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의 옷을 빨아 내가 글을 배울 수 있게 해주신 에스터 마까띠니 할머니께'
루이스 응꼬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민족집단 중 하나인 줄루인으로 위와 같은 헌정문을 남겼다.
매일 아침 감옥 창살에서 바라보는 창공의 새들이 짝짓기를 즐기는 한 흑인 청년 씨비야의 죄목은 백인 처녀에 대한 강간으로 그는 곧 교수형에 처해질 예정이다.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시대의 남아공을 폭로하는 작가의 농후한 경험이 만들어낸 작품인데, 인종간의 결합을 금지하는 인종법이라는 황당함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는 그 어떤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는 비극적 종말로 달려가고 있다.
자신의 과거와 사건의 전말을 회상하는 씨비야의 독백은 매우 건조한 문체로 담담하게 읽혀진다.
"아들아, 백인 여자는 결코 탐하지 마라."
아버지는 딩간의 참모가 짠 계략에 빠져 보어군이 줄루군에게 포위 당했던 언덕배기 아래 옛 전쟁터를 굽어보면서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연지를 바른 입술과 부드럽고 빛나는 피부를 지닌 백인 여자는 우리 줄루 사내들을 파멸로 이끌 미끼이다. 우리의 길은 백인의 길과 다르다. 그들의 말도 우리의 말과 다르다. 백인들은 뱀장어처럼 부드럽지만 상어처럼 우리를 집어 삼킬 것이다." (63쪽)
"네 어머니가 말하더구나. 네게 백인들의 지혜를 들이마실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백인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지혜가 잇었음을 잊지마라." (64쪽)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피곤해 보였다. 슬픔과 좌절감이 깊이 배어 있었다. 달콤한 뼈다귀를 앞에 두고도 송곳니를 콱 박지 못하는 배고픈 짐승처럼 잔뜩 위축된 표정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뒤프레에 대해 서글픈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 스위스 의사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동정심을 표현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유죄임을 결코 의심한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내가 매우 위험한 성도착자이므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76쪽)
"피고인은 백인 여성이 피고인과 같은 원숭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자 애매하고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정의의 실현이 자신들의 궁극적인 소임임을 잘 알고 있는 판사가 중얼거리듯 경고했다. "카르메카르 씨! 카르메카르 씨!" 오로지 내 변호인인 막스 지크프리트 뮐러만이 독일의 강제 수용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듯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의 언어는 엄숙할 정도로 정연했고, 분개하기는 했지만 죄와 벌이라는 빤한 극에 놀아나고 있지 않았다. (194쪽)
어머니는 당신이 낳은 자식이 교수대에서 처형 당하는 참담한 기억을 간직한 채 늙어갈 것이다. 당신의 자식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백인 여자를 사랑했다는 이유 때문에? 오, 제발 그건 아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사랑 때문이었다면 그 어떤 것도 용서받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그 소녀에게 느낀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그것은 욕정이라는 감정에나 어울릴 만한 가치없는 싸구려 감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저열한 욕망 때문에 죽어야 하는 것이다. (213쪽)
루이스 응꼬씨 저/이석호 역 | 창비 출간일 2009년 07월 24일
-- 내가 리뷰로 올리지 못하고 포스트로 남기는 것은 이 글을 쓰는 순간, 아직 이 책이 알라딘 도서검색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