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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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난 어린 아이를 떠올려본다. 제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혼자서는 제대로 먹을 수조차 없다. 미숙한 인간은 조금씩 움직이고 뒤집고 기고 서고 걸으며 제 몸 하나를 겨우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명의 혜택을 받는다면 듣고 보고 읽고 쓰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식을 습득하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생각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이 불완전함이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고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조차 두렵다.

 

특히 직접 경험하지 못한 모든 지식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니, 우리의 모든 감각 기관조차 확실치 않을 때가 많다. 더구나 과거의 역사와 철학, 문화와 전통은 습관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수많은 지식들 겨우 걸음마를 뗀 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대부분 교과서를 통해 인류의 축적된 지식을 배운다. 이 과정이 맹목적인 주입식으로 이루어질 경우 주체적인 판단력과 사고력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고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보고 토론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비판적인 사고력과 논리적인 설득력 그리고 종합적인 판단력 때문이다.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세상이 하나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을 뿐이라는 자각 혹은 삶의 패러다임 전체가 흔들리는 지적 충격을 받은 적이 없다면 나는 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제자백가의 귀환 두 번째 책, 강신주의 관중과 공자는 앎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관중과 포숙의 교우 관계를 일컫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정도로 알고 있는 관중은 누구인가. 또한 500년 조선 왕조를 지배하며 우리의 전통 문화의 사상적 배경으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현실주의자 관중과 이상주의자 공자

 

역사 속의 두 인물을 비교하는 일은 많은 책에서 시도해 왔고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다른 인물들과 조금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제후들처럼 따로 다루고 있을 정도로 공자는 여느 철학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만큼 공자는 위대한 철학자일까. 학교에서 배운 혹은 공자에 대한 막연한 의심은 춘추전국시대와 그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대의 행운아로 보이는 관중도 마찬가지다. 후세 사람들에게 평가 절하된 관중은 어떤 상황에서 제나라의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들었을까.

 

작가는 이런 수많은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통해 인물의 생애를 조망한 후 그들의 사상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우선 혼란스런 중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을 더듬는 일은 어떤 책보다도 흥미롭다.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 체제를 갖추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의 상황과 1권에서 다루었던 의 관계는 2권을 읽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제자백가의 귀환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이다. 강신주가 제자백가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이 기대되면서도 끝까지 이 시리즈를 읽어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든 인물로 기억된다. 그가 가졌던 정치적인 능력과 꿈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현실이 되는지 살펴보는 일은 당대의 정치와 사회를 아우르는 작가의 통찰력을 빌리는 일이기도 하다. 폭넓은 인문학적 사유와 적절한 원문의 인용은 이 책이 단순히 알기 쉽게 풀어 놓은 해설서나 쉽고 재미있는 입문서를 넘어서는 이유다. 우리가 관중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제나라의 상황을 읽어내는 능력 뿐만 아니라 경제가 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파한 관중의 전략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크다.

 

정치철학 구분

관중

공자

정치 논리

가족 논리 국가 논리

가족 논리 = 국가 논리

정치 주체

군주

군주 + 귀족층

정치 대상

귀족층 + 민중

민중

정책의 우선순위

경제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 경제

민중에 대한 인식

능동적 사회계층

수동적 사회계층

 

그에 비해 공자는 어떠한가. 주나라의 를 숭상하며 오랜 시간을 견뎠으나 그의 이상은 결국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관중과 공자가 비교되는 지점이다. 공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관점과 유사하게 서술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양비론(兩非論)과 양시론(兩是論)이다. 공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모두 옳거나 모두 그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사회의 관점에서 공자를 바라보거나 현재적 유용성으로 공자를 해석하거나 정확한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먼지 묻은 중국 고전의 원문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누구의 해석과 관점이 정확하다고 순위를 매기자는 말이 아니다. 강신주의 해석과 관점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이 많다. 지면의 한계도 있겠으나 아쉬운 면도 있다. 그러나 컨텍스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아주 조금 안다는 생각이 든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201112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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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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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조각들과 재구성

활자가 대중화되기 전, 농경사회에서는 세월과 경험이 쌓일수록 지혜를 얻었다. 노인들은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노하우는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었다. 인쇄술과 매체의 발달은 지식의 대중화 시대를 이끌었고 이제는 네트워크 세상이 되었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지식은 매순간 새로워진다. 실용성이 없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모든 것들은 죄악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자본과 경쟁의 논리가 결합되면 금상첨화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지식과 정보는 무엇을 말하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철학이 부재한 시대는 없었다. 다만 철학적 고민이 점차 사라지고 있을 뿐. 우연히 『철학, 삶을 만나다』를 읽으면서 탄탄한 문장과 사유의 깊이에 깊이 공감하며 강신주라는 이름을 기억했었다. 이후 어느 순간 가장 대중적인 작가가 되어버렸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보면서 그가 대중적인 철학자가 되었음을 많은 독자들이 확인했을 것이다. 이후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김용규, 김용석, 탁석산, 강유원 이후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강신주의 이름을 새기게 된다.

새로운 생각과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 우리는 ‘철학자’가 쓴 책을 찾는다. ‘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잡다한 교양과 지식의 조각들을 섭취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은 없다. 책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매체와 방법들이 터치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지식과 정보를 선별하고 분석과 해석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산다는 것에 대한 오래된 질문 때문이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사람이 철학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이 말은 특정인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즉, 철학적 삶은 먹고 사는 것 이전의 문제라는 뜻이다. 철학자의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살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이다.

제자백가의 귀환

강신주의 새 책 『철학의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 위한 책이다.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라는 어지러운 부제를 달고 있는 수천 년 전 중국의 고대역사를 뒤적이는 이 책이 현재적 삶의 유용성을 말하고 있다고 하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까마득한 옛날 상나라와 주나라의 이야기를 더듬어 춘추전국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대의 사회와 사람들의 고민이 지금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삶의 질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행복도 그러한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와 삶의 형태도 그만큼 발전했는가.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발하자고 꼬득이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의 총론에 해당한다.

혼탁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를 특정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근대사, 아니 최근 200여 년간의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춘추전국시대를 능가하지 않겠는가. 더 빨리 변하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경쟁하고 더 멀리 날아가는 속도의 시대는 지금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가속되지 않을까. 이 책은 파편처럼 조각조각 여기저기서 읽고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개별 독자의 배경지식과 앎의 범위에 따라 모든 책은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고 색다른 의미를 가지겠지만 ‘춘추전국시대’는 어떤 시대였으며 ‘제자백가’는 어떤 사람들인지 차근차근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시리즈가 될 것 같다. 물론 총론에 해당되는 이 책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중국 고대사의 낯선 풍경들과 『주역』, 『춘추』, 『시경』 들여다보기 그리고 제자백가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로 나뉘어 역사와 철학자의 짬짜면을 먹는 듯싶다. 전체 12권으로 구성되어 2권『관중과 공자』가 나와 있는 상태다. 총론으로 끝낼 것인가, 선별적으로 읽을 것인가, 전체를 살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 책을 읽으면서 해도 늦지 않다. 대중적인 글쓰기의 힘과 동양중국 철학에 대한 깊이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즐겁게 해 나갈 듯 몸을 푸는 강신주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손은 이미 2권을 주문하기 위해 마우스를 잡으러 간다.

중국 고대사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보면 ‘야만의 역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난혼에서 모계사회를 거쳐 가부장제로 이행하는 과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잔혹함과 형벌 제도 때문이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도 언급된 바 있지만 인간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는 관점은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기원전 수천 년 전이기 때문이 아니고 21세기이기 때문도 아니다. 전쟁과 평화, 지배와 피지배, 승자와 패자, 가진자와 없는자 ……. 이분법적 구도로 세상을 구별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자를 구성하는 유전자에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은 야만성이 문득 궁금해진다. 아니, 최소한 공자와 맹자를 잘못 이해하거나 주나라가 민본정치를 펼쳤다는 잘못된 믿음과 지식은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공자가 아니라 관중부터 만나러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제국의 복잡했던 정치적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제자백가에 대한 당시 지성계의 이해가 얼마나 정치적 조건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당시 도가와 유가 사이의 선택의 문제는 단순히 철학적 경향을 정하는 문제를 넘어서 정치적 생명을 건 중차대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 248쪽


201112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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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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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꿈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에 도움이 되며,
통찰의 순간들을 통해 갈수록 세속화되어가는 시대에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꿈꾼다.
사회적으로는 개개인이 마음껏 성장하는 사회, 증오와 탐욕과
질시가 자랄 토양이 없어 죽어버린 사회가 창조되는 모습을 꿈꾼다.
나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고, 제아무리 참혹한 세상도 나를 흔들어대지 못한다.

역사에 명멸했던 수많은 철학자들을 떠올려본다. 철학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과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철학자들 중에 버트런드 러셀처럼 실천적인 삶을 기록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학문적으로도 일가를 이루고 시대를 기록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고 그 변화를 위해 노력했던 철학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러셀을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에그너 교수가 편집한 ‘러셀의 베스트’이다. 1872년에 태어나 1970년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70여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 러셀의 글 중 정수를 모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니 어지간한 러셀의 사상과 철학을 일괄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 등 여섯 개 분야로 나누어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목소리를 높였던 러셀의 면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엮었다. 『서양철학사』에서 ‘노벨상 수상 연설’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러셀은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의심치 않았던 철학자로 이해된다. 따라서 윤리학은 러셀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분야다. 서양 사상의 근원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러셀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강단의 평온한 철학자를 거리로 나서게 한 이유를 살펴보면 종교가 아닌 인간의 편협한 사고와 아집 때문이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러셀은 평생 대중적 글쓰기, 즉 쉽고 편안하면서도 풍자와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죽을 때까지 매일 3천 단어 이상의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 러셀은 여전히 글쓰기의 전범으로도 삼을 만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철학자의 문장이라고 해서 빛이 날만큼 눈부시게 현란하지 않다. 번역문을 통해 그 진가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특유의 기지와 풍자가 번뜩인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급변하는 인류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철학자는 불변하는 철학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까. 생각은 갈피갈피 흘러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러셀의 글은 하나의 주제와 일관된 흐름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긴 여운과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

하지만 아쉬운 점은 짤막한 호흡이다. 하나의 주제와 연관된 러셀의 방대한 저서 중 일부분 만을 발췌해서 실었기 때문에 러셀의 저작을 어느 정도 읽었거나 집중력 있게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대의 사회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만이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게 아닌가. 이 책을 즐기기 위해서는 세계사의 급박한 흐름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또한 러셀의 저작들을 어느 정도 섭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쉽고 편안한 에세이들을 읽다보면 러셀의 유머를 통해 고뇌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백 년 가까이 긴 세월을 살았다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엉뚱하게도 러셀의 하얀 머리칼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겨우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는 십대, 결혼을 앞둔 신혼 부부, 중년의 사십대 그리고 황혼녘에 선 사람들에게 인생은 무엇일까. 나이가 인생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러셀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존재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존경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 러셀, <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246쪽


1104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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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박홍규 지음 / 필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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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서양의 철학자는 지금의 우리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지식과 학문의 상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생애와 사상은 오롯이 박제된 철학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 철학자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에 모든 철학의 근간이 되어 수많은 해석과 분석을 낳았다. 동양의 공자와 맹자 그리고 노자처럼 문제적 철학자들의 사상은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의 역할을 했으며 인류 역사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세계의 철학사는 그들의 재해석에 머물러있다는 비판을 가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런가? 인류의 지난한 역사, 과학문명의 발달은 새로운 세계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의문을 가져왔고 그것을 해명하는데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아직도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자명한 현재적 삶이 되었지만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은 여전히 미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사상적 은사 중 한 사람이 되어 준 박홍규의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또다시 기존의 질서와 관성적 사고에 제동을 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며 서양철학의 중심축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디오게네스와 견준다는 사실 자체를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디오게네스를 ‘자유’의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예속’의 철학자로 선언하며 그들의 철학을 비판적 시선으로 꼼꼼하게 분석한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필요한 것을 묻자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말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스스로를 개에 비유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 정의,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철학자다. 두 사람은 삶의 방식과 후대에 미친 영향이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저자의 비교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대표적 저작을 통해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흔적을 남긴 철학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목소리는 선명하고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시대의 ‘정의’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한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합의되지 않은 채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고 경쟁하고 오로지 ‘돈’이 꿈이 되어버린 시대의 비애는 단순히 감상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은 윤리 시간에 외운 철학자들의 사상을 암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의 고민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전히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야하는 시민의 슬픔이 묻어 있다. 포스터에 쥐, 불온한(?) 사상이 적힌 책, 나와 다른 생각과 주장들 때문에 잡혀가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으로부터 이 책의 고민은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원류로 이해되는 폴리스의 사회와 정치 그리고 그 시대의 사상가들을 살펴보고 디오게네스의 삶과 사상을 복원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을 탐구하고 그의 국가, 정의, 정치에 관한 사상적 근원을 탐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당대를 비판하고 당대의 사상으로 현재를 고찰한다. 하나의 사상은 특별한 엘리트의 창조적 산물이 아니다. 사회와 역사적 존재로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세계 해석 방법이다.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아테네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 달랐다.

비교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철학자가 비교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 보여주는 간극만큼이나 현실세계의 비극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서양철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디오게네스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자는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에 대한 오해와 숨겨진 그의 철학사상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플라톤 다시보기』, 『그리스 귀신 죽이기』 등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우리 굳게 믿고 있는 지식과 사상에 대해 의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것들이 과연 모두 진실일까?

2,500여 년을 거슬러 저자와 함께 시간여행을 하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짐작도 가지 않는 시간동안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양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무는 아닐는지.

11032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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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
프랑수와 다고네 외 22인 지음, 신지영 옮김 / 부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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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시를 위한 논술이 계속되는 한 올바른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어보인다. 대학에서는 아무리 뻔한 정답을 적어내는 틀에 박힌 답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하지만 논술평가의 객관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논술 평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제시문을 분석하고 논제에 따라 글을 쓰는 형태의 현행 대학 입시 논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관식 시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논술시험에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지문 독해 능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출제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다양한 배경지식과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 싶지만 평가 척도와 객관성 확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철학 논술 시험의 형식도 완고하다. 이성 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철학 교습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철학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본다. 프랑수아 다고네를 비롯한 22명이 철학적 질문들에 답하는 책 『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은 자유로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바칼로레아에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스스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말에서 20년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옹프레의 이야기는 새겨 들을 만하다. 현행 프랑스의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에 관한 분석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옮긴이 신지영은 “철학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이미 주어진 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을 비판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자기만의 답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판과 자기만의 답을 찾는 여정이 철학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결국은 철학은 우리들 삶의 과정이며 목적을 고민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일률적인 형식이나 내용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한다. 텍스트의 형식뿐만 아니라 시, 만화, 단편 소설 형태 등을 통해 철학과 비철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예술가의 행위와 철학자의 행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한다. 이런 화두들이 책머리에 소개된 후 철학적 주제별로 글들이 모여있다. ‘자연과 문화’, ‘의식, 무의식, 주체’, ‘언어, 의사소통’, ‘시간, 존재, 죽음’, ‘기술’, ‘예술과 아름다움’, ‘이성과 감성’, ‘의견, 지식, 진리’, ‘논리와 방법’, ‘신화, 과학, 철학’ 등 열 개의 주제가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이 한 개 혹은 여러 개 모여있다. 글의 형식은 앞서 설명한 대로 전통적인 철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주제를 해명하기 위한 다양하고 신선한 시도들이 선보인다. 시, 사진, 만화 등 예술의 다양한 형태가 동원된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가 예술가의 것이든 철학자의 것이든 그 고민의 깊이와 표현의 방법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어가 모든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인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텍스트에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화가, 작가, 교사, 유전학자, 철학교수, 연출가, 번역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모았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고 소략하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바칼로레아’를 이해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제시하는 문제점의 개선 방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에 선보이는 다양한 형식과 자유분방한 내용들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습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칼로레아를 위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모두 대학 입학 자격 철학 시험에서 제시되는 것들이지만 시험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형식과 조건들로 가득하다. 철학가의 사상과 이론을 암기하는 것은 죽은 철학이다. 살아가면서 철학에 대한 욕구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낡아빠진 형식에 대한 도전, 기발하고 독창적인 방식, 세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이 책의 지향점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바칼로레아의 주제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논술 주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토론하며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주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실제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과 거리가 먼 시험용 논술 대신 늘 생각하며 토론하고 책 속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대학 입시 논술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책읽기와 글쓰기가 곧 철학이며 삶의 한 방법임을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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