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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21세기 - 3 - 완결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현실의 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자괴감. 하루 이틀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낭패감.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발딛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과연 고전이 주는 지혜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善行無轍迹, 잘 가는 자는 자취를 남기지 아니하고,
善言無瑕謫, 잘 하는 말은 흠을 남기지 아니한다.
善數不用籌策, 잘 헤아리는 자는 주산을 쓰지 아니하고,
善閉無關楗而不可開, 잘 닫는 자는 빗장을 쓰지 않는데도 열 수가 없다.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잘 맺는 자는 끈으로 매지 않는데도 풀 수가 없다.
- 27장
고수의 세계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는 공통점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동작과 입으로 하는 말과 사유의 흐름에 막힘이 없고 자연스럽다. 하수는 고달프다. 시간과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더욱 힘들어진다. 부단한 극기의 과정과 대상에 대한 열정만이 그러한 경지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완벽주의에 대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잘 하는 말은 흠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흠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은 논쟁적인 장면에서는 불가능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다.
樸散則爲器, 통나무에 끌질을 하면 온갖 그릇이 생겨난다.
聖人用之, 則爲官長. 성인은 이러한 이치를 터득하여 세속적 다스림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故大制不割. 그러므로 위대한 다스림은 자름이 없는 것이다.
- 28장
그릇의 효용은 비어있는 공간에서 비롯된다. 깍고 다듬고 파내어 비어진 공간만큼 그 그릇의 가치는 인정받는다. 비워야 얻을 수 있는 지극히 자명한 이치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온전한 모습 그대로 끊임없이 이기적 욕망을 드러내는 자화상을 보는 것같아 부끄럽다. 정현종 시인의 시 <잃어야 얻는다>를 읽다가 두고 두고 인용했던 기억이 새롭다. 양손에 떡을 쥐고 떡이 무겁다고 불평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道常無名. 도는 늘 이름이 없다.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나무는 비록 작지만 하늘 아래 아무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다.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제후 제왕이 이 통나무를 잘 지킨다면 만물이 스스로 질서지워질 것이다.
-32장
이름을 부르는 순간 모든 것들은 규정된다.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노자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통나무와 이름은 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세상과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과연 삶의 태도와 가치를 바꿀 수 있을까? 스스로 그러하다고 생각했으나 아직도 멀었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고미숙의 선언대로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知人者智, 自知者明. 타인을 아는 자를 지혜롭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아는 자야말로 밝은 것이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타인을 이기는 자를 힘세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야말로 강한 것이다.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족함을 아는 자래야 부한 것이요, 행함을 관철하는 자래야 뜻이 있는 것이다.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바른 자리를 잃지 않는 자래야 오래 가는 것이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자래야 수하다 할 것이다.
-33장
이 세상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자신이다. 가학적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지나쳐도 좋지 않다. 과연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의 한계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숭산 스님의 말처럼 ‘오직 모를 뿐!’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는 늘상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아니함이 없다.
-37장
노자의 ‘道經’ 37장은 이렇게 끝이 난다. 38장부터 81장까지의 ‘㥁經’은 도경의 깊은 이해만으로도 충분히 그 경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도올의 말을 믿어야 할 것이다. ‘道’라는 것이 대체 뭐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가. 그 깊고 깊은 사유의 흐름을 꼼꼼히 따라가며 도올의 도움을 받았지만 암흑 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불빛도 없다. 현실에서 찾아지지 않는 ‘길’에 대한 아쉬움과 스스로에 대한 미련스러움에 화가 나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이치와 ‘道’의 경지는 내 몫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들 모두의 곁에 함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렴풋한 느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성적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렇게 어둠이 창 밖에 당도해 버리고 나면 반드시 빛이 있기 마련이다.
06111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