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박홍규 옮김 / 필맥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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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급 생활자의 세금 부담 증가에 대한 예산안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형평성 문제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세금의 본질적인 문제와 국가 차원의 세수 부족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확실한 대안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비대해진 공무원 조직과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기업, 공룡처럼 거대한 힘으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버티고 있는한 문제는 절대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대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쟁점이 아니라 몇 백년간 이어져 온 지루하고 식상한 논의다. 다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세금을 징수하고 사용하는 방법과 철학이 결여된 위정자들에게 분노한 백성들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이기적 욕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며 지금까지 겨우겨우 버텨온 것이다.


국가는 도덕의 힘으로는 세계를 통치할 수 없기에 필요하게 된 하나의 형태다. 여기에 또한 국가의 의도와 목적인 자유와 안전이 있다. - 상식, P. 25


  18세기 후반 인류 역사상 기억될 만한 두 가지 사건을 꼽으라면 미국의 독립(1776년)과 프랑스 혁명(1789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페인은 이 두 가지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상식>을 썼다. 팜플릿 형태의 글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명쾌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히 드러난다.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던 버크에 대한 반론으로 쓰여진 <인권>은 1, 2부로 1791년과 1792년에 각각 출판되었다. 출판 당시 수만부가 팔릴만큼 주목을 끌었으며 페인의 조국인 영국에서는 출판이 영구 금지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상식>과 <인권> 두 권의 합본 형태로 박홍규가 다시 번역한 <상식, 인권>은 그의 설명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저작 중의 하나로 평가 받을만 하다. 진보니 개혁이니 현실 정치에서는 되먹지 못한 소리들만 개짖는 소리처럼 처량하게 울려 퍼진다. 이념과 갈등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가장 상식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그들에겐 관심이 없는듯 하다. 아니, 관심이 있어도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결국 그것들을 찾아내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국민들 개개인의 몫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아프게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국가와 사회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가 군주국이었음을 감안할 때 페인의 팜플릿이 가지는 혁명적 발상과 인간에 대한 성찰은 놀랄만한 일이다.


인간의 평등권이라는 찬란하고 거룩한 권리는(그 기원이 인간의 창조주에게 있으므로) 생존한 개개인에게마나 관련된 것이 아니라, 뒤를 잇는 사람들의 세대와도 관련된다. 각 세대는 그 앞서간 세대와 평등한 권리를 가지며, 그와 같은 원칙에서 각 개인은 그 동시대인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 인권 1부, P. 134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겨우 마칠 정도의 정규 교육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페인의 저작은 그의 사상과 당시 역사와 사회를 관통하는 지적 능력을 통해 볼 때 엄청난 독서와 사색을 통한 반성적 사고를 통해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사고 방식과 국가와 인권의 문제를 이렇게 통쾌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은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현재적 관점에서 개혁과 혁명을 논하고 그 태도를 살펴보는 책은 이제 차고 넘친다. 그러나 페인이 살던 18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물론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 루소같은 사상가를 통해 사회계약론과 같은 새로운 사상들이나 지적 성과물이 제시되었던 시기이기는 하지만 현실 정치의 문제를, 특히 미국과 영국의 비교를 통해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에 나타난 정신을 이렇게 정확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선언하고 있는 저작은 찾기 힘들 것이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논쟁적 문체가 걸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빛나는 정신을 가릴 수는 없다.


자연권은 인간이 존재하는 데 따르는 권리다. 이런 권리에는 모든 지적 권리와 정신적 권리, 그리고 타인의 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개인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모두 포함된다. - 인권 1부, P. 138


  인권은 자연권이다라는 말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인권이 자연권이었던 시기가 있었을까?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가치나 목적보다도 우선시 되어야할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이 지금도 논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페인의 사상과 주장이 유토피아적 환상과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얼마든지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형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개혁의 권리는 근본적 성격에서 국민에게 있고, 그 합헌적 방법은 그 목적을 위해 선출된 전국적 집회(공회)에 의해 개혁이 추진돼야 했다. 타락한 기관이 스스로 개혁한다는 생각 자체에 모순이 있었다. - 인권 1부, P. 146


  그러므로 언제든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를 개혁할 합법적 권리가 있다. 정치개혁은 주체는 그래서 언제든 국민의 몫이지 정치가의 몫이 아니다. 잘잘못을 바로잡고 보다 살기 좋은,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토대는 대다수 국민들의 몫이다. 일부 부유층과 권력이 자기 것인양 착각하는 기득권층의 논리가 아니라 이 땅의 민중들의 목소리가 국가와 정치라는 형태로 실현되는 것이 올바른 사회라는 이야기다.


정치의 세계에서 개혁이 불가능한 부분은 없다.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혁명의 시대의 특징이다. - 인권 1부, P. 217


자유는 지구 어디서나 박해를 받아왔고, 이성은 반역으로 간주되었으며, 공포의 노예가 된 인간들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했다. - 인권 2부, P. 230


  개혁과 혁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개념의 차이를 떠나 속도와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신체의 자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들을 짚어내자면 끝이 없다. 부정적 사고가 아니라 건전하고 비판적 사고는 끊임없는 이성의 계발과 차가운 자기 반성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며, 불가능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 인권 2부, P. 247


헌법은 국가의 소산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의 소산이다. 따라서 헌법 없는 국가는 권리 없는 권력에 불과하다. - 인권 2부, P. 269


  인간의 위대함은 ‘불가능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데 있다고 믿는다. 고전속에 파묻힌 케케묵은 망령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쉬는 이 뼈아픈 진리와 선언들을 되새겨 둘 만하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유를 바라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단순히 달콤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위해 존재하는 금언으로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불행과의 접촉이 연민의 본질이다. 이 주제를 거론하면서 나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어떤 결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승패를 초월한 고결한 긍지로써 나는 인권을 옹호한다. - 인권 2부, P. 313


  시대를 앞서간 수많은 인류의 스승들에 대한 평가는 각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우리가 오늘 다시 만날 수 있는 토마스 페인의 <상식, 인권>은 잡다한 논의를 뒤로 한 채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국가와 정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역작이다. 나와 국가, 나와 정치와의 관계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책을 읽어보라. 옮긴이 박홍규는 페인을 ‘세계의 자유주의자’라고 평가한다.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사상과 삶은 숭고하다.


“자유가 없는 곳에 내 조국이 있다”는 유명한 페인의 말은 “자유가 있는 곳에 내 조국이 있다”는 프랭클린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나, 바로 그 말이 단순한 미국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세계의 자유주의자인 페인의 삶과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옮긴이 해설, P. 387



200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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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교양사상서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정영하 옮김 / 산수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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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현재의 의미망 속에서만 그 빛을 발한다. 단절된 불연속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고전을 읽고 음미하며 재해석하는 일은 헛된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반성적인 사유를 통해 끊임없이 지금 현재를 재발견하는 것이 고전이 주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19세기 중엽 근대의 이행기에 두드러진 저작중의 하나가 J. S. 밀의 <자유론On liberty>이다. 인류 문화사에서 근대의 기점론은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를 거쳐 기독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혹은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때 근대의 중심에는 ‘개인’이 서 있다. 독립적 개체로서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 문화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밀의 자유론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다른 어떤 책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유론>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서설과 사상과 언론의 자유, 행복의 한 요소로서의 개성과 개인에 대한 사회 권위의 한계 그리고 원리의 적용이다. 각 장에서 밀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자유다. 자유가 지니는 의미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충돌할 수 있는 상황은 물론 특히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자유’의 본질과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은 헌법과 법률로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사상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서설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지배자가 사회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제한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 P. 12

  밀이 생각했던 자유의 본질은 다름 아닌 ‘사회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권력에 제한을 가하면 침해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책은 출발하고 있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도 ‘자유론’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밀은 이어서 얘기한다.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일은 대중과는 언제나 이해가 상반되는 통치자에 대항하는 수단이었으며, 또 그렇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요구되는 것은 통치자가 국민과 융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치자의 이해와 의지는 국민의 이해와 의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 P. 14

  이후 전개되는 언론과 사상의 전개에서 밀은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토론과 경험을 통해 능히 시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과연 인간이 토론과 경험을 통해 잘못을 시정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은 정당한 것인가? 독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개인의 사회 경제적 위치에 따라 대립과 갈등이 생기고 통합된 논의나 지향점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배치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밀은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지 궁금하다.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이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책이 있을까? 어떤 논의나 주장도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는 ‘진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절대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상대적 가치 속에서 평가되어야하는 것이 ‘진리’라는 이름의 숙명이다.

  21세기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새삼스럽게 ‘자유론’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그렇다면 국가나 사회의 압제와 타인의 관계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 반문해본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근본적인 관계 설정과 범위와 한계를 고민하고 싶다면 <자유론>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한 국가의 가치는 국가의 구성원인 개인의 가치에 있으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존립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인생처럼 책에 나와 있는대로 혹은 보다 가치 있는 쪽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사회나 역사의 큰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보다 소중한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을을 가져볼 뿐이다. 그렇지 않을 때 대중은 ‘혁명’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밀은 이렇게 책을 맺고 있다.

  국가의 가치는 궁극적으로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가치이다. 이들 개개인의 정신적 확대나 향상을 위하여 이익이 되는 것을 뒤로 제쳐두고 세부적이고 사소한 사무상의 행정적 수완이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원하는국가, 또는 국민을 위축시켜서 그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꼭두각시로 만들고자 하는 국가는 그것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행해진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어떠한 위대한 일도 결코 이룩하지 못한다.
  그리고 국가가 온갖 희생을 다하여 이룩해 놓은 완전한 기구라 할지라도 그것의 원활한 운영을 기한다면 국가가 배제한 구성원의 힘 부족으로 인해 아무러너 도움도 되지 못함을 알게 될 것이다. - P. 278



200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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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지음, 정영하 옮김 / 산수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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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사상사는 사회사를 반영한다. 본능적 동물로 태어난 인간이 길들여지고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개인이 지닌 특수한 상황과 사회 제도가 결합되어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1712년 프랑스 태생의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장 자크 루소는 1761년 기념비적 두 권을 발표한다. 교육에 관한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 <에밀>과 개인과 국가,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사회계약론>이 바로 그것이다.

  루소의 생애를 이해하는 일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사상가나 역사가, 철학자 모두 자신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행한 개인사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생활의 측면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이나 사건들이 사상에 미친 영향들을 고찰해 보는 데 의의가 있다. 유복했다고 보기 어려운 유년시절과 나이 많은 바랑 부인과의 사랑, 일생을 같이 한 테레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명의 자식이 모두 고아원에 버려진 사실들이 루소의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의 논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정치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책의 저작 과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밖의 개인사는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행, 불행을 객관화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총 4부 4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의 주제와 제목을 통해 루소의 사상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상황과 다른 요소나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18세기 중반에 출판된 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탁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18세기 중반 우리의 상황을 돌아본다. 정조의 재위 시절로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로 불리기도 하지만 개인과 국가 혹은 개인과 사회라는 관계 자체를 거론하기 힘든 봉건적 사회였다. 서얼 출신의 양반들의 한숨 소리와 백성들을 옭아매고 있는 신분제도는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독소였다. 서양과 우리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할 수 있겠으나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는 없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주장하는 계약은 개인과 정부 사이의 계약을 의미한다. 자연 상태의 반대 개념으로 국가와 정부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국민은 생명과 사유 재산의 보호를 위해 피지배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덕과 시민적 책임의식이 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개인의 의지가 전체 의사와 일치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일치가 지속적이며 항구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체 의사는 평등을 지향하는 반면 개인의 의사는 본질적으로 편파적인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P. 72 제2부 제1장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는 말이 그 이유를 뒷받침하고 있다. 토마스 홉스나 존 로크의 이론상의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당시에 이러한 사상이 펼쳐질 수 있었던 토대 자체가 긍정적인 면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아나키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의 필요성과 주장은 국가와 정부의 존립 근거를 이론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주체가 되고 국민 모두의 주권과 권리 의식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고 개인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이러한 모든 시도는 유용하다. 한 사회의 발전과 국가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의도된 목적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사회계약론>은 여전히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시금석이 될 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국가와 민족, 시대와 계층에 따라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개인의 이익에 어떤 방식으로 복무하느냐에 따라 또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갈등과 개인과 사회의 갈등은 항존한다. 우리가 고민할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거나 정체되어 있는 제도에 대한 점검과 그 기본 틀을 고민해보는 거시적 안목이다. 내 앞의 떡을 위하여 달려가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다. 물론 합의되지 않거나 이기적 모순에 빠질 위험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제 한번쯤 되돌아보고, 아니 자주 되돌아보고 점검하고 살아 숨쉬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자유는 모든 기후에서 열리는 과일이 아니? 그러므로 자유는 모든 나라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P. 178 제3부 제8장 모든 국가에 동일한 정부 형태가 접목되는 것은 아니다)는 루소의 말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와 정부 형태는 우리 스스로가 항상 고민하고 성장시켜 나가야 하는 과일이 아닐까 싶다.


200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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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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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의사소통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소통 방법에 대한 고찰이다. 이것은 원인과 과정, 방법과 결과를 망라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관찰과 현상에 대한 분석이 바로 강준만의 <인간사색>이라는 책이 갖는 의미이다.

언론학자라고 한정하기에는 활동의 진폭이 큰 강준만의 책은 일단 재미있다. 물론 그 재미의 기준과 의미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지나친 정치적 수사와 직설적인 화법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강준만의 이야기는 언제나 ‘래디컬’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강유원이 ‘래디컬하다’란 말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 책과는 무관하더라도 그의 성향을 대표할 만하다. 이 땅의 수많은 지식인들을 지도로 그려보고 싶을 때가 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성향에 따라 이름이나 사진을 놓아 본다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 그의 평소 발언이나 책의 내용들을 반영해서 누가 한 번 그려보면 좋겠다. 꼭 사서 읽어 볼테니.

이 책의 특징은 지난해 출판된 철학자 김용석의 <두 글자의 철학>을 떠오르게 한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인간관계를 풀어내는 두 글자의 키워드가 제시된다. ‘사랑, 불륜, 질투, 순결, 키스’, ‘욕망, 열정, 감정, 체질, 싸움’, ‘청춘, 나이, 효도, 호칭, 권위’, ‘진실, 기억, 신념, 의리, 배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들만 나열해도 호기심이 넘친다. 이렇게 흥미로운 두 글자들의 조합을 어찌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인들만의 고유한 인간관계를 풀어낸 책이 많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모든 국민이 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분석과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들 자화상을 그려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저자 강준만이 용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걱정은 이 책에 대한 장점과 단점으로 드러난다. 가장 큰 단점은 저자의 피해가기 기법이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인용된 책과 잡지 등 각종 자료가 방대하다. 저자의 꼼꼼한 준비와 분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객관적 시선 뒤에는 탁월한 주관적 배경이 배제된다는 함정을 피할 수가 없다. 강준만은 없고 수많은 인용과 관련 분야의 객관적 정보들이 넘쳐난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다.

반면에 가장 큰 장점은 단점의 뒷면이다. 인간관계에서 살펴야하는 수많은 정보와 규칙들은 한 개인에 의해 정의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인간관계론을 분석적 방법으로 객관화시켜 나가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물꼬가 터진 이상 즐겁고 재미있는 작업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통찰력과 정확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게하는 즐거운 책임에 틀림없다. 인용된 자료와 각주를 모두 읽어보고 싶을만큼 흥미로운 주제가 있는가 하면 밑줄 긋고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도 많다.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관계들을 정확하게 짚어낸 부분들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 권의 책을 묶어낼 수 있는 저자의 능력은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주관적 정보의 주관적 선택이 만들어내는 객관적 분석은 훌륭하다. 인간관계를 고찰하는 일이 어찌 쉬운 작업일 수 있겠는가. 저자가 풀어내는 우리의 모습에 때로는 부끄러워하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우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거울에 비춰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빌어 나를 돌아본다. 때로는 미시적 관점에서 감정의 미묘한 떨림을 이야기하다가 거시적 안목으로 사회 정치적 문제까지 다루다보니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좁은 관계에서 넓은 관계까지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엿볼 수 있다. 한 권의 책에서 큰 욕심을 내지 않고 풍성하고 화려한 인간관계에 관한 에피타이저 정도로만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반성적인 시간을 갖게 해 줄 수 있는 강준만의 <인간사색>을 권한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부끄럽게 나를 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 의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0610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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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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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세기를 마감했던 가장 주목할 만한 저작들과 철학자 중의 한 사람, 미셸 푸코를 기억한다. 그는 수많은 동료학자들에게, 그리고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동료, 후배들의 찬사나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지식인들이 거들먹거리며 써먹는 논의의 화제거리가 우리들 현실과 미래를 짚어보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의 대표적 저작 중의 하나인 <감시와 처벌>은 ‘감옥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목은 항상 제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일반 명사나 추상 명사로 대표된다. 다소 흥미없는 주제로 보일 수도 있다. 일반인들 입장에서 ‘감시와 처벌’은 남의 일이며 더구나 ‘감옥의 역사’ 따위에 신경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실적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을만하지 않은가?

  안기부 도청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무렵 정형근 의원의 핸드폰 사용법이 한겨레에 소개된 적이 있다. 1달 이상 같은 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며 동시에 여러개의 핸드폰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수시로 핸드폰을 바꿔가며 통화하고 자주 번호를 바꾼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안기부에서 악명을 떨쳤던 그의 행동이 CDMA 접속 분할 방식 핸드폰의 도청이 얼마나 쉽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아직 이 시대에 ‘big brother’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푸코의 경고는 단호하다. 일상 속에서는 우리는 대단히 무감각하다. 감출 것도 비밀도 없기 때문에 감시의 눈길이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격리 수용되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은 당연히 감시와 처벌을 받아야 하며 그것이 감옥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히는 푸코의 주장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미래를 예견한다.

  신체형과 처벌, 규율과 감옥 등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프랑스라는 한정된 역사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으나 봉건사회에서 민중들에 의해 시민혁명이 성공했고 또다시 복고 왕정이 등장하는 등 근대와 탈근대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고 험난한 역사를 걸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한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근대적 정신과 새로운 사법 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밝히는 것이다. 처벌을 관장하는 권력이 근거를 두고 있고, 정당성과 법칙을 받아들이고, 영향을 넓혀가면서 그 엄청난 기현상을 은폐하고 있는, 과학적이고 사법적인 복합실체의 계보학이다. - P. 52 

  푸코의 이 말 한마디가 이 책의 의미를 밝히는 열쇠가 된다. ‘근대정신과 사법 권력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법은 누구를 위하여 복무하는가? 법은 과연 공평하고 평등하게 집행되는가? 이 질문에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21세기의 현실에서 푸코의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아니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트에서부터 시작되는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길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효과적인 권력의 통제 수단으로 비롯된 이 부자유스런 시선들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고 처벌을 위한 감옥에서 활용되는 수단이 아니어도 우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팬옵티콘으로 대표되는 벤덤의 감옥의 구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규율의 제도는 인간행위를 관찰하는 현미경처럼 기능하는 통제장치를 확산시켰다. - P. 272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를 위해 복무하던 징벌은 대다수 범죄자에 대한 교정 기능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처벌을 위해 존재했던 징벌이 감옥이라는 제도적 장치로 전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많은 논란과 혼란스런 과정을 겪었다. 범죄에 대한 형량을 시간의 개념으로 환산하고 신체적 구속을 통해 자유를 박탈하는 것으로 일반화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0여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이전의 공개처형을 통해 보여줬던 야만의 시간들은 역사는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징벌의 목적과 효과 군중들에 대한 경고와 군주의 의도는 역사적 사실로 그칠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푸코의 논의를 한정시킬 수 ?문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로 드러난다. 이 짧은, 한정된 분량으로 다 말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일망 감시장치’는 ''봄-보임''의 결합을 분리시키는 장치이다. 즉, 주위를 둘러싼 원형의 건물 안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한 채 완전히 보이기만 하고 중앙부의 탑 속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결코 보이지는 않는다. - P. 312

  한 사람의 감시자가 수많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감옥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심리적 변화와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공포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반성과 성찰들을 담고 있다. 그가 말하는 감시와 처벌은 단순히 감옥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로 확대되었고 아무도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의 삶을 대변하게 되었다.

  범죄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 - P. 420

  범죄의 원인과 처벌의 문제, 권력의 도구인 감옥의 문제를 심층적이고 분석적으로 다루고 있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단순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아니라 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텍스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의미의 크기를 헤아리기 어렵다. 다른 책들을 읽어나갈 때마다 마주쳤던 푸코를 만나 나눈 대화의 소중함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06010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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