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age 혁명, 실리콘밸리가 일하는 방식 - 종이 1장으로 팀을 움직이는 소통의 기술
마이크 필리우올로 지음, 고영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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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소모임을 나간 적이 있다. 소모임이 시작하는 첫 날, 그때의 미션은 ‘나를 한 장으로 쓰기’였다. ‘자기소개 해주세요~’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자기를 글로 써보라는 미션은 처음 받아본 나는 그때, 종이 한 장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느꼈다. 쓸 것은 많았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오늘 뭐를 먹었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하고 어딜 가고 저녁엔 뭘 할건지를 써도 나에 대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별 의미없는, 다이어리에나 적을 법한 일정 따위를 적는 걸로 ‘나를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라는 사람의 생각, 내 가치관, 내 선택의 기준, 내 생각과 의식의 중심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려볼 때는 대충 쓸만하겠다 싶은데, 글자로 옮기려면 그때부터 복잡해진다. 실타래가 엉킨 채로 풀어지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나는 나를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하다는 현실을.

 

 [1page 혁명, 실리콘밸리가 일하는 방식]은 나를 표현한 종이 한 장, 1page가 효과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의 시작이자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생각’이라는 건 참 묘하다. 분명 마음에, 머리 어딘가에 분명히!! 있는데, 이걸 정작 내 눈에도 보이고, 다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글로 표현하려고만 들면 다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냇가에서 피라미를 잡으려 이리저리 어망을 들이대보지만, 바위 틈으로 잽싸게 숨어버리는 탓에 눈으로는 그들의 흔적도 좇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이라는 게 잡으려 하면 그렇더라. 그래서 이 생각이 어느 정도 묵직하고, 부피감 있게 여물었을 때에야 비로소 어망에 낚이는 것 같다.
 [1page 혁명, 실리콘밸리가 일하는 방식]은 어망에 낚일 정도로 생각이 여물고 숙성되도록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깊은 사고를 유도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명료하고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정리하도록 이끈다.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기원한다. 모든 선택 역시 생각에서 잉태된다. 이미 우리의 생각 속에는 내 행동과 선택과 내 미래가 향하는 행로까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리더십은 노력이 필요할 뿐 실천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훌륭한 리더십의 비결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바라는 리더의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일부 독자들은 ‘아니야! 리더십은 실천이 중요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건 동의하지만 이는 한 발 앞선 생각이다. 어떤 기준으로 실천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것인가? 명확한 리더십 철학이 없는 실천은 위험하다.
 물론 당신에게는 당신의 행동을 이끄는 고유한 신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념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이 책은 당신의 행동을 이끄는 신념을 분명히 정의하고 나타내는 과정을 안내한다.
12쪽

 

 

 이 책의 가장 첫 번째 타겟은 아마 기업 CEO같은, 어느 조직의 수장-리더를 대상으로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현지 리더의 위치에 있는 독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만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리더란, 카리스마와 지휘력을 가지고 조직을 끌고 가는 장군의 유형이 아니다. 진실하고 솔직하게, 때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약점까지 드러내면서 사람들과 공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그런 사람을 ‘리더’라고 썼으나, 나는 읽는 내내 ‘좋은 사람’이라는 말로 읽었다. 좋은 리더란 결국 좋은 사람이라는 걸로. 혁신적인 리더가 되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되라. 단,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는 이 책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자. 권위와 명령이 아닌, 소통과 공감으로 주변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리더이고, 진짜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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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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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면은 우리가 무심코 바라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곳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원래의 자연적 모습과 땅의 질감을 잃어버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납작해진 경관이다. 계획된 도심 주거지 건축이다. 평평한 운동장과 컴퓨터 게임 화면이다. 우리의 시각적 삶을 지배하는 픽셀 또는 프린트로 뒤덮인 평평한 정보의 표면이다. 평면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지형의 다양성에 대한 추상적이고 인공적인 공간의 승리이다. 평면의 일부는 보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또 다른 일부는 차마 눈으로 보기 괴로울 수도 있다. 평면은 문명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살아 숨 쉬는 지구에 대한 인간의 불경함의 표시이기도 하다.
20-21쪽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어째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들 속에는 네모가 가득하냐고 묻는 노래다. ‘네모난 아버지 지갑, 네모난 지폐, 네모난 팜플렛, 네모난 학원’. 여기 등장하는 네모난 것들은 모두 인위적인 것, 그러니까 사람이 만든 것들이다. 자연적인 것의 정반대 측에 서 있는 것들이다. 


 B W 힉맨이 쓴 [평면의 역사]를 읽다보면 이 노래가 연상된다. 이 둥근 지구에, 바다의 수면은 둥글고, 산은 울퉁불퉁한 이 지구에서, 사람들은 평평하게 땅을 다져놓고 산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평면’이다. 바닥면, 벽면, 가구면. 하다못해 우리가 날마다 쓰는 스마트폰이나 신용카드의 기본 형태는 ‘평평하다’. 그렇게 꾸며놓고, 그런 평평한 것들로 도배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신체는 정작 평면이 없는데도 그러하다. 참 이상한 일이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평면’이 인공적인 공간이며 이 평면을 문명화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 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내가 쓰는 거의 모든 것들이 평평하지만, 정작 내 신체도, 내 생각도 평평하거나 밋밋한 구석은 없다는 현실 인식이 든 것이다.

 

 저자는 왜 인간은 자연계의 평면화에 그토록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는지와 왜 인간은 인공적으로 평평한 사물의 제조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이 두 가지 질문에 알맞은 답을 찾기 위하여 276페이지에 이르는 짧지 않은 여정을 안내한다. 단지, ‘평면’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공간 인식이 어느 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떻게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이 추적의 단서로 동서양의 신화와 여러 역사 및 문화적 요소들을 그러모았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신선한 인식을 준다는 면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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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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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위해 기도하려고 회교 사원에 두 번 간 적이 있었는데, 회교 사원의 힘이 유태인들에게는 별 효험이 없는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118쪽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여자는 몸을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 노년이 되어 더 이상 그녀의 몸을 사는 사람들이 없게 되자 창녀들이 낳은 아이들을 키워주는 탁아소 비슷한 걸 하면서 연명하게 되었다. 그녀가 맡아 기른 아이들의 피부색은 다양했다. 다문화 다국적 기조의 트렌드세터였던 것이다,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이었던 그녀는 종교와 피부색, 심지어 부모가 누구인지도 상관없이 맡은 아이들을 돌봤다. 모모는 늙고 못생긴 그녀의 뺨에 키스하기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하여 쓰레기통에서 꽃도 줍고, 그녀를 위하여 기도도 한다. 조숙하고 똑똑하고 유별나게 예민한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통하여 비로소 ‘자기 앞의 생’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자기 앞의 생을 깨닫는 일과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아주 다르다. 그 ‘생’이라는 말종과 죽을 힘을 다해서 다투는 사람도 있고, 그 ‘생’의 엉덩이에 깔려서 평생 비명만 지르다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생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비열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색하고 아주 특별한 몇몇에게는 자비롭다. 아무 힘없는 인간의 입장에서 그런 ‘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모모가 해낸다. 이 책의 끝에서. 아주 참담한 슬픔과 고통을 통하여, 모모는 결국 인정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니라,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하여, 이 뭣 같은 생을 밥처럼 씹어 삼키기 위하여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
311쪽

 

 

 다 읽고 나서 이토록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소설이 또 있었나? 나는 생각해본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한 이상한 기분 속에서 이 작품을 돌이켜본다. 대체 이건 무슨 이야기였을까, 무슨 소리였을까? 내가 읽은 건, 어쩌면 내가 들은 건? 아, 이건... ‘생’이 걸어온 말이었다. 내 앞의 생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녀는 무척 차분해 보였다. 다만 오줌을 쌌으니 닦아달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79쪽

 

 

생이 마치, 자기가 이렇다고 말하는 듯하다. 생이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고 정말 도저히 못 봐줄만큼 못생긴 것이 내 앞의 생이 가진 얼굴이라고 해도 사랑해 달라고, 살기 위하여 사랑하라고 한다.

 이 소설만큼 슬픈 소설은 흔하지 않다. 중반부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소설 한 장을 읽을 때마다 휴지 한 장을 써야 했다. 결코 울고 싶지 않은 날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울고 말았다. 그러나 이 소설만큼 삶에 의욕을 주는 소설 역시 흔하지 않다. 참 아이러니 하다. 삶 자체가 본래 아이러니한 것이다. 어차피 길의 끝에 기다리는 것이 죽음뿐인 허무한 것이 우리의 생인데, 정작 그 생의 굴절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허무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랑이나 희망 같은 것들이다. 누군가 이 책에 대해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생의 아이러니를 가장 행복한 빛깔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그녀는 무척 차분해 보였다. 다만 오줌을 쌌으니 닦아달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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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품격 - 삶이 곧 하나의 문장이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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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직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씨줄과 날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가운데 서로 교차하고 겹치면서 엮여 가는 그 감각이 직조(織造)라는 단어에 넉넉하게 묻어난다. 이 감각은 때로는 창조와 생산이라는,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짜릿하고 생동감 가득한 기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노동과 피로라는, 한껏 달음박질을 한 뒤에 정수리부터 뒷목까지 모든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듯한 고단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살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언덕과 내리막, 평지와 진흙탕길이 교차하듯 직조되는 일이고 ‘나’라는 존재 역시, 내 생애라는 어떤 시간과 그 속에서 움직여가는 내 자신이 직조하여 만들어진다. 
 
 이 직조의 감각이 잘 어울리는 또 다른 개념으로 ‘시간’이 있다.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는 두 가지다. 수평으로 흘러가는 연속적인 시간의 개념인 크로노스와 특정한 혹은 순간이나 주관적인 시간의 개념인 카이로스다. 개개인은 누구나 저 두 가지 시간이 직조된 총체적 시간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삶은 자기만의 주관적인 시간, 그러니까 회상이나 추억 혹은 몰입(시간을 초월하여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집중) 같은 카이로스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24시간 7일과 같은 보편적인 크로노스가 교차하며 엮어낸 양탄자 위를 달리는 일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기주 작가의 신간 [글의 품격]에서 이런 시간의 개념을 만나서 대단히 반가웠다. 누구나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삶에도 공통점은 없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24시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시간은 실은 저마다 다 다르게 흘러간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로 직조된 시간의 총체, 이것들이 만든 카펫의 커다란 그림은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다.

 같은 주제, 비슷한 감상으로 글을 쓰더라도 사람마다 글이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글의 품격]은 이기주 작가가 어머니의 병환과 회복, 작가로서의 사유,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로서 그리고 사회인(기자)으로서 생각하고 느꼈던 감각들을 직조한 책이다. 그 생각과 느낌들은 오래 숙성하였다가 건져 올려, 생풀의 냄새가 나는 날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숨이 가라앉아 단정하고 부드럽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부드러운, 원만하고 살가운 그런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강렬한 메시지를 강속구로 던져 메다 꽂는듯한 글이나 책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부들부들한 우유 푸딩처럼 뭉클하고 담백한 글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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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어원을 알고 나는 영어와 화해했다
신동윤 지음 / 하다(HadA)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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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와 화해하고 싶은 사람, 손? 나는 분명히 영어와 다투거나 싸우거나 서로 사이가 틀어진 적이 없는데 (혹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이가 그다지 가깝지는 않다. 이상하다. 왜 나는 너를 그토록 가까이 하며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였건만 너와 나 사이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걸까?

 [영어어원을 알고 나는 영어와 화해했다]는 책의 제목을 보고, 이 표지를 들여다보면서 나와 같은 마음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언컨대 이 책이 필요가 없다. 미드건 영드건 영화건 이런 저런 영어의 글자와 소리 속에 발을 담가본지 어언 몇 년이건만, 영어와 나는 아직도 사이가 소원하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을 위로하고, 영어라는 언어 체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로을 보여주는 지도다.

 

 중학교 때였나, 부모님께서 영어 어원을 쪼개서 가르쳐주는 영어 학원에 나를 보내려고 하신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뭐, 그런 걸 배우냐’며 거부했다. 참나. 그랬던 내가 이제사 이 책을 읽고 있다. 


 [영어어원을 알고 나는 영어와 화해했다]는 저자가 그동안 공을 들여 수집하고 분석한 영어 어원을 집대성한 책이다. 고대 코카서스인들의 남하 그리고 서쪽으로의 이동에 따라 어떤 언어들이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나중에 탄생한 후발주자 격의 언어인 영어가 어떻게 현재 국제사회의 공용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산스크리트어와 영어의 관계는 대체 어떻게 되나?
 영어의 어원을 라틴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영어 단어들이 굉장히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은 단순히 영어 단어를 좀더 쉽게 암기하게 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단어가 탄생하기까지 혹은 통용되도록 한 서구 문화권을 투영해주는 역할도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문화, 그 문화 이면에 자리한 개념과 인식, 궁극적으로는 사고 체계까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책은 서문부터 본문까지 오직 어원과 그 어원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단어들을 연이어서 열거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들을 접하게 되고, 그 단어들의 뜻을 안내할 뿐 아니라 이 단어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왜 이런 뜻을 갖게 되었는지) 안내해 준다.

 머리를 식히기 위하여 재미와 흥미로 읽을 책이 있는가 하면, 이런 책처럼 좀 시간을 들여 공부하듯 공들여 읽어야 할 책도 있다.
 곧 있으면 시작되는 추석 연휴가 긴데, 넉넉한 휴일동안 영어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해줄 이런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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