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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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다른 번역서 등을 통해 접한 문학동네의 번역과 교정교열 능력은 타 출판사에 비해 월등했던 것 같다.
내가 문학동네의 출판 품질에 매료 되었던 것은 일부 까칠한 독자들의 무조건적인 들이대기 번역과 오타 논란에 일침을 가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방대한 내용이 발 빠르게 국내 출시 되었을 때 늘 그랬듯이 잘못된 번역과 오타가 많다고 여기저기 소문이 떠돌았다.
이에 문학동네 담당자는 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통해 1Q84의 번역에 최선을 다했으니 1,2권에서 오타(출판사별 특성상 논란이 예상되는 띄어쓰기는 제외)를 찾아내면 한 건 당 10만원씩 주겠다는 과감한 제안을 했고, 끝까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에 그에 대한 번역과 오타 논란은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수년 간 나는 다양한 독서 틈틈이 민세문집(민음사세계문학전집) 280권을 완독하였는데, 내 마음이 참으로 풍요로워 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뒤늦게 시작된 문동문집(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이 90권을 돌파한 시점에 이르러 새로운 마음으로 시리즈의 시작인 안나 카레니나1,2,3권부터 이 시리즈의 완독을 결심한다.

해설에 따르면 소피아 안드레 예브나의 1870년 2월 24일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남편의 이야기가 있다.

"어제 저녁에 그는 나에게 상류사회 출신으로, 시집은 갔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한 여성 유형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자신의 과제가 이 여성을 가련하고 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그에게 이 인물이 떠오르고 난 뒤에는 이전에 떠올려두었던 다른 인물들과 남성 유형이 제자리를 찾고 이 여성 주위에 묶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젠 내게 모든 것이 분명해졌소'라고 그는 말했다."

이 구상은 8년이 흐른 뒤 레프 톨스토이 백작이 지천명에 이르러 세상에 발표 하였고, 다시 1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박형규 선생님을 통해 번역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러시아 장편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복잡한 이름의 등장인물들과 헷갈리는 상황들의 반복... 이 소설도 그러한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국내 웹 사이트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검색해 보면 식상하게도 오역 논란 등으로 번역자의 수고에서 극히 일부인 약점 잡기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글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펜을 든 저자의 생각 그대로의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까? 세계 각국의 언어에 취약한 나는 번역자의 수고로움에 찬사를 보내며 아주 황당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늘 그들의 번역에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비난 할 거면 내가 직접 번역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번역서를 읽으면 기분이 더 맑아지는 것 같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감히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것일까?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언급하고 본문은 시작 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본문은 이 문장을 서두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가 가정교사와 바람피운 사실을 아내 돌리에게 들키면서 사흘간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연으로 시작 된다.
스테판은 문제의 해결사로 페테르부르크로 시집간 여동생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안나 카레니나)를 호출한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 키티로부터 청혼을 거절 당한 레빈은 상처 받고, 그의 연적인 브론스키는 어머니에게 키티와의 결혼을 허락 받기로 한다.
바람피우다 걸린 친정 오빠 스테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스크바로 달려오는 안나는 지루와 열차에서 백작부인(브론스키의 어머니)과 우정을 쌓게 되었는데...
도착한 역에서 열차 사고를 목격하고 충격(불길한 징조)을 받는 한 편, 사고로 죽은 남자의 유족들을 위해 기부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청년 브론스키에게 감동 한다.

해결사 안나에 의해 스테판과 돌리 부부는 쑥스러운 화해를 하고, 안나는 예정보다 일찍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한편 브론스키와 키티의 혼사는 혼란에 빠지고, 안나와 같은 열차로 페테르부르크에 당도한 브론스키는 그 운명적인 만남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두 사람의 불륜은 시작 된다.
모스크바의 키티는 배신의 이유도 잘 모른 채 상처받고 큰 병이 들어 어머니와 함께 요양을 떠나고, 브론스키에게 키티를 빼앗기고 시골로 내려간 레빈은 그 황당한 소식에 급우울 모드...
아내의 불륜에도 체면만을 생각하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바람 난 마누라 안나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오히려 경멸을 받기에 이른다.

이 소설이 전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음처럼 절망 속에서 피는 아름다움 꽃도 있는 것이다.

그가 잘못 보았을 수는 없었다. 그 눈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에게 생의 광명과 의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녀였다. 바로 키티였다. 그는 그녀가 기차역에서 예르구쉬오보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이 불면의 하룻밤 내내 레빈의 마음을 동요시켰던 온갖 계획, 그가 품었던 온갖 결의,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는 자기가 농부의 딸과 결혼하여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고 혐오감을 느꼈다. 다만 저기에, 오직 빠르게 멀어지면서 반대쪽으로 가버린 저 마마 속에만 요즈음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 소박한 노동의 삶이 아무리 좋아도 난 이제 그리 돌아갈 수는 없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2권 제3부 83~84쪽)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고, 경마장 다녀오던 길에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고, 심증만 있었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는데, 아내가 원하는 이혼 거부는 물론이고 그녀를 괴롭힐 방법에 대해 고심하는 어리석은 삶을 시작한다.

"내 삶을 그녀와 맺은 것은 잘못이었다. 그러나 내 잘못 가운데 비난받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불행할 턱이 없다. 비난받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하고 그는 자기에게 말했다. (제2권 3부 87쪽)

혁명적인 정신으로 시골에서 일에만 매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던 레빈에게 잊혀져가던 여인 키티가 나타나 새로운 불꽃이 타오르고...
순산 하였으나 생명이 위독한 안나를 죽음 앞에서 용서하는 체면 제일 가치의 남편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권총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남는 브론스키의 명예는 뒤바뀔 수밖에 없게 되는데...
불륜의 상징이 된 두 사람은 안나의 남편과 어린 아들을 페테르부르크에 방치하고 건강 회복을 위해 이탈리아로 요양 여행을 떠난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지배자의 언어에 대한 비판은 곳곳에 드러나는데 간략하게 다음 문장과 같다.
러시아 귀족의 공통적인 습관에 따라 하인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은 러시아어로 이야기 하지 않고 일부러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2권 5부 436쪽)

레빈과 키티 부부, 안나와 브론스키... 바로 그 두 커플사람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 가는데, 인간이기에 완벽하지는 않고 눈빛 하나, 마음 하나, 언어 하나, 행동 하나를 통해 오락가락하는 심리묘사가 일품인 소설이다. 어디 특정한 부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문장이 그러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에 대한 배려심을 키워줄만한 문장이 차고 넘친다. 톨스토이의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독자로서 내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대한 질책으로 다가올 정도다.

시대상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나타내는 표현도 많은데, 레빈의 쪼잔함을 부각시킨 인물 중에 하나인 바세니카 베슬로프스키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냥이나 하며 늘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저 농민들은 무한정 일만 하고 있죠.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제3권 6부 80쪽)

자신의 가정이 붕괴될 위기에서 구원해 준 안나가 오히려 스스로의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의 도피에 빠진 것을 생각하는 돌리의 마음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샘솟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안나를 비난한다. 어째서일까? 도대체 내가 더 나은 게 무엇일까? 나에게는 적어도 내가 사랑하고 있는 남편이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는 아닐지언정, 아무튼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안나는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것이 왜 나쁘다는 것일까? 그녀는 살고 싶어 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의 영혼에 그러한 마음을 심어 놓은 것이다. 나라도 틀림없이 똑같은 짓을 했을 것이다.' (제3권 6부 118쪽)

브론스키는 점점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지만 그를 사랑하는 안나는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행복을 느낄지언정 쉽게 거리로 나서지 못한다. 사람들의 손가락을 피해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살아가며 깊은 내공을 쌓아 가는 안나 카레니나...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압도당한다. 레빈도 안나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한 때 그녀로 인해 상처받은 키티도 그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지만 그녀는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점점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외로움은 브론스키에 대한 집착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이 순간 레빈의 관점에서 한 가지 상념...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 더구나 수입 이상의 생활을 하면서 술에 절어 예전에 아내가 사랑한 적이 있는 사나이와 함부로 우정을 맺기도 하고, 게다가 또 타락한 여자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여자를 방문하는 더없이 분별없는 짓을 하고, 더욱이 또 그 여자에게 마음이 이끌려 아내를 비탄에 잠기게 한 후에 자기가 편안히 잠들 수 있으리라곤. 그러나 그는 피로와 전날의 불면과 술기운 덕분으로 곤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제3권 7부 307쪽)

지극히 완벽한 삶을 추구 했던 남편의 인생을 망치고, 그 남자의 저주로 이혼 수락도 못 받고, 믿는 것은 오로지 동거남 브론스키... 안나는 결국 방황을 시작한다.
자, 이제부터 어디로 갈까······ 나를 길러준 큰어머니한테 갈까, 돌리한테 갈까, 그보다도 혼자서 외국으로 가버릴까, 그이는 지금 혼자 서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싸움이야말로 마지막일까, 아니면 아직 화해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전 친구들은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 일을 어떻게 여길까, 그리고 만약 드디어 일이 터져버리면 그 뒤엔 어떻게 될까 하는 갖가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3권 7부 380쪽)

한 때 브론스키가 사랑했던 키티에 대한 질투, 어느 날 브론스키를 찾아온 라일락 빛 모자를 쓴 묘령의 여인에 대한 질투는 그녀에게 커다란 히스테리를 발동 시키고 마침내 열 받은 브론스키는 떠나버린다. 브론스키와의 재회를 꿈꾸면서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가는 아름다운 안나에게는 브론스키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목격했던 열차 사고가 하나의 복선이었다. 그녀는 현실 도피의 방법으로 떠나는 열차 바퀴 사이로 몸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떠난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제3권 7부 428쪽)

모두에게 큰 아픔이 된 안나의 자진이 있고 두 달 후,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레빈의 둘째 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 고백한다.
"정말 무서운 시기였어요! 아니, 당신이 뭐라고 하든 그 여자는 좋지 않은 여자예요. 아니, 정말 어쩌면 그렇게 무서운 정열이 다 있는지 모를 일이예요! 그런 정열은 모두 뭔가 엉뚱한 짓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거예요. 그리고 그 여자는 마침내 그것을 보여준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를 망치고 두 훌륭한 남자를, 자기의 남편과 나의 불행한 아들까지 망쳐버린 것이니까요." (제3권 8부 449쪽)

레빈의 철학적인 깨달음과 그에 대한 독백으로 작품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앞으로도 나는 역시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논쟁을 하기도 하고 부적절한 때에 내 사상을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내 영혼의 지극히 거룩한 곳과 남들의 영혼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의 영혼과도 장벽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의 공포 때문에 아내를 꾸짖기도 하고 그것을 뉘우치기도 할 것이다. 또한 나는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제3권 8부 522쪽)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 된다. 연구자들은 안나의 모델이 된 여인의 외모는 푸쉬킨의 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가르퉁이라고 분석해 내고 있으며, 자살의 모티브는 사랑의 상처를 받고 열차로 뛰어든 집필 당시의 한 여인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호메로스의 시에서 '머리'라는 뜻으로 쓰인 '카레논'이란 단어가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의 이름으로 녹아 났다가 다시 한 세기 뒤에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의 말 잘 듣는 충견 이름으로도 연결되는데, 바람난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안나의 장례식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안나의 딸을 넘겨받아 키운다는 사연으로도 고전과 고전을 잇는 묘미를 준다. 카레닌과 대비되는 삶을 살아가는 레빈은 '레프 톨스토이'의 이름에서 기인한 작명으로 작가의 화신이라는 수긍할만한 분석도 있다.

러시아 소설을 읽다 보면 파불라(fabula:fable;실질적인 이야기 재료)와 슈줴트(sju.et;실제로 이야기 된 줄거리나 또는 사건들이 함께 연결된 방법)라는 해설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의 파불라와 슈줴트는 누군가의 해설보다도 독자 스스로의 판단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책을 다 읽었으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어떤 이의 제안에 두고두고 다시 읽게 될 책이므로 소장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 매번 달라질 내 주관적 작품의 해설과 의미 있는 문장들을 예상하며 양해를 구한다.

흥미로운 도입부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읽어나가는 동안 재미없음에 다소 질리기도 했는데, 결국 다 읽고 나니 그 과정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는지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그것이 내가 이번 독서를 통해 얻어낸 쾌감이다. 인간의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순간순간에도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듯한 섬세한 심리묘사는 나로 하여금 더욱더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준 톨스토이는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영감님이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문동문집 완독을 향한 목표는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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