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을 만나다 - 항소이유서에서 소셜 리버럴리스트가 되기까지, 지승호의 인물 탐구 1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다.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싫든 좋든 우리 모두는 매 순간 정치적으로 행동한다. 그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열정 혹은 냉소와 무관심은 개인적 성향일 뿐, 모두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온몸을 휘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에 대해서도 같은 공식이 성립될 수 있겠다.

  ‘항소이유서에서 소셜 리버럴리스트가 되기까지’라는 부제를 단 <유시민을 만나다>는 지승호의 인터뷰를 통한 ‘인물 탐구’라는 이름에 값한다. ‘지승호의 인물탐구 1’이라고 했으니, 이후의 책들 또한 기대된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유시민이라는 코드를 정혜신, 한홍구, 김정란, 유시춘을 통해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으며 2부에서 본격적으로 여섯 번의 인터뷰를 시기별로 나누어 싣고 있다. 마지막 부록이 압권이다. 스물여섯 청년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정본(?)’이라는 이름으로 달고 있다. 본인이 직접 당시 복사본의 오류를 바로 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재밌다.

  2002년 여름 유시민은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이라는 격문을 날리며 정치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전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등의 저술가로, 칼럼니스트로, ‘100분 토론’ 진행자로 알려진 그는 가장 선동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입문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의 당의장 선거에서 집단 이지메 수준의 비난과 수모를 겪어가며 침묵을 지킨 유시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사실이다. 분파주의자이며 분열적이고 독선적인 개혁론자라는 부정적 평가와 더불어 토론의 달인, 정치 천재로 불리며 노무현 정권 창출의 특등 공신으로 미래의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행복한 역할과 소임을 저버리고 불행한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그를 더 이상 비판적 지성인으로 만나기는 어렵다. 싫든 좋든 그는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 같이 정치 환경에 적응하며 우리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인에 대한 관심과 평가는 모든 유권자에게 중요하다. 김영춘 의원의 발언대로 “저렇게 좋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할 수 있냐?”는 정서의 문제로 그를 대할 수는 없다고 본다.

  2002년 대선을 통해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 노빠 주식회사 대표, 노무현과 영혼의 샴쌍둥이’라 불리며 민주세력에게 사표 선동을 통해 비판적 지지를 호소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신념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했다. 그것은 개인적인 신념일 뿐 민노당 지지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앙금을 남겼고 여전히 노회찬 의원을 비롯한 좌파세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논리와 신념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로 열혈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 이유를 민언련 최민희 사무총장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첫째 과거의 정통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 둘째 일정 시점에서 현장과 거리를 두면서 학습할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사회를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자세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 셋째 제도권 정치인으로 변신하되 그 방식이 순수하게 개혁을 바라는 세력들을 모아서, 그 세력의 대표성을 가지고 정치에 입문했다는 점을 들었다.

  물론 이런 이유들 뿐만 아니라 정통 TK 서울대 출신으로 지역, 학력 컴플렉스가 없고 과거 화려한 민주화 경력은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점을 추가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열성 지지자만큼 그에 대한 비판적 정치인과 혐오 세력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의 후배들인 386의원들에게 집중 포화를 맞은 당의장 선거에서의 모습은 ‘그토록 유시민이 그들에게 상처를 줬을까, 어떻게 말을 싸가지 없이 했길래 후배들이 저렇게 들고 일어나는가, 유시민은 옳고, 그들은 전적으로 틀렸는가’하는 자성을 누나 입장에서 했다는 유시춘의 말처럼 현재의 그를 돌아보는 거울이 될 것이다.

  유시민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원한 자유주의자’라고 지승호는 말한다. 항소이유서에서 인용한 네그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처럼 그는 슬픔과 노여움이 많은 ‘소셜 리버럴리스트’라고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이름으로 우리에게 정의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향력 있는 한 명의 정치인이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비판과 지지를 함께 보내야 한다. 지역주의와 낡은 정치를 청산해야한다고 믿는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양비론이나 특정 정당과 물에 대한 맹목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방법이다.

  아무리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노무현과 유시민을 정치적 야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위험 인물이라는 의미의 마키아벨리스트로 볼 수는 없다. 진정한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이란 ‘나쁜 수단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두 사람을 후자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판단일까?

  유시민이라는 한 정치인에 대한 평가의 잣대는 국민들 각자의 몫이다. 홍세화가 유포시킨 ‘똘레랑스’의 개념이 한국 정치의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을 처음 갖게 한 정치인이 유시민이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이나 강준만, 진중권, 한홍구, 하종강, 박노자 등의 말과 글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노회찬의 정치스타일을 가장 선호한다. 적과 아군들을 모두 웃겨버려 할 말을 없게 하는 그의 스타일은 지나온 경력과 앞으로의 가능성, 정치인으로서의 역량과 민노당의 미래만큼이나 궁금하고 기대된다.

  말과 글이 적확하며 상식적이던 지식소매상에서 자유주의 메신저의 상징으로 그가 보여줄 한국 정치가 그리 어둡고 답답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안 되면 어때요?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그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고, 거기서 의미를 찾고, 또 다른 부분에서 제가 할 일을 찾으면 되죠.”라고 자주 말하는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하기보다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국민들에게 쓰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며 책장을 덮는다.


200506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토니 가우디 살림지식총서 127
손세관 지음 / 살림 / 200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한 기회에 가우디 건축 화보집을 접한 적이 있다. 스페인어 선생님께서 방학 기간중 스페인에 다녀오시면서 가우디의 건축물 사진첩과 관련서적을 구입해 오셨다. 물론 읽지는 못하고 그 사진들을 통해 그의 건축물에 매료됐다. 공간 예술로서 가우디의 건축물은 숙연함을 자아내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거리라면 한달음에 달려가 보고 싶을만큼 매혹적이었다. 특히 ‘카사 바트로’와 그의 대표적 건축인 ‘성가족 성당’은 형언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구리세공으로 솥과 그릇을 만드는 아버지를 도우며 평면에서 공간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일찍이 습득하게 된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태양의 빛이 쏟아내는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자란 가우디는 그 모든 감각을 장식과 조각에 쏟아부었다.

  그의 영원한 친구이자 전폭적인 지원자였던 구엘을 만나면서 가우디는 그의 건축에 영감을 불어 넣는다. 구엘 가족의 별장과 정원에서 건축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한다. ‘건축은 말없이 군림한다.’는 가우디의 말은 말없는 웅변으로 건축을 통해 그의 생각을 대변한다. 온갖 장식과 조각의 아름다움이 건축에 가미되어 전통적인 건축물의 개념과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는 건축에 대해 ‘조형능력은 감성과 이성 사이의 균형을 말한다’는 말로 폭넓은 개념으로 정의내리고 만다. 저자 손세관은,

  가우디는 건축의 형태가 구조체의 명쾌한 표현이므로 건축은 점이나 선이 아닌 연속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연세계는 종합적인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형태를 선이나 면으로만 분석하는 인간의 지성적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55페이지)

  라고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표현한다. 조형미와 빛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던 가우디의 건축물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의 하나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만큼 그의 건축은 이제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은 진실의 광채’라고 말한 가우디의 말을 되새겨볼 만하다.

  건축가이기 전에 성자였던 가우디는 1883년부터 1926년 사망하는 날까지 43년간 ‘성가족 성당’에 매달린다. 아직도 건축중인 ‘성가족 성당’에는 연간 백만명이 넘은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성당 지하에 묻힌 가우디는 영원히 이 성당의 건축가이자 보이지 않는 주인이 되어 성당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교회는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넓게 열려진 공간이 될 것입니다.’는 가우디가 남긴 한마디는 이 성당에 대한 그의 집념을 대신한다.

  가우디는 모든 건축물에 대한 기본적 태도가 주변 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였다. 주변의 지형과 자연, 하늘과 자연의 빛까지 고려한 그의 건축들은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내는 인공적 흉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조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는 말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형태로서 웅변하는 건축가였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언어의 인간과 행동의 인간이지요. 언어의 인간은 말하며, 행동의 인간은 실천합니다. 저는 두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저는 언어 표현력이 부족하지요. 가령 저는 예술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서, 말로든 글로든 남긴 적이 없습니다.(81페이지)

  현명한 사고는 과학보다 우수하다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작업에 몰두하며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가우디의 장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듯하다. 말하는 인간보다 행동하는 인간이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내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사람들은 언어의 인간보다 행동하는 인간에 매료된다. 말없이 걸어가는 신념 앞에 숙연해진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남기지 않은, 평범한 삶을 거부한, 평생을 신과 건축을 위해 살았던 ‘신의 건축가’ 가우디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언제 스페인으로 달려 갈 수 있을 것인가?



200508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리영희 선생님과의 대담 <대화>를 읽으면서 형언하기 힘든 정신과 이성의 힘에 압도당한다. 그 숙연함은 우리 시대 ‘사상의 스승’이라 불릴만한 리영희 선생님의 깨어 있는 의식과 올곧은 삶의 태도에 대한 경건함에서 비롯된다. 한 시대와 민족에게 있어 참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전 존재로 보여주신 선생님의 삶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20세기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이 리영희 선생님이신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신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은 이 책은 나에게 올해 최고의 책이 될 듯하다.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삭주에서 성장하신 선생님은 중학교부터 서울로 유학한다. 그 무렵에 해방을 맞고 해양 대학을 졸업한 후 안동중에서 영어교사 재직하던중 6 ․ 25 전쟁이 발발한다. 군에 입대한 선생님은 최전방에서 통역장교로 3년을 근무하고 후방 군의학교에 전속되어 근무하다가 7년 만에 소령으로 전역한다. 합동 통신사에 첫 발을 내딛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제 정세와 세계사적 흐름을 주시하며 본격적인 글쓰기와 연구를 시작한다. 60년 4 ․ 19와 61년 5 ․ 16을 겪으며 역사의 현장에서 의식을 무장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나간다. 이후, 1964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옮겨 11월에 유엔총회 남북한 동시 초청안 기사로 구속 기소. 69년에 베트남 전쟁과 국군 파병에 대한 비판적 입장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제 1차 언론사 강제 해직. 군부독재 ․ 학원 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으로 제 2차 언론사 강제 해직. 76년에는 제 1차 교수재임용법에 의해 교수직에서 1차 교수직 강제 해임. 77년에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내용의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 80년 광주교도소 만기출소. 사면과 복권 되어 해직 4년만에 교수직으로 복직되던해 5월 16일 ‘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남.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의 한 사람으로 날조되어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지만 한양대에서 2차 로 교수직에서 다시 해직됨. 84년에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주관 ‘각급학교 교과서 반통일적 내용 시정견구회’ 지도 사건으로 다시 구곳 ․ 기소되었다가 2달만에 석방(반공법 위반혐의). 한양대학교에 해직 4년만에 2차 복직. 이후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초빙교수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 공동초청 초빙교수.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주도적 참여후 이사 및 논설고문 역임. ‘한겨레신문’ 창간기념 북한 취재기자단 방북기획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 ․ 기소(당시 환갑). 추후 사면 복권. 95년 한양대학교 정년퇴직. 2000년 집필중 뇌출혈로 우측 반신마비. 이후 건강회복에 전념.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 보다도 감동적이다. 딸 미정씨는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대학시절 아버지는 수정주의자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7년간의 군복무중 17살 어린 동생의 죽음과 77년 11월 27일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던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의 심정을 짐작해 본다. 한 인간에게 있어 사상의 자유와 사회적 책무는 어디까지인가. 참된 지식인이 한 사회에서 담당할 몫은 어디까지인가. 어렵고 힘든 질문과 대답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가족들에게 자상한 아버지, 따뜻한 남편의 역할을 포기한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길을 고집했던 한 인간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독재정치와 권력에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리영희 선생님의 태도는 물론 차이가 있다. 외신부 기자로 본격적인 논문과 글쓰기를 시작할 무렵의 선생님은 주로 중국의 공산당 혁명과 베트남 전쟁,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의 해방과 독립을 목도하며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가지게 된다. 이후 한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일관된 연구를 거듭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자본주의적 속성과 패권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유엔과 미국 정부의 비밀 문서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밝히고 전지구적 차원의 미국의 힘의 논리를 밝혀낸다. 중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시대 이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포기 등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흐름을 짚어낼 수 있다.

  1974년 <전환시대의 논리>를 발간한 이후 우리 사회는 리영희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고 여전히 그러하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 관련 대학생들은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의 영향을 언급한다. “난 모든 사건에 직접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본문 554)”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의 영향력을 웅변한다. 노신을 존경하여 그의 사상과 태도 글쓰는 방법론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고백은 우리 사회의 노신으로 여겨지게 한다. “‘개인은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일수 있지만, 무리(집단)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체로서 사고하는 인간’과 무리 속에서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큰 차이에요.(본문 268)”는 말 속에 인간 리영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무리 속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입장과 태도마처 비이성적이라면 분명 통탄할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가?

  한 시대의 선각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스승으로서 한 평생을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살아오신 선생님의 이 말이 비단 글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에게 경건한 자기 반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우상과 이성> 서문중에서)” - (본문 675)


   리뷰의 분량이 3200자로 한정되어 덧붙이는 사족.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방향을 더듬어 볼 필요는 있겠다.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비인간화적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현실적으로 결함과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사회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체제보다 우얼하다고 확신해요. (본문 687)

   촘스키나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나 사르트르를 대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지식인'은 있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삶과 사상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우리 삶의 태도와 이성적 판단력에 영향을 줄만큼 큰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을 꼽으라면 우리에겐 누가 떠오를 것인가?

   쉽사리 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하거나 탁상공론에 빠지거나 지식과 이성이 삶의 태도와 현실의 모순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내가 배운것은 무엇이며 가르치는 무엇인가? 나의 삶은 어떠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적어도 선생님에게서 그 작은 빛과 희망을 본다. 가슴속에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살아남아 지성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책을 읽어가며 군데 군데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지만 이 몇개의 밑줄이 오히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오해할 요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나만의 독서법이니 내 안에서 소화된 내용을 뭐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여 자서전 형식의 책을 위해 대담을 맡아 성실하고 적절한 대화를 이끌어 낸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인공 임헌영 선생님의 역할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책을 추천하거나 권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하지만 이 책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00509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창밖에 비가 내리는 10월의 어느 하루는 수없이 많겠지만, 오늘은 기억될만큼 하늘이 낮은 회색빛이고 가을 바람 소리가 발목까지 시리게 하는 느낌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웁다’는 말 한마디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연습장에 끄적거렸던 그 한마디가 가끔 첫사랑의 추억처럼 생각난다. ‘그리움’은 인간의 근원적 슬픔만큼이나 통속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치유될 수도 없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더욱 없는 그런 감정일 뿐이다.

  문제는 그 ‘무엇인가’가 ‘누군가’로 바뀌면서 맺게되는 관계의 고통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과 실존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을 그리워하고 인간을 싫어하면서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면에서 많이 동떨어져 있다. 보여줄 것도 내세울 것도 그리고 궁금한 것도 별로 없으니 말이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라면.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특별한 생을 누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혹은 남들과 많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하면 그 사람의 뇌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이미는 사람이 바로 김경이다. 그녀의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는 그런 책이다.

  인터뷰이의 선정이 일관성 없게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다소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대수 다음이 노무현이고, 노무현 다음이 싸이다. 그렇지만 모두 독특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어디에 살든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의 진면목이 궁금해 참을 수 없는 사람들로 김경의 눈에는 비치는 모양이다. 그런대로 그녀의 생각에 동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많은 사람들과 잠깐씩 대화를 나눈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책이다.

  깊이 있게 여러 번에 걸쳐 한 인물에 대해 분석적인 인터뷰를 하고 다양한 그 사람의 모습들과 변화하는 과정들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인터뷰어 지승호와 김경은 다르다. 바자 피처 에디터라는 직함답게 패션과 최근 유행의 흐름을 짚어내는 가운데 인물을 선정하지만 때로는 바자라는 잡지와는 무관해 보이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진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한 사람에 대해 보고 듣고 대화한 내용을 가감없이 그대로 실어 놓은 앵무새같은 인터뷰와 김경의 인터뷰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녀의 화려한 글발과 감각적 태도는 가장 큰 장점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기본일 것이고 그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그 사람을 해설하는 방식이 다분히 타고난 듯한 감각과 센스로 무장된 섬세함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저 편안하게 평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읽는다면 나름대로 의미있는 접근이 된다.

  표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이다. 매혹의 정도도 다르고 기호와 취향도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인물들을 선정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김훈, DJ DOC, 함민복, 강혜정 …… 김윤진, 이우일, 주성치, 크라잉넛, 노무현, 싸이. 무려 22명이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섞어 놓은 책은 만나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들은 단순히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이라는 공통점만 가지고 있는 걸까?

  개인적 판단인지 모르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들에게 ‘외로움’을 발견했다.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이 아닌 실존적 외로움이 보인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실력을 인정받으면서도 그들의 말에 묻어나는 외로움의 정체를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내 촉수의 부정확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그들의 말이 진심으로 닿는다. 공허나 허무와 다른 이름으로 넓은 공간을 채우는 공허한 울림처럼 자신에 대해 그리고 김경의 물음에 대답하는 그들의 표정이 보이는 듯싶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부족한 내게는 재밌있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무엇이든 즐겁고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 김경이 그렇다. 김규항의 말대로 그녀는 ‘대단한 꼴값’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맞은편에 앉아 일한 적이 있다는 소설가 김연수의 소개글도 김경 짐작하게 한다.

  가을비 오는 날 커피잔을 앞에 놓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청승맞지 않게 시간이 잘 갈 것 같다. 뒤페이지 카피처럼, 사람만큼 흥미롭고 매혹적인 텍스트는 없다. 나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200510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한 번쯤은 책만 보는 바보를 꿈꿔 본다. 세상에 대한 도피와 일탈의 성격으로 쉽게 말한다. “아~, 시골에 내려가 책이나 보면서 지냈으면 좋겠다.”하는 소망을 드러낸다. 나도 그렇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하늘을 벗삼아 책만 보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태도가 다 다르니 사람마다 소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책 속에 묻혀 사는 즐거움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강렬한 유혹임에는 틀림없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책만 읽는 바보를 ‘간서치(看書痴)’라고 한다. 조선 후기 한 시대를 살았던 이덕무(1741-1793)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글을 남겼다. 스물 한 살에 쓴 ‘간서치전(看書痴傳)’이 그것이다.

  이 책은 자서전 형식으로 이덕무 스스로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글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늦은 나이에 연경에 다녀온 후 규장각 검서관으로 입궐하고 지방의 수령으로 내려가기도 한 그의 삶은 평범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글과 생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어찌보면 역사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특별한 공적이나 특징이 없어보이지만 그의 생각과 삶이 주는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이 있다.

  한번 서자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대대손손 서자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은 그 후손들이 짊어져야할 삶에 멍에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다. 적자와 서자의 차이, 신분의 차이가 삶을 결정했던 시대를 들여다 보는 일은 슬프다. 이덕무는 서자의 집안 출신으로 관직에 나아갈 길도 막혀있고 그렇다고 농토가 풍부하거나 상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스스로 ‘책만 읽는 바보’라고 칭할만 하다.

  만약 정조와 같은 왕을 만나지 못했다면 서자 출신의 이덕무는 평생 눈물과 회한으로 쓸모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살았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중요한 일이다. 직업의 선택이나 생계의 유지 수단이 제한되어 있었던 이덕무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유쾌하거나 즐겁지만은 않다.

  다만 그의 젊은 시절 방안에 들어앉아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따라가며 책을 읽는 모습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책을 사랑했던 선비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평생 책과 함께 하며 그보다 더 좋은 친구들과 교우했던 이덕무의 삶은 평범했지만 그의 생각과 글은 맑은 수채화처럼 깨끗하다.

  평생의 친구였던 유득공과 박제가 그리고 백동수와 이서구 등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책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준다.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그의 두 칸짜리 집 마당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방 한 칸을 만들어 주는 일화는 형언하기 힘든 친구들의 우정과 그 관계를 말해준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복잡해지고 속도가 지배하게 됐지만 이덕무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18세기 후반의 어느 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이덕무의 산문들을 자서전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가의 솜씨도 깔끔하다. 문장의 흐름과 내용에 군더더기가 없고 이덕무의 글을 그대로 옮겨 나가는 부분도 어색하지 않다. 한 선비의 이야기로 책을 좋아했던 사람의 일생과 평범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전해주는 책이었다.

  이덕무의 친구 유득공과 박제가도 서자였다. 가슴 아픈 현실과 가난을 곁에 두고 살았던 그의 삶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을 스승으로 모시며 백탑(원각사지 10층석탑)아래를 거닐던 이덕무의 젊은 시절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건 나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할 친구와 존경할 만한 스승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높은 벼슬도 많은 재산과도 거리가 멀었던 이덕무의 삶은 그렇게 평범한 듯 보이지만 시대를 벗어나고자 했던 올바른 생각과 태도가 아름다운 간서치였다.

  현실적인 고통과 자책감 때문에 붙혀졌을 ‘책만 보는 바보’는 그 이면에 깔린 비애보다 현실에서 벗어나 글읽기를 좋아했던 한 선비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 있다. 하지만 책읽기의 행복과 모든 것을 나눌 만한 좋은 친구들과 함께한 그의 삶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차별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살았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책을 가까이 했던 그의 삶이 전해주는 의미는 만만치 않다.

  ž‹은 수묵 담채화처럼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그의 맑은 영혼이 느껴진다. 책속에, 글속에 많은 것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 진솔한 한 인간의 삶과 이야기가 영웅의 이야기를 넘어선 감동을 전해준다. 이 세상에는 책만 읽는 바보가 아니라 책도 안읽는 천치는 얼마나 많은가.


20051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