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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일 - 출근, 독립, 취향 그리고 연애
손혜진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3월
평점 :
광고업계 종사자분들의 필력은 남다른 것 같다. 김민철님 에세이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뭐랄까 이 쪽 업계 분들이 군더더기 없이 글에 멋 입히는 스킬이 있으신 것 같다. 약간 츤데레 말투? 신경 안 쓴 듯 신경 엄청 썼을 것 같은 이 세련미 넘치는 문체는 내가 오랫동안 동경해 온 것인데 유독 광고업계 분들 글이 그러하다.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는 목적이 있는 곳이라 글 속에 스웩이 넘치는 인재들이 몰리는 건지. 객관화된 시선에서 나오는 시크한 표현들, 감정의 더없는 솔직함으로 깔끔한 뒷 맛, 아. 나 뭔지 알아. ㅋㅋㅋㅋ 🤣 하고 금방 이해되는 보급형 비유에는 위트가 넘치고 심지어 귀여움까지 묻어난다. 😭😭😭 나도 이렇게 쓰고 싶어.
(사실 스웩 넘치는 글들은 매일 분에 넘치도록 읽고 있어요. 출판되어 돈받고 팔리는 책보다 더 세련된 글들이 북플에는 매일 올라 오니까요. 그래서 저는 작가임을 밝히신 분들 외에도 정체를 꽁꽁 숨기고 활동하시는 더 많은 작가님들이 계시다고 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앞부분에 자신의 지난 날 과오(?)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부분이 나오는데 예전에 어디서 본 글이 떠올랐다. 다시 찾아 보니 찾을 수가 없어서 대충 전하자면 내가 하면 자아성찰 남이 하면 비판.이란 건데. 나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 모자람이나 단점, 잘못은 내가 먼저 깐다. 그게 좀 덜 괴롭다. (고쳐 나갈 수 있으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인정하는데서 끝난다.) 내가 먼저 까야 정신적으로도 맷집이 생기는걸까. 뭐 의도야 어찌되었건 간에 작가가 처음부터 시원하게 자아성찰을 하니 읽는 나도 마음을 풀고 착착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아님 사사건건 머릿속으로 시비를 걸었을텐데. 나는 찌질하니까. 😑
일단 전체적으로 정말 재밌게 읽었고. 글 하나하나의 짜임새는 물론 순서 혹은 배치도 좋다고 느꼈고. 두루뭉술한 어른의 일이라는 타이틀 아래 출근, 독립, 취향, 그리고 연애, 라는 이 설득력 있는 네가지의 소주제를 가지고 글을 풀어 내는 과정에서 할당량이 들쭉날쭉 하지 않고 배분이 고른 것도 좋았다. 예전에 효리네 민박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잠시 출연한 박보검씨가 고요한 밤을 건반으로 연주한 적이 있다. 이상순씨가 듣고 배움이 있는 코드라고 칭찬하셨는데 과연 국문학과 출신의 배움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취향. 방탄소년단이 등장한다. 일단 한 번은 보고 ‘난 잘 모르겠는데?’해주길 바란다고 하셔서 추천 영상 네 개를 모두 찾아 봤다. 사실 나는 일편단심 지디의 팬이라 다른 아이돌 가수들에 크게 관심이 없다. 아이돌을 제외하면 이효리, 아이유를 팔로우한다. (인정한다. 나는 얼빠다.) 추천받은 영상들을 보기 전에도 BTS의 엄청난 인기에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며 유명한 노래들의 라이브를 찾아봤는데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인기만큼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랬는데. 그랬던 내가! 올 초 지미 팰런의 투나잇쇼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의 ON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고는 정말 뒷통수를 프라이팬으로 🍳 뎅~ 하고 한대 쳐맞은 충격을 받았다. 잘하네 진짜. 인정. 👏 전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이유가 있네 있어. 그래서 이 이야기의 요지는 사람마다 입덕 포인트가 다 다르다~
얼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실은 이 책.. 표지 때문에 샀다. 책은 겉표지로 판단하는게 아니라지만 이번 경우엔 대성공! 👍👍
그리고 이 리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고민을 좀 해봤는데 아니 이게 뭐라고 마무리를 고민해 ㅋㅋ 그냥 여기까지가 나의 감상. 아래는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
고백하건대 이제까지 나는 할 수 있는 양의 80퍼센트만 해왔다. 운이 좋아 80으로 100의 성과를 내자, 그 뒤에는 60만 해서 80을 얻었다. 점점 60짜리 아니 그보다 더 옅은 농도로 사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다 더 이상 스스로의 능력치를 알 수도 믿을 수도 없게 되었고, 최고 명문대를 나와 최고 광고회사에 들어간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었다. 단순히 그 사람들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고액과외를 받고 토익 점수를 만들고 입사 확률이 높은 사람들끼리 취업스터디를 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일단 그들과 같이 일하게 되면 어떻게든 따라가게 될 거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이제 어떡할까? 앞으로도 내가 바뀔 거 같지 않아 짜증이 난다. 나와 잘난 그들 사이에 벽을 세우고 도무지 넘어갈 수 없다면서 포기할 것 같아 두렵다. 그러면서도 무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열심히 살기는 여전히 귀찮고, 성공만 하고 싶다. 이런 나를 어쩌면 좋을까?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까?
마감은 밤샘과 스트레스의 친구이면서 동시에 자유의 입구다.
‘아! 내가 다시는 집에 일 가져오나 봐라!’ 하지만 옆자리 동료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따뜻했던 사무실 공기가 차갑게 식으면, 어제의 실패를 부정하고 싶기 마련이다. ‘오늘은 씻지 말고 일부터 하면 되지 않을까?’ 마음을 먹고 집에 왔건만 이번엔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새벽녘에나 화들짝 깨어나서 씻고, 씻고 나니 잠은 달아났지만 일은 하기 싫어 기어코 웹툰을 열고 마는 것이다. 내일은 나를 믿지 말자. 일은 회사에서. 제발 일은 회사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역설이었다. 소위 평생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그만두고 싶을 때 어떻게 버틸까? 나는 그만둘 수 있어서 안 그만둘 수 있는데 말이다.
회사라는 이익집단 안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온전히 ‘나‘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워라밸일 것이다. 그렇게 퇴사를 가르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워라밸 아니고 워러밸. 일(Work)과 배움(Learn)의 균형(Balance). 일과 조직에서 더 이상 배우고 싶은 게 없을 때 나는 더 이상 ‘나’일 수 없기에 떠나기로 했다.
‘난 마케터가 되겠어!‘라고 선언한 순간이 없었을 뿐, 어느시점부터 마케터가 되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첫눈에 반한 사랑도 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진행되는 사랑도 있으니까. 둘 중에 하나만 참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동료 마케터들은 마케터로서 자각이 분명하고, 좋은 마케터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행하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걸 보고 있자면 다시 슬쩍 ‘주눅이 흘러나오려고 하지만 나오지 못하게 단단히 여미고, 동료의 노력을 자극 삼아 가랑비 출신의 좋은 마케터가 되기로 한다.
열 번의 목요일이 지난 뒤부터 손에 힘이 조금 빠진 느낌이다. 이전보다 부담이 덜하고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서른 번, 마흔 번의 목요일이 지나 내년 이맘때 다시 모인 우리는 오늘보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글 쓰는 목요일이 필요 없어지길 바란다. 글쓰기가 밥 먹듯이 숨 쉬듯이 몸에 익어, 따로 시간을 정해 애쓰지 않아도 될 만큼 습관이 되길. 부디….
지난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내가 성장했음을 확인하게 되어 뿌듯했다. 몇 년간 여기저기 써놓았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사이에 내가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오늘이라면 마음이 아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을 일로 고민하며 글을 쓴 어제의 내가 귀여웠다. 나이를 헛먹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한편 그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글이 있음을 깨달았다. 다음이 아닌 지금 기록해야 할 이유를 다시 한 번 배웠다.
독자에게 가치 있는 책이 되고 싶었고, 내 책이 출판사의 기대작이었으면 싶었고, 누구보다 최초의 독자인 나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결국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붙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필라테스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그저 계속하고 안 하고가 있을 뿐이었다. 글쓰기의 지난함도 마찬가지였다. 잘 쓰려고 하지 않고 그냥 쓰니 서서히 문제가 풀렸다. 화면 앞에 앉아 ‘잘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짜증 나’, ‘하기 싫어‘ 같은아무 말을 써서 화면을 채워 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한두문장이 턱 하고 걸려들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냥 쓰는 손‘이 필요했다. 잘하지 못하는 나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문제였다.
욕망하는 것이 좌절되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물론 욕망에도 우선순위가 있어 모든 좌절이 불행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못 먹게 되었다 하더라도 불행해지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좌절된 연애 욕망을 아이스크림을 못 먹게 된 일과 동급으로 여기지 않았다. 다들 연애는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중요한 우선순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애를 원하지만 아직 싱글인 나의 행복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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