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무를 묻는다 - 살아가면서 읽는 사회 교과서
이한 지음 / 뜨인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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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금지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사회면을 오르내린다. 부작용에 대한 특정 기사와 반대의 목소리에 대한 기사들이 주류를 이룬다. 학생들의 머리 길이와 교육적 효과, 치마 길이와 성적, 체벌과 사제 간의 관계에 대한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분석도 없다.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담론은 기대할 수도 없음은 물론이다.

영국의 토마스 페인은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플랭클린 조차 독립에 반대하던 시대에 군주제에 반대하며 민주적 공화정이 ‘상식’임을 외쳤다. 『상식, 인권』(박홍규 옮김, 필맥)을 읽다가 우리에게 ‘상식’은 무엇일까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체벌, 머리카락과 치마길이, 강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적 특수성과 문화적 차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상식적인 변화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한 줄로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배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질서와 규칙을 내면화한다는 명목으로 인권과 상식은 버려야하고 경쟁과 이기심은 극대화된다. 대한민국의 학교 ‘즐거운 곳’일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은 나의 오랜 의문이기도 하다. 방법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우선 미성숙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동등한 인격체로 학생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물론 학생들도 교사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전제해야 한다. 상급 학교 진학률과 취업률로 학교와 교사가 평가되는 한 상식도 인권도 멀어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똑같은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마치 군사작전이나 전쟁을 방불케하는 교육과정이 실현될 뿐이다. 국영수 중심의 ‘개정 2009 교육과정’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문제제기가 부족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제 학교가 아니라 ‘효율성’과 ‘성과’의 기준으로 평가받고 실용적 목적으로 학문에 접근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전인격적 인간 육성’ 혹은 ‘글로벌 시대의 리더’가 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의 인성지도를 요구한다. 사회와 학부모의 학교에 대한 비판과 기대만큼 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지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학생들은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소홀히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내면화된 논리일 수도 있고, 본능적으로 인간이 가진 속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정과 학교에서 진정한 ‘사람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고민하게 하느냐를 돌아보자. ‘살아가면서 읽는 사회 교과서’라는 부제를 단 『너의 의무를 묻는다』는 권리가 인권(인간의 권리)이 아니라 ‘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주어지는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정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의무는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자는 책이다.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성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짜 의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이익 추구나 강제성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의무에 대해 설명한다. 사람은 수단이 아니라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의 진지함에서부터 ‘정의’에 대한 이론과 ‘시민 불복종’에 대한 기준 등 공동체 안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마땅한 의무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한다. 전체 7장에 걸쳐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 이 책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사회교과서’라는 부제를 달아주고 싶다.

흔히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꽤나 고차원적인 철학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에서 출발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외부적인 영향이나 이기적인 욕심에서 벗어나 보편타당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상식에서 그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완벽하게 이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비판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가치 판단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타인의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고 보편타당한 상식에서 벗어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들이 누구인지 눈밝게 감시하고 다함께 ‘상식’의 힘을 믿어야 한다. 자신의 ‘의무’를 돌아보고 변화를 위한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중요한 것은 다수의 건강한 상식과 의무의 이행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앞서 바로 당신의 ‘의무’는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로부터 우리들의 진정한 ‘권리’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우리들의 ‘의무’와 ‘권리’는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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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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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은 삶에 대해 새로운 질문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가 더 많아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질문과 함께, 질문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인간은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학생들과 함께 나눈 위로이자 희망이며 격려이다. - P. 26쪽, 들어가는 글 ‘너흰 괜찮아’ 중에서

매우 인상적인 서문이다. 정치가 아닌 학문의 영역은 정답이 아니라 영원히 질문을 던지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사회학의 관점에서 일반적인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측하기도 힘들고 수많은 변수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는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할 방법도 의지도 없다. 고등학교는 대입 준비를 위한 전략을 마련하느라 경쟁을 벌이고 있고, 대학은 취업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학생들의 스펙 쌓기 경연장이 되었다.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문제의 해법은 제각각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입장 차이만큼이나 20대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다.

곧 수능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수능을 치르는 순간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고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수험이 루저가 된다. 서울대학교 법대와 의대를 정점으로 모든 수험생은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모래알로 편입된다는 의미이다. 칼날처럼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면 이 문제를 간단하게 바라볼 수가 없다. 얽히고 꼬인 사슬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원인과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지만 서로 다른 기득권, 계층 간의 이익, 이기적 욕망들이 뒤엉킨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를 풍미한 것은 신자유주의 질서와 세계화의 바람이 몰고 온 거대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풍성한 비판과 논란이 있었지만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세대의 명칭만큼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대한민국 20대의 자화상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무섭기까지하다.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일은 슬픔과 연민을 넘어선 자리에 분석과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십대와 달리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으며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모르는 20대를 다시 보자. 사회,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거나 정규직으로 취업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니고 ‘잉여’라는 말로 불리는 세대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른바 ‘원세대’(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와 ‘동덕여대’에서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대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저자의 분석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현재 대학과 대학생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2부에서는 정치와 민주주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혁명에 냉소하고 팔리기 위해 나를 전시하고 열정과 삽질 사이에서 고민하며 돈은 자유라고 외치는 세대의 아픔은 어떤가. 성장 신화에 매몰된 모습은 우리들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의 모습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속물들이 들끓는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도덕이 모든 비판과 단죄의 잣대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속물들이야말로 진실로 도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 P. 95

학교는 이미 정글과 전쟁터를 방불한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1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루저가 되는 세상, 마치 정글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과 억압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감정노동의 공동체가 되어버린 가족 등 저자가 20대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말하는 모든 부분이 너무 익숙해서 낯설다. 이 책은 이렇게 살아 숨쉬는 사회학 교과서로 읽힌다.

특히, ‘사랑, 비싸다’라는 작은 제목이 아프게 들어온다. 데이트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서술된다. 대학생들의 고백과 현재 20대들의 모습이 겹친다. 낭만적 사랑은 꿈도 꿀 수 없고 이미 사랑조차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에게 기성세대가 해 줄 말이 있을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저자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용기’를 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등가교환’을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과거의 사랑이 손해를 감수하고 일방적으로 퍼줌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면, 지금은 등가교환을 통하여 서로의 곤궁함을 배려한다. 등가교환이야말로 동등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형식이다. - P. 160

대학의 서열화, 고용없는 성장, 승자독식, 비정규직, 정치적 냉소, 가족 공동체 등 이 책에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지나치게 나이브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현실 그대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아주 소중한 책을 한 권 세상에 소개하고 있다. 시대를 읽어내는 통렬함은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할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과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의 문제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고민하면서도 해결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누구의 문제인가.

위험을 각오할 용기가 없다면 이 책도 한낱 세태 보고서에 끝날 위험성을 내포한다. 들어가는 글에서 ‘너희 괜찮아’라고 말한 저자의 의도는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감상적 언사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20대에게 보내는 격려와 공감의 메시지여야 한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이제 우리는 한발 내디뎌 다함께 걸어갈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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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 학벌없는 사회
학벌없는사회 외 지음 / 메이데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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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목)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시행하는 수능 모의평가를 치렀다. 11월 18일에는 한국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인 수능이 기다리고 있다. 이십년의 삶과 남은 생에 대한 낙인이 되어버릴 단 한 번의 시험. 이 시험 성적이 대학과 전공을 결정하고 비이성적인 대한민국 학벌사회의 시작을 알린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수능이 정점이다. 수능이 중요한 이유는 대학의 서열화 때문이며 대학의 서열화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포기하고 학벌위주의 사회구조가 탄탄하게 기득권을 유지해 온 탓이다. OECD국가 중 유일하게 전국민의 85%가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사회적 인식, 취업, 임금, 결혼 등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전 생애를 걸쳐 개인의 노력과 능력여하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학벌에 의해 인생의 상당부분이 결정되는 현상에 대해 이제 사람들은 무감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오로지 공부 또 공부를 외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한도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비교적 성적이 우수하여 작년에 모 여대 신방과에 입학해서 즐겁게 대학생활을 시작한 한 여학생이 수능원서를 쓰고 잠시 들렀다. 1학기를 마치고 휴학했으며 이번에 수능을 다시 보는 이유가 학교를 바꾸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멍하니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똑똑하고 밝은 성격이었던 그 아이는 반수를 하는 특별한 이유도 목적도 없다. 전공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할 일도 많고 벌써 방송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즐겁게 한 학기를 마쳤다고 했다. 읽고 있던 ‘학벌없는사회’의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는 책을 가져와 보여주자. 손사레를 친다. ‘선생님 또 시작이세요’라며 웃는다. 그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뒤로 한 채 교무실을 떠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현실을 인정해라, 그래봐야 나만 손해다, 당신 자식 문제면 달라진다, 서울대 콤플렉스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학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과연 그런가. 국민들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학을 못나와서 무식하고 능력이 부족했다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플라톤의 말대로 이상국가를 실현할 수 있었던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에게 IMF를 선물했다. 논리의 비약일 수 있겠지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멍들게 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확인하면서 21세기를 맞았지만 현실은, 사람들의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근대 사회에서 출생이라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간의 신분이 정해지듯이, 현대 한국 사회는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기제로 신분이 나뉜다. 신분의 형성이 일회적이지 다차多次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학벌문제는 상당히 전근대적인 양상을 띤다. - P. 186

김상봉 교수를 처음 만난 책 『도덕교육의 파시즘』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대한민국의 학교 그리고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자체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책이었다. 그가 주체가 되어 만든 ‘학벌없는사회’가 외치는 구호는 대충 사는 사회, 하향 평준화된 사회, 노력과 경쟁이 없는 무기력한 사회가 아니다. 과정과 절차, 능력과 기회에 따라 언제든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상식과 합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68 혁명이후 대학에 번호를 붙여 대학의 서열화를 무너뜨린 장본인은 고등학생들이었다. 혁명적 변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대한민국의 카스트제도가 무너질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이 책은 제도권 학교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이고 황폐한 입시경쟁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떠나는 아이들이 매년 7만명이 넘는 나라 대한민국.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오늘도 하루에 평균 1.8명의 청소년이 자살하는 나라 대한민국. 오늘은 또 누가 아파트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는가.

지금 이대로의 ‘학교’를 버리고 점수와 가격 입시경쟁과 시장경쟁, 졸업장과 상표를 혼동하는 나라에서 교육의 시장화 정책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의 논리 위에 교육을 편입시키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정상인가. 오로지 ‘내 자식’만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아무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교육의 천국, 공교육의 붕괴, 이 모두 문제의 정점에는 학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벌은 현대판 신분제이고, 학벌타파는 실제상 권력투쟁과도 통한다. 달리 말하면, 학벌은 특정 학벌의 인맥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점수가 곧 인간의 능력’이라는 무지막지한 폭력적 허위의식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점수, 그것도 수능 점수,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소수점까지도 환산되는, 그리고 그 점수의 공개 여부가 문제가 되는, 나아가 그것 때문에 법정공방이 벌어지는, 이런 해괴한 일들은 모두 학벌 이데올로기에 침윤해 있는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 P. 195

교육은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혹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이며 삶의 본질이고 목표이다. 학벌을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간단히 풀릴 문제가 아니다. 대학의 서열화, 수능 점수 위주의 신입생 선발, 학벌위주의 채용관행 등 어그러진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가장 시급한 우리사회의 질병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꿈 꿀 권리조차 빼앗긴 것 같다. 아이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치열한 경쟁의식, 나눔과 배려가 결여된 성공에 대한 열망은 어른들의 자의식이 반영된 거울이다.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지만 행복해지는 법도 가르쳐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주는 것이 우리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이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대한민국 1%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루저가 되어야 하는 무한 경쟁시대, ‘학벌없는사회’는 행복한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이것은 수월성 교육의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출발이고 지속적인 노력과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공정한 사회를 전제로 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 책은 즐겁고 행복한 공부,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명한 사람들은 저 먼 곳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행복을 즐기고 누리라고 가르친다.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를 포기하고 있다. 권력을 잡아야, 돈을 많이 모아야 우리는 자신과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OECD국가들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지만 가장 불안하고 위험해서 교통사고율이나 암 발생률이 높고 자살율도 높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 P. 207


100905-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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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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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타인이 느끼는 고통은 오로지 ‘유추’에 의해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내 손톱 밑에 가시 하나가 다른 사람의 암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김명민의 고통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 온전히 내가 그 고통을 느껴 볼 수 있거나 공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극단적 표현이다. 물론 나의 고통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지극히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이지만.

살다보면 눈물 나는 일들이 많다. 기뻐도 슬퍼도 흘리는 눈물은 가장 인간적이고 애틋한 정서 표현이다. 사람에 따라 눈물이 많은 사람이 있고 눈물이 없는 사람이 있다. 눈물의 양이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상황이 있고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울기에는 좀 애매한 상황도 있다.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이다. 만화가 지망생을 중심으로 입시미술을 준비하는 학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틱한 설정이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일상 속의 아픔을 담고 있다. 세상을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는 것이 정확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이 만화에는 찌질한 인생들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 ‘원빈’은 꽃미남 배우 원빈과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인물이다. ‘불가촉 루저’라는 풍자적이고 코믹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원빈은 가난해서 만화를 그리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고등학생이다.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는 상황으로 끝나버리는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적이다. 이야기 안에서 꿈을 이루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내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로 시작하는 작가의 말은 만화가 최규석을 짐작케 한다. ‘내가 가진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 만큼을’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자세만으로도 이 만화책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교훈적이고 뻔한 결말을 이야기하는 만화는 아니다.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만화의 가장 큰 미덕은 여전히 재미가 아닐까 싶다. 그 재미가 어떤 종류의 것인가는 다른 이야기지만 이 만화는 10대들의 언어와 일상이 현실감 있게 표현되어 너무 자연스럽게 책장이 넘어간다. 이 책은 키득거리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수채화로 채색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이제 점점 더 심각해지는 88만원 예비 세대를 잘 묘사하고 있다.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펴낸 『십시일반』, 『사이시옷』이나 『내가 살던 용산』을 통해 만화가 더 이상 흥미 위주의 오락물로 치부할 수 없는 영역까지 그 폭을 넓혀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울기엔 좀 애매한』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최규석을 처음 만난 것은 『100°C』를 통해서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다룬 만화를 통해 보여줬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도 사람도 100°C가 넘으면 끓어 넘치게 된다. 이 만화의 주인공 원빈은 아직 99°C 쯤 끓고 있는 것 같다. 재수생 류은수는 원빈의 미래이다. 사회적 상황과 개인의 경제적 환경 때문에 꿈을 접어야 하고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시대를 묘사하는 만화를 보아야 하는 현실은 우울하다.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가볍게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그 현실은 결코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없다.

마치 1920년대 단편을 통해 시대의 가난을 보여주었던 단편 작가들처럼 최규석은 21세기 청소년판 빈곤 세대를 다루고 있는 듯하다. 불가촉 루저 원빈은 문진영의 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편의점 알바로 20대를 버텨낼 지도 모른다. 10대든 20대든 전망 없는 미래보다 무서운 것은 ‘자본’의 힘이다. 대학에 입학해도 살인적인 등록금과 생계비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용기를 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않 가거나 못 가거나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주인공 원빈은 가난해서 입학조차 하지 못할 상황이다. 만화는 거기가 끝나버리지만 잔혹한 현실은 계속된다.

제목처럼 좀 애매한 이야기라는 것은 혼자만의 극단적 고통이나 슬픔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아픔이라는 뜻일 게다. 목 놓아 울어버린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털어버릴 수도 없는 복잡한 심정을 작가는 울기에는 좀 애매하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나 사실적인 배경 묘사는 만화를 보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내용과 형식의 적절한 조화가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 줄 것 같다. 개그본능에 충실한 가난한 청춘들의 이야기만 꿈조차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희망’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전해주는 최규석의 만화를 계속 만나고 싶다. 그의 주인공들도 웃거나 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화를 낼 줄도 알았으면 좋겠다.


100815-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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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강수돌 지음 / 지성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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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 불을 땐 것처럼, 바람 한 점 없이,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더운 여름날이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뜨거운 대지를 식혀주듯 시원한 비가 내린다. 자연은 늘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말할 수 없는 뜨거운 욕망과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시간과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다 지나간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조금만 비껴 서 보자. 그것을 객관적 거리라고 해도 좋고 성찰의 시간이라고 해도 좋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아닌가.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저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졸릴 때 잠을 자고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아닌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도시의 생활을 견뎌내는 현대인의 삶은 고달프다. 농촌에서 도시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나는 오늘도 흙냄새 한 번 맡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문명화의 길은 편리와 효율을 선물한 대신 환경을 파괴하고 인위적인 행복을 만들어야 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장 본질적인 삶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방향을 잃고 어둠속을 헤맬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진정한 내 안의 욕망과 희망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큰 비극도 없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저녁에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쯤 있을 것이다. 장일순, 이오덕, 권정생, 윤구병, 전우익, 황대권, 법정, 헬렌과 스콧 니어링 등 맥락없이 떠오르는 이름들이 많다. 강수돌을 처음 만난 것은 『나부터 교육혁명』이라는 책이었다. ‘이웃집 엄마’를 조심해야 내 아이를 바로 키울 수 있다는 인상 깊은 충고가 담긴 책이었다. 경쟁과 타율이 아닌 사랑과 자율로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현실과의 거리감 때문에 많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일중독 벗어나기』,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등의 책을 잇달아 내 놓은 대학교수 강수돌의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는 지금까지 강수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의 책을 시작하는 입문서로 생각해도 좋고, 그의 책들을 읽어 온 사람이라면 그의 생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도 좋다.

노동과 교육과 경제와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것을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강수돌의 이야기는 단순한 책상물림의 사탕발림과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온몸으로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담아 낸 책이 가장 소중하고도 무섭다. 이 책은 그래서 위대한 사상을 담아냈거나 불변의 진리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준다. 2005년 5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며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확인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근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며 아이 셋을 기르고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필자는 거룩한 성자가 아닌 평범하고 소박하게 삶을 경영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깨우치고 얻은 삶의 지혜와 행복은 이 책 구석구석에 잘 녹아있다.

귀틀집을 짓는 과정, 부춛돌식 뒷간을 사용하는 방법, 마을을 지키고 축제를 만들어가는 이장의 모습 등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도 만들어갈 수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동체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 무던히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비슷한 꿈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치열하게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숙명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된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이 보장된 사람의 생각과 거리가 먼 저자는 수많은 기러기 아버지들의 삶과 비교된다. 서당골에 귀틀집을 짓고 정착하는 과정, 땅을 통해 자연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 자연에서 배우는 겸손함,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혜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리는 것은 우리가 대부분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길을 차단한 채 우뚝 솟은 콘크리트 덩어리들 속에서 열섬 효과로 괴로워하는 우리들의 여름을 생각해 보자. 지금 당장 농촌으로 달려가자는 말이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우리들의 하루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우리의 인생이 바뀐다. 죽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실천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어김없이 뼈아픈 충고를 잊지 않고 농사에 비유한다.

유기능 교육은 마치 유기 농법에서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농부의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게 여겨지듯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 충분한지를 핵심으로 삼는다. 조건 없는 사랑, 바로 이것이야말로 모든 유기농 교육에 있어 최고의 밑거름이요, 웃거름이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이 세상 만물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자신의 내면적 욕구나 느낌에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대한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배우게 된다. 반면에 화학농 교육은 다른 사람 눈치 보기, 끊임없는 상대적 비교와 시샘, 타율적 또는 수동적 인간, 강자와의 동일시, 한편에서의 열등감과 다른 편에서의 우월감 조장, 거짓말하기와 변명하기,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태도 등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낸다. 바로 이런 과정 속에서 “마음이 있는 자는 길을 찾지만, 마음이 없는 자는 핑계만 찾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 강수돌,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193쪽

목적과 방향도 없이 부초처럼 떠밀리며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저자는 특별한 삶의 방법을 제시하거나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을 강조한다. 생각한대로 실천하고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현재의 삶을 전복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00805-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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