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은 역시 무리지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체와 문장력에 반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외국작품을 번역본으로 읽을 때 끊임없이 드는 생각은 (생각에서 오타가 나서 생간을 치고는 혼자 피식 웃고 있음) 과연 어디까지가 본디 작가의 스타일인가 하는 의문이다. 특히 원작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평이 좋지 않은 경우 번역본이 히트를 치면 그 작품은 번역가의 능력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무튼 문학적으로 각광받는 단편들은 하나같이 우울해서 읽으면서 감탄은 하게 되지만 두번 손이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별점은 스킵. 리뷰만 간단히 남겨 보려 한다. 먼저 전체적으로는 소재의 다양함과 기발함이 기억에 남고, 내 얕은 이해력으로 각 작품에 대해 한줄평이라도 남겨 보자면..

라쇼몽 - 묘사가 뛰어나서 마치 장면 하나하나가 내 눈 앞에 실제로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 글이 왜 여기서 끝나나.. 😑😑😑????? 아직도 어안이 벙벙 🤔🤔🤔

(꿈보다 해몽이란 말을 이럴 때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깊은 통찰이 묻어나는 다른 리뷰들을 읽고 나서야 그제사 아아 하고 탄복했다. 천재가 나와도 천재를 못 알아보는 나같은 사람만 이 세상에 가득하다면 정말 천재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ㅠㅠ 다행히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고 글의 숨은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볼 때도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는가. 평론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코 - 긴 코를 고치는 방법이 너무 징그럽.. 안 읽으려다가 먼저 마지막 페이지로 가서 딱히 큰 일이 없음을 확인한 후 마저 읽었다. 인간의 심리에는 역시 동서고금 일관성이 있군. 이래서 불행자랑을 하는 것이야.

여체 - 변신의 에로틱 버전? 그래도 이는 좀 아니지.. 😨

지옥변 - 정말 내 취향 아님. 나한테는 그냥 호러. 😱

거미줄 - 또 한 번 씁쓸한 인간의 내면.

귤 -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따뜻한 단편. 첫인상에 대한 편견은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늘상 갖게 되는 것이라. 오래된 공익광고 생각이 난다. 낯선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아파트 문 앞까지 뒤쫓아 와서 겁에 질린 여자가 자기 집 초인종을 막 누르는데 바로 옆집 문이 열리면서 아빠❤️~하고 아이가 나오며 안기는. 옛날 사람.

파 - 가십물 읽는 듯한 재미 쏠쏠하지만 작가가 자기 글 속에 끼어드는 기법 좀 촌스럽.. 이건 그냥 개취다. 영화를 볼 때도 갑자기 배우가 카메라를 보면서 관객에게 말거는 기법 별로 좋아하지 않음.

덤불 속 - 오~ 이런 구조의 단편 신선하다. 적어도 나한테는.

흰둥이 - 좀 억지스러운 교훈..

톱니바퀴 - 지옥변만큼이나 긴 글. 우울하고 지루하고 반정도를 읽고서 도저히 못 읽겠다 싶어 이 이야기가 대체 어디로 흘러가려고 이러나 하며 마지막 장을 먼저 펼쳤는데 연도 밑에 유고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 온다. 시선을 돌리니 옆 장에는 묘 사진이 보이고..
마지막 문장은 섬뜩하면서 슬프다.

아래는 단편 ‘코’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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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05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번역가에 따라 책의 내용과 질이 달라지는
건 번역 작품의 숙명이 아닐까요...

될 수 있으면 한 작가의 책들은 한 분이 도맡아서
번역해 주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헤르타 뮐러 작품들을 많은 분들이 번역해
주시니 스타일이 다 다르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나저나 종서 스타일의 책은 옛스러워 보이네요.

북깨비 2018-07-05 14:05   좋아요 0 | URL
읽는데 애를 먹었으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갔다 다시 위로 올라오는데 도무지 열을 못 맞춰서 읽었던 줄 또 읽고 또 읽고.. 그냥 자를 대고 읽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 옛날 이야기니까 옛날 책을 읽는 기분이 나서 좋긴 했어요. 작가님 한 분마다 담당 번역가님 한 분이라. 오. 그거 괜찮네요.💡

CREBBP 2018-07-06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 하니까 고골의 코가 생각나는데, 여기서는 코를 고치는 모양이군요. 재밌을 것 같아서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북깨비 2018-07-06 13:38   좋아요 0 | URL
제가 단편의 재미를 아직 깨우치지 못하여 차마 재밌었다고는.. ㅠㅠ 그냥 깊이있는 문학이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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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냐면 나는 대체로 영화보다는 원작을 고수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어째 원작보다 영화쪽에 마음이 기운다. 뭐가 ‘어째’서냐. 그냥 주연배우들이 잘생기고 예뻐서인거지. ㅋㅋ (다행히) 영화를 먼저 봐버리는 바람에, 자칫 라이트노벨 특유의 어딘가 매끄럽지 못한 번역 때문에 손에서 놓아버렸을 지도 모르는 책을, 두근두근 콩닥콩닥한 맘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표정, 대사,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 키타무라 타쿠미와 하마베 미나미의 얼굴과 목소리를 대입시켰기 때문. 그리고 영화장면이랑 일본어 대사도 간간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일단은 내레이터인 남주인공의 속마음을 좀 더 들여다 볼 수 있다는게 원작의 최고 장점인 것 같다. 아마도 일어로 된 원서를 읽을 수 있다면 스미노 요루의 글솜씨를 한번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텐데. 내 짧은 일어 실력이 아쉽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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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아마 고독한 미식가보다 더 재미있을꺼에요. 저도 술을 즐기는 편이라 군침을 흘리며 읽었습니다. 방랑의 미식가는 시즌 2가 나오겠지요?

히가시모리 료스케 (니치분상사 영업과장)의 대사입니다.
“아... 내가 술꾼이라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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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 넘어진 듯 보여도 천천히 걸어가는 중
송은정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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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장까지 읽고 책을 덮으려고 보니 책 날개에 소개가 나온다. 아. 같은 출판사였구나. 소재도 닮고 구성도 닮았지만 두 책 모두 정말 재미있다. 책장에서 오키나와를 찾아 옆에 나란히 꽂아 두었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들이다. 아마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일본작가의 작품이고 오키나와가 배경이라 마치 공간을 이동한 것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이 책은 한국작가의 작품이니 번역의 매끄러운 정도를 따질 것도 없이 작가의 솔직하면서도 세련되고 수려한 글솜씨를 맘껏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동네서점을 차리고 싶은 판타지는 내게도 있지만 아마도 상상만으로 그칠 것이다. 스스로는 comfort zone을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이러한 책방지기들의 진솔한 수기는 정말 꿀맛같은 대리만족을 준다.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우다 도모코씨의 책에서는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오키나와로 날아가 4년을 넘게 버틸 정도로 (책이 출간될 즈음 해서) 책방 운영에 모든 것을 매진했을 때 펼쳐지는 삶을 구경할 수 있다. 오키나와를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교류에서 행복이 묻어 났다. 그녀의 열정이 사랑스러웠다.

그에 반해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책방 운영이라는 자영업에 도전했던 송은정씨의 이야기는 좀 더 현실에 가까운 대리경험이었다. 내가 만들어 가는 오직 책을 위한,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의 최종 목표는 글을 쓰는 것이었고, 그 꿈을 이루는 공간으로 책방은 최고로 적합한 일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잘하려면 풀타임이 요구된다. 결국 책방은 문을 닫고 말았지만 대신 정말로 좋은 책이 나왔으니까. 아마도 내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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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03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아나운서 하시다가 그만 두고 책방
을 차렸는데 대박났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그 정도의 스토리가 없다면, 그리고 방송
인으로서의 인지도가 없다면 동네책방
으로 성공하기는 그리고 밥벌이조차 하기
쉽지 않을까요.

점점 더 책방이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
까우면서도 또 온라인 서점의 편이성 때
문에 클릭질을 하게 되는 자가당착적 이
중성에 씁쓰름하네요.

북깨비 2018-06-04 00:59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 사라질까봐 대규모 서점이든 소규모 서점이든 좋아하는 서점은 한번씩 들러서 책을 구매하는데요. 정말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는 액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랄까. 몸을 움직여 직접 찾아가는 것 까지는 문제가 아닌데 (그 공간을 좋아해서 가는 것이니까요) 제가 사려는 책이 당장 그 날 그곳에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 가장 큰 취약점이 아닌가 싶어요. 동네서점을 통해 택배로 주문을 할거면 온라인 서점으로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게 되고 말이죠. 인터넷을 하다 보면 SNS는 ‘시간낭비서비스’라는 욕(?)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인지도가 없는 자영업자분들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을 마케팅하고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라는 점에서 인터넷의 도움을 받기도 하니까 온라인 서점은 경쟁자라도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그분들께도 필요한 것 같고. 결국은 개개인의 선호도의 문제가 되면서도 각자의 경제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싼 가격과 편리함 (생각해보니 편리함도 싸다와 동일선상에 있는 것 같네요. 직접 책방엘 가는 비용도 만만찮지요)의 힘이 가장 세긴 센 것 같고요. 정말 당연한 말들만 잔뜩 늘어 놓고 말았네요. ㅎㅎㅎㅎ 맞습니다. 정말 밥벌이는 힘들어요.

cyrus 2018-06-03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방에 혼자 있어봤는데 책방 내부 분위기가 조용해서 정말 좋았습니다. 내 세상인 줄 알았어요. ^^

북깨비 2018-06-04 01:23   좋아요 0 | URL
오옷! 혹시 책속에 등장하시는 화장실 가신동안 책방을 맡아준 고객님이 cyrus님이셨나요?! 😯😧😲!!! 북플벗님 중에 일단멈춤에 가보신 분이 계시다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 책방에 혼자서라.. 아. 저도 언젠가 경험해 보고 싶군요. 여행할 때 이곳저곳 가보고 싶은 책방을 표시해서 들르는데요. 그래도 일정상 다 가보진 못하니까 아쉬워요. 그리고 이렇게 몇년 사이 문을 닫기도 하고 말이죠.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마케팅의 성공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린 알맹이 없는 책들 말고 (알맹이 있는 베스트셀러라면 문제없습니다) 양질의 책을 고르고 골라 사서 보는 매의 눈을 가진 독자들도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그럼 저절로 필터링이 되서 좋은 책들이 계속해서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아웃케이스 없음
츠키카와 쇼 감독, 오구리 슌 외 출연 / 알스컴퍼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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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행기에서 보게 된 영화. 설정이 좀 너무 작위적이야~~~ 아 뭐야 여주 연극성 성격 장애 아님????? 아니 왜 남자들은 저런 여자한테 넘어가는거야~~~ 엄청 띠겁게 보고 있었는데... 무려 세번을 연달아 보고 말았다는. ㅠㅠ 흐미 슬픈거~~~ 남주 표정, 말투에 정말 훅 빠져들어가 두번째 세번째 볼때는 과거 회상 장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아주 그냥 눈물이 눈물이 😫😫😫 블루레이로 살려고 했더니 왜 알라딘에서는 팔지를 않노 다른데 계정 만들기 귀찮은데 😩😩😩 암튼 요즘은 밥잘사의 정해인이 대세지만 (밥잘사는 못봤으나 슬감에서 완전 멋있었지. 👍🏻👍🏻) 허나 이 누나의 마음을 온통 휘저어 놓은건 키타무라 타쿠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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