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행복하다
도넛공주님의 '미안하다 행복하다' 라는 페이퍼를 따라 써본다.
'설문조사 못피해증'이 심각한 나로써는 누가 20문 20답 같은 것을 올리면 절대 못 피한다.
몇년 전에는 100문 100답을 밤새 하고 나서 그대로 탈진해 버린 경우도 있었다. =_=
그런 내가 설문조사류가 아닌 일반 글에 따라하고 싶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웃음)
이유는, 읽어보면 알겠지만 공주님의 재치있고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행복의 조건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지극히 상대적이며 누구도 내 행복을 저울질하지 못한다는 것을
도넛공주님 특유의 유머가 담긴 글로 새삼 느꼈다.
남들이 보기엔 '그건 아닌데' 하는 것이 내게는 당당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나, 한국 나이로 서른이다. (늘 못마땅한 한국식 나이 =_= )
몇년 전부터 한국인들은 내게 이렇게 묻고는 하였다.
" 결혼 언제해? "
" 애인 안 만나? "
처음에는 상대에게 내가 왜 연애나 결혼에 관심 없는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었다.
한국식으로 '나이가 찼는데 왜 연애나 결혼할 생각이 없는지' 오해를 하는 것이 짜증났기 때문이다.
외국 친구들은 내게 저런 질문을 하거나 '남들 다 하니까 너도 해야지' 하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공식을
밀어넣지 않는다. 가족같이 대해주는 정 많은 한국문화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적응이 안돼서 힘들다.
" 결혼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 되어야지, 종족 번식을 위한 필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
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상대가 더 이상 내 사생활에 관섭 못하게 못을 박아 둔다.
누군가를 사귀면, 사람들은 매일 전화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늘 혼자 있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그런 것은 부담스럽다.
그나마 문자라면 매일 수십개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전화통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혼자' 라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귀는 사람이 같은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문자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상대야 좋아해서 매일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하는건데 늘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는 내가 원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e-mail 로도 거의 매일 대화를 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게 내 생각이다.
애정 결핍증인 나는 어릴 때부터 오히려 연애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좋아한다는 것, 사랑하는 것 따위의 감정을 나는 모른다.
자연과 동물, 책, 음악 등을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그런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사귄다거나 사랑하는 것은 힘들다고 하면 시간을 들여 나의 마음을 열어줄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자기 좋아하는 감정만 내세우니 나랑 잘 될 턱이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
어릴 때부터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을 혐오하게 만들었고, 외롭게 자란 나는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라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상처를 주는 일도 많았고, 나 역시 가슴에 멍을 만드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연애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정.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는데 왜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은 사랑을 모르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지.
인간의 형체로 태어났다고 해서 꼭 같은 인간만을 사랑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을 사랑하는 대신 이미 많은 것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나무, 개, 음악, 그림, 책, 영화 그리고 바람.
고독까지도 사랑한다.
누군가, 인간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 날 자연스레 찾아오면 만나고 싶다.
의무적인 기분으로 자신의 감정은 무시한채 거짓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게 내 생각이거늘.
로맨스적인 사랑이 없다고 해서 플라토닉 사랑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제발 나 좀 내버려둬.
당신들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지는 말아줘.
내 생애 연인은 없고 친구만 가득해도, 왼손 약지에 반지 따위 없어도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니까.
지금 당장 사랑을 몰라도 사랑을 기다리는 것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니까,
내 행복을 저울지 말아줘.
이 세상에 사랑할게 얼마나 많은데.
미안하지만, 난 행복해.
결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목숨바쳐 죽을 정도로 사랑한 사람은 이미 전생에 있었어.
그 사람도 나를 찾고 있다면 나는 기다려줘야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