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습니다 - 나를 탐험하는 방법 청소년을 위한 세상읽기 프로젝트 Why Not? 6
마르틴 라퐁 지음, 파스칼 르메트르 그림, 신성림 옮김 / 개마고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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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앞세운 책들은 독자들에게 주목을 끌기 쉽다. 막연하게 청소년이 아니라 열일곱이나 스물 혹은 서른이나 마흔을 내세운 책들은 보다 구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지금-여기 바로 나의 문제를 진단하거나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특정한 시기에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현재가 중요하다.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든 미래든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미친 영향과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는 뜻이다.

 

철학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철학자들의 먼지 묻은 책상 위에 놓인 책도 좋고 대중적인 철학서도 좋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삶의 방향과 목적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어려운 개념서를 일반인들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는 없다. 자발적인 모임이나 각종 아카데미를 찾아다니며 강의를 듣는 방법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중적인 철학서를 뒤적인다. 내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책,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책, 내 앎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책…….

 

한겨레신문 다음 주제가 철학이다. 분야별로 네댓 개 주제를 정해 글을 쓰다 보니 따로 또 같이 묶일 수 있는 주제의 책들을 찾고 읽기가 쉽지 않다. 유사성과 차별성을 통해 책의 특징을 드러내고 주제를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책들이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읽은 책과 비어있는 공간들을 메울 수 있는 책들을 선별해서 읽는 일이 쉽지 않다. 요즘은 열심히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어울릴 만한 철학서를 추리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은 책 몇 권을 정리한다. 마르틴 라퐁의 나를 찾습니다, 김성우의 스무 살에 만난 철학 멘토, 안광복의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 그것이다.

 

, 중학생 정도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나를 찾습니다는 재미있는 그림이 곁들여져 쉽게 읽힌다. 짧은 분량과 친근한 그림으로 독자들을 편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지만 내용은 그렇게 쉽게 풀어내지 못한 단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자기를 아는 방법, 알 권리 등 3부로 나누어져 있지만 소크라테스, 몽테뉴 등 철학자들의 개념과 이론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쉽고 단순하다고 볼 수만은 없는 책이다. ‘why not?’ 시리즈 중 여섯 번째로 나온 이 책은 철학의 시작인 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고 삶의 출발이다. 나이, 성별, 고향, 학교, 직업, 재산, 지역이 나를 말해줄까. 나는 누구일까. 하루에도 수없이 타인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울 질문일까.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에 대해 말해보라. 어쩌면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고민이 철학의 시작은 아닐까.

 

그에 비해 스무 살에 만난 철학 멘토는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사르트르와 푸코, 니체와 하이데거, 베버와 헤겔, 마르크스와 롤스가 런닝 파트너로 달린다. 김성우는 각 철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사상적 토대를 설명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며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두 명의 철학자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 이해하는 방법은 어떤 분야에서도 자주 사용하지만 그만큼 유용하다. 인류의 오래된 지혜를 전해주는 철학의 고전들을 대신 읽어주는 이 책은 철학적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 내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광복의 열일곱 살의 인생론은 열다섯 개의 주제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부딪치는 고민과 자신의 경험을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을 떠올려 보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주체적 생각과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라캉의 말대로 남이 가진 것이나 부러워하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철학자를 몰라도 좋고 철학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좋다. 문제는 삶의 목적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만의 철학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만큼 복잡한 세상이다. 김훈은 신념이 강한 자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이 아니라 의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질문 세상에 대한 의문들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삶은 아닐까. 가볍지만 꾸준히 생각도 연습이 필요하다. 철학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손 내밀고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120221-01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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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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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리쾨르가 갈파했듯이, 하나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존재가능성을 찾는 일입니다. ‘텍스트 앞에서의 자기 이해를 얻는 것이지요. 그것은 텍스트를 향해 자신의 고유하고 한정된 이해 능력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앞에 겸허히 나서는 일입니다. 그럼으로써 텍스트에서 더 넓어진 자기를 얻는 것입니다. - 10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본 적이 있는가. 햇빛에 반짝이는 감청색 바다와 수평선,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촌, 밤바다의 별똥별과 부서지는 파도……. 영상매체가 주는 감동은 문자 언어와 사뭇 다르다.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용 우체부 마리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칠레 출신 작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 한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내는 영상이 환상적이었다.

 

이 바닷가에 사는 청년 마리오는 시인을 만나 은유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시를 가슴에 품게 되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는 힘이 세다. 이 영화는 결국 네루다도 마리오도 아닌 가 주인공인 셈이다.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며 어떤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학창시절에 배운 밑줄 쫙~’이나 참고서의 깨알 같은 해석이 우리를 시에서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 시를 읽지 않고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라고 철학자 김용규는 말한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연작으로 보이는 제목의 철학카페에서 시읽기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수식이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알도와 떠도는 사원, 다니를 통해 그런 명성을 얻었다고 하지만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전달하는 문학을 통해 독자들을 사로잡지 않더라도 설득의 논리학이나 영화관 옆 철학카페등으로 이미 대중과의 소통을 지속해 온 저자의 신작은 이름만으로도 믿고 읽을 만하다.

 

최근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비교하며 읽는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비교가 능사는 아니나 각각의 빛깔과 특징이 뚜렷한 철학자들의 대중과의 만남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깊이와 넓이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문화읽기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철학은 할 일이 많고 나름의 영역을 확보한 철학자는 많지 않다. 게다가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대중적인 철학자와 동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철학카페에서 시읽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재미있다. 하나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하나의 주제를 편안하게 풀어내고 소리 없이 밀고 나가는 힘은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책장의 속도로 감지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재미있게 빠져들었다면 그 능력은 증명되는 셈이다. 또 하나는 시에 대한 애정과 시를 해석하는 깊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분석주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김용규는 가슴으로 받아들인 시를 친절하고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철학과 시의 만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자가 시를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문제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책이다.

 

베아트리스를 온통 뒤흔들어 마리오를 사랑하게 만든 시의 기본적인 힘은 메타포(은유)’. 봄날, 서점에서 시집을 안 사면 뭘 사느냐고 묻는 김용규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맞춤한 이 책은 저자의 바람대로 젊은이여, 시를 읽자고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승자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에서부터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거쳐 신경림의 을 지나 진은영의 ‘70년대과 오규원의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에 이른다. 김수영을 비롯해 김혜순, 정현종, 강은교, 마종기의 시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를 통해 에리히 프롬부터 들뢰즈까지 수많은 철학자를 만나게 되는 책이다. 마치 화려한 백화점에 진열해 놓은 명품들만 모아 놓아 눈이 부실 정도다. 자칫 시적 허영(이런 말이 성립될지 모르겠으나)에 들뜬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성찬이 될 것이다. 기막힌 뷔페에서 여유있게 즐기는 만찬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수동적으로 남이 읽어주는 시를 즐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스스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평생 시심 가득한, 메타포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학은 슬픔의 미학이다. 기쁘고 행복할 때 시집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다. 슬프고 외로울 때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었을 때 수천 년간 고민해 온 철학자들의 고민만큼이나 시인은 우리에게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풀어놓고 타인과의 관계, 사물의 본질,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언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세계, 리듬이 전해주는 보이지 않는 울림까지 읽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독자가 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시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새롭게 바꿔놓는 위대한 일을 수행합니다. - 53

 

12021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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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묻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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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Slow it down

속도를 늦춰요

 

Make it stop

그리고 멈춰요

 

Or else my heart is going to pop

안그러면 내 심장이 터져버릴거예요

 

`Cause it`s too much

왜냐하면 너무나

 

Yeah, it`s a lot to be something I`m not

그래요 그건 너무 내가 아닌게 되잖아요

 

I`m a fool

난 바보에요

 

out of love

사랑에서

 

`Cause I just can`t get enough

충분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예요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알아요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The sun is hot In the sky

하늘의 태양은 뜨거워요

 

Just like a giant spotlight

마치 큰 스포트라이트처럼

 

The people follow the sign

사람들은 표지판을 따라가죠

 

And synchronize in time

동시에 말이죠

 

It`s a joke Nobody knows

이건 우스운 일이에요 아무도 모르죠

 

They`ve got a ticket to that show

그들이 그 쇼의 티켓을 가졌단걸요

 

Yeah

...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에요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알아요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Just enjoy the show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예요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난 알아요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Lenka‘The show’가 아니라 영화 <머니볼(moneyball)>에서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딸(캐리스 도시)이 부른 ‘The show’를 잊을 수가 없다. 간결한 기타 소리, 함께 맑은 눈동자, 간결한 기타 연주 그리고 감정이 배제된 덤덤한 목소리가 남긴 여운이 길다. 좋은 선수는 다른 구단에 죄다 빼앗기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 오클랜드 애슬랜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천문학적 스카우트 비용을 거절하고 팀에 남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으로 ‘The show’를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쇼를 즐기라고 인생은 쇼에 불과하다고. 최고의 고교 선수였지만 길을 잃었던 빌리 빈에게 야구는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인생이다. 선수가 아니지만 전대미문의 20연승을 달성하는 과정은 우리들 삶을 의미심장하게 상징한다. 잃어야 얻을 수 있고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와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우리는 때때로 철학에게 묻는다, 삶이 뭐냐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 삶을 묻다는 이 질문에 답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철학자들은 똑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할 뿐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열두 명의 철학 전공자가 우리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책은 짧은 분량이지만 각각의 주제를 깊이 있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대중적인 철학서를 표방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대신 주제에 대한 명쾌하고 정확한 접근으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건강한 욕망, 병든 욕망이라는 주제로 1장을 열어주는 윤구병 선생님의 글은 삶의 본질과 바탕인 생명과 공동체적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2장부터는 디지철 시대의 소통과 관계 맺기, 사랑과 결혼과 가족, 다문화, 소외, 자유, 상품 생산과 소비, 대중문화, 환경과 기술 문명, 인권, 종교 등 우리들이 매일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현상과 본질이 뒤섞이고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헤맬 때가 많다. 철학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딴지를 걸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혼란스런 생각들을 정리해 주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준다. 사는 건 그냥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로 말할 수 없고 과정만으로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은 어떤가. 주체적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주체적인 사유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누군가가 엿보기 전에 스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드러냄으로써 타인과 과감하게 상호 소통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관여할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내면의 일기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자신만을 위한 독백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한 심경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이버스페이스 공간에서 일어나는 관계 맺기의 특징이다. - 48

 

철학사상연구회에서 내놓은 책들이 괜찮았다면 주저 없이 선택해도 좋은 책이고 읽은 적이 없다면 직접 확인하고 살펴가며 책을 고르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철학자들의 주저와 고전을 섭렵하기 전이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에 관한 2차 저작들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몇 장이라도 직접 읽어보고 문장의 난이도와 내용, 책 전체의 방향과 목적을 확인하고 읽는 것이 좋다.

 

대부분 교수가 직업인 사람들의 글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기 쉽다. 이도저도 아닌 글을 만날 때의 낭패감을 피하고 싶다면 꼼꼼하게 직접 살피는 것은 최선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적절한 난이도를 유지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보다 대중적이고 편안한 모임과 연구들이 보편화되고 다 함께 읽고 쓰는 일이 일상화될 수 있으려면 조금 덜 일하고 다함께 나누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 김성우는 허용된 자유와 허용되어야 할 자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계몽이 약속한 성숙과 책임과 해방보다는 계몽적 근대성의 본질인 도구적 합리성의 지배와 억압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미래 사회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맹신 하에 본래적 의미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 줄 인권의 민주주의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137

 

가장 절박한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노동법과 노사협상 과정을 가르치는 유럽과 친기업 정책으로 철저하게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떡볶이, 순대까지 군침을 흘리고 3, 4대로 이어지는 재벌들의 파렴치한 자본의 욕망은 끝을 모른다.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도둑질하며 기술개발 의지를 꺾는 대기업을 위축시키지 말라고 공언하는 대통령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한가.

 

철학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밥숟가락 문제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며 나와 너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보는 일차원적 사고 방식으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할 수 없으며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철학이 삶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삶의 영역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가슴이 아닌 머리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120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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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교실
오가와 히토시 지음, 안소현 옮김 / 파이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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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니콜 키드먼의 <래빗 홀>과 브래드 피트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생의 불가해함을 읽어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슬픔에 대한 분노와 허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창동의 <밀양>과 또 다른 관점에서 두 편의 영화를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웰컴 투 마이 하트>는 그 슬픔에 대한 미국식 해법과 위로를 보여준다. 네 편의 영화는 단순히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관점이 아니라 죽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행위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철학의 시작이다. 그것이 생물학적 죽음이든 <자전거 탄 소년>의 시릴처럼 이별과 부재로 상징되는 존재론적 죽음이든 말이다.

 

오가와 히토시는 철학의 교실에서 죽은 철학자들을 교실로 호출한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3명과 30대 미혼 직장인 그리고 40대 초반 주부에게 철학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를 생각해 보자. 첫 시간에 등장하는 하이데거. ‘죽음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핵심을 설명한다. 청중은 고교생과 직장인과 주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자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형식을 갖춘 책이라면 난이도와 깊이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중요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 마지막 열 네 번째 시간에는 저자인 오가와 선생인 등장한다. 전체 열 네 개의 강좌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헤겔, 칸트, 퐁티, 레비나스, 아렌트, 롤스, 플라톤, 알랭, 푸코, 마르크스, 사르트르, 니체가 등장한다.

 

이들이 무작위로 호출당한 것은 아니다.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철학교실에서 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설명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영화 <웰컴 투 마이 하트>에서 말로리는 더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하이데거는 첫 시간에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삶입니다.’라고 말한다. 삶은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을 이야기하는 헤겔, ‘이성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칸트, ‘고민을 이야기하는 메를로 퐁티……. 한 시간에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며 그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도식화 시켜놓은 메모는 독자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관념적일 수 있는 철학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유의 흔적들을 몇마디 개념어와 화살표로 정리하는 것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철학이 막연하게 어렵거나 두렵다고 느끼는 독자에겐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 세운 핵심 요약집은 아니다. 간략한 분량이지만 핵심적인 내용과 개념들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권도 읽지 못한 철학자도 있지만 책을 몇 권 읽은 철학자의 강의는 알기 쉽고 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헤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개인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국가는 늘 국민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55

 

이 책이 장점 중 하나는 저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이지만 교실에 둘러앉아 철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느낌이다. 딱딱한 교실이 아니라 철학 카페로 설정했다면 조금 더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겠지만 어쨌든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고교생 다운 질문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사무의 이야기가 생기를 불어넣는다. 일장적인 강의가 아니라 편안한 대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토론 수업을 하는 기분이 든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문득문득 라는 질문을 한다. 반복되는 생활, 지루한 업무, 하기 싫은 일들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기도 한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런지 질문하고,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배려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플라톤이 들려주는 연애이야기, 니체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반복되는 노동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노동은 살아가기 위한 자연적인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음식을 만들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른바 생계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입니다. 이에 비해 일은 비자연적인 활동을 가리킵니다. 일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나 건축물 같은 공작물입니다. - 159

 

그리하여 다람쥐처럼 맹목적으로 쳇바퀴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탈주를 꿈꿀 수 있는,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식이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와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러셀이 말했듯이 정답을 찾는 대신 끝없이 질문을 던지면 되지 않을까.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 들뢰즈는 탈주를 이야기했습니다. ‘탈주는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그곳에서 일탈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 164

 

 

12013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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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위한 선언
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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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다, , 무엇 때문에 알랭 바디우를 읽고 싶어졌는지. 미루어 짐작컨대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 부분이 좋았거나 그의 철학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거나.

 

철학은 때때로 삶의 도피처가 되거나 가장 실용적이지 못한 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여전히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는 인간 그것이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웅변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닐까. 철학은 그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고민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철학을 밥과 물만큼이나 꼭 필요한 무언가로 여겨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만약 우리가 철학자들을 우리 시대를 위한 독창적이고 확인 가능한 연료를 제시하는 사람들로 이해한다면, 또한 주석가들과 필수 불가결한 원로들, 공허한 에세이스트들을 무시한다면, 철학자는 열 명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 철학을 위한 선언, ‘가능성, 41

 

철학을 위한 선언사랑 예찬을 연달아 읽으면서도 1989년과 2009년의 사이만큼이나 철학과 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20년의 시차를 둔 책들이지만 문제적 철학자의 생각은 낯설지 않았다. 두 책의 내용과 성격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철학의 방법과 태도가 철학을 위한 선언이전만큼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의 태도와 방법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고 사회적 상황 등 외적인 조건들이 주는 충격도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철학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와 관련된] 정세를, 다시 말해 진리들의 사유 가능한 결합(conjonction)을 발언하는 것이다. 철학은 시대의 균열에 대해 사유하고, 자신을 조건 짓는 것을 반성적으로 비틀기 때문에, 대체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조건에 의해 지탱한다. - 철학을 위한 선언, ‘조건들’, 58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서용순의 해제가 우리를 먼저 기다린다. 바디우 철학의 흐름과 철학을 위한 선언의 지위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는 이 글은 본문을 위한 에피타이저로 적절하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바디우의 지적 연대기를 그의 저작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도움이 될 듯하다. 바디우는 사르트르와 알튀세르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68혁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알튀세르와 결별하고 마오주의에 경도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70년대의 마오주의를 거쳐 바디우의 철학을 가능케한 존재와 사건은 그의 주저가 된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담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바로 철학을 위한 선언이다. 이 책은 철학의 종말 운운하던 당대에 던져진 일종의 도발이다. 어찌 보면 생뚱맞은 제목이다. 모든 선언은 도발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바디우는 수학, 정치, 예술, 사랑등 네 가지를 진리 생산의 절차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 예찬은 그를 이해하는 아니, ‘사랑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이 된다.

 

사랑은 만남이라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둘에 대한 진리의 생산이다.’(철학을 위한 선언, ‘사건들’, 123)는 정의는 사랑에 대한 시각이기 전에 철학에 대한 관심이다. 세상에 진리는 존재하는가. 바디우는 모든 진리는 대상이 없다.’(철학을 위한 선언, ‘문제들’, 134)는 말로 답을 대신하다. 주체와 대상에 대한 철학의 오래된 논쟁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결국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엇이거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사랑이란 만남을 넘어서 사랑이 기초 짓는 순수한 둘에 대해 충실하다고 선언하고, 남성과 여성이 있다는 유적 진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철학은 오늘날 유적인 것 그 자체에 대한 사유이다. 그것은 시작되고 있고, 시작되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과거의 어두움처럼, 정체 모를 화려함이 펼쳐지리라.' - 철학을 위한 선언, ‘유적인 것’, 158

 

책의 말미에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바디우는 20년 만에 사랑 예찬을 내 놓는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아르튀르 랭보,지옥에서 보낸 한 철, ‘착란’)라고 랭보를 앞세운 채. 바디우는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는 자는 철학이 무엇인지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여 철학에서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웅변한다. 한마디로 사랑을 모르는 자 철학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선언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예컨대, 보험 계약서의 안전과 제한된 쾌락이 가져다주는 안락이라는, 사랑의 두 가지 정적(政敵)을 발견하게 됩니다. - 사랑 예찬, ‘위협받는 사랑’, 19

 

사랑은 철학뿐만 아니라 진리와 정치, 예술과도 연애를 한다. 안전과 안락이라는 정적을 물리치고서.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연이나 대담을 엮어낸 책의 단점은 전체적인 구성이 탄탄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부분에 매달리기 쉽다는 점이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질문자의 의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디우의 사랑이야기는 세계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는가. “세계는 사실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사랑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혁신 속에서 취해져야만 할 것입니다. 안전과 안락에 대항하여 위험과 모험을 다시 창안해야만 합니다.”(사랑 예찬, ‘위협받는 사랑’, 20)

 

섹스에서 당신은 타자라는 매개를 통해 결과적으로 당신 자신과 관계를 맺게 될 뿐입니다. 타자는 당신이 쾌락의 실재를 발견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랑 속의 타자라는 매개는 그 자체로 가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만남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를 있는 그대로 당신과 함께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은 타자를 공략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섹스의 실재에 관한 상상적 그림일 뿐이라는, 정말이지 진부할 뿐인 그런 개념보다 훨씬 더 심오한 개념적 접근에 해당됩니다. - 사랑 예찬, ‘철학자들과 사랑’, 29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저는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는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됩니다. - 사랑 예찬, ‘결론’, 113

 

사랑에 관한 한 사람들은 모두 철학자가 아닌가. 철학자가 감히 사랑을 논하다니!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사랑만큼은 철학자에게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타자에 대한 사랑은 의 고독으로부터 촉발된 공격이고 도전이다.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독한 존재들의 허탈한 몸부림은 아닌지. 그 최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굳은 신념은 아닌지. 옮긴이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일, 그것은 결핍을 끌어안은 그 상태 그대로 삶을 살아나가는 자그마한 경험들, 시련과 위험을 삶의 조건으로 삼아 내 경험과 타자의 경험을 매일 그 길 위에 포개놓으려는 자그마한 노력은 아닐까? - 조재룡, ‘옮김이의 말’, 136

 

결핍을 끌어안고 길 위에 포개놓으려는 욕망과의 시간차. 철학을 위한 선언의 번역을 맡은 서용순은 사랑 예찬의 해제에서 바디우의 사랑을 이렇게 요약한다. 사랑은 이다. 어떤 알레고리로 을 사용했든지 그 의미들의 차이를 헤집어 내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사랑에 대한 바디우의 사유는 을 견지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 ‘의 지속을 사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디우의 철학이 요구하는 사랑에 대한 성찰이리라. - 서용순, ‘바디우의 철학과 오늘날의 사랑’, 165

 

 

20120118-005,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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