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김어준 형을 만났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와 더불어 아내와 함께한 기념 사진을 올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숙연한 마음에 검은 넥타이를 하고 나온 형에게 비판 세력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예 삼년 상을 해라~ 3년상을~!"

이에 김어준 형은 결심했다.
"아! 그렇구나~ 3년상을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갈 때까지 형의 검은 넥타이를 보게 될 것 같다.




다음은 최근 김어준의 멋진 한 마디 관련 뉴스~

김어준 "나는 MB 싫어. MB는 공무원에 불과"
"박근혜 많이 까먹어. '박심삼일'이란 신조어도 탄생" 
 
김어준 총수가 31일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싫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데 지금은 싫다고 말하면 눈치가 보이거나 자기 검열을 하게 되거나, 하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굳이 누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을 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더 나아가 진행자에게 "이명박 대통령 좋아하나? 예, 아니오로 대답해달라"고 물은 뒤
진행자가 "전 방송 진행자로서 중립의 입장"이라고 답하자,
"이런 질문에 누구나 쉽게 좋아하면 좋아한다, 싫어하면 싫어한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안 후진 사회"라고 주장했다. 

기사전문: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310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9-08-0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인이 상당한 미모시네요~ ^^
김용민씨가 나이 많이 든 줄 알았는데 젊으시네요.

동탄남자 2009-08-10 14:01   좋아요 0 | URL
김용민 선생님은 저렇게 앉아있는 사진으로만 보면 그냥 땅딸한 사람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나면 180cm가 훌쩍 넘는 롱다리 장신이랍니다. 아울러 저와 제 처는 사진이 잘 받는 사람입니다. ^^;;
 
한비야, 작가와의 만남 스케치

제가 좋아하는 순오기님께서 며칠전 상경하셨다는데..
그 후기에 보니 '청구회 추억'의 장소를 말씀하시기에 불현듯 생각한 2006년 4월16일, 신영복 선생님과 함께 했던 서오릉 봄소풍 사진과 간단한 후기를 올려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순오기님 다녀오신 곳은 서오릉과 조금 떨어진 곳입니다. ^^

------------------ 다음 ---------------------------------------------------

오늘(2006.4.16) 청구회 추억의 장소 서오릉으로 소풍을 다녀와서 간단히 기록을 남겨 봅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40년만에 서오릉을 찾으셨답니다. 얼마전 추억이 생각나 혼자 오셨었는데. 월요일이라 개방이 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청구회 추억의 장소인 서오릉의 순창원입니다.




더불어숲(http://www.shinyoungbok.pe.kr) 회원들과 함께한 40년만의 소풍




1966년 당시 청구회 회원들의 응원속에서 후배들과 씨름을 나누던 장소에서 더불어숲 회원들이 씨름시합을 하고 있다.




개정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3페이지 하단에 나온 권군이 바로 저 분이시다. 권만식 선생님...
신영복 선생님(뒷모습)은 40년만에 만난 서울대학교 후배 권만식 선생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시다가 나중에 공통의 추억으로 인정하셨다.
"선배님, 왜 제가 씨름에서 졌다고 하셨어요? 저도 선배님을 엎어치기 한 판으로 이긴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하하하"





청구회 꼬마들이 신영복 선생님에게 보낸 40년전의 편지봉투




청구회 꼬마들이 신영복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 원본(스캔하여 인쇄한 것임)




오늘의 서오릉 하늘, 40년만에 다시 찾은 서오릉이 낯설게만 느껴지신다던 신영복 선생님




오늘 소풍 보물찾기에서 내가 찾은 신영복 선생님의 붓글씨 '석과불식'- 씨과실은 먹히지 않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9-08-0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제가 좋아하는 순오기님'이라고 써주셔서 감격했어요.
고모님을 생각하며 부르신 건 아니겠죠.ㅋㅋㅋ
저는 동구릉은 가봤어도 서오릉은 못 가봤어요~ 제가 청구회추억 장소라 한 것은 서오릉 소풍 이후 그 친구들과 신영복선생님이 정기적으로 만나던 장소가 월드컵 경기장 주변 아니었나 생각하고 쓴 멘트였는데~ 이것도 확인해주세요. 저는 서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몰라서 내가 가본 그 곳 에는 모르거든요.^^

동탄남자 2009-08-05 15:56   좋아요 0 | URL
"청구회"가 청구초등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요.
성동구 문화동, 요새로 따지면 중구 신당동에 있는 학교입니다.
신당동이 장충동과 멀지 않은데, 개발독재시대부터 그곳의 랜드마크가 바로 장충체육관입니다. ^^; 유신직후, 1972년12월27일에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으로 세계적인 망신살의 실내 취임식을 거행했던 장소이기도 하지요. 순오기님께서는 바로 그 장충체육관을 상암월드컵 경기장과 헷갈려 하신 것 같습니다. ^^

청구초등학교 http://www.cheonggu.es.kr/
장충체육관 http://www.jangchunggym.co.kr/

순오기 2009-08-08 09:30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런 거였군요. 사실 장충체육관도 어디 붙었는지 잘 몰라요~ ㅋㅋ
 

 

 

7월의 마지막 날, 8월의 달력을 펼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백인들의 옷을 빨아 내가 글을 배울 수 있게 해주신 에스터 마까띠니 할머니께'
루이스 응꼬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민족집단 중 하나인 줄루인으로 위와 같은 헌정문을 남겼다.

매일 아침 감옥 창살에서 바라보는 창공의 새들이 짝짓기를 즐기는 한 흑인 청년 씨비야의 죄목은 백인 처녀에 대한 강간으로 그는 곧 교수형에 처해질 예정이다.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시대의 남아공을 폭로하는 작가의 농후한 경험이 만들어낸 작품인데, 인종간의 결합을 금지하는 인종법이라는 황당함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는 그 어떤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는 비극적 종말로 달려가고 있다.

자신의 과거와 사건의 전말을 회상하는 씨비야의 독백은 매우 건조한 문체로 담담하게 읽혀진다.

"아들아, 백인 여자는 결코 탐하지 마라."
아버지는 딩간의 참모가 짠 계략에 빠져 보어군이 줄루군에게 포위 당했던 언덕배기 아래 옛 전쟁터를 굽어보면서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연지를 바른 입술과 부드럽고 빛나는 피부를 지닌 백인 여자는 우리 줄루 사내들을 파멸로 이끌 미끼이다. 우리의 길은 백인의 길과 다르다. 그들의 말도 우리의 말과 다르다. 백인들은 뱀장어처럼 부드럽지만 상어처럼 우리를 집어 삼킬 것이다." (63쪽)


"네 어머니가 말하더구나. 네게 백인들의 지혜를 들이마실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백인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지혜가 잇었음을 잊지마라." (64쪽)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피곤해 보였다. 슬픔과 좌절감이 깊이 배어 있었다. 달콤한 뼈다귀를 앞에 두고도 송곳니를 콱 박지 못하는 배고픈 짐승처럼 잔뜩 위축된 표정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뒤프레에 대해 서글픈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 스위스 의사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동정심을 표현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유죄임을 결코 의심한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내가 매우 위험한 성도착자이므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76쪽)

"피고인은 백인 여성이 피고인과 같은 원숭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자 애매하고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정의의 실현이 자신들의 궁극적인 소임임을 잘 알고 있는 판사가 중얼거리듯 경고했다. "카르메카르 씨! 카르메카르 씨!" 오로지 내 변호인인 막스 지크프리트 뮐러만이 독일의 강제 수용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듯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의 언어는 엄숙할 정도로 정연했고, 분개하기는 했지만 죄와 벌이라는 빤한 극에 놀아나고 있지 않았다. (194쪽)

어머니는 당신이 낳은 자식이 교수대에서 처형 당하는 참담한 기억을 간직한 채 늙어갈 것이다. 당신의 자식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백인 여자를 사랑했다는 이유 때문에? 오, 제발 그건 아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사랑 때문이었다면 그 어떤 것도 용서받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그 소녀에게 느낀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그것은 욕정이라는 감정에나 어울릴 만한 가치없는 싸구려 감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저열한 욕망 때문에 죽어야 하는 것이다. (213쪽)




루이스 응꼬씨 저/이석호 역 | 창비  출간일 2009년 07월 24일 
 

-- 내가 리뷰로 올리지 못하고 포스트로 남기는 것은 이 글을 쓰는 순간, 아직 이 책이 알라딘 도서검색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국제엠네스티 관계자가 황대권 선생님과 내가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현장에서 야생초편지에 사인을 받았다. 황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견해와 우리나라 인권 현실, 그리고 함께 관람했던 영화 '언노운 우먼'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귀가 후, 사인을 확인해 보니 2009년이 아닌 2007년7월21일로 잘못 적혀 있었다. ^^



안중찬 선생님께-
건강하십시오!
2007.7.21.
바우 황대권

바우는 세례명으로 베드로의 우리식 표기라고 했다.
가장 최근에 읽은 황선생님의 저서 '바우 올림'이 생각나는 의미 있는 사인이다.

[생태칼럼] 살아 숨쉬는 자연 / 황대권

[한겨레] 해가 이미 중천에 떠올라 아침이슬이 다 말라버렸을 즈음에 우거진 녹음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풀숲 가운데 앉아 있으면 마치 이스트균이 발효하듯 수목이 자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아니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실제로 그 소리가 들린다. 수북수북, 스멀스멀, 웅웅 …. 나더러 이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화폭 가득 온천탕 표시를 무수히 찍어 놓고 싶다. 옛사람들이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그 속에 뛰어노는 생명들을 기(氣)의 이합집산으로 이해한 것은 정말 탁월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잠시 무아경에 빠져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악을 감상하다가 자신이 일기(一氣)의 에너지체가 되어 수목과 야생화 사이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상상을 해본다. 어떤 놈은 하품을 하듯 에너지를 폭폭 쌓아두는가 하면 어떤 놈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엄청난 속력으로 달려든다. 어떤 놈은 끈덕지게 다른 에너지체에 들러붙어 같이 놀자 하고 어떤 놈은 한사코 몸을 피해 구석으로만 도망간다. 아마도 장자란 분이 ‘소요유’(逍遙遊)라는 글을 쓸 적에 나와 같은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살아 있다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놀아’ 보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뉴스난에 죽이기 살리기 논쟁이 치열하다. 한쪽에서는 멀쩡히 살아 있는 것에 함부로 손을 대면 죽는다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그냥 내버려두면 죽어버리니 지금 바로 손을 대어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쟁은 우리의 자연이 죽어 가느냐 아니면 살아 있느냐 하는 점에서 크게 엇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둘 다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사실 우리의 자연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초고속 산업화를 감내하느라 반쯤은 빈사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런 점에서 개발론자의 주장은 일견 옳다. 그러나 자신들이 개발한답시고 죽여 놓고는, 이제 다시 개발을 통해 살려내겠다고 말하는 저들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는다. 그런 주장을 하려거든 그동안 저지른 무자비한 개발행위에 대한 참회가 먼저 이루어지고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자연에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그러나 참회는커녕 지난 시절의 산업화를 자화자찬하면서 산업화를 이루어낸 그 힘으로 자연도 살려내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정말로 그런 ‘무데뽀’ 정신으로 자연을 살릴 수 있을까? 아니 정신은 그렇다 치고 저들이 자랑하는 산업화 시대의 눈부신 기술로 자연을 살릴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무리 천하에 없는 친환경 기술을 사용하여 그럴듯하게 살려낸다 한들 자연을 대하는 저들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자연은 인간의 애완물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런 속내를 알고 있는 환경주의자들은 자연이 반쯤은 죽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손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소요유를 즐긴 장자는 ‘혼돈’(混沌)이라는 글에서 스스로 돌아가는 자연에 억지로 구멍 일곱개를 뚫었더니 그만 자연이 죽어버렸다는 섬뜩한 얘기를 전한다. 조작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 하나이지만 놀이는 그보다 더 오래된 본능이다. 도무지 놀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천지 사방에 구멍을 뚫고 앉았으니 우리도 어서 보따리를 싸야 하지 않을까.

황대권 <야생초 편지> 저자, 생태운동가
기사입력 2009-07-10 20:35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