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흔적 (sceptic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隨處作主 立處皆眞</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8 Apr 2026 17:20:45 +0900</lastBuildDate><image><title>sceptic</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27041647259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ceptic</description></image><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의견이 사일은 아니다 -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9</link><pubDate>Mon, 23 Mar 2026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538&TPaperId=17167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4/85/coveroff/89659675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538&TPaperId=171674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a><br/>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근대 철학의 출발입니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하는 행위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존재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인식하는 주체로서 ‘나’를 제외한 세상 만물과 사건을 의심하라는 충고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독일의 신경심리학자 옌스 포엘은 역설적 제목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사실이 의견일 리 없습니다. 의견은 의견일 뿐이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기 ‘주장’이나 ‘의견’에는 해석과 감정과 판단이 뒤섞여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객관적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fact’에 차이가 생깁니다. 하나의 사실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해석과 주장이 엇갈릴 뿐이죠. 자기 생각, 즉 의견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합의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은 전문적인 연구자나 학문적 영역에서 갖춰야 할 정교한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 태도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지식은 불완전하며 과학의 역사조차 격렬한 논쟁으로 가득합니다. 지금 우리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판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실 판단의 기본인 ‘관찰’에 소홀하면 사실과 의견 그리고 해석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확립하기 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실이 필요할까요?​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뒤섞어 합리화하는 태도를 점검하지 않으면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를 점검하는 대신 대부분 언제나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책입니다. 인격은 지식과 교양이 아니라 태도와 방법입니다.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점검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길 바랍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4/85/cover150/89659675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448515</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감성이 이성을 지배할 때 - [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5</link><pubDate>Mon, 23 Mar 2026 10: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4623&TPaperId=171674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2/79/coveroff/k8620346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4623&TPaperId=17167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a><br/>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인간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일까요? 치밀하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과 빈구석이 많은 사람의 선택과 판단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우리는 직관과 객관, 사실과 의견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근대 이후 과학과 이성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심리적 편향과 오류 사이에서 길을 잃어도 그 이유조차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작은 차이가 인생을 뒤바꾸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나이와 성별, 학력과 직업에 따라 문제 해결 능력과 방법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과 판단을 위해서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중요합니다. 이제 곧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시대에 접어듭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최적의 선택을 제안하고 이성적 판단으로 인간의 실수를 줄여줄 지도 모릅니다. 인터넷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를 떠올리면 오늘의 현실은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휴먼 로봇 시대를 맞게 될 미래에 우리는 니체의 말대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천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쉼 없이 성찰하며 내일을 준비할 시간입니다. <br>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혹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맞닥뜨리면 ‘나’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외부’에서 문제를 먼저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피해자’라고 믿는 착각에 빠집니다. 숫자가 ‘진실’이라는 믿음, 확률이 ‘확정’이라고 생각, 내 경험이 ‘전체’라는 심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또 너무 자연스럽게 ‘틀린 판단’을 반복하고 있다.”라는 저자의 지적이 뼈아프게 들립니다. 데이터 분석가 키코 야네라스는 사람들이 ‘직관’, 즉 해석과 주장과 예측을 마치 사실처럼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균형 잡힌 올바른 판단은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에서 나옵니다. 자기감정과 착각에서 한 발 떨어져 ‘객관’적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현대인에게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문해력은 기본이고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평가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길러야 하는 시대입니다. 각종 뉴스와 데이터의 표면적 의미뿐만 아니라 맥락을 파악하고 숨어 있는 목적과 의도를 읽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주장과 해석을 진실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유통되는 정보와 습득한 지식은 과연 진실일까요?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직관보다 근거를 살펴야 합니다. ​챗지피티ChatGPT나 제미나이Gemini 등 인공지능도 천연덕스럽게 허위 사실을 전달합니다. 이를 걸러내고 객관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우연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며, 딜레마에도 균형을 유지하고, 직관을 맹신하지 않아야 합니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억력과 암기력이 아니라 종합적 사고력과 주체적인 판단력입니다. 사건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능력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인간다운 능력일 것입니다. 감정과 기분에 따라 선택하고 판단하는 ‘나’를 바꾸지 않으면 현실과 미래도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갑니다. 직관이 아니라 객관적 근거를 확인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태도가 전혀 다른 삶으로 안내합니다. 오늘도 인터넷과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정보들이 전달됩니다. 알고리즘이라는 현대인의 감옥에서 벗어나 조금 더 멀리서 전체를 바라보며 현재의 ‘나’를 살피는 일이 우선입니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2/79/cover150/k8620346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427976</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과 프로파간다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세트 - 전3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3</link><pubDate>Mon, 23 Mar 2026 10: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880&TPaperId=17167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61/24/coveroff/89329248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880&TPaperId=171674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세트 - 전3권</a><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01월<br/></td></tr></table><br/><br>“서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위선자들이에요! 모두 아버지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어요. 파충류 한 마리가 다른 파충류를 잡아먹는다 이겁니다. 만일 부친 살해가 없었다면, 모두들 화가 잔뜩 나서 툴툴거리며 흩어졌을 거예요……. 구경거리겠지! 〈빵과 구경거리!〉라고 말하지 않던가요? 물론 나도 좋은 사람은 아니죠. 어디 물을 가지고 계신 분 없습니까? 제발 물 좀 마시게 해주세요!”(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이대우 역, 열린책들, 2009.12.20.)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옙스키를 선호하는 독자들의 성향을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스물여덟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사면됐고 쉰일곱에 셋째 아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죄와 벌』, 『지하로부터의 수기』,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그의 작품에 직, 간접적으로 분명한 흔적을 남겼겠죠. 그러나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통해 소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차적입니다. 소설의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주제 의식은 조금씩 달리 해석됩니다. 인간의 욕망과 심리에 대한 내밀한 탐구,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설명, 상속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 신과 인간 그리고 구원의 문제, 과학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 등 무엇을 읽어내는지 개별 독자의 관심과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버지 표도르, 첫째 드리뜨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쟈꼬프는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형제들이지만 닮은 구석이 없고 각자 삶의 길이 다르죠. 서구의 합리주의와 니힐리즘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이성의 힘과 공리주의를 강조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에 반발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외쳤던 프랑스와즈 사강의 생각은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우울하고 끈적한 분위기가 읽는 사람들 내내 답답하게 만들고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생각은 신의 섭리, 전통 윤리에 대한 도전과 반항입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신의 죽음을 예견했을까요. 오히려 니체에게 영향을 준 러시아 소설가의 인간에 대한 관찰과 사회 변동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소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이나 맥락과 상관없이 툭툭 던져지는 문장들 혹은 이반이 스메르쟈꼬프의 생각을 바꿔 놓은 장면들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성적 합리주의와 니힐리즘의 영향을 받은 이반 역시 철학적 프로파간다, 즉 시대적 흐름과 유행처럼 번지는 사상에 동조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심리적 지배를 받은 스메르쟈꼬프의 부친 살해는 해석과 논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듯 싶습니다. 카프카의 『소송』에서 ‘법 앞에서’ 우화처럼 도스토옙스키는 ‘대심문관’ 에피소드로 자유의 대가는 ‘빵과 기적’을 주는 권위에 복종으로 언제든 대체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은 고뇌하는 소크라테스형 인간이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도스토옙스키가 원하는 인간형이겠으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오히려 작은 이익과 안전한 미래, 물질적 풍요 앞에서 생각보다 많은, 아니 거의 모든 걸 포기할 의향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자기 PR용으로 남긴 저작 『프로파간다』가 새삼스럽게 읽힙니다. 인간의 욕망과 집단 동조, 권위에 복종하는 오류가 겹쳐 정치적 선전선동 못지않게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환상과 유토피아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베이컨을 팔기 위해 의사를 동원하고, 젊고 예쁜 여성들에게 담배를 물려 선전하는 전략이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예인과 인플루서언서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대중의 선호와 호기심은 변함없이 계속되는 세상이 신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명품백과 수퍼카를 떠올릴 필요도 없고 베르너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를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아 놀랍기만 합니다. 속고 속이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자기 욕망과 자유의지라는 착각에 대한 성찰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은 각자의 선택과 판단이겠죠. 러시아의 푸틴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바탕이 무엇인지,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모스크바 상황을 들려주신 분,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라고 선언했던 조지오웰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그리고 아트페어를 통해 관람객과 그림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에 대해 고민하신 분, 문화예술 전공으로 전시 기획이나 그림에 대해 진로 고민을 하시는 분 등 어느 때보다 ‘프로파간다’라는 주제가 흥미로웠던 모임이었습니다. 토스토옙스키를 옆집 남편의 입장에서 둘째 부인 이야기와 곁들여 평가하는 수다도 즐거웠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매번 다양한 반응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전해주는 정보들, 입맛에 맞는 답변들, 그 알고리즘 뒤에서 조종 가능한 프로파간다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의 고민과 경계 대상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자본주의와 욕망’을 주제로 한 세 번의 모임이 끝났습니다. 이제 ‘민주주의와 일상’을 주제로 여섯 권의 책을 만날 차례입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낯선 존재로 있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역, 연암서가, 2020.04.25.)<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61/24/cover150/89329248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4612466</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 [돈 끼호떼 1 -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8</link><pubDate>Mon, 23 Mar 2026 0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035&TPaperId=171674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13/18/coveroff/8936464035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035&TPaperId=171674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돈 끼호떼 1 -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a><br/>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br/></td></tr></table><br/>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_체 게바라, 65년 3월 쿠바를 떠나며, 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 26쪽 아주 먼 옛날 스페인에 살았을지도 모를 돈 끼호떼를 다시 만났다. 아니, 어쩌면 그의 전부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건 처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게 두려워질 무렵에 읽는 돈 끼호떼는 이전의 그와 현재의 그가 다르다. 아니, 소설 속의 그가 변한 게 아니라 현실 속의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비현실적인 몽상가, 환상적인 모험가, 반미치광이 부적응자...그를 뭐라 부르든 중년의 나이에 길을 떠나는 돈 끼호떼는 거울 속의 나, 혹은 곧 도래할 독자의 미래여도 좋다. 꿈꾸지 않는 자의 하루는 허망하며, 오늘이 전부인 사람의 일상은 무기력하다.  420여 년 전 미겔 데 세르반떼스가 그려낸 돈 끼호떼는 누굴 닮았든, 무엇을 풍자했든 지구 반대편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많이 낯설다.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고 언어유희를 즐기는 그는 왜 여전히 회자되는가. 1,500쪽이 넘는 두 권의 소설을 읽는 동안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문장에 낄낄거리다 해가 저물었다. 겨우 풍차를 향해 긴 창을 들고 돌진하던 모습만 기억하는 내게 완역판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였다. 액자식 구성으로 수많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 즉 전설, 신화, 민담이 뒤섞여 『천일야화』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안셀모-까밀라-로따리오’, ‘레오넬라 이야기’ 등은 스토리 텔링의 원형을 찾아 볼 수 있을 만큼 친숙하지만 낯설다. 떠나고 머물고, 다시 돌아와 몸을 추스리고 또 떠나는 돈 끼호떼를 추동하는 힘은 무엇일까. 우스꽝스럽고 한심해 보이기는커녕 그 처절한 몸짓들이 애처롭게 읽혔다. 힘에 부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안 될 걸 알면서도 명분과 대의 앞에 당당한 태도가 슬프게 보이는 건 순전히 내 탓일 게다.  조반니 보카지오의 『데카메론』(1350년 경), 앙투안 갈랑의 프랑스판(1714) 『천일야화』(8세기~16세기경)와 더불어 유럽 문학의 기원이 된 소설 『돈 끼호떼』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소설이 아니다. 기사 작위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경제적 위치에 놓인 방랑 기사 돈 끼호떼는 양심 있는 엘리트 지식인의 광기를 보여주는 맹목적 이상주의자이며, 자유와 정의를 위해 몸부림치는 행동하는 지성이다. 또한 젊음과 사랑과 열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낭만적 로맨티스트다. 지천명에 이으러 깨달음을 얻은 중년의 꼰대 돈 끼호떼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대책 없는 어른이다. 2권 마지막 부분에 죽는 날까지 동양의 어느 왕국에 가 사서 왕이 되거나 대학 총장이 될지 모른다는 꿈을 가진 돈 끼호떼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돈 끼호떼는 쉼 없이 도전하고 현실 극복 의지가 뚜렷하다. 예측을 벗어난 말과 행동은 웃음을 유발한다. 상상력과 창조성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며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시도들, 그 과정과 노력으로 인간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대신 누적된 시간의 힘을 확인하며 생의 비의를 어렴풋이 깨닫는 법이다. 돈 끼호떼 곁에서 한결같이 그 허물을 덮어주고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는 산초 빤사는 조연이 아니라 돈 끼호떼의 동반자다. 두 사람이 빚어내는 콤비플레이는 미겔 데 세르반떼스 유머의 백미다. 마술적 사실주의, 환상적 리얼리즘의 원조라고 해도 손색없는 이 오래된 소설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타인과 세상을 향한 ‘태도’를 점검하게 된다. 인생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을 떠올려 보면 그들이 내게 보여준 표정, 내가 그들을 향한 행동이 떠오른다.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걸어왔든 돌아보면 이미 날이 저물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아마 중년의 돈 끼호떼 아재도 황혼녘에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지 않았을까.  소설은 1권 52장, 2권 7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작과 공작 부인, 10일간 바라따리아 섬의 총독으로 일하는 산초 빤사 외에도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해낸다. 서사를 따라가며 전체 구성을 이해하고 위기와 절정을 지나며 결말에 이르는 현대 소설을 기대해선 안된다. 말과 당나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자. 돈 끼호떼와 산초는 만담 수준의 말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아재 개그의 원조라 할만큼 속담 주고받기, 다양한 언어 유희가 계속 된다. 파편적 이야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되지만 돈 끼호떼의 강렬한 캐릭터는 변치 않고 독자들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오뒷세이아』처럼 고향으로 귀환하는 원점 회귀형, 여로형 구성은 특별할 것도 없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하는 법이 아닌가. 또한 방랑기사에서 ‘목동’이 되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려는 홀든 콜필드를 떠오르게 한다. 결국 ‘깨달음’을 얻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알론소 끼하노라는 자기를 확인하는 기나긴 여정에 불과해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반성과 후회가 곧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변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닌지 싶다.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책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각자 전혀 다른 무언가를 길어 올린다. 스토리와 허명을 가리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16세기 스페인 라 만차의 돈 끼호떼가 엘 또보소의 둘시네아를 사랑한 이야기로 읽으면 어떤가. 장소팔과 고춘자의 만담, 정찬우와 김태균의 컬투를 떠올려도 상관없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대책 없는 아재의 나이브함이 불편하지만 않다면.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13/18/cover150/893646403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131804</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타인의 기원과 편향들 - [타인의 기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5</link><pubDate>Mon, 23 Mar 2026 0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838468&TPaperId=171674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85/55/coveroff/k5228384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838468&TPaperId=171674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인의 기원</a><br/>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06월<br/></td></tr></table><br/><br>지구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 왔다. - 29쪽 집단뿐만 아니라 개인은 더더욱 그렇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타자화하는 습성은 본능에 가깝다. 친밀감, 유대감, 관계 양상에 따라 역할극이 바뀔 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주체적 삶에 대한 절대 고독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타인과 달리 ‘타자’는 사르트르의 ‘대자’, 레비나스의 ‘절대적 타자’와 같이 사유 주체 너머의 존재를 의미한다. 일상적 용어든, 철학적 개념이든, 타인이든 타자든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돈다. 대개 육체적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각자의 일상과 미래가 읽기의 바탕이라면 모든 텍스트가, 단어와 개념과 문장이 존재의 주위를 맴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작가 토니 모리슨은 세계 인식의 출발을 차별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감각적 차이, 본능적 공포와 다른 사회적 질서와 규범 혹은 암묵적 시선과 태도의 문제로 연결된다. 드러내고 헤집어 본질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소설가의 일이라면 토니 모리슨은 제 역할에 충실하다. 일반화할 수 없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지역과 국경과 피부색을 넘어 개별 독자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네 안의 상처와 고통, 열등감과 차별적 경험으로 치환하라고 소리친다. 유대인, 흑인, 아랍인 등 주체만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문제의식은 계속해서 변형된 채 갈등의 여지를 남긴다.  텍스트 힙으로 2030 세대가 책과 독서 모임을 인스타로 소비하든, 지적 허영으로 가득한 욕구를 충족하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든 전국 방방곡곡 세계 도처에서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앞에 놓고 토론이 이어지든 너무나 익숙한, 그러나 대안과 방법을 찾기 힘든 주제는 반복된다. 타인의 기원이 그리스 로마 시대 노예에서 출발했거나 농경 사회 이후 저장과 축적으로 사유재산이 가능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상관없이 구별이 아닌 차별화 전략은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비관적 전망은 지극히 개인적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제도와 규범, 교육과 지향점은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서로 다른 주장, 각자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일반론은 최소한의 기준과 합의된 질서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언제부터 강남역 사거리가 태극기 물결로 뒤덮였는지 알 수 없다. 표현의 자유, 정치적 신념은 무제한 보장될 수 없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대한민국을 토니 모리슨의 증조 할머니 시대과 비교하면 지나칠까. 어쩌면 우리 안에 파시즘, 자기 안의 선량한 차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마사 C.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이 토니 모리슨의 소설보다 추상적이지만 철학적, 현실적 측면에서 직관적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말한 ‘이디오진크라지’와 고든 올포트의 『편견』이 타인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타자화의 본능과 대책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누군가 마들렌처럼 과거를 소환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는 누구와 함께 앉아있었는지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다. 남은 시간 동안 또 어떤 책과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책과 사람, 삶과 이야기가 허공 중에 떠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85/55/cover150/k5228384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5855539</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고리오 영감과 유한 계급론 - [고리오 영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3</link><pubDate>Mon, 23 Mar 2026 0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81&TPaperId=171674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off/893746018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81&TPaperId=17167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리오 영감</a><br/>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02월<br/></td></tr></table><br/><br>그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았다. 법과 도덕은 부자에게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lt;이 세상 최후의 논리&gt;를 돈에서 보았다. 근대 이후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왕과 귀족, 성직자가 다스리던 나라가 민중demos이 스스로 지배cratos하는 민주주의democracy 국가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하며 누구나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는 꿈이 생겼죠. 전통적 계급 사회가 무너진 계기는 프랑스혁명 등 정치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고,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 돈은 권력과 명예까지도 복종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라는 경제 제도는 현재까지 인류사회의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호흡하고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19세기 유럽은 용광로처럼 들끓었죠. 뜨거운 가슴으로 일으킨 혁명과 차가운 머리로 계산한 자본주의의 이익이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를 누군가는 빅토리아 시대로, 또 누군가는 벨 에포크라 명명했으나 변화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힘은 경제적 불평등과 막강한 자본의 힘이었습니다. 합리적 이성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으며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자본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기회가 보장된 세상을 꿈꾸게 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 운명이 결정되던 시대를 지나 누구나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현대인의 희망 고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발자크는 시대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이를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작가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가 알다시피, 19세기는 대부분 발자크의 발명품’이라며 감탄했습니다. 발자크는 역사, 경제, 통계 관련 자료를 따로 찾아볼 필요가 없을 만큼 자본주의적 인간의 욕망과 일상을 정확히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법학을 전공했으나 소설에 매료됐고 사업 실패로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쓴 생계형 작가 발자크는 사치와 허영이 가득했으며 귀족을 숭배하고 왕당파로 자처했던 모순적 인물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함이 발자크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고리오 영감과 두 딸의 눈물겨운 계급 상승 의지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천피, 부동산 불장 시대에 벼락 거지가 됐다는 말을 유행시켰고 FOMO 현상으로 한반도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한계급은 현대판 귀족으로 거듭나고 싶은 대상입니다. 과시적 소비와 베블런 효과 뒤에 숨어 있는 비판 정신은 우리 사회에 유효한가요? 성찰과 변혁 의지는 희미해졌고, 각자도생과 세습 중산층 시대는 공고해 보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루저일까요? 1899년 세기말, 소스타인 베블런의 고민은 경제 이론이 아니라 사회 변동에 닿아 있는듯 보입니다. 가끔,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오류입니다.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을 내세운 이유가 자본주의 비판이 아닌 것처럼 베블런은 유한 계급을 비난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리 없습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부정한 적도 없고 급진적으로 계급 사회 타파를 외친 적도 없습니다.  다만 고리와 영감과 ‘보케 하숙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 특히 파리로 유학 온 외젠 드 라스티냐크가 마지막에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는 말은 오래 두고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외젠은 자본주의 타파를 결심했을까요, 아니면 도시의 욕망과 유한계급에 포섭된 걸까요.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독자의 선택 문제일 겁니다. 소설의 결말이 아니라 자기 삶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다면 언제나 책 혹은 독서 모임은 지적 허영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유한 계급의 고급문화 취향을 추종하는 건 존경과 명예 때문이 아니라 예술적 감수성이라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요. 자본주의 태동 이전부터 인간의 욕망은 작아진 적이 없고 유한계급의 사다리 걷어차기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물론, 푸른 하늘이 계속되는 한 사람들은 또 현실에 적응하며 각자 선택한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걷다 지치면 잠시 앉아 또 이야기 나누지요. 책, 고전은 교양이 아니라 언제나 진행형인 현실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150/893746018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210</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폭죽 터지는 인생 - [불꽃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132</link><pubDate>Tue, 10 Feb 2026 1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1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42533967&TPaperId=170831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24/76/coveroff/e0425339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42533967&TPaperId=170831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꽃 - 개정판</a><br/>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04월<br/></td></tr></table><br/>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외로움괴로움그리움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_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중에서 ​스무 살 언저리에 읽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여전히 그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마들렌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처럼 불안, 괴로움, 불안, 허무, 죽음 같은 단어의 멱살을 움켜쥐고 패대기 치고 싶던 시절이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서른일곱이 된 어느 날 문득, 와타나베가 생각났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이제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과거지향형 인간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노래를 듣고 철 지난 영화를 다시 보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리움과 추억, 아쉬움이나 회한 따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기 삶을 투영한 해석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거나. 아쿠타가와 수상작 역대 판매량 1위였던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제치고 300만부가 팔렸다는 이 소설의 제목도 몰랐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화두로 일본 소설과 잘 팔리는 소설에 대한 소감들이 오갔으나 300만 명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것도 일본인의 감성과 취향을 추측하는 건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출판 문화 산업 진흥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압도적 재미도, 정교한 구성도, 기막힌 반전도 없기 때문에 궁금했을 수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매료됐다는 저자는 코미디언이다. 방송에 출연할 만큼 유명했던 마타요시 나오키는 오랜 시간 독서와 글쓰기로 자기 삶을 채운 후에 데뷔작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했고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을 거라는 짐작은 하기 어렵다. 가미야처럼 그저 삶에 대한 열정과 흐름에 몸을 맡긴 게 아니었을까. 특이한 이력과 소설 외적 요소들로 시작된 이야기는 언제나 그러하듯 자기만의 해석과 타인들의 독법이 버무려진다. 주변의 숱한 가미야들, 순수한 열정이 전부였던 각자의 20대, 리얼리스트가 되버린 오늘의 나와 화해하는 법에 대하여 고민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은 또 어떻게 오늘을 살아낼까. 1인칭 화자 도쿠나가는 스무 살에 네 살 많은 가미야를 만난다. 사제지간으로 관계를 규정한 그들은 20대를 고스란히 공유한다. 야마시타와 오바야시, 카미와 유키 등 주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소설은 오롯이 ‘나’, 그러니까 도쿠나가에 관한 이야기다. 혼란과 방황이 청춘의 전매특허라고 우겨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로 읽어도 좋다. 현대판 인격 실격의 주인공 같은 가미야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든 해석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지만 자기 삶의 ‘하나비’가 아니라 ‘히바나’가 언제였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충분해 보입니다.  스파크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알아채는 일보다 중요한 건 그로 인한 변화와 전환이겠죠. 흐르는 대로 흐르는 무난한 삶을 지향하든, 가미야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든 선택의 결과가 모여 자기 삶이 됩니다. 타고난 재능과 천재성과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의 비율을 따지기 힘들고 상황과 맥락과 환경과 우연의 요소들을 계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원인을 찾고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심리학에서는 귀인이론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결과는 부분의 합보다 큽니다. 자기 말과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삶은 어떤가요. 가미야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도쿠나가는 세상과 불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 타인과 관계 맺기에 성공했을까요. 소설 속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궁금한 게 아니라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그걸 통해 변화와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게 가당키나 한 건지 지적 유희와 합리화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두렵습니다. 이제 책이 제게 건네는 말들이 때때로 지겹고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투덜거려도 말없이 그들은 쉼 없이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묻습니다. 이제 빽빽한 책숲에서 벗어날 때가 된 건지 그 끝과 시작을 천천히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24/76/cover150/e0425339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247680</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유전자에 대한 오해 - [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129</link><pubDate>Tue, 10 Feb 2026 12: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1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031375&TPaperId=17083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8/94/coveroff/k2620313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031375&TPaperId=170831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a><br/>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방식 중 하나가 ‘유전자’에 대한 관심이다. 삼십 대에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때문이든, 『종의 기원』이 정유정의 장편 소설로 아는 사람이든 존재론적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됐으나 포기하지 않고 집착에 가까운 몰입에 성공한 사람들은 정답이 아니라도 자기만의 생각과 주체적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된다. 모든 게 호르몬 때문이라는 책도, 생존 기계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주장도,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게 행복의 전부라는 진화심리학자의 말도 읽고 듣는 사람의 ‘태도’와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임승수와 정우현 덕분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에 위로가 된다. 임승수는 빨갱이고 정우현은 과학자다.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한다. ‘나’를 분석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해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덜 중요할 수는 없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권의 책은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추천하고 싶다. 과학에 관한 기초 이론과 지식을 전하는 책은 이제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알고 싶다면 정우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으나 인문학이 바탕이 된 과학자들의 책은 연구 결과나 새로운 이론과 주장을 정갈하게 담은 책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다.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니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과학이 ‘삶’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나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변화 가능성은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 어떻게 선택이 달라지는지 말이다. 그 현실적 유용성이 이제 ‘책’을 선택하는 실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소설의 재미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진 않다. 나름의 이유로 선택된 매체의 차이일 테니까. 하지만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의 논픽션은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합종연횡, 통섭과 상상력이 없는 텍스트는 나무에 대한 예의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우현은 예의 바른 저자다.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소재들이다. 어쩌면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다만 유전자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 본성과 양육과 환경에 대한 논쟁이나 인종과 동성애에 관한 편견,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오해 등 과학은 현실이며 삶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철학, 역사, 문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간과 세상에 관한 다양한 교양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연결하는 지점이 매력적이다. 뷔페를 싫어하는 사람의 취향도 존중해야 하지만 ‘읽는 인간’들의 욕구와 취향을 저격하는 이런 맛있는 책을 거부하긴 쉽지 않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고 읽기와 쓰기의 시간도 독자와 글쓴이가 갈아 넣는 생의 일부다. 서로 씁쓸하지 않도록, 새해에도 계속 그렇게, 남은 시간을 즐기고 싶은 나뿐이 아닐 게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8/94/cover150/k2620313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389434</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이 시대, 자본론의 효용성 - [오십에 읽는 자본론 - 풍요의 이름으로 우리가 놓친 모든 것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128</link><pubDate>Tue, 10 Feb 2026 12: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1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031225&TPaperId=170831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1/7/coveroff/k6620312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031225&TPaperId=170831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십에 읽는 자본론 - 풍요의 이름으로 우리가 놓친 모든 것에 대하여</a><br/>임승수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나는 사회민주당 당원이다. 당비를 내는 정도가 의사 표시의 거의 전부지만 지향점에 대한 확인이자 공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멈춘 적이 없다. 매우 이기적이며 현실적이며 냉정하고 논리적인 판단 성향을 가진 인간의 지향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자연선택이 아니라 집단선택을 하는 유전자처럼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지속가능한, 보다 넓은 의미의 장기적 행복의 바탕은 ‘나만’이 아니라 ‘함께’에 수렴한다. 인류 역사가 증명한 태도이며 먼저 살다 간 현자들의 결론이다.  철 지난 이념 논쟁과 다른 경제 이야기다. 루카치의 ‘사물화’가 마르크스의 ‘인간 소외’로부터 영향을 받았듯 근대 이후 현생 인류의 거의 모든 학문과 삶에 영향을 드리운 진화론, 정신분석, 맑시즘은 ‘돈’과 직결된다. 부자가 되려면, 행복을 찾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라면 사람들이 귀를 좀 기울일까. 『자본론』은 그런 책이다. 숱한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세월을 견디며 사회학적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샘물 같은 책이다.  이 자본론을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게 알려주겠다는 임승수의 일관된 노력과 사회주의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오랜 시간 책으로 지켜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의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와인에 심취해 거품을 무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안도했다. 『오십에 읽는 자본론』을 보면서 이제 편안하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나를, 아니 저자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비록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그들의 지향이나 노력에 관심을 가져볼 나이가 오십이 아닌가. 어차피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생긴 나이가 오십이 아닌가. 고3 수험생을 둔 부자 아버지와 저자의 대화 형식으로 써내려 간 자본론은 이 악물고 무언가를 관철시켜야 했던 순간들, 깨지고 부서져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시간들, 이상과 신념으로 가득했던 청춘의 한 시절을 넘어 선 느낌이다. 도를 터득한 노인 같은,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아재의 넉넉함과 여유가 보이는 자본론 이야기는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되는 자본론, 누구나 알아야 하는 자본론,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자본론, 생활밀착형 자본론, 실천적 자본론이라 할 만하다. 소설 형식으로 쓰여 등장인물과 상황이 주어지자 죽은 마르크스가 되살아나 현실의 문제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자본주의가 이대로 괜찮으냐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꼰대가 아니라 먹고 살기 바빠서 잘 몰랐지만 도대체 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왜 빨갛게 변해가는지 또 아직도 그러한 지 궁금해서라도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까. 내 친구와 이웃을 위해서라도. 엄빠, 삼촌, 이모, 조카, 선후배가 모두 모여 자본론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이제 대한민국은 갖고 있지 않은가.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고전에게 기대고 이런 책들에게 신세를 진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1/7/cover150/k6620312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710795</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의견이 사실이라 확신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 -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45</link><pubDate>Tue, 10 Feb 2026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538&TPaperId=170830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4/85/coveroff/89659675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538&TPaperId=170830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a><br/>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낭만적 착각이다. ‘사실은 없다.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라는 니체의 말 한마디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단순히 맥락에 따른 상황 논리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수학적 공리와 자연 현상처럼 명백해 보이는 사실fact에 대한 의심은 가능한가. 하물며 진리truth 탐구에 도전이라니. 인류의 역사는 허망한 기대와 실현 불가능한 꿈에 도전했던 지난한 고통의 기록이 아닐까.  일상생활에서 사실과 의견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표명되며 현실에 영향을 줄까. 레거시 미디어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뉴미디어 시대의 명암은 진영 논리에 따라 달라질까. 가짜 뉴스를 ‘대안적 사실’이라 명명한 트럼프 진영의 신박한 작명법에 진심으로 감탄한 적이 있다. 어차피 인간은 상상의 질서가 창조한 세계를 살아간다는 유발 하라리의 통찰이 아니라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숱한 개인적, 사회적 프로파간다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린다. 때로는 부모와 연인의 가스라이팅, 사회 경제적 전망에 대한 신뢰, 통계와 자료 분석에 기반한 확신, 정치 종교적 도그마로 인한 믿음 등 한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소음들. 사실이 의견일 리 없고, 의견이 사실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독일의 신경심리학자 옌스 포엘이 ‘과학적으로 합의된 사실’과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의견’를 구별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혹은 그러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한 비법 16가지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 텍스트 너머의 진실, ‘행간을 건너뛰는 두 개의 콤마’에 방점을 둔 읽기 단계로 진입한 자들을 위한 전복적 제목이 오히려 사실과 진실에 대한 냉소적 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가짜와 진짜는 누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그 모호한 경계를 이용하며 끊임없이 이익을 챙기는 자들은 누구일까.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지식과 정보 과잉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가짜와 진짜, 아니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경계를 지우고 전복을 시도한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 하는 놈은 절대 깨우지 못한다.  살펴보고(1부) 검증하고(2부) 해석한(3부) 다음 친구에게 말을 걸면(4부) 우리는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실은 의견일 뿐이라는 말의 역설적 진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문장은 사실일까, 의견일까. 오해가 디폴트 값이라면 인간 언어의 한계가 전제 조건이라면 이해와 공감, 소통과 협력에 관한 내포된 위험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까. ‘앎이 곧 삶’이 되던 시대의 낭만은 모두 사라졌다.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던 ‘인간 운전 금지 법안’은 시행까지 얼마나 걸릴까. 운전대에 손댈 수 없는 시대는 ‘소유의 종말’을 예고했던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탄생의 이유이자 번식 기계로서 소명을 다해야 했던 ‘인간의 종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오늘도 무얼 보고 듣고 살피며 하루를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걸었을까. 물신 시대의 꿈이 사라지고 허무의 시대가 찾아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대해 또 어떤 의견을 내놓으며 목소리를 높일까. 그 또한 알 수 없으니 계속 책장이나 넘길 수밖에 없을까.​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 싫어해. 그건 본인이 과거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걸 받아들이는 꼴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틀림에서 옳음으로의 과정’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언제나 ‘틀린’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 영화 《사회학자와 곰돌이》에서 사회학자 이렌 테리의 말<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4/85/cover150/89659675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448515</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사람을 액면 그대로 바라보지 마라 - [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44</link><pubDate>Tue, 10 Feb 2026 11: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17755&TPaperId=170830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08/1/coveroff/89323177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17755&TPaperId=170830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a><br/>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현암사 / 2016년 01월<br/></td></tr></table><br/><br>“세상을 액면 그대로 바라보지 마라Don’t take the world at face value” 50cm, 사회적 거리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이 프라이빗한 거리 안으로 허용되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거나 허락받지 않은 신체 접촉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증명한다. 가족, 친구, 연인은 물론 선후배, 동료, 지인 사이에도 적용되는 일반적 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친근감을 포장한 무례와 범죄는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라는 변명에 불과하다. 관계는 물리적 거리로 입증되며 친밀함은 온기로 전해지는 법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와의 거리에 대한 연구가 인류 전체에 적용될 순 없으나 이와 같은 일반론에 현대인의 일상은 대체로 포섭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욕망하지 않으면 비난 가능성도 낮아진다. 사랑받는 대신 사랑하라는 에리히 프롬의 조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은 마음 또한 자기 욕망의 반영에 불과하다. 대개 사랑으로 포장하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배 욕망, 배타적 소유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대상을 비난하기 일쑤다. 관계의 기본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싫다는 것만 조심해도 인간관계는 그럭저럭 유지된다. 하지만 대체로 틀어진 관계로 상대를 비난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는 걸 차단된 후에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결과들을 공부하거나 익히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는 처세술, 자기계발서의 얄팍한 술수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증요법과 임기응변의 기술 연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까.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빙 고프먼의 이 책은 사회학 고전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아를 연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 사회가 내재한 연극성 때문이다. 저자는 연극적 관점과 접근법으로 우리의 사회생활을 톺아본다. 현미경으로 나를 직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개인의 타고난 성품이 인자하고 위엄 있으며 거들먹거리거나 착하고 난폭하고 합리적이거나 고지식하고 방탕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사람일까 상황일까』에서 때와 장소, 즉 맥락에 따라 인간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말과 행동이 동일한 사람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 인간에게서 배신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대체로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적응하는 하나의 전략적 행동이라는 분석은 이제 심리학자나 사회학자 혹은 사회생물학자와 뇌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손에 고문 기구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나 아우수비츠 죽음의 수용소 바로 옆 주택으로 귀가한 독일군 장교의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표정은 그들이 특별한 괴물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연출하는 사회적 가면의 일부가 아닐까. 공연자는 현재 공연의 관객이 나중에 자기가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게 될 공연에는 들어오지 않아야 편하고, 또 과거 자기의 공연을 본 관객은 그와 상반된 현재 공연을 보지 않아야 편하다. 현저하게 지위가 상승했거나 추락한 사람들은 단호하게 고향과 절연함으로써 관객을 분리한다. 공연자는 관객에 따라 배역 연기가 달라야 편하고, 같은 배역 연기라도 관객을 분리하는 게 더 편하다. - 175쪽​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자아를 연출한다. 고프먼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넘어선 견고한 실체라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개인들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실현, 유지, 변형되는 것이다. 10년 전 부모와 자식은 현재와 다른 모습이다. 친구와 연인은 물론 부부와 동료, 지인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공연을 하는 데 같은 사람이 들어오거나 같은 공연을 하는 데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자아는 불안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각각의 관객에 맞는 연출과 연기가 다르다. 고프먼은 우리의 삶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우리의 자아를 연출하는 공연과 같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인생을 고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연극에 비유한 저자의 관점이 독특하면서도 탁월하다. 실제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사람 혹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사회적 페르소나를 통해 실제같은 연기를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표정과 말과 행동은 관객의 반응과 상관없이 자아 만족감과 성취감을 통해 보상받는다. 그러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서도 균열이 발생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반복 실험과 검증된 이론들은 모두 불가역적 사건과 시간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에 불과하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허망함이 대체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일 수도 있으나, ‘그래서?’, ‘어떻게?’에는 답을 주기 어렵다. 그 결과를 예측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다양한 개별 독자, 각각의 자아를 위한 분석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만하다. 결국, 모든 텍스트의 종착역에서는 ‘나’가 놓여 있다. 거울을 바라보는 일,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고, 성장을 도모하거나, 지금 이대로를 외치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고집을 부려도 각자의 연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어떤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을지 ‘선택’은 모두 ‘나’에게 주어진 숙명 혹은 노력의 결과다. 점점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해가 저문다. 서로 다른 조건이지만 자아 연출 능력은 얼마든지 변화, 발전, 성장 가능하다. 성별, 외모, 국적, 인종, 부모 등 어차피 주어진 조건이 같지 않더라도 드라마,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서로 다르지 않은가. 관객들의 감탄과 박수가 주연과 조연, 여성과 남성, 외모와 나이를 가리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만,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지 않거나 애써 외면할 뿐. 그것이 이 책이 우리, 아니 나에게 던져 준 숙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608/1/cover150/89323177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080136</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나의 무의식 -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41</link><pubDate>Tue, 10 Feb 2026 11: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7439X&TPaperId=170830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30/61/coveroff/89255743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7439X&TPaperId=170830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a><br/>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br/></td></tr></table><br/><br>“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나면 코끼를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개념의 창시자쯤 된다. 심리학자 최인철의 『프레임』은 인간의 인지적 무의식에 관한 탁월한 대중서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말한 『대중의 지혜』에 설득당한 사람들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 앞에서 주춤거린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합리적인가.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하자면 지혜로운 성자는 못 돼도 어리석은 군중은 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고 우리는 대체로 필터 버블에 갇혀 착각 속에 살아간다.  겸상도 힘들다는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돈에 울고 사랑에 속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속고 의식에 또 속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 종의 한계다. 문화인류학자, 인지심리학자, 진화생물학자들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이제 뇌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다 시끄럽고 내가 ‘과학’으로 증명해 줄게!  2011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이글먼의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들은 건 믿지 말고 본 것도 절반만 믿으라는 애드거 앨런 포의 충고가 뇌과학에 기반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감각을 인지하는 뇌의 착각과 한계는 여러 분야에서 검증이 끝났다. 독자들에게 남는 의문은 “그래서?” 세 글자다. 뇌과학은 어떻게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지만 개별 독자의 생각과 현실 변화 가능성 앞에서 매번 냉소를 날릴 수는 없다. 알지 못하면 문제를 인식할 수 없고 해결책은 더더욱 난망하다. 사는 대로 생각하며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위로를 주고받다 죽는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고 비 오는 토요일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게 아닐까.(물잔과 콜라잔도!)  그것이 숭고한 대의나 거창한 이타심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삶의 변화와 타인과 세상에 관한 통찰을 얻기 위한 이기적 목적일지라도 확증편향을 의심하는 눈빛,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태도, 어차피 죽을 거지만 피자에 꿀을 찍어 먹어도 무알콜 음료는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모였던 기억이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과학이 곧 사실일 수도 없고 실험 결과나 통계 분석도 주관이 개입된다는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저자들에게 경의를! 허나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들며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탄생과 소멸에 대해, 아니 각자의 삶에 자유 의지와 의식이 미치는 영향의 한계를 점검하는 정도면 넉넉하다. 보니 엠이 다들이불개고밥먹으라던By the rivers of Babylon 노래 소리가 아련한 일요일 아침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기쁨과 슬픔을 감당하며 인지적 무의식에 속지 않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산다고 믿는다. 그 선택과 방향이 비록 원하지 않는 길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기를.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30/61/cover150/89255743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306164</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마음의 갈피를 잡고 - [편의점에서 잠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39</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5226&TPaperId=170830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53/coveroff/89364252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5226&TPaperId=170830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편의점에서 잠깐</a><br/>정호승 지음 / 창비 / 2025년 08월<br/></td></tr></table><br/><br>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면 사람들은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기 전에 뒤를 돌아본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개 아쉬운 일들을 성찰하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기억과 망각은 인간의 현존재를 지탱하는 철학적 기반이지만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정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았으며 내년에는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일 년을 단위로 시간을 구분하는 이유는 하루, 한 달을 조금 더 충실하게 채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송구영신하는 마음을 다독여 보는 12월이다. ​  생각이 복잡하고 일상이 바쁠 때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잠깐씩 시간이 날 때마다 시 몇 편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시인의 눈을 빌어 사물을 관찰하고 익숙한 일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새해를 맞는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br>현실을 닮은 허구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소설을 읽는 재미라면 시는 개별 독자에게 그려지는 마음의 무늬다. 그 이미지를 따라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번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좋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합리적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대개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서 비롯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  타인과 세상, 사랑과 이별, 하늘과 별에 관한 정호승의 시를 오랫동안 읽어 온 독자들은 편의점에서 잠깐 스치듯 읽어도 좋을만큼 따뜻한 시들이 반갑다.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패배에 대하여」 중에서) 이 시집의 서시는 ‘패배’로 시작한다. 바라는 대로 세상이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하다면 시인은 아마 시를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고독과 슬픔이 인생의 기본값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무렵인 사람들에게 정호승의 시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쓴 소주 한 잔만큼 진하게 가슴에 닿는다. ‘희노애락애오욕’을 거치며 한 생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적인 위로를 건네는 시인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나의 상처에서 흐르는 분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인가”(「당신이 아니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지나간 인연을 생각나게 하는 수많은 ‘당신’은 누구인가. 만해 한용운의 말대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마음속에 그리운 것 하나씩 품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공감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고 착각하지만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만 시인은 그 폭과 넓이를 세상 전체로 확장하려는 사람일 뿐이다. 기막힌 표현과 반짝이는 언어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시가 될 수도 있으려면 타인을 헤아리는 배려, 이기적 욕망에 대한 성찰이 먼저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고 했던 정호승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53/cover150/89364252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425312</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작위의 찬란이여 - [눈물이 움직인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35</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5196&TPaperId=170830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6/40/coveroff/89364251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5196&TPaperId=170830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물이 움직인다</a><br/>손택수 지음 / 창비 / 2025년 05월<br/></td></tr></table><br/><br>우주를 고독하게 날아온 돌이지구를 파고들며 타오르듯이갈 수 있을까 당신에게로마주 보면 눈을 맞추는 글썽임_「운석 찾는 사람」중에서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던 김연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을 지났다. 익숙한 시인들도 이제는 그 그림자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읽는 손택수의 시집에 담긴 사유의 흔적,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손짓,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동경,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뭉쳐버린 폐지처럼 나뒹굴어도 어쩔 수가 없다.  저녁을 짓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공깃밥이라는 말 좋지무한을 식량으로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저녁의 이름으로  빛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시간, 매일 저녁이 지겨울 무렵에 문득,혹시 내년 여름에도 수국을 볼 수 있을까.  수국 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피어나는 수국은내 헛된 비유들에 대한 위로 같은 것,꽃을 시늉하는 궁리에 궁리 끝의 작위여작위의 찬란이여헛것이라면 참으로헛헛한 속을 달래는 헛제삿밥의고봉 같은 것이 있어수국은 피어난다나의 삶도 가설나의 말도 헛것만 같을 때지는 것이 꽃이라고,아닌 꽃으로서<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6/40/cover150/89364251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864039</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에세이</category><title>‘내가 잘못된게 아니었어. 그냥 나는 나인 거야. 있는 그대로, 나인 채로 괜찮아.’ - [소심백서 - 오늘도 귀여운 내향인입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34</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936989&TPaperId=170830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49/88/coveroff/k4129369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936989&TPaperId=170830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심백서 - 오늘도 귀여운 내향인입니다</a><br/>김시옷 지음 / 파지트 / 2023년 10월<br/></td></tr></table><br/><br>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감성을 코끼리에, 이성을 기수에 비유한다. 이성은 자신이 감정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교집합은 언제나 ‘합리’와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면 위험하다. 가족, 연인과 친구 등은 이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대개 착각에 불과하다. 2차적 관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혈연, 지연 관계로 맺어진 1차적 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은 감정으로 뭉갤 수 있으나 대개는 잘잘못을 따지고 이성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매 순간 고민한다. 감정의 영역인지 이성의 문제인지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그렇게 누적된 태도가 인격을 형성하고 자기 삶의 무늬를 만든다.  4년째 연재 중인 화성문화재단의 「주간 책편지」 모임에서 직접 뵌 김시옷 작가의 책을 천천히 읽었다. 『소심 백서』는 대문자 I 성향들을 위한 위로와 조언과 거리가 멀다. ‘나’를 중심에 둔 작가의 자기 고백이다. 유년부터 대학 시절, 직장생활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돌아보며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놀랍다. 생각보다 어렵고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 사람의 글은 그대로 가슴에 스며든다. 어설픈 감동이나 공감이 아니라 메타인지를 통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체적 인간의 탄생을 지켜보는 듯했다.  AB RH+, INTJ, HSP, Misophonia... 심리학부터 뇌과학까지 다양한 책들을 뒤적였다. ‘예민함’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아니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 위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책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경험과 추측 혹은 뇌피셜 등 각자의 도그마를 만들어 가는 건 관심 없으나 객관적 이론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일은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극도로 예민한 청각을 지녔으나 둔감한 후각을 가졌고 특정 분야에는 몰입과 기억이 뛰어나지만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감성과 이성을 경계 지어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상관 관계에 머물지라도 인간은 자기 성찰을 멈추는 순간 낡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늙어도 낡지는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을 콤플렉스라 부르기도 하지만 아킬레스 건이 어디인지 알고 공격하는 이의 잔인함을 파악하는 건 사회적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리 두기를 실천하지 않으면 스스로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김시옷 작가처럼 자기의 소심함을 무기로 내세우거나 핑계 삼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깨 겯고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책과 사람은 다르다. 일상에서 작가가 겪는 아픔과 고통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소심함과 조금 다른 예민함 덕분에. 단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그림, 반려묘의 이야기, 무해한 표정의 캐릭터, 재치 있는 대사와 감각적인 표현들이 잘 어우러진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조금 무뎌졌다. 소심해도 괜찮아, 예민하면 어때, 우울해도 힘을 내, 귀찮아도 일어 서,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쓸데없이 울컥하다가 겸연쩍게 킥킥거리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11월의 마지막 가을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본다. 《왕좌의 게임》의 대사가 다시 돌아왔다. winter is coming.​]]></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49/88/cover150/k4129369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498896</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필요한 순간 - [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9</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933227&TPaperId=170830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00/77/coveroff/k4829332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933227&TPaperId=170830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a><br/>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09월<br/></td></tr></table><br/><br>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 - 니체(Nietzshe) 물과 공기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띤 공공재다. 이렇게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이익을 앞세우는 자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목도한다. 하물며 공공재가 아닌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관계 앞에서 인간은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도덕과 가치 혹은 이념과 윤리를 표방하는 자들이 자기 속내를 들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증오는 대개 착각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으며 혐오에 동반된 감정적 사태다. 오스트리아의 법정신 의학자 라인하르트 할러는 감정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온 저명한 정신과 의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간은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잔다. 그 모든 과정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불안, 우울, 나르시시즘, 망상, 중독 등이 벌어지는 원인은 대개 타인 혹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발생한다. 그렇다면 증오는 감정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문학, 철학을 넘나든다. 전공과 직업이 무엇이든 ‘인간’에 대한 탐구는 대단히 복합적인 인문학적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한다. 좁게는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고민에서 넓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으며 대개 결론도 정답도 없다. 기존 이론과 주장에 대한 끊임없는 반박과 재규정을 통해 변증법적 통찰에 도달한 현재적 주장에 가까울 뿐이다. 논리적 증오와 이성적 분노,에 이르는 머나먼 길을 돌아 자기 말과 행동에 대한 합리적 판단에 이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보다 범죄자의 자기 혐오와 증오를 오랫동안 관찰한 저자의 이야기는 건강한 삶과 공동체의 질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법과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서 인간의 진화, 혐오, 분노, 파괴, 절멸 등에 관한 사적 고찰로 이어지는 과정이 넓고 깊다. 증오의 뿌리를 찾는 일은 직업인으로 저자의 몫이겠으나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일은 일상에서의 벌어지는 LGBTQ, 외노자, 중국인, 장애인, 노동자, 경제적 취약계층, 탈모인, 비만인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혐오에 대한 개별 독자의 편견과 차별이다. 김지혜가 지적한 ‘선량한 차별주의자’ 정도라면 그나마 양반이다. 보이지 않는 각자의 프레임을 생각보다 좁고 견고하다. 신념이 확고한 자를 믿지 않는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패러디하자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본능에 내재한 이디오진크라지idiosynkrasie에 불과하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문명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을 현대사회 공동체는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혐오 혹은 증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일까. 물론 저자의 희망과 결론 혹은 대안과 달리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또다시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다.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 패륜 행위를 공론화하며 규율과 질서를 마련하고 감시와 처벌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법률적 통제를 넘어 사회적, 관계적 대처는 매우 중요하다. ‘천성적 증오’가 아닌 ‘반사적 증오’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문명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공자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철학자가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염치’는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맹자는 이미 기원전에 염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아니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 너무 뻔뻔해서 부끄러움이 오히려 나의 몫이어야 하는 자들을 향한 혐오와 증오는 괜찮아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에 저자는 무어라고 답할까. 물론 ‘범죄’ 영역에 국한된 성찰이겠으나 일상을 견디는 나, 아니 우리 모두는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문제가 다시 시작된다.  ‘증오’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00/77/cover150/k4829332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8007793</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철학</category><title>성공한 삶과 실패한 인생 - [태도의 철학 - 흔들리는 삶을 위한 16가지 인생의 자세]</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7</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036499&TPaperId=170830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32/24/coveroff/k9920364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036499&TPaperId=170830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태도의 철학 - 흔들리는 삶을 위한 16가지 인생의 자세</a><br/>샤를 페팽 지음, 이주영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01월<br/></td></tr></table><br/>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기 평가다. 삶은 계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닭도 아니다. 아재 개그가 아니라 사람마다 순위가 다르다는 말이다. 닭이 먼저라고 우기는 사람이나 달걀이 먼저라고 고집하는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생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나눌 뿐이다. 물론 타인의 평가, 사회적 관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 목표에 도달했는지,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학력, 직업, 자산, 결혼, 자녀, 건강 등으로 쉽게 말할 수 없는 건 각자의 선택과 만족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육각형 인생을 원하지만 아무도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인생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대개 혹독한 시련을 겪었거나 깊은 좌절을 맛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삶에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모두 녹아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척도에 걸맞은 성공이 아니라 이제 보다 ‘좋은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실패échec’라는 말은 ‘왕이 죽었다al cheikh mat’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왔다. ‘왕이 놀랐다shat mat’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전리품eschec’을 뜻하는 옛 프랑스어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어원이 어찌 됐든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이 인생의 비밀 중 하나다. 다만 그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과 태도는 각자 다르다. 물론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게 반응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성공과 자기 계발의 비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페팽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실전 철학,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성공한 삶을 위해서, 아니 좋은 삶을 위해서는 ‘실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험, 겸손, 변화, 욕망, 질문, 발견 등 16개의 주제에 관한 쉽고 짧은 글에는 에픽테토스, 장 폴 사르트르, 가스통 바슐라르, 노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크 라캉 등 16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테니스 선수 안드레이 아가시,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 팝 가수 프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며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저자는 뻔한 성공 스토리와 지루한 철학 개념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편안한 동네 아저씨처럼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삶을 성찰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저런 일도 있었다고. 그리고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 듯하다. 당신의 인생에서 찾고 싶은 전리품은 무엇이냐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부는 바람에 기꺼이 흔들려도 뿌리 뽑히지 않고 버티는 힘, 그 단단한 태도가 바로 당신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닐까. 불확실한 희망 대신 확실한 실패가 오히려 시련과 실패를 견디는 방법일 수도 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32/24/cover150/k9920364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322417</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빈 서판 - [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5</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1450&TPaperId=170830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6/84/coveroff/8983711450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1450&TPaperId=170830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a><br/>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02월<br/></td></tr></table><br/><br>1997년 딥블루에게 체스의 제왕 자리를 내준 게리 카스파로프는 대국 결과에 대해 ‘인류의 종말’이라 평했다. 10년 후인 2016년 체스가 아니라 바둑판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빈 서판은 2002년,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상용화될 무렵 네트워크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몸을 풀던 시절의 생각들이다. 물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짐작할 뿐이다. 타인에 대한 오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인류가 느린 걸음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계속해서 바뀔 예정이다.  20세기 경제 공황을 파고를 넘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넘친다.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으로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메카시즘의 광풍 등 사회적 혼란과 ‘인간’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계속됐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로 촉발된 논쟁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로 극한 대립이 펼쳐진다. 사회생물학 인권과 평등, 사회 변혁을 향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오해한 마르크스주의자들, 페미니시트의 태동, PC주의자들의 등장으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아니 어쩌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 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쌍욕을 먹던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으며 뇌과학의 발달로 그 진정성에 대한 오해는 조금 풀린듯 싶다. 리처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를 들고 참전했으나 ‘인간 본성’에 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육 가설에 대한 대담한 도전으로 비치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그가 아무리 멋진 파마머리를 휘날려도 계속될 예정이다. 자유의지와 운명론을 뒷받침하려는 목적도 없고,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만 과학적 논의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허수아비 오류 공격은 일상에서도 반복되는 가장 무지한 태도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종교적 교리, 이상적 사회주의, 인간에 대한 희망적 뇌피셜로 가득한 사람에겐 800쪽이 넘는 하드 커버 책은 대형 벽돌에 불과할 것이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관에는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빈 서판 이론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인간은 고쳐 쓸 수 있는가. 교육과 문화, 전통과 사회화를 통해 전혀 다른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병원에서 애가 바뀌어 전혀 유전자와 무관하게 부모의 교육과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런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게 논쟁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다수의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스티븐 핑커는 긴 머리 휘날리며 친절하고도 꼼꼼하게 투머치 토킹을 이어간다. 선명한 주제, 확고한 신념, 틀림없는 이론과 무관한 심리학과 인류학, 진화의 증거들로 빈 서판으로 무장한 적들을 깨부술 수 있을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저자의 애처로운 호소와 설득을 구경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궁금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로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사람은 책을 만들지만, 책은 과연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본성이든 양육이든 변증법적 변화를 체험한 이들의 간증조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주장할 것이 뻔하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세상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 도그마에 갇혀 나름의 합리성과 안정을 찾은 사람들에게 진화 심리학과 행동 유전학을 옹호하는 인지 과학자스티븐 핑커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비칠까.  “나는 여전히 인간의 전망은 유토피아보다는 비극 쪽을 향하고, 인간성이라는 비뚤어진 재목으로 똑바른 물건을 만들 수 없고, 우리는 티 없이 맑지 않거나 황금처럼 빛나지 않으며, 낙원으로 돌아갈 길은 어디에도 없다고 믿는다.”(2016년판 발문, 「인간 본성은 문제이기도 하고 답이기도 하다」) - 791쪽 결국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진짜 인간의 목소리, 즉 이성, 감정, 본능이 조화된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개 거의 모든 학문은 인간의 추체험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해석하는 일과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을 살아야 하고 내일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날이 얼마든 각성과 성찰을 통해 성숙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곧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본성과 양육과 교육과 문화가 어떻게 지금 현재의 ‘나’를 만들었을까. 아니 그걸 안 연후에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안물안궁이라면 할말 없고.<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6/84/cover150/898371145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68476</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두근대는 가슴팍, 조금 빠른 심박수 -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3</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272&TPaperId=170830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91/8/coveroff/89320432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272&TPaperId=170830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a><br/>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0월<br/></td></tr></table><br/><br>조연정은 “이 세상에 불행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천국에 있다고 믿게 될 것이라.”라는 시몬 베유의 문장을 신에 비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우월성이 바로 고통이라고 해석한다. 그런가. 슬픔이 인생의 디폴트 값이라는 걸 포장한다고 해서 견뎌지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아니 독자는 시 안에서 그걸 발견할 때마다, 아니 텍스트 안에 자기 고통과 슬픔을 언어의 감옥에 가둬버린다.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도 까마귀의 역설은 해결되지 않고 자기모순에 빠진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각자 해결할 문제다. 헛된 희망을 버려야 오솔길이라도 찾아 떠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나 시는 현실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위한 위로일 뿐이다. 시가 스스로 시가 되려면 사랑 대신 멸종으로 바꿔 읽어야 한다. 그러면 시시하지 않다.  까마귀의 역설* 인간 중에도 인류학자가 있듯 새들 사이에도 조류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느 날 조류학 분야의 저명한 교수인 까마귀 R의 실종 소식이 보도되었다. 수색 결과 한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으며 아래는 R이 남긴 편지의 전문이다. 친애하는 까마귀 여러분께 내가 오랫동안 주장해오고, 이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주장입니다. 검은 깃털 색은 우리 까마귀종의 유구한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그것은 주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보편적인 진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내 날갯죽지 깊숙한 곳에서 흰 깃털 한 올을 발견한 것이지요.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의심했습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것일까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까마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입니다. 인간들은 그것을 미러 테스트라고 부른다지요. 흰색 깃털은 선명했습니다. 나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날개를 확인했습니다. 날이 지날수록 흰 깃털은 늘어만 갔습니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문장은 ‘모든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문장과 논리적으로 동일합니다. 흰 우유는 까마귀가 아니고, 흰 종이는 까마귀가 아니고, 흰 눈은 까마귀가 아니지요. 처음에는 깃털을 하나씩 뽑아보았습니다. 피부가 벌게지며 부어올랐죠. 고통스러웠습니다. 흰색 깃털은 주체할 수 없이 많아졌고 점점 나를 뒤덮는 흰 깃털들을 보며 고민했습니다. 흰색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깃털들이 내 몸 전체를 덮게 되는 날이 온다면…… 누군가가 내 흰색 깃털을 발견해버린다면…… 물론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이론을 수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론을 위해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바쳤습니다. 전 세계의 까마귀들을 보러 매일을 타지로 날아다녔고, 셀 수 없이 많은 동족의 시체를 해부해버렸죠. 그동안 저에게 지친 배우자와 자식들은 등을 돌렸고 나는 가정의 파탄을 명성과 맞바꾸었습니다. 유력한 정치가들도 나에게 자문을 구했죠. 이 이론을 포기하는 것은 나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증명했다고 믿습니다. 그 이론은 제 인생 그 자체이며, 나는 흰 까마귀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벌써 내 몸의 반절을 흰색이 덮어버렸습니다. 이제 더이상 깃털을 뽑는 방식으로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습니다. 깃털을 뽑은 자리에서 난 피를 닦는 일에도 이젠 지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까마귀가 아니다. 이제 나를 까마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나는 분류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한 생물입니다. 여러분도 흰 까마귀를 발견하고 상식을 수정하는 불쾌한 일을 겪기를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따라서 저는 눈이 가득한 북쪽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완전히 하얘진다면………… 그곳에서는 아무도 저를 찾을 수 없겠지요. 거울에 비친 나는 투명해질 것입니다. 미러 테스트도 소용이 없도록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저의 이론을 수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까마귀가 아니고 따라서 여전히 모든 까마귀는 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젠 정체를 알 수 없는 R이 * 이 시는 철학자 카를 구스타프 헴이 가설의 귀납적 입증에 관해 제시한 '까마귀 역설'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남겼다고 알려진 "새에게 조류학이 유용한 만큼 과학자들에게 과학철학이 유용하다"라는 발언의 영향 아래에서 씌어졌다. 실제로 파인먼이 이러한 발언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철학적 좀비’는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가 1990년대에 제기했던 사고실험이다. 심리철학 분야에서 이론적 아이디어로 제시한 이 말은 외면적으로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내면적인 경험이나 의식이 없는 인간이라는 설정. 현대인을 향한 조롱과 비난이 아니다. 물론 유선혜가 자기 시를 읽는 독자를 향해 날린 어퍼컷도 아니다. 그래도 두근대는 가슴팍, 조금 빠른 심박수, 조급한 박동이 없는 나와 너는?   빈맥 아이들은 놀이터가 철거될 예정이라는 것을 모르고그네를 탄다 숨이 찬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교복의 색이 다른 중학교로 흩어지면서 사인펜으로 쓴 롤링 페이퍼를 만지작거리고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는 걸 자기 전마다 생각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아이들 두근대는 가슴팍을 식히며 이별이라는 단어를 이해해본 적이 없다는 듯이 끝을 상상하는 능력을 모두 잃은 사랑을 시작하는 심장은조금 빠른 심박수를 가졌다 나쁘다는 것도 모르고 아름답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소방차가 줄지어 달린다는 사실에 신이 나는 것처럼 성당의 양초를 쓰러뜨리고 간 사람을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할아버지의 병실 의자에 앉아서 귤껍질을 까며 미래를 조잘거리는 아이는 어른이 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그의 병명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고 사랑을 시작하는 심장은 졸업식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혈관이 튀어나온 손등을 제멋대로 상상한다 죄다 끝나버린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조급한 박동으로 뛰어나가고 넘어지고​<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91/8/cover150/89320432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910801</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바가바드 기타  - [바가바드기타]</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1</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035971&TPaperId=170830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1/52/coveroff/k5620359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035971&TPaperId=170830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가바드기타</a><br/>브야사 지음 / 여래 / 2024년 11월<br/></td></tr></table><br/>지식의 양으로 승부하던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간의 고유한 창조성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니라 정보 편집 능력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인문학적 소양과 내면의 가치를 강조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현실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목적과 가치가 단단한 사람은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으며 불안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오래된 인도의 경전이다. 이 책은 힌두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나 요가의 수련 방법이 아니라 삶의 지침서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찬란하고 무용한 마음 공부의 한 방편으로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로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앎의 궁극 목표인 ‘나’를 찾는 것이 참다운 지혜다. ‘나’ 아닌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무지다.”(제13장 11절) 이런 문장을 곱씹다 보면 홍자성의 『채근담』에서 삶의 지혜를 얻듯이 자기 수양과 마음 챙김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문자로 기록된 고전들이 대개 그러하듯 바가바드 기타는 정본에 대한 논쟁이 많고 전하는 사람마다 그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서는 최근에 출간된 책을 소개하지만 여러 판본을 살펴 마음에 드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바가바드 기타는 전체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르주나의 번민에서 시작해서 해탈에 이르는 과정으로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족과 지역에 따라 역사, 문화, 전통이 다르게 발전해 왔다. 시대와 상황을 고려하여 이질적인 요소를 걸러내고 인간의 삶과 세상 사는 이치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다면 이 책에서 색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디지털 시대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고독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은 현대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때때로 돌아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해서는 물질과 육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정신과 마음의 영역을 돌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공부에 집중한다면 중년 이후의 삶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세상에서 주인으로 살려면 세상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세상일에 얽매여 분주한 사람은 결코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한다.(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1/52/cover150/k5620359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015247</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평생 공부하는 마음 -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9</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9143&TPaperId=170830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6/coveroff/k7620391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9143&TPaperId=170830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a><br/>제나 히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에트르 / 2025년 06월<br/></td></tr></table><br/>인간은 호기심과 질문의 동물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지 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 작은 호기심이 과학기술 발전의 바탕이며 철학적 탐구의 시작이었다. 인류가 찬란한 문명을 이뤄 현재에 이른 과정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앎을 향한 욕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지만 우리는 대체로 현실에 적응하며 하나둘씩 질문을 잃어버리고 산다. ​주입식, 강의식 학교 교육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공부’는 인내와 고통에 가까웠다. 경쟁과 점수로 각인된 공부는 암기와 동의어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평생 배움의 연속이다.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부터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일까지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은 나이와 무관하게 매우 소중한 기쁨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지겨운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재밌는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공부의 시작은 관심이다. 인생의 목적지와 방향에 맞춰 사람들의 관심사는 계속 변한다. 진학과 취업, 결혼과 자녀 교육, 부동산과 주식, 건강과 죽음 등 나이와 삶의 단계에 따라 현실적인 관심도 바뀐다. 생애 주기별 평생 교육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 자기에게 맞는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을 찾고, 학위를 받고, 승진을 위한 공부 등은 우리가 경험하는 매우 현실적인 공부다. 이런 종류의 공부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도유망한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20년 넘게 대학교수로 일하던 제나 히츠는 순수한 지적 욕구가 넘쳤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위계와 경쟁에 익숙해져 ‘배움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학계를 떠나 캐나다 동부 외딴 숲속에서 노동과 봉사를 수행하며 ‘작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실천한다. 그리고 성공이나 생산성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자기 성찰과 진정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물을 향한 관심이 인간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진짜 공부가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금전적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배움, 나를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태도야말로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가 아닐까. 중년을 넘어 은퇴한 이후에도 내면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는지,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충고가 떠오르는 저자의 이야기가 새삼스레 삶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6/cover150/k7620391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0682</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세상인가? - [헌법 제1조, 파시즘을 쏘다: - 세계 15개국 헌법으로 본 민주주의의 얼굴]</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8</link><pubDate>Tue, 10 Feb 2026 11: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8811&TPaperId=170830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42/76/coveroff/k0820388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8811&TPaperId=170830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헌법 제1조, 파시즘을 쏘다: - 세계 15개국 헌법으로 본 민주주의의 얼굴</a><br/>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04월<br/></td></tr></table><br/><br>기자는 임명직이 아니다. 자격시험도 없다. 그러나 언론은 유형, 무형의 권력을 누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레거시 미디어는 비판과 감시 기능 대신 행정, 입법, 사법 혹은 자본 권력과 공생 관계를 이뤄, 아니 기생한 지 오래다. 인터넷과 함께 뉴미디어 시대가 열렸고 순기능과 역기능이 혼재하는 현실에서 필터링은 이제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듯하다. 필터 버블 현상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는 길들어진 관점으로 살 수밖에 없다. 비판적 사고력은 주체적인 삶을 위한 필수 도구다. 생각의 근육은 헬스장에서도 기를 수 없다. 학력과 상관없는 사유 능력과 판단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과 사법부의 부패는 공화국을 위태롭게 하지만 그들의 거대한 카르텔은 진영의 논리로 해결하기 어렵다. 감시와 처벌은 요원하고 제 기능을 상실한 공권력의 해악은(아니 그 제도를 운용하는 자들이 스스로 권력기관이라 착각하는)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흔들고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쩌면,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기득권의 공고한 암묵적 카르텔보다 무서운 건 그 카르텔에 편입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경쟁이 아닐까. 상식과 공동체의 질서는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대체로 상식과 진리는 단순하고 간명하다.  변화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온건주의자와 혁명가들의 충돌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영을 넘어 삶의 태도와 방향으로 나타난다. 직업과 나이, 성별과 지역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이성적 판단 능력과 논리적 사유의 문제다. 허나 현실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현상에 대한 관점과 인과 관계가 엇갈리면 더 이상 토론과 합의는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의 합의로 굴러가는 민주정과 법치는 보이지 않는 ‘선line’이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는 단순한 관점의 차이다. 오프사이드offside 룰을 어겼는지에 관한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으나 오프 사이드 라인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를 수는 없다. 타인과의 갈등,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범죄를 ‘해석’의 문제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질서를 위반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일 확률이 높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근대 국가의 틀을 형성하면서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합의한 하한선, 마지노선, 최저선이 헌법이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합의에 해당한다. 링 위에서 상대 선수의 귀를 물어뜯은 타이슨도 있고, 박치기로 상대 선수의 코피를 터트린 축구 선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패배자가 되고 더 이상의 게임은 무의미해진다. 현실이 스포츠와 같을 수는 없으나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과 갈등 국면에서 각자의 억울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헌법이 그 판단 기준이라면 현상과 사건을 해석하는 헌법재판소는 또 어떤가. 또다시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환원되는 걸까. 온 국민이 헌법을 공부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각자 ‘해석’해 보자. 이 문장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의미일까. 유행처럼 출판된 헌법 관련 책들이 차고 넘친다. 법과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읽어 온 사람도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다. 박홍규 선생님의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겠으나 ‘파시즘’이라는 키워드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살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15개국의 헌법을 살피면서 다시 한번 정치가 아니라 각자의 삶과 현실을 점검해야 한다. 법은 법률가들의 소유가 아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과 합리성을 바탕에 둔 법률이 아니라면 언제든 수정 가능한 약속에 불과한 법의 적용 문제는 무지의 베일이 적용돼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을 각자 점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숨 쉬는 공기는 물론 내 몸의 뼛속까지 정치적이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언제든 바꿀 수 없다면 자기 도그마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비교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적 관점을 갖게 하는 것이고, 이로써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여러 가지에 내재하는 공통된 보편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48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42/76/cover150/k0820388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427625</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 -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7</link><pubDate>Tue, 10 Feb 2026 1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0700&TPaperId=170830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2/68/coveroff/k40203070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0700&TPaperId=170830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a><br/>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7월<br/></td></tr></table><br/>열 살 무렵,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 이후로 어떤 동물도 키워본 적이 없다. 20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15%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개, 고양이, 물고기, 거북이, 새…….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자기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들의 생존 전략을 소개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친화력과 협력을 기반으로 진화했다. 이 ‘친화력’은 생존에 필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특히 개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특화돼 있다. 노력보다 본능에 가까운, DNA에 새겨진 ‘다정함’은 무엇일까. 이해와 배려, 친절과 웃음을 넘어 희생과 이타적 태도까지 확장할 수 있는 우리 편을 향한 다정함은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성과 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나와 다름을 확인하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돌변하는 선택적 다정함도 본능일까.  그러나 인간과 달리 맹목적 다정함 덩어리처럼 보이는 강아지 앞에서 사람들은 무장 해제되곤 한다. 격일로 가는 헬스장에 소설의 주인공 비숑 프리제를 똑 닮은 강아지 한 마리가 회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적극적으로 손 내밀지 않고 멀리서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 눈인사만 하는 사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설 때 고개를 들어 눈길을 주는 그 강아지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은 헬스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느낀다. 말없이 게으르게 엎드려 조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 이 소설을 읽은 후부터 그녀석을 속으로 이시봉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만나는 실제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으면 이 소설을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알바 공작부인》은 흑백으로 실려 있어 이시봉을 구체적 이미지로 떠올리기 쉽지 않다.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스페인 카를로스 4세와 왕비와 재상 마누엘 고도이 그리고 알바 공작 부인 등 실존 인물과 역사를 속에 스며든 이시봉의 족보 추적기 그리고 만 스무 살 알콜 중독자인 이시습과 정채민의 앙시앙 하우스 등 대한민국의 현재 이야기. 소설에 한 번 등장하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단조에 어울리는 소설 속의 소설을 읽는 액자 구성은 익숙하지만 또 하나의 재미다. 500쪽이 넘는 장편의 지루함을 덜고 색다른 서사에 힘을 보탠다. 어느 쪽이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과 재미는 언제나 글 쓰는 이의 몫이 아닌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부터 『눈감지 마라』에 이르기까지 이기호가 보여준 재치 있는 문장과 대상을 향한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있어 평소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넉넉하고 흐믓하게 즐기기 충분하다.  스페인 왕가의 치정극, 비숑 프리제와 얽힌 비화는 고야와 알바 공작 부인의 실제 관계를 알지 못해도 정채민과 박유정과 김상민의 관계를 통해 반복 재생되는 일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시봉의 주변 인물들인 이시습, 정용, 수아, 리다는 정채민과 앙시앙 하우스 사람들과 다르다. 한발 떨어져 나를, 아니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은 불가능할까.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이 언제나 상징과 알레고리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면 충분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거나 현실 속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각각의 면면이 드러나며 다채롭게 반응하지만 소설에서 만나는 입체적 인물은 반갑지 않을 때도 많다. 소설에서는 일관된 캐릭터가 오히려 마음 편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리고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작가는 책으로 만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이기호가 키우는 이시봉을 확인하거나 다른 호기심을 충족한다고 해서 소설이 더 재밌거나 감동이 배가 되지는 않는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할 때,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상상력을 즐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으나 문학은, 아니 예술의 목적과 역할은……. 명랑한, 짧고 투쟁 없는 삶이라는 이시봉에 대한 규정이 반려견을 향한 일반적, 아니 ‘다정함’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지 싶었다. ‘개새끼’라는 욕설부터 ‘개 같은, 개만도 못한’ 혹은 접두사로 쓰이는 ‘개~~’ 등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개’는 반려견이나 강아지와 달리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시봉은 이씨 성을 가진 집안의 가족이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소설을 인간 삶에 대한 깊이와 무게를 느끼거나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지 않는다. 각각의 소설은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분명해야 좋다. 이시봉이 사형집행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마치 점심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제까지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급식실을 향해 돌진하는 고등학생처럼”이라고 묘사하는 이기호의 유머와 재치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808년 스페인 민중봉기에 관심을 갖고 유럽 역사를 다시 들여다봐도 나쁘지 않다. 소설은, 아니 모든 책은 각각의 독자에게 전혀 다른 모습일 테니. 다만 나는 ‘그것’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이기호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성석제처럼.​<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2/68/cover150/k4020307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926805</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마음이 흩어지려 할 때, 말을 문진 삼아 내리누른다.  - [[세트]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1~2 세트 - 전2권 - 완결]</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4</link><pubDate>Tue, 10 Feb 2026 11: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0830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7474&TPaperId=170830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53/66/coveroff/k6920374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7474&TPaperId=170830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트]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1~2 세트 - 전2권 - 완결</a><br/>산호 지음 / 고블 / 2025년 02월<br/></td></tr></table><br/><br>세상에는 산 것보다 살아남은 것들이 더 많아.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해.마음이 흩어지려 할 때, 말을 문진 삼아 내리누른다.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현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종목’을 선물(先物) 이라 한다. 한자가 다른 의미의 선물(膳物, present)는 전통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매매 계약은 아니지만 선물(膳物)은 어쩌면 일정 부분 선물(先物)의 의미도 담고 있다. 돌려받을 목적으로 선물하는 경우는 많지 않겠으나 받는 사람은 어느 정도 부담스럽기도 하다. 생일 선물, 100일 기념 선물, 결혼기념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입학과 졸업 선물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 감사, 축하, 위로 등을 담은 선물은 관계를 공고히 하거나 때로는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로 마음을 잘 전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의 고민을 덜어주려(?) 선물을 지정해서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주고받는 선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선물을...  책은 상대방의 취향, 지적 수준, 관심 분야, 독서 이력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많은 선물이다. 관계에 따라 권위, 조언, 충고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내용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읽히기도 해서 조심스럽고 신중한 선물이다. 물론 모든 선물은 관계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출판사, 편집자, 저자를 제외하면 책 선물을 받아본 지 참 오래됐다. “이 책 참 좋다, 읽어봐.”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아주 오래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이 책은 만화를 좋아하고 그리기도 하는 선한 분의 마음을 닮았다. 창밖에 내리는 가을비처럼.  그렇게 수집한 문장이 서랍 속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내 상상 속에서 오가는 대화의 끝에 당신은 닿지 못할 말들을 가여워하지 않으며 여전히 숨 쉰다.  슈피겔만의 『쥐』나 안토니오 알타리바와 킴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처럼 사회성 짙은 그래픽 노블을 읽은 적은 있지만 게임과 만화를 즐기지 않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산호의 글과 그림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본질적이고 고유한 성질이 있다. 본성에 반하는 삶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 대상은 스스로 무언가 의도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환상적인 수법으로 그려낸 이야기와 그림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언제 위기 아닌 상황이 있었으랴. 마녀들의 이야기가 모든 순간, 우리가 겪는 고통과 아픔이 아닌지 싶었다.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상대를 비난하고 난도질하거나, 개인과 조직을 싸잡아 주관적 해석으로 악마화하거나, 개발과 발전을 위해 희생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거나, 사회적 기회와 우연의 결과를 오로지 자기 능력과 성공으로 착각하거나......그렇게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한 채 정해진 답과 길이 있거나... 그렇게 많은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인 혹은 환상적인 상상력과 공상에 가까운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는 게 아닐까. 매우 현실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다룬 사회 소설에 가까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오독하든 그 또한 독자의 권리일 테니까.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죽은 무화과나무와 오천삼백 원짜리 애호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오늘과 맞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 책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 행간의 의미를 확장하고, 여백을 채우는 상상력은 읽은 이의 몫이다. 그것이 책이 아닌 무엇이더라도.   그러니 비록 전할 수 없다 해도 당신의 모서리를 더듬기 위해 쓴다.  초원. 여름이 가고 있어.​​]]></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53/66/cover150/k6920374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53664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