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30년 - 우리가 사랑한 300권의 책 이야기
한기호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전에 네이버에 이 책의 바탕이 된 원고도 연재 됐었으니 책이 나오면 소장용으로 하되 특별히 깊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읽다보니 한 쪽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읽고 또 읽게 되었다. 교보문고 30주년을 기념하여 1981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베스트셀러 10권을 골라 모두 300권의 책을 순차적으로 그 뒷얘기와 함께 기록한 단순한 독후감이 아닌 해마다의 사회적 현상과 주요 사건이 출판계에 미친 영향, 출판물이 사회에 미친 영향들을 읽노라면 참을 수 없는 집중 본능에 스스로가 놀랐다.

1985년 베스트셀러였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대한 부분을 예로 들면 이 책의 형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살의 꼬마 악동 '제제'를 통해 사랑의 문제, 인간 비극의 원초적 조건, 인간과 사물과의 교감,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우정을 슬프고 아름답게 그린 성장 소설이다. 1978년 광민사에서 처음 출간되었지만, 광민사 대표 이태복(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전민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 이태복의 동생 이건복은 1982년 어렵게 출판사 등록을 구해서 동녘을 시작했고 광민사의 자산을 인수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재번역해 출간했다. 이 소설은 브라질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 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당시 우리 현실과 매우 유사했다. 처음에는 교사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다가 1985년 무렵 대학생과 중·고생의 필독서가 되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50여 개 이상의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했다. (65쪽)

책 표지 이미지와 작가, 번역자, 출판사, 출간연도를 기본으로 소개 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이는 식이다. 다른 책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글이라 전문을 옮겨 보았다. 이렇게 책의 주제와 핵심 내용을 소개 하면서 당시 우리 사회상과 출판인 및 출판사의 뒷얘기까지 흥미롭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해 12월1일부터 단행 본 역사상 최초로 텔레비전에 광고가 실리기 시작해서 출판계의 충격을 준 고려원의 소설 손자병법이 1986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야기는 사료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광고 카피까지 그대로 기록해 주고 있다. 1991년 김영사에 의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릭 시걸의 '닥터스'는 책의 라디오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고, 도서출판 사계절은 2년 뒤에 독창적인 홍보 방법으로 광고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훨씬 많은 효과를 보았는데, 본문에 나타난 각각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초만 해도 5단 5cm 크기의 광고가 많았으나 85년부터는 5단 통광고(37cm)로 크기가 바뀌었다. 고려원의 경우 10cm 미만의 크기로 '탈불황선언, 소설 손자병법에 그 길이 있다'는 헤드카피와 '소설 손자병법은 합리적인 기업경영, 원만한 인간관계, 그리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세상사의 철리를 터득해 성공의 지름길을 찾고자 하는 당신이 읽으셔야 할 현대인의 성전입니다.'라는 카피로 광고를 계속 했다. (71쪽)

'여자와의 잠자리에서도 300개의 근육, 250개의 혈관, 208개의 뼈를 더듬고 암기하는 하버드 의대생들, 포르말린 냄새나는 딱딱한 학문에 갖히기 보다는 사랑의 격류에 휘말리기를 원하는 의대생들의 학문의 길, 사랑의 길, 인간의 길' (153쪽)

사계절은 1993년 5월 전국의 대도시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7,000여 명에게 거래 서점을 통해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를 한 질씩 증정했다. 사실 2만 부가 넘는 이 책의 제작비는 당시 일간신문 5단 광고비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169쪽)

중간중간 저자의 노하우가 농축된 글이 많은데, 특히 111쪽부터 121쪽에 수록된 '밀리언셀러를 만드는 아홉 가지 법칙' 은 출판 관계자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할 주옥같은 글이다. 독자들은 전통적인 읽는 사람(reader)에서 사용자(user)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다시 수집가(collector)로 변신했다는 촌철살인으로 '제4법칙 제목장사가 절반'이란 글을 이야기 할 때는 본능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8법칙 밀리언셀러를 터트리면 망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 중에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왜 사람의 삼대불행 중에서 첫번 째인 '조기성공'을 생각하게 하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그밖에 256쪽부터 260쪽까지 수록된 '21세기 한국 밀리언셀러의 여섯 가지 유형'도 멋진 이야기이다.

1990년 최고의 베스트셀러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그 책에 대한 반박으로 박노해 시인의 글을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대우그룹의 붕괴를 예견하는 듯한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박노해는 먼저 '간명하고 매끈한 문체, 가슴을 파고드는 교훈과 명언들, 구체적인 현실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설득력, 성취한 자의 자신감이 주는 묵직한 권위, 해박한 상식의 구사와 적절한 독서구절의 인용 등이 수많은 독자대중을 감동으로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라고 칭찬부터 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구구절절이 인간보편적인 진리와 교훈과 좋은 말씀들만이 주옥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옳은 듯한 한 구절 한 구절마다에 숨어 있는 저 섬뜩하게 시퍼런 칼날, 힘과 위안을 주는 듯한 가운데 찔러대는 저 날카로운 마취의 주사바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으니 함께 가자'고 잡는 당신의 손바닥에 철썩 붙은 저 잔인한 자본가의 흡혈판을 나는 몸서리치게 바라봅니다. 이처럼 당신의 이 책에는 철저한 '자본의 철학, 착취의 논리'가 숨겨져 있습니다.'라고 맹렬한 비판을 쏟아 놓는다. (137쪽)

베스트셀러의 꿈을 안고 출판사 수는 급증 하였지만 200평 넘는 서점이 100개도 되지 않는 당시의 취약한 유통구조 현실 속에서 밀리언셀러를 펴냈던 출판사들이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산한 이야기도 명료하다.

1993년 말부터 우후죽순 들어서던 도서대여점이 전국에 6,000곳을 넘었다. 책의 시장성을 키워 놓으면 대여점이 흡수해버리는 바람에 밀리언셀러가 실종되기 시작했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책의 판매량이 예전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대형광고를 한 책들의 피해가 커지면서 밀리언셀러를 펴냈던 출판사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191쪽)

베스트셀러는 '평상시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라는 명언도 1996년 베스트셀러 '뇌내혁명'을 소개하면서 나오는데, IMF 후폭풍이 몰아친 1998년에는 위안을 주는 따뜻한 도서들의 약진을 소개하며, 1990년대 들어 처음으로 밀리언셀러가 실종된 아픈 시절을 추억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이책을 읽노라면 파노라마처럼 세월이 흘러가는 매력이 있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2001년11월의 MBC <느낌표>에 대한 평도 나름대로 깊은 성찰의 힘을 보여 준다.

그중 한 코너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는 매달 1~2종의 선정 도서를 발표해 모두 25종의 책을 각각 수십만 부 이상 팔리게 한 역사상 최대의 출판 이벤트였다. (중략) 독서 시장을 왜곡해 출판사의 기획력만으로는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기 힘들어졌으며 (중략) 30% 이상의 할인을 통해 과당할인경쟁을 해가며 매출확대를 꾀하던 온라인서점의 안정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서 출판유통시장을 왜곡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오프라인 서점의 쇠락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265쪽)

냉정한 비판 뒤에 자칫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이벤트가 '기적의 도서관' 사업으로 확장되어 사회적 각성과 함께 구조적 변화를 추구 했다는 긍정적 평가까지 책과 관련된 사회 현상의 장단점을 적절하게 버무린 멋진 분석서가 아닐 수 없다. 2001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다출판사의 'The Blue Day Book'에 대해서도 '책을 보기만 하고 사지 않을 독자의 구매 욕구를 이끌어내기 위해 저가로 제작하고, 티셔츠를 만들고, 책 속의 사진을 확대해 서점 순회 동물사진전을 열면서 대형동물 사진을 증정하는 등의 이벤트를 벌였다." (294쪽)는 것으로 대한민국 출판사에 중요한 포인트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출판인의 아집에 관한 기록도 있다. '창가의 (토)(토)'의 경우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소개되었으나 이렇다할 성공을 못하다가 일본어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음을 확인한 일인출판사 프로메테우스가 리메이크하여 성공한 좋은 예가 되겠다. 이념 탓인지 출판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만 책을 공급하는 아집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아집도 때론 통하는 법... 독자서평을 보고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가 출판사를 수소문해 이 책을 크게 소개 했고, 다른 신문에서 먼저 소개한 책은 다루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조선일보도 대서 특필하였다고 기록(300쪽)한다.

2005년 화제작은 단연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를 위시한 해리포토가 아닐 수 없다. 한기호 소장은 이 현상에 대해서도 "해리포터의 상품성이 커진 반면 책의 다양성이 저하되어 책 시장이 황폐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354쪽)고 적고 있다. 불황에는 불륜소설이 뜬다는 에필로그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불륜이 경제를 살린다'를 인용한 멋진 마무리가 아닐 수 없는데, 이 책이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닐까 하는 재미를 줄만큼 성인적 시각을 피하지 않는다. '20세기 말, 미국에서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1위는 <성경>이다. 다음으로 <스포크 박사의 육아전서>와 <바람과 함꼐 사라지다>가 그 뒤를 잇는다."(434쪽) 단지 한국의 베스트셀러 30년 300권을 논하는 것을 넘어 전세계적인 출판계의 베스트셀러와 사회 현상을 언급한 것이 마치 하나의 책 박물관을 찾은 느낌이다. 450쪽을 훌쩍 넘는 이 책의 지면 하나하나가 아깝지 않은 독서 시간을 장식했다.

아, 한국 사회사를 담은 300권 모두를 소장하고 싶은 이 마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종 일기 세미콜론 코믹스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아무런 고민 없어 보이지만 속은 심각한 고민자...
이것은 일본의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 스스로가 주인공이자 작가인 사실을 바탕으로한 만화다.

만화가로서 더 이상 창작 활동이 어려워지자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도피를 한다는 것이 노숙!
처음엔 자살 기도로 시작 되었으나 겨울 찬 공기 속에서 대책 없이 시작한 노숙의 비참함 속에서 찾은 즐거움, 그리고 그 즐거움을 기록하는 만화가 특유의 황당한 작품 활동,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가면서도 생애 가장 건강한 시절을 보내는 당혹스러운 삶, 부랑자 생활 중 경찰에 잡혀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가지만 반복되는 가출과 노숙, 심심해서 시작한 막일로 근육도 생기고 삶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발함, 알콜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다시 한 번의 비참한 삶의 현장...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즐거운 만화...
보는 건 즐겁지만, 실화에 바탕한 처절한 만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 사세요? - 부동산에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아파트와의 사연이 없지 않을 대한민국...  나 역시도 서울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수도권 최남단으로 밀려와서 엄청난 대출금까지 껴안은 다소 서글픈 아파트에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 하나로 수많은 잣대를 들이 밀고, 질문을 받는 사람 역시도 상대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뭔가의 기싸움을 하게 된다.  어떤 승용차를 타느냐에 따라, 어떤 대학을 졸업 했고, 어떤 직업의 배우자와 결혼 했느냐에 따라 본질과 상관없이 어떤 사람의 수준을 평가해 버리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집, 특히 아파트는 상당히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 계급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직한 대답의 결과는 질문자의 의식 수준에 따라 매우 불편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매우 심도 깊게 진단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정리한 것으로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2010년 봄에 '어디 사세요? 주거의 사회학'이란 19회에 걸친 연재물을 사계절출판사에서 기획 초기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계약을 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한 의미 있는 성과물이다. 한 눈에 분위기 파악이 가능한 다양한 표와 그래프, 오래도록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대담, 성공 모델을 많이 보여준 독일이나 실패의 전형을 보여 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심도 깊게 취재하여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부동산 광고 수입에 의존하느라 왜곡된 보도로 건설사의 홍보지가 되어버린 신문들과 거기에 놀아나는 서민들,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과 깊이 고민하지 않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정치인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는 서민들의 표심... 오로지 이익만을 좇는 재개발과 오르는 전세값을 따라잡지 못해 밀려나는 사람들의 비참한 주거문제까지 철저하게 다룬 이야기이면서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독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동의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다양한 문제를 객관성 있게 다룬 제법 괜찮은 책이라 생각된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1998~2005년 6월 전국 신문사 광고수익 자료에 따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전체 광고 수익의 11~12%를 부동산 광고가 차지했다. 지방신문들은 부동산 광고 비중이 최고 47%를 넘는 등 의존도가 더욱 높았다. 또 조·중·동의 경우 광고 지면의 20% 이상을 부동산 광고로 채웠다. 신문사로선 광고주인 건설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이는 광고성 기사 게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41쪽)




중대형 미분양 아파트가 대구에 많은 이유는 뭘까. 건설사들이 중소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중대형의 비율을 늘려 지었기 때문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5년 12월말 대구의 전체 미분양 주택 3274가구 가운데 85㎡(25평)를 넘는 주택은 1407가구였으나, 2008년에는 1만 2715가구로 아홉 배 가까이 늘어났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건설사가 '파는' 아파트만 잔뜩 공급한 것이다. (99쪽)




"1960년대 이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노인정, 어린이 놀이터 등을 갖춘 것은 아파트밖에 없고 종류와 내용의 풍요로움도 아파트로만 집중되어 갔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로 몰려가고 아파트의 일반화 요인이 생겼다." -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지방에서도  특정구가 대구의 강남, 부산의 강남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동산 계급화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투자 상품으로 가치를 갖고 자본이 되는데, 부동산 자본의 지리적 집중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계급이 지역화 되고 있다. 특권을 가진 지역에 거주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고령층은 격렬하게 부동산에 투자하고, 참여정부 때 세제 정책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물을 때에는 국가가 뭘 해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우리나라에서 재개발·재건축 하는 것을 보면 공공이 전혀 돈을 안 쓰고도 건물 다 짓는다. 재개발에 공공 재정을 하나도 안들이고 대단지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나라뿐인 듯하다. 거기에 주택가격, 평수, 분양방식이 따라가게 되고 이 조건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거다. 주택을 탈상품화 하기 위한 방식으로 많이 지어야 한다." -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 271쪽)




역대 정부의 주책 정책은 토건 세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진보성향의 정권에서 조차 그랬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DJP연합에 따라 경제부처 요직을 친기업 성향의 보수인사로 채움으로써 친토건 정책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 중략 -  노무현 정부는 집권 기간 동안 총 45만 호의 주택을 추가로 공급했으나 집값은 내려가지 않았다. 개발광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등 지방 개발 정책이 줄을 이었고 동해안개발특별법 등 15개의 개발특별법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현집권 세력인 한나라당은 시장원리만을 앞세운 주택공급 확대논리를 강화해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잠재 수요, 강남 지역에 대한 대체 수요 만족 방안을 마련해야 집값이 안정 된다"는 논리를 폈다. (111쪽)




가재울에서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했던 허모 씨(47세)는 한 달에 600만원 벌이를 했지만 현재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50m쯤 떨어진 전세 50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살았지만 2003년 재개발과 함께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장사는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집과 가게가 모두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었다. 보상금은 턱없이 낮았다. 권리금 5000만원, 보증금 7000만원, 월세 50만원인 가게에 대한 감정가액은 불과 1800만원. 주거 이전비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300만원이 다였다. 1년 6개월 넘게 투쟁한 끝에 상가에 대한 영업손실 보상액 3600만원을 받았지만 같이 장사를 하던 여동생과 절반씩 나눈 뒤 월세와 생활비로 날렸다. 그렇다면 다른 상가 세입자들은 어떤 상황일까. 재개발로 가재울을 떠나야 했던 상가 세입자 30명의 근황을 2010년 2월에 개별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수평이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부분 소득이 낮아졌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그나마 허 씨의 경우가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40쪽)




건설사들은 택지비와 건축비, 간접비용을 부풀려 분양가를 높이고, 이윤을 축소 신고하는 행위를 버젓이 해왔다. 경실련이 2006년 화성 동탄 신도시의 건설비용과 이윤을 분석해 보니 건설 업체들은 택지비를 거짓 신고하고 건축비와 간접비를 부풀려 숨김으로써 얻은 이익 규모가 1조 2229억 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양가도 원가보다 20% 높게 책정했다. 건설업은 이처럼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비자금을 조성하기 쉽다. 관료와 정치인의 뇌물 통로로 활용하는 등 유착 고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92쪽)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와 가장 낮은 동네는 어디일까. 분석 대상 518개 동네 가운데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평균 투표율을 기준으로 투표율이 가장 높은 곳은 송파구 잠실7동이며, 가장 낮은 곳은 강남구 논현1동이다. 두 동네의 평균 투표율은 각각 69%와 39%로 무려 30% 차이다. 잠실7동은 두 차례 선거에서 각각 74%와 65%가 투표한 반면, 논현1동은 46%와 33%에 그쳤다. 투표를 가장 많이 한 동네와 가장 적게 한 동네가 모두 강남권에서 나온 것인데, 두 동네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주거생활의 격차가 눈에 띈다. 잠실7동에 사는 3163가구 가운데 90%인 2849가구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논현1동은 1만2514가구 가운데 75%인 9432가구가 무주택자다.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가구도 각각 17%와 3%로 잠실7동이 여섯 배에 달한다. 잠실7동은 동네사람 전부가 아파트에 사는 반면 논현1동은 76%가 단독주택에 살고 14%는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에 살며 아파트 거주 가구는 10%에 머문다. 잠실7동 가구 중 1인 가구는 7%에 그치고 지하 또는 반지하방에 옥탑방 등에 사는 가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논현1동 가구 중 48%가 1인 가구이며, 13%는 지하 또는 반지하방에 살고 있다. (227쪽)  




불패신화는 깨졌다. 도쿄의 평균 지가는 1992년부터 13년간 연속 하락해 2004년 평균 공시지가는 1991년의 45% 수준에 불과 했다. 1991년1억1520만 엔에 달했던 도쿄 23구내 신규분양 75㎡(23평)짜리 맨션의 가격은 현재 반값도 안 되는 5400만 엔 수준이다. 수도권의 같은 크기의 맨션도 고점을 찍은 1990년 1억298만 엔에서 현재 반값 미만인 4965만 엔으로 떨어졌다.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도쿄의 아카사카·아오야마·아자부 등 트리플A 지역의 분양가는 현재 평당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내진설계 등 특수공법으로 건축비가 한국보다 더 들지만 서울 강남보다 1000만 원 정도 낮은 가격이다. 버블 당시 도쿄 외곽에 지어졌던 신도시에는 빈 집들이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308쪽)


나는 수도권 최남단 동탄신도시에 거주하면서 수도권 최북단 파주출판도시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 어쩌다 가끔은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지만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서통탄역을 출발하는 성북행 전철을 타고 가다 신도림역에 이르면 삶에 찌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전철대신에 경부고속도로를 관통하는 급행버스 M4403을 타고 강남교보타워 인근 신논현역에서 지하철9호선을 환승하게 되는 경우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전철이나 버스나 출발할 때의 분위기는 어차피 신도시 사람들이라서 거의 비슷한데 신도림과 신논현의 인파 속에서는 너무도 다른 문화를 만나는 것이다. 나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낯선 만남들을 통해 "어디 사세요?"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도시의 어떤 형태의 주택에서 자가 또는 임대로 사는지 여부가 삶의 질을 가르고 바꿔 놓는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이 책이 어떤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겠으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줄 것이다. 잘 기획된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보기 좋고 읽기 좋은 탐스러운 책이다. 이 안타깝고도 흥미로운 독서의 경험이 우리 사회를 보다 관심 있게 지켜보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참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이야기 보따리 -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 옛이야기 112가지 살아있는 교육 23
서정오 지음 / 보리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어른 책으로 우리 전통의 옛이야기 112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어른들이 감정을 담아 직접 옛이야기는 들려주는 것은 더욱 매력적이다. 어른이 아이 앞에 앉아 눈을 맞추며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소박한 행복은 훌륭한 교육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옛 이야기 들려주기의 소중함을 강조하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고 한다.

"옛이야기를 뭐 하러 목 아프게 들려줘요? 요새 멀티미디어 자료들이 얼마나 잘나왔는데..."
"요새 아이들이 어디 옛이야기 같은 걸 들으려 해야 말이지요. 말머리만 떼도 싫증부터 내는걸요."
"나는 옛이야기를 많이 알지도 못하고 말재주도 없어서 들려줄 엄두를 못 내겠어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꾼 서정오 선생님은 이러한 반응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제시한다.

첫째, 칭얼대는 아이를 재울 때, 멀티미디어 자료를 통해 최고의 가수가 불러주는 최고 음질의 음악을 들려줄 것인가, 아니면 투박하더라도 엄마나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자장가를 불러줄 것인가?
둘째, 요새 아이들은 옛 이야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자극적이고 요란한 영상 문화에만 노출 되었을 뿐, 만약 어른들이 진지하고 성의 있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 앞에서라면 금방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셋째, 옛 이야기를 달달달 외워서 들려주거나, 중언부언을 했다가는 오히려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나쁜 영향만 주기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강 진행시키면 된다.
 
덧붙여, 옛이야기를 들려줄 어른들이 뿌리쳐야 할 세 가지 유혹이 있다는데...

첫째, 스승 되기 유혹으로 뭔가 교훈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둘째, 부처님 되기 유혹으로 대상 어린이들을 손바닥 속의 손오공 다루듯 모든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해석하며 아는 것을 다 말해주려는 어설픈 친절함...
셋째, 검열관 되기 유혹으로 오랜 세월 전승 과정에서 충분히 필터링 된 옛이야기를 보다 아름답게 각색하고 가위질 하려는 그릇된 선의...

이 세 가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매력은 순식간에 반감되고 듣는 아이는 쉽게 흥미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좋은 이야기꾼은 불친절하고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세 가지 덕목(?)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줄 것을 권장한다.
 



이 책은 서정오 선생님께서 오래 전에 어린이용으로 집필한 10권의 옛이야기 그림책을 어른용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때문에 신기한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 우스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등 각 부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라는 글을 통해 각 이야기들을 어린이에게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가벼운 도움말을 덧붙여 놓았다.

옛이야기 들려주기에 서툰 어른들도 이 책 한 권이면 구수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무엇 보다고 쉬운 입말체로 풀어썼다는 것이 그렇다. 그냥 이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한 자락 너끈히 펼쳐 낼 수 있고,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말이다. 밋밋한 이야기도 없지 않지만 ‘호랑이 뱃속 구경’, ‘활 못 쏘는 활꾼’과 같은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옛 기억도 새로운 문체로 인해 배꼽 잡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과묵한 부모와 교사에게도 풍부한 옛이야기들로 유혹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특히, 이 책을 선택한 이가 노인이라면 손자들에게 인기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01-0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바쁘신가 서재 활동은 뜸하시네요~ 잘 지내시죠?

아~ 이 책, 제 이벤트 당첨되신 분이 원했는데 좀 비싸서 패스했어요.ㅜㅜ
보리니까 님 생각했으면 그냥 주문해줄 걸~~ ^^

김태혁 2011-02-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무근님, 축하!! 이번 달 <이달의 마이 리뷰> 당첨!!
http://blog.aladin.co.kr/town/winner
 
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명기 교수님의 추천으로 김동춘 선생님의 '전쟁과 사회'를 읽었는데 전쟁을 생각하게 한 최근 사태를 보면서 정말 우리를 화나게 하는 북한의 도발은 말할 것도 없고, 위정자들의 한 마디 한 행동들이 죄다 의혹을 일으킵니다. 그들의 노리개감에 지나지 않는 국민들은 아직도 황색언론과 연대(?)한 그들의 의도된 플레이 하나하나에 변함없이 일희일비 하고... 다함께 맞불이라도 놓아야 애국인 냥 광분하고 있습니다. 괴로운 날들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