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 기독교가 정신을 못 차렸나보다. 하긴 애초에 한국 기독교는 정신을 차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혀서는 자기들만이 지고지선이었으니 말이다. 그간의 세찬 몰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떳떳이 버티더니, 언제 맞았나 모르게, 요샌 더 발광을 하는 듯 하다. 가만 보면 이들이 이러는 데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하늘이 아닌 다른 데) 있는 것도 같다.

먼저 내가 서두에 "(우리) 기독교"라고 가로 안에 살포시 '우리'를 집어넣은 데에 대한 의도를 밝혀야겠다. 나 자신 '심정적'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교회=기독교'가 된 지금 겉으로 난 기독교인이 아닐지 모르지만, 어려서는 교회를 다녔고, 몇 년 전부터는 여차저차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지금도 나는 여저히 심정적으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멋진 말을 생각해 놨는데, 그게 바로 "다원적 기독교"라는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내 종교를 물을 때 '기독교' 앞에 꼭 이 수사를 붙여 대답하는 버릇이 생겼다. 멋지잖은가? 기독교가 다원적일 수 있다면.

참 세월이 하수상해서 100일이 100년 같다는 자조섞인 우스개소리도 나오는 판국이다. 나 조차도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아프간에서 피랍되고 살해된 사건이 언제적 일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가 무진장 욕을 먹었다. 자성의 목소리도 분명 있었다.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 방식에 대해 여러모로 문제가 제기되었고,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내가 볼 때, 이때의 기독교 비판이 기독교의 총체적 문제들을 건드리지는 못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렇게 발광하는 몇몇 인사들이 살아남아 있는 것은.

이후 우리의 '공영방송' 문화방송에서는 이 기독교(특히 개신교)의 오랜 문제였던, 세금, 탈세, 족벌체제, 세습 등의 문제를 추적 보도하면서, 한국 교회들에 공격을 가한다. 여론은 급격하게 달아오르고, 내가 볼 때 한국 교회는 찍소리 못하고 KO 직전까지 간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 대형교회, 특히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 일부의 문제로 치부되면서 오래지 않아 유야무야된 듯 하다. 순복음교회의 다소간 쇼맨쉽 덕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국 여기서도 살아남았다. 삼성의 쇄신책은 어쩌면 순복음교회의 전례를 따온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그때 조용기 목사도 좀 쇄신한다는 뜻에서였는지 은퇴를 선언했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요새 들리는 소식으로는 조용기 목사가 신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에 일선으로 되돌아올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이들은 다시 살아 남았고, 어느새 이것도 좀 잠잠해졌다.

그러는 사이에, 리처드 도킨스 등의 저작들이 유명세를 탔다. 아프간 피랍, 문화방송의 기독교 비판 등과 더불어 기독교(나아가 종교)의 허구를 논리적으로 문제삼는 도킨스의 저작(특히 『만들어진 신』)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면적이 되지는 못했던 듯 하다.

일련의 기독교 문제들은 최근에 생겨난 것이 전혀 아니다. 말하자면 고질병이랄 수 있는데, 좀체 그것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일부 기독교 지배층들의 고도의 정치적 수단의 강구로 말미암아, 유야무야되어 온 것이다. 한국 기독교 초기의 부흥의 물결 속에 성령이 불같이 강림하사 온 천하에 예수천국이 건설된 것만은 아니다. 성령의 강림도, 부흥의 물결도, 간혹 정치적 유착의 구름과 배를 타고야 가능했던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이 단지 신앙의 힘만으로 가능했다고 주장할 사람은 여전히 살아남아 발광하는 그들뿐일테다.

문제는 알게 모르게 작동해온 기독교의 정치적 유착관계가 드디어 본격화(상스럽게 말하면 '대놓고')가 뻔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그간의 기독교 비판은 전혀 아랑곳없이 대담하게 말이다. 그 기점으로 본다면 바로 장로 대통령의 탄생 전후라고 보여진다. 온갖 기독교를 가장한 무리들이 절실히 장로 대통령을 염원했고, 마침내 거룩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장로 대통령이 탄생했다. 마치 무슨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의 등장처럼 그들은 가열차게 기뻐했다.

이전에도 기독교의 몰지각한 정치적 행태들은 여전했었다. 지극히 친미적이고 반북적인 이념의 불쑤시개를 휘젖어 왔던 그들이, 드디어 정권을 잡아 쏟아내놓는 배설물들이 온 세상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쯤해서 그들은 두 가지를 믿는 것이 드러났다. 하나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삼위일체 포함)이고, 또 하나는 이 땅을 하나님께 봉헌할 장로 대통령이다. 장로 대통령의 자신의 제사장들을 몇몇 내각에 포함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진 해도 최근의 촛불집회가 정치권 일각에서 그 배후를 의심받아 오다가, 그것이 터무니없는 소리임이 판명나서, 그들도 말을 바꾸었다. 그런데 다시 장로 대통령의 호위부대를 자처하는 장로 대통령의 제사장들이 나서서 다시 배후론을 조장한다. 말이 좋아 배후론이지, 이 배후론은 '사탄론'으로 결집된다. '사탄론' 일파만파. 친북, 좌파, 용공으로 안 돼서, 허공을 떠도는 사탄이 배후라는, 전근대적 발상, 아니 고대 토테, 애니적 발상으로 무장한 제사장들이 장로 대통령의 친위부대를 자처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수십만에 달하는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조 목사를 필두로 감리교의 수장격이 김 목사, 장로 대통령의 내각에 입각한 추 목사 등이 그들이다. 말하자면 기독교(일부 대형교회 개신교) 무리들을 결집해 장로 대통령을 호위하자는 계산일 게다. 어쩌면 이들은 개신교 VS 비개신교의 싸움으로 현 정국을 몰아갈 심산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쪽수에서 밀리는 개신교는 발악을 하다가, 결국 안되면 종교 탄압으로 몰아갈지 모르겠다. 여하간 이들이 지켜야 할 것은 이땅을 봉헌할 장로 대통령일 따름이다.

한국 기독교(특히 개신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전략은 크게 밀착화, 정치화, 특성화(차별화)라고 생각된다. 나라 곳곳,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이것저곳에 붉은 십자가를 밝히며 그물망처럼 온 땅에 기독교를 퍼트리는 이들은 사람들과 가깝게 밀착해왔다. 이것은 정치적 유착을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타 종교와 좋게 말해 특성화를 해왔다. 말이 좋아 특성화는 이것은 지극히 극단적인 차별화였다. 천주교도 이단이고, 불교도 이단이고, 지들과 다른 것은 죄다 '틀린 것', 바로 이단이었다. 이단은 처부서야할 대상일 따름이다. 기독교에서 열성적 부흥성회에서 불려지는 노래 중에는 이런 노랫말도 있다.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원수를 완전히 물리쳐서 승리를 외치며 찬양하세" 어쩌구 하는 노래다. 좀더 강렬하게 개사를 해서 부리기도 하는데, '물리쳐서'를 '밟아 어쩌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결국 그들을 사랑으로 포용하라고 한 것인데, 이 노래는 좀 문제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기독교 내에서도 좀 기피하는 모양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의 기독교 행각은 지극히 이 노랫말 대로다.

그렇잖은가? 촛불집회에 모인 사탄들. 그들은 밟아 없애야할 못된 것들일 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염력은 지극히 커서 이들의 말 한마디에 목숨도 내걸 신도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발언을 있는 그대로 '아멘'으로 받아드시는 신도들이 수십만에 이른다. 이들은 성령의 전신갑주를 해입고 사탄과 전투에 임해, 가히 일당백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태세다. 이들을 촛불집회에 모인 사탄들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개신교의 순한 양들을 매도하자는 목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나도 강력한 염력을 발휘하시는 조 목사, 김 목사 들일 뿐이다. 결국은 그들을 끌어내려야 이 나라 기독교가 바로 설 것이다. 여태까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올곧이 그들이 감내했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들이 여전히 살아 발광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닌가?

나는 그래서, 최근 조중동과 관련하여 일고 있는 불매운동이 이 몰지각한 기독교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 목사, 김 목사 등이 쥐고 있는 일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불매운동, 이른 바 불신운동으로 이어져서, 그 정권에 아부하는 몰지각한 목사들을 끌어내릴때까지 끝없이 기독교 불매/불신 운동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기독교 비판, 개혁 운동을 유야무야로 만든 가장 큰 인식은, 그것이 기독교 일부의 문제일 뿐, 기독교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 일부로 인해 기독교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꾸 일부로 축소하고, 작은 문제로 치부하면서 곪아터져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곪아 터져서 온 몸으로 번질 지경인데, 어찌 이게 기독교 전체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전신마취를 하고 응급수술에 들어가야할 지경이다.

아마도 일부는 비판받는 그들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아닐까?(최근의 기독교장로회 등)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싸잡아서 욕먹어야한다.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맴돌고 있는 판국에 내부의 목소리가 잘했다고는 못할 것이다. 큰 세력을 형성한 이들의 무리가 너무 거세고 무섭겠지만, 죽을 각오로 이들은 싸웠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사회를 이처럼 골병들게까지는 막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는 당시 이런 무리들을 일컬어 욕설을 퍼부었다. 당대의 통치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구분짓고자 하기도 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란 유명한 말이 성경이 있잖은가? 가이사과 유착하는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에 의해 비판받았다.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종의 불매운동과 어쩌면 맥을 같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로 대통령의 호위부대를 자처하는 일부, 그러나 거대한 기독교 세력에 대해서 이제 예수처럼 강력하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을 때는 아닐까? 욕하면 우리 입이 더러워지니, 좀 효율적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특히 대형교회)에 대한 불매운동, 불신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촛불문화제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촛불집회, 촛불시위로 염연히 불리우고 있다. 그러면서 미친소에 대한 반대의 한 목소리는, 현 정권의 무식한 정책들에 대한 반대, 나아가 정권의 퇴진을 주창하는 목소리까지 가세하고 있다. 조중동에 대한 비판, 절독, 그 신문들에 광고를 내는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불신 불매 운동과 구호가 여기저기로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하나를 더 추가해야할 것이다. 기독교 불매/불신 운동이 그것이다.

염려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언제나 순전한 기독교가 싸잡아 욕먹는 것이긴 하다. 구분하자면, 한국의 대형교회들, 헛소리하는 목사들, 뉴라이트라고 뻘짓하는 인간들에 대한 불매/불신 운동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책임은 순전한 기독교(기장같은)에 있다. 이들은 불순한 기독교에 차별화되는 닉네임(혹은 프레임)을 개발해야할 것이다. 싸잡아 욕먹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기독교가 거듭나는 마지막 방법의 해법이 이 촛불집회에 있다. 촛불집회는 이제 엄연한 종교개혁 운동으로 우뚝섰다. 그랬으면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비돌이 2008-06-10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순오기 2008-06-10 05:35   좋아요 0 | URL
~~ 아멘!

마늘빵 2008-06-1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2008-06-10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