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콘크리트 냄새 자욱한 섬에 떠 있다. 현대판 공중부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메마르다.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집을 쌓아놓고 똑같은 위치에 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본다.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입구에서 쏟아져 나왔다가 저녁에 똑같은 입구로 들어간다. 병정놀이 하듯 현대인의 삶은 기계적이다. 노동에 바쳐지는 시간과 휴식에 바쳐지는 시간들로 나뉘어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다가 비슷한 종류의 행복을 느끼거나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우울해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아파트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어둠속에 괴물처럼 솟아 있다. 칸칸이 불 밝힌 대한민국의 저녁은 안녕한가.

 피에르 라비의 삶을 그린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의 삶은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나무와 바람과 대지와 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그의 인생은 도시와 문명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흉내낼 수 없는 삶으로 보인다.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손쉽게 혹은 낭만에 기대어 전원생활을 상상한다. 하지만 피에르 라비에게 자연은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머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생을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과 대면하게 되면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알제리 오아시스 출신의 피에르 라비는 프랑스 부부교사에게 입양되어 문명의 혜택을 받지만 그의 피부색과 출신 성분을 숨길 수는 없다.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문명에 대한 혐오는 피에르 라비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뿌린 만큼 거두고 자식을 낳고 기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귀농한 한 외국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이 경험한 삶의 방식과 땅을 대하는 법을 나눈다. 그 속에서 깨달은 생의 의미를 이웃과 나누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질적 풍요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다국적 기업과 거대 자본에 의한 농업과 기계식 산업이 불러온 재앙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마치 성자와 같다. 뚜렷한 목표와 진지한 태도는 미래의 농업과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한 피에르 라비의 삶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낭만적인 태도로 그의 삶을 기웃거리자는 말이 아니다. 현실 속에 발딛고 사는 우리들이 한 번쯤 먹거리를 위한 자세와 태도를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장 피에르 카르티에와 라셀 카르티에 부부가 그를 찾아가 보낸 일주일간의 기록이 이 책의 내용이다. 피에르 라비의 말과 생각을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두 부부의 태도는 진지하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삶을 소개하는 흥밋거리가 아니라 우리들 안에 살고 있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목소리로 들린다.

 돈 주고 사는 주말 농장이나 노년을 자연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들 속에는 땅에 대한 인간들의 원형적인 그리움이 내재해 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지침서나 참고서가 아니라 생에 대한 태도와 도시에서의 척박한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생길 때 이 책은 고민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게 하는 피에르 라비의 삶은 우리를 경건하기에 충분하다.


07021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 - 교사를 위한 국어교육의 길잡이
이주영 지음 / 나라말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환산할 수 있을까?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다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상상한다. 세상을 살면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사회를 변화시킨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아름답다. 개인적 삶을 넘어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영의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을 읽으면서 숙연해졌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면서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치려고 했던 바른 우리말과 글 속에는 그 분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한 인간이 신념을 갖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삶이다. 더구나 개인적 이익에 반하고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이기적 욕망들을 버려야 하는 일이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은 그런 면에서 선명한 빛깔로 미래를 제시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빛바랜 낡은 사상도 있고 시대를 앞선 생각들도 많이 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 땅의 교육 민주화와 글쓰기 교육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숱한 후배 교사들에게 진정한 선생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셨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쓰여진 글을 수정해서 출간한 이 책은 단순한 이오덕 선생에게 바치는 헌사와 다르다.

이오덕 선생님의 삶을 통해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앞세워 출범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사상적 배경까지 읽어낼 수 있다. 단순한 이익 집단으로 볼 수 없는 단체의 출범은 이오덕 선생님의 생각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 분이 걸어온 길과 민주화를 선언한 교육계의 목표는 어디를 지향하고 있을까. 과연 민주 교육은 무엇인며 삶을 가꾸는 교육인 인간화 교육은 무엇인가.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해 선생님의 삶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배운다.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느냐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학교교육의 가장 큰 단점이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맞춰 교사들이 가르치는 내용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우리의 배움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부모는 물론이지만 교사의 역할은 얼만큼 중요한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한 사람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 스승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망망한 대해에서 밝은 등대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우리에게 그런 선생님이 계신가 돌아보게 된다. 이오덕 선생님은 충분히 그러한 존재이다. 살아생전에는 물론이고 2003년에 타계하신 후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한 개인의 작은 노력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 선생님의 뜻을 기리고 존중하며 그 가르침을 이어가는 노력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모든 분들의 바람과 마음들이 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수많은 단체들에 관여하면서도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참교육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후학들은 알 것이다.

‘논술’이라는 괴물이 온 나라를 흥분시키고 있다. 이오덕 선생님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 권만이라도 제대로 읽어본다면 우리가 지향해야할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듣고 말하는 것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국어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형식이다. 국어지식과 문학 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오덕 선생님이 평생을 지켜온 생각이 아닌가 싶다.

밝고 화려하게 빛나는 등불이 아니라 희미하지만 어둠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길을 밝혀 주는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은 이 땅의 수많은 후배 교사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질 것이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같이 걸어가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이다. 그 길은 이제 시작은 아니다. 선생님이 걸어간 길을 넓고 단단하게 하는 일이 남겨져 있다. 참다운 인간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과 교육자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내용이다.


061228-14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짱꿀라 2006-12-2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sceptic 2006-12-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한 새해 맞으세요.
 
禁止를 금지하라 -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
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람의 본질은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 없다. 사회적 가면에 의해 가려진 모습들과 본능적 자아의 모습 사이에는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때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낯설기만 하다. 한 사람을 규정짓고 판단하는 것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은 없다. 말이나 글을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켤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기초는 대화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 지승호는 질문을 선택했다. 어떤 사람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독자는 읽는다면 독자는 수동적 수용자가 된다. 게다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해결할 방법이 없어진다. 하지만 인터뷰라는 독특한 대화 방식을 통해 독자들의 궁금증은 실마리를 풀어간다. 인터뷰어가 누구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궁금한 사람의 선정에서부터 궁금한 내용까지 독자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터뷰의 능력과 시각에 따라 인터뷰이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승호의 인터뷰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든다.

벌써 열 번째라는 사실에 놀랬다. 지승호의 <禁止를 금지하라>는 무르익은 지승호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대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으며 공격적이거나 피상적인 질문이 없다. 질문의 핵심이 뚜렷하고 칭찬 일색의 인터뷰와도 다르다. 인터뷰이의 주장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나 이야기를 제시할 때도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다양한 시각들을 전달하고 깊이있게 대화를 끌어갈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철저한 준비와 지승호만의 노력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인터뷰 대상과 방식과 내용이 모두 마음에 든다.

인터뷰어라는 직업이 있는지 모르지만 전문 분야로 삼고 매진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독자들의 격려와 스스로가 찾아낸 자신의 역할일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조용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禁止를 금지하라>는 지승호와 네 번째 만남이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지승호 자신의 셀프 인터뷰가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셀카도 아니고 셀프 인터뷰라니? 전무했던 방식이 아닌가? 재밌고 즐겁게 읽었다. 앞선 책에서 보여줬던 그의 인터뷰들과 저간의 심정들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고 솔직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가슴속의 먼지들을 털어내는 모습들이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책을 더욱 친근하게 만든다. 솔직한 사람이 가장 무섭다.

이번 책에는 박원순, 조정래, 마광수, 문정현, 정태인, 이상호, 최승호 등 7명과 지승호 자신까지 포함해서 8명을 인터뷰 한 내용이 담겨있다. 최근 2년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의 직, 간접 당사자들이나 꾸준히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 혹은 왼쪽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자유는 끊임없는 감시의 대가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이데올로기를 넘어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 지승호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7인7색>도 그랬지만 제각각 다른 인물들을 통해 하나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지승호의 메시지는 그 인터뷰의 행간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책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은 항상 독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이가 맘에 들지 않아 책을 사지도 않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좋아 책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류에 편입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과 정당하지 못한 방법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편에 어떤 방식으로 서 있든, 아니 어정쩡한 자세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강제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지향점이 어디든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최소한의 의미이다.

<7인 7색>을 읽고 쓴 리뷰에 지승호씨가 직접 댓글을 달아 준 적이 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인터뷰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위한 방편이라고 믿는다.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 섬에 갈 수 없어도 거리를 좁히는 방법들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승호의 어렵지만 의미있는 작업들이 스스로의 즐거움이길 바라며 그의 말대로 선비의 기질과 양아치의 기질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비슷한 성격의 많은 독자들이 웃음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쓰레기 댓글들에 더 이상 신경 쓰며 분노하지 않으시기를...


061211-1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모든 사색과 정치적 활동의 중심에 있어야 하며, 그 어떤 혁명도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목숨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P. 142


 카알 마르크스(Karl Marx).


 그의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화 되었다. 그가 함유하는 의미는 상황과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인류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이 아닌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그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그것이 긍정의 의미든 부정의 의미이든 말이다. 21세기에 불러보는 그의 이름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은 마르크스에 대한 선명하고 분석적인 평가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아탈리는 마르크스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독일의 철학자, 유럽의 혁명가, 영국의 경제학자, 인터내셔널의 스승, 자본의 사상가’로 구분된 그의 생애를 따라가며 방대한 자료와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냉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마르크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수많은 인용들과 자료들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고 그것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과 평가는 독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낸다.


 평전이 가지는 미덕이 설득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인간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고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선입견은 독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단편적인 이야기들과 다른 책들에서 만난 마르크스의 왜곡된 모습들이 하나의 완전한 그림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750여페이지에 달하는 긴 여행을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19세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을 뒤흔들었던 ‘공산당선언(1848)’이후 마르크스는 어떤 형태로든 거의 모든 인류에게 깊은 인상과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 되었다. 그 영향의 파장은 물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유효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쓴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나 기억할 만한 한 인간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여전히 유요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기만 했을 것이다. 꼼꼼한 자료 분석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한 인물을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에는 주관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를 영웅시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19세기를 살았던 한 개인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조국을 등지고 살아가면서 가난과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았던 그의 생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세 명의 자녀를 앞세웠고 두 명의 자녀는 자살한 마르크스의 개인적 고뇌와 세상에 대한 고민은 책을 읽는 내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의 지적 기반을 살펴보고 사상적 추이를 더듬는 일은 현재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그의 예언적 사상과 현재와의 접점을 찾아내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마르크스의 망령을 되살려 어쩌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좌우의 대립을 넘어 그가 보여준 혁명적 사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레닌과 스탈린은 마르크스를 오독했고 이용했지만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던 마르크스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그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지구상에 첫 번째 세워졌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붕괴되었고 중국은 자본주의의 물결을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과 쿠바 등 여전힌 진행중인 혁명에 대한 실험과 평가는 마르크스의 이론과는 다른 점이 많다.


 수학공식처럼 들어맞는 현실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세상은 인류의 영원한 지향점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가 떠난 빈 자리를 채웠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를 반박하고 비난하고 오해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르크스로부터 비롯된다.


 마르크스의 생애를 반추하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그의 아내 예니가 아니라 친구 엥겔스다. 친구 혹은 사상적 동지 이상의 특별한 관계였던 그들을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엥겔스가 아니었다면 마르크스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길러낸 것은 아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관계인 두 사람, 특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가졌던 마음이 더 많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지금 이기적 자본주의와 왜곡된 자유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여전히 필요하다. 그가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니고 19세기 식으로 혁명을 꿈꾸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가 미처 상상도 못한 자본의 소유 형태나 노동의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졌던 ‘인간’에 대한 생각은 ‘마르크스’라는 상품에 대한 현재적 유용성에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것이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를 통해 읽어낸 것이다.


 어떤 자유의지도 소멸될 것이 확실하고,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생각이든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말고, 상반되는 관점들을 받아들이며, 원인과 책임 요소들, 메커니즘과 행위자들, 계층들과 사람들을 혼동하지 말며,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들을 말이다.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이유 말이다.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세대들이 추방된 카를 마르크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런던의 빈궁 속에서 죽은 자식들을 놓고 슬퍼하면서 최선의 인류를 꿈꾸었던 그를. 그러면 미래의 세대들은 세계의 정신에게로 되돌아가게 되고, 그의 주된 메시지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 P.741



061119-12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짱꿀라 2006-11-2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으려고 2주 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읽지를 못하고 있었네요. 근데 여기에서 님의 리뷰를 먼저 읽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sceptic 2006-11-2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요...부끄럽습니다...꼭 읽어보실만한 책으로 추천합니다...님의 취향을 알 수 없으나 천천히 음미할 만합니다.
 
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인간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은 무조건 오류다. 인간은 그렇게 한마디로 이해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에르네스트 체 게바라’를 한마디로 이름 붙힐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살아온 길과 방법들에 대해 들여다볼 뿐이다. 단순한 구경꾼의 의미를 넘어 진행형의 역사에서 그를 자리매김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이고 실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1928년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학박사 출신으로 쿠바 혁명에 가담하여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게릴라전을 성공시킨 인물인 체는 그 후, 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 혁명을 실천하던 중 1967년에 사망한다. 그의 나이 서른 아홉이었다. 스무살을 전후하여 그의 친구와 함께 남미를 여행하며 그는 사상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 여행 과정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국내에서도 얼마전에 상영되었다. 혁명전사 체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쿠바의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아바나에 입성할때까지 숱한 전장에서도 체는 책을 놓지 않는다. 책과 사람을 통해 세상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체는 그렇게 했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 된다”고 말하는 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할 수 없다. 지구상에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이. 수정주의, 교조주의, 네오맑시즘, 해방철학, 유로코뮤니즘등 공산주의 분파들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며 현실속의 이데올로기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구소련의 레닌과 트로츠키, 중국의 마오쩌둥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등 현실속에서 그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과 방법들은 개별적 상황과 현상속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공존해왔다. 체의 사상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어렵고 위험하다. 플라톤의 ‘이념속의 현실’에서 발원한 공산주의를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실천한 사람도 국가도 없다. 그래서 지금, 체의 사상적 기저를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내가 주목한 것은 체의 실천성이다. 쿠바 혁명 과정과 그 이후에 그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두려움은 느끼게 한다. 누가 생각한대로 살 수 있단 말인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장 코르미에에 의해 10년간 수집된 자료가 기초가 되었다. 체의 딸(일디타)과 청소년기의 꿈과 이상을 공유했던 친구 로베르토 그라나도의 도움으로 쿠바를 답사하고 많은 주변인들과 인터뷰를 통해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는 더욱 크다. 객관적이며 방대한 서술로 체의 삶을 연대기식으로 들여다 볼 수 있으며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고 체의 편지와 일기를 삽입해서 사실감을 높혔다. 평전이 가질 수 있는 영웅적 서술과 신비감을 드러내기 위한 주관적 서술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사례와 여러사람의 시각으로 한 혁명가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20대에 공산주의자(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바보이고, 서른 넘어서까지 공산주의자인 사람도 바보라는 어느 프랑스인의 말을 떠올려 본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 나아가 이 지구상에 펼쳐지는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띠는 세상을 위한 이념과 체제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냉정한 인식은 얼마나 필요한 것이며 그것은 어떤 형태로 내 삶의 모습에 반영되어야 할까? 나는 이제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고 마흔이라는 나이와도 만나게 될 것이다. 진보와 개혁을 외치는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보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듯이 자기 정체성과 실천의 문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생의 뜨거운 화두가 된다. 사춘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작은 고민.

 

  베스트셀러와 유행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이라는 핑계로 이제야 탐독하게 된 책이지만 두고두고 가슴속에 오래 남을 만한 좋은 만남이었다. 체를 통해 느낀 것은 어쩌면 단순하고 당연한 논리이다. ‘사상의 종점은 행동이다’라는 명제. 항상 그것이 문제다. 그가 남긴 숙제 같은 한마디가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200502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