에 출간되었을 때, 그 시대의 누구도 이 시집의 진정한 가치와 위대성을 알아보지 못 했다. 시인이 "몹시 친애하고 숭배하는 나의 스승이자 친구"라 부르며 시집을 헌정한 테오필 고티에 조차도 그 독창성을 미처 간파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출간 150주기를 맞는 『악의 꽃』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찬연한 빛을 발하는 인류의 빼어난 정신적 유산, 시의 앞길을 비추어주는 ‘등대'로 살아남아 있다. 

특히 올해에는 보들레르를 기리는 전시회, 연극공연, 콘서트, 시낭송회, 국제 학술 심포지엄 등 각종 행사가 파리를 비롯해서 지방도시에서도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어, 보들레르가 몽파르나스 무덤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이다. 

『악의 꽃』을 최초로 출판한 당시의 전위적인 출판인 오귀스트 풀레 말라시(Auguste Poulet-Malassis, 1825~1878)의 고향 노르망디의 알랑송 우체국에서는 보들레르와 풀레 말라시의 초상을 그려 넣은 기념우표를 발행하는가 하면, 「악의 꽃 출판 150주년 기념 도서전」(6월 23~10월 14일), 「벌거벗은 내 마음」이라는 보들레르의 내면일기 제목을 그대로 살린 연극공연(9월 9일~10월13일), 「저녁의 하모니」(이것 역시 보들레르의 시 제목임) 콘서트(6월 29일)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조명을 비추고 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프랑스 근현대 시 문학사 뿐만 아니라, 전세계 시문학사에 끼친 역할과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각국의 수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속속들이 밝혀진 바 있다.

마르셀 레몽의 명저 『보들레르에서 쉬르레아리즘까지』라는 제목 자체가 가리키고 있는바, 보들레르의 출현을 현대시의 기점으로 정하는 데에 문예사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레몽의 다음과 같은 명쾌한 지적은 보들레르가 현대시의 흐름의 수원(水源), 그 지점에 위치해 있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시인임을 확인케 한다.

   
  『악의 꽃』이 현대시 운동의 근원들 중의 하나"로서, “거기서 흘러나온 첫 번째 흐름은 〈예술갠의 줄기로서 보들레르에서 말라르메로, 그리고 다시 발레리로 이어지며, 다른 하나의 흐름은 〈견자〉의 줄기로서 보들레르에서 랭보로 그리고 다시 모험을 찾아 떠나는 최근의 시인들에게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대시의 흐름의 저수지에 해당하는 『악의 꽃』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악'에서 ‘아름다움'을 추출하고자한 ‘현대성'의 시인인 보들레르의 독특한 상징시학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삼라만상이 상형문자로 되어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보들레르의 우주관은 1840년경부터 그의 사상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 사상가들이나 신비주의 작가들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독일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으로부터 소리와 향기가 서로 화답하는 공감각 체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라바테르와 스웨덴보르그로부터 이끌어낸 ‘유추'라는 추상적 개념에다가 ‘상징'과 ‘상응'이라는 보다 직접적으로 시적인 이론을 결부시킨다. 보들레르는 또한 「낭만주의 예술」이라는 글에서 라바테르와 스웨덴보르그를 직접 언급하면서 자연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정신계에 있어서도 상응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다 뚜렷이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들레르가 이들 신비사상가들이나 신지학자(神知學者)들로부터 ‘철학적으로' 영향을 받아 상징의 시학을 수립하게 된 것으로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는 어디까지나 시인인 만큼 상응의 이론을 ‘철학적으로' 또는 ‘이론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어둠처럼 빛처럼 광막한 / 어둡고 깊은 통일성 속에서 / 아스라이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 /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답하는" 우주적 교감의 세계를 「상응」이라는 한 편의 소네트를 통해 노래한다.

보들레르의 이러한 상응의 이론은 그의 주목할 만한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외계의 자연을 “아날로지의 거대한 저장고, 일종의 상상력의 자극제"로 간주한다. 

그는 눈에 보이는 자연세계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가시적 세계는 시인의 상상력이 그것들에게 제각기 알맞은 자리와 가치를 부여하기를 기다리는 이미지와 기호들의 저장고일 뿐이며, 그것은 상상력이 먹어서 소화하여 다른 것으로 변용시켜주지 않으면 안 될 일종의 목초지인 것이다."

이와 같은 독특한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보들레르의 상응의 시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해서 『악의 꽃』의 시편들에 접근할 때에야 비로소 그것들의 놀라운 상징구조와 깊은 아름다움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악의 꽃』은 1857년의 초판에는 서시를 포함하여 101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고, 1868년의 제 2판에서는 제2부 「파리풍경」이 추가되어 126편을 수록하고 있으며, 1868년의 제 3판에는 151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그것의 분량만으로 따진다면, 빅토르 위고의 엄청난 시적 생산량에 비해 상당히 빈약한 편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교하기 짝이 없는 의미구조와 절묘한 음악성을 자랑하는 한편 한편이 뿜어내는 눈부신 광채 앞에서 독자는 커다란 시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악의 꽃』은 언뜻 보기에 각각 다른 의도와 발상, 그리고 개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독립적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기울여 살펴보면, 치밀하게 계산된 시인의 의도에 따라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구조물이 되도록 배열함으로써 장대한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서사시(la poesie epique)의 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들레르 자신이 1861년판에 대해 비니(Vigny)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에 대해 내가 바라는 유일한 찬사는 이 책이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사실에서, 『악의 꽃』의 구성에 ‘계산된 도면'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1부 「우울과 이상」, 제2부 「파리풍경」, 제3부 「술」, 제4부 「악의 꽃」, 제5부 「반항」, 제6부 「죽음」으로 전개되는 여섯 단계의 과정을 하나의 기나긴 내적 드라마의 ‘여정'으로 봄으로써, 그 각각의 시편이 갖는 독립적 의미와 함께 전체적 통일성 안에서의 맥락과 의미망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이중인간이 갖게 되는 두개의 동시적인 청원, 즉 상승에의 욕망과 하강에의 욕망에 긴밀히 대응되는 시군(詩群)의 배열양상을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시인의 이상세계로의 도피의지가 어떻게 시도되고 좌절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이라는 단 한권의 시집으로 세계 시문학사를 제패해 버린 불멸의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20세기의 시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 아폴리네르, 폴 발레리, 폴 클로델, 생 종 페르스, 앙리 미쇼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생존해 있는 프랑스 최고의 시인으로 지목되는 이브 본느푸아와 미셸 드 기 같은 사람도 보들레르의 혈통을 이어받은 빼어난 상징주의의 후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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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旗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어느 20대의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의 주인공은 청마 유치환이었지만, 또한 오늘 내 20대 끝자락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바람이 부는 날, 마음은 산란해지고, 거리에는 수많은 이들이 거닐지마는, 내 그 그리운 얼굴은 없으니,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旗빨」)은 공중에 깃발처럼 달릴 수 밖에.

내게 이 그리움은 공허한 그리움이다. 그 그리운 얼굴 조차 없는 그리움. 정말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어 있는 것이냐? 꽃이 아니어도 좋으니, 한갓 잡초여도 좋으니……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이는 40대의 「그리움」이다. 유치환, 그의 그리움은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인고(忍苦)와도 같은 사모에 차라리 목숨을 내맡겨 놓"(『구름에 그린다』, 경남, 2007.)고 있다. 파도야! 어쩌자고 이 가을날 이 가슴이 한없이 출렁이고 술렁이느냐. 어쩌란 말이냐. 어쩌자고 나는, 이 중년의 그리움 담은 한탄에 더 절감하는 것이냐. 어쩌자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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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유치환

 

마침내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무량한 안식을 거느린 저녁의 손길이
집도 새도 나무도 마음도 온갖 것을
소리 없이 포근히 껴안으며 껴안기며―

그리하여 그지없이 안온한 상냥스럼 위에
아슬한 조각달이 거리위에 내걸리고

등들이 오르고
교회당 종이 고요히 소리를 흩뿌리고.

그립고 애달픔에 꾸겨진 혼 하나
이제 어디메에 숨 지우고 있어도.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귀를 막고―

그리고 외로운 사랑은
또한 그렇게 죽어 가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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