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놀이 좋아하는 조카를 위해 준비한 한 권의 책...

사전 검열(?) 차원에서 가볍게 읽어 보려고 책을 펼쳤더니... 급히 인쇄된 듯한 질 낮은 쪽지 한 장이 삽입되어 있었다.



"탐정 해리엇 출간 이벤트"라고 명명된 쪽지에는 바뀐 페이지를 찾아 독자 스스로도 탐정이 되어 보라는 퀴즈와 응모권이 있다. 이건 뭐 10년 된 출판사도 아니고, 시절이 이십 세기도 아닌데... 이메일 응모도 아닌 우편엽서에 응모권을 직접 잘라 붙여 보내야 한다니... 그것만 아니었어도 확 짜증이 밀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답을 찾았지만... 허탈~ 응모 포기!
인쇄 잘못해서 만들어진 상황인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내 판단이 틀리고 출판사의 기획된 이벤트라고 하더라도... 뒷 날, 어떤 청소년이나 어린이가 도서 대여점이나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 본다면 잘못 인쇄된 책이라고 생각하지 독자를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할까? 그 쪽지 없이 책만 달랑 있다면 말이다.
바뀐 쪽을 찾아서 우편엽서로 보내면 (뭔지도 모를) 상품을 준다는 발상은 좋았으나 조금 무책임해 보였고, 내가 무작정 존경하고 흠모하는 출판인으로서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경기도 안좋고, 재인쇄도 장난이 아니고, 출간도 빨리 해야겠고 하겠지만... 출판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기본적으로 원칙을 지켜줘야 할 것이 아니던가. 파본과 잘못된 책은 바꿔 줘야 한다. 
이 책의 4쪽 맨 아래에 분명히 인쇄되어 있다.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지적한 김에 하나 덧붙이자면 6쪽에도 편집에 실수는 있다.
목차인데, '8장/죽을때까지/어떤것을'이 왼쪽 그림의 흰 여백에 가려져 글씨가 잘렸다. 
몇 개 더 발견되었는데, 이만 줄인다. 보다 섬세한 노력과 독자를 배려하는 혼(?)이 있었으면 싶다.

퀴즈 정답은 X94쪽과 X95쪽인데, 다른 응모자들을 위해 다 밝혀두진 않고 X처리 했다. ㅡㅡ;

책은 재미있고, 그림도 예쁘다. 옥에 티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고, 옥에 티 드러내 놓고 따지는 내 마음... 
판매고에 영향을 줄  것 같아 솔직히 미안하다.
그러나, 내 탓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아니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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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남자 2009-11-0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는 우리 직원에게 넌지시 의견을 물으니...
"애들은 재미있어 할 것도 같아요."라고 답했다. 다양한 의견~
 






갑작스럽게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11월의 탁상 달력을 접하니 벌써 겨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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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가 왜 세계 최고봉인줄 아느냐?"

출판사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며 자서전을 낸 나남출판의 조상호 대표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 도중에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자문자답...
"히말라야산맥에 있으니까...
 히말라야산맥에 있으니 에베레스트도 있고, K2도 있는 거죠.
 일류는 일류끼리 모이게 돼 있거든. 대붕(大鵬)은 큰 숲에서 깃을 내린다고 하잖아요?  
 출판사가 먼저 숲이 돼야 작가들이 날아오게 돼 있어요."

참으로 멋진 말이다.
덧붙여...

자서전 제목이 '언론 의병장(義兵將)의 꿈'이다.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가 그에 대해 물었다. "그럼 조선일보는 뭡니까?"
조상호 사장은 대답했다. "관군(官軍)이잖아."
문 기자가 되물었다. "의병장이 관군은 왜 만납니까?"
조상호 사장은 "의병이 관군이랑은 원래 안 싸우잖아?"라며 재치있게 넘겼다.

몇년 전, 아내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아 남해 바다를 여행하며 돌아 다닌적이 있었는데, 장흥의 제법 호텔스러운 한 여관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었다. 여관방에 걸린 달력이 전부 나남출판의 달력이라 신기했는데, 장흥에서 인쇄소를 한다는 김상봉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그 신비로운 목격담을 들려주니 간단했다.

"그 여관 나남출판 사장꺼야. 그 사람이 여기 장흥 출신이거든..."

빌딩 이름도 지훈 빌딩이고, 지훈 전집도 나오고 해서 조지훈의 후예인줄로만 알았더니...
아들 이름이 지훈일만큼 독실한 추종자에 장흥 출신의 한 때 신문사를 꿈꿨던  출판인이었다.
오늘 퇴근할 때 서점이나 둘러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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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0-2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나남 사장님이 장흥 출신이군요.
지난번 장흥 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걸~ ^^
나남 책은 박경리 토지 21권 있어요.

동탄남자 2009-10-29 16:06   좋아요 0 | URL
저는 고향이 장흥에서 멀지 않은 곳이랍니다.
어렸을 때는 자전거 타고 장흥으로 많이 놀러 갔었지요.
그 시골에서 이렇게 성공한 출판인을 배출했다니 유쾌하군요.^^
 

2009년10월23일 저녁,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김제동이 사회를 맡고, 더숲트리오가 노래했던 이날 강연회의 신영복 교수님의 강연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것이 가을을 견디는 일"

절박한 상황은 언제 석과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석과란 하나 남은 과실로 내년에 뿌릴 씨앗을 뜻합니다. 석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석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엽락(葉落), 즉 잎사귀를 떨궈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거품을 거둬내는 것입니다. 환상을 청산하는 것. 더 나아가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을 탈출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문맥'은 엄청납니다.

엽락을 하고 나면 나무가 드러납니다. 몸이 드러나는 거죠. 한 사회의 뼈대, 개인의 뼈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한 사회의 정치적 주체성은 어느 정도인지, 경제적 자립 기반, 문화적 기능은 어느 정도인지, 환상에 가려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떨어진 잎사귀, 엽락은 뿌리를 따뜻하게 하는 거름으로 작용합니다. '분본(糞本)'이라고 하죠. 가을에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본'은 무엇일까요? 한 사회, 또는 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본'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것이 가을을 견디는 일입니다. 사회에 가장 저력으로 묻혀있는 가능성을 키워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과 논리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려 하는 '문맥'에 갇혀있다"

그럼 어떤 사람을 키워내야 할까요? '머리, 가슴, 발'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람은 머리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책에서 읽거나 선생에게 강의를 듣고, 신문, 텔레비전 등을 보고 압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인식은 주입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회 상부에서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게 반드시 있습니다. 이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외에도 '문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중세에는 마녀 처형으로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의 마녀가 처형됐습니다. 처형당한 마녀 중에는 강압에 의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승인하고 처형당한 이도 많았습니다. 중세를 지배했던 마녀 '문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어떨까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 사회에는 근대 사회를 경고하며 쌓이고 쌓인 강고한 '문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하며 우리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논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근대적인 '문맥' 속에 우리는 갇혀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왕따'였습니다. 30명이 감옥 생활을 했는데, 그 안에서 저는 한동안 다른 재소자들을 대상화해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손 가족인지,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 등을 파악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완전히 근대 '문맥'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깨달았죠. 마치 근대와 전근대, 비근대를 대상화 했던 똑같은 논리를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재소자들이 겉으론 아무리 친하게 대해도 실질적으론 왕따였습니다.

그러다가 작업장 등에서 수감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사연을 듣게 되자 '아, 나도 저 사람과 같은 부모를 만나 같은 경험을 했다면 같은 죄명을 가지고 저 자리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이야기해볼까요?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나이가 마흔쯤 된 친구에게 접견이 왔었습니다. 생전 편지도 받지 못하던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그 친구도 놀라고 같은 방 수감자들도 놀랐습니다. 접견을 마친 뒤 궁금해서 물으니 자기 또래 남자가 왔는데 자신의 엄마가 개가해 가서 키운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수감자의 엄마는 2살과 3살인 자식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개가를 했던 겁니다. 엄마가 들어간 집은 남매를 두고 어머니가 죽은 집이었답니다. 엄마는 그 집에 가서 그 남매를 계속 키웠고 그렇게 자란 아들이 접견을 온 것입니다. 둘이 만나니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참 침묵 후에 굉장히 미안해 하며 "만약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데려 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속에 있고 당신이 밖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대상화, 분석화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 아픈 거랑 마음 아픈 거랑 굉장히 차이가 나잖아요. 마음이 굉장히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참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같이 이해를 하게 됐습니다.



"분석보단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게 필요"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감옥에서 한 방을 사용했습니다. 저녁 시간 신입 수감자가 방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신입이 들어오면 노인네가 신입을 두고 '이리로 와보라'고 한 뒤 자신의 70 평생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신입이 들어온 지 하루가 안 돼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이 노인이 별 볼일 없는 게 파악되기 때문에 신입이 듣지 않습니다. (웃음)

노인의 이야기를 매번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들었습니다. 한 4~5년 정도였죠. 그렇다보니 외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의 부끄러운 부분은 빠지고 자랑하는 부분은 부풀려지는 걸 알 수 있었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만약 저 분이 자기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실제로 살았던 삶이 아닌 각색한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인생 이야기를 각색했다는 건 약간의 반성도 있고 이루지 못한 소망도 있다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 노인을 사실의 주인공으로 이해할 것인가, 각색된 삶의 주인공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상당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노인의 사실대로의 삶을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가 각색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석과 이성적 판단보다는 아픈 마음을 열고 그를 이해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가장 먼 여행입니다. 여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5~7년 걸린 듯합니다. 그때서야 감옥에서 왕따를 면했습니다.


"우월감을 버리고 자기를 변화시키며 관계를 건설해야"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동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아픈 마음을 자기 삶 내의 깊숙한 곳에 들여 놓는 것, 즉 관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발'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근대 사회가 냉정한 개인의 존재성을 중요시해서 개인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계속되면서 폐단이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는 근대 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가치가 톨레랑스라고 합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톨레랑스가 최고의 덕목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수감자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굉장히 마음 아프고 충분히 이해하고 나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한 연민, 우월감, 차이…. 이런 것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톨레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에 있을 때 같이 있던 친구 중 이름이 '대의(大義)'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 볼 때마다 '당신 아버지가 참 속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른도 안 됐는데 절도 전과가 3개나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어느 날,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고 물으니 굉장히 기분 나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돌이 채 되기도 전에 광주도청 앞 대의동 파출소에 버려져 그냥 '대의'라고 이름 지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자를 통해 그 사람을 읽으려 했던 나의, 먹물들의 관념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또 예를 들어볼까요. 나이 많은 목수가 집 그림을 그릴 때는 주춧돌을 먼저 그리고 제일 나중에 지붕을 그립니다. 이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집짓는 순서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책, 학교, 교실에서 자기 인식을 키운 저는 지붕부터 집을 그리는데 말입니다. 이런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이라는 건 서로 존중하고 공경할 것이 아니라 차이야 말로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단히 감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고 소통은 불가능"

변화하지 않고는 지금 화두가 되어 있는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그래 네가 말해봐라, 내가 들어볼께' 식은 소통이 절대 안 됩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기 의견 변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때만이 소통이 가능합니다. 변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기 영토를 고집하고 그 영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든 기득권은 변화를 거부합니다. 자기 서버를 지키는 데 몰두하는 웹 1.0세대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젊은 세대의 정서는 웹 2.0으로 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버인 셈입니다. 정서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가슴에서 발까지, 또 하나의 긴 여행,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의 관념성을 버리고 저 사람들을 배울 수 있을까. 안다는 게 많은 지식을 가진다는 걸 말하진 않습니다. 생각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문맥'에 갇혀 있는 걸 뚫고 나와야 합니다.

교도소에서는 담배를 못 핍니다. 그래서 담배 값이 굉장히 비쌉니다. 직원 사무실 청소하러 가는 젊은이들이 교도관 재떨이에 꽁초를 줍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잘 아는 직원들은 재떨이에 물을 가득 부어 꽁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젊은이들은 물에 빠졌지만 다행히 풀어지지 않은 담배를 가져와 말린 뒤 팔거나 핍니다. 맛이 좀 심심합니다.

말린 담배 꽁초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름을 지으면 심심하겠지만. (웃음) 교도소에서는 '심청이'라고 불렀습니다. 미적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애정, 공감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자기 변화, 자신을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 아닌 숲"

어떻게 관계를 만들까요? 숲을 만들기 위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아직도 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리 중심으로 뭔가 자기 이념을 강요하려는 근대 '문맥'에 갇혀 있습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해야 합니다. 사람들 정서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제가 얼마 전 오대산을 갔습니다. 오대산 저쪽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 이쪽으로 흐르는 물은 남한강이 됩니다. 대단히 먼 여행입니다. 반면 오대산 바위, 즉, 웹 1.0 바위는 자기 정체성이 매몰되어 있는 바위입니다. 멀리 못 갑니다. 거기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시냇물은 강물을 만나면 자신이 강물이 됩니다. 강물은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됩니다. 부단히 변화합니다. 자기 영토성, 이해관계를 버리고 꾸준히 변화하는 유목주의, 그게 근대를 벗어나는 탈근대의 화두입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하면서 소통하고, 점점 바다로 가야지 자기는 변화하지 않고 톨레랑스, 즉 근대 패러다임의 변형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가 변화해서 숲으로 가야 합니다. 사실 '발'이라는 건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우리 삶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게 하나의 나무라면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나 낙락장송이 아니라, 숲입니다. 나무의 최고 형태는 숲입니다. 숲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회를 바꾸진 못했지만 나 자신은 바꿨다"

길고 긴 여행(수감 생활)을 마치니 20년이 걸렸습니다. 마칠 즈음 저는 근대적인 '문맥'에서 나 자신이 시원하게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연민, 공감, 공존의 근대적 변형을 뛰어넘고 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개조를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실천가들이 사회를 바꾸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자기를 바꾸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사회는 바꾸지 못했지만 나 자신은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뒤 친구들은 저보고 칭찬하느라 그런지 '너 하나도 안 변했다'고 했습니다. 옛날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칭찬인가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웃음) 크게 변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됩니다. 가치 지향이 없으면 문제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함께 가면 길은 등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계몽주의 사고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이상주의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저절로 생깁니다. 누군가에게 스승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제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함께 갑니다. 여기 모임도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숲. 감사합니다.


글 정리: 프레시안 허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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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충정로역.
환승하려고 걸어가는 도중에 김규동 시인이 보였다. 시가 바로 시인이라... ^^

추석날이면 
소주 한 병 들고
남산에 올라
혼자 울었다
북쪽 고향 하늘 그리며

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은 아직 빌딩의 숲이 아니었고
하늘은 맑고
대기오염같은 것도 없었다
남산은 우리 모두의 산
서울의 심장
남산에 오르지 못한 지도 한참 되었다.




사실 내가 충정로 역에서 이 시를 발견한 것은 추석이 막 지난 어떤 평일이었는데, 지금도 걸려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내가 참 좋아하는  김규동 시인의 시를 하나 덧붙여 둔다. 언젠가 S 선생님께서 낭랑하게 읽어주시던 바로 그 시다.
 

육체로 들어간 꽃잎

- 김규동 -

먹었단 말입니다
연한 이파리
무지개 같은 진달래를
순이와 난 따 먹었어요
함경도의 3월은
아직 쌀쌀하나
허전한 육체에
꽃은 피로 녹아
하늘하늘 떨었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평안도 약산 시인은
노래했으나
밟고 가다니 사치하잖아요
먹었단 말입니다
심장으로 들어가게 했지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기다리겠노라고
전라도 강진 시인은 노래했으나
도대체 뭘 기다린단 말인가요
모란이 뭔지도 모르는 바람 센 땅에서
기다릴 것도 없이
우린 불붙듯 하는
진달래를 따 먹었어요
 
여름내 땀 흘려 농사짓고
겨울엔 이태준의 <문장> 잡지를 읽는
이름 없는 농부의 딸 순이와 나는
입술같이 연한
진달래 이파리를 따 먹었어요
 
순인 북에 있고
난 남쪽에 있으나
둘의 심장으로 들어간 진달래꽃만은
세월이 가도
고동치면 돌고 있답니다
사시사철 꽃은 피고 있답니다.  

 

노 시인의 마음 깊은 곳이 상처와 그리움이 밀려 온다. 
굳이 거창한 표현을 쓰지 못하더라도 김규동 시인의 시를 보면 남북 문제가 보다 전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들게 한다.

이 뿐만 아니라, 모든 지하철 역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마다 시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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