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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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요, 판타."로 시작되는 소설은 "······ 판타, 어서 일어나요."라는 포치타의 대사로 끝난다.
이 시작과 끝은 가정의 평화를 알려주는 메시지라서 읽는 동안 웃다가 울던 독자의 마음마저 평화롭게 하는 힘이 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새 엄마 찬양'이라는 당황스런 작품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책을 읽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이다.

평생 도덕군자로 살아온 성실한 군인 판탈레온 판토하에게 새로 부여된 임무는 아마존에 주둔하는 페루의 젊은 군인들의 무분별한 성욕을 해결하는 것...
아마존 일대의 마을 여인들이 남아나지 않고, 심지어 원숭이까지 덮치는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억제 시킬 것인가, 해소시켜 줄 것인가?
일급비밀에다가 민간인 복장이어야 한다는 조건부 명령 때문에 자신의 업무를 아내인 포차와 어머니 레오노르 부인에게까지 숨기고 시작하는데...
그는 특별봉사대라는 비밀 부대를 조직하고, 지역 포주 등의 협력을 받아 최초 네 명의 창녀를 고용하는 절차를 밟으며 일급비밀 문서로 상부에 보고하고 허락을 받는다.
매우 엄격하게 규율을 만들고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던 판토하는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위해 차츰 봉사대원 수를 보강시켜 나간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매번 비밀문서로 리마의 본부에 보고되고, 더 나아가 병사들의 성욕을 억제시키기 위한 식단에도 관여 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그 순진했던 판타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매우 흡족스런 활약으로 상부의 신뢰를 쌓아 간다.

충원 과정 중에 미스 브라질이란 별명을 가진 올가 아레야노라는 최고의 상품(?)을 접수한 그는 이때부터 심사과정에 자신의 물건으로 직접 면접(?)을 보는 등 나날이 업그레이드 된다.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특별봉사대를 이끌며 밀림의 젊은 군인들의 성욕을 바로 잡아 민간의 평화를 정착시킨 그는 어느새 아내를 배신하고 올가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버린다.
지역 라디오로 부터 공격 당하면서도 비밀유지 서약 때문에 침묵하는 판타와 그런 남편의 업무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올가와 바람난 남편에 실망하고 떠나는 아내 포치타...
아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간 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올가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단지며 업무를 즐기는 판토하...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해요. 판티타?" 미스 브라질은 앉아서 세면대에 물을 채워 물과 비누로 씻고 옷을 입는다. "틀림 없이 봉사대원 한 명 이상이겠죠? 후보자 시험이 있으면 셀 수 없을 거고요. 당신 습관으로 보건대······ 그런데 그걸 뭐라고 부르죠? 전문가 검사라고 하나요? 당신은 정말 얄궂어요." "그건 유흥이 아니라 업무야." 판타는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 앉아 다시 기운을 차리고는 발을 질질 끌면서 변기로 가서 오줌을 눈다. "웃지 마. 사실이야. 게다가 그 모든 잘못은 네게 있어. 네 육체를 검사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그전에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어. 이렇게 하는 게 쉽다고 생각해?"
(260쪽)

어느 날, 군부대에서 활약하는 질 좋은 창녀들과 즐기고 싶었던 이키토스 청년들에 의해 일군의 특별봉사대원들이 납치되어 인질극이 발생하는데...
그 와중에 구출하러 간 군인들의 총격을 받은 미스 브라질 올가가 사망하고, 봉사대는 큰 위기에 봉착한다.
판텔레온 판토하 대위는 자신만 믿고 따르는 봉사대원들의 슬픔을 달래고 사기를 진작 시키기 위해 본부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비밀을 털어버린 채 군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하여 눈물의 연설을 한다.
이에 특별봉사대의 정체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사람들은 민간인으로 타락한 포주인줄로만 알았던 판토하 대위에 감탄하며 그동안 그에게 던졌던 의혹의 시선을 거둔다.
봉사대의 사기는 절정에 이르고, 개인적 명예는 회복되었을지언정 본부의 장군들은 난리가 난다. 본부는 판토하 대위를 소환하고 징계를 검토 하는데...

옷 벗을 각오를 하고 본부로 달려간 판토하는 자신을 소신껏 변호하고 당당하게 맞서며, 본부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작은 군인들이 거대한 여자의 다리 밑으로 총을 들고 행군하는 표지 그림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읽는 내내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한 이 블랙코메디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즐거움으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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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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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다른 번역서 등을 통해 접한 문학동네의 번역과 교정교열 능력은 타 출판사에 비해 월등했던 것 같다.
내가 문학동네의 출판 품질에 매료 되었던 것은 일부 까칠한 독자들의 무조건적인 들이대기 번역과 오타 논란에 일침을 가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방대한 내용이 발 빠르게 국내 출시 되었을 때 늘 그랬듯이 잘못된 번역과 오타가 많다고 여기저기 소문이 떠돌았다.
이에 문학동네 담당자는 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통해 1Q84의 번역에 최선을 다했으니 1,2권에서 오타(출판사별 특성상 논란이 예상되는 띄어쓰기는 제외)를 찾아내면 한 건 당 10만원씩 주겠다는 과감한 제안을 했고, 끝까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에 그에 대한 번역과 오타 논란은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수년 간 나는 다양한 독서 틈틈이 민세문집(민음사세계문학전집) 280권을 완독하였는데, 내 마음이 참으로 풍요로워 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뒤늦게 시작된 문동문집(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이 90권을 돌파한 시점에 이르러 새로운 마음으로 시리즈의 시작인 안나 카레니나1,2,3권부터 이 시리즈의 완독을 결심한다.

해설에 따르면 소피아 안드레 예브나의 1870년 2월 24일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남편의 이야기가 있다.

"어제 저녁에 그는 나에게 상류사회 출신으로, 시집은 갔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한 여성 유형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자신의 과제가 이 여성을 가련하고 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그에게 이 인물이 떠오르고 난 뒤에는 이전에 떠올려두었던 다른 인물들과 남성 유형이 제자리를 찾고 이 여성 주위에 묶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젠 내게 모든 것이 분명해졌소'라고 그는 말했다."

이 구상은 8년이 흐른 뒤 레프 톨스토이 백작이 지천명에 이르러 세상에 발표 하였고, 다시 1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박형규 선생님을 통해 번역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러시아 장편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복잡한 이름의 등장인물들과 헷갈리는 상황들의 반복... 이 소설도 그러한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국내 웹 사이트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검색해 보면 식상하게도 오역 논란 등으로 번역자의 수고에서 극히 일부인 약점 잡기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글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펜을 든 저자의 생각 그대로의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까? 세계 각국의 언어에 취약한 나는 번역자의 수고로움에 찬사를 보내며 아주 황당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늘 그들의 번역에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비난 할 거면 내가 직접 번역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번역서를 읽으면 기분이 더 맑아지는 것 같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감히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것일까?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언급하고 본문은 시작 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본문은 이 문장을 서두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가 가정교사와 바람피운 사실을 아내 돌리에게 들키면서 사흘간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연으로 시작 된다.
스테판은 문제의 해결사로 페테르부르크로 시집간 여동생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안나 카레니나)를 호출한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 키티로부터 청혼을 거절 당한 레빈은 상처 받고, 그의 연적인 브론스키는 어머니에게 키티와의 결혼을 허락 받기로 한다.
바람피우다 걸린 친정 오빠 스테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스크바로 달려오는 안나는 지루와 열차에서 백작부인(브론스키의 어머니)과 우정을 쌓게 되었는데...
도착한 역에서 열차 사고를 목격하고 충격(불길한 징조)을 받는 한 편, 사고로 죽은 남자의 유족들을 위해 기부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청년 브론스키에게 감동 한다.

해결사 안나에 의해 스테판과 돌리 부부는 쑥스러운 화해를 하고, 안나는 예정보다 일찍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한편 브론스키와 키티의 혼사는 혼란에 빠지고, 안나와 같은 열차로 페테르부르크에 당도한 브론스키는 그 운명적인 만남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두 사람의 불륜은 시작 된다.
모스크바의 키티는 배신의 이유도 잘 모른 채 상처받고 큰 병이 들어 어머니와 함께 요양을 떠나고, 브론스키에게 키티를 빼앗기고 시골로 내려간 레빈은 그 황당한 소식에 급우울 모드...
아내의 불륜에도 체면만을 생각하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바람 난 마누라 안나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오히려 경멸을 받기에 이른다.

이 소설이 전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음처럼 절망 속에서 피는 아름다움 꽃도 있는 것이다.

그가 잘못 보았을 수는 없었다. 그 눈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에게 생의 광명과 의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녀였다. 바로 키티였다. 그는 그녀가 기차역에서 예르구쉬오보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이 불면의 하룻밤 내내 레빈의 마음을 동요시켰던 온갖 계획, 그가 품었던 온갖 결의,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는 자기가 농부의 딸과 결혼하여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고 혐오감을 느꼈다. 다만 저기에, 오직 빠르게 멀어지면서 반대쪽으로 가버린 저 마마 속에만 요즈음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 소박한 노동의 삶이 아무리 좋아도 난 이제 그리 돌아갈 수는 없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2권 제3부 83~84쪽)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고, 경마장 다녀오던 길에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고, 심증만 있었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는데, 아내가 원하는 이혼 거부는 물론이고 그녀를 괴롭힐 방법에 대해 고심하는 어리석은 삶을 시작한다.

"내 삶을 그녀와 맺은 것은 잘못이었다. 그러나 내 잘못 가운데 비난받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불행할 턱이 없다. 비난받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하고 그는 자기에게 말했다. (제2권 3부 87쪽)

혁명적인 정신으로 시골에서 일에만 매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던 레빈에게 잊혀져가던 여인 키티가 나타나 새로운 불꽃이 타오르고...
순산 하였으나 생명이 위독한 안나를 죽음 앞에서 용서하는 체면 제일 가치의 남편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권총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남는 브론스키의 명예는 뒤바뀔 수밖에 없게 되는데...
불륜의 상징이 된 두 사람은 안나의 남편과 어린 아들을 페테르부르크에 방치하고 건강 회복을 위해 이탈리아로 요양 여행을 떠난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지배자의 언어에 대한 비판은 곳곳에 드러나는데 간략하게 다음 문장과 같다.
러시아 귀족의 공통적인 습관에 따라 하인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은 러시아어로 이야기 하지 않고 일부러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2권 5부 436쪽)

레빈과 키티 부부, 안나와 브론스키... 바로 그 두 커플사람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 가는데, 인간이기에 완벽하지는 않고 눈빛 하나, 마음 하나, 언어 하나, 행동 하나를 통해 오락가락하는 심리묘사가 일품인 소설이다. 어디 특정한 부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문장이 그러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에 대한 배려심을 키워줄만한 문장이 차고 넘친다. 톨스토이의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독자로서 내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대한 질책으로 다가올 정도다.

시대상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나타내는 표현도 많은데, 레빈의 쪼잔함을 부각시킨 인물 중에 하나인 바세니카 베슬로프스키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냥이나 하며 늘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저 농민들은 무한정 일만 하고 있죠.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제3권 6부 80쪽)

자신의 가정이 붕괴될 위기에서 구원해 준 안나가 오히려 스스로의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의 도피에 빠진 것을 생각하는 돌리의 마음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샘솟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안나를 비난한다. 어째서일까? 도대체 내가 더 나은 게 무엇일까? 나에게는 적어도 내가 사랑하고 있는 남편이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는 아닐지언정, 아무튼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안나는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것이 왜 나쁘다는 것일까? 그녀는 살고 싶어 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의 영혼에 그러한 마음을 심어 놓은 것이다. 나라도 틀림없이 똑같은 짓을 했을 것이다.' (제3권 6부 118쪽)

브론스키는 점점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지만 그를 사랑하는 안나는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행복을 느낄지언정 쉽게 거리로 나서지 못한다. 사람들의 손가락을 피해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살아가며 깊은 내공을 쌓아 가는 안나 카레니나...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압도당한다. 레빈도 안나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한 때 그녀로 인해 상처받은 키티도 그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지만 그녀는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점점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외로움은 브론스키에 대한 집착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이 순간 레빈의 관점에서 한 가지 상념...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 더구나 수입 이상의 생활을 하면서 술에 절어 예전에 아내가 사랑한 적이 있는 사나이와 함부로 우정을 맺기도 하고, 게다가 또 타락한 여자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여자를 방문하는 더없이 분별없는 짓을 하고, 더욱이 또 그 여자에게 마음이 이끌려 아내를 비탄에 잠기게 한 후에 자기가 편안히 잠들 수 있으리라곤. 그러나 그는 피로와 전날의 불면과 술기운 덕분으로 곤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제3권 7부 307쪽)

지극히 완벽한 삶을 추구 했던 남편의 인생을 망치고, 그 남자의 저주로 이혼 수락도 못 받고, 믿는 것은 오로지 동거남 브론스키... 안나는 결국 방황을 시작한다.
자, 이제부터 어디로 갈까······ 나를 길러준 큰어머니한테 갈까, 돌리한테 갈까, 그보다도 혼자서 외국으로 가버릴까, 그이는 지금 혼자 서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싸움이야말로 마지막일까, 아니면 아직 화해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전 친구들은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 일을 어떻게 여길까, 그리고 만약 드디어 일이 터져버리면 그 뒤엔 어떻게 될까 하는 갖가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3권 7부 380쪽)

한 때 브론스키가 사랑했던 키티에 대한 질투, 어느 날 브론스키를 찾아온 라일락 빛 모자를 쓴 묘령의 여인에 대한 질투는 그녀에게 커다란 히스테리를 발동 시키고 마침내 열 받은 브론스키는 떠나버린다. 브론스키와의 재회를 꿈꾸면서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가는 아름다운 안나에게는 브론스키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목격했던 열차 사고가 하나의 복선이었다. 그녀는 현실 도피의 방법으로 떠나는 열차 바퀴 사이로 몸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떠난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제3권 7부 428쪽)

모두에게 큰 아픔이 된 안나의 자진이 있고 두 달 후,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레빈의 둘째 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 고백한다.
"정말 무서운 시기였어요! 아니, 당신이 뭐라고 하든 그 여자는 좋지 않은 여자예요. 아니, 정말 어쩌면 그렇게 무서운 정열이 다 있는지 모를 일이예요! 그런 정열은 모두 뭔가 엉뚱한 짓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거예요. 그리고 그 여자는 마침내 그것을 보여준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를 망치고 두 훌륭한 남자를, 자기의 남편과 나의 불행한 아들까지 망쳐버린 것이니까요." (제3권 8부 449쪽)

레빈의 철학적인 깨달음과 그에 대한 독백으로 작품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앞으로도 나는 역시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논쟁을 하기도 하고 부적절한 때에 내 사상을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내 영혼의 지극히 거룩한 곳과 남들의 영혼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의 영혼과도 장벽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의 공포 때문에 아내를 꾸짖기도 하고 그것을 뉘우치기도 할 것이다. 또한 나는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제3권 8부 522쪽)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 된다. 연구자들은 안나의 모델이 된 여인의 외모는 푸쉬킨의 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가르퉁이라고 분석해 내고 있으며, 자살의 모티브는 사랑의 상처를 받고 열차로 뛰어든 집필 당시의 한 여인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호메로스의 시에서 '머리'라는 뜻으로 쓰인 '카레논'이란 단어가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의 이름으로 녹아 났다가 다시 한 세기 뒤에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의 말 잘 듣는 충견 이름으로도 연결되는데, 바람난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안나의 장례식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안나의 딸을 넘겨받아 키운다는 사연으로도 고전과 고전을 잇는 묘미를 준다. 카레닌과 대비되는 삶을 살아가는 레빈은 '레프 톨스토이'의 이름에서 기인한 작명으로 작가의 화신이라는 수긍할만한 분석도 있다.

러시아 소설을 읽다 보면 파불라(fabula:fable;실질적인 이야기 재료)와 슈줴트(sju.et;실제로 이야기 된 줄거리나 또는 사건들이 함께 연결된 방법)라는 해설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의 파불라와 슈줴트는 누군가의 해설보다도 독자 스스로의 판단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책을 다 읽었으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어떤 이의 제안에 두고두고 다시 읽게 될 책이므로 소장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 매번 달라질 내 주관적 작품의 해설과 의미 있는 문장들을 예상하며 양해를 구한다.

흥미로운 도입부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읽어나가는 동안 재미없음에 다소 질리기도 했는데, 결국 다 읽고 나니 그 과정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는지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그것이 내가 이번 독서를 통해 얻어낸 쾌감이다. 인간의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순간순간에도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듯한 섬세한 심리묘사는 나로 하여금 더욱더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준 톨스토이는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영감님이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문동문집 완독을 향한 목표는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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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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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다른 번역서 등을 통해 접한 문학동네의 번역과 교정교열 능력은 타 출판사에 비해 월등했던 것 같다.
내가 문학동네의 출판 품질에 매료 되었던 것은 일부 까칠한 독자들의 무조건적인 들이대기 번역과 오타 논란에 일침을 가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방대한 내용이 발 빠르게 국내 출시 되었을 때 늘 그랬듯이 잘못된 번역과 오타가 많다고 여기저기 소문이 떠돌았다.
이에 문학동네 담당자는 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통해 1Q84의 번역에 최선을 다했으니 1,2권에서 오타(출판사별 특성상 논란이 예상되는 띄어쓰기는 제외)를 찾아내면 한 건 당 10만원씩 주겠다는 과감한 제안을 했고, 끝까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에 그에 대한 번역과 오타 논란은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수년 간 나는 다양한 독서 틈틈이 민세문집(민음사세계문학전집) 280권을 완독하였는데, 내 마음이 참으로 풍요로워 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뒤늦게 시작된 문동문집(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이 90권을 돌파한 시점에 이르러 새로운 마음으로 시리즈의 시작인 안나 카레니나1,2,3권부터 이 시리즈의 완독을 결심한다.

해설에 따르면 소피아 안드레 예브나의 1870년 2월 24일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남편의 이야기가 있다.

"어제 저녁에 그는 나에게 상류사회 출신으로, 시집은 갔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한 여성 유형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자신의 과제가 이 여성을 가련하고 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그에게 이 인물이 떠오르고 난 뒤에는 이전에 떠올려두었던 다른 인물들과 남성 유형이 제자리를 찾고 이 여성 주위에 묶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젠 내게 모든 것이 분명해졌소'라고 그는 말했다."

이 구상은 8년이 흐른 뒤 레프 톨스토이 백작이 지천명에 이르러 세상에 발표 하였고, 다시 1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박형규 선생님을 통해 번역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러시아 장편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복잡한 이름의 등장인물들과 헷갈리는 상황들의 반복... 이 소설도 그러한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국내 웹 사이트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검색해 보면 식상하게도 오역 논란 등으로 번역자의 수고에서 극히 일부인 약점 잡기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글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펜을 든 저자의 생각 그대로의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까? 세계 각국의 언어에 취약한 나는 번역자의 수고로움에 찬사를 보내며 아주 황당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늘 그들의 번역에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비난 할 거면 내가 직접 번역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번역서를 읽으면 기분이 더 맑아지는 것 같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감히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것일까?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언급하고 본문은 시작 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본문은 이 문장을 서두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가 가정교사와 바람피운 사실을 아내 돌리에게 들키면서 사흘간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연으로 시작 된다.
스테판은 문제의 해결사로 페테르부르크로 시집간 여동생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안나 카레니나)를 호출한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 키티로부터 청혼을 거절 당한 레빈은 상처 받고, 그의 연적인 브론스키는 어머니에게 키티와의 결혼을 허락 받기로 한다.
바람피우다 걸린 친정 오빠 스테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스크바로 달려오는 안나는 지루와 열차에서 백작부인(브론스키의 어머니)과 우정을 쌓게 되었는데...
도착한 역에서 열차 사고를 목격하고 충격(불길한 징조)을 받는 한 편, 사고로 죽은 남자의 유족들을 위해 기부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청년 브론스키에게 감동 한다.

해결사 안나에 의해 스테판과 돌리 부부는 쑥스러운 화해를 하고, 안나는 예정보다 일찍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한편 브론스키와 키티의 혼사는 혼란에 빠지고, 안나와 같은 열차로 페테르부르크에 당도한 브론스키는 그 운명적인 만남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두 사람의 불륜은 시작 된다.
모스크바의 키티는 배신의 이유도 잘 모른 채 상처받고 큰 병이 들어 어머니와 함께 요양을 떠나고, 브론스키에게 키티를 빼앗기고 시골로 내려간 레빈은 그 황당한 소식에 급우울 모드...
아내의 불륜에도 체면만을 생각하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바람 난 마누라 안나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오히려 경멸을 받기에 이른다.

이 소설이 전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음처럼 절망 속에서 피는 아름다움 꽃도 있는 것이다.

그가 잘못 보았을 수는 없었다. 그 눈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에게 생의 광명과 의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녀였다. 바로 키티였다. 그는 그녀가 기차역에서 예르구쉬오보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이 불면의 하룻밤 내내 레빈의 마음을 동요시켰던 온갖 계획, 그가 품었던 온갖 결의,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는 자기가 농부의 딸과 결혼하여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고 혐오감을 느꼈다. 다만 저기에, 오직 빠르게 멀어지면서 반대쪽으로 가버린 저 마마 속에만 요즈음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 소박한 노동의 삶이 아무리 좋아도 난 이제 그리 돌아갈 수는 없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2권 제3부 83~84쪽)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고, 경마장 다녀오던 길에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고, 심증만 있었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는데, 아내가 원하는 이혼 거부는 물론이고 그녀를 괴롭힐 방법에 대해 고심하는 어리석은 삶을 시작한다.

"내 삶을 그녀와 맺은 것은 잘못이었다. 그러나 내 잘못 가운데 비난받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불행할 턱이 없다. 비난받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하고 그는 자기에게 말했다. (제2권 3부 87쪽)

혁명적인 정신으로 시골에서 일에만 매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던 레빈에게 잊혀져가던 여인 키티가 나타나 새로운 불꽃이 타오르고...
순산 하였으나 생명이 위독한 안나를 죽음 앞에서 용서하는 체면 제일 가치의 남편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권총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남는 브론스키의 명예는 뒤바뀔 수밖에 없게 되는데...
불륜의 상징이 된 두 사람은 안나의 남편과 어린 아들을 페테르부르크에 방치하고 건강 회복을 위해 이탈리아로 요양 여행을 떠난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지배자의 언어에 대한 비판은 곳곳에 드러나는데 간략하게 다음 문장과 같다.
러시아 귀족의 공통적인 습관에 따라 하인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은 러시아어로 이야기 하지 않고 일부러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2권 5부 436쪽)

레빈과 키티 부부, 안나와 브론스키... 바로 그 두 커플사람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 가는데, 인간이기에 완벽하지는 않고 눈빛 하나, 마음 하나, 언어 하나, 행동 하나를 통해 오락가락하는 심리묘사가 일품인 소설이다. 어디 특정한 부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문장이 그러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에 대한 배려심을 키워줄만한 문장이 차고 넘친다. 톨스토이의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독자로서 내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대한 질책으로 다가올 정도다.

시대상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나타내는 표현도 많은데, 레빈의 쪼잔함을 부각시킨 인물 중에 하나인 바세니카 베슬로프스키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냥이나 하며 늘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저 농민들은 무한정 일만 하고 있죠.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제3권 6부 80쪽)

자신의 가정이 붕괴될 위기에서 구원해 준 안나가 오히려 스스로의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의 도피에 빠진 것을 생각하는 돌리의 마음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샘솟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안나를 비난한다. 어째서일까? 도대체 내가 더 나은 게 무엇일까? 나에게는 적어도 내가 사랑하고 있는 남편이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는 아닐지언정, 아무튼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안나는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것이 왜 나쁘다는 것일까? 그녀는 살고 싶어 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의 영혼에 그러한 마음을 심어 놓은 것이다. 나라도 틀림없이 똑같은 짓을 했을 것이다.' (제3권 6부 118쪽)

브론스키는 점점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지만 그를 사랑하는 안나는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행복을 느낄지언정 쉽게 거리로 나서지 못한다. 사람들의 손가락을 피해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살아가며 깊은 내공을 쌓아 가는 안나 카레니나...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압도당한다. 레빈도 안나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한 때 그녀로 인해 상처받은 키티도 그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지만 그녀는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점점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외로움은 브론스키에 대한 집착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이 순간 레빈의 관점에서 한 가지 상념...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 더구나 수입 이상의 생활을 하면서 술에 절어 예전에 아내가 사랑한 적이 있는 사나이와 함부로 우정을 맺기도 하고, 게다가 또 타락한 여자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여자를 방문하는 더없이 분별없는 짓을 하고, 더욱이 또 그 여자에게 마음이 이끌려 아내를 비탄에 잠기게 한 후에 자기가 편안히 잠들 수 있으리라곤. 그러나 그는 피로와 전날의 불면과 술기운 덕분으로 곤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제3권 7부 307쪽)

지극히 완벽한 삶을 추구 했던 남편의 인생을 망치고, 그 남자의 저주로 이혼 수락도 못 받고, 믿는 것은 오로지 동거남 브론스키... 안나는 결국 방황을 시작한다.
자, 이제부터 어디로 갈까······ 나를 길러준 큰어머니한테 갈까, 돌리한테 갈까, 그보다도 혼자서 외국으로 가버릴까, 그이는 지금 혼자 서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싸움이야말로 마지막일까, 아니면 아직 화해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전 친구들은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 일을 어떻게 여길까, 그리고 만약 드디어 일이 터져버리면 그 뒤엔 어떻게 될까 하는 갖가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3권 7부 380쪽)

한 때 브론스키가 사랑했던 키티에 대한 질투, 어느 날 브론스키를 찾아온 라일락 빛 모자를 쓴 묘령의 여인에 대한 질투는 그녀에게 커다란 히스테리를 발동 시키고 마침내 열 받은 브론스키는 떠나버린다. 브론스키와의 재회를 꿈꾸면서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가는 아름다운 안나에게는 브론스키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목격했던 열차 사고가 하나의 복선이었다. 그녀는 현실 도피의 방법으로 떠나는 열차 바퀴 사이로 몸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떠난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제3권 7부 428쪽)

모두에게 큰 아픔이 된 안나의 자진이 있고 두 달 후,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레빈의 둘째 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 고백한다.
"정말 무서운 시기였어요! 아니, 당신이 뭐라고 하든 그 여자는 좋지 않은 여자예요. 아니, 정말 어쩌면 그렇게 무서운 정열이 다 있는지 모를 일이예요! 그런 정열은 모두 뭔가 엉뚱한 짓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거예요. 그리고 그 여자는 마침내 그것을 보여준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를 망치고 두 훌륭한 남자를, 자기의 남편과 나의 불행한 아들까지 망쳐버린 것이니까요." (제3권 8부 449쪽)

레빈의 철학적인 깨달음과 그에 대한 독백으로 작품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앞으로도 나는 역시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논쟁을 하기도 하고 부적절한 때에 내 사상을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내 영혼의 지극히 거룩한 곳과 남들의 영혼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의 영혼과도 장벽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의 공포 때문에 아내를 꾸짖기도 하고 그것을 뉘우치기도 할 것이다. 또한 나는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제3권 8부 522쪽)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 된다. 연구자들은 안나의 모델이 된 여인의 외모는 푸쉬킨의 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가르퉁이라고 분석해 내고 있으며, 자살의 모티브는 사랑의 상처를 받고 열차로 뛰어든 집필 당시의 한 여인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호메로스의 시에서 '머리'라는 뜻으로 쓰인 '카레논'이란 단어가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의 이름으로 녹아 났다가 다시 한 세기 뒤에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의 말 잘 듣는 충견 이름으로도 연결되는데, 바람난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안나의 장례식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안나의 딸을 넘겨받아 키운다는 사연으로도 고전과 고전을 잇는 묘미를 준다. 카레닌과 대비되는 삶을 살아가는 레빈은 '레프 톨스토이'의 이름에서 기인한 작명으로 작가의 화신이라는 수긍할만한 분석도 있다.

러시아 소설을 읽다 보면 파불라(fabula:fable;실질적인 이야기 재료)와 슈줴트(sju.et;실제로 이야기 된 줄거리나 또는 사건들이 함께 연결된 방법)라는 해설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의 파불라와 슈줴트는 누군가의 해설보다도 독자 스스로의 판단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책을 다 읽었으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어떤 이의 제안에 두고두고 다시 읽게 될 책이므로 소장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 매번 달라질 내 주관적 작품의 해설과 의미 있는 문장들을 예상하며 양해를 구한다.

흥미로운 도입부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읽어나가는 동안 재미없음에 다소 질리기도 했는데, 결국 다 읽고 나니 그 과정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는지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그것이 내가 이번 독서를 통해 얻어낸 쾌감이다. 인간의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순간순간에도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듯한 섬세한 심리묘사는 나로 하여금 더욱더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준 톨스토이는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영감님이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문동문집 완독을 향한 목표는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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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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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다른 번역서 등을 통해 접한 문학동네의 번역과 교정교열 능력은 타 출판사에 비해 월등했던 것 같다.
내가 문학동네의 출판 품질에 매료 되었던 것은 일부 까칠한 독자들의 무조건적인 들이대기 번역과 오타 논란에 일침을 가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방대한 내용이 발 빠르게 국내 출시 되었을 때 늘 그랬듯이 잘못된 번역과 오타가 많다고 여기저기 소문이 떠돌았다.
이에 문학동네 담당자는 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통해 1Q84의 번역에 최선을 다했으니 1,2권에서 오타(출판사별 특성상 논란이 예상되는 띄어쓰기는 제외)를 찾아내면 한 건 당 10만원씩 주겠다는 과감한 제안을 했고, 끝까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에 그에 대한 번역과 오타 논란은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수년 간 나는 다양한 독서 틈틈이 민세문집(민음사세계문학전집) 280권을 완독하였는데, 내 마음이 참으로 풍요로워 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뒤늦게 시작된 문동문집(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이 90권을 돌파한 시점에 이르러 새로운 마음으로 시리즈의 시작인 안나 카레니나1,2,3권부터 이 시리즈의 완독을 결심한다.

해설에 따르면 소피아 안드레 예브나의 1870년 2월 24일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남편의 이야기가 있다.

"어제 저녁에 그는 나에게 상류사회 출신으로, 시집은 갔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한 여성 유형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자신의 과제가 이 여성을 가련하고 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그에게 이 인물이 떠오르고 난 뒤에는 이전에 떠올려두었던 다른 인물들과 남성 유형이 제자리를 찾고 이 여성 주위에 묶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젠 내게 모든 것이 분명해졌소'라고 그는 말했다."

이 구상은 8년이 흐른 뒤 레프 톨스토이 백작이 지천명에 이르러 세상에 발표 하였고, 다시 1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박형규 선생님을 통해 번역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러시아 장편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복잡한 이름의 등장인물들과 헷갈리는 상황들의 반복... 이 소설도 그러한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국내 웹 사이트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검색해 보면 식상하게도 오역 논란 등으로 번역자의 수고에서 극히 일부인 약점 잡기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글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펜을 든 저자의 생각 그대로의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까? 세계 각국의 언어에 취약한 나는 번역자의 수고로움에 찬사를 보내며 아주 황당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늘 그들의 번역에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비난 할 거면 내가 직접 번역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번역서를 읽으면 기분이 더 맑아지는 것 같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감히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것일까?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언급하고 본문은 시작 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본문은 이 문장을 서두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가 가정교사와 바람피운 사실을 아내 돌리에게 들키면서 사흘간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연으로 시작 된다.
스테판은 문제의 해결사로 페테르부르크로 시집간 여동생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안나 카레니나)를 호출한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 키티로부터 청혼을 거절 당한 레빈은 상처 받고, 그의 연적인 브론스키는 어머니에게 키티와의 결혼을 허락 받기로 한다.
바람피우다 걸린 친정 오빠 스테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스크바로 달려오는 안나는 지루와 열차에서 백작부인(브론스키의 어머니)과 우정을 쌓게 되었는데...
도착한 역에서 열차 사고를 목격하고 충격(불길한 징조)을 받는 한 편, 사고로 죽은 남자의 유족들을 위해 기부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청년 브론스키에게 감동 한다.

해결사 안나에 의해 스테판과 돌리 부부는 쑥스러운 화해를 하고, 안나는 예정보다 일찍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한편 브론스키와 키티의 혼사는 혼란에 빠지고, 안나와 같은 열차로 페테르부르크에 당도한 브론스키는 그 운명적인 만남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두 사람의 불륜은 시작 된다.
모스크바의 키티는 배신의 이유도 잘 모른 채 상처받고 큰 병이 들어 어머니와 함께 요양을 떠나고, 브론스키에게 키티를 빼앗기고 시골로 내려간 레빈은 그 황당한 소식에 급우울 모드...
아내의 불륜에도 체면만을 생각하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바람 난 마누라 안나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오히려 경멸을 받기에 이른다.

이 소설이 전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음처럼 절망 속에서 피는 아름다움 꽃도 있는 것이다.

그가 잘못 보았을 수는 없었다. 그 눈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에게 생의 광명과 의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녀였다. 바로 키티였다. 그는 그녀가 기차역에서 예르구쉬오보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이 불면의 하룻밤 내내 레빈의 마음을 동요시켰던 온갖 계획, 그가 품었던 온갖 결의,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는 자기가 농부의 딸과 결혼하여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고 혐오감을 느꼈다. 다만 저기에, 오직 빠르게 멀어지면서 반대쪽으로 가버린 저 마마 속에만 요즈음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 소박한 노동의 삶이 아무리 좋아도 난 이제 그리 돌아갈 수는 없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2권 제3부 83~84쪽)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고, 경마장 다녀오던 길에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고, 심증만 있었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는데, 아내가 원하는 이혼 거부는 물론이고 그녀를 괴롭힐 방법에 대해 고심하는 어리석은 삶을 시작한다.

"내 삶을 그녀와 맺은 것은 잘못이었다. 그러나 내 잘못 가운데 비난받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불행할 턱이 없다. 비난받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하고 그는 자기에게 말했다. (제2권 3부 87쪽)

혁명적인 정신으로 시골에서 일에만 매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던 레빈에게 잊혀져가던 여인 키티가 나타나 새로운 불꽃이 타오르고...
순산 하였으나 생명이 위독한 안나를 죽음 앞에서 용서하는 체면 제일 가치의 남편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권총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남는 브론스키의 명예는 뒤바뀔 수밖에 없게 되는데...
불륜의 상징이 된 두 사람은 안나의 남편과 어린 아들을 페테르부르크에 방치하고 건강 회복을 위해 이탈리아로 요양 여행을 떠난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지배자의 언어에 대한 비판은 곳곳에 드러나는데 간략하게 다음 문장과 같다.
러시아 귀족의 공통적인 습관에 따라 하인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은 러시아어로 이야기 하지 않고 일부러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2권 5부 436쪽)

레빈과 키티 부부, 안나와 브론스키... 바로 그 두 커플사람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 가는데, 인간이기에 완벽하지는 않고 눈빛 하나, 마음 하나, 언어 하나, 행동 하나를 통해 오락가락하는 심리묘사가 일품인 소설이다. 어디 특정한 부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문장이 그러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에 대한 배려심을 키워줄만한 문장이 차고 넘친다. 톨스토이의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독자로서 내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대한 질책으로 다가올 정도다.

시대상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나타내는 표현도 많은데, 레빈의 쪼잔함을 부각시킨 인물 중에 하나인 바세니카 베슬로프스키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냥이나 하며 늘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저 농민들은 무한정 일만 하고 있죠.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제3권 6부 80쪽)

자신의 가정이 붕괴될 위기에서 구원해 준 안나가 오히려 스스로의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의 도피에 빠진 것을 생각하는 돌리의 마음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샘솟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안나를 비난한다. 어째서일까? 도대체 내가 더 나은 게 무엇일까? 나에게는 적어도 내가 사랑하고 있는 남편이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는 아닐지언정, 아무튼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안나는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것이 왜 나쁘다는 것일까? 그녀는 살고 싶어 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의 영혼에 그러한 마음을 심어 놓은 것이다. 나라도 틀림없이 똑같은 짓을 했을 것이다.' (제3권 6부 118쪽)

브론스키는 점점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지만 그를 사랑하는 안나는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행복을 느낄지언정 쉽게 거리로 나서지 못한다. 사람들의 손가락을 피해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살아가며 깊은 내공을 쌓아 가는 안나 카레니나...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압도당한다. 레빈도 안나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한 때 그녀로 인해 상처받은 키티도 그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지만 그녀는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점점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외로움은 브론스키에 대한 집착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이 순간 레빈의 관점에서 한 가지 상념...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 더구나 수입 이상의 생활을 하면서 술에 절어 예전에 아내가 사랑한 적이 있는 사나이와 함부로 우정을 맺기도 하고, 게다가 또 타락한 여자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여자를 방문하는 더없이 분별없는 짓을 하고, 더욱이 또 그 여자에게 마음이 이끌려 아내를 비탄에 잠기게 한 후에 자기가 편안히 잠들 수 있으리라곤. 그러나 그는 피로와 전날의 불면과 술기운 덕분으로 곤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제3권 7부 307쪽)

지극히 완벽한 삶을 추구 했던 남편의 인생을 망치고, 그 남자의 저주로 이혼 수락도 못 받고, 믿는 것은 오로지 동거남 브론스키... 안나는 결국 방황을 시작한다.
자, 이제부터 어디로 갈까······ 나를 길러준 큰어머니한테 갈까, 돌리한테 갈까, 그보다도 혼자서 외국으로 가버릴까, 그이는 지금 혼자 서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싸움이야말로 마지막일까, 아니면 아직 화해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전 친구들은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 일을 어떻게 여길까, 그리고 만약 드디어 일이 터져버리면 그 뒤엔 어떻게 될까 하는 갖가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3권 7부 380쪽)

한 때 브론스키가 사랑했던 키티에 대한 질투, 어느 날 브론스키를 찾아온 라일락 빛 모자를 쓴 묘령의 여인에 대한 질투는 그녀에게 커다란 히스테리를 발동 시키고 마침내 열 받은 브론스키는 떠나버린다. 브론스키와의 재회를 꿈꾸면서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가는 아름다운 안나에게는 브론스키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목격했던 열차 사고가 하나의 복선이었다. 그녀는 현실 도피의 방법으로 떠나는 열차 바퀴 사이로 몸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떠난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제3권 7부 428쪽)

모두에게 큰 아픔이 된 안나의 자진이 있고 두 달 후,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레빈의 둘째 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 고백한다.
"정말 무서운 시기였어요! 아니, 당신이 뭐라고 하든 그 여자는 좋지 않은 여자예요. 아니, 정말 어쩌면 그렇게 무서운 정열이 다 있는지 모를 일이예요! 그런 정열은 모두 뭔가 엉뚱한 짓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거예요. 그리고 그 여자는 마침내 그것을 보여준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를 망치고 두 훌륭한 남자를, 자기의 남편과 나의 불행한 아들까지 망쳐버린 것이니까요." (제3권 8부 449쪽)

레빈의 철학적인 깨달음과 그에 대한 독백으로 작품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앞으로도 나는 역시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논쟁을 하기도 하고 부적절한 때에 내 사상을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내 영혼의 지극히 거룩한 곳과 남들의 영혼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의 영혼과도 장벽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의 공포 때문에 아내를 꾸짖기도 하고 그것을 뉘우치기도 할 것이다. 또한 나는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제3권 8부 522쪽)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 된다. 연구자들은 안나의 모델이 된 여인의 외모는 푸쉬킨의 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가르퉁이라고 분석해 내고 있으며, 자살의 모티브는 사랑의 상처를 받고 열차로 뛰어든 집필 당시의 한 여인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호메로스의 시에서 '머리'라는 뜻으로 쓰인 '카레논'이란 단어가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의 이름으로 녹아 났다가 다시 한 세기 뒤에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의 말 잘 듣는 충견 이름으로도 연결되는데, 바람난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안나의 장례식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안나의 딸을 넘겨받아 키운다는 사연으로도 고전과 고전을 잇는 묘미를 준다. 카레닌과 대비되는 삶을 살아가는 레빈은 '레프 톨스토이'의 이름에서 기인한 작명으로 작가의 화신이라는 수긍할만한 분석도 있다.

러시아 소설을 읽다 보면 파불라(fabula:fable;실질적인 이야기 재료)와 슈줴트(sju.et;실제로 이야기 된 줄거리나 또는 사건들이 함께 연결된 방법)라는 해설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의 파불라와 슈줴트는 누군가의 해설보다도 독자 스스로의 판단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책을 다 읽었으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어떤 이의 제안에 두고두고 다시 읽게 될 책이므로 소장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 매번 달라질 내 주관적 작품의 해설과 의미 있는 문장들을 예상하며 양해를 구한다.

흥미로운 도입부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읽어나가는 동안 재미없음에 다소 질리기도 했는데, 결국 다 읽고 나니 그 과정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는지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그것이 내가 이번 독서를 통해 얻어낸 쾌감이다. 인간의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순간순간에도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듯한 섬세한 심리묘사는 나로 하여금 더욱더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준 톨스토이는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영감님이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문동문집 완독을 향한 목표는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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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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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의 제목이 책의 내용을 전달하기에 꼭 적합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불혹의 나이에 쓴 것을 감안한 출판사의 마케팅 수단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이 책의 특징이자 저자가 생각한 원래의 주제는 우리 민족 전생사로 풀어 보는 손자병법 해설 정도가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삼국시대에 여러 전투와 임진왜란에서 선조와 이순신의 갈등 등을 예로 든 것을 상상해 보면 읽기 전에도 그 기획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손자병법의 군형(軍形) 편의 '불가승자 수야 가승자 공야'(不可勝者 守也 可勝者 攻也; 이길 수 없다면 지켜야 한다. 공격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한다.)의 경우 간단한 해설문을 먼저 나열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고전할 수 있었던 독산성(지금의 오산 세마대) 전투의 기록을 예문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독산성은 험한 바위산이라 물이 없는 허점이 왜군에 노출되었는데, 적이 잘 보이는 곳에서 말 등에 흰 쌀을 퍼붓고 솔가지로 등을 쓸어주는 것으로 마치 물이 풍요로워 말이 목욕을 할 정도라는 것으로 적이 물러가게 했다는 이야기를 붙여주는 것이 이 책의 내용 전개 방식이다. (93~96쪽 내용)

그렇다고 마냥 이 책이 옛날 전쟁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군쟁(軍爭) 편의 '이치대란 이정대화'(以治待亂 以靜待譁; 아군의 통제를 유지하면서 적의 무질서를 기다리고, 차분하게 적의 동요를 노리는 것)를 설명할 때는, 임진왜란 당시 굶주린 왜군을 썩은 물로 유도하여 죽일 정도의 청야전술의 성과를 나열하고, 곧바로 현대 사회로 돌아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교훈을 주는 식이다.

인사이야기가 나오면 조직이 멈춰 선다. 누구나 인사가 예상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자신의 인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사로 누가 올지, 부하로 누가 올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인사가 때를 놓치면 조직이 동요한다. 적의 개입 없이 스스로 무너지는 지름길이다. 인사는 전격적으로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조직이 흔들리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적은 알아서 무너진다. 지치고 주리고 어지럽게 해야 하는 상대는 적이다. 스스로 힘을 뺄 이유가 없다. (177쪽)

살수대첩이 나오고, 삼국지가 나오고, 한비자가 나오는 등 다양한 역사가 손자병법에 의해 재해석 되지만 일부 매끄럽게 설명하지는 못한 부분도 있다.
내가 읽은 것이 초판본이라서 곳곳에 오자와 시시한 예문도 없지 않았으나 그런 것은 개정판을 통해 다잡아 지리라 생각한다.
문맥을 외면하고 문구를 부각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며 최대한 원문을 따르는 구성으로 빛난다.

특별히 강한 임팩트는 없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 가면서 불필요한 싸움을 피해 가는 지혜를 생각하며 집필된 정성스런 책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강한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자가 강하다.'는 비겁의 철학을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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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12-02-0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리뷰입니다.
출판사의 의도가 아닌 저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읽어주신 리뷰라서 반가왔습니다.
말씀처럼, 저는 한국사로 풀어낸 손자병법 해설서를 썼을 뿐인데,
서점에는 자기계발서 코너에 전시돼 있죠.

동탄남자 2012-02-06 01: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출판사의 생각 덕분에 더 많이 팔렸을 것 같습니다.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