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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모든 사색과 정치적 활동의 중심에 있어야 하며, 그 어떤 혁명도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목숨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P. 142
카알 마르크스(Karl Marx).
그의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화 되었다. 그가 함유하는 의미는 상황과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인류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이 아닌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그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그것이 긍정의 의미든 부정의 의미이든 말이다. 21세기에 불러보는 그의 이름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은 마르크스에 대한 선명하고 분석적인 평가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아탈리는 마르크스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독일의 철학자, 유럽의 혁명가, 영국의 경제학자, 인터내셔널의 스승, 자본의 사상가’로 구분된 그의 생애를 따라가며 방대한 자료와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냉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마르크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수많은 인용들과 자료들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고 그것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과 평가는 독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낸다.
평전이 가지는 미덕이 설득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인간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고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선입견은 독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단편적인 이야기들과 다른 책들에서 만난 마르크스의 왜곡된 모습들이 하나의 완전한 그림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750여페이지에 달하는 긴 여행을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19세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을 뒤흔들었던 ‘공산당선언(1848)’이후 마르크스는 어떤 형태로든 거의 모든 인류에게 깊은 인상과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 되었다. 그 영향의 파장은 물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유효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쓴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나 기억할 만한 한 인간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여전히 유요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기만 했을 것이다. 꼼꼼한 자료 분석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한 인물을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에는 주관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를 영웅시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19세기를 살았던 한 개인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조국을 등지고 살아가면서 가난과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았던 그의 생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세 명의 자녀를 앞세웠고 두 명의 자녀는 자살한 마르크스의 개인적 고뇌와 세상에 대한 고민은 책을 읽는 내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의 지적 기반을 살펴보고 사상적 추이를 더듬는 일은 현재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그의 예언적 사상과 현재와의 접점을 찾아내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마르크스의 망령을 되살려 어쩌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좌우의 대립을 넘어 그가 보여준 혁명적 사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레닌과 스탈린은 마르크스를 오독했고 이용했지만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던 마르크스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그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지구상에 첫 번째 세워졌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붕괴되었고 중국은 자본주의의 물결을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과 쿠바 등 여전힌 진행중인 혁명에 대한 실험과 평가는 마르크스의 이론과는 다른 점이 많다.
수학공식처럼 들어맞는 현실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세상은 인류의 영원한 지향점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가 떠난 빈 자리를 채웠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를 반박하고 비난하고 오해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르크스로부터 비롯된다.
마르크스의 생애를 반추하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그의 아내 예니가 아니라 친구 엥겔스다. 친구 혹은 사상적 동지 이상의 특별한 관계였던 그들을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엥겔스가 아니었다면 마르크스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길러낸 것은 아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관계인 두 사람, 특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가졌던 마음이 더 많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지금 이기적 자본주의와 왜곡된 자유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여전히 필요하다. 그가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니고 19세기 식으로 혁명을 꿈꾸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가 미처 상상도 못한 자본의 소유 형태나 노동의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졌던 ‘인간’에 대한 생각은 ‘마르크스’라는 상품에 대한 현재적 유용성에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것이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를 통해 읽어낸 것이다.
어떤 자유의지도 소멸될 것이 확실하고,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생각이든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말고, 상반되는 관점들을 받아들이며, 원인과 책임 요소들, 메커니즘과 행위자들, 계층들과 사람들을 혼동하지 말며,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들을 말이다.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이유 말이다.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세대들이 추방된 카를 마르크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런던의 빈궁 속에서 죽은 자식들을 놓고 슬퍼하면서 최선의 인류를 꿈꾸었던 그를. 그러면 미래의 세대들은 세계의 정신에게로 되돌아가게 되고, 그의 주된 메시지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 P.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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