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철학 -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
함돈균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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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군들 땡땡이 무늬 양말 하나에 구조주의가 숨어 있는 줄 미처 알았을까?
[사물의 철학]은 참 재미있는 책이다. 일단 이야기마다 잡은 소재들이 매우 친숙하고 친밀하다. 냉장고, 축구, 가로등, 포스트잇, 팝콘.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대하여, 내 생활에 아주 당연하게 들어와 있어 그것이 거기 있는 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던 것들에 대하여 저자는 글을 썼다. 그들의 쓰임에 대하여? 글쎄, 그것도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겠다. 그 사물의 타고난 쓰임에 대하여기도 하고, 그 쓰임에 내재된 인간의 성질에 대하여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이 그 본연의 쓰임을 어떻게 바꾸었나에 대하여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것은 ‘그 사물의 쓰임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어떻게 바뀌었나에 대하여‘ 이기도 하다.

 

 이 30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와 참 많은 줄다리기를 했다. 때로는 저자가 잡아 끄는 줄에 훅 딸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저자와의 팽팽한 힘싸움을 하며 내 쪽으로 줄을 당기기도 했다.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고, ‘아, 이건 정말 기가 막히네.’ 싶을 정도로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줄다리기는 꽤나 피곤했지만 이런 책은 어쨌건 읽는 즐거움을 준다. 나는 왜 이에 대하여 동의하는가 혹은 나는 왜 이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가. 이 두 가지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자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굳이 저자와 줄다리기를 하며 읽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저자가 이끄는 대로 술술 따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는 아주 흥미롭게 사물을 바라본다. 뒤집어보고 던져도 보고 굽혀도 보고. 양말 하나에 얼마나 집요한 시선이 얽혀 있는지, 냉장고 하나에 얼마나 많은 생명의 원한이 얽혀 있는지 깜짝 놀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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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정석
장시영 지음 / 비얀드 나리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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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짧은 영어 문장을 동원하여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만든 영어 문장들을 읽고 교포 친구들이 가장 많이 피드백 했던 말이 있다. ‘너무 한국식 영어야.’ 실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국식 영어는 뭐고 미국식 영어는 뭔가? 영어면 다 똑같은 영어지.

 

 아마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찾아 읽고 배우고 싶어했던 것 같다. [영어의 정석]의 저자 장시영은 한국식 영어 교육의 폐해를 정리하고, 이제 그만 영어답게 영어를 익혀보자며 이 책을 썼다. 영어다운 영어는 다른 게 아니라 영어의 생성 원리에 따른 어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영어다운 영어를 익히기 힘들어하는 원인도 이것이 아닌가 싶다. 영어 어순 원리와 그 어순 그대로 이해하고 구사하는 방식으로 들어가야 영어 다운 영어를 할 수 있을텐데, 우리는 한국어의 기준과 시점으로 영어를 익히려 하니, 거기서 오는 어색함이 결국 한국식 영어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평소 원서 읽기와 미드 보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한국식 영어 교습법에 고통 받는 나 같은 사람들을 보며 그는 ‘영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고 그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영어 학습서인 이 책의 본문으로 냉큼 들어가 접속사니 5형식이니 하는 것들에 몸을 적시기 전, 저자의 서문을 읽어보면 이 책을 어떻게 학습해야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도움이 된다.

 

 한 마디로 영어를 어설프게 알고 있는 어른들을 위하여 탄생한 이 책은 내지도 어른들의 학습법에 맞추었다. 단순히 설명과 예문이 이어지기보다는, 영어라는 언어의 공간감을 전달하는 데에 주력한 걸로 보인다. 어순이 단순이 이 앞이요, 저 뒤요 하는 식이 아니라, 3차원의 공간 속에서 영어 단어나 구조가 자연스럽게 익혀지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아직 이 책을 중반도 다 못 보았다. 한 번에 제대로 봐서 한 번에 모든 걸 다 이해해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으로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 까닭이다. 전에 언젠가 효과적인 공부는 한 권을 여러 번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늘부터라도 학습 방식을 바꿔볼까 싶다. 어쨌거나 교재가 좋으니 나만 잘하면 다 잘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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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글배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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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사람이 있다. 사람은 모두 저 마다의 색이 있어서 각자가 타자들과 섞일 때마다 저마다의 관계는 다양한 색깔로 나타나는 듯하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만나면 에너지 넘치는 주황색, 그 노란색이 파란색을 만나면 생기 도는 연두색이 되는 것처럼. 같은 사람에게 걸쳐 있는 여러 관계는 상대의 색에 따라 그 색깔이 천차만별로 나뉜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조금 알았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내 마음에 드는 색깔로 나타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뜻하지 않게 보라색을 만난 노란색은 전혀 취향이 아닌 갈색깔의 관계에서 피곤함을 느끼기도 하고 기대하고 만났던 하늘색과의 관계가 기대에 못 미치는 희멀건 풀색깔로 나와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관계들이다. 그렇다고 내가 노란색인 것을 부정하거나 내 존재 자체를 책망하고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민상담소 ‘글배우서재’를 운영하고 있는 글배우가 다시 책을 펴냈다. 직업과 연령에 상관없이 1년에 2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상담소를 찾아온다고 한다. 그들과 색색깔깔 각양각색의 상담을 나눈 저자는 그 상담을 하면서 그가 배우고 느끼고 정리한 것들을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써서 책에 담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라는 이 책의 제목은 문장 그대로 나 자신에게 주는 독백 같기도 하고, 이 제목과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타인에게 전해주고 싶은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본문은 마치 시처럼, 여백과 호흡을 넉넉하게 넣어 빚었다. 저자의 일방적인 가이드나 경험담 풀이가 아니라 마치 내담자를 앞에 두고 건네는 말처럼 만들어보려는 저자의 의지가 읽힌다. 공간은 넉넉한데 문장은 너무너무 긴 것은 좀 아쉽다. 어떤 부분은 죽 읽어내려가다가 마침표가 나오지 않은 채로 문장이 시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다시 문장의 처음부터 읽어내려갔던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은 오래도록 곱씹으면서 정말 내가 나한테 이야기하든 가슴에 간직하게 된 부분도 있다.

 우리는 모두가 마음과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운명들이다. 마음따로 몸따로 가면 얼마나 힘든지 사무치게 잘 알고 있고 마음이든 몸이든 둘 중에 어느 하나가 힘들면 다른 하나도 곧 같이 아프게 된다는 사실도 수없이 경험한 존재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가 동지고 동료이고 벗이다. 저자가 책 속에 쓴 부분 중에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하고는 거리를 두라고, 그게 둘 사이에 가장 편안한 관계이며 그런 관계를 찾아가는 여정이 삶이라고 한 곳이 있었다. 그래, 모두가 동지이고 벗이니 서로 간에 알맞은 거리를 찾아가보자. 모두하고 가까울 필요는 없다. 정말 평생에 내 마음 알아줄 한 명만 있어도 그 생은 성공한 것 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나고 보니
말할까 말까면 그냥 말하지 않는 게 좋고
꼭 말해야 될 건
용기내서 말하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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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 : 대한민국 행복 리포트 2019
최인철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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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행복'을 주제로 출간되었던 흥미로운 책, [굿 라이프]를 쓴 최인철 박사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 센터장이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대한민국 대표 메신저인 카카오톡은 지난 몇 년 간 합작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 실태 조사에 나섰다.

 

최근 카카오톡으로 간간히 전달되는, '심리테스트'나 여타 재미있는 설문조사 등을 실행하는 카카오[ 같이가치]를 들어보셨는지? 이것은 단순한 설문조사가 아니라 카카오와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가 함께, 2017년 9월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행복연구센터가 개발한 ‘안녕지수’ 측정치가 카카오 마음날씨 플랫폼에 탑재되어 이용자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조사에 응할 수 있고 행복 뿐 아니라 다양한 심리검사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 [ABOUT H ; 대한민국 행복 리포트 2019]는 그 측정치를 정리하여 출간한 보고서다.

 

 '행복을 실시간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왜냐면 행복이라는 체험 자체는 언제나 현재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며 미래의 행복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행복하고 싶다'라고 할 때의 그 행복은 내일의 행복도, 내년의 행복다 아닌 지금의 행복이 아닌가? 우리가 행복하고 싶어 할때의 행복은 언제나 '지금' 필요한 것이다.

 

 행복은 신선도가 중요하다. 과거의 행복은 유효하지 않다. 미래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행복하기 위하여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톡이 함께 카카오 같이가치가 대한민국인들의 현재 행복 수치를 측정하기에 나선 것이다. 지금 필요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탄생한 ‘안녕지수’. 다수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안녕을 보고할 수 있는 플랫폼은  이렇게 등장했다.

 

 이 실험적인 보고서 ABOUT H의 재미 요소는 유쾌하고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현재 한국인들의 생각과 정서를 담아냈다는 데에 있다. 100만 명의 응답을 담았다고 하는데, 100만 명보다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개개인의 심리적 특성을 고려한 분석 리포트라는 점이다. 모바일을 통해 접속한 데이터 결과다 보니 응답자 개개인의 특성 분석을 통하여 보다 세밀하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이 리포트에는 우라나라 연령별로 그리고 성별에 따라 특정 이슈 혹은 환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행복을 느끼는지(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디테일한 결과가 실려 있다.

  행복에 관한 특별한 질문도 재미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우리를 얼마큼 행복하게 했을까?’, ‘평창 올림픽은 행복 올림픽이었을까?’, ‘지역별 성격차이, 정말 있을까?’ 등 타이틀만 읽어도 흥미진진한 질문들이 가득하다.

 한국의 오늘에 대하여, 내 안녕에 대하여 돌아보게 되는 부분도 있다. ‘사회비교를 하면 과연 덜 행복할까?’, ‘물질주의 공화국 대한민국’ 등 대한민국인들의 인식 내부를 신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도 알차다.

 일상 생활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 '안녕. 다들 안녕하시지요? 안녕이라는 단어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安寧, 편안할 안 그리고 편안할 녕. 몸의 편안함을 뜻하는 단어였다면 이 리포트에 ‘더 많이 감사할수록 더 행복해진다’와 같은 내용이 실릴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의 편안함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같으리라. 우리 마음이 안녕하기 위하여, 과연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 ABOUT H, 이 리포트를 참고 삼아 답을 찾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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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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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작가로, 여행기나 에세이의 저자로 많은 책을 펴낸 정여울 작가가 이번에는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에세이를 펴냈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내면서 ‘내가 사랑하는 심리학과 내가 걸어온 문학의 발자취, 내가 떠나온 모든 여행이 만나는 가슴 떨리는 접점’이라고 했다. 고흐의 작품을 관찰하고 그가 쓴 편지를 가이드 삼아 그의 생애를 따라가 본 저자의 여행기라고 부를만한 이 책은 저자의 소감 그대로다. 심리학의 시선으로 마주한 고흐의 내면, 길가의 이정표에서 여정을 읽어내듯 시대와 편지글에서 읽어낸 고흐의 정념이 만나는 책이다.

 

 책의 부제가 매우 인상적이다. ‘누구나 한번은 인생에서 빈센트를 만난다’. 부제를 읽고 책을 읽고 고흐의 작품들을 읽고 난 후에 상념에 빠진다. 왜 우리는,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빈센트 반 고흐를 이토록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걸까.

 

 저자가 읽어낸 빈센트의 삶은 너무나도 치열하고 혹독하고 처연하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빈센트는 ‘타인과 함께하는 삶에 서툴렀지만’ 타인과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놓은 적이 없었다. 가족이든, 동료든, 벗이든 타인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결국 함께할 수 없었던 그의 애착은 그의 그림이 전달하는 깊은 고독과 좌절 그럼에도 끊어지지 않는 열망에서 그대로 읽힌다.

 

 


[꺾이지 않는 자존심과 터져 나오는 분노]
 빈센트는 이렇듯 모든 것을 의인화하는 재능이 뛰어났다. 고갱의 의자를 그릴 때 마치 고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의자에 고갱의 꿈틀거리는 표정과 화필을 담아내고, 구두를 그릴 때는 마치 구두 주인이 살아온 세월을 신발 한 켤레에 압축한 것처럼 생명과 인격을 불어넣었다. 고갱의 의자를 그린 작품을 보면 빈센트가 고갱과 함께하는 삶에 얼마나 큰 기대감을 품고 있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의자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빈센트는 타인과 함께하는 삶에 서툴렀지만, 잠깐이나마 타인과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마다 훌륭한 작품을 그려냈다.
 빈센트가 사회생활에 서툴렀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분노나 격정을 숨기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197쪽 

 

 


 저자가 안내하는 빈센트의 모습은 내가 그동안 알았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정도가 훨씬 깊고 진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면과의 싸움, 자신의 광기조차 그림에 바치는 물감처럼 사용했던 그의 열망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외곬수인 동시에 애정결핍이었던 그의 양가적인 감정과 그 감정의 표출이 이 정도로 위태롭고 파괴적인 것인 줄 이제야 알았다. 그러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 이 시대에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빈센트 본인이 그림에 실어놓은 혼신의 위력일 것이다. “사람들은 화가가 색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면, 저 사람은 돌았다고 욕을 하지.”라고 한탄하면서도 그는 자신만의 화풍과 신념을 꺾은 적이 결코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객사한 몽티셀리의 불행을 보면서 “나는 그가 어느 카페 탁자에 쓰러져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라고 했던 고흐의 말은 그의 작품에서 온전하게 그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어떤 별에 가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고 썼던 그는 불행과 고통 중에서 오히려 그 고통을 직시하는 법을 배우고 그 내면의 광기를 자신만의 희망의 별로 가는 동력으로 삼았다.

 

 이 책은 참 슬프다. 빈센트의 삶이 너무나 슬프고, 그가 생애 내내 싸워야 했던 심연의 고독이 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기에 슬프다. 아, 그래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한번은 인생에서 빈센트를 만나는 가보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의 절망과 상처와 고독을 이겨내기 힘겨울 때에 우리는 빈센트를 만나러 가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앞서, 이 모든 고독에서 도망치지 않고 처절하게 싸우다 장렬한 작품을 선사하고 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말이다.

빈센트는 이렇듯 모든 것을 의인화하는 재능이 뛰어났다. 고갱의 의자를 그릴 때 마치 고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의자에 고갱의 꿈틀거리는 표정과 화필을 담아내고, 구두를 그릴 때는 마치 구두 주인이 살아온 세월을 신발 한 켤레에 압축한 것처럼 생명과 인격을 불어넣었다. 고갱의 의자를 그린 작품을 보면 빈센트가 고갱과 함께하는 삶에 얼마나 큰 기대감을 품고 있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의자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빈센트는 타인과 함께하는 삶에 서툴렀지만, 잠깐이나마 타인과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마다 훌륭한 작품을 그려냈다.
빈센트가 사회생활에 서툴렀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분노나 격정을 숨기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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