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흔적 (sceptic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隨處作主 立處皆眞</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9 May 2026 06:54:37 +0900</lastBuildDate><image><title>sceptic</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27041647259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ceptic</description></image><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현대 고전을 권함』 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6</link><pubDate>Fri, 01 May 2026 06: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7552&TPaperId=172517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0/57/coveroff/k17213755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 떠납니다. 인류의 역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오늘, 여기에 삽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변치 않겠죠.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공자, 맹자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전 지혜의 등불을 밝힌 성인(聖人)들과의 만남은 자기 삶의 목표와 가치를 위한 지식과 교양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현실과 너무 멀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18세기 전후부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우리 삶의 기본 조건이 되었습니다. 최근 200여 년 동안 인류의 빛이 되어 준, ‘현대고전’이라 명명할 만한 책들과의 조우는 한 인간의 삶에서 커다란 사건일 것입니다. 문학은 물론 사회, 경제, 심리,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거인의 반열에 오른 저자들과의 만남은 형언할 수 없이 찬란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지만, 빵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계속하며 현실적인 삶에 직접 닿아 있는 책들을 고골라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관찰하며, ‘사랑’을 고민한 후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일’과 ‘지구’의 미래를 살폈습니다. 각각 21개의 주제로 엮인 책들은 문학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통찰하는지, 각 분야의 지식이 왜 필요한지 돌아보았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문학과 비문학의 어울림일 것입니다. 허구의 세계는 현실에 발 딛고 있으며, 각 분야의 지식은 왜 필요한지 살피는 동안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에 집중하겠죠. 모든 일엔 끝이 있습니다. 언제 마지막이 될지 알 수 없으나 혹시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아주 작은 현실적 고민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혼자 읽어도 좋지만 따로 또 같이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 첫걸음입니다. 독서모임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읽어나가는 방법도 좋습니다. 한 권의 책은 ‘나’로부터 시작하지만 ‘너’와 ‘우리’의 삶을 넘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데 작은 씨앗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어디서 누군가 책장을 넘깁니다.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 조금 멀리, 더 넓게 보려는 그 작은 노력들을 응원합니다. ​*보잘것 없는 초고를 다듬고 매만져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주신 편집자님의 수고를, 그 지난한 과정의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12년째 이어온 &lt;전복적 책읽기&gt; 모임, 원고를 다 쓴 후 이 책의 차례대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lt;현대 고전 산책&gt; 회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0/57/cover150/k1721375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05791</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역사</category><title>과거에게 오늘을 묻다 - [징비록 - 전란을 극복한 불후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5</link><pubDate>Fri, 01 May 2026 0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5288&TPaperId=172517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3/27/coveroff/89324752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5288&TPaperId=172517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징비록 - 전란을 극복한 불후의 기록</a><br/>유성룡 지음, 이민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1월<br/></td></tr></table><br/><br>1566년 별시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선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선조를 모시고 평양으로 파천했으며, 병조판서를 겸하여 도체찰사로 전쟁 전반을 총괄한 인물입니다. “내 지난 일을 징계하고 뒷근심이 있음을 삼가노라.”라는 뜻을 담은 징비록(懲毖錄)은 단순한 전쟁 후일담이 아니라 가장 생생한 전쟁 기록이며 두고두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살펴볼 수 있는 역사의 장면들입니다.​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는 450년이 지난 오늘에도 한국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 후 한양을 점령하는 데 단 2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세습 왕조의 무능, 실용적인 학문과 현실적인 정책이 아니라 성리학에 매몰된 신하들의 당쟁이 결합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던 시대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벌어졌으나 조선의 제도와 체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변화와 혁신은 남의 나라 일이었습니다. 결국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며 침략의 비극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상처로 남아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같이 못난 몸이 당시의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감히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태로움을 바로잡지도 못했고, 또 기울어지는 형세를 붙들지도 못했다. 생각하면 그 죄를 몸이 죽어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라는 고백이 뼈아픕니다. 무능한 리더를 대신해 전쟁을 이끄는 유성룡의 목소리에 한숨과 회한 그리고 후회와 자책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군사력, 현실 대처 능력, 정부의 대책, 위기관리 시스템은 처참해 보입니다. 일명 ‘국뽕’에 젖어 조선 왕조를 미화하거나 당대의 현실을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책을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식상한 금언 때문입니다. 어제를 잊은 사람에게 내일의 희망이 보일 리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나간 시간을 톺아보고 오늘을 성찰하며 변화를 통해 한발씩 나아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불행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21세기에 다시 읽는 ‘징비록’의 의미가 아닌지 싶습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3/27/cover150/89324752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232763</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지나며 -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4</link><pubDate>Fri, 01 May 2026 0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1&TPaperId=172517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22/coveroff/k3221369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1&TPaperId=172517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a><br/>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02월<br/></td></tr></table><br/>단 하루라도 지구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있을까요?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잔혹한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동물적 본성을 버리지 못한 인간에게 치열한 경쟁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필연일 수도 있습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가 지배하는 생태계는 인류의 문명발달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제 그 원인과 결과를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으나 6.25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의 어르신들이 아직 생존해 계십니다. 대한민국의 역사, 아니 근현대사는 정말 다이내믹했습니다. 역동성은 발전과 변화를 이끌지만 언제나 두렵고 불안한 미래를 살아야 한다는 숙명을 내포합니다. 현재, 북아메리카의 군사 강대국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의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은 우리와 무관할까요?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할까요? 『징비록』을 남긴 유성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과거의 전쟁 그리고 현재 상황을 살피기 위한 두 권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시공을 넘어 오늘의 현실과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해 보입니다.<br><br>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가 안보 전략’은 기본적으로 ‘먼로주의(개입 축소주의)’를 표방했으나 당선 후에는 군산복합체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저자는 “미국은 1조 달러짜리 전쟁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 기계는 고장 나 있다.”라는 말로 오늘의 현실을 지적하며, “전쟁 기계는 오늘날 미국 사회 구조 자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라고 분석합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벌어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은 예상된 시나리오였을까요? 자본과 권력의 결합이 빚어낸 비극은 참혹한 죽음과 파괴된 문명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언제나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결국 핑계에 불과해 보입니다. 인류가 ‘평화’를 최우선 가치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전쟁과 폭력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단순히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이익 추구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은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미국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 아니라, 지구 곳곳을 멍들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피상적 현실 너머의 속살을 헤집어 본질을 파악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 능력이 오히려 민주주의와 평화, 안전과 번영의 토대를 훼손한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군수산업이 선거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평화를 위협하며 전 세계를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증거와 현실 분석으로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고장난 전쟁 기계’로 명명된 미국의 현실과 한반도의 상황이 오버랩됩니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안보 위기 상황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미국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사는 현실에 대한 걱정과 고민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할리우드, 게임산업, 빅테크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된 거대한 자본주의 산업은 과연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전쟁 기계에서 평화 기계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 위기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일론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전쟁 기계를 다시 한번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현실적 우려와 걱정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루하루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의 전쟁이 바로 ‘나’의 일상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생각이 말을 바꾸고 다른 행동을 촉발합니다. 전쟁은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코 앞에 놓인 현실입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22/cover150/k3221369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52261</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인간은 세계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 [68혁명,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2</link><pubDate>Fri, 01 May 2026 06: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731386&TPaperId=172517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53/20/coveroff/k7127313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731386&TPaperId=172517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68혁명,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a><br/>차명식 지음 / 북튜브 / 2021년 05월<br/></td></tr></table><br/>스무 살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마흔에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이성이 마비된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자주 인용돼 생각지도 않고 흘려보내는 말 중 하나다. 그렇다면, 스무 살에도 사회주의자인 사람이 거의 없는 오늘의 현실은 행복한가, 불행한가. 통계조사를 인용할 것도 없이 좀 산다는 나라 17개국 중 유일하게 행복의 첫째 조건을 물질적 풍요로움, 즉 돈이라고 응답한 나라 대한민국의 현실은 괜찮은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은 현실 부적응자이며 비정상적인 소수자에 머물러야 할까. 그래도 스스로 예수를 자처하는 세계 최강국의 정신병자나 홀로코스트를 생명 연장, 아니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자보다는 낫지 않은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데 그걸 해내겠다는 사람이 가끔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 개인적 지지와 무관하게 눈물겨운 투쟁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렇게 아주 조금씩 진보를 거듭해 온 인류의 역사가 놀랍기만 하다. 반개혁, 반혁명 세력의 지지 기반이 궁금한 적은 없다. 유사이래 정과 반이 합을 이뤄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도로 제자리이거나 한발 물러선 것 같은 착각이 들지 않을 때가 있었나 싶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뒤를 돌아보면 과거로 회귀하거나 역진 현상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나선형의 진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생존하고 있는 시대다. 1445년 구텐베르크가 성경 활판 인쇄를 시작했고 뒤이어 1492년 콜럼버스의 배를 타고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꼭 100년 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벌어졌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876년 벨이 전화를 발명해 특허를 냈다. 1894년 동학혁명이 벌어졌으며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됐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인터넷이 등장하기 23년 전, 그러니까 4.19 혁명 8년 후에 유럽에서 시작된 68혁명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나 2001년 미국 무역센터 9.11 테러보다 그 여진이 더 길고 진동이 크다. 차명식은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68혁명’을 도구로 삼아 근대, 아니 현대 사회의 근간을 이룬 사상적 토대와 인류의 행동 방식을 들여다본다. 흔히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믿는다. 자유 의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며 자율적인 삶을 영위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혁명과 반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율 신경계와 진화한 존재로서 생물학적 반응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보이는 것조차 외면하는 습성을 가진 인간의 삶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은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서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라고 굳게 믿고 싶은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지금 우리에게 68혁명은 왜 필요한가.  그래도, 여전히 근본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의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저 연어들처럼 과거로 회귀하는 사람들, 취향과 안목에 대해 살피려고 장 보드리야르와 부르디외를 소환하는 사람들, 자본주의의 삶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하지 못하고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들, 그 수많은 작은 희생과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더듬는 일이 바로 일상 속의 ‘혁명’이며 68년에 벌어진 사소함이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는 왜 네타냐후의 얼굴과 오버랩되며 구토를 유발할까. 체 게바라와 실존주의 , 마틴 루터 킹과 맬컴 X, 한나 아렌트와 위르겐 하버마스를 살핀 후에는 이제 꼰대가 되어버린 세대의 성찰과 회한이 아니라 ‘핏덩이’들의 혁명이 필요할 때가 아니냐는 역설로 들린다. 여덟 번의 강의를 모은 책이다. 2권으로 나뉘어 ‘세계를 바꾸기 위한 세 가지 방법’으로 이어진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로 대표되는 비트 세대, 히피와 여피, 페미니즘 등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는 혁명의 후유증, 아니 오늘의 바탕을 이루는 이야기들은 억지스런 인과관계로 읽히지 않는다. 나와 현재를 돌아보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정확한 방법은 뒤를 돌아보는 일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만 기억하는 68혁명은 어쩐지 좀 서글픈 느낌도 없지 않다. 내가 보낸 시간의 총합이, 시간의 누적이, 말과 행동의 결과가 나다. 그 누구도 아닌 각자의 어제와 오늘이 그렇다. 변화를 시도하거나 새로움이 없다면 관성의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다. 불온한 단어로서의 ‘혁명’이 아니라도 좋다. 중국 은나라 탕왕이 세숫대야에 새겨둔 ‘일신우일신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이야말로 혁명의 할애비가 아닌가. 다른 길로 가보자, 어제 간 길 말고.  68혁명은 ‘이기의 시대에 일어난 되기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너는 ~이어야 한다”는 명령에 맞서, 그 명령에 반해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한 사람들의 ‘운동’이었다는 것이지요. ‘이기’는 존재를 정의함으로써 국면을 확고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가능성을 제약합니다. ‘되기’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도약이고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를 열게 하는 거고요. - 169쪽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53/20/cover150/k7127313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0532091</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근육에 대한 이해와 오해 - [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근육의 해부학에서 피트니스까지, 삶을 지탱하는 근육의 모든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1</link><pubDate>Fri, 01 May 2026 06: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934657&TPaperId=172517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1/68/coveroff/k3629346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934657&TPaperId=172517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근육의 해부학에서 피트니스까지, 삶을 지탱하는 근육의 모든 것</a><br/>로이 밀스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4년 11월<br/></td></tr></table><br/><br>어느새 봄이 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걷기 좋은 계절이라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오면 다음 날 걷기 불편한 정도로 종아리가 아프죠. 올라갈 땐 괜찮은데 내리막길에서 종아리 근육은 몸무게를 버티면서 근섬유가 늘어나는 ‘편심성 수축’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늘어나는 몸무게, 가늘어진 팔다리를 걱정하다가 무리하게 운동을 한 후에 여기저기 온몸이 쑤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의사나 물리치료사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해부학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선행돼야 할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일 겁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몸은 206개의 뼈와 600개 이상의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종 장기와 지방, 혈관, 혈액 등에 관한 지식은 관련 직업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익히고 활용하겠죠. 하지만 일상생활에도 근육의 움직임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할 테니까요.​  정형외과 의사인 로이 밀스는 해부학, 생리학, 생물학뿐만 아니라 역사, 피트니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지식을 활용하며 인간의 몸을 지탱하는 근육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양에서는 육체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몸에 맑은 정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음식을 집기 위한 젓가락질부터 발레리나의 균형 잡힌 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몸동작에 필요한 근육에 관한 지식은 자기 몸을 돌보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입니다. 평균수명보다 건강수명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건강하게 사느냐가 문제라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할 겁니다. 40대 이후 근육 1kg이 수천만 원의 가치가 있다는 계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근육은 우리 삶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합니다. 오늘부터라도 가볍게 운동을 시작해 보세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근심과 걱정 대신 근육량을 늘리는 일이 중요합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1/68/cover150/k3629346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916830</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걷는 존재로서의 인간 - [치유의 걷기 - 몸과 마음을 살리는 걷기는 따로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0</link><pubDate>Fri, 01 May 2026 06: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033591&TPaperId=172517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22/94/coveroff/k5720335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033591&TPaperId=172517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치유의 걷기 - 몸과 마음을 살리는 걷기는 따로 있다</a><br/>애너벨 스트리츠 지음, 김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12월<br/></td></tr></table><br/><br>발바닥을 들여다보세요. 아치형 구조와 일렬로 뻗은 엄지발가락이 새삼스럽죠? 인류는 약 600~700만 년 전 숲에서 초원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직립보행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두 발로 걸으면 넓은 초원에서 먼 거리 이동에 효율적이며 포식자를 감시하거나 먹잇감을 찾는 데 유리합니다. 무엇보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도구를 제작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 지혜로운 사람’로 거듭났습니다. 직립보행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디스크 같은 척주 질환이 늘고 고혈압과 하지정맥류 같은 질병도 얻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몸은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인간은 걷는 존재로서 살아가며 생존과 건강 그리고 삶의 질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생후 12~15개월 무렵에 걷기 시작해서 직립보행이 가능할 때까지가 한 인간의 독립적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누구라도 두 발로 걷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렵죠. 그래서 걷기는 인간의 몸과 정신 건강에 직결되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중요한 운동입니다. 단순히 행복한 삶과 노년을 위해 많이 걸어야 한다는 뻔한 충고가 아닙니다. 오늘부터라도 자기 몸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코로나 감염병이 유행하던 시절 자전거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각종 생활 스포츠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TV뿐만 아니라 SNS에서도 러닝 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러닝은 운동화 한 켤레와 가벼운 복장으로 즐길 수 있지만 집 주변에 마땅히 달릴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걷기는 어떤가요. 정장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도, 시장과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도 걸어야 합니다.​  이처럼 걷기는 생활의 수단이며 생존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작입니다. 그래서 걷기는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고 따로 시간을 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너벨 스트리츠는 몸과 마음을 살리는 걷기는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즉, ‘치유의 걷기’를 강조하며 장소별로 걷는 팁을 제안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걷는 산책이 나쁠 리 없습니다. 하지만 도시공원과 평지, 숲과 언덕, 호수와 강에서 걷기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장소에 따라, 걷는 방법에 따라 치유 효과도 달라집니다.​  이탈리아 연구자들은 해안 지역의 코로나 입원율이 내륙 지역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는 의료 체계에 가해지는 부담을 바다 공기가 완화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저자는 빨리 걸으면 뇌는 새로운 신경세포(뉴런)의 성장을 촉진하는 단백질이자 희망 분자로 알려진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를 생성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우울증 환자는 BDNF 농도가 낮은 경우가 많으니 걷기는 신체적인 활력과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입니다.​  이 책에는 숲, 해안, 시골길부터 공동묘지, 버려진 기찻길, 도시공원, 순례길에 이르기까지 스무 곳의 장소별 걷기와 그 효과를 소개합니다. 암세포를 탐지해 파괴하는 자연 살해(NK) 세포가 증가하는 숲에서 걷기,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자연적으로 높이는 언덕길 걷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및 아드레날린 수치가 감소하는 호수가 걷기는 어떨까요? 단순히 몸과 정신 건강에 모두 좋을 거라는 짐작이 아니라 의학적 소견과 과학적 연구가 뒷받침된 이야기라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오늘도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걷는 우리에게 장소에 따라 효과적인 걷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집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22/94/cover150/k5720335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229441</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 [걷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87</link><pubDate>Fri, 01 May 2026 06: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2517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372&TPaperId=172517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1/4/coveroff/89329253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372&TPaperId=172517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걷다</a><br/>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옴니버스 영화에 해당하는 앤솔러지 문학은 하나의 주제로 엮은 이야기 뷔페다. 저 멀리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부터 《청구영원》, 《해동가요》, 《동문선》까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그 전통을 이어왔다. 한 작가의 앤솔러지든 여러 작가의 앤솔러지든 대개 출판사의 기획으로 묶이는 경우가 많다. 짧은 단편이 모여 커다란 주제를 탐색하는 방식은 영화든 소설이든 무지개처럼 다양한 빛깔과 향기를 내며 어울린다. 어색해 보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진다.  열린책들의 「하다」 앤솔러지는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 등 5개의 주제다. 동사 ‘하다’에 해당하는 각각의 행위는 곧 인간의 ‘삶’이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생존에 가까운 행위들이다. 특히 ‘걷다’라는 주제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직립 보행하는 동물이다.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축복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가만히 누워 발버둥치다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다가 두 발로 우뚝 서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나’가 아닌 부모와 어른들만 기억한다. 내 직립의 순간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두 발로 걷기 힘들어지고 어느덧 다음은 ‘나’의 차례가 낼 것이다. 그러니 ‘걷다’라는 동사는 축복이며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행위다.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 한다. 고급 승용차 뒷자리도 나쁘지 않고 비행기 퍼스트클래스도 좋지만 두 발로 걷는 동안 생각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신체는 활력을 되찾는다. 김유담의 「없는 셈 치고」, 성해나의 「후보(後步」, 이주혜의 「유월이니까」, 임선우의 「유령 개 산책하기」, 임현의 「느리게 흩어지기」에는 접점을 찾기 힘들다. 독립된 이야기가 제각각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생의 단면을 들춘다. 뒤로 걷기도 하고 유령 개와 함께 걷기도 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걷기의 기술을 펼쳐 보인다. 어쩌면 ‘걷다’라는 행위 자체가 주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을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듯, 소설은 어차피 사람 사는 이야기의 결을 보여줘야 한다는 듯, 걷는 동작은 곁들임 메뉴처럼 한 구석을 장식할 뿐이다. 숨을 쉬며 들숨과 날숨을 고민하지 않듯 눕고 앉고 걷고 뛰는 동작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를 뿐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분석과 해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 할 뿐. 선명함 속에선 받아들일 정보가 많고 그만큼 쉽게 피로해지곤 했다. 뭉개지고 흐리고 자글자글한 세계를 근성은 늘 더 선호했다. 지금의 고민을 잊을 수 있는 희미하지만 부드러운 세계를. - 「후보(後步)」, 성해나, 49쪽 뒤로 걷는 사람의 속내는 어떨까. 공원이나 산길에서 건강을 위해 손뼉을 치며 뒤로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도대체 얼마나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아했다. 성해나는 ‘후보(後步)를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벤자민 버튼처럼 주인공의 인생을 반추하는 동작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뒤로 걷는 행위는 과거를,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행위처럼 보인다. 나의 지금 여기가 어디든, 네가 어제 어디였든 미래에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만나거나 영원히 멀어질 것이다.  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 죽으려고. 아니고. 살려고. 죽겠으니까. 살려고. - 「유월이니까」, 이주혜, 111쪽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르다. 생각의 속도는 물론 행동에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그러나 결국 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뛴다. 그 뻔한 속성과 행위의 결과에 대한 항변이 새삼스러운 이주혜의 단편이 인상적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 걷고 있을까. 아니, 어디를 향해 쓸데없이 뛰어가는 건 아닐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무덤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가끔씩 떠오른다. 건강 이슈가 아니어도 기대와 희망 따위가 없는 사람의 냉소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허망한 삶에 대한 경고와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조언으로 여겨야 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혼자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이제 좀 걸어야겠다, 삼월이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1/4/cover150/89329253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710444</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의견이 사실은 아니다 -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9</link><pubDate>Mon, 23 Mar 2026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538&TPaperId=17167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4/85/coveroff/89659675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538&TPaperId=171674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a><br/>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근대 철학의 출발입니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하는 행위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존재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인식하는 주체로서 ‘나’를 제외한 세상 만물과 사건을 의심하라는 충고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독일의 신경심리학자 옌스 포엘은 역설적 제목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사실이 의견일 리 없습니다. 의견은 의견일 뿐이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기 ‘주장’이나 ‘의견’에는 해석과 감정과 판단이 뒤섞여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객관적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fact’에 차이가 생깁니다. 하나의 사실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해석과 주장이 엇갈릴 뿐이죠. 자기 생각, 즉 의견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합의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은 전문적인 연구자나 학문적 영역에서 갖춰야 할 정교한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 태도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지식은 불완전하며 과학의 역사조차 격렬한 논쟁으로 가득합니다. 지금 우리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판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실 판단의 기본인 ‘관찰’에 소홀하면 사실과 의견 그리고 해석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확립하기 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실이 필요할까요?​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뒤섞어 합리화하는 태도를 점검하지 않으면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를 점검하는 대신 대부분 언제나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책입니다. 인격은 지식과 교양이 아니라 태도와 방법입니다.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점검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길 바랍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4/85/cover150/89659675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448515</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감성이 이성을 지배할 때 - [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5</link><pubDate>Mon, 23 Mar 2026 10: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4623&TPaperId=171674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2/79/coveroff/k8620346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4623&TPaperId=17167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a><br/>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인간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일까요? 치밀하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과 빈구석이 많은 사람의 선택과 판단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우리는 직관과 객관, 사실과 의견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근대 이후 과학과 이성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심리적 편향과 오류 사이에서 길을 잃어도 그 이유조차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작은 차이가 인생을 뒤바꾸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나이와 성별, 학력과 직업에 따라 문제 해결 능력과 방법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과 판단을 위해서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중요합니다. 이제 곧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시대에 접어듭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최적의 선택을 제안하고 이성적 판단으로 인간의 실수를 줄여줄 지도 모릅니다. 인터넷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를 떠올리면 오늘의 현실은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휴먼 로봇 시대를 맞게 될 미래에 우리는 니체의 말대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천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쉼 없이 성찰하며 내일을 준비할 시간입니다. <br>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혹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맞닥뜨리면 ‘나’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외부’에서 문제를 먼저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피해자’라고 믿는 착각에 빠집니다. 숫자가 ‘진실’이라는 믿음, 확률이 ‘확정’이라고 생각, 내 경험이 ‘전체’라는 심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또 너무 자연스럽게 ‘틀린 판단’을 반복하고 있다.”라는 저자의 지적이 뼈아프게 들립니다. 데이터 분석가 키코 야네라스는 사람들이 ‘직관’, 즉 해석과 주장과 예측을 마치 사실처럼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균형 잡힌 올바른 판단은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에서 나옵니다. 자기감정과 착각에서 한 발 떨어져 ‘객관’적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현대인에게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문해력은 기본이고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평가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길러야 하는 시대입니다. 각종 뉴스와 데이터의 표면적 의미뿐만 아니라 맥락을 파악하고 숨어 있는 목적과 의도를 읽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주장과 해석을 진실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유통되는 정보와 습득한 지식은 과연 진실일까요?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직관보다 근거를 살펴야 합니다. ​챗지피티ChatGPT나 제미나이Gemini 등 인공지능도 천연덕스럽게 허위 사실을 전달합니다. 이를 걸러내고 객관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우연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며, 딜레마에도 균형을 유지하고, 직관을 맹신하지 않아야 합니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억력과 암기력이 아니라 종합적 사고력과 주체적인 판단력입니다. 사건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능력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인간다운 능력일 것입니다. 감정과 기분에 따라 선택하고 판단하는 ‘나’를 바꾸지 않으면 현실과 미래도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갑니다. 직관이 아니라 객관적 근거를 확인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태도가 전혀 다른 삶으로 안내합니다. 오늘도 인터넷과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정보들이 전달됩니다. 알고리즘이라는 현대인의 감옥에서 벗어나 조금 더 멀리서 전체를 바라보며 현재의 ‘나’를 살피는 일이 우선입니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2/79/cover150/k8620346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427976</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과 프로파간다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세트 - 전3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3</link><pubDate>Mon, 23 Mar 2026 10: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880&TPaperId=17167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61/24/coveroff/89329248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880&TPaperId=171674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세트 - 전3권</a><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01월<br/></td></tr></table><br/><br>“서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위선자들이에요! 모두 아버지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어요. 파충류 한 마리가 다른 파충류를 잡아먹는다 이겁니다. 만일 부친 살해가 없었다면, 모두들 화가 잔뜩 나서 툴툴거리며 흩어졌을 거예요……. 구경거리겠지! 〈빵과 구경거리!〉라고 말하지 않던가요? 물론 나도 좋은 사람은 아니죠. 어디 물을 가지고 계신 분 없습니까? 제발 물 좀 마시게 해주세요!”(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이대우 역, 열린책들, 2009.12.20.)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옙스키를 선호하는 독자들의 성향을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스물여덟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사면됐고 쉰일곱에 셋째 아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죄와 벌』, 『지하로부터의 수기』,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그의 작품에 직, 간접적으로 분명한 흔적을 남겼겠죠. 그러나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통해 소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차적입니다. 소설의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주제 의식은 조금씩 달리 해석됩니다. 인간의 욕망과 심리에 대한 내밀한 탐구,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설명, 상속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 신과 인간 그리고 구원의 문제, 과학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 등 무엇을 읽어내는지 개별 독자의 관심과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버지 표도르, 첫째 드리뜨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쟈꼬프는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형제들이지만 닮은 구석이 없고 각자 삶의 길이 다르죠. 서구의 합리주의와 니힐리즘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이성의 힘과 공리주의를 강조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에 반발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외쳤던 프랑스와즈 사강의 생각은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우울하고 끈적한 분위기가 읽는 사람들 내내 답답하게 만들고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생각은 신의 섭리, 전통 윤리에 대한 도전과 반항입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신의 죽음을 예견했을까요. 오히려 니체에게 영향을 준 러시아 소설가의 인간에 대한 관찰과 사회 변동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소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이나 맥락과 상관없이 툭툭 던져지는 문장들 혹은 이반이 스메르쟈꼬프의 생각을 바꿔 놓은 장면들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성적 합리주의와 니힐리즘의 영향을 받은 이반 역시 철학적 프로파간다, 즉 시대적 흐름과 유행처럼 번지는 사상에 동조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심리적 지배를 받은 스메르쟈꼬프의 부친 살해는 해석과 논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듯 싶습니다. 카프카의 『소송』에서 ‘법 앞에서’ 우화처럼 도스토옙스키는 ‘대심문관’ 에피소드로 자유의 대가는 ‘빵과 기적’을 주는 권위에 복종으로 언제든 대체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은 고뇌하는 소크라테스형 인간이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도스토옙스키가 원하는 인간형이겠으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오히려 작은 이익과 안전한 미래, 물질적 풍요 앞에서 생각보다 많은, 아니 거의 모든 걸 포기할 의향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자기 PR용으로 남긴 저작 『프로파간다』가 새삼스럽게 읽힙니다. 인간의 욕망과 집단 동조, 권위에 복종하는 오류가 겹쳐 정치적 선전선동 못지않게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환상과 유토피아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베이컨을 팔기 위해 의사를 동원하고, 젊고 예쁜 여성들에게 담배를 물려 선전하는 전략이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예인과 인플루서언서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대중의 선호와 호기심은 변함없이 계속되는 세상이 신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명품백과 수퍼카를 떠올릴 필요도 없고 베르너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를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아 놀랍기만 합니다. 속고 속이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자기 욕망과 자유의지라는 착각에 대한 성찰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은 각자의 선택과 판단이겠죠. 러시아의 푸틴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바탕이 무엇인지,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모스크바 상황을 들려주신 분,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라고 선언했던 조지오웰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그리고 아트페어를 통해 관람객과 그림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에 대해 고민하신 분, 문화예술 전공으로 전시 기획이나 그림에 대해 진로 고민을 하시는 분 등 어느 때보다 ‘프로파간다’라는 주제가 흥미로웠던 모임이었습니다. 토스토옙스키를 옆집 남편의 입장에서 둘째 부인 이야기와 곁들여 평가하는 수다도 즐거웠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매번 다양한 반응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전해주는 정보들, 입맛에 맞는 답변들, 그 알고리즘 뒤에서 조종 가능한 프로파간다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의 고민과 경계 대상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자본주의와 욕망’을 주제로 한 세 번의 모임이 끝났습니다. 이제 ‘민주주의와 일상’을 주제로 여섯 권의 책을 만날 차례입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낯선 존재로 있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역, 연암서가, 2020.04.25.)<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61/24/cover150/89329248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4612466</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 [돈 끼호떼 1 -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8</link><pubDate>Mon, 23 Mar 2026 0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035&TPaperId=171674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13/18/coveroff/8936464035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035&TPaperId=171674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돈 끼호떼 1 -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a><br/>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br/></td></tr></table><br/>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_체 게바라, 65년 3월 쿠바를 떠나며, 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 26쪽 아주 먼 옛날 스페인에 살았을지도 모를 돈 끼호떼를 다시 만났다. 아니, 어쩌면 그의 전부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건 처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게 두려워질 무렵에 읽는 돈 끼호떼는 이전의 그와 현재의 그가 다르다. 아니, 소설 속의 그가 변한 게 아니라 현실 속의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비현실적인 몽상가, 환상적인 모험가, 반미치광이 부적응자...그를 뭐라 부르든 중년의 나이에 길을 떠나는 돈 끼호떼는 거울 속의 나, 혹은 곧 도래할 독자의 미래여도 좋다. 꿈꾸지 않는 자의 하루는 허망하며, 오늘이 전부인 사람의 일상은 무기력하다.  420여 년 전 미겔 데 세르반떼스가 그려낸 돈 끼호떼는 누굴 닮았든, 무엇을 풍자했든 지구 반대편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많이 낯설다.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고 언어유희를 즐기는 그는 왜 여전히 회자되는가. 1,500쪽이 넘는 두 권의 소설을 읽는 동안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문장에 낄낄거리다 해가 저물었다. 겨우 풍차를 향해 긴 창을 들고 돌진하던 모습만 기억하는 내게 완역판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였다. 액자식 구성으로 수많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 즉 전설, 신화, 민담이 뒤섞여 『천일야화』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안셀모-까밀라-로따리오’, ‘레오넬라 이야기’ 등은 스토리 텔링의 원형을 찾아 볼 수 있을 만큼 친숙하지만 낯설다. 떠나고 머물고, 다시 돌아와 몸을 추스리고 또 떠나는 돈 끼호떼를 추동하는 힘은 무엇일까. 우스꽝스럽고 한심해 보이기는커녕 그 처절한 몸짓들이 애처롭게 읽혔다. 힘에 부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안 될 걸 알면서도 명분과 대의 앞에 당당한 태도가 슬프게 보이는 건 순전히 내 탓일 게다.  조반니 보카지오의 『데카메론』(1350년 경), 앙투안 갈랑의 프랑스판(1714) 『천일야화』(8세기~16세기경)와 더불어 유럽 문학의 기원이 된 소설 『돈 끼호떼』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소설이 아니다. 기사 작위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경제적 위치에 놓인 방랑 기사 돈 끼호떼는 양심 있는 엘리트 지식인의 광기를 보여주는 맹목적 이상주의자이며, 자유와 정의를 위해 몸부림치는 행동하는 지성이다. 또한 젊음과 사랑과 열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낭만적 로맨티스트다. 지천명에 이으러 깨달음을 얻은 중년의 꼰대 돈 끼호떼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대책 없는 어른이다. 2권 마지막 부분에 죽는 날까지 동양의 어느 왕국에 가 사서 왕이 되거나 대학 총장이 될지 모른다는 꿈을 가진 돈 끼호떼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돈 끼호떼는 쉼 없이 도전하고 현실 극복 의지가 뚜렷하다. 예측을 벗어난 말과 행동은 웃음을 유발한다. 상상력과 창조성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며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시도들, 그 과정과 노력으로 인간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대신 누적된 시간의 힘을 확인하며 생의 비의를 어렴풋이 깨닫는 법이다. 돈 끼호떼 곁에서 한결같이 그 허물을 덮어주고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는 산초 빤사는 조연이 아니라 돈 끼호떼의 동반자다. 두 사람이 빚어내는 콤비플레이는 미겔 데 세르반떼스 유머의 백미다. 마술적 사실주의, 환상적 리얼리즘의 원조라고 해도 손색없는 이 오래된 소설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타인과 세상을 향한 ‘태도’를 점검하게 된다. 인생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을 떠올려 보면 그들이 내게 보여준 표정, 내가 그들을 향한 행동이 떠오른다.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걸어왔든 돌아보면 이미 날이 저물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아마 중년의 돈 끼호떼 아재도 황혼녘에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지 않았을까.  소설은 1권 52장, 2권 7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작과 공작 부인, 10일간 바라따리아 섬의 총독으로 일하는 산초 빤사 외에도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해낸다. 서사를 따라가며 전체 구성을 이해하고 위기와 절정을 지나며 결말에 이르는 현대 소설을 기대해선 안된다. 말과 당나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자. 돈 끼호떼와 산초는 만담 수준의 말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아재 개그의 원조라 할만큼 속담 주고받기, 다양한 언어 유희가 계속 된다. 파편적 이야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되지만 돈 끼호떼의 강렬한 캐릭터는 변치 않고 독자들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오뒷세이아』처럼 고향으로 귀환하는 원점 회귀형, 여로형 구성은 특별할 것도 없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하는 법이 아닌가. 또한 방랑기사에서 ‘목동’이 되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려는 홀든 콜필드를 떠오르게 한다. 결국 ‘깨달음’을 얻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알론소 끼하노라는 자기를 확인하는 기나긴 여정에 불과해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반성과 후회가 곧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변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닌지 싶다.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책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각자 전혀 다른 무언가를 길어 올린다. 스토리와 허명을 가리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16세기 스페인 라 만차의 돈 끼호떼가 엘 또보소의 둘시네아를 사랑한 이야기로 읽으면 어떤가. 장소팔과 고춘자의 만담, 정찬우와 김태균의 컬투를 떠올려도 상관없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대책 없는 아재의 나이브함이 불편하지만 않다면.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13/18/cover150/893646403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131804</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타인의 기원과 편향들 - [타인의 기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5</link><pubDate>Mon, 23 Mar 2026 0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838468&TPaperId=171674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85/55/coveroff/k5228384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838468&TPaperId=171674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인의 기원</a><br/>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06월<br/></td></tr></table><br/><br>지구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 왔다. - 29쪽 집단뿐만 아니라 개인은 더더욱 그렇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타자화하는 습성은 본능에 가깝다. 친밀감, 유대감, 관계 양상에 따라 역할극이 바뀔 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주체적 삶에 대한 절대 고독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타인과 달리 ‘타자’는 사르트르의 ‘대자’, 레비나스의 ‘절대적 타자’와 같이 사유 주체 너머의 존재를 의미한다. 일상적 용어든, 철학적 개념이든, 타인이든 타자든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돈다. 대개 육체적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각자의 일상과 미래가 읽기의 바탕이라면 모든 텍스트가, 단어와 개념과 문장이 존재의 주위를 맴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작가 토니 모리슨은 세계 인식의 출발을 차별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감각적 차이, 본능적 공포와 다른 사회적 질서와 규범 혹은 암묵적 시선과 태도의 문제로 연결된다. 드러내고 헤집어 본질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소설가의 일이라면 토니 모리슨은 제 역할에 충실하다. 일반화할 수 없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지역과 국경과 피부색을 넘어 개별 독자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네 안의 상처와 고통, 열등감과 차별적 경험으로 치환하라고 소리친다. 유대인, 흑인, 아랍인 등 주체만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문제의식은 계속해서 변형된 채 갈등의 여지를 남긴다.  텍스트 힙으로 2030 세대가 책과 독서 모임을 인스타로 소비하든, 지적 허영으로 가득한 욕구를 충족하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든 전국 방방곡곡 세계 도처에서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앞에 놓고 토론이 이어지든 너무나 익숙한, 그러나 대안과 방법을 찾기 힘든 주제는 반복된다. 타인의 기원이 그리스 로마 시대 노예에서 출발했거나 농경 사회 이후 저장과 축적으로 사유재산이 가능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상관없이 구별이 아닌 차별화 전략은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비관적 전망은 지극히 개인적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제도와 규범, 교육과 지향점은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서로 다른 주장, 각자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일반론은 최소한의 기준과 합의된 질서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언제부터 강남역 사거리가 태극기 물결로 뒤덮였는지 알 수 없다. 표현의 자유, 정치적 신념은 무제한 보장될 수 없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대한민국을 토니 모리슨의 증조 할머니 시대과 비교하면 지나칠까. 어쩌면 우리 안에 파시즘, 자기 안의 선량한 차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마사 C.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이 토니 모리슨의 소설보다 추상적이지만 철학적, 현실적 측면에서 직관적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말한 ‘이디오진크라지’와 고든 올포트의 『편견』이 타인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타자화의 본능과 대책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누군가 마들렌처럼 과거를 소환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는 누구와 함께 앉아있었는지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다. 남은 시간 동안 또 어떤 책과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책과 사람, 삶과 이야기가 허공 중에 떠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85/55/cover150/k5228384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5855539</link></image></item><item><author>sceptic</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고리오 영감과 유한 계급론 - [고리오 영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3</link><pubDate>Mon, 23 Mar 2026 0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ognize/17167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81&TPaperId=171674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off/893746018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81&TPaperId=17167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리오 영감</a><br/>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02월<br/></td></tr></table><br/><br>그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았다. 법과 도덕은 부자에게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lt;이 세상 최후의 논리&gt;를 돈에서 보았다. 근대 이후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왕과 귀족, 성직자가 다스리던 나라가 민중demos이 스스로 지배cratos하는 민주주의democracy 국가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하며 누구나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는 꿈이 생겼죠. 전통적 계급 사회가 무너진 계기는 프랑스혁명 등 정치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고,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 돈은 권력과 명예까지도 복종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라는 경제 제도는 현재까지 인류사회의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호흡하고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19세기 유럽은 용광로처럼 들끓었죠. 뜨거운 가슴으로 일으킨 혁명과 차가운 머리로 계산한 자본주의의 이익이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를 누군가는 빅토리아 시대로, 또 누군가는 벨 에포크라 명명했으나 변화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힘은 경제적 불평등과 막강한 자본의 힘이었습니다. 합리적 이성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으며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자본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기회가 보장된 세상을 꿈꾸게 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 운명이 결정되던 시대를 지나 누구나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현대인의 희망 고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발자크는 시대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이를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작가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가 알다시피, 19세기는 대부분 발자크의 발명품’이라며 감탄했습니다. 발자크는 역사, 경제, 통계 관련 자료를 따로 찾아볼 필요가 없을 만큼 자본주의적 인간의 욕망과 일상을 정확히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법학을 전공했으나 소설에 매료됐고 사업 실패로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쓴 생계형 작가 발자크는 사치와 허영이 가득했으며 귀족을 숭배하고 왕당파로 자처했던 모순적 인물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함이 발자크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고리오 영감과 두 딸의 눈물겨운 계급 상승 의지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천피, 부동산 불장 시대에 벼락 거지가 됐다는 말을 유행시켰고 FOMO 현상으로 한반도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한계급은 현대판 귀족으로 거듭나고 싶은 대상입니다. 과시적 소비와 베블런 효과 뒤에 숨어 있는 비판 정신은 우리 사회에 유효한가요? 성찰과 변혁 의지는 희미해졌고, 각자도생과 세습 중산층 시대는 공고해 보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루저일까요? 1899년 세기말, 소스타인 베블런의 고민은 경제 이론이 아니라 사회 변동에 닿아 있는듯 보입니다. 가끔,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오류입니다.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을 내세운 이유가 자본주의 비판이 아닌 것처럼 베블런은 유한 계급을 비난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리 없습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부정한 적도 없고 급진적으로 계급 사회 타파를 외친 적도 없습니다.  다만 고리와 영감과 ‘보케 하숙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 특히 파리로 유학 온 외젠 드 라스티냐크가 마지막에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는 말은 오래 두고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외젠은 자본주의 타파를 결심했을까요, 아니면 도시의 욕망과 유한계급에 포섭된 걸까요.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독자의 선택 문제일 겁니다. 소설의 결말이 아니라 자기 삶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다면 언제나 책 혹은 독서 모임은 지적 허영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유한 계급의 고급문화 취향을 추종하는 건 존경과 명예 때문이 아니라 예술적 감수성이라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요. 자본주의 태동 이전부터 인간의 욕망은 작아진 적이 없고 유한계급의 사다리 걷어차기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물론, 푸른 하늘이 계속되는 한 사람들은 또 현실에 적응하며 각자 선택한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걷다 지치면 잠시 앉아 또 이야기 나누지요. 책, 고전은 교양이 아니라 언제나 진행형인 현실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150/893746018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21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