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는 1992년에 유고로 출간되었다. 빛바랜 누런 책표지는 책꽂이 한 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세월을 감내하고 있다. 그 시절이 생각나면 가끔 꺼내 뒤적여 보는 책이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쓴 김현의 일기 형식의 글을 책으로 출간했다. 책날개에 어딘가를 응시하는 선생의 표정이 여유롭다.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선생의 글을 좋아했다.

장정일의 <공부>는 그가 펴냈던 <독서일기> 7권에 해당한다. <공부>라는 제목과 주제별로 묶인 제목들은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가당찮은 제목은 씁쓸하기만 하다. 인문학이 고사 위기라는 이야기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인문학 교수들이 위기 선언을 할만큼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풍토가 척박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책 한권으로 부활이 가능한가? 그렇다 치더라도 부활 프로젝트와 거리가 멀고 그저 개인의 내면적 고백과 ‘공부’ 과정일 뿐이다.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수식어와 선정적인 제목에 알러지 반응이 있는 나로서는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냥 <독서일기 7>이면 어떤가? 물론 이전의 책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면 그 특성을 책의 내용과 편집에서 살리면 그뿐이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심히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장정일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와는 무관하게 책 한 권이 주는 느낌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기분 나쁘다.

한겨레의 고명섭 기자가 쓴 <지식의 발견>이 이 책과 유사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대표적인 저작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상이한 관점을 비교하고 하나의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작년에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좋은 책이다. 이 책도 유사한방식과 관점을 지니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데 비해 이 책은 보다 주관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보다 친근하며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지고 핵심이 없이 책 내용의 요약과 설명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책 한 권 전체가 유기적인 관계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그간의 독서이력에 대한 정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장정일의 내밀한 감성도 느낄 수 있고 역사와 사회에 대한 견해도 엿볼 수 있으며 정치와 세상에 대한 의견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 책의 본문에서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는 하이데거의 존재자를 설명하지만 실천으로 육화되지 못하고 인식에 대한 방편으로 그친다. 예를 들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노당을 찍지 못했다는 고백은 실소를 자아낸다.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경험과 고백들은 그가 인식한 세상과 책의 내용과 뒤섞이지 못하고 행간에서 불협화음을 이룬다. 나만의 느낌일까?

이 책의 목적이 인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반쯤 성공했고, 반쯤 실패한 것으로 본다. 얼 쇼리스의 책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최근 출간된 그의 책은 미국에서 노숙인에게 삶의 희망과 메시지를 전하고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전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실천가의 책이기 때문에 관심이 간다. 인문학 자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우리들 삶과 연결된 생생한 경험담이나 실천적 모습들이 더 필요하다. 그냥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공허한 울림으로 그치고 만다.

역사와 철학을 통해 세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서 보다 철저하게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교양을 섭렵할 수 있도록 하고 고교 과정에서도 테크닉 위주의 논술이 아니라 비판적인 안목과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만 수행할 수 있는 논술 문항의 개발도 필요하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한 목적과 의도로 책 제목을 정했으리라는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책을 만났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

<나비와 전사>에서 고미숙이 절규했던 것처럼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방법과 과정들을 소개하는 책과 프로그램들이 보다 많이 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부터 평생 교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공부하기엔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거나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목마르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공부는 학생이나 하는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할 수 없지만 ‘철학아카데미’나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어쨌든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다같이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중학교 중퇴라는 객관적 학력과 무관하게 내공을 연마하며 공부하는 그의 태도에는 늘 부러움과 응원의 감정이 깔려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만난 그가 통렬하게 비판하는 시인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김수영의 시를 인용하며 글을 쓰지 말고 시와 시인에 대한 독설을 멈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이런 종류의 리뷰도 장정일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함께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는 독자의 애정 어린 투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장정일도 나도 열심히 공부하는 일만 남았다. 여전히,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061203-133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햄릿 2006-12-0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 장정일이 2002년 대선 때 이회창을 찍었다는 말이 '공부' 몇 페이지에 나오나요???

           아무리 봐도 없던데...?

           님의 오독이거나 아님 상상?

 

 


sceptic 2006-12-0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한글 미해득? 잘 찾아보세요. 안가르쳐 드립니다. 분명히 나오니까 다시 읽어보세요. 별 쓰잘데 없는 내용을 가지고...오독이나 상상? 우습네요. 논쟁거리가 될만한 얘기를 하세요...

다시 읽고 못 찾았다면 정중하게 요구하시죠. 그러면 정확한 페이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햄릿 2006-12-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서 한다면 충분히 논쟁거리가 되죠.
제가 아무리 정중하게 부탁해도 님은 페이지를 적시하지 못할 겁니다.
장정일을 한권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장정일이 이모씨를 찍었으리란 상상은 하지 못할 텐데...

sceptic 2006-12-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중하게 말씀하시니 저도 예의를 갖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햄릿님은 <공부>를 읽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페이지를 적시하지 못할거라는 확신을 하시는지...책이 집에 있습니다. 오늘을 넘기지 않고 정확한 페이지와 장정일의 글을 그대로 올려 놓겠습니다. 장정일의 성향을 아는지라 저도 놀랐습니다. 장정일을 제대로 한 권이라도 읽은사람이라면 누구도 좀 놀라겠지만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햄릿님이 기분나쁜신게

1. 책에 없는 말을 제가 올려놨다고 생각하시는건지,
2. 장정일이 이회창을 찍은건지,
3. 책에 대한 부정적 리뷰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은 이쯤에서 접어주시죠.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sceptic 2006-12-05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 191페이지, 197페이지, 260페이지 참조.

2002년 대선에서 장정일이 이회창을 찍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이에 햄릿님(장정일님으로 추정되나 어떤 분인지 알수 없어 궁금함)께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리뷰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1. '부서진 손잡이'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개혁과 민주를 미끼로, 개혁과 민주를 열망하는 대중의 표를 도둑질해 가는, 제도 정당이다! 부르주아 정당이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표를 찍는 나의 어리석은 투표양식이다! - 본문 191페이지

2. 이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앞으론 반드시 고려하겠다. - 197페이지

3. 탄핵 정국 속에서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필자는 민주노동당을 찍지 못했다. - 260페이지

1번 내용으로 미루어 2002 대선에서 이회창이나 노무현을 찍었을 거라는 암시를 제가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으로 표현한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3번 내용에서 보듯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민노당을 찍지 못했다는 장정일의 글을 보고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정당'인 한나라당과 연결시킨 것은 저의 오독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제 변명입니다.

직접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리뷰에 올린 것은 저자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풋내기 시인이었던 시절부터 애정을 가지고 읽어왔던 장정일의 글들과 내가 미루어 짐작했던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실망감의 표현이었습니다. 민노당스러운(?) 작가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불평으로 쓴 글입니다. 민노당이 아닌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은 당명만 다를 뿐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장정일씨.

햄릿 2006-12-05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 우리당도 부르주아 당이죠...
장정일의 글을 좋아하는 애독자일 뿐입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 老子 第25章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때때로 삶이 답답하고 그 해답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무엇이 목표인지도 모른채 달리다가 어느날 문득 아득해지는 그 느낌에 대한 해결 방법은 없다. 먼저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그것이 삶이라고. 아무도 누구도 그 해답을 줄 수 없기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그게 삶이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던져 놓고 떠나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동양 고전들이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인간이 관계맺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들을 전해 들을 수 있는 귀는 자신에게 있다. 켜켜이 먼지 앉은 수천년 전 성현의 말씀을 육화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방식과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

이십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내신 신영복선생님의 글은 어쩌면 그것이 올가미가 된다. 개인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읽게 된다. 그것은 옥살이 한 사람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시간들에 대한 숙연함이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에 걸쳐 방대한 동양고전을 500페이지 책 한권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기 시작했다. 서론 부분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화두는 '關係論'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하여 사람과 사물, 자연,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가 이 책의 내용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된다.

周公曰 鳴呼 君子 所其無逸 군자는 무일(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서경에서 단 한 편을 고른것이 바로 이 周書의 '無逸'편이다. 깨어있는 자는 결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알을 깨고 나오는 자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날개를 얻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각 고전 전체의 내용을 전부 읽고 해석을 달고 뜻을 풀이하는 주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론'이라는 화두를 통해 각 고전들이 전하고 있는 의미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신영복선생님의 말대로 각 고전이 태어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과 사상사를 무시한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한다는 의미로 읽히는 無逸을 내 생활의 반성으로 읽어도 좋겠지만.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평소 개인의 변화와 노력으로 이 사회가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의 이 말에 무릎을 치며 공감한 것도 바로 사회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관점의 탁월함때문이다. 무심코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으며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내 안의 변화로부터 오다는 믿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의 변화를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좀처럼 풀기 어렵다. 알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論語에서 말하고 있는것처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知는 知人이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과 인간에 대한 앎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은 바로 공자의 말은 인간 관계에 대한 변하지 않는 진리로 여겨진다. 평소 나도 즐겨사용하는 말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얼마나 당연한 말인가.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평소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지켜지기만 한다면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실천 방법이다. 하지만 쉬울수록 더 지키기 어려운 것이야 말해 무엇하랴마는.

목표의 올바름을 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盡善盡美라 합니다. - 周易

觀於海者難爲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 孟子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들에 공감하고 감탄하며 부끄러워하다가 끄덕이다가 한숨 쉬다가를 반복하는 일은 드물다. 그것이 만화책이나 소설책이 아닐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신년벽두에 참 좋은 책을 만나 새해를 즐겁게 시작한다. 내가 서 있는 이 사회와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도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인식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많은 방법들과 만났다. 또 생에 대한 또다른 시선과 사유방식을 경험하며 이 책을 놓는다. 조금 더 깊이있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야 겠다. 노자의 좋은 구절 하나를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다 - 老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2003년 봄에 읽은 것으로 기억되는 표정훈의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는 독특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스스로 규정짓기 힘들어 보이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명확하지 않은 표정훈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양하게 펼쳐진 스펙트럼처럼 그의 전방위적 독서 이력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책에 대한 열정을 실천으로 옮기며 책을 수집하고 읽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표출하는 모습이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실용주의적 책읽기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줄만한 내용과 알지 못했던 정보 차원의 ‘책에 관한 이야기’ 들이 많았던 책으로 기억한다. 대학과 학원에서 영어를 강의하며 번역에 몰두하고 있는 동생에게 권했던 책이기도 하다.

1년여만에 다시 내놓은 <탐서주의자의 책>은 흡입력 있는 제목으로 책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책의 반은 독자가 만든다는 대표적인 이론이 ‘수용자 반응 비평’이란게 있다.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정말 다양할 듯 싶어 흥미롭다. 사실 개인적으로 짜증이 좀 났다. 돈도 좀 아깝고. 나는 책을 사면 우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하는 오래된 버릇이 있다. 찾아보기 전까지 268페이지 본문 시작이 17페이지다. 책사는 데 가장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내 방식은 변하고 있다. 아무 책이나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책도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겠으나 실망스럽다. 부제처럼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 · 사 · 철 기록’을 훔쳐보고 싶다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을. 기대치가 너무 높았는지도 모른다.

읽지 못한 고전들을 더 읽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책들을 다시 읽고 새로 나온 좋은 책들을 접하는 즐거움들이 계속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문제는 나의 게으름이다. 서점에 가 직접 책을 고르고 만져보고 뒤적여보는 수고로움을 포기한지가 꽤 된다. 바쁘다는 핑계가 따르지만 이유가 되지 못할 것이다.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적절한 활용을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그렇다고 표정훈의 객관적 평가를 부정적으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의 책에 대한 사랑과 정성, 다양한 지식과 폭넓은 독서를 통해 다음에 내놓을 책을 기대한다. 그의 말대로 '통합적 복합성(Integrative complexity)'에 기초한 나름의 책을 기대한다. 관심 분야별 선택과 집중에 의한 상호관련성 높은 분야별 교양서도 좋겠고, 전문서적들에 대한 일반들의 이해를 돕는 책도 좋을 것이다. 책 자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수필식으로 소개하는 책은 이제 그만 두고 책꽂이 한켠에서 자주 손이 가는 ‘책에 관한 책’을 기다려 본다.


20050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1
토니 마이어스 지음, 박정수 옮김 / 앨피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득 ‘우리 문화의 근대성은 모두 서양에 빚지고 있을까?’하는 물음이 생긴다. 근대의 개념조차 모호하며 문화적 지평은 고사하고 그 뿌리조차 척박한 이유는 일제 식민지의 유령으로부터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닐까?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는 영국의 투틀리지 출판사의 야심작 시리즈 1권이다. 세계의 지성들을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라는데 앞으로도 읽어볼 만 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린비에서 출판한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의 1권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었고, 2권이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었다. 그 이후에는 읽은 책이 없지만 두 권 모두 값진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펴내는 시리즈는 대개 1, 2권에 승부(?)가 결정된다. 이 책의 구성과 형식이 독특하다. 지젝의 사상과 저작을 중심으로 그의 논의를 정리해 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용어와 개념 정리는 친절하게도 각 단원마다 요약 정리를 해 주고 있다. 중간에 지젝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의 사진과 개념을 설명으로 덧붙이고 있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20세기의 가장 명민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처럼 학문의 한 분야를 개척한 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젝은 적이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해체주의자, 푸코주의자, 페미니스트들, 데리다주의자, 하버마스주의자들 모두 제젝을 싫어한다. 그것은 지젝이 라캉주의자로 스스로 선언한 데서 연유한다. 학계는 늘 지젝보다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의 비판이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사유의 하나”라고 불리는 지도 모른다.

  영국인 저자 토니 마이어스는 슬로베니아 출신 지젝을 ‘끊임없이 놀라는 사람,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철학자, 진실로 구멍을 드러내는 부정어법, 할리우드 영화광, 프랑스 철학통, 대통령 후보’이며 ‘오늘날 가장 탁월한 사상가’라고 정의한다. 1981년에 철학 박사학위를, 파리 8대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젝의 사유는 예사롭지 않다.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이 없다는 이유로 탁월한 철학자로 평가받지 못하지만 그 자리를 할리우드 상업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로 보충하고 있다.

  지젝은 변증법이라는 사유의 형식 혹은 방법론을 헤겔에게 제공받았다. 그의 작업에 실천적 영감을 제공한 사람은 마르크스다. 지젝이 시도하는 것은 마르크스적 사유 전통, 특히 이데올로기 비판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젝의 분석틀과 개념용어를 제공하는 역할은 라캉이 맡는다. 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상징계와 실재계의 개념이다. 그는 이 두 세계의 접속지점에 ‘주체’ 개념을 위치시키고 그것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과 마르크스와 라캉, 세 명의 철학자는 슬라보예 지젝의 ‘주체’를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셰링이나 루이 알튀세, 오토 바이닝거 등을 동원하여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근대를 비판하고 라캉의 ‘여성은 남성의 증상이다’에 대한 오해를 설명한다. 

  슬라보예 지젝이 신선하고 매력적인 21세기형 사상가로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숨쉬고 일상에서 접하는 대중문화와 정치현상들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독특한 방식의 사유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키취적 문화 게릴라쯤으로 평가될 수 없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향락과 그것의 정치적 부침’이라는 한국어판 출판을 기념하며 보냈다는 지젝의 최근 글로 책을 끝맺고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으로 조만간 지젝을 다시 만나야겠다. 정치적 성향과 세상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는 우리 시대에 주목받는 대표적인 사상가임에는 틀림없다.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의 사상과 행보에 주목받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일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듯 싶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분노하며 부시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히치콕이나 할리우드 영화에 나타난 이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과 현대인들의 다양한 정신세계를 분석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슬라보예 지젝 사상적 변모와 흐름을 소개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200505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통해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가들이 많다. 헤겔에게서 사유와 방법론을 제공받고 자크 라캉의 분석틀과 개념 용어를 사용해서 마르크스로부터 실천적 영감을 제공받았다는 슬라보예 지젝은 철학자이면서 실천적 문화 비평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진중권의 인문적, 미학적 사유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식틀과 벤야민에게 받은 영감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밝히고 있다. 2002년쯤 내가 읽었던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첫 책은 철학자 김용석의 <깊이와 넓이 4막 16장>이었다. 김용석 또한 정확한 개념 정립과 논리적인 글쓰기로 문화 현상들을 꼼꼼하게 다룬 적이 있다.

  90년대 기억에 남는 몇 권의 책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꼽는다. 마그리트와 에셔를 통해서 그가 보여준 미학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돌하게 명민한 분석과 거침없는 목소리로 현실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진보 논객 ‘진중권’이 아니라 책 속에서 만나는 그의 목소리는 다소 진중하다. 하지만 여전히 재치있고 감각적인 문장은 여전히 독자를 흡수하는 힘을 갖는다.

  “상상은 정신의 놀이다. 상상을 할 때 정신은 노동을 하지 않고 놀이를 한다. 미래에는 노동이 유희가 될 것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예언은 맞았다. 비록 인류의 미래는 공산주의의 것이 아니었지만, 상상력이 생산력으로 진화하면서 노동은 점차 유희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윤리학은 미학이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도 실현되고 있다. 상상력은 미학의 영역이며, 이 영역은 진위와 선악의 피안에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 ‘상상력 혁명’중에서

  스스로 밝힌 위와 같은 서문의 내용이 이 책의 의미를 대변하고 있다.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 미디어 시대에 활자 매체인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진중권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의 문화 텍스트로는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비선형, 순환성, 파편성, 중의성, 동감각, 상형문자, 단자론이라는 일곱 개의 키워드를 내세워 이것을 다시 일곱 개의 주제로 일별하고 있다.

  우연과 필연(red)-주사위/체스/광대, 빛과 그림자(orange)-카메라 옵스쿠라/라테르나 마기카/그림자놀이, 숨바꼭질(yellow)-아나몰포시스/인형풍경/물구나무, 수수께끼(green)-애너그램/아크로스틱/리버스, 사라짐의 미학(blue)-피크노렙시/마술, 순간에서 영원으로(navy blue)-불꽃놀이/만화경/미로, 다이달로스의 꿈(purple)-종이접기/오토마타/정리정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배열하고 묶는 방식으로 흥미진진한 텍스트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색인처럼 사용되는 색은 독특한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다만 각 주제 아래 묶인 놀이들이 제각각 독립적이지 않고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특징은 평면적 테스트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 책은 90도로 돌려 보고 뒤집어 보고 비스듬이 놓고 째려보고 별 짓을 다하며 읽어야하는 재밌는 놀잇감이다. 아무도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에셔나 김재홍의 그림 등 <미학 오딧세이>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이 많아 익숙함 속에서 그의 텍스트들 자체가 또 하나의 하이퍼 링크 기능을 갖게 되어 간다고 볼 수 있다. 또 같은 문단과 문장들이 반복되는 장치를 통해 순환성과 중의성 등 앞서 제시한 일곱 개의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이 책의 재미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어린 시절 익숙하게 보아왔던, 혹은 지금 여전히 즐기고 있는 놀이와 사물로부터 자연스럽게 상상력의 세계와 놀이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또 하나는 책의 구성과 치밀한 글쓰기 전략으로부터 오는 신선함과 흥미다. 대부분의 인문학 텍스트의 진지함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물론 내용과 소재 자체에 대한 즐거움은 기본이다.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 500년 전에 이미 기술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던 다빈치. 그는 호기심에 한계가 없고 상상력에 구속이 없는 ‘영원한 소년’이었다” - 영원한 소년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상상력 혁명’은 결국 ‘영원한 소년’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순환 고리를 에셔의 작품 ‘메타몰포시스’로 보여주면서 책을 끝내고 있다.

  맥루한의 미디어 시대에 대한 경고는 책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단언할 ?없겠다. 하지만 적어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과 같은 신선하고 재밌고 즐거운 그러면서도 상상력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책들이 있는 한 활자 매체를 떠날 생각은 없다. 늘 새恝?수많은 없겠으나 진중권의 또 다른 책을 기다린다.

  하늘이 흐리다. 비가 올 것만 같다. 김광석의 ‘거리에서’가 가슴에 사무치는 날이다.


200505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