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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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른 하늘만큼 회색빛 하늘이 주는 무색무취의 날들이 좋다. 비가 와도 다시 맑아져도 하늘은 여전히 별들을 숨기고 있을 테니까. 김수영과 신동엽으로 가득했던 20대 젊은 날도 괜찮았지만 더 이상 외부 세계에 휘둘리지 않는 지금도 좋다. 독자는 변하고 시인은 늙는다. 얼마 전 정호승 시인 등단 5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새벽 편지』에 실린 형형한 눈빛은 그대로인데 시간은 자꾸 흘러 『슬픔이 택배로 왔다』 하지만 김수영은 박제된 사진 그대로 살아 있는 듯 싶다. 흰 ‘난닝구’를 입은 사진 한 장이 김수영의 시각적 이미지다. 그 사진을 오래 간직했다. 1921년생인 시인의 100번째 생일이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때때로 시간이 흘러 새롭게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같은 작품도 시대정신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기 마련이니 어쩌면 당연한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명멸했으나 여전히 주목받고 널리 읽히는 작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시절 인연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져 버리는 시인과 소설가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당대의 고민을 담아 동시대인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했다면 그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와 소설이 갖는 순기능, 본질과 역할에 닿아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 일은 쉽지 않다. 이어령과의 순수, 참여 논쟁이 아니더라도 김수영은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가족, 일본어, 설움, 하이데거, 전통, 자유, 혁명, 비속어, 번역, 여혐, 죽음, 사랑, 풀 등 26가지 키워드 하나하나를 한참씩 들여다 볼만하다. 김수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시 세계를 다시 톺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고, 김수영이 낯선 독자라면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시인, 평론가, 교수 등 26번에 걸쳐 신문에 연재된 글들은 일정한 분량과 뚜렷한 목적으로 쓰여 한 권의 책으로 손색없이 묶였다. 시대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현실’을 떠나 김수영의 시를 읽을 수는 없다. 현실에 대한 외면도 작가의 태도일 수 있으나, 대체로 인간의 내면과 섬세한 감정선이 주를 이루는 시와 소설이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수 독자를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시와 소설을 읽는 목적에 따라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다른 평가가 가능하겠으나 문학은 여전히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향한 아픈 비명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이다. 슬픔 없는 기쁨이나 고통 없는 행복 따위가 있을 수 없듯 내면의 상처와 개인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부조리한 삶의 이면을 읽으려는 노력만큼 삶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 없는 문학은 가당치 않다.

김수영의 시 전집과, 산문 전집을 가끔 꺼내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니, 김수영이 아니라 누구라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 언제든 꺼내 읽고 싶은 몇 권의 시집이 꽂혀 있는 책장을 가진 사람의 삶은 조금 다른 향기를 난다. 가을이 곧 지나면 겨울을 인내한 봄이 다시 온다. 그렇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시간이 흐르고 점차 사라지는 삶의 순환 논리에 적응하는 삶의 자세가 공동체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적용될 수는 없다. 인간은 생각하고 움직이고 변화를 추구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김수영은.

그래서 그의 시 한 구절을 따온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제목의 울림이 크다. 내 안의 반동, 세상 곳곳의 무수한 반동들이 시대와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다. 김수영은 시인들을 위한 시인이기도 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위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하는 시인과 소설가가 늘 때 독자들은 풍요로운 한국문학을 즐길 수 있다. 자유와 혁명, 사랑과 죽음은 김수영의 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뜨거운 키워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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