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헬레이저 4 Hellraiser: Bloodline, 1996
감독 : 죠 채펠리, 알란 스미시, 케빈 야거
출연 : 브루스 람세이, 발렌티나 바거스, 더그 브래들리, 샤로트 샤톤 등
등급 : R
작성 : 2008.12.27.
"당신의 유전자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즉흥 감상-
달리고 달려 만나게 된 ‘무모한 사람(?)’ 그 네 번째 이야기! 그럼, 점점 망가져가는 작품의 이어달리기속에서 모처럼 마음에 든 이야기였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검푸른 우주공간을 유영중인 어떤 구조물의 모습과 함께 2127년의 어떤 우주기지라는 설명에 이어, 어떤 한 남자가 밀실안의 로봇을 원격 조정해 ‘상자’의 봉인을 풀고는 게임의 끝을 선언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하지만 때마침 찾아오게 되는 무장병력으로 보류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그들은 당시대 최고의 우주기지를 설계하고는 탈취해버린 박사를 취조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수세기전에 만들어지게 된 ‘퍼즐 상자’의 탄생이 말해지게 되는 것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렇게 과거의 어느 날, 흑마술을 하는 마법사의 수장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감히 예술이라 할 수 있을 상자를 만들게 되는 한 남자가 등장하게 되는데요. 그것이 지옥의 문을 여는 도구가 되어버렸음을 알게 되고는 그것을 파괴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도 잠시, 세상으로 나와 버린 악마의 힘에 굴복 당하고는 오히려 상자를 만든 자신의 가문대대로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세대를 거듭하는 동안 가문의 저주로 인해 꿈속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악마’들과의 전쟁이 이야기되던 중 결국 현재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는, 우주기지를 탐색하던 무장병력들의 노력으로 봉인의 방에서 풀려나게 된 악마들의 ‘고통의 행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완구 제조공’ 가문의 마지막 싸움을 말하게 되는데…….
시공을 초월해 고통을 전파하기에 바쁜 수도자와 상자를 통해 그들을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이번에 만나게 된 이야기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상자를 우연히 손에 넣고는 죽기 싫어서 발버둥치는 주인공이 아닌, 저주로 인해 꿈을 꾸며 가문의 기억을 전승하고 있는 한 남자가 이야기의 바통을 쥐고 있었는데요. 앞선 이야기인 ‘헬레이저 3 Hellraiser III: Hell On Earth, 1992’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상상하기도 무서웠던 그 광경에 대한 나름대로의 현실적 해석이 있었다는 점에서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의 소제목이기도한 ‘Bloodline’은 직역해서 ‘혈통’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범죄와 심령이 뒤섞인 드라마를 즐겨보시는 분들은 아마도 ‘격세유전 隔世遺傳’이나 ‘환생과 관련된 전생의 기억’ 등 친숙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했습니다. 비록 앞선 세 이야기에 공통으로 등장한 여인의 언급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며, 악마처럼 표현되는 수도자들 보다 인간이 더 위협적인 존재라는 설정 등 입장이 바뀌게 됨에 철학의 균형이 붕괴되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어버렸지만, ‘퍼즐 상자’의 기원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으며, 문을 열었기에 다시 닫아야만 했던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책임성의 중요성’라는 교훈(?)을 주는 듯 해… 네? 말을 너무 빙글빙글 돌리지 말고 꼬집어서 적으라구요? 네. 사실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를 한꺼번에 다루면서도 혼란스럽기 보다는 원저작자분의 ‘피’에 대한 이론이 연상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만족감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나름대로 어떤 ‘피의 기억’을 가지고 계십니까? 혹자는 ‘유전자’를 가지고 그것을 말하기도 하고, ‘전승’이라 말해지는 전해져 내려오는 집안의 이야기를 말 할 수도 있을 것인데요. 꿈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한다지만, 잊어버린 어떤 사명을 기억해내기 위해 반복되는 꿈을 꿀 수도 있다는 설정은 ‘데자뷰 deja vu’라는 이론까지 떠올리게 했을 정도로 ‘어떤 선택의 때를 위한 사전준비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헬레이저 5 Inferno, 2000’를 집어 들어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감기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을 때 치유된다고는 하지만, 다들 감기조심하세요~ 콜록 콜록 콜록…… 크핫핫핫핫핫!!
TEXT No. 0842
제목 : 헬레이저 5 Hellraiser: Inferno, 2000
감독 : 스콧 데릭슨
배우 : 크레이그 셰퍼, 니콜라스 터투로, 제임스 리마, 더그 브래들리 등
등급 : R
작성 : 2009.01.23.
“내안에 고통 있다.”
-즉흥 감상-
오오 드디어 ‘무모한 사람’ 그 다섯 번째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연속극도 아니면서 이어지는 이야기의 감기록이 자꾸만 늦어진다는 점이 조금 찔리긴 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달려보고 있다는 것으로서, ‘지옥 같은 장소’ 또는 ‘고통[고뇌]의 장소’라는 사전적 의미를 소제목으로 달고 있는 이번 작품에 대해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무표정한 얼굴로 체스에 임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게임을 하던 도중 어디론가 호출을 받게 되었다는 것으로 그가 형사임을 알리게 되는 군요.
그렇게 자신의 현재가 있기까지의 인생철학을 독백으로 말하던 그는 그런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퍼즐’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는 것으로서 어떤 엽기적인 살인현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현장에서 ‘상자’와 함께 어린아이의 ‘손가락’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사건을 해결하려던 것도 잠시, 그만의 어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던 작품은 그와 하루 밤을 같이 즐긴 여자가 다음날 주검으로 발견되었음에 자신 또한 의문의 사건에 동참하게된 것을 직감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하나의 게임으로 인식한 그는 자신이 지배당하는 것이 아닌 이 모든 상태를 지배하고자 문제의 ‘엔지니어’를 찾아 나서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이미 예정되어진 숫자의 죽음으로의 카운트다운뿐이었는데…….
어떤 것이든 상대적인 가치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 있기에, ‘지옥과도 같은 고통이자 고뇌의 장소’에 들어선 사람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의 마침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영화 ‘사일런트 힐 Silent Hill, 2006’과 비슷한 이야기구조였다는 것이었는데요. 영화일 경우 이번 작품이 앞섰기에 선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원작이라 할 수 있을 게임으로 계산해보면 이번 작품이 후배가 되어버림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게 된 것인지, 아니면 시간의 우물에 빠진 것 마냥 되풀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이야기의 원본에 해당하는 작품이 따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으흠. ‘베르세르크 ベルセルク’도 아닌 ‘사일런트 힐’과도 비교되는 감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그저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비교될 수 없는 것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탄의 상자’와 자칭 우주의 탐험가이자 악령이면서 천사인 ‘핀헤드’라고도 불리는 수도사의 존재일 것인데요.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핀헤드’의 출연시간이 눈물이 날 정도로 짧았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웠습니다. 철학으로의 돌아옴은 좋았지만, 그동안 회가 거듭될수록 늘어나던 출연시간이 초기화되어버렸다는 점은 이미 8편까지 제작되어진 것을 알고 시작한 이 여정에서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인지 기대하게 하는군요.
시작 화면에서 무엇 때문인지 영화 ‘드래곤 헤드 ドラゴンヘッド, 2003’가 연상되었다는 것은 일단 넘기고, 영화자체는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까지 접근하면서 점점 판타지가 되어가는 듯 했던 이야기들과는 달리, 본래의 ‘고통’에 대한 철학으로 작품이 구성되어있다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다른 건 몰라도 또 다른 시공간의 차원으로 넘어간 순간의 그 화면은 조금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음~ 뭐랄까요? 역시나 위에서 언급한 ‘사일런트 힐’이 더 인상적 이었다 랄까요? 하지만 영화만 보았을 때는 시대의 기술력에 의한 문제라고만 해보렵니다.
고통이라.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그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이 작품을 보신 분들은 또한 그것을 무엇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인지요?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생각해왔기에, 쾌락 또한 고통의 모습이라 생각해오고 있던 저는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처럼 어린 시절의 순수를 죽여 나갔음에, 그리고 그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고통에 대해 또 다른 고통의 지평을 얻어 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 압니다.
TEXT No.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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