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 - 역사 속 시그널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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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 훌쩍 넘는 세월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해도 소식을 전하고 반갑게 맞는 사람이 있다반면에 십년 넘게 곁에서 보고 얼굴을 마주했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인연을 끊는 사람도 있다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다다수의 심리학자와 정신의가 공통적으로 손에 꼽는 행복의 제일 요소는 관계작게는 인간관계부터 크게는 인류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미래를 예언하거나 예측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 전 원시사회부터 눈부신 과학기술 문명을 이룩한 오늘에 이르는 동안 인간이 알 수 없는 일은 죽음 이후의 세계와 미래다당장 내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하고 김광석이 자살하고 대통령이 구속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현재를 사는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반면에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미치도록 궁금하지만 절대 알 수 없는 미래자크 아탈리는 대담하게도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라는 책을 썼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미래를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스웨덴의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말대로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는 말이다나와 상관도 없는 먼 과거를 파헤치기 보다는 우선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라는 충고다개인이든 국가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 미래가 놓여 있지 않을까물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하고 우연히 타인의 삶에 개입할 때도 있다그러나 대부분 큰 틀에서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는 미래의 원인이다
  
자크 아탈리는 이렇게 궁금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제시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를 돌아본다우리는 신의 권능에 기대어 하늘이 예언을 하던 시대시간을 통제하며 인간이 권능을 가진 시대를 거쳐 이제는 기계의 권능을 앞세워 우연을 통제하려는 시대를 살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예언과 예측이다비과학적주술적 행위가 예언이라면 예측은 이성적 논리적 전략이다자크 아탈리는 체스와 같은 전략 게임음악문학유머로 예측을 훈련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그가 인류사에서 벌어진 미래와의 전쟁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은 놀랍다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 지식을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시키는 통찰력이 감탄스럽다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탄탄하고 정연한 지식의 네트워크를 경험할 수 있는 대목이 여럿이다
  
서술어가 마지막에 나오는 한국어처럼 뜸을 들여 자크 아탈리는 마침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회고적 예측
수명 예측
환경적 예측
감정적 예측
계획적 예측

  
이것이 바로 미래를 분석하는 다섯 가지 영역이다이중 과거를 돌아보라는 충고가 바로 회고적 예측이다나머지 영역은 개인타인기업국가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자기주장의 오류를 피해가려는 일반화추상화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실제 점검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조언한다그것이 시중에 떠도는 성공전략자기계발서와 비교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자크 아탈리는 더큰 이익을 얻을 수 있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인간의 삶을 가장 근본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미래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백짓장 같은 차이지만 바라보는 지점은 전혀 다르다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고 자기 자신이 될’ 준비를 위해서다

  
자유와 환상에 취한 대부분의 인간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체념하고 현재를 살아간다이제 영원은 그들의 안중에 없고심지어 자신이 살아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그들은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인간은 자신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부조리한 위희慰戱에 빠져 있다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유희적인 활동을 말하는 위희는 수많은 미래 분석 연구에 영향을 끼친 블레즈 파스칼이 이론화한 개념이다인간들은 이제 그들의 미래 변화를 예언하는 책무를 기계에 맡긴 채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의 벽안에 머물러 있다. - 140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은 뻔하지 않은가그들은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다이 책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라는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는 자유로운 삶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 때문이다노마드nomad를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미래를 ‘알기 위해’ 또는 ‘예언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반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본인이 원한다면 자유롭게 살고 ‘자기 자신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 14쪽

자유와 환상에 취한 대부분의 인간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체념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이제 영원은 그들의 안중에 없고, 심지어 자신이 살아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그들은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부조리한 위희慰戱에 빠져 있다. 본질적인 문제를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유희적인 활동을 말하는 위희는 수많은 미래 분석 연구에 영향을 끼친 블레즈 파스칼이 이론화한 개념이다. 인간들은 이제 그들의 미래 변화를 예언하는 책무를 기계에 맡긴 채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의 벽안에 머물러 있다. - 140쪽

게으름은 예측의 최대 적이다. 반면 예측은 자유의 최고 동맹이다. 우리 각자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있어 최악인 블랙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측이다. –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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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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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장정일을 시인으로 처음 만났다. 민음사에서 펴낸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었다. 이후에 독서일기시리즈를 한동안 탐독했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와 더불어 스무살 언저리에서 실존적인 고민에 빠지게 했던 책들이다. 아마도 내 책읽기의 모태가 된 책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다양한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많은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책읽기는 좀 다른 분야다. 가장 쉽고 만만하게 혹은 가장 속물적이고 과시적으로 여길 수 있는 대상이 책이다. 책은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의 비법으로 여전히 과분한 헌사를 받는다. 여기에 편승한 11책 쓰기, 자서전 쓰기, 저자가 되는 법 등을 더하면 책을 읽고 책을 쓰는 방법과 사람은 이제 차고 넘친다. 타이틀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 원한다면 언제든 작가님이 될 수 있다.

 

동사무소 직원이 되어 책을 읽겠다던 소년이 지금은 작가가 되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되는 것이나 작가가 되는 것이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일 뿐이니, 현재의 내가 소년 시절의 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는 차마 말 못 하겠다. 그런데도 지금의 내가 소년 시절의 희망대로 동사무소 직원이 되었더라면, 도리어 작가가 되어보겠노라고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안타까운 일이다. - 5

 

위대한 서문첫 문단이다. 장정일이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 대목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의 동사무소 직원 운운. 독서일기서문에서 그는 동사무소 직원이 되어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싶은 어릴 적 꿈을 이야기했다. 발칙한 상상력과 시니컬한 글쓰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 않는 작가다. 글을 쓰는 것보다 책을 읽는 일이 훨씬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는 일찍부터 주장해 왔다. “나는 책을 읽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만 한 것을 한번도 글을 쓰는 일에서 느낀 적이 없다. 글쓰기란 먹고살기 위해 이 재주밖에 부릴 게 업는 사람이 마감이라는 채찍을 맞으며 노역을 하는 것일 뿐, 그 일을 하면서 기쁨마저 누린다면 도착倒錯이다.”는 그의 말에 백 번 공감한다.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없이 읽는다는 꿈은 이루었을까. 인간 장정일은 나는 잘 모른다. 그의 시와 소설 그리고 잡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보다가 이제는 그가 엮은 서문까지 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장정일의 말대로 그가 한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겸손한 태도다. 서문을 모았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모을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기르고 통찰력 있게 엮는 데 그는 한 평생이 걸렸다.

 

위대한 서문의 서문도 위대하다.

 

서문은 늘 본문보다 짧지만, 저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서문은 그것의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하여. - 13

 

그가 서문에서 읽어낸 작가의 욕망은 긴 세월 탐독의 결과일 뿐 아니라 스스로 글을 쓰며 느낀 작가의 굴레를 드러낸다. 허명을 드러내고 작가의 타이들을 얻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세속적인 욕망이나 사회적 평판을 얻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한 생명을 바쳐 만들어낼 만큼 가치 있는 책읽기와 글쓰기는 가능한가.

 

우선 이 책에 실린 서른 권의 책 목록이다.

 

1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 군사학 논고

2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배

3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로테로다뮈스, 격언집

4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5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6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7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8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9 체사레 보네사나 마르케세 디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10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

11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사랑의 범죄

12 노발리스, 파란꽃

13 앙리 벵자맹 콩스탕 드 르베크, 아돌프

14 카를 필리프 고틀리프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15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16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로젠크란츠, 추의 미학

17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악의 꽃들

18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19 찰스 로버트 다윈, 종의 기원

20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21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22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도덕의 계보학

23 앙브루아즈 폴 튀생 쥘 발레리, 테스트 씨

24 앙드레 기욤 폴 지드, 지상의 양식

25 에밀 에두아르 샤를 앙투안 졸라, 나는 고발한다

26 앙리 루이 베르그송, 웃음

27 지그문트 슐로머 프로이트, 꿈의 해석

28 게오르그 짐멜, 렘브란트

29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인상과 풍경

30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이 목록에서 겨우 3분의 1쯤 읽어 자괴감이 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장정일이 썼을 각 서문 앞에 놓인 작가와 책에 관한 간략하지만 명쾌한 해설 때문에 잠시 숙연해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과 조금 다른 결이 느껴진다. 곳곳에 품이 든 흔적은 서른 개의 서문과 어울려 이 책을, 이 책의 목록을 두고두고 참고하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날은 금세 저문다.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낯선 존재로 있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도덕의 계보학, 286

 

책 띠지에 붙은 당대 최고 독서가라는 장정일에 대한 수식어가 가장 적절하다. 당대 최고의 작가보다 독서가라는 명명이 빛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름의 노하우를 전하고 겁을 주고 비법을 뽐내며 명예를 드높인다. 지극히 이기적인 책읽기는 그리 권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샤를 단치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새겨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책읽기의 본질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일이다 겨우 나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은 얼마나 낯선 존재인가.

 

서른 권의 고전에서 뽑아 낸 주옥같은 서문을 읽는 동안 나는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러나 즐겁고 행복하다, 책을 읽는 동안은. 사드의 말대로 구두를 만들지언정 책은 쓰지 말라는 충고를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봐야겠다. 누군가를 지겹게 하고 있다면.

 

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널려 있으니, 구두를 만들지언정 책은 쓰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대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가 우리를 지겹게 만들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그대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사랑의 범죄, 191

 

동사무소 직원이 되어 책을 읽겠다던 소년이 지금은 작가가 되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되는 것이나 작가가 되는 것이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일 뿐이니, 현재의 내가 소년 시절의 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는 차마 말 못 하겠다. 그런데도 지금의 내가 소년 시절의 희망대로 동사무소 직원이 되었더라면, 도리어 작가가 되어보겠노라고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안타까운 일이다. - 5쪽

나는 책을 읽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만 한 것을 한번도 글을 쓰는 일에서 느낀 적이 없다. 글쓰기란 먹고살기 위해 이 재주밖에 부릴 게 업는 사람이 마감이라는 채찍을 맞으며 노역을 하는 것일 뿐, 그 일을 하면서 기쁨마저 누린다면 도착倒錯이다. – 6쪽

서문은 늘 본문보다 짧지만, 저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서문은 그것의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하여. - 13쪽

나는 경건을 가장하여 채용된 편견들이 정신 안에서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대중이 두려움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이 완고함에 있어서 불변이며, 이성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의 칭찬과 비난이 충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도록 권하지 않으며, 그와 동일한 감정적 자세의 희생양인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진실로, 나는 그들이 습관에 따라서 이 책을 그릇되게 해석함으로써 스스로 성가신 존재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이 책을 무시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데, 그들이 이성은 신학의 하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믿음에 의하여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좀더 자유롭게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 스피노자, 『신학 정치론』(1670년), 103쪽

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널려 있으니, 구두를 만들지언정 책은 쓰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대를 무시하지는 않을 거이다. 그대가 우리를 지겹게 만들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그대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사랑의 범죄』, 191쪽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낯선 존재로 있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도덕의 계보학』,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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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13
유대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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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단일한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면 놀랍다일반적으로 동일한 팩트서로 다른 분석과 비판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주장하는 팩트 자체가 다르고 같은 증거와 사실 관계를 보는 눈 자체가 이미 객관과 거리가 멀다확증 편향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설전은 지옥이다어떤 사실이 밝혀져도 어떤 증거가 나와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며 인정할 줄 모른다그래서 나는 신념이 강한 자를 믿지 않는다
  
언론과 SNS에 노출되는 정보를 보며 흥분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아니 이해할 필요도 없다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갖는 게 당연하다그런데 놀라운 건 같은 사람의 논리적 판단 근거가 매번 달라질 때다사형제에 찬성하는가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태어나면서 누려야할 권리즉 인권을 가진 존재인가언론은 비판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가검찰과 경찰은 권력이 아니라 민중의 편에 서야 하는가소통과 배려의 가치는 언제나 유효한가?
  
유대칠의 신성한 모독자는 최근 읽은 책 중에 단연 최고다곧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떠올랐다물론칼뱅에 맞선 미카엘 세르베투스가 이 책에도 등장한다열세명의 신성한 모독자는 중세 천년 역사의 이단아들이다지금처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신성神性한 시대를 떠올려보자. 21세기의 아웃사이더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시대적 배경 때문에 더욱 신성神聖한 열세명의 면면을 살펴보자

  
아집我執이란 변하지 않으려는 욕심이다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자기 욕심의 중력이다그리고 많은 이들은 이러한 아집으로 살아간다그것이 편하다원래 있던 그대로 있는 것이 편하다굳이 다르게 되는 것보다 익숙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오늘도 어제처럼 살고 내일도 어제처럼 사는 것이 편한 사람들이 많다생각보다 너무나 많다. - 95 
  
에리우게나이븐 시나로저 베이컨오컴의 윌리엄조르다노 브루노갈릴레이데카르트스피노자 등은 철학과 역사를 뒤적이다 한 번쯤 만났던 사람들이다이들은 왜 개인적 이익에 반하는 생각과 행동으로 성공명예권력을 뒤로했을까바보 천치가 아니라면 어떤 말과 행동어떤 처세가 세속적 성공을 가져다주는지 알 만한 사람들이다이들은 왜 모두가 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했고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 그렇다고 외쳤을까가진 자권력자기득권층에서 이들은 고집스런 인물들이었을 게다. ‘진리를 무기로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의 신념을 바꿀 수 있는 건 물리적 폭력과 세속적 비난이 아니다열세명의 신성한 모독자들은 신의 권위에 도전한 오만한 사람들이 아니다그들은 이성이 시키는 대로 합리적 사고에 따라 생각하고 말할 줄 아는 아주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다튀지 마라가만히 있어라중간만 해라모난 돌이 정 맞는다누구한테 싫은 소리 하지 마라어른들 얘기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부모가 자식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너도 나이 들면 알게 된다먼저 살아본 사람 말 들어라...... 
  
귀를 막고 눈을 뜨게 하는 건 이런 말을 듣고 자란 환경과 무관하다책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건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읽고 왜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은 자괴감을 느끼는 일이다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내세우는 일이다긍정과 희망과 순종은 주체성과 거리가 멀다맹목적 비판과 부정적 시선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이성적 사고논리적 사유를 통해 얻은 선택과 행동은 신성한 모독자들의 공통점이다이런 삶은 개인적으로 불행하다행복한 일상과 거리가 멀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면하는 것일까

  
생각보다 현실은 단순하다이런저런 문제들로 복잡해 보이지만사실 누군가의 이기적 욕심을 가리기 위한 의도된 복잡일 수 있다사실 진리는 단순한데 그 진리를 숨기기 위해 어렵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말들을 늘어놓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그 복잡한 이야기들은 결국 누군가의 욕심을 감추기 위한 의도된 가리개일 때가 있다. - 113
  
백미터 달리기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들었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고 싶은 열정과 기다림잊었던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신성한 모독자들의 치열함 때문이었다왜 우리는 사고의 근육생각의 속도에 두근거리지 않을까신 중심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따라가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내적 갈등과 심리적 고통이 없었던 게 아니다그들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성직자와 권력자들이 내민 눈가리개를 거부했을 뿐이다. ‘있음이 곧 하느님이다.Esse est Deus.’(마이스터 에크하르트, 149)라는 말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꿰뚫는다가난한 자힘없는 자병든 자를 위한 종교의 타락은 성직자권력자를 위한 도구로 변질된다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대가는 고스란히 민주사회에서 유권자의 피해로 돌아오고견제와 감시 장치가 결여된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왜 인정하지 않는 걸까박근혜와 이명박은 안 되고 노무현과 문재인은 괜찮고비판과 감시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유권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순간 vice versa!
  
의심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다르게 생각하면 오랜 과거의 끝이다작은 의심은 오랜 시간 유지된 과거의 견고함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의심 자체가 이미 한 시대의 붕괴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 183
  
양비론과 양시론만큼 위험한 건 모두 까기다그보다 더 위험한 진영논리와 맹목적 신뢰다유대칠이 열세명의 신성한 모독자를 내세워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중세 천 년의 역사와 철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의 행복이 아니었을까그 행복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그 행복의 조건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나 지금까지 철학이 안내한 행복은 질문과 의심이다길들여지지 않는 자유와 절대 고독이다그런 아웃사이더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꿨고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며 그들이 안내한 길을 우리는 여전히 걷고 있다
  
우리 모두 이단이 되어야 한다지금 우리가 믿는 게 무엇이든 그 신성함을 깨뜨리지 못하면 미래는 밝지 않다만들어진 길만 걷는 사람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다른 길을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신성한 모독자와 거리가 멀다순종적인 사람적응이 빠른 사람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먼 훗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이 남겠으나 후회하지는 말자그 길도이 길도 아닐 수 있겠지만 사유하지 않고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면 거기 멈춰 침묵할 것

  
참다운 철학은 바로 이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한 외로운 외침이다권력자들과 다투고 싸우기에 철학은 참으로 무력해 보일지 모른다때로는 싸우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버림받고 실패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철학은 실패마저도 흡수하여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삼는다그 실패로 얻게 된 고통도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고통을 통해 아직 더 많은 것을 해야 할 존재의 이유를 더욱 강하게 자각하는 것이 참다운 철학의 힘이다. -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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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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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lnerant omnes, ultma necat.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마침내 죽는다. - 254
  
공부한다는 것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입니다그리고 이 단어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것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지만 배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라틴어를 기막히게 가르치는 교수법의 달인이었다면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은 다른 내용이었을 겁니다한때 지나가는 바람인지 오래오래 대기를 순환시킬만한 움직임인지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이 책도 그랬습니다베스트셀러에 대한 호기심과 매번 부딪치는 실망감 사이에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넉넉하게 점수를 주자면 배울 게 없는 책은 없습니다책의 형태로 묶였다면 굳이 욕할 필요도 없이 나름의 장점이 있을 겁니다단 한 가지라도하지만 책을 고르고 돈 들여 구입하고 시간을 내 읽는 수고를 갈음할만한 배움도 깨달음도 감동도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제 평가가 짠 탓은 아마도 기대가 크고 늘 두근거리며 무언가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겠죠한동일 선생님은 수강생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떤 목소리로 들려주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책으로 만난 라틴어 수업은 전공과 이력이 주는 희소성오프라인 수강생의 반응이 더 커보였습니다기대가 너무 컸던 탓입니다아마 어떤 독자도 이 책을 통해 라틴어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문법 체계와 교수법을 공부하고 싶었던 독자가 있었을까요쉽게 접하지 못하는 라틴어 문화권의 이야기가 궁금했을 겁니다제가 그랬거든요그 기대만큼은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책입니다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라틴어 단어 하나문장 하나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이 좋았던 건 한동일의 태도였습니다. ‘공부한 사람의 포부는 좀 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나만 생각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더 넓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한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가요. ‘배워서 남 주는’ 그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을 될 수 있으나 그 지식을 나누고 실천할 줄 모르면 지성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너무나 당연한 말이지요제 한 몸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고제 가족의 잇속을 챙기고입으로는 그럴듯한 가치를 내세우면서 부와 명예를 챙기는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습니다진보와 보수젊은이와 노인여자와 남자기독교와 불교한국과 미국백인과 흑인 가릴 것 없습니다사람은 저마다 다른 프레임으로 세상을 봅니다이념종교직업나이성별학벌인종국가......그게 무엇이든 틀렸습니다나눔과 실천배려와 소통은 입으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제가 가진 인간에 대한 평가 기준은 명확합니다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이타적인 삶이웃을 위한 희생더 나은 가치를 위한 실천 등 보통 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운 삶의 목적을 설정했느냐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출세와 명예를 지키고, ‘이 되는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요진영 논리도이념의 잣대도 이 큰 틀을 허물지 못합니다어디든 분쟁이 생기고 갈등이 심화되고 고통이 따르는 이유는 욕망과 이익 때문이 아닐까요그래서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출판사가 내세운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라는 타이틀 운운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노동자로서 자세를 바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그 마음이 그 태도가 물론 수강생과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고 믿습니다
  
최소한 ‘Do ut Des’ 정도만 지켜도 세상은 달라집니다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한국인의 정서에는 야박한가요한국 사회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벌었다면 그만큼 돌려주는 게 예의입니다그것이 지식이든 명예든 금전적 이익이든 말입니다저 혼자 잘나 그 자리에 오른 줄 아는 사람의 착각은 도 우트 데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이 책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경구도 많이 등장합니다익숙한 문장이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든 어느 지역에나 있는 금언이든 상관없습니다한동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저 살아가는 일이란 수천 년 전 라틴어를 사용하던 로마 사람들이나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라틴어의 단수복수남성여성중성에 따른 격변화 단어를 어디에 쓰겠습니다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자인지 다시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하지만 언어는 사고입니다그 자체가 생각의 틀입니다라틴어가 가진 특성이 문화이고 그들의 생각이며 문명의 기틀입니다한국어도 마찬가지일 테지요여러 사람이 지적했지만 개인적으로 저도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한국어의 약점은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동양 문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존대법입니다직장의 회의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예를 들어 직급이 낮은 사람은 부장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하지만 직급이 높은 사람은 !’ 12글자와 두 글자아니 !’ 한 글자면 어떨까요과장해서 표현했나요의사표현 도구로서 언어는 출발부터 다릅니다평등하지 못한 인간관계 자기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잘못된 교육가부장적 사회구조수직적 직급체계장유유서에 대한 사회적 관습 등 다양한 요소 때문이겠지만 그 출발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 때문이 아닐까요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닌 나이성별외모국적부모의 직업출신지역......’ 등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면서 차별을 구조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될 요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라틴어가 가장 우수한 언어라서 그 정신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건 아닙니다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시간을 견뎌낸 언어가 안고 있는 문화와 전통그것이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뿐입니다물론 제가 밑줄 친 곳은 뻔합니다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떤 라틴어 문장에 밑줄 그었는지 궁금합니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angulo cum libro.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마침내 찾아낸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 -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독일의 수도자이자 종교사상가,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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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원할 자유 - 현대의학에 빼앗긴 죽을 권리를 찾아서
케이티 버틀러 지음, 전미영 옮김 / 명랑한지성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내가 겪은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은 수용이다. 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떤 사람, 장소, 일 또는 상황(내 인생의 한 단면)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 장소, 일 또는 상황은 그 순간에 정해진 방식대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수용해야만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일도, 신이 창조한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일도 결코 실수로 일어나지 않는다.

 

케이티 버틀러는 심박조율기를 달고 연명하는 아버지를 간호하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남동생 조너선에게 전화를 걸어 험담을 늘어놓자 동생은 미국 알코올중독방지회에서 발행한 책자의 한 문단을 크게 읽어준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해도 자신이 겪어야 하는 일을 과거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용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삶의 경지가 아니다. 부처님도 힘들다는 관용과 수용의 자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은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책장을 뒤적여 일단 죽음에 관한 책들을 뒤적인다. 직접 죽음을 다룬 책들이다.

 

1. 철학 :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2. 철학 : 죽어가는 자의 고독(로베르트)

3. 의학 :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미하엘 데 리더)

4. 에세이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5. 문화 : 임사체험(다치바나 다카시)

6. 인문 : 죽음, 또 하나의 세계(최준식)

7. 인문 :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김열규)

 

책 모임을 통해 읽게 될 책은,

 

1. 문학 : 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

2. 사회 : 자살론(에밀 뒤르켐)

3. 철학 :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을 한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미국은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이다.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메치니코프요구르트를 마시는 대신 각종 첨단 의료기기에 기대 집중치료실에서 발버둥치는 생의 마지막 장면은 비참하다. 이 책은 아버지의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심박조절기에 의존한 후 치매에 걸려 여든 다섯에 심박조절기를 끌 때까지의 기록이다. 간병에 지쳐 어머니의 남은 생은 피폐해졌고 경제적으로도 무너졌다. 이 책의 저자인 딸 케이티 버틀러 또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위해 빠른 죽음을 선택하라고 주장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현대 의학이 우리의 품위있는 죽음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병장수의 꿈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죽어야 하는 사람도 그 가족과 친지도 함께 불행해진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동양의 오랜 전통으로 인해 우리는 서양보다 더 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시작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안내자가 된다.

 

케이티의 아버지 제프리 어니스트 버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쪽 팔을 잃고 미국으로 이주한 후 웨슬리안 대학의 교수가 된다.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이었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교와 문화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다르다. ‘시작을 전제로 한다. 유한한 삶에 경배할 수 있어야 하루가 소중하다. 우리는 마지막이 언제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니라 내일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미래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순간을 소중하게 사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과 골수암 말기의 루디는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이 실린 악당의 차인줄도 모르고 두 사람은 스포츠카를 훔쳐 타고 달린다. 어차피 미래가 없는 둘은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천국을 노크(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1997)하러 떠난 게 아닐까.

 

현실 같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은 매일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케이티 버틀러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와 부모와의 시시콜콜한 추억담까지 곁들여져 380여 페이지나 되지만 저자의 주장은 명료하다. 현대의학에게 빼앗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돌려 달라,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 준비하라.

 

살아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의학적 관점에서가 아닌 방법으로. 소설가 김연수는 하루키처럼 달린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살아있다는 외침에 불과하다. 그가 누구든 사생활과 개인적인 취향에 관심이 없는 독서 취향상 이 책은 지루하다. 소설가의 경험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살아가는 자세를 통해 배울 게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산문집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켜야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하지만 주관적 감상과 판단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다. 다만, 걷고 달리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지 않는다 말은 이겼다는 말과 다르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승부를 걸지 않는다면 질 수 없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꼭 이겨야겠다는 말이 아니다. 성공이라늘 말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김연수가 달리기를 통해 터득한 깨달음처럼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환호하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승자독식 시대,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망, 자기계발에 대한 환상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지게 만든다. 자기 속도에 맞춰 결승점이 아니라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순간에 내 뺨을 스치는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을 한 번쯤 올려다 보면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누구도 지지 않아야 한다. 아무도 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기는 사람이 생기겠는가.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사실은 졌다.

 

 

15-0104-0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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