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드무비 작성일 : 2006년 06월 08일
장작을 패며 나는 배운다
싸움꾼의 원칙과 자세에 대하여.
두 눈 부릅떠 결을 가눌 것
옹이는 절대 피할 것
순서는 마른 것에서 젖은 순으로.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도끼질할 때
원칙과 자세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1990년, (<한국대표노동시집> 475쪽)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는 제목이 좋아서 나도 지니고 있는 시집인데
이상하게 이 시는 오늘 아침에서야 처음인 듯 내 눈에 들어온다.
백무산의 '장작불'이란 시가 있었다.
노래를 만든 이는 백창우였던가?
아무튼 가사도, 비장한 멜로디도 너무 좋아서
한때 음주 후 반주 없이 부르는 노래로 즐겨불렀던 곡이다.
자취 때부터 지금까지 결혼하고도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남동생은
신촌의 대학가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노래패('맥박')에서 활동했다.
오오래 전, 학교 강당에서 공연이 있다고 오라 해서 퇴근 후 갔더니
조금 늦었는데,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내 남동생이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멤버들이 옆에 포진하고, 잠시 솔로였다.
내 가족이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 이라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장작불'이라니......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장작불
백무산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만국의 노동자여』,청사,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