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의 암담한 현대 사회... 인구에 비해 충분하고도 넘치는 아파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벌어도 집 한 채 소유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대책없는 사회의 근본 원인을 고민할 때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명문을 떠올리곤 합니다. 말씀으로만 들어왔기에 언젠가 글로 정리되면 좋겠구나 싶었었는데, 오래 전에 잘 정리해 놓으셨던 글이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에 교재에 수록되어 있더군요. 아주 명쾌한 비유의 글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입력해봅니다.
※사진은 2006년3월11일밤, 개인산방에서 붓글씨 쓰시는 모습입니다. 글만 있으면 밋밋해서... ^^;
수도꼭지의 경제학
C교도소 4동 상층의 세면장에는 수도꼭지가 8개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는 꼭지는 2개뿐이었습니다. 나머지 6개는 T자형의 손잡이를 뽑아버리고 스패너로 단단히 조아 놓았기 때문에 먹통이었습니다. 맨손으로는 그것을 풀 수가 없도록 해 놓았습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재소자는 너나없이“물 본 기러기”이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서 귀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밥과 맞먹는 것이 물입니다. 단 한 번도 물을 물 쓰듯 써보지 못한 우리들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욕심입니다.
하루 세끼 설거지에서부터 세수 빨래는 물론이고 목욕은 감히 생심을 못한다 하더라도 냉수마찰은 어떻게든 하고 싶기도 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방에 있는 주전자나 물통은 물론이고 그릇이란 그릇마다 물을 채워놓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물을 많이 챙겨 놓은 날은 마음 흐뭇하기가 흡사 그득한 쌀뒤주를 바라보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만큼 물이 귀했습니다. 여름철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겨울이라고 해서 찬물 목욕이나 담요빨래를 시켜만 준다면 마다할 사람이 없는 처지이고 보면 물을 가운데에 둔 관과 재소자의 줄다리기가 사철 팽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8개의 수도꼭지 중에서 2개만 남기고 나머지 6개를 먹통으로 잠가버리는 것은 어느 교도소건 관례가 되다시피 한 통상적인 통제의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원천을 봉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언뜻 가장 완벽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어느새 엄청난 누수가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맨 먼저 일어난 사건은 성하게 남겨둔 수도꼭지의 손잡이가 분실되기 시작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처음 몇 번 동안은 관에서 없어진 손잡이를 다시 갖다가 꽂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꽂기가 무섭게 이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수도꼭지는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로 윗부분의 나사 한개만 풀면 손잡이가 쉽게 분해될 수 있는 얼개였으며, 손잡이만 가지면 먹통꼭지를 틀어서 얼마든지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잡이의 분실사건이 계속되자 이제는 아예 나머지 성한 꼭지의 손잡이마저 분리하여 담당교도관이 책상서랍에 보관하였습니다. 이제는 물을 합법적으로 쓰기 위해서도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숨겨 둔 손잡이의 가치는 더욱 커졌습니다.
다른 출역사동의 세면장에 있는 수도꼭지의 손잡이가 분실되기 시작하였고 공장이건 목욕탕이건 심지어 직원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수도꼭지가 분실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 방에도 물론 비밀리에 입수하여 감추어 두고 사용하는 수도꼭지가 한 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법 끗발이 센 K군이 자기 혼자만 사용하는 손잡이가 한 개 더 있었습니다. 4동 상층의 11개 사방 가운데 수도꼭지를 한두 개 감추어 두고 있지 않은 방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잘 나가는 방’에는 두어 개씩 보유하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2개 또는 3개씩의 개인용 꼭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혹시 분실할 수도 있고 검방이나 검신 때 발각되어 압수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벌로 한두 개쯤 더 가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수도꼭지는 어느덧 친한 친구나 평소 신세를 진 사람에게 귀한 선물이 되기도 하였고 더러는 상품이 되어 다른 물건과 교환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도꼭지는 이제 수도꼭지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수도꼭지는 물을 떠나서도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4동 상층에 몰래 감추어 두고 사용하는 수도꼭지가 모두 몇 개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충 계산해 보더라도 11개 방마다 한두 개씩 그리고 끗발 있는 재소자가 네댓 명이라 치면 거진 20여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 셈이 됩니다.
세면장에 설치되어 있는 8개의 수도꼭지에 비하면 무려 두어 갑절이나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꼭지는 여전히 부족하였습니다. 우선 그 방에 몰래 감추어 두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 꼭지의 관리자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였고, 개인용을 빌리기도 한두 번이지 미안하고 속상하는 일이었습니다.
4동 상층의 1백여 명의 재소자가 불편이나 불평 없이 물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대체 몇 개의 수도꼭지가 있어야 하는지 계산해 보았습니다. 1인당 1개에다 분실이나 압수에 대비한 여벌 1개씩 도합 2백여 개의 수도꼭지가 필요하다는 계산입니다. 8개의 수도꼭지에 비하여 무려 2, 30배의 수도꼭지가 필요한 셈입니다.
이처럼 많은 양이 있더라도 물의 사용은 일단은 불법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실제로 담당교도관에게 적발되어 수도꼭지를 압수당하고 경을 친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대개는 담당교도관에서 밉게 보인 사람이거나 만만하게 보인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재수 없어’걸렸다고 했습니다. 어쨌건 원천을 봉쇄하여 물을 통제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8개의 수도꼭지를 모두 열어놓는 것보다 더 많은 물이 누수 되고 있었습니다. 스패너로 단단히 묶어 둔 6개의 먹통 수도꼭지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맨손인 사람에게만 철벽일 뿐 수도꼭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는 수청기생처럼 쉽게 몸을 풀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수도꼭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물은 여전히 부족하였고 불편하였습니다. 물의 필요는 수도꼭지에 대한 욕심으로 바뀌어 남들의 비난을 받았고 스스로도 부끄러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징역살이의 이야기이고 교도소에나 있는‘물 본 기러기’들의 물 욕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서울의 도처에서 문득문득 그 씁쓸한 수도꼭지의 기억을 상기하게 됩니다.
수많은 자동차들로 체증을 이룬 도로의 한복판에서 걷는 것보다 더 느리게 꿈틀거리는 버스 속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예의 그 수도꼭지를 생각합니다. 분양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붐비는 인파 속에서 나는 먹통 수도꼭지 앞에서 마른 침을 삼키던 예의 그 갈증을 생각합니다. 8개의 수도꼭지로 될 일이 20개 30개의 수도꼭지로도 안 되는 일은 교도소가 아닌 바깥세상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동차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고 땅도 그렇고 대학입시도 그렇고 화려한 백화점의 수많은 상품들도 그렇습니다.
나는 낯선 서울거리를 걸으며 버릇처럼 수도꼭지를 상기합니다. 맨손으로 수도꼭지를 비틀다가 하얗게 핏기가 가신 엄지와 검지의 통증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잘못된 소유(所有), 잘못된 사유(私有)가 한편으로 얼마나 엄청난 낭비를 가져오며,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심한 궁핍을 가져오는가를 생각합니다. 망망대해 위를 날고 있는 목마른 기러기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