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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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재 한 구석에 구입 해두고 읽지 않은 책들을 뒤지다 발견한 책이다.
서문을 보면 이책은 원고를 취합하여 찾아 온 출판사 사장(박광성)의 강권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 책이라 한다.
출판사 사장의 판단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들에게 보내는 단문들을 보면서 시작하는 김훈의 냉철한 시선이 아주 좋았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14쪽)

학교측과 학생측이 따로 노는 오로지 사진만 찍어대는 혼란스런 당시의 대학졸업식 풍경을 그리는 것도 매력적이고...
이영자의 다이어트 건으로 진실공방을 펼치는 천박한 대중문화도 날카롭게 비판하는 등 글맛이 참으로 좋고, 하나하나가 짧아서 읽기도 편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과정,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의 시각으로 비판하고, 동강댐 건설계획 검토 과정, 전직 대통령들과의 만찬 등 글 쓰던 당시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 대통령을 가혹하게 비판하는 다수의 글들도 볼 수 있지만 결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강력한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소신을 읽을 수 있다. 출판사 편집부는 단문들의 코멘트들에 작가의 의도와 달리 좋은 결과로 끝나는 일들에 대한 언급 또한 빠트리지 않았다.

화장하는 여자, 여자의 하이힐,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새색시의 콤팩트에 빠진 모습들을 바라보면 느낀 점을 다각도로 정리한 것도 독자로선 즐겁다.

내가 나이 먹어서 심수봉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더니, 내 주변의 젊고 사나운 첨단 여성들은 나를 늙고 진부하고 성적 이기심에 가득찬 남성주의자의 추몰이라고 비난했다. 요즘 배운 여자들은 대개 이렇다. 심수봉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 여자의 결핍의 애절함에 의해 남자인 나 자신의 결핍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결핍이 슬픔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심수봉 노래의 음악적 수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260쪽)

글 하나하나가 예술이고 설득력 있는 문장들로 가득한데 발췌하기마저도 벅차다.

왕복 4시간 거리의 멀리 장례식장 다녀오던 길에 따분하지 않은 독서를 할 수 있었고 기분이 좋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작년에 출판사(생각의 나무)가 부도난 뒤로 이 멋진 책이 절판되었다는 것...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이 책이 다시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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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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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민세문집(민음사세계문학전집) 완독의 첫발은 제75권 위대한 개츠비였다.
어쩌다보니 그것을 시작으로 민세문집 전권을 완독하게 되었으니 큰 애정을 갖고는 있지만 개운하지 못한 뒷만은 어쩔 수 없었다.
영미 문학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위대한 개츠비를 추켜 세우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정작 내가 읽은 그 책은 어렵고 암울할 뿐이었다.
'왜 이렇게 재미 없는 거야?'하는 생각을 하면서 인류 보편적인 명작이라는데 공감하지 못하며 그저 세월과 문화 탓일까 싶었다.
그러한 생각을 뒤집어 준것이 문동문집(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 제7권 위대한 개츠비였다,
민세문집 완독의 허무함을 달래고자 새로운 독서 목표로 문동문집 완독을 계획 했는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처음에는 그저 아는 이야기를 읽기 때문일까 싶었는데, 전에 읽던 민세문집 75권을 펼쳐 놓고 부분부분 비교해 가며 읽어보니 글맛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번역자 이름을 확인했고, 멋진 글발로 나를 매료 시켰던 소설가 김영하가 뉴욕 현지에서 시간 꽤나 소모했던 작품임을 알았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가 소장한 민세문집, 문동문집 번역서와 영문 펭귄문고판을 놓고 소설의 도입부를 나란히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 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자(父子)는 언제나 신기할 정도로 말없이도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그보다 훨씬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 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누군가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그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이 훨씬 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He didn't say any more, but we've always been unusually communicative in a reserved way, and I understood that he meant a great deal more than that.


이 짧은 문장만으로 전체를 평가하기는 벅차겠지만 김욱동 선생님의 학자적 번역인 민세문집 보다는 김영하 선생님이 현지와 현재의 분위기를 가미한 문동문집 번역은 훨씬 부드러웠다.
원문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우리 국어를 적절하게 활용한 번역은 책의 뒷부분에 남긴 작품 해설에서도 그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종종 가벼운 책선물로 민세문집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위대한 개츠비를 선물하곤 했었는데, 앞으로는 문동문집 위대한 개츠비를 더 많이 선물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오랜만에 문동문집으로 다시 접한 '위대한 개츠비'는 등장인물의 화법이나 부드러운 스토리의 전개가 돗보이는 작품이었다.

매우 주관적인 글일 수 있지만 다음 독서를 위해 이 정도만 메모...
아무튼 김영하의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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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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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템페스트'는 제목 뜻 그대로 폭풍우와 함께 시작되는 하루의 대소동을 그리고 있다.

밀라노의 대공 푸로스퍼로는 동생 앤토니오의 질투심에 의해 어린 딸 미랜더와 함께 바다로 추방 당한 아픔이 있다.
앤토니오는 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폴리의 왕 알론조를 설득하였는데, 노대신 곤잘로는 추방 당하는 푸로스퍼로에게 일정한 식량과 마법책을 챙겨준다.
바다를 헤매다 어떤 섬에 정착하여 그곳 섬에 살던 공기의 정령 에어리얼과 괴물 캘리밴을 노예로 부리며 마법을 연마하기를 어언 12년...
그는 곱게 키운 딸과 자신의 명예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나는데, 자신을 추방한 알론소 왕과 앤토니오를 태운 배가 항해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강력한 마법으로 폭풍우를 일의켜 배가 난파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일행들이 모두 죽지 않고 섬까지 밀려와 뿔뿔이 흩어지도록 하고 그들의 본성을 지켜 보며 작전을 이행한다.
한쪽 구석에 따로 표류해 온 알론조의 아들인 퍼드넌드 왕자는 푸로스퍼로의 아름다운 딸 미랜더와 사랑에 빠지고...
앤토니오는 알론조의 동생 시배스천을 부추겨 왕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도록 획책하나 푸로스퍼로의 충성스런 에어리얼의 방해로 실패한다.
언제나 지혜롭고 충직한 노대신 곤잘로도 밀라노의 신하들과 섬을 헤매며, 어릿광대 트린큘로와 만취한 하인장 스테퍼노는 괴물 캘리밴을 만나 몽상에 빠지는 등
모두들 각기 자신들만 폭풍우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으로 생각하며 섬을 방황하는데 이 모든 것이 푸로스퍼로의 마법에 의한 것이란 것은 전혀 모른다.

푸로스퍼로의 오두막 앞에서 모두가 상봉을 하는데...
여기서 모든 죄악과 반성과 자책과 용서와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감동과 재미가 있다.

희곡이라서 나는 이 책을 연극 배우가 된 기분으로 대사별로 소리를 달리하며 읽었더니 더욱 더 재미가 있었다.
문동문집 완독프로젝트 제6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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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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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문집 완독 프로젝트 다섯 권째는 '황금물고기'로 오래 전 단행본으로 나왔던 것을 시리즈로 묶은 것이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의 인상적인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강원도 양양 남대천의 연어를 생각했다.



검은 대륙의 소녀가 있었다.
인신매매로 처음 팔려 온 곳은 랄라 아스마라는 노파의 집이었고, 때는 밤이라 밤을 의미하는 '라일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시절, 어딘지도 모르는 고향과 기억나지도 않는 본명과 가족들... 소녀의 정체성은 그저 라일라일 뿐이다.
랄라 아스마가 죽자, 아벨이란 포악한 아들과 조라라는 못된 며느리 밑에서 구박받으며 생활하게 된 라일라, 어느 날 그 집에 손님으로 온 들라예 부부 덕분에 구원을 받지만 마냥 좋을줄로만 알았던 들라예씨 조차도 아벨만큼 추악한 손을 뻗치고 라일라는 뛰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알게된 자밀라 아줌마와 창녀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생활하게 되지만 그것도 오래 갈 수는 없는 법...
그녀는 지브롤터해협을 지나 유럽으로 진출하게 된다. 더 나은 생활을 찾아 파리에 온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불법체류로서의 유럽생활은 비참하지만 소녀 라일라에게는 당연히 버텨야 하는 삶일 뿐이다. 자기 자신의 삶만으로도 충분히 고달플 소녀는 임신한 창녀 후리야까지 책임지는 당찬 모습을 보여준다. 파리에서 병원잡역부로 일하면서 알게 된 늙은 여의사 프로메제아의 도움으로 그녀의 집안일을 하며 지내게 된다. 그런 그녀는 슬슬 매력적인 여인의 향기를 품어내게 되고, 아프리카 출신의 가난한 복서인 노노는 라일라를 사랑하게 된다. 어느날 라일라는 프로메제와와의 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그 집을 뛰쳐 나와 자블로 거리에 있는 노노의 지하실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노노의 단짝인 의식이 투철한 하킴을 만나 프란츠 파농의 사상에 빠져 들게 되고, 하킴의 할아버지인 엘 하즈 노인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는다.

엘 하즈 노인은 라일라를 통해 죽은 손녀 마리마를 기억했고, 마치 손녀를 대하는 냥 라일라에게 부탁한다.

"사람들이 모든 걸 망쳐버렸어. 여기저기 할 것 없이 길이 나고, 다리와 공항이 지어지고, 카누들은 하나같이 뒤를 잘라내고 발동기를 달았지. 나 같은 늙은이가 거길 뭐 하러 가겠어? 하지만 내가 죽으면 네가 나를 내 집에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구나. 팔레메 강가의 얌바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 묻힐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거기니까 거기로 돌아가야지."
(176쪽)

위의 글을 읽으며 나는 회귀 본능이라는 단어와 남대천의 연어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세상을 떠난 노인은 결국 세네갈의 강줄기와 팔레메 강 변의 얌바 마을로 돌아가지 못하고 불행하게도 고속도로 옆 공동묘지에 묻힐 날만 기대리는 상태에서 라일라는 떠난다. 계속되는 라일라의 역경과 고난의 세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곳 저곳 떠돌아야만 했던 소녀는 파리의 한 역사무실에 무임승차와 불법체류로 억류되면서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아주 작고 하찮은 물고기인 것 같다고... 이 때부터 소녀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내게는 맑지 못한 탁한 물을 헤엄쳐 가는 한 마리 연약한 물고기의 물길질이 되어 읽혀지기 시작했다.

기자인 베아트리스의 도움으로 역무실에서 풀려나와 몸과 마음을 추스린 라일라는 자신이 어디로 부터 흘러왔는지 그 근원도 알지 못하고, 어디로 헤엄쳐 가야하는지 그 목적도 모르는 물고기의 삶은 우울하다. 일개 독자인 나의 시선은 측은지심에 우울하게만 읽혀지지만 정작 소녀는 당차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꾸준히 헤엄쳐 나간다.

그러던 중 엘 하즈 노인이 남겨준 유산으로 노인의 손녀이자 하킴의 여동생인 마리마의 이름으로 합법적인 신분증(여권)을 받는다. 생전에 엘 하즈 노인이 자신과 마리마를 혼란스러워 했는 줄 알았는데, 불법체류자인 라일라를 합법적인 신분의 마리마로 만드는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며, 노인에 감사하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더욱 더 강해진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노노와 사랑을 나누고 니스로 떠나는 라일라... 이제 그녀는 소녀에서 숙녀가 되었다. 그녀가 어디로 헤엄쳐 나가는지 알 수 없지만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며 스스로의 그릇도 커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깊은 감동이다.

그를 따르는 소년 주아니코와 함께 니스로 이동하여 그곳 구제소에서 지내는 동안 라일라는 비참함을 잊고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닥치는 대로 읽은만큼 라일라의 세상은 점점 크고 넓어져 간다.


이 책의 212쪽에 수록된 시의 구절, '작은 새들에게는 끔찍한 밤이다.', '소리도 없고 음성도 없다.' 등은 시상을 떠나 구제소에서 비참한 삶의 거울이자, 여태 살아 온 그녀 인생의 거울과 같은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하킴을 통해 접한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로 부터 서서히 의식적으로 자기 세계를 찾아가는 라일라의 강인한 물길질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읽혀지는 구절이었다.

니스에 지내는 동안, 콩고르드 호텔의 바에서 새라라는 여자를 만났다. 어려서 한 쪽 청각을 잃은 라일라가 한 쪽 귀만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걸어가다가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만났다.서로의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음악으로 교류하였으며 라일라는 뭔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게 된다.

신분도 확실하고 내공도 탄탄해진 라일라는 프랑스에서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도전하기도 하지만, 프란츠 파농과 레닌을 인용한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장문의 답안지를 제출하는 등 이미 스스로 의식의 그릇이 커진 상태에서 합격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를 보스턴으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라일라는 베아트리스와 레이몽의 경제적인 원조를 받아 보스턴으로 떠날 때까지 애타게 찾았던 첫사랑 노노와 후리야 등은 끝내 만나지 못한다.

저프와 새라 커플이 함께 생활했던 보스턴에서의 처음 생활도 저프의 성추행 미수 사건으로 좋지 못하게 끝난 라일라는 시카고에서 온 장 빌랑을 사귀게 된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만큼 성장한 라일라는 에스테반(엘 세뇨르)이 운영하는 호텔의 바에서 피아니스트로 일을 하게 되며, 나중에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가수로도 일을 하게 된다. 장 빌랑에게는 안젤리나라는 연인이 있었으나 라일라는 겁없이 삼각관계를 유지한다.
빈민가 로빈슨 거리에서 지내면서 이웃에 사는 거인 알시도르를 지켜보고 지내던 어느 날, 경찰단속에 억울하게 말려드는 알시도르의 아픔을 떨어져서 지켜보는 마음이 복잡한 상황에서 르로이를 만나 그녀는 '지붕 위에서'라는 공식 음반을 내게 된다. 기회의 나라 미국의 덕을 톡톡히 보며 큰 돈도 만질 수 있게 된다. 그녀는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수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고 막막하고 낮고 깊은 울림, 파도가 육지에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 한없이 이어지는 철로 위에서 열차가 달리는 소리, 수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뇌우의 간단 없는 우르릉 소리였다. 또한 그것은 모르는 사람의 한숨소리, 혹은 그 낯선 이가 웅얼거리는 소리, 밤중에 깨어나 혼자임을 절감할 때 내 동맥 속으로 피가 흐르는 소리이기도 했다.
(246쪽)

방황하는 물고기에게 그 안정된 생활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라일라는 장 빌랑과의 마지막 사랑을 나누지만 삼각관계를 더 이상 지속시키지 못한 채 장을 떠나 임신한 몸으로 벨라와 함께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나게 된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도중에 열병에 걸려 앓다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자마자 유산을 하게 된다. 열병으로 유산한 그 고통의 순간에 벨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샌버너디노의 한 병원에서 뚱뚱한 인디언 간호사 샤베즈(나다)와의 우정이 싹튼다. 청각을 모두 잃은 라일라는 몽환적인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가 르로이로부터 니스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 초대장을 받고 니스로 떠난다.

하지만, 그녀는 니스에 머물지 않고 호텔측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세르베르- 마드리드-알제시라스를 걸쳐 페리를 타고 검은 대륙으로 떠난다. 모로코의 마라케시를 지나 품-즈귀드에 도착한 것으로 그녀는 그곳이 자신의 목적지임을 확신한다. 15년 전 자신이 유괴되었던 바로 그곳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다음 날 도착할 장을 기다리며 오랜 여행을 끝낸다.
남대천에 도착한 10월의 연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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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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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요, 판타."로 시작되는 소설은 "······ 판타, 어서 일어나요."라는 포치타의 대사로 끝난다.
이 시작과 끝은 가정의 평화를 알려주는 메시지라서 읽는 동안 웃다가 울던 독자의 마음마저 평화롭게 하는 힘이 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새 엄마 찬양'이라는 당황스런 작품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책을 읽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이다.

평생 도덕군자로 살아온 성실한 군인 판탈레온 판토하에게 새로 부여된 임무는 아마존에 주둔하는 페루의 젊은 군인들의 무분별한 성욕을 해결하는 것...
아마존 일대의 마을 여인들이 남아나지 않고, 심지어 원숭이까지 덮치는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억제 시킬 것인가, 해소시켜 줄 것인가?
일급비밀에다가 민간인 복장이어야 한다는 조건부 명령 때문에 자신의 업무를 아내인 포차와 어머니 레오노르 부인에게까지 숨기고 시작하는데...
그는 특별봉사대라는 비밀 부대를 조직하고, 지역 포주 등의 협력을 받아 최초 네 명의 창녀를 고용하는 절차를 밟으며 일급비밀 문서로 상부에 보고하고 허락을 받는다.
매우 엄격하게 규율을 만들고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던 판토하는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위해 차츰 봉사대원 수를 보강시켜 나간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매번 비밀문서로 리마의 본부에 보고되고, 더 나아가 병사들의 성욕을 억제시키기 위한 식단에도 관여 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그 순진했던 판타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매우 흡족스런 활약으로 상부의 신뢰를 쌓아 간다.

충원 과정 중에 미스 브라질이란 별명을 가진 올가 아레야노라는 최고의 상품(?)을 접수한 그는 이때부터 심사과정에 자신의 물건으로 직접 면접(?)을 보는 등 나날이 업그레이드 된다.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특별봉사대를 이끌며 밀림의 젊은 군인들의 성욕을 바로 잡아 민간의 평화를 정착시킨 그는 어느새 아내를 배신하고 올가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버린다.
지역 라디오로 부터 공격 당하면서도 비밀유지 서약 때문에 침묵하는 판타와 그런 남편의 업무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올가와 바람난 남편에 실망하고 떠나는 아내 포치타...
아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간 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올가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단지며 업무를 즐기는 판토하...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해요. 판티타?" 미스 브라질은 앉아서 세면대에 물을 채워 물과 비누로 씻고 옷을 입는다. "틀림 없이 봉사대원 한 명 이상이겠죠? 후보자 시험이 있으면 셀 수 없을 거고요. 당신 습관으로 보건대······ 그런데 그걸 뭐라고 부르죠? 전문가 검사라고 하나요? 당신은 정말 얄궂어요." "그건 유흥이 아니라 업무야." 판타는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 앉아 다시 기운을 차리고는 발을 질질 끌면서 변기로 가서 오줌을 눈다. "웃지 마. 사실이야. 게다가 그 모든 잘못은 네게 있어. 네 육체를 검사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그전에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어. 이렇게 하는 게 쉽다고 생각해?"
(260쪽)

어느 날, 군부대에서 활약하는 질 좋은 창녀들과 즐기고 싶었던 이키토스 청년들에 의해 일군의 특별봉사대원들이 납치되어 인질극이 발생하는데...
그 와중에 구출하러 간 군인들의 총격을 받은 미스 브라질 올가가 사망하고, 봉사대는 큰 위기에 봉착한다.
판텔레온 판토하 대위는 자신만 믿고 따르는 봉사대원들의 슬픔을 달래고 사기를 진작 시키기 위해 본부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비밀을 털어버린 채 군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하여 눈물의 연설을 한다.
이에 특별봉사대의 정체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사람들은 민간인으로 타락한 포주인줄로만 알았던 판토하 대위에 감탄하며 그동안 그에게 던졌던 의혹의 시선을 거둔다.
봉사대의 사기는 절정에 이르고, 개인적 명예는 회복되었을지언정 본부의 장군들은 난리가 난다. 본부는 판토하 대위를 소환하고 징계를 검토 하는데...

옷 벗을 각오를 하고 본부로 달려간 판토하는 자신을 소신껏 변호하고 당당하게 맞서며, 본부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작은 군인들이 거대한 여자의 다리 밑으로 총을 들고 행군하는 표지 그림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읽는 내내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한 이 블랙코메디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즐거움으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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