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 이욱연의 중국 문화기행
이욱연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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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면 중국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가 아닌가 싶다. 공간적인 거리만큼이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국가와 민족은 달랐지만 지근거리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으며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가. 최근의 한류 열풍으로 중국에 한국의 연예인이나 영화, 드라마가 붐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문화는 그렇게 쉽게 전파되거나 흡수되지 않는다. 우리의 변화만큼 중국도 달라졌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90년대 이후의 중국은 오히려 한국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욱연의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는 중국 기행문이다. 그러니까 중국이 내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 저자가 끊임없이 중국에게 말을 걸고 있다. 각 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마주쳤던 음식과 공간을 중심으로 꾸며진 책이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문화’라는 코드로 중국과 접속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전제로 한다.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서 바라본 중국과 현실 속의 중국을 비교 체험하는 기행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뻬이징, 상하이, 홍콩, 충칭, 톈진, 시안, 꽝저우, 항저우, 샨뚱, 허뻬이, 난징, 후난으로 이어지는 멀고 먼 여행길에서 저자가 만난 것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다. 단순히 오래된 역사를 전제로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지나온 세월과 그들의 풍습은 여전히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광활한 면적에 넓게 분포된 만큼 지역적 특성이 강하고 언어마저 다를 정도로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쉽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겠다. 토양이 다르니 음식도 다르고 지역색이 강하다. 단순화시키거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혹은 중국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읽을 만하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아주 깊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동경하거나 경외감을 바라보지도 않고 호기심과 색다른 문화 체험 수준의 이야기도 아니다. 먼저 하나의 도시를 소개하며 음식과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두 편의 영화에 깃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물론 방문의 목적과 글은 영화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붉은 수수밭’의 배경인 샨뚱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패왕별희’를 앞세워 뻬이징을 찾아가는 방식이나 영화를 안 본 사람은 부분적으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소회나 타향에서의 감회를 감상적으로 적어간 기행문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의 습득 차원에서 혹은 영화에 깊은 이해를 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북경 자전거, 색․계, 중경삼림, 첨밀밀, 스틸라이프, 영웅, 황비홍, 청사, 부용진 은 기억 속에 아련하거나 최근에 재밌게 봤던 영화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감회가 새로웠다. 중경삼림의 ‘캘리포니아 드림’이 들리기도 하고 진시황의 10보 앞으로 다가간 이연걸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본고장을 둘러보는 형식의 글들이지만 단정하고 사색적인 문장들이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맹목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애정을 숨기지는 않는다. 중국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를 깊이 읽는 것은 한 국가와 민족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적당히 가볍게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어 좋다. 영화와 음식과 그들의 생활과 현재가 결합되어 하나의 ‘문화 기행’으로서 손색이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을 여행하기 전에 혹은 영화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읽기에 적절한 책이다.

  루쉰의 소설을 인용하거나 적당한 크기의 사진들이 삽입되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도록 배려한 구성도 간결하고 깔끔하다. 중국 영화를 좋아하거나 중국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선물해도 좋을 만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볼 때 우리 입장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나라가 중국과 일본이다. 세계사의 흐름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을 이해하는 일은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이기도 하다. 그들과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분강개와 절치부심만이 과거사를 정리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라면 좀 더 깊고 넓게 그들을 이해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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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ung 2008-05-09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경삼림이라면...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드림을 갖다가 착각하신게 아닐지 싶으면서...

sceptic 2008-05-09 22:30   좋아요 0 | URL
허거덕이네요...맞습니다. 시카고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드림입니다. 감사합니다.

sophung 2008-05-10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카고라니요... 아 자꾸... 이글스잖아요 아놔..

sceptic 2008-05-10 22:48   좋아요 0 | URL
-_-...1994년 공연 실황 DVD 다시 한 번 돌려봤습니다. <메멘토 모리>도 다시 볼까 생각중입니다...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나이의 문제인것 같네요...ㅠ.ㅠ
 
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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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상대적 개념은 미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문질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사회를 일컫는 미개사회나 미개인이라는 말은 상대를 낮잡아 보려는 편견이 내재해 있다. E. 사이드의 개념으로 보면 타문화에 대한 유럽의 관점에 다름 아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사회, 기계적 합리주의와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은 사회를 우리는 여전히 미성숙된, 미발달된 사회로 본다. 학교에서 아무리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해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도 나와 다른 삶에 대한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만난 것은 인류의 지성사에 축복도 재앙도 아니다. 단순한 친분관계나 학문적 동종 교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당대의 지적 흐름에서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배태된 구조주의는 역사적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실존주의를 앞세운 사르트르의 말과 글들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역사란 인간 사회를 더 좋은 상태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 의식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역사적 발전이라는 연속선에서 우월한 양식과 열등한 양식을 구분했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구조주의가 마르크스 지향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이 과학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구조적 분석이 변증법적 방법을 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역사적, 비실존적 정신으로 인간을 추상적, 이념적으로 파악했으며 현실적인 요구를 주장하지 않고 오직 사실들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치중하는 기계론적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양차 대전을 겪으며 최연소 철학교수 자격 시험을 통과한 유대계 프랑스인의 지적 편력은 그의 기나긴 생애만큼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에서 브라질 다시 프랑스와 미국으로의 망명 등 그의 생애와 사상은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앙가주망을 외쳤던 사르트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대한 모색과 탐구의 열정을 놓지 않았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슬픈 열대>는 멀고도 길었던 브라질 여행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기록물이다.

  1935년 브라질 상파울로 대학 교수로 부임한 27세의 레비-스트로스는 1938년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 남비콰라족과 투피 카와이브족 등 브라질 원주민 사회를 조사한다. 그리고 15년 후 1954년 10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역작 <슬픈 열대>를 집필한다. 이후 <구조인류학>, <야생의 사고>, <신화학> 등 대표적인 책들이 출간되지만 <슬픈 열대>은 조금 특별한 책이다.

  철학으로 출발한 학문적 토양이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을 만나기까지 레비-스트로스의 관심은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처음부터 방법론이나 신념을 정해 놓고 시작한 연구가 아니라 원시사회의 모습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관찰함으로써 얻어진 경험의 산물이며 문명화된 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얻어낸 값진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미국 뉴욕으로 밀항하는 과정으로 시작되는 1부를 추억담으로 할애하고 있다. 2부에서 4부까지는 시간을 거슬러 브라질로 가는 과정과 예비답사 내용이다. 5, 6, 7, 8부가 바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을 조사하게 되는 과정과 각각의 원주민 사회의 문화가 소개, 분석되어 있다. 마지막 9부는 돌아오는 길에 인도와 파키스탄 여행기가 추가되어 그가 경험했던 인류학적 연구의 문제점들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다.

  문화인류학의 고전으로 빈번하게 언급되며 원전을 보지 않은 채 인용된 부분이나 혹은 레비-스트로스의 영향, 사상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다른 책을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해소할 목적으로 두툼한 책에 매달려 꼬박 닷새 동안 책 속에 파묻혔다. 70여 년 전 이기는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아마존에 생존했던 원시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충격에 가까웠다. 책의 앞쪽에는 그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책을 읽다가 앞으로 돌아와 그들의 눈을 들여다 보며 대화를 시도한다.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할 길에 대한 낭만적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관심이나 <슬픈 열대>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과거의 인류를 만난 느낌이었다. 저자의 독특한 시선이나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 객관적 관찰과 분석, 철학적 성찰이 어우러진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꼭 읽어야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는 말은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할 여유가 있을 나이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지금 만났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관점에서 문화라는 관점에서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던 인간이 이제는 사람을 우주 정거장에 보내놓고 그곳의 생활을 생중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눈이 부시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삶의 원형은 어떠했으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문명인이며 그들은 야만인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인류학적 상상력이 극한까지 발휘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레비-스트로스가 살아있었다면 이 시대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하다. 1981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가 100세의 나이로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총서’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인류의 삶은 계속되고 생태학적 상상력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개발의 논리와 자본의 횡포는 지칠 줄 모르고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식과 학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과 생활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그와의 대화를 시도한다면 독자들은 보다 진지하고 풍요로운 저자와의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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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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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재미가 없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거실에 TV를 치우고 붙박이 책장으로 채워버렸다. 끊임없이 쌓여가는 책들이 비좁게 서서 칼잠을 자고 있지만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TV대신 책을 보는 것이 뭐 그리 나을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이든 책이든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문화 현상들은 순간적인 유행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계층과 계급에 따라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한 사회의 혹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로정착하게 된다. 이에 비해 대중문화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일반 대중들의 소비적 문화 현상으로 이해한다. 상대적으로 고급문화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대중문화는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거나 깊은 사색과 통찰을 거쳐 얻을 수 있는 문화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즉흥적이고 일회적이며 소모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가볍게 접근하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갖는 것이 대중문화이다. 2005년에 나온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문화 현상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김찬호의 <문화의 발견>이 실제 현장 중심의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몇 가지 키워드로 풀어냈다면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문화 현상을 이루는 매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텔레비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절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방송문화와 연예문화 그리고 인터넷 문화와 디지털기술 ․ 산업, 휴대전화 문화와 생활 ․ 소비 ․ 일상문화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3권은 이론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간 2권과 다르게 다시 1권처럼 현상 중심으로 초점을 바꾸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열광했던 사람들의 심리, 삼순이 역할을 맡았던 ‘김선아’의 이미지, 주인공 ‘김삼순’의 행동과 대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 책은 흥미롭게 접근한다. 하나의 문화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은 그것이 파괴력이 어디에서 출발하든 공감대와 내재적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확대 재생산 되는 과정을 거쳐 유행이 되고 하나의 현상이 되며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까지도 변화시킨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이름도 생소했던 파티쉐를 선호하는 청소년이 늘기도 했고 당돌하고 대찬 30대 솔로 여성들이 함께 울고 웃기도 했다.

  이른바 유행이라는 것은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당대의 시대정신이나 사회 현상을 잘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최근 ‘텔미댄스’의 열풍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볍고 경쾌한 몸짓과 반복적이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리듬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을 열광시켰다. 순진하고 귀여워 보이는 소녀들의 표정과 몸짓속에 순수함과 섹시함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박진영의 솜씨 또한 놀랍다. 하나의 현상은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즐거움과 쉽게 결합한다.

  일본과 중국을 뒤흔들었던 한류 현상에 대한 분석과 인디 문화에 대한 고찰들은 지나간 이슈라기보다 진행되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블로그나 포털 저널리즘은 유행을 넘어 댓글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소통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의 강국인 대한민국의 원인과 현상들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고 MP3 산업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대중문화의 핵심적 요소들을 다양한 시선과 이면에 대해 고민해 보는 일은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제공한다.

  4권, 5권으로 이 책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문화 현상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의 삶을 담아냈던 박태원의 소설들처럼 시대의 이 책들은 훗날 기록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기록도 기록자의 가치가 반영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것은 강준만의 눈에 비친 사회 현상들이다. 얼마나 객관적으로 - 객관적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면 - 분석하고 기록하느냐의 문제는 저자 뿐 아니라 독자들의 비판적 시각도 필요하다.

  하나의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내듯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미래의 아젠다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확고하게 자리잡은 휴대전화 문화는 눈여겨 볼만했다. 메시지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생활이 되어버린 아이들, 카메라폰이 바꾸어 버린 세상의 모습은 심각하게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디지털 치매 현상에 대한 분석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 그 당사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식in’이 백과사전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에 정의와 태도마저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걱정하거나 경계해도 시대는 변하고 세대는 바뀌며 그것을 따라 대중문화가 형성된다. 다양한 이념들과 삶의 가치들이 부딪히고 조화를 이루면서 이 사회는 유지되고 지탱되어 간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 모든 현상들의 주체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없다. 그 현상들의 이면에 숨겨진 자본의 논리와 왜곡된 사실, 추악한 음모들을 가만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눈 뜬 장님으로 혹은 무비판적 소비재로 활용될 수도 있다.

  안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내 삶 속에 물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반성과 작은 실천은 대중문화 현상들 속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이다. 그것이 어디쯤에 멈출 것인지, 어떤 태도와 반응을 보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내가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 각자의 몫이다. 책임 회피가 아니라 주체적 자각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08032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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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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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가 변해가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비판은 계속될 것이다. 강준만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유행에 대한 추적 조사 보고서가 아니라 비판적 안목을 제시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적절한 시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대중문화 들여다보기는 자칫하면 철지난 유행가 따라 부르기가 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에서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를 중심으로 폭넓은 문화 현상들을 분석했다면 <대중문화의 겉과 속 2>에서는 이론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두 책은 제목만 같을 뿐 별개의 책으로 묶여도 상관없다. 따라서 속편의 개념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물론 대중문화라는 공통 분모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새롭다.

  1권에서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매체별 특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문화 현상의 속성들을 뒤집어 보는 데 주력했다. 맥루한의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면 매체의 속성 자체가 대중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었다. 2권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원인과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머리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를 읽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터러시는 ‘문식성’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미디어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장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그리고 미셀 푸코의 판옵티콘까지 다양한 개념들을 대중문화와 접목시켜 이해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문화의 확장된 형태 혹은 부분 집합으로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중문화라고 볼 수 있다.

  소비문화나 마케팅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21C가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다양한 사례들과 더불어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다. 행복을 돈 주고 살 수 있고 돈이 곧 민주주의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볼 수 없지만 자본이 대중과 결합되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쇼윈도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문화현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정착되어 버린 인터넷에 대한 분석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인터넷에 나타나는 다중인격이나 사이버 공간의 특성들을 살펴보고 하나의 권력으로 성장한 포털사이트나 경제 구조까지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인터넷과 더불어 휴대폰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는 세상이나 생활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세대에게는 그것이 없었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인터넷과 휴대폰의 경제학’을 통해 디지털 격차와 인터넷 시간에 대해 분석한다. 한국이 왜 두 분야의 강국이 되었는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설명하며 책을 맺는다. 주로 ‘미디어’에 초점을 맞추고 대중문화 전반을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것은 사회학이나 정치학으로 확산되고 전반적인 한국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한다.

  문화는 결국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1권보다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현상들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정제되고 집약적인 느낌이다.

  뒤늦게 2003년에 나온 책을 통해 과거의 시점으로 현재를 돌아보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는 당시의 풍속사를 기록한 책으로도 읽힐 만하다. 지금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과거 혹은 다른 시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변화해 온 현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이제 2006년에 나온 3권으로 마무리 할 차례다. 책 몇 권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여러 층위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는 제공해 줄 것이다. 모르고 휩쓸리고 알면서도 따라가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문화가 되고 사회를 이끌어 간다. 비판적 관점과 올바른 판단력은 아무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며 고쳐 나가는 세상살이의 도구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방패 하나쯤 가지고 싶다. 책이 방패가 될 수 있을지는 늘 의문이지만.


2008031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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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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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함성.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대학 신입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 소주와 막걸리 그리고 ‘오월의 노래’보다 이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국민이라는 말에 익숙한 나에게 민중의 이름을 알게 했던 노래였고 이후 민중은 대중이라는 중화된 이름으로 내게 인식된다. 한 단어의 개념을 알고 어휘를 각인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와 추상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로 대별된다. 국민과 민중과 대중 사이에 어떤 거리감이나 명확한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경험적인 단어의 의미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엉뚱하게도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의 제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문화가 아니라 대중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 엘리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수동적·감정적·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사전적 의미가 정확하진 않더라도 대중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대중mass은 한마디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말한다. 특정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가진 공중public과는 구별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속에 널리 퍼진 문화 현상을 우리는 대중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것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접근 가능하지만 대표적으로 미디어에 의한 문화 현상을 다룬 것이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이다.

  TV와 광고, 활자매체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현상들을 소개한 이 책은 벌써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읽으면서 대중문화의 속성상 시의성이 떨어져 지나간 시대를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예상 독자를 청소년으로 상정했기 때문에 책장은 신문이나 잡지처럼 스스륵 넘어가고 내용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이지만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추억이 되어버린 스포츠 신문 기사와 관련된 분석을 보자.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캔들이 알려지고 댓글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스토브리그가 시작되면 스포츠 신문은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먹고 살아야했다. 대중문화는 그 대상과 주체가 수동적이며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실체가 모호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와 유사하다.

  강준만은 청소년과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그 용어도 아련한 신세대와 X세대의 특징을 짚어내고 스타와 청소년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분석이다. 오빠부대로 대표되는 청소년과 연예인의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왜 스타에 열광하는가? 또 스타란 무엇인가?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는 사실들은 우리는 애써 외면하거나 쉽게 포기해버린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대중문화의 표면적 현상들에 감추어진 이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현상에 나타난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어떤 사물과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맹목적인 믿음과 가르침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 청소년들에게는 세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이다. 읽어야 할 것들은 너무 많고 그 독법을 제시하는 책은 거의 없다. 논술 광풍에 휩쓸려 모든 책 앞에는 논술 대비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일쑤다. 이제 정시 논술을 보지 않는 대학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어떤 방법을 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읽을만한 책과 추천할 만한 책은 개인적 성향과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독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나의 입장과 그것을 읽어야할 사람의 입장이 다르고 배경지식과 상황과 목적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은 추천할 만한 책이다. 어렵지 않으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내용 또한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변의 문화 현상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의 힘을 길러주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될 만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변하면서 인용된 사건과 매체의 역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시스템과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측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현상 속에 감추어진 이면의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레바퀴와 작은 톱니바퀴들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시스템에서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인식의 힘을 키워나가는 연습은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080309-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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