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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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책벌레로 부르기엔 한 마디로 규정되지 않는 다치바나 다카시.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불러야겠다. 그렇다고 다치바나 다카시를 정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인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내가 그를 인상깊게 바라본 것은 고양이 빌딩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우연히 개인 전용 도서관이자 집필 공간인 고양이 빌딩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도대체 얼마나 읽고 써야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이후에도 간혹 그의 책을 읽었지만 그가 일하는 방식이나 그가 쓴 글들만큼 그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책에 관한.

  어찌 되었든지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책에 관한 책과 독서에 관한 책들은 앞으로도 계속 읽어나가겠지만 정답은 없어 보인다. 이 책도 결국 ‘다치바나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은 없다는 것이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나름의 목적에 따라 방법이 결정되고 실천적인 힘에 의해 변화를 모색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이론적인 독서 모형은 공교육 기관에서도 적용시키기 매우 힘들다. 읽어 온 책의 이력이 다르고 배경지식이 제각각이며 모형의 적합성과 방법,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누구에게나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방법들이 동원되긴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이다. 특히 독서의 목적과 결과는 천양지차로 나타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도 없다.

  다치바나는 책읽기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체크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나도 물론 그랬다. 충족되지 않는 욕심과 목적 없는 호기심은 넘쳐나지만 시간은 늘 부족하다. 지나치면 폐인모드가 되겠고 현실 생활이 불가능하다. 직업으로 삼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린 것 같으니 적절한 선에서 타협의 손길을 내민다.

  불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다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다. 강철 같은 인문학적 토대 위에 자연과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고 전문가와 인터뷰하고 그것을 글로 쓴다. 가장 이상적인 지적 활동가라고 볼 수 있다. 편협한 분야의 깊은 연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원에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분과학문을 뛰어넘지 못하는 교수들의 지루함이다.

  역동적으로 자가 발전하는 발전소처럼 다치바나는 스스로 지식을 가공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며 종횡무진 책의 세계를 주유한다. 그것이 직업이 되고 일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행복하고 기쁘게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인생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을 즐길 줄 알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다치바다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 책은 다치바나의 독서론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의 서재와 작업실을 보여준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내용이 책의 핵심이 되겠지만 그 책의 제목이나 내용보다 과정들이 흥미롭고 경탄스럽다. 누구에게나 삶의 이력이 있듯이 읽어 온 책의 이력이 있을 것이다. 항상  실천과 변화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사람을 표현하는 좋은 이력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면 된다. 서재가 없다면?

  책에 미친 사람들의 농담이라도 좋다. 사방 책으로 둘러 쌓인 구석방에 처박혀 해가 뜨는 것도 달이 지는 것도 모르고 책장을 넘기다 기지개를 켜고 숲속을 산책하다가 또 다시 책장을 넘기면서 한 3년만 지낼 수 있다면 어떨까? 주변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오해가 있었다. 다치바나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고 속독을 권하는 이유가 알고 싶었다. 단편적인 이야기나 한 두 번의 인상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대상을 규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문학을 통해 정신 세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래도 사물을 보는 눈이 사려 깊지 못합니다. 사물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식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문학이라는 세계는 처음 겉으로 나타난 것을 한 번 뒤집어 보면 다르게 보이고, 다시 그것을 뒤집어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표면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문학인 것입니다. - P. 132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을 만큼 고전을 두루 섭렵했고 문학과 철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보는 통찰력을 기른 그가 소설 무용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책 읽기의 방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산처럼 쌓인 자료와 관련 서적을 뒤적이며 필요한 부분을 속독하고 정리해야 하는 경우 당연한 독서법이다. 바로 이런 목적이라면 ‘실전’을 위해 다치바나의 충고를 눈여겨 볼 만하다.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 보라.
6. 속독법을 몸에 읽혀라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11.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 P. 83

  다치바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아니다. 독서의 목적에 따라 책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상식 수준의 발언에 불과하다. 오독은 자유지만 오해를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자각! 나는 왜 무엇을 읽고 쓰는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

  책의 내용과 방법은 독서의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목적 없는 산책은 그것대로 방법과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지속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 아무 목적도 없다는 것이 하나의 목적은 아닐까? 이 책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다치바나식 독서법이지만 나는 질문만 늘어났다.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물론 계속 읽어나가면서.


0810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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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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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은 아직도 유효한가? 각종 위기설 속에서 책의 위기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곧 책의 위기를 의미한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과 영상 매체의 진화 속도는 지식과 정보의 수단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다.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보다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책이 가진 가치와 위력에 대적할 만한 것은 아직 찾기 힘들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상상력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은 인간의 지적 능력과 통찰력 그리고 사유의 범위를 무한하게 팽창시킨다. 인간의 사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을 우리는 에둘러 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보다 쉽고 간단한 방법을 찾아보지만 요령부득이다.

  책 좀 읽는다는 무림의 고수 중에 이권우라는 사람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을 내 놓았다. 그린비에서 인생역전 프로젝트 시리즈로 출판되어 <호모 쿵푸스>와 <호모 루덴스>에 대한 좋은 추억으로 별 고민 없이 주문했다. 책은 단순하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왜 읽어야 하는가’, 2부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책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에 답하고 있다. 간단하고 알기 쉽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럼 아주 잘 쓴 책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읽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들을 통해 진짜 책읽기가 무엇인지 그런 방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설득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해 보인다. 책을 읽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차적인 목표는 달성한 듯 하지만 중요한 것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내가 항상 딜레마에 빠지는 문제는 안 읽어도 되는 사람들 즉, 책벌레들이 이런 종류의 책에 관심과 흥미를 보인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깊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얼마나 읽을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저자가 말하는 바,  책을 읽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방법론을 거의 그대로 따라하는 나 같은 종류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지킬 수 없는 방법들이란 결국 이상적인 방법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처음부터 모두 해 보자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상황과 업무 혹은 관심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다. 결국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겹쳐 읽으며 확장시키고 글쓰기를 통해 정리하는 삶은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누구나 즐겁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우리의 교육 환경과 구조가 그것을 가르치지도 배울 수도 없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책의 말미에 ‘책 읽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제목을 보다가 깊은 한 숨을 내쉰다. 참으로 척박한 대한민국의 학교 현실 때문이다. 부모들의 요구 사항이나 학생들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 정도를 감안하고 대학 입시와 결부되어 고민하면 절대 답이 나오질 않는다. 논술 광풍이 몰아쳐 초등학생용 논술 대비 도서가 출판될 정도이니 무한 경쟁과 생존의 본능을 위한 책읽기 외에 다른 대안이 제시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쓰기 위한 읽기 교육을 향해’라는 에필로그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두 사람의 교사나 그에 뜻을 같이 하는 학부모 몇 명이 모여 대안 학교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학벌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대학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며 이상적이고 꿈같은 목표이기도 하다.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면 이 책은 참으로 불온하다.

  표정훈이나 조희봉을 통해 고수들의 일면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그리 큰 호기심이나 특별한 충격을 받을 일은 없다. 다만,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다루는 법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며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책으로 읽을 수 있겠다. 책의 목적 자체가 읽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혼자 생각한다. 인문학 분야에 두루 통달한 사람이 초보들을 위해 철학, 역사, 문학, 사회,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안내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수준과 내용을 일괄해주고 분야별로 정리해주며 차근차근 기본적인 특징과 방법을 설명해 주는 책은 없을까? 출판 관계자가 계시다면 혹 여쭙고 싶다. 그런 저자를 하루 빨리 발굴하고 탁월한 기획과 편집으로 하루 빨리 그런 종류의 책을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이 시리즈의 부제처럼 따라 붙은 ‘책읽기의 달인’은 필요 없다. 한글만 알면 누구나 읽는다. 문맹이 아니라 책맹이 늘어가는 세상에서 도대체 왜 아직도 책 타령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억지로 읽힐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세상에 수많은 즐거움 중에 책도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공감 정도는 얻어내야 할 것 아닌가. 책읽기의 달인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 달인을 부러워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 말이다.

  막연하게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필요성과 방법을 모르는 동생에게, 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훨씬 많은 세상에서 왜 굳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친구에게, 책만 보면 알러지 반응으로 얼굴이 벌개지는 후배에게, 드라마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어머니에게, 지금 이 나이에 책은 무슨 책이냐고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은근슬쩍 선물해 볼 수 있는 유쾌한 책이다. 

  책읽기는 기본적으로 혁명이다. 지금 이곳의 삶에 만족한다면 새로운 것을 꿈꿀 리 없다. 꿈꿀 권리가를 외치지 않는 자가 책을 읽을 리 없다. 나를 바꾸려 책을 읽는다. 애벌레에서 탈피해 나비가 되려 책을 읽는다. 세상을 바꾸려 책을 읽는다.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체제를 부수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려 책을 읽는다. 그러하길래 책읽기는 불온한 것이다. 지배적인 것, 압도적인 것, 유일한 것, 의심받지 않는 것을 희롱하고, 조롱하고, 딴죽 걸고, 똥침 놓는 것이다.
  변신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픈가. 그렇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보라. 혁명전선에 뛰어든 체 게바라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 않은가. - P. 76


08092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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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2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이책 서평단으로 받아서, 읽어야 되는데... 또 왠지 손이 안가고 있어요. 인식의 힘님 리뷰 덕에, 읽을 마음이 좀 나네요 ^_^

sceptic 2008-09-25 19:18   좋아요 0 | URL
그냥 편안하게 읽히던데요...^^ 손대면 금방 책장 넘어갈 거예요.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 비평정신 1
박홍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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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기본적으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기 위한 안내다. - P. 19

  나라 안에서 고도의 자율성을 갖는 지역사회와 집단이 존재해야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 존재해야 하고, 그 인간들로 자유와 자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와 자치의 인간과 사회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 P. 491


  첫 번째 문장과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저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 문장을 시작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나 목적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고 가장 기초적인 전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전체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마지막 장의 정리이기도 하다. 어쨌든 첫 문장과 마지막 문단의 인상과 중요성은 책 전체를 일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박홍규의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전에 박홍규의 사상적 배경을 알고 있거나 다른 저서를 읽어온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더구나 이상 열풍처럼 우리에게 아렌트가 전해지고 그녀의 책을 접한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첫 문장에서 제시한 두 권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순서대로 읽어야 할지 박홍규의 안내서로 만족할 지 망설이고 있지만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은 인연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70여 년 전에 출판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50여 년 전에 출판된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 어떻게 묶일 수 있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현실 정치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두 저서에 나타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본질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들의 계급적 위치와 사상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두 권의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고 점검하는 책이다.

  들불처럼 타올랐던 광화문의 촛불이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로 어떻게 꽃 필 수 있어야 하는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바라볼 수 있는지 반성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시대를 보는 안목과 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니다. 시민 혹은 국민으로 명명되어온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양식은 권력자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었고 조작된 욕망과 가치는 세상을 미혹케 한다.

  이 책은 내게 2008년의 대한민국을 위한 망원렌즈와 같은 역할을 했다. 현실의 한 복판에서 개인이 서 있는 정치 지형도를 점검하고 정치와 경제,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은 그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전망과 성찰이라는 관점에서 박홍규의 주장과 논의는 보다 활성화되고 다양한 비판과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홍규는 아렌트를 번역, 소개한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거침없이 비판하며 그들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태도에 일격을 가한다.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자화상에 대한 도전이며 당찬 주장들이 여과없이 전개된다. 조금은 위험스러워 보이는 표현들이 특유의 논리와 일관된 주장으로 펼쳐진다. 그 모든 저자의 주장이 진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토크빌과 아렌트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충분한 깊이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토크빌의 사상이 아렌트에게 얼마큼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하고 있으며 아렌트의 보수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공통점이 우리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일한 정치체제로 인식하고 있는 우매함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위해서도 적절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그들의 저서를 꼼꼼하게 읽어나가며 인용하고 비판하고 해석하며 이전의 논의들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고 있다. 또한 각 장은 두 사람의 주요 저서와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의 개인적인 독법과 두 사람의 주저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실 정치에 대한 적용 문제는 주관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존경하는 인문학자의 용기로 비춰졌다.

  평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그것이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현실정치에서 실현될 때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예지력과 탁월한 안목을 시대를 넘어 현실의 문제를 점검하는 잣대가 된다. 두 사람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하이예크처럼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낳는 것이고, 세계화에 의해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비평정신 총서 1권으로 이 책 뒤에는 이택광과 김영민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려진다. 세상은 어떤 곳인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들처럼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080817-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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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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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닝빵을 밤에 자주 뜯어 먹는다. 아이 주먹만 한 빵 속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미건조한 맛이지만 맛이 섞여 있지 않아 우유와 먹기 좋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밤에 책을 읽다 허기질 때 공복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빵보다 뜯어먹기 좋은 것이 책이다.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책을 놓아두고 무료한 시간이면 언제든 책을 펼쳐든다. 산책을 나가면서도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나서야 마음이 편하다. 여행을 갈 때는 물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체의 일부처럼 여분의 책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불안하지 않다.

  가끔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다. 어디엔가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비웃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나에게서 그들의 모습을 본다. 중독 혹은 집착에 가까울 때도 있지만 쉽게 조절할 수가 없다. 그리 나쁜 습관도 아니고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몸에 해롭지도 않다면 굳이 끊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고 자위해 본다.

  어쨌든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책이 없었다면 나는 참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이나 생활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상과 영혼의 색깔을 의미한다. 지금도 무언가 배울 것이 있으리라는 얄팍한 기대로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나를 키운 것 팔할이 책이었다. 물론 공부와 책읽기가 별개일 수 없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많은 것들을 나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직접 확인했으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책장부터 기웃거리고 누구를 만나든 그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확인한다.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와도 배경으로 서있는 책장의 목록을 확인한다.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없으나 관심은 온통 한 쪽으로 집중된다. 읽고 또 읽어도 언제나 목마르다. 영혼을 위한 처방전은 백약이 무효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책 이야기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책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책, 세상을 탐하다>는 책벌레들의 경험담을 모아놓은 책이다.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기 위해 책을 선택했지만 책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는 29명의 책벌레가 책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어 놓는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추억들이 재미있고 정겹다.

  때때로 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관심을 갖던 시절부터 책을 읽지 않는 현실에 대한 개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변주된다. 만화가와 코미디언, 시인, 소설가, 출판인, 선생님, 언론인과 NGO에 활동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책사랑은 애틋하기만 하다. 책과 함께 생활하며 꿈을 꾸고 늙어가며 사는 모습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만화경처럼 즐겁기만 하다.

  제한된 분량에 자신의 간단한 경험이나 추억, 책에 관한 생각이나 일화를 소개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읽는 사람은 향좋은 뷔페의 음식을 음미하듯이 그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즐겁게 들어주면 그만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깊은 공감과 긍정의 미소를 보내면 될 것이고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책을 가까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 이외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1년을 보내는 학생과 선생님이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서 준비하거나 꿈꿀 수는 없다. 일단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고 욕심을 내자면 한이 없는 책읽기의 진경을 맛본다면 과연 공부도 즐거울 수 있고 읽어야 할 책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뚜렷한 목적을 위한 책읽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재테크, 자기계발서의 열풍이나 칙릿으로 분류되는 가볍고 감각적인 소설에 한정된 독서는 편식보다 정신건강에 해롭다. 의무여서는 안되겠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꾸준한 독서는 정신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인생관을 바꾸어 준다. 세상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고 사람에 대한 안목을 만들어주며 나의 행동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을 찾아 줄 수도 있다.

  책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널려있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들과 공감하며 책 속에서 많은 꿈을 꿀 것이다. 절대 늙지 않는 ‘청년 정신’을 잃지 않게 위해 노력할 것이며 세상이 어떤 곳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기 위해 공부할 것이다. 그것은 목적없이 걷는 산책과 같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며 혹여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이 보인다면 주저없이 그 길을 걷고 친구가 생기면 발걸음을 맞춰 볼 것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은 이미 가을에 대해 속삭였고 이제는 서늘한 바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책상에 쌓여있는 몇 권의 책이 있고 밝은 불이 있기 때문에 오늘밤도 행복하다. 중요한 시험이나 무더위 따위는 책 속에 묻어 버릴 수 있을 듯하다. 내일이 지나면 이제 홀가분하게 다시 책 속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벌레들이여, 안녕들 하신가? 각자 제자리에서 열독!


080813-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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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연구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전기순 옮김 / 풀빛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사랑에 대해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의미의 진폭이 너무 크거나 모호해서 말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어렵고 추상적인 대상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아무리 쉽게 말한다 해도 미진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한 것이 사랑이다. 그것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느끼고 겪는 과정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모든 경우의 수를 나타내는 사랑은 인류와 함께 생성했으며 멸종되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

  인간은 과연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을까? 가장 바보 같은 질문으로 시작하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사랑의 종류와 범위를 구별하지 않고 말하기 어렵지만 진화생물학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사랑은 종족 보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밖에 다양한 사랑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말이다.

  <사랑에 관한 연구>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스페인의 철학자 가세트의 것이기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명성에 기댔다가 X되는 경우도 많지만 안전한 선택의 유혹을 떨치기도 힘들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책이 많이 팔릴 거라고 출판사는 믿지 않았겠지만 그 예상이 별로 빗나갈 것 같지도 않다. 철학자가 말하는 사랑이라니! 그러나 재밌다. 분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밑줄로 책을 지저분하게 했을 정도이니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책이었다.

  그것이 경험에 기댄 긍정과 공감이든 이성과 논리에 의한 개념이든 사랑에 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을 만나게 된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가세트의 삶과 사상을 먼전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사랑의 본질에 관하여, 남자의 심리와 본능, 무엇이 남자의 사랑을 완성시키는가? 라는 제목으로 1, 2, 3부가 구성되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싸구려 연애담에 불과한 책으로 보인다.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실전 테크닉이나 방법론으로 잘못 알고 사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또 그러면 어떤가? 어차피 가세트의 사랑은 남자가 여자가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썼다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니.

  사랑의 본질에 관한 부분들은 한 문장 한 문장, 한 줄 한 줄이 모두 경구처럼 깊이 있고 분석적이다. 깊은 성찰과 사유가 없이는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사랑은 고통의 다른 말이며,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에너지라는 정의에서 출발한 가세트는 스탕달의 <연애론>을 비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잘못된 경험의 결과로, 스탕달은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며 결론이 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속성이야말로 사이비 연애의 특징이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사랑은 태양과 모든 별들을 움직일 만큼 위대하기도 하지만 한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가는 욕망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쉽게 인정하거나 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정의나 개념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이 본능적인 감정에 대해 저자는 때로는 감성과 직관에 의존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험과 사유에 의존하기도 하면서 생각의 실마리를 잘 풀어나가고 있다. 철학자가 바라본 ‘사랑’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그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랑, 다양한 사랑들을 정리하고 규정짓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두면 될 듯하다.

내 생각에 온전한 사랑이라면, 환경과 거리상의 장애가 충분한 애정을 공급하는 걸 방해하여 애정의 굵은 선이 가는 선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말라비틀어진 상태에서도 감정의 동맥은 사랑을 끊임없이 담아 심장으로 옮기는 법이다. 그게 제대로 된 사랑의 운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 적어도 감정의 본질만은 손상되지 않는 바로 그런 사랑. - P. 38

  우리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로망이며 삶의 이유일 수 있다. 이 시대의 사랑은 과연 어떠한가? 전 존재가 합일될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황과 조건, 현실과 미래가 복잡하게 계산된 사랑만이 결실을 맺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이상적인 사랑과 늘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랑만큼은 그렇게 쉽게 속단하기 어렵다.

  가세트는 19세기 말에 스페인에서 태어나 20세기 초, 혼란스런 세계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조국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정권에 신음하고 있었고 오랜 기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는 개인적 경험이 사랑에 대한 색다른 견해를 얻는데 일조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가 보여주고 말해주는 사랑은 남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감정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사랑의 본질이나 일반론에 비추어 논의가 전개되지만 남성인 가세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한계가 아니라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한다면 지나치게 관대한 평가일까?

  김영민의 책을 읽을 때처럼, 아니 대부분 철학자의 글들이 그러하지만 한 문장도 긴장을 늦추거나 편안하게 논의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다. 집중력과 긴 호흡의 사유가 필요하다. 조용하고 1시간 이상 시간이 확보될 때 이 책을 꼼꼼히 읽고 공감하며 곱씹을 수 있다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편적인 문장과 표현들로 새로움을 주기는 어렵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은 그렇게 쉽게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을 쉽게 드러내고 표현하며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가세트는 자신의 사유와 경험들을 이전의 논의들에 대한 비판과 사례를 들어 정확하고 꼼꼼하게 정리해 내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어렵고 난해한 문장들은 의역을 하고 생략을 하기도 했다는데 약인지 독인지 알지도 못하고 먹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난처하다. 제대로 읽은 것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편집되거나 역자에 의해 재해석된 문장들이 주는 울림은 원저자의 그것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페인어를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쉬움은 남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가슴에 남을 만한 책이다.

온전한 사랑이란 일단 태어나면 소멸되지 않는다. 거짓말 같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 P. 37


08071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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