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나의 선택 실험실 - 선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100가지 심리실험
쉬나 아이엔가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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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피천득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일요일 점심, 자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했을 많은 사람들에게 짬짜면이 추가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선택지가 세 개로 늘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자장면, 짬뽕, 짬짜면 중에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은 인생을 후회의 고통에 빠뜨린다. 그것은 음식뿐 만 아니라 대학의 전공, 직업,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된다. 어쩌면 삶이란 선택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 그때 그걸 선택했다면……’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으리라.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자. 내 인생길을 바꿔 놓은 ‘그것’은 무엇일까?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을 것 같은 우리 인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모순투성이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서 투자를 결정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 같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 등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경제 행위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심리학은 말할 것도 없다. 불완전한 인간의 심리를 다룬 『생각의 오류』, 『클루지』, 『거짓말의 진화』, 『가스등 이펙트』 등 수많은 책들이 넘친다. 인간의 마음은 그만큼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쉬나 아이엔가의 『쉬나의 선택 실험실』의 원제는 ‘선택의 예술The art of choosing’이다. ‘선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100가지 심리실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이 책은 실제 다양한 심리 실험을 통해 실제 사례를 보여준다. ‘선택’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가 ‘선택’을 심리학자 이상의 수준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링크』,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나 『체크!체크리스트』의 저자 아툴 가완디가 언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분야가 다른 저자들의 혜안이 빛난다.

이 책도 한국적인 교육풍토나 지적 토양에서는 나오기 힘든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간 경계를 허물고 17살부터 문,이과를 나누는 교육과정을 통합하고 인문학에 새로운 인식과 교양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가 통섭원을 설립하고 이런 학문적 풍토를 바꾸기 위해 노력중이지만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결국 우리 사회도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쉬나 아이엔가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내 선택의 심리, 선택의 기술, 선택의 함정, 선택의 역설을 통해 결국 ‘인생은 선택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선택하는 자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그의 에필로그는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었던 ‘선택’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에 대한 자연스런 결론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음 시간, 다음 해, 또는 그 너머를 살짝 엿보고 거기서 보는 것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아마추어 점쟁이다. - P. 419

우리는 매일매일 선택의 연속인 인생을 산다. 선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인생의 비밀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왜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의존적이고 게으른 천성 탓에 누군가 모든 것을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근대 이전에는 운명론적 세계관이 지배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고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모든 운명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성이 발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선택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누구보다도 즐거운 마음과 올바른 선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만 그 선택의 유혹에 대처하는 방식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제는 개인과 몫이다.

이 책을 통해 사회적 선택이나 집단 선택의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개인의 선택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집단지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목적에 대한 사회적 선택은 특정 위치에 있는 개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이 갖추어진 듯해도 우리가 신경 쓰고 감시하지 않으면 산으로 가는 배를 함께 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선택에서 시작해서 선택으로 끝나는 우리들의 인생을 성찰하고 싶다면 이 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10091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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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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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지 같지만 어디서에도 같지 않은 것은?”

비에 젖은 일요일 오후를 산책하다가 하루에 4시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절대 몰입의 독서를 위한 2시간, 운동을 위한 1시간, 아무것도 안하고 하늘만 쳐다보는 1시간. 노동의 순환 사이클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에 느끼는 아쉬움과 월요일에 대한 부담은 비슷하리라. 하지만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간이 늘 부족한 사람이 있고 시간이 늘 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도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한 가지 일도 못하고 늘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개인의 능력 차원을 넘어 시간에 대한 주관적 개념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수수께끼 하나를 풀어보자.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서 던진 질문이다. 어디든지 동일하지만 어디에서도 다른 것은 질문 자체가 모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 중 하나인 클레아르쿠스는 『수수께끼의 이론』이라는 책에서 질문 놀이인 그리포스(griphos: 수수께끼 게임)를 특히 많이 다루었다고 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다양한 논리들을 거쳐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발전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궤변법의 기술이 고의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며 경멸했다. 어쨌든 이 질문의 정답은 바로 “시간”이다.

겨우 몇 백 년 전만 해도 인간의 삶이 이렇게 바쁘고 번잡스럽지는 않았다. 전근대 사회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동안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살펴보면 가히 혁명에 가깝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문명은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삶도 그만큼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시간의 개념이 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분초 단위의 시간으로 잘게 쪼개진 일상에서 우리의 삶도 그만큼 바빠졌고 여유가 없어졌다. 놀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한 휴식을 취하는 삶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1938년 6월 레이던 대학에서 하위징아가 쓴 이 책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서 ‘놀이’의 개념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많은 말들 중에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위징아는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문명을 이루기 이전 상태 즉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것이 바로 ‘놀이’라는 말이다. 일과 놀이를 구분할 때 그 놀이가 아니라 놀이의 개념은 우리들 삶의 곳곳에 숨어있다는 뜻이다. 하위징아는 놀이의 일반적 특징을 옮긴이 이종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혹은 몰입 행위이다.
2.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다.
3. 그 자체에 목적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意識)을 수반한다.
4. 질서를 창조하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하나의 질서가 된다.
5. 경쟁적 요소, 즉 남보다 뛰어나려는 충동이 강하다.
6. 신성한 의례에서 출발하여 축제를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집단의 안녕과 복지에 봉사한다.

즉 놀이는 자유로운 행위이며 자유 그 자체이다. 이러한 특징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경쟁적 요소이다. 어린이들의 단순한 놀이에 해당하는 파이디아(paidia)와 경기에 해당하는 아곤(agon)이 결합된 의미가 바로 ‘호모 루덴스’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즐거운 경기에 몰입하는 자유로운 행위를 즐겼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하위징아는 12장에 걸쳐 놀이의 본질과 개념과 특징은 물론이고 법률, 전쟁, 시, 철학, 예술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신화 창조나 서양 문명과의 관계를 살핀 후 현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요소로 책을 마무리한다.

이제 고전이 되어버린 다소 딱딱한 문장의 책을 천천히 읽은 것은 김종휘의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는 책을 보다가 한경애의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가 생각났고 하위징아의 원전을 꼼꼼히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2차 저작물들이나 이 책에서 비롯된 다양한 이론과 시각들이 풍성하고 이어졌다. 지금도 인간의 본능에 가장 역행하는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 관한 책을 보다가 이 책이 떠 오른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는 아니 제대로 놀 줄 모르는 많은 어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노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류문명의 역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독자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왜 사는가. 그리고 인간의 모든 행위 속에 내재한 놀이 본능을 어떻게 충족시키며 즐기고 있는가. 아무리 바쁘고 일 속에 파묻혀 사는 듯해도 모든 인간은 늘 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놀이를 만들 줄 알고 경쟁하며 그 안에서 질서를 창조하고 행위 자체에 몰입하기도 하며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놀이가 아닌가. 그렇게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 놀이로 바꿀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과 능동적인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 이제 월요일이다. 또 일주일을 어떻게 놀아볼지 즐거운 고민을 해봐야겠다.

진정한 놀이는 프로파간다를 모른다. 놀이 자체가 그 목적이며 놀이 정신은 행복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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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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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

이 명제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릴 수는 있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30도가 오르내리는 여름날 뙤약볕에 공원을 거닐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는 쉽지 않다. 영화를 보든 밥을 먹는 가까운 곳에 바람을 쐬러가든 돈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자.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모든 행동에 비용이 든다. 지독하고 철저한 자본의 정교한 논리가 숨어 있다.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 쯤 해 보았을 것이다. 영화 <이끼>의 마을이장 천용덕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든 가상의 <매트릭스> 세상이든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한 사람의 꿈속에서나 겨우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셉션>을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도대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시스템을 바꿀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절망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다면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보라. 너무나 익숙해서 공기와 물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없어서는 숨조차 쉴 수 없다고 말하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그것은 과연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고 있는가. 반성적 자기 성찰과 현실에 대한 올곧은 비판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밝은 불빛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부나방이나 집어등을 향해 돌진하는 오징어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한쪽 날개가 불에 타고 있거나 낚시에 걸린 오징어가 된 것은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고 점점 더 소수의 사람만이 행복해지는 시스템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무수한 당근과 채찍질이 반복되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강신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욕망의 집어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인생을 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라캉의 오래된 분석처럼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욕망이 진정한 내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라는 데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처럼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보다 먼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야 하고 남들보다 비싼 물건을 소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자본주의 인생!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소비사회의 물신주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낳았고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기형적인 세상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아니 우리들을 위한 뼈아픈 충고이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상과 짐멜, 보들레르와 벤야민,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유하와 보드리야르를 링 위에 올린다. 당대의 문제적 작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 온 자본주의의 역사 즉 인간 욕망의 역사를 되새김질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 당신은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담보로 끊임없이 현실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극단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르디외가 염려하는 바와 같이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 자본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다음세대로 세습되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고착화된 계급 사회는 계층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며 결국 머지 않아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고,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왔기 때문에 미래가 단순히 장밋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가 펼쳐진 것 같은 착시효과 속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을까. 점점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자본주의적 삶이 어떤 것이고 내 삶은 어떤 목적과 욕망을 가지고 있길래 이다지도 복잡한 것일까.

저자는 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폭력’에 대해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은 아닐까 생각했다. 끝없는 욕망과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반성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권장되어야 하며 그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진지하게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태도와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주목받았던 벤야민과 부르디외 보드리야르의 냉정한 통찰력과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유하와 같은 감각적인 문학가에게 나타난 자본주의적 삶의 징후들을 꼼꼼하게 살펴 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잘 정리된 또 하나의 해설서에 불과하다. 다만 색다른 방식으로 그것들을 비교하고 해석하고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탁월한 노력과 진지한 고민은 어떤 독자에게든 진정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상처로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또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겁니다.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더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 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432쪽


10072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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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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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하늘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당도하기 전의 ‘푸른 시간’은 산책과 명상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나를 돌아보며 내 삶을 성찰하기 좋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면서 상당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삶은 고통이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리석은 자들만이 반대로 상상한다. - 조지 오웰

본질적으로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질까? 조지 오웰의 말에 공감한다고 해서 경험이 풍부하고 똑똑하다는 말은 아니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거나 오로지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생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고통은 객관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통에 대해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아내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라고 하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똑같은 불행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동일한 삶의 무게를 느낀다면 세상 사람들은 불행지수도 같겠지만 행복만큼이나 불행의 모습과 형태는 제각각이다. 그것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우울증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다리가 부러지고 피부에 상처가 난 것처럼 마음이 다치고 죽음만큼의 고통을 느끼는데도 사람들은 ‘우울증’에 대해 간과하기 쉽다. 정신병에 대해 사회적 시선과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한 번씩 지독하게 우울한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실제 우울증에 걸려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의사나 상담가의 조언과 충고보다 실질적이고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수 앳킨슨은 자신이 겪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털어놓는다. 『우울의 심리학』은 바로 이러한 우울증 치료에 관한 치료과정을 밝힌 보고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심각한 질병으로서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것이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저자의 이야기는 매일매일 우리 주변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불행에 관한 보고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속 시간과 깊이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불행과 행복 사이를 오고간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나 불안 그리고 우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일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런 질병인지 최근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용하, 최진실, 이은주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살은 가장 확실하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해결방법이기도 하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암벽등반’에 비유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만하다.


우울증의 원인은 각종 스트레스가 아닐까? 프로이트의 말대로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사이의 간극 때문이거나 욕망의 좌절, 극단적 슬픔 등 다양한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을 알고 잘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고 현실생활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들에게만 유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의외로 많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거나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의외로 흔한 질병에 속하는 것이 우울증이다. 감기를 치료하듯이 약 몇 번 먹고 낫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굳은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완쾌될 수 있는 질병이다. 저자는 바로 이 ‘방법론’에 집중하고 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매우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행동 처방을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론적 접근이나 추상적인 개념 설명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환자는 물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벌컥벌컥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구나 벌컥벌컥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화를 낼 만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목적을 가지고 적절한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에는 우울증과 무관하게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장면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말들이 각 장마다 제시되어 있고 본문에도 인용되어 있다. 특히, ‘화’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화병이 나기도 하고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또 다른 ‘화’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우리는 조그만 일에만 화를 내냐고 물었던 김수영 시인의 말이 떠오른 이유도 개인적 ‘화’가 아니라 사회적 ‘화’를 잘 다스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화든 ‘적절한’ 대상과 목적과 방법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단순히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울화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이 말은 우울증과 화병이 겹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사람은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심약한 상태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소리 없이 찾아 올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자각증상이 있지만 심각성을 알기 어렵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타의에 의해 병원에 가는 병이 우울증이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이 병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암벽등반에 비유했듯이 힘겹고 두렵지만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는 약물치료보다 우선시된다. 화학 성분의 약품이나 지극한 정성과 사랑만으로 부족하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이라도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 『우울의 심리학』은 한번 쯤 자기 점검을 위한 책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슬플 때,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 눈물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에는 뭔가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 말콤 엑스

우울증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도 좋지 않다. 적절한 화는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들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말콤 엑스의 말대로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화를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화는 가난하고 슬프고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화를 내고 산다. 그 화를 겉으로 드러내는지 안으로 삼키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참는다고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표현과 생활의 변화가 우울증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암벽등반의 비법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우울증 환자뿐만 아니라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다. 그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며 때때로 생명을 건 힘겨운 싸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암벽 등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에는 행복하고 부유한 범죄자와 슬프고 가난한데 정직한 사람들이 있다. 선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신이 이러한 것을 허락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수 앳킨슨, <우울의 심리학>,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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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 2011-07-2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좀 우울해서 우울증 극복방법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저도 책은 많이 읽지만 아직 소양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렇게 찾아다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맞는 말이네요. 스스로 극복하지 않는 이상 우울증은 계속 뒤를 따라다닐거에요.
잘보고 갑니다.

sceptic 2011-11-16 23:07   좋아요 0 | URL
이겨내시기 바랍니다...세상이 우울한 고로...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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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시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느니라.”(6장 옹야편) - P. 34 


고전, 어떻게 할 것인가 ; 원전과 2차 저작

  책읽기에도 분산 투자가 필요하다. 신간의 숲을 헤매다 보면 고전을 놓치기 쉽다. 현재를 말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고전은 그윽한 향을 풍긴다. 시간을 견뎌낸 책, 고전은 가장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다. 실용적 목적만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역설적으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 대다수 신간은 고전에 대한 재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으로 전체를 통찰하고 싶다면 일단 고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안전한 책읽기는 검증된 고전만을 골라 읽는 방법이다.

  그러나 고전은 쉽게 도전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견고한 체제와 정교한 내용이 어우러져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 고전이다. 또한 고전은 기본적인 개념에서 촌철살인의 문장 하나에 이르기까지 칼날처럼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는 책을 일컫는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고전으로 수렴된다. 피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고전은 책읽기의 정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한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고전읽기를 통해 얻고 있다면 이미 고수의 길에 접어든 독서가이다.

  먼저 접근 방법을 살펴보자. 철학과 동양 고전의 경우 독학이 어렵다. 원전을 해석하는 것은 일반인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한문 전공자가 아니면 동양 고전의 원문을 읽을 수 없고, 철학 전공자가 아니면 철학적 용어와 개념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2차 저작을 통해 가볍게 몸을 풀고 준비 운동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고전이다. 지난 시대의 책, 어렵고 딱딱한 책,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는 고정 관념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클래식’ 시리즈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배병삼이 풀어 쓴『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는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적절한 2차 저작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시리즈의 여러 가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논어’를 읽어보자.

  2차 저작물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게 된다. 첫째, 원문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고 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인용과 편집이 이루어진다. 둘째, 원전의 뜻이 훼손될 수 있고 주관적 해석에 따라 오독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셋째,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내용에 집중하다보면 전체를 통찰할 수 능력을 얻을 수 없다. 넷째, 나만의 원전 읽기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이밖에도 2차 저작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는 더 지적할 수 있다. 고전의 해설서에 해당하는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자와 편저자의 관점이다. 앞서 언급한 전제 조건을 이해한 상태에서 2차 저작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원전을 읽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의 고전을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낸 여러 권의 2차 저작물을 참고한 후 원전에 접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의 2차 저작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각 출판사의 고전 읽기 시리즈를 참고해서 청소년에게 적합한 해설서를 골라보자.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논어’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쉽게 풀어쓴 고전,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를 통해 청소년들은 친근하고 재미있는 고전 읽기를 시작할 수 있다. 2,500년 전의 먼지 묻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배병삼은 논어 20장의 각 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가려 뽑아 알기 쉽고 친절하게 공자님의 말씀을 풀어낸다. 청소년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고전을 위해 어설픈 해설이나 단순한 요약본은 사라져야 한다. 진지하고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방법을 찾아 고전의 즐거움을 알려 줄 수 없다면 읽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은 ‘논어’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에게 읽힐 만하다.


논어, 현재적 유용성 : 정치와 교육 문제

  공자는 ‘관계’속의 인간을 꿈꿨다. 또한,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 공존의 가치를 체득하고 인과 예가 실천적으로 운용되는 세상을 그려냈다. ‘논어’는 바로 그러한 공자의 사상을 담아낸 책이다. 한 두 마디로 논어를 요약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 배병삼의 주장이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있어서 공자와 맹자의 말이 자주 인용되기도 하고 비판받기도 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고전이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한 김경일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읽는다면 색다른 고전읽기가 될 것이다.

  공자를 보는 관점과 논어를 읽는 방법에 따라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일단 논어를 알고 접근해야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고전을 읽는 즐거움에 해당한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관해 논어를 해석하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현재의 관점으로 공자의 시대를 해석할 수도 없지만 시대와 상황 맥락만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공자가 가진 이상과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현재적 유용성을 가지느냐의 문제는 2차 저작자의 관점과 원전을 통한 확인 그리고 독자의 판단이 선행된 후에 논의될 수 있다.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읽힐 만한 책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공자의 의도 파악, 논어의 관한 해박한 지식, 시대를 고려한 논어에 대한 통찰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각론이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과 중립적 자세가 아쉽지만 논어에 대한 저자의 애정까지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청소년들이 공자의 시대와 ‘논어’에 관심을 갖고 ‘논어’를 살아있는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학생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육자로서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자. 

공자 말씀하시다. “첫째, 나는 학생이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 둘째, 학생이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틔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모퉁이를 들어 보여 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에겐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7장 술이편) - P. 118

공자 학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는 열린 학교로서의 면모요, 둘째는 엄격한 교육 과정이요, 셋째는 질문하여야만 대답을 내리는 교육 방식이다. -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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