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 나태주 시평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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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때는 꼭, 각 인물의 대사를 입으로 소리내어 보라고 한다. 직선과 곡선으로 박제된 글자로서가 아니라, 둥글려지는 혀의 울림과 길거나 짧게 마치 파도의 나래처럼 저절로 움직이게 되는 운율이 소리를 타고서야 비로소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현한 의미의 진짜 표정은 말하는 이의 혹은 듣는 이의 얼굴로 옮겨 고스란히 물든다.

 소리의 마법. 글에 고정된 감상과 감정이 말과 운율을 타고 되살아나는 마법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은 詩의 장막이다. 구어와 운율을 양 날개 삼아 어느 한국인에게나 익숙하게 시의 세계로 날아오르게 이끄는 민족시인, 김소월. 국민시인이니 민족시인이니 하는 수식어로 김소월을 부르는 이유는 비단 진달래꽃이라는 작품이 유명해서만은 아니다.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새로 펴낸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의 서문에서 나태주 시인은 김소월의 시가 어떻게 민족성, 보편적인 국민성을 획득하는지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시인 가운데 김소월만큼 장기간에 걸쳐 폭넓은 독자층의 지지를 확보한 시인이 있었던가. 김소월의 시는 단연 독보적 존재로서 우리 민족의 마음을 울리며 장강과 같이 오늘에 이르고 있고 내일로 가고 있다.
 시에서 말하는 개성과 보편성을 두고 볼 때도 김소월만큼 그 두 가지 면을 고르게 성취한 시인이 없다. 김소월의 시야말로 개성, 시인만의 오로지한 특성이 분명하면서도 독자들에게로 향한 보편성도 드넓게 열린 시라고 할 것이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 5쪽

 

 시의 재료가 감정이란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보다 좋은 마음은 없다. 사랑의 대상이나 그리움의 대상으로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이 될 수도 있다.
 이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말, 예쁜 말, 착한 말로 정성껏 다듬어 쓰는 시가 바로 연애시이다. 이러한 연애시야말로 시의 본령이며 독자들이 진정 원하는 시이며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시이다.
 그런 점에서 김소월의 시가 연애시라는 점은 비난이 아니라 칭찬이 되어야 한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 7쪽

 

 김소월 시의 바탕은 우선 우리의 전통적 민요에 있다. 민요적 가락을 십분 발휘하여 시를 이룬다. 한때는 7·5조라 그랬지만 그 이론이 극복되고 지금은 3음보 가락이라고 말을 한다. 우리의 민요의 기본 리듬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3음보 가락을 변용시켜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본다. 시인만의 체질화된 숨결이라 하겠다.
 소월 시의 그다음 특성은 철저한 구어체 문장의 사용이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 9-10쪽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에는 나태주 시인의 여는 글, 김소월의 작품들, 김소월 시인이 쓴 유일한 시론인 시혼詩魂까지 한 권에 엮여 있다.
 33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김소월 시인의 생애는 내가 다 아깝고 안타깝다. 릴케는 시는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므로, 벌이 꿀을 모으듯 시인은 한평생 의미를 모으고 모아 쓰는 거라고, 그래서 한 행의 시를 쓰기 위하여 많이 보는 거라고 했다. 많이 본다는 말은 곧 오랜 시간을 본다는 것이리라. 십 년의 짧은 시간 동안 민들레 같은 진실한 시들을 남긴 김소월 시인에게 만약 그 다음 십 년이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나태주 시인이 서문에서 쓴대로,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숙성하고 정제되어 보다 풍요롭고 향미 짙은 숲을 이루었을 그의 시詩 세계를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낭만이 아니라, 분명한 유산이 되었을 그 세계의 부재를 실감하기 때문에 아깝고 안타깝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집, 내가 전에 만나지 못했던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감탄하고 감동하는 일에 단순한 즐거움과 기쁨일 뿐 아니라 아련한 그리움이 더해지는가 보다. <진달래꽃>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대략만 알았던 김소월의 시 세계는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계절은 여름을 기약하는 봄인데 시집 속의 시인은 때로는 흑백의 겨울에서, 또 가끔은 먼지 바람이 이는 가을에서 그리움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다. 이별이, 서러움이 계절을 가려 묻고 오지 않으니 그런 이별의 섦을 노래한 김소월의 시 역시 사계절을 가려 묻지 않고 읽히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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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나부 아키라 지음, 김옥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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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번역어에 대한 연구는 언어와 사상, 사회 현상에 대한 연구와 반드시 연결되기 마련이다. 개념이 없다면 그 개념에 해당하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과 현상의 존재 증명은 언어의 몫이다. 어떤 개념을 뜻하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개념에 해당하는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인 한이나 정이 다른 언어권으로 넘어갈 때나, 영어권의 right, individual이 우리말로 넘어올 때 넘어야 하는 장벽을 가능한 매끄럽게 해결하기 위하여 번역가들이 각 언어권의 사회 및 생활상을 넓고 깊게 연구해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 언어권마다 존재하는 개념과 현상의 편차. 아무리 세계는 하나, 지구촌 한 가족이니 어쩌니 해도 이런 편차의 장벽은 계속 존재하리라 싶다. 같은 말을 쓰는 남한과 북한에서조차 70년의 단절의 결과로 엄청난 개념과 현상의 편차가 있는 걸 보면 그렇다.

 

신간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는 번역어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사회, 개인, 근대, , 연애, 존재, 자연, 권리, 자유, (그녀)10개의 어휘가 19세기 중반에 서구로부터 일본으로 유입된 과정과 결과를, 야나부 아키라 저자가 정리했다. 봉건시대에서 근현대로 진화하면서 가장 커다란 변화를 보인 것이 언어일 것이다. 이 책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는 메이지 시대(1800년대 중후반)에 일본으로 유입된 서구 사상에 담긴, 일본에 없던 개념과 현상을 일본어로 번역하기 위하여 고민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자취가 잘 담겨 있다.

사회社會라는 단어는 오늘날 학문과 사상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신문, 잡지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온갖 활자 매체에서 쓰이고 있다 게다가 비교적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는 society의 번역어다. 대략 메이지 10년대(1877~1886) 무렵부터 활발히 쓰이기 시작했으니까 역사가 약 1세기 정도 된 셈이다.

본래 society는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운 단어였다. society에 해당하는 말이 일본어에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해당하는 말이 없었다는 것은 곧 society에 대응할 만한 현실이 일본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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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는 궁극적으로 개인individual을 단위로 하는 인간관계다. 좁은 의미의 인간관계든 넓은 의미의 인간관계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나 에서는 사람들이 신분으로서 존재했지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않아 society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14

 

10개의 어휘 중 가장 첫 번째 꼭지는 society인데 이 단어가 社會사회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번역의 장벽이 단순히 의미 전달의 어려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어를 들여오는 건, 개념을 들여오는 것이며 그 개념이 뜻하는 현상과 그 현상에 연결된 세계까지 함께 들여오는 일이다. 당시 일본에는 관계를 맺는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society에 내포된 관계성을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없으니 사회라는 단어에 이 개념을 입히기까지 번역가들과 당시 지식인들의 노력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이와 비슷한 현재의 예로 mindfullness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이 단어의 번역어인 마음챙김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내 안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인가?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에서 가장 재미있는 꼭지는 제5장 연애와 제7장 자연 그리고 제8장 권리였다. 특히 제8장 권리의 경우 powerright의 개념 차이, rightpower의 번역어로 권이 널리 쓰였으나 본래 right의 개념은 힘과는 대립하는 것임을 설명해주는 데, 이건 일본의 경우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것이어서 흥미로웠다. 서구 사상서들의 경우 (요즘은 원서를 다시 번역해서 출간하는 책들도 많으나) 일본적으로 번역된 내용을 다시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책들이 많기에, 19세기 중반의 사상서들에 등장하는 주요개념이 어떤 배경과 이유로 근대, 사회, 자유 같은 한자단어들로 번역되었는지를 한번쯤 살펴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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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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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코넬리는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다. 30년 가까이 범죄스릴러소설을 써왔다.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는 벌써 7편이 발표되었고, 살인전담반 형사인 해리 보슈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는 22편이 발표되었다. 두 개의 굵직한 시리즈물 외에도 다양한 소설을 출간했다고 하니 마이클 코넬리의 정력적인 작품 발표에 감탄만 나온다.
 
 그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그 상업성과 대중성을 인정받고 있다. 미키 할러 시리즈의 첫 편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매튜 매커너히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졌고, 보슈 시리즈는 드라마로 제작 중이라고 한다.

 

 마이클 코넬리가 소설작가로 전향하기 전의 이력도 화려하다. 기자로 일했던 그는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단다. 기자로 일하면서 취재한 수많은 범죄 사건들이 그가 쌓아온 작품 세계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을 그 전에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추리나 범죄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편이라 그렇다. 범죄스릴러나 수사물, 법정물은 드라마로 보는 게 박진감 최고라는 개인의 취향 탓이 크다. 인간 쓰레기라고 할만한 문제인물들의 변호를 주로 맡는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는 그래서 나에게 무척 생소했다. 그래서 경력이 그토록 화려한 작가의 이렇게 대단한 시리즈, 미키 할러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배심원단]은 읽기 전부터 낯섦과 설렘을 동시에 주는 묘한 소설이었다.

 

 

 

 

 [배심원단]은 미키 할러가 지방검찰청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1년이 지난 뒤다.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자존감과 자존심에 모두 상처를 입은 미키 할러는 일에 몰두한다. 인간쓰레기의 변호인으로 악명이 높은 미키 할러는, 그가 석방시킨 션 갤러거가 사람 둘을 치어 죽이면서 딸과의 사이도 완전히 틀어져 버린 상태다. 희생자 둘은 딸의 친구와 그 엄마였고 딸은 아빠의 삶의 방식, 악인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직업적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키는 어떻게든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지만 심지어 한 시간 반 거리의 도시로 전처와 딸이 이사를 가게되는 등 관계 회복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를 괴롭히는 건 딸과의 관계 뿐 아니다. 그는 션 갤러거 사건으로 촉발된 깊은 죄의식에 시달린다. 자신의 직업적 활동이 낳은 희생자들, 피해자들은 그의 무의식 중에서 계속 그를 괴롭힌다. 열두 명의 배심원단 앞에서 그는 의뢰인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이 심판받는 듯 느낀다. 악인을 옹호해야 하는 변호사로서의 죄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의 제목이 [배심원단]이라는 사실이 작품 전체에 긴밀하게 깔려 있다.
 
“그 작자 이름은 갤러거예요, 션 갤러거. 제 할 일을 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요, 아저씨. 제가 석방시킨 사람 때문에 사거리에서 두 명이 차에 치여 사망했는데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만 하면 책임이 없어지나요. 어찌 됐든 이만 가볼게요.”
32쪽

 

딸 헤일리가 나와 인연을 끊으면서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 의뢰인 명단에는 약쟁이나 살인범 같은 ‘인간쓰레기들’이 우글거린다고 했다.
38쪽

 

“네가 항상 갖고 있는 죄책감 말이야. 그게 변호사로서의 네 역량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니까 문제다. 변호사로서, 피고인의 옹호자로서, 이 사건에는 부당하게 기소된 피고인의 옹호자로서 네가 보여줘야 할 업무능력에 악영향을 미치니까.”
231쪽

 

 미키 할러 시리즈는 법정 스릴러답게 범죄와 법, 재판에 관련한 공방이 촘촘하고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배심원단]은 특히 미키 할러가 법을 대하는 자세, 배심원단을 설득하는 과정,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저자의 전언이지 않을까 싶다.) [배심원단] 속에서 악인과 선인의 경계가 없다. 누굴 악인이라고 할지, 누굴 선인이라고 할지 모르겠는 모호함이 아니라 아예 ‘선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위 말해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 지점이 미키 할러 시리즈가 갖는 냉엄한 현실성이다. 미키가 변호하는 의뢰인은 살인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살인자는 아니다. 하지만 살인자가 아닐 뿐 선인은 아니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미키의 멘토 역할을 하는 리갈은 이렇게 말한다.
 
법은 무른 납과 같아서, 구부려서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법은 유연한 거야. 구부릴 수도 늘일 수도 있지.” 리걸 시걸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27쪽

 

 이건 법이 느슨하고 안일해서가 아니다. 법이 심판하는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 자체가 하나의 기준, 하나의 잣대로 무 자르듯 분명하고 명료하게 재단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심원단]은 이런 인간의 한계와 특성을 ‘법’이라는 현미경을 통하여 들춰낸다. 미키 할러가 문제인물들을 어떻게 변호해서 결국 어떤 방법으로 승소하는지의 과정을 읽는 것도 재미있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이런 시각을 읽는 것도 그 이상으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법과 재판에 대하여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저자가 굉장히 집요하고 철저한 취재와 검증으로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책장을 넘기면서, 재판 과정과 법리에 대한 인물들의 대화를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된다. 단순히 흥미와 자극 위주로 쓴 작품이 아닌, 깊이 있는 취재와 해석 그리고 생생한 인물 창조로 빚어내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은 출간할 때마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배심원단] 덕에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을 뿐 아니라 추리소설, 스릴러 장르에 대한 인식의 전환까지 되는 중. 진짜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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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강변
임미옥 지음 / 봄봄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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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강변]은 충북일보에 ‘임미옥의 산소편지’를 연재해 온 임미옥 수필가가 그간 발표했던 작품들을 엮어서 펴낸 수필집이다. 청주에서 1인1책 펴내기 교실에서 수필을 강의하고도 있다는 저자는 이번 [꿈꾸는 강변]이 세 번째로 펴낸 수필집이다. 


 카카오 브런치의 영향인지 재작년부터 여러 종류의 에세이서적 신간이 풍성하게 서점을 채우고 있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저자들이 쓴 파격적이고 날렵한 저작들이 포진하고 있는 에세이 시장에 중년의 수필가가 쓴 수필집이란 ‘호흡도 차분하고 문맥도 지루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은 인상을 먼저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임미옥 수필가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신문에 수필을 연재하고 수필 작법을 강의하고 있다는 저자답게 구성과 문장,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나 느슨함 없이 잘 짜여있다.

 

 [꿈꾸는 강변]을 읽으면서 정말 이 글을 참 좋다, 싶은 내용들을 추려본다.

 

 올해도 흐드러진 꽃송이들이 하늘을 빽빽하게 덮어버린 무심한 꽃길을 걸었다. 그 아이 또래 남학생들이 꽃나무 아래서 툭탁 치고 받으며 장난을 친다. 아이야, 인생길을 가다 길을 잘못 들어서는 이가 어찌 너만 있었겠니. 다시 돌아 나오면 되는 것을 너는 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구나. 백두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어느 지점에 와서 이쪽 길이냐 저쪽 길이냐 택함에 따라 동해와 서해로 흘러가도, 언젠가는 한 바다에서 만나지기도 하거늘, 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구나.
 26쪽 [꿈길에서 꽃길에서]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던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 훔친 오토바이로 달리다 새벽에 사고로 죽은 아이, “교회에서 밥 준다면서요?”라고 말하던 아이. 잘 알지도 못했던 그 아이를 불현 듯 추억하며 쓴 에세이. 세상에 그렇게 방황하다 덧없이 스러지는 안타까운 아이가 어디 그 아이 하나겠으며, 알고 보면 마음 짠해지는 사연이 어디 한둘이겠나. 그럼에도 이 에세이가 내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 아이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저자의 마음이 살뜰해서다. 잠시의 인연으로 알게 되었던 그 아이를, 지금은 아마 그 아이의 피붙이조차 간직하고 있지 않을 그 아이의 한 때를, 저자만큼은 의식 깊은 곳에 고스란히 접어 두었다가 어느 날엔가 이렇게 펴 보는 일이 슬프고 고맙고 아름답다. 그래, 인생은 가다가 잘못 들어서면 돌아 나오면 되는 일인데 그렇지.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정 반대의 방향으로 갈라지더라도 언젠가 한 때 정도에는 너른 바다에서 마주치기도 하게 되니 뭐가 어떻든 그래도 계속 흘러가볼 일이다. 그때 그 아이가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린 그 안타까운 인생의 맥을 추모하는 저자의 글 마디마디는 살아오면서 우리가 아는 동안 그리고 모르는 동안 어긋나버린 인생의 많은 인연을 연상하게 만드는 마중물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주목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서로를 탐색하며 마음놀이를 하는 그 짜릿함이라니.... 마음에 흐르는 이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지 모른다. 좋은 감정이 사람사이에 흐르면 그 파급이 치달아 행복이라는 황홀을 창출하며 삶은 풍요로워진다. 우리 모두는 한 이성과 마음놀이를 하다 사랑의 못으로 뛰어들었고, 나오지 못하여 결혼하지 않았던가.
51쪽 [마음놀이]

 

 손녀와 마음놀이를 했다는 저자. 나도 마음놀이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적어놨다, 다이어리에 마음놀이. 저자가 짚었듯이, 연애도 그렇다. 결국 마음놀이다.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들여다보아 주다가 같이 살게 되고, 같이 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그렇게 마음놀이를 할 수 있는 손녀도 만나게 되고, 그런 거구나.

 

 그 무렵 수필을 만났다. 수필은 찬란한 무지갯빛 옷을 입고 다가왔다. 변심해버린 연인의 마음이 이럴까? 온 마음이 수필에게 옮겨졌다. 수필의 늪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수필은 내게 거대한 물결과도 같았다. 큰 물결이 작은 물결을 덮어버리듯, 큰 감정이 작은 감정을 덮어버리듯, 수필은 내 모든 삶을 일시에 덮어버렸다. 좋은 글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쓰는 게 좋아 글을 쓰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그러니, 기본자세 익히느라고 한 달 내내 활만 긋에 하는 첼로가 뒤로 밀린 건 자연스런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어느 덧 십년을 보냈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하여 십년을 몰두하면 전문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도 있건만, 나의 글 세계는 부끄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의 졸작을 여기저기서 달라는 것이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여기저기 지면에 내보냈다. 뿐만 아니라 그간 책을 두 권이나 엮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던 나를 사람들이 수필가 누구로 내 이름을 불러준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며 써댔던 결과로 얻은 이름이라 생각하며 뿌듯해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얼마나 야성적인 글들이었던가. 나의 행동들은 겁을 상실한 행동이었다.
 136-137쪽 [첼로 줄을 갈며]

  
 최근에 1인1책 내기가 열풍이다. 무슨 전국민 캠페인 같다. 내 유튜브 채널 하나 정도 있어야 하고, 내가 쓴 책 한 권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요즘의 시절이다. 이런 트렌드에 대하여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라는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다. 원고쓰기나 글쓰기는 단순히 책을 내기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임미옥 수필가가 ‘수필쓰기’를 만나게 된 순간을 적은 이 내용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글쓰기는 삶의 고통이나 고민들,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 크지만 인생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별 것 아닐 게 분명한 여러 가지 것들을 덮어버릴 수 있다. 큰 물결이 작은 물결을 덮고 큰 감정이 작은 감정을 덮듯이. 그런 글쓰기의 힘을 느꼈던 저자가 10년 간 몰두해온 수필의 세계가 바로 이 책에 담겼다. 그래서 이 책 [꿈꾸는 강변]은 아주 진중하고 진지하고 견고하다. 

누군가의 마음에 주목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서로를 탐색하며 마음놀이를 하는 그 짜릿함이라니.... 마음에 흐르는 이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지 모른다. 좋은 감정이 사람사이에 흐르면 그 파급이 치달아 행복이라는 황홀을 창출하며 삶은 풍요로워진다. 우리 모두는 한 이성과 마음놀이를 하다 사랑의 못으로 뛰어들었고, 나오지 못하여 결혼하지 않았던가.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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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보급판, 반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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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전염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미국의 확진자 수는 조만간 2만 명을 돌파할 듯 보이며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1만 2천명을 넘어섰다. 각국이 전염병 관리를 위해 외국인들의 유입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그동안 하나의 나라나 다름없었던 지구촌 시민들은 순식간에 각방을 쓰는 소원한 사이가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정작 음식과 생필품이 간절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해 SNS에 눈물의 호소를 올리는 풍경도 빚어졌다. 마치 지구별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가 되어가는 것 같은 요즘이다.

 

누군가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 이 시기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고 그동안 사는 일에 바빠 놓쳤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 참다운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도 한다. 코로나 19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의미에서의 쉼표를 선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슬로우 라이프, 힐링의 시간,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발견하는 쉼표의 기회는 먹고 사는 형편이 그래도 좀 나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우리나라 정부가 긴급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소상공인 대상으로 초저금리 대출을 열겠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각 지역의 주민센터와 은행 등에는 문의가 빗발친다. 어디 문의 뿐인가. 어느 은행에는 대출을 상담 혹은 신청하기 위하여 한걸음에 달려온 상인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줄을 섰음에도 상담의 기회조차 없었다고 토로하는 상인들이 적지 않다. 지금 대출을 받아야 가게가 견디는데 대출이 2달 후에 나오면 무슨 소용이냐며 한숨 쉬는 상인들도 있다. 코로나19가 쉼표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마치 법원에서 날아온 차압 딱지처럼 원치 않는 마침표를 받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난데 없이 수용소로 끌려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기약 없는 절망의 생활을 견뎌야 했던 저자의 기록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의사로 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3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 후 기적적으로 생존한 그는 수용소에서 그가 발견했던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이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로고테라피' 기법에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 쓴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크게 3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수용소 생활의 기록, 로고테라피 설명, '비극 속에서의 낙관'의 실제 의미와 역할.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생존기 정도로만 이 책이 읽힐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책이다. 1984년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가 쓴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제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된다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 9-10쪽

 

 

생의 어떤 순간에라도 나의 삶은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취급을 받더라도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삶의 주체가 되는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심지에 따라 지옥의 한가운데에서조차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체험기를 통하여, 자신과 자신 주변의 수용소 사람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증명해낸다. 삶을 움직이는 것은 모호한 행복이나 가치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의미'라는 사실을.

 

 

이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발간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조명 받아야 한다. '실존적 공허' 다른 말로 하면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권태와 허무를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세대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 실존적 공허의 문제와 해법을 아주 명확하게 짚어낸다. 코로나19 블루를 호소하는 시민들을 위하여 여러 문화예술 기관에서는 집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문화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간서치의 입장에서는 이 책이야말로 코로나19 블루를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보인다.

 

단순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 블루 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여러 문화를 통하여 자리 잡은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인식에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경종을 울린다. 유발 하라리니 칼 세이건이니 하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모두 틀렸다는 것은 아니나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우연에 의하여 나타난 존재일 뿐이라는 인식은 너무나 위험하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 인식이 가지고있는 치명적인 신경증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가르침, 즉 인간은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의 결과물이거나 유전과 환경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이론은 태생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다. 인간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환자로 하여금 자기가 믿고자 하는 것, 즉 자기가 외적인 영향과 내적인 환경의 담보물이나 희생물이라는 사실을 믿게 만든다. 이런 신경증적 숙명론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심리치료법에 의해 조성되고 강화된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책 209-210쪽

 

 

우리나라에서 프로이트나 아들러가 추앙받는 것에 비해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이 된 듯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로고테라피'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인간은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타계했지만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책 211쪽)"는 그의 전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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