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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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아주 천천히 형성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 페이스 볼드윈(P. 27)

  처용은 아내를 범한 역신을 용서한다. 이미 빼앗긴 것을 어쩌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체념과 관용으로 당황스런 상황에 대처한 처용과 그 아내의 후일담이 궁금하다.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만날 때마다 사람들은 인생 매뉴얼을 뒤적거려 보지만 대략 난감일 뿐이다. 정해진 답도 없고 뚜렷한 해결책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문학사에 등장하는 처용을 통해 생의 불가해함을 논하는 것은 가벼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각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던 임꺽정, 어머니의 부재와 눈먼 아버지 사이에서 목숨을 건 효성을 발휘하는 심청 등 비정상적인 판단력과 정신적 상처를 가진 몇몇 주인공들만 살펴보아도 그들의 고통이 만만치 않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고통과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고 심각성이나 깊이에 대해 주목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현실에서는 어떠할까. 몸에 난 상처는 금방 알지만 영혼이 아픈 것은 알기 어렵다. 아니, 정상에서 벗어난 것인지 성격인지 알 수 없고, 원인이 무엇인지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직도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1980년에야 미국 정신과 학회에서 질병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불과 30년 전에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그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하는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적응 능력을 압도하는 특별한 사건’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강렬한 두려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외상 사건은 대개 폭력성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을 잃게 되는 상실감이 트라우마와 연관되는 경우도 많다.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은 ‘트라우마’와 영화의 만남을 주제로 하고 있다. 종합예술인 영화는 인간의 희노애락, 복잡한 사회현상, 역사의 재해석 등 무한한 상상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장르가 되었다.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어떤 주제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학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영화의 이면에는 다양한 삶과 학문이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 책은 영화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을 찾아낸다. 너무 많아 선별적으로 다루어야 할만큼 흔한 인물유형일 수도 있겠으나 ‘트라우마’라는 정신적 질병에 초점을 맞춘다면 범위가 좁혀지겠다. 영화를 통해 바라본 트라우마라고 하면 이 책에 대한 성격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될 것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문화를 습득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형성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화할 수는 있지만 가족과 친구 그리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형성된 정서와 인간에 대한 믿음은 제각기 달라질 수 있다. 성장과정과 사회적 환경, 개인적 체험과 특별한 경험에 따라 현재의 모습이 결정될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지도 모른다. 육체적 상처를 넘어 정신적 상처까지 돌볼 겨를이 없었을까? 정신분석학의 토대를 마련한 프로이드 이후에도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대해 그리 깊고 넓게 알지 못한 것 같다. 최근에 와서야 인간의 영혼에 대해, 육체가 아닌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치유 가능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단순한 정신적 고통, 스트레스와 질병 수준으로 다루어야 할 수준 사이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부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질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이 병원에서만 다루어질 필요는 없다. 자신이 겪는 고통과 증상에 대해 스스로 진단해 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책은 24편의 영화를 통해 각기 다른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을 생각하며 우리 사회를 반성하게 되었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을까마는 이 책은 질병으로서 ‘트라우마’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그 치유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중간에 ‘트라우마 공화국, 대한민국’이 주목할 만했다. 작은 하나의 파트로 끝났지만 사실 사회적 문제는 영화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조망해볼 수 있는 문제다.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의 증상과 분석 그리고 치료에 대해서 또 하나의 책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그만큼 심각하면서도 재미있는 주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대사, 행동, 증상들을 통해 ‘트라우마’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어 읽는 사람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각 장 뒤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의학적 지식과 소견은 정보 제공을 하면서 다른 영화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두어 재미있게 읽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장소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기 반응하고 상처받고 표현한다.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든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깊은 상처가 남았다면 불행한 사람이다. 환자가 되어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일이지만 스스로 그 원인과 치료까지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긍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사고, 네 잘못이 아니라는 외침, 가족 간의 소통, 친밀한 관계 속의 교감, 진정한 고백 등 영화의 장면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개연서 있는 허구라는 점에서 이 책은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듯 느낌을 받으며 읽을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도 없어 보인다. 지나친 해석일 수 있지만 잠재적 환자들이 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심각한 수준에 이른 개인적 불행과 사회적 현상에 따른 구조적 모순들은 점점 더 불행의 일반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들을 한 편씩 보면서 그들과 동일시한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과 동정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아주 작은 평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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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심리학 - 가르치는 사람들을 위한 행복한 치유
토니 험프리스 지음, 안기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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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생님’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겸손해져야 한다. 무지의 상태에서 앎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먼저 살았던 사람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닐까? 교사는 많지만 스승은 찾기 힘들다는 말들을 쉽게 한다. 여기서 교사는 단순하게 지식을 전수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고 스승은 깨달음을 준 존경의 대상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교사와 학생은 많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득하기만 하다.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가리켜 21세기의 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말의 함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한 인간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단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기준과 해석을 달리하면 교사나 스승이나 그저 평범한 범부일 뿐이다. 다만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무엇을 배웠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교사가 될 수도 스승이 될 수도 있다.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래포(rapport)가 형성된 후에야 관계가 형성되고 신뢰가 쌓이며 지식 너머의 전 인격적 합일과 동화가 이루어진다. 가르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스승이 될 수 없다.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되고 학생들의 인격과 인권 또한 교사의 그것과 똑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돈독한 관계가 형성되기란 좀체로 힘들다. 학생들은 발달 단계나 성장과정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관심을 가진다. 심리적 태도와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의 역할과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 다양한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 그래서 토니 험프리스의 <선생님의 심리학>은 눈에 띠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들을 위한 행복한 치유’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예상 독자가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 상황과 심리상태를 교사에 맞추고 있다. 학생, 동료, 관리자와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와 그때 느끼는 심리상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관한 조언과 충고를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교사는 ‘철밥통’으로 불린다. 일반인들은 심리적 스트레스와 갈등과 긴장을 짐작하지 못한다. 일부 타성에 젖은 교사들로 인해 불신 받는 전체 교사들은 대한민국 전체 교사들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교사들은 행복할까? 이 책에서 말하는 ‘선생님은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 자부심이 높은 선생님은 흔들리지 않는다, 교무실에서 즐거운 선생님 되기’ 등 각 장의 제목은 매력적이다. 그 원인을 진단하는 저자는 직접 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수많은 교사들의 심리치료를 통해 쌓은 해결방안까지 제시한다.

  결국 선생님과 학생을 위한 치유의 심리학은 관점과 관계의 문제로 요약된다. 저자는 부적응 행동이 언제나 옳다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한국의 교육환경은 나름의 독자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문화가 다른 서양의 관점이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근대 이후 탄생한 ‘학교’라는 공간과 교사, 학생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명의 교사가 40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수업과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업무는 학교 환경 자체의 한계를 말해준다. 그 속에서 교사 자부심을 갖고 거의 완전한 인격체가 되어 어떤 종류의 학생이든 맞춤식 교육과 상담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학교가 불행한 곳만은 아니다.

  꿈꾸는 아이들과 그들이 믿는 선생님이 존재하는 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복한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교육의 최전선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때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매우 힘겨운 삶이다. 업무 곤란도와 스트레스의 정도를 명시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는 데서 교육 문제를 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바라는 원만한 학교는 가능한가? 저자는 효과적인 학교, 효과적인 지도자, 시스템에 대해 제안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공허한 울림으로 들린다. 하지만 철저하게 교사들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책으로 읽혀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들을 치유하기 위한 심리학이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행동지침으로 여겨할 내용들이 각 장마다 조목조목 항목화 되어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내용들이다.

  교육은 가치 중립적인가?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 가치 지향적인 인간이 어떻게 가치 중립적 태도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교육의 방법과 교사의 태도를 넘어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교사가 겪는 심리치료용 도서로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원인과 제도적 모순들에 대한 분석은 전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저자의 몇 가지 이야기는 귀담아 듣고 새겨두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당신은 누군가의 선생님이고 당신 아이들의 영원한 선생님이므로.

교실에서 선생님의 부적절한 행동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의사소통

- 학생들에게 소리 지른다.
- 학생들에게 명령하고, 학생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 통제의 수단으로 야유하고 빈정거린다.
- 학생들을 비웃고, 꾸짖고, 비난한다.
- 학생들에게 ‘어리석다’, ‘둔하다’, ‘약하다’, ‘게으르다’ 등의 꼬리표를 붙인다.
- 신체적으로 학생들을 위협한다.
- 학생들을 떠민다.
- 학생에게 폭력적이다.
- 학생을 서로 비교한다.
- 일부 학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 눈에 띄게 총애하는 학생이 있다.
-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한다.
- 학생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 지나치게 엄격하다.
- 수업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짜증을 낸다.
-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 학생들이 공부를 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 학생들에게 어떤 애정도 느끼지 않는다.
- 실수와 실패를 처벌한다.
- 학생이 학업에 어려움을 느껴도 도와주지 않는다.
- 실수를 해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 학생에게 공손하게 말하지도, 감사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 문제 행동에 대해 일관성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인다.

수업에 대한 선생님의 태도

- 시간을 낭비한다.
- 수업을 흥미롭게 진행하지 않는다.
- 수업 준비를 하지 않는다.
- 수업 시간 중간에 교실을 나간다.
- 지난 시간 수업내용을 습득하지 못한 학생을 배려하지 않고 다음 수업을 진행한다.
- 학생 중심이 아닌 프로그램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선생님 자신의 정서적 상태

- 자주 화를 내고 우울하다.
- 가르치는 일을 싫어한다.
- 자신의 교수 능력을 의심한다.
- 학급 통제권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 동료가 자신을 어떻게 볼지 걱정한다.
- 학생이 자신을 좋아해주길 바란다.
- 자부심이 낮다.
- 학생을 무서워한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긍정적인 행동 점검목록

1. 각 학생과 조건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2. 자부심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한다.
3. 사람과 행동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4. 학습이 능력의 지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5. 성공과 실패가 상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한다.
6. 실수와 실패를 학습 기회로 사용한다.
7. 성과보다는 노력을 강조한다.
8. 학습은 긍정적인 관련성만을 갖는다고 확신한다.
9. 자신의 필요를 학생에게 투사하지 않는다.
10. 학생의 문제 행동을, 선생님에 대해서가 아닌 학생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11. 항상 차분하고 긴장을 푼 상태를 유지한다.
12. 모든 학생에 대한 반응이 공정하고,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다.
13. 학생들을 자주 칭찬하고 격려한다.
14. 학생을 통해 드러나는 대처하기 힘든 문제에 긍정적이면서도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15. 모든 입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16. 수업 준비를 잘 한다.
17. 학생에게 명령하지 않고 요청한다.
18. 프로그램 중심이 아니라 학생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19.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학생과 갈등을 빚지 않는다.
20. 언제 도움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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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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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두려움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자유에는 두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고, 두려움의 주술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파고들어와 있기 때문이고, 또 그러한 두려움은 우리 대부분이 구체적으로 느끼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 P. 289

  남성과 여성은 단순한 성별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성 역할의 차이는 내면화되고 길들여지는 문화적 관습을 통해 완성된다.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차별로 계급적 차이가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처럼 여전히 여성은 사회적 약자에 해당된다. 결국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목적지향적인 화성에서 온 남자와 관계지향적인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책 중의 절반은 아마도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든 철학이든 역사든 말이다. 유전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들을 다루었던 진화생물학의 역저,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털 없는 원숭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여성과 남성의 본성은 사회적 관계와 둘 사이의 양상을 전혀 다른 형태로 이끌어간다. 지구상의 인구 수 만큼 다양한 형태로 관계가 만들어지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일반화시킬 수 있는 패턴이 존재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조금 더 의존적이라는 한 가지 사실은 엄청난 차이를 초래한다.

  플로렌스 포크의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는 심리 치유 에세이다. 20여 년간 심리치료를 통해 얻은 경험을 편안하고 침착하게 풀어 놓은 책이다. 저자 스스로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혼자’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알기 쉽고 현실감 있게 쓴 책이다. 이 책의 주제는 물론 철저하게 ‘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성과 다른 여성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혼자’라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들이 혼자 있는 것을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여성에 비해 독립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며 심리적으로 과감하고 결단성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대체적인 차이지만 실제 남녀 간의 관계에서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다. 진화생물학적 차이일 수도 있고 사회적 성 역할이 내면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은 경제력의 차이에서 온다. 얼마 전 발표된 2008년 3월, 남성 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 비율은 100대 39.1이다.

  여자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자조나 푸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남성 혼자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율이 극히 드물고 경제력이나 제반 조건을 고려할 때 여성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의 의식도 달라졌다. 이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여자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남성의 태생적 권력과 역할은 줄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혼자라는 건 삶의 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독신이든 이혼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혼자 산다는 건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는 혹은 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형태를 사람들은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을 한 번에 바꾸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보다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선택이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든 다양한 삶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

  저자의 말대로 자유에는 두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고 두려움을 극복할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혼자라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을 이겨내고 스스로 ‘혼자’라는 사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고 ‘고독’을 즐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별이나 이혼이 주는 ‘상실’을 이겨내야 한다. 프로이드의 말처럼 죽음만큼 커다란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가족과 친구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아Mournig and Melancholia>라는 책에서 “대부분 상실에는 죽음뿐만 아니라 상처받고 무시당하고 실망하고 애정을 받지 못하거나 낙담하는 상황까지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 P. 115

  연대와 소통은 여성들에게 매주 중요한 덕목이다. 그것이 남성보다 큰 여성의 장점이라고 믿는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말은 오로지 ‘결혼’을 통해서만 가능한 가족이기주의와 거리가 멀다. 자신을 찾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에게 중요하다. 사랑과 섹스, 자유와 행복에 대한 심리 치료 사례들과 저자의 충고는 우리들에게도 귀담아 들을 내용이 많다. 문화적 토양이 다르고 ‘독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를 것 같으면서도 어느 사회나 유사한 측면이 있어 놀랍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으로 혼자인 인간이 결혼을 통해 둘이 될 수는 없다. 삶의 형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영원할 수도 없다. 남편과 아이들이라는 환상과 행복한 가정의 파수꾼으로 자처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한번쯤 찾아올지도 모를 위기에 대해 저자는 ‘위기의 주부들’처럼 살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 묻고 있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의 형태라 할지라도 스스로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깨닫고 혼자라는 사실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충고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혼자 있음은 선물이다. 혼자 있음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것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두렵더라도 가슴을 열어 맞아야 한다. 또한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두려움이 사라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 기회를 얻게 된다. 살면서 맺는 모든 관계는 가르침을 준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주고자 하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나 자신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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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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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외친다. ‘껍데기는 가라’고! 언제 어디서든 본능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직설 화법이 김어준의 트레이드 마크다. 에둘러 표현하거나 복문으로 길게 빼지 않는다. 쨉과 스트레이트 전문이다. 기교파가 아니라 파이터다.

  한겨레를 보다가 김어준이 ‘충고’하는 코너라는 사실을 알고 일단 웃었다. 이후에 여러명이 돌아가며 인생상담을 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딴지일보와 인생상담과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상담이나 충고는 일단 진지하기 때문이다. 김어준과 진지함을 연결시키기 어려웠다. 그만큼 내게 김어준에 대한 인상은 강렬했다. 철저한 아웃사이더로만 보였다.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고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던 딴지일보와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카타르시스였고 유쾌, 통쾌, 상쾌함의 극치를 맛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첫 만남이 강렬했던 만큼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김어준과의 간접적인 만남은 계속됐다.

  신문에서 몇 번 읽다가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겠다 싶던 코너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건투를 빈다>가 그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김어준이 쓴 책이 아니라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이 쓴 책이기도 하다. 물론 김어준의 판단과 충고가 들을만한 것인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면 그들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

  상담 사례를 묶어 놓은 책이 대게 일반화 시킬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특별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나 감정들도 다루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들이 대부분이다. 유사한 사례들이 주변에 허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눈여겨보게 된다. 우리는 언제든 그런 감정이나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편에서 상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김어준의 불친절한 상담자다. 하지만 솔직하고 편안하다. 상담의 기본이 래포(rapport)형성이지만 김어준은 상대를 다독여 줄 마음이 없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풀어나가는 일반적인 방식의 상담이었다면 5분만에 졸거나 책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김어준은 가장 삐딱한 상담자다. 내담자가 아니라 상담자가 판단과 기준으로 충고한다.

  한마디로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든지 대충 타협하라는 말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지언정 돌려 말하거나 예쁘게 다듬지 않는다. 복문이 없을 만큼 짧고 명쾌한 문장들은 속이 시원하다. 적절한 비유와 예화들은 김어준식 상담의 꽃이다. 스스로의 경험들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충고하기 때문에 내담자는 쉽게 그 진정성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선택이다. 누구나 걸어보지 않은 길에서 망설인다. 멘토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선택과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다.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있단 말인가. 내담자들은 어쩌면 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약한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얻고 격려 받고 싶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매일 매일 경험한다. 그러한 순간들을.

  대한민국 고민의 최소공배수가 이 책에 모여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21세기형 질문들이 모여있다. 이 책은 시대를 읽어내는 또 하나의 생활의 역사가 되겠다. 먼 훗날 이 책을 뒤적이며 이 시대에는 이런 고민들을 했구나 하는 풍속사적 자료가 될 만도 하다. 여하튼 지루하지 않게 타인의 고민을 나의 그것들과 결부시켜 보기도 하고 걱정과 한숨을 나누기도 했으며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삶에 대한 기본 태도를 고민하는 수많은 ‘나’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가족’에 대해, 선택의 순간에 고민하게 되는 ‘친구’에 대해, 개인과 조직의 갈등인 ‘직장’에 관해 그리고 영원한 고민과 갈등의 주제인 ‘연인’에 대해서.

  각각의 장들은 물론 편의상 주제별로 묶였다. 상담 내용과 관련하여 김어준의 짧은 글들이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데 내담자의 요구 없이 이 글만으로도 충분히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한 시원한 답이 되기도 하겠다. 연재했던 내용을 묶어내면서 전체가 하나로 엮이지 못하는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경우 특별히 문제없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상담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지만 편들어주기가 좋은 상담은 아니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은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줄 수 있는 사람이 때론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바른 길로만 해서는 안 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래서 갈등과 고민의 순간을 만난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사람이다. 그것이 인생의 딜레마다.

  가끔 김어준 같은 사람에게 따끔한 질책과 충고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살더라도 말이다. 살아가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든 그렇지 못하든 멘토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물론 성격과 상황에 따라 멘토의 필요성도 달라진다.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족, 연인, 소울메이트, 멘토 -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전에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누구인가?

다들, 건투를 빈다. 졸라. - 김어준.


090126-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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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 -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개리 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갤리온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있는 유기체는 역사적 구조물이다. 곧 말 그대로 역사의 창조물이다. 이것은 공학 기술의 완벽한 산물이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잡동사니들을 이어 맞춘 것이다. - 프랑수아 제이콥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혼자 쓴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고 위로해 보지만 별로 도움은 안 된다. 매끈하고 완벽한 신체로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몸속에는 말도 안 되는 혹은 불필요한 또는 거추장스런 신체 기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사회의 변화 속도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속도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체 기관이 그러한데 인간의 마음은 어떨까? 훨씬 더 하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상상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오류 투성이인 인간의 정신 영역을 대단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정교하고 고도로 발달된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판단을 하는 이성을 내세우지만 인간은 어쩌면 여전히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서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우리들 마음안의 바보들이 여전히 숨어 살고 있는 것이다. 뻔히 보이는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안에 숨어 사는 괴물 혹은 바보들을 찾는 데 일생을 보낸다.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도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클루지kluge는 서투른 또는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고장 나기 쉬운 애물단지 컴퓨터를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신체 기관뿐만 아니라 기계 장치에도 사용되는 말이고 그것을 확대시켜 저자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 용어로 비유하고 있다. 그 용어나 개념이 인간의 심리 상태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지 않고도 저자는 생각의 함정들을 잘 파헤쳤다.

  그 생각의 함정은 생각의 무기들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생각은 정해진 길과 올바른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엉뚱한 방향과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클루지를 단순하게 실수나 엉성한 대책으로 여길 수만은 없게 만든다. 그 마음의 갈피들을 잘 분석하고 쉽게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맥락과 기억, 오염된 신념, 선택과 결정, 언어의 비밀, 위험한 행복, 심리적 붕괴로 나누어 마음안에 도사리고 있는 클루지들을 해부한다. 왜 그런지 그런 생각과 행동의 패턴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 원인과 결과를 밝히고 현상을 분석하는 예리한 눈은 높이 살만하다.

  심리학과 언어학 그리고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는 저자의 글에는 학문적 통합을 통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드러난다. 다양하고 해박한 관점들을 어떤 독자이든 공감대를 넓고 깊게 형성한다. 동의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사례와 문장들은 이 책이 넓은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주변에 흔히 발견되는 수많은 심리 관련 서적들 중에 특별한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책은 아주 잘 쓰여진 심리학 서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자신의 이론과 주장 속에 함몰되어 있지 않고 진화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를 비롯해서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등 다른 저자들의 연구 결과를 비교 검토하고 인용하여 객관성과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들이 엿보인다. 분야별로 간략하게 다듬고 쉽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정밀한 서술이나 풍부한 연구 성과들이 생략될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되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진화는 우리에게 상이한 능력을 지닌 두 체계를 남겨 주었다. 하나는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반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틀을 벗어나 생각할 때 유익한 숙고 체계다.
  우리가 이 두 체계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조화를 꾀할 때, 우리의 결정이 편향되기 쉬운 상황들을 밝혀내고 이런 편향을 극복할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 P. 149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 하나가 반사 체계와 숙고 체계이다. 모순 된 두 사고 체계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인간의 판단 능력을 증진시켰다. 지혜롭다는 말은 두 개의 사고체계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것, 인식의 틀을 바꾸고 발전시킨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판단 능력과 사고 능력을 증진시킨다는 말이다. 합리와 이성만이 인간의 특징은 아니지만 보다 정확하고 지적인 사고 능력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클루지를 알고, 인정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식은 개선을 향한 첫 걸음이다. 우리의 어설픈 본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것의 개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 261

  눈에 보이는 클루지를 어쩌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인간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굴복하지 말고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다는 것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우리 안에 또 다른 자아를 인정하기 위해서도 클루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마다 반사 체계와 숙고 체계가 충돌을 일으킨다. 우리 모두는 클루지의 노예인지, 숙고 체계의 하인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는 것은 행동하느니만 못하다는 당연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클루지를 알았다면 이제 판단과 행동에 분명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야말로 저자의 분석이 유용한 까닭이다.


08123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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