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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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실체와 싸우는 것이 가장 힘겹다. 그것은 권력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침묵의 카르텔이라 명명하기도 하고 헤게모니라고도 한다. 표현 대상과 이름은 달라도 개인이 맞서기에는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많으며 음험한 시선들과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참여와 연대 실천과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영원히 그것들의 파상 공세에 시달릴 것이며 다수가 피폐해지고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그것의 이름을 ‘국가’ 혹은 ‘괴물’이라 불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정치권력 혹은 공인된 국가권력이라고 부른다. 홉스는 왜 그랬을까? 온몸으로 체감하면서도 너무나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의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각 분야에 숨어 있는 치열한 헤게모니 전쟁은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곳곳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가만 들여다보면 그 거대한 흐름을 떠나 우리의 삶을 생각할 수조차 없지만 쉽게 포기하거나 외면한다. 개인적 이기주의, 무임승차, 집단적 포퓰리즘 등 그 원인은 다양하게 진단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고 그 해법은 이해관계에 따라 상충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문제는 개인과 집단마다 첨예하게 대립된다. 보다 많은 돈을 벌어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기저에 둔 채 정책 결정과 사회의 시스템은 다양한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거시적 관점의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단기 처방은 난무하지만 정작 다수(?)를 위한 방편을 제시하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안목을 마주하기는 어렵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로 시작된 우석훈의 경제 이야기가 4권 <괴물의 탄생>으로 마감됐다. 3권 <촌놈들의 제국주의>만 읽었으니 절반을 읽은 셈이다. 1권 <88만원 세대>로 주목받았으나 나는 정작 1권을 읽지 않았다. 이제 거꾸로 1권을 읽어볼 차례이다. 처음부터 읽지 않았어도 그의 이야기 속에 일관된 흐름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관점이 이론을 뒷받침한다면 이 책들은 누구에게나 읽힐 만한 책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화병(火病)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의 공식이 책 표지에 등장한다.



  누구의 입장에서 어떤 경제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경제학자마다 다르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때로는 전혀 상반된 주장으로 듣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 기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책의 방향을 봐도 그렇고 과거의 정책과 방향을 보아도 그렇다. 최적의 선택은 어렵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우석훈은 이 책에서 그 대안들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인문학 과정 대학생과 대학원생 수준을 겨냥해서 쓴 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렇게 어렵고 지루하지는 않다. 저자 특유의 발랄하고 경쾌한 어법은 계속된다. 다만 내용 자체가 어둡고 무거워 앞선 시리즈를 본 독자들의 표현대로 ‘공포 경제학’으로 불릴 우려도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과 경제 이론의 변화를 일괄하는 1부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과 마르크스의 <자본론>(1876) 그리고 케인스의 <일반이론>(1936)을 축으로 강의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세 권 모두 읽어 본 적이 없고 주워들은 풍월만으로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큰 흐름만을 짚어나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현재 우리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총론격으로 긴요하게 읽혔다.

  이 책은 마치 실제 강의록을 준비하듯 쓰여졌으며 한 학기 분량인 열 세 강좌로 되어 있다. 네 번째 강의까지가 이론 부분인데 눈에 띠는 것은 ‘국가와 시장의 경쟁, 그리고 제3부문’이다. 제1부문인 공공부문과 제2부문인 기업에 이어 호혜, 증여, 이해, 믿음, 소통 등 경제학과 관련 없는 부분들을 어떻게 일반 이론으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1, 2 부문들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를 ‘괴물의 탄생’으로 한국 경제의 대안과 3가지 과제를 ‘괴물의 해체’로 본문이 구성되어 있다. 과거에 해당되는 괴물의 탄생과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괴물의 해체 모두 새로운 시각과 ‘대안’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관점들이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전환을 위해 제3부문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은 열 두 번째 강의는 ‘괴물의 탄생, 실종된 제3부문과 파시즘’으로 엮은 여덟 번째 강의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공공성을 강화하고 생태적인 부분과 같은 문화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 교육 문제의 대안을 찾아가는 전방위적 사회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경제의 틀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부문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위해 ‘우리는 지는 법이 없다!’는 말로 마무리 한다.

  명랑하게 C급 경제학자임을 자처하는 우석훈의 경제 대한 시리즈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 삶을 조망할 수 있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분별력 있는 신념과 용기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합리적 이론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제시된 충고와 조언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싶어졌다.


0810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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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진화론 - 세상을 바꿀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다
우메다 모치오 지음, 이우광 옮김 / 재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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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사람들은 웹을 통해 또 하나의 세상을 주유한다. 인터넷은 이제 선택의 문제를 넘어 섰다. 군대 생활을 했던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내게 세상은 둘로 나뉘어졌다. 군대 생활 이전의 시대는 아날로그 시대였고 그 이후의 세계는 디지털 시대였다. 한 몸으로 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전역과 동시에 웹을 기반으로 한 SI업체에 처음 발을 디뎠다. 네스케이프 2.0을 통해 인터넷 세상에 처음 접속했고 사내 홈페이지에 들어가 출근부를 찍지 못해 애를 먹으면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불과 10여 년 전 일이지만 돌도끼를 쓰던 시대처럼 아득하다. 너무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눈동자를 움직임을 빠르게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물론 속도만이 승부를 좌우하는 건 아니지만 격세지감을 말을 쓸 만한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인지 두 세기를 살아가면서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이제 컴퓨터는 인터넷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고 IT강국 대한민국에서 웹기반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진화 속도를 추월해서 이제 스스로 진화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촉구하는 일이 시대의 사명은 아니지만 미래 사회를 읽어내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 것은 틀림없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보고 싶다면 네트워크 세상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링크되어 있으며 어느 누구도 독립적인 존재로 기능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진부한 명제가 이제 인간은 웹적 존재 혹은 네트워크적 존재라는 말로 대치되어야 마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웹은 진화하고 있다는 말은 당분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메다 모치오의 <웹 진화론>은 우리 시대를 읽어내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 역할을 해 줄만하다. 저자의 관점은 현 시대를 예리하고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시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와 계급적 위치에 따라 상이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정확한 분석을 전제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떤 책도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다는 평소 개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나름대로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사실의 나열이 지루하지 않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실에 대해 과장된 해석이나 지나친 의미 부여가 때로 독자들을 피곤하게 하는 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일본에서 이미 40만부 이상 팔려나간 책이라는 사실을 이를 입증해 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도 그다지 동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 있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기 위한 좋은 지침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은 단순히 관련 분야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그것을 활용하고 동참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웹은 이제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서장에서 혼돈스럽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가치 판단이 개입된 명제이지만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구글에 대한 저자의 경외감은 우리에겐 조금 낯설다. 네이버라는 막강한 포털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조금 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의 위험은 언제든 우리에게도 닥쳐올 지도 모른다. 그것이 위험이 될 것인지 아니면 기회가 될 것인지는 물론 우리들의 자세와 대응 방식에 달려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퍼블릭, 오픈, 프리’라는 모토이다. 인터넷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미래 사회의 동력이 어디에 기반할 것인지를 읽어낸 키워드이다. 이것이 엄청난 이익을 초래하공 있는 믿기 어려운 현실을 우리는 목도했다. 구글은 그것을 실현했고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웹 2.0의 본질은 ‘지식과 정보’의 게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포털들이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변화의 물결은 이미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재미있고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는 이 지침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지식과 정보가 게임처럼 즐겁게 유통되고 그것을 통해 부를 창출하고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미래 사회를 나는 혹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가장 인상 깊은 저자의 표현은 ‘또 하나의 지구’라는 말이다. 인터넷을 또 하나의 지구라고 표현할 만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웹 진화의 한 복판에서 낡은 경제 이론과 보수적 사유가 가져오게 될 재앙을 생각해 보았다. ‘거친 산길’을 걷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그 선택이 모여 사회의 흐름이 된다는 사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터넷 공간의 지적 풍요, 정보 공유와 조직의 선택은 웹 진화와 새로운 삶의 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칠 것이다. 웹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대변혁의 시대에 우리가 가야할 길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흐름과 변화를 먼저 정확하고 날카롭게 읽어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을 갖는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별빛처럼 선명하게 길을 제시해 주던 시대는 끝났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사이로 난 좁은 길들을 찾아내고 그 별들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면 일단 고개를 들고 별을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0810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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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웹 진화론 -우메다 모치오
    from 김재호의 디지털보단 아날로그 2009-01-13 08:20 
    웹 진화론 - 우메다 모치오 지음, 이우광 옮김/재인 몇 달 전에 회사에서 booksmba.com 이라는 곳의 무료 독서 프로그램을 수강해보라고 해서 웹 2.0에 대해 쓴 책들을 무더기로 읽게 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여러 수강 과목들이 있었지만 다른 과목들은 다 경제니 마케팅이니 하는 것들 밖에 없어서 나는 별 고민 없이 웹 2.0 이라는 과목을 선택했다. 다음 3권의 책이 내게 전해졌다. - 대한민국 웹 2.0 트렌드 -김상범 - 웹 2.0 경제..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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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티비를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평일 9시와 일요일 12시가 되면 티비를 켠다. MBC 9시 뉴스, 출발 비디오 여행 때문이다. 그런데 평일에는 이제 더 이상 뉴스를 안본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이젠 견딜만하다. 1시간이 여유로워졌고 뉴스를 보며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정신 건강이 좋아졌다. 조간 신문만으로 답답할 때가 있지만 굳이 네이버나 다음 뉴스를 기웃거리지 않고 오마이 뉴스 등 인터넷 매체도 기웃거리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 그래도 살만하다.

  세상에 진실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믿었던 모든 것들은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졌고 다가올 미래는 늘 불안하기만 하며 현실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그래도 환상이나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건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정작 자신은 90이 넘을 때까지 살다가 죽은 쇼펜하우어의 권유대로 자살을 선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에 대한 무수한 분석들이 난무하고 혜안을 가진 지식인이나 종교인에게 기대기도 한다. 때로는 앨빈 토플러와 같이 탁월한 미래학자에게 기대기도 하고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을 찾기도 한다. 그러한 노력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NHN이 만든 오픈 네트워크형 연구조직 NORI(New Media Open Research Info-Net)의 쳇 프로젝트 그룹인 ‘팔란티리 2020’은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네트워크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삶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토론 연구 그룹의 성과물을 담아낸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는 개인의 정체성과 프라이버시, 지식의 변화상을 비롯해서 구너력과 경제활동, 놀이문화, 예술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변화를 조망하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연구 그룹의 구성원들이 현직 교수라는 것은 이 책의 최대 단점으로 보였다. 학문적 관점이나 객관성을 확보하고 싶은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이론적 토대와 인과관계의 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현실을 읽어내는 탁월한 감각과 시대를 앞서가는 능력을 검증 받을 수는 없지만 시도나 의도만큼의 성과를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일곱 개의 키워드를 잡아 낸 일이나 그것을 풀어내는 발랄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먼저 ‘나는 몇 개인가?’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냐?’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네가 아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를 통해 지식의 개념을, ‘클릭의 경제학을 읽어라’에서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나는 논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게임과 현실의 관계를, ‘누구나 파워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를 통해 현대 사회의 권력을, ‘당신도 앤디 워홀이 될 수 있다’에서는 현대예술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키워드를 통해 시대를 읽어내고 트렌드를 잡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미래를 내다보는 돌’이란 뜻을 가지니 고대의 신석 이름에서 빌려온 ‘팔란티리’는 2020년을 내다보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 욕망은 특별한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려는 것은 당연한 준비이자 기득권자들의 여유로 여겨질 때도 있다. 10년 후에도 우리가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어디가 돈 되는 곳일까? 상대방의 의도를 비하하자면 이쯤 되겠다. 사람들의 의식과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NHN은 산학 협동의 이름으로 미래 사회의 아젠다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의도가 순수하고 선한 것일지라도 결과까지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KT나 현대자동차와 맞먹는 10조원의 자산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네이버나 한게임 사용자들은 알지 못한다. 아니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이렇게 비대해진 조직과 어마어마한 수익구조를 지닌 기업이라면 그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작고 사소한 힘이 큰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사회를 예감했다면 뉴스 편집과 정치적 스태스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네트워크 환경은 빛의 속도로 변해 갈 것이고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힘의 원천과 근원이 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문人紋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기업의 철학과 역사 의식은 지속가능한 경영의 초석이 된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진리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예민한 촉수를 뻗쳐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을 찾아내고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기업을 사람들은 원하게 될 것이다. 녹색은 생명이며 희망이며 자연이고 환경이다.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구현해내는 시뮬라크르들은 어쩌면 완벽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며 미래를 구현해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이며 ‘팔란티리 2020’이 고민하는 주제가 될 것이다. ‘지금-여기’가 아니라 ‘내일-거기’를 알고 싶다면 과거와 현재를 통해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기 보다 변화의 주체들에 대한 관심과 길 안내가 필요하다.

  앞서 질펀하게 흘려놓은 고민들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정부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의 해법은 제각각이고 바라보는 관점 또한 상이하다. 그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는 더더욱 난망스럽다. 어쨌든 한 기업의 시도와 노력은 일단 가상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러한 노력과 연구는 지속되어 마땅하고 그 결과물과 소통과정은 열린 체계로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이라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식상한 표현이 ‘보다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 아닌가?


080728-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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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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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한없는 궁금증에 목마를 때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히 ‘철학적’이다. 인간의 본성과 역사에 대한 고찰 없이는 말할 수 없으며 간단하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그 실체 없는 삶에 복무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이 ‘경제’이다. 일본의 번역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용어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경제는 생활이며 생존의 조건이며 때로는 생의 궁긍적인 목적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경제라는 용어는 맥락에 따라 전혀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경제를 말하는 방식이 경제학자나 공무원이 다르고 시장 상인이 다르며 월급쟁이가 다르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누가 죽였는지 모르지만, 언제부터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초지일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에게 경제를 살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누구를 위한 경제이며 어떤 방식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주장과 논리를 듣고 있노라면 경제와 더불어 역사와 정치가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경제를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홍기빈은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를 통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게 경제를 묻고 있다. 경제는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홍기빈이 희랍의 현자에게 경제를 묻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다.

  이 책은 경제학에 관한 역사적 고찰에 바쳐지고 있다. 학문적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풀어내는 경제학은 실생활에서 적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시적 관점이든 미시적 관점이든 경제학은 실제 운용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을 만큼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독립적인 분과학문으로 기능할 수도 없다. 정치와 사회 현상을 떠나서 경제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논리이다.

  이 책은 현대 경제학의 정의에 대해 알기 쉽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경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낸다. 물론 독자의 몫이지만 해답이 쉽지만은 않다. 경제라는 말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는 부분도 유용하지만 시장을 발명한 그리스인들의 생활과 ‘행복’에 대해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생과 폴리스의 정치적 상황들을 통해 경제 문제를 풀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인간의 경제 부분은 이 책에서 핵심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이미 다른 책을 통해 화폐의 기능과 자본주의의 함수 관계에 대해 이해한 독자라면 흥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조건으로서 화폐와 인간의 욕망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당연히 유한한 재화 속에서 무한한 욕망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활동을 프락시스praxis와 포이에시스poiesis로 구별한다. 후자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이고 전자는 ‘행위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P. 111

  인간의 욕망은 프락시스든 포이에시스든 하나로 귀결될 수 없다. 두 가지 욕망의 덩어리로 엉키고 뒤섞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졌다고 해서 갈증이 해소되지도 않고 완성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채워질 수 있다면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지도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어쨌든 최소한의 노력으로 희소한 가치를 얻으려는 유한한 가치에 대한 무한한 욕망이 인간의 경제 행위의 기본 조건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건 지워지고 많은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중농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 독일 역사학파, 마르크스, 베블린, 폴라니, 케인스의 이론들을 소개하며 과연 우리에게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필요한 관점과 행동에 대해 간접적으로 고민을 요구한다.

경제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하고 때로는 정책 입안자와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과연 어떤 경제가 필요하며 진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다같이 고민만 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릴 수 없고 그 시대에 요구되던 상황과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수도 없다. 다만 과거에게 길을 묻고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과 가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을까?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목적이 다르게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로의 이익이 다르고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었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과거의 오래 된 경제에 대한 기억을 들추고 있다. 당대의 삶과 생의 목적을 돌아보는 엉뚱한 작업을 통해 혹은 화폐와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는 일이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진짜 경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08072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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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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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계기조차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꾼다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된다고 하는데 세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 세 번째 책인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고민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자본주의는 이제 그 대안조차 모호해졌고 현실에서 거부할 수 있는 제도나 체제도 아닌 것이 되었다. 우려와 걱정으로 가득하지만 대안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이 다르고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문제를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않는 극우 보수 세력이 여전히 건재하다. 건재할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크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죽였는지 알지도 못하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신념은 광신적 종교 집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살려야 하는 목적과 방법은 대다수 서민들의 삶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아니 그 이전부터 꾸준히 그 실체조차 모른 채 한발씩 다가서고 있는 대한민국의 제국주의적 경제 체제는 이제 우려할 만한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식민지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제국주의가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두 번째 책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쓰였다.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이라는 부제가 잘 설명해 주고 있듯이 제국주의적 경제 체제를 닮아가고 있는 혹은 실행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모순과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책이다. 그 대안으로 저자는 ‘평화경제학’이라는 낯선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먼저 시리즈 전체의 틀을 네모니 스니켓의 ‘불행시리즈’에서 빌려왔고, 조안 로빈슨, 로자  룩셈부르크, 도넬라 메도우에게 영감을 받아 경제학에 대한 기본 개념과 관점을 전개하고 있다고 하는 저자의 말은 별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 사람들의 책들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한 사실에 대해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게 정상이다. 다만 이들의 성향과 주장에 대해 책을 시작하면서 밝혀놓고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의 주장들을 이해해야 하는지 밝혀 놓은 부분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뿐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리거나 내용을 가공하면서도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니 말이다. 우석훈의 태도는 일단, 신뢰감이 간다. 태도와 방법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외적인 문제를 하나 더 짚자면 문장이다. 어떤 내용의 책이든 그것이 읽을 만한 것이 되려면 간명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진술되어야 한다. 더구나 문학서적이 아닌 다음에야 말해 무엇 하랴. 정확하게 전달되고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문장이라면 금상첨화다. 아직 2%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독자들은 읽을 만한 책을 계속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누려도 좋겠다.

  “나에게 누군가 학자로서 희망 단 하나를 말하라 한다면, ‘전쟁 없는 상태’라고 답하고 싶다.”는 이 소박한 경제학자의 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의 기본으로 정의했던 에피쿠로스의 말이 먼저 떠올랐다. 그가 말하는 ‘평화경제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왜 중요한 것인지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쨌든 경제도 사람을 떠나서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사회, 문화, 정치 상황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아니 이제는 경제가 한 나라의 사회, 문화, 정치를 이끌고 있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이다.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의 울분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1장 세계화 시대,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우리를 왜 촌놈으로, 제국주의로 부르는지 한미FTA나 다이나믹 코리아와 같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내부 식민지 전략의 강화와 건설 자본형 제국주의로 명명된 2장 북으로 향하는 한국 자본주의는 작금의 대북 정책을 돌아보게 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경제학이다. 우리가 실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태도가 경제를 결정하고 미래를 좌우한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극우파 블록의 확대와 생태적 위기를 보여주는 3장  한․중․일을 기다리는 위기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밝히고 있다. 과거의 경제 상황과 현재를 통한 미래의 전망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저자는 대안은 없는가라고 묻는다. 마지막 4장에서 평화라는 이름의 공공재가 왜 중요하고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일본과 중국과의 경제 통합 문제 등을 논거로 제시하며 우리의 미래와 정책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결코 지루하지 않고 많지 않은 분량으로 이 많은 이야기들을 간명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의 바람대로 10대와 20대에게도 읽힐 만한 책이 되었다.

  특히 닫는 글로 제시된 ‘교육 파시즘의 시대, 학교 파시즘에 부쳐’를 읽다가 눈이 빨개졌다. 억압과 순종적인 시민의 재생산에 복무하는 수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던지는 비난의 화살과 부끄러움의 글이 뼈에 사무친다. 알면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대안을 찾기 위해 암중모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혹은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시계바늘처럼 오늘도 학교와 집과 학원을 순례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닫는 글만 복사해서 학교 앞에서 학원 광고지 대신 나눠주고 싶다. 아니, 교사와 학부모가 먼저 읽어야겠다. 이 미친 굿판은 언제쯤 걷어 치워질 것인지 서글퍼지는 밤이다.

지금 진행되는 십대들에 대한 교육 파시즘과 이십대에 대한 착취, 이를 멈추는 길이 사실은 한구구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당분간이라도 해소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지금 그것ㅇ르 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열린 길은 파시즘과 제국주의 외에는 없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돌파구는, 없다! - P. 273

지금 절정에 도달한 학교 파시즘, 여기에서 벗어날 출구는 두 가지뿐이다. 이 미친 짓을 어른들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정지시키든지, 아니면 십대들의 총파업, 예를 들면 ‘동맹휴학’이나 ‘수능 총파업’ 같은 걸로 그들 스스로 정지시키든지 둘 중의 하나다. 이를 통해 사회적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제국주의를 돌파구로 생각하는 파시즘형 사회의 도래가 있을 뿐이다.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국민들은 파시즘을 선택하게 된다. - P. 276

한국의 십대, 오후 3시가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주고, 수요일에는 놀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월․화 학교 가고, 수요일 쉬고, 목․금 학교 가고, 토․일 쉬고, 이런 리듬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빈 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도서관과 문화센터, 문학회와 그룹사운드 혹은 과학실험실 같은 것을 만들어주는 게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 같다. 그리고 어른들은 지금의 십대가 그렇게 지식과 여유, 도전과 예술, 포용과 인권 같은 것들을 내면화한, 그런 자유로우면서도 창의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 스위스와 스웨덴 혹은 독일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핀란드와 네덜란드다, 덴마크도 이렇게 한다. 이게 안 되나? 세계 7대 강국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1000만 원씩 등록금 내라고 하고 하루 여섯 시간도 못 자게 하면서 학생들을 ‘좀비 프로그램’에다 집어넣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 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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