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레파 - 티벳의 위대한 요기
라마 카지 다와삼둡 지음, W. Y. 에반스 웬츠 엮음, 유기천 옮김 / 정신세계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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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벳 요기의 스승 밀라레파의 이름을 들은 것은 오래 되었고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사둔 것이다. 요즈음 달라이라마님의 불교법문을 들으면서 티벳불교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이 책을 들게 되었다. 오랜 시간에 햇살에 누렇게 변색한 종이 위로 뚜렷하고 선명한 시적 선율들이 살아 춤춘다. 이 책은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떠올리게 하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 세계를 펼쳐 보인 것은 3조 승찬 조사께서 지은 '신심명'을 떠올리게도 한다. 마치 문학적으로도 잘 표현되고 갈무리된 한 편 시이면서도 마음의 정수를 담은 한 편의 수행서이기도 하다.

 

  부유롭던 가정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당숙과 당고모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탈취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자 어머니는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들인 밀라레파에게 돈을 주어 흑마술을 배워 원수를 갚아달라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의 전생의 좋지 않은 업연에 이끌려 흑마술을 배워 자신의 가정을 비웃고 착취하고 멸시한 사람 35명을 죽인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진정한 스승 마르파를 찾아 나선다.

 

  마르파는 그의 영적 스승이자 니로파의 제자이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제자 밀라레파가 부처님과 천인과 다키니가 점지해준 제자임을 알고 그에게 갖가지 명령을 내린다. 집을 짓게 하고 다시 부수고 집을 다시 짓게 하고 또 부수고 갖은 방편을 써서 그의 흑마술로 인한 악업을 정화시킨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스승에 대한 절대신뢰와 참회로 새롭게 태어난 밀라레파는 스승 마르파의 안내 하에 영적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다.

 

  이 책에 표현된 밀라레파의 모습이 날아다닌다던지 여러 개의 몸을 나투었다든지 또는 스스로의 몸을 사후에 축소시켜서 원래의 5원소로 돌려 스스로 소진시키는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이나 미화의 산물로 비쳐진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부활한 것이라든지 빵을 나누어 그를  따르는 신도들을 먹여살리는 것 또한 수행이 아라한과 이상 올라가면 실행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귀에 들리는 것만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얼마나 제한적인 존재인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조금이라도 계발해보지 않고 지금의 상태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위는 없다. 그리하여 자신의 흑마술로 인한 죄업을 참회하고 정화시키는 뼈를 깍는 과정 못지 않게 죽음을 불사하고 몸을 돌보지 않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습은 감동스럽다. 온 생명의 에너지를 모아 수행에 몰입하는 밀라레파의 모습은 절로 신성함과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일반인이 감히 흉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범부 중생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인간의 속세생활에서 일상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마음으로 제한해 놓고서 그 이상의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하루 짐시 내 생명의 본성을 찾아 적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나머지 일상 속에서 그 에너지와 생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아 자신에게 맞는 방편의 공부법이 있다는 생각이다.

 

  백성욱 선생님의 법문이 요즘 더욱 내게 절실한 이유이다. 생이지지한 근기도 아닌 바에야 도둑처럼 도를 그저 삼켜먹겠다는 생각이 평정한 나의 마음을 해치고 내 수행을 허덕이게 한다. 경을 읽을 때에도 그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사가이면면, 불가이근근' 세세생생 공부하겠다는 달팽이 마음이야말로 내 그릇에 맞춘 공부는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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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 - 선지식의 크신 사랑, 개정판
김원수 지음 / 청우당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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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백성욱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그 뜻을 스스로의 몸으로 체화하여 부처님 전에 복짓고 사시는 김원수 선생님에게 머리숙인다. 금강경 수지독송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벌써 아침 저녁 금강경 독송을 한 지 수 년이 되었다. 그 간 공부를 이끌어주시던 선생님도 돌아가시고 이제는 스스로 홀로 공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했던 공부인데 이제 제대로 해야 하는 공부가 되어버렸다.

 

  금강경 독송을 할 때에는 늘 아침에는 선잠에서 깨지 못하고 하고 또 잠들기 전에는 회식이 있거나 술 한잔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저 꼭 해야 하는 일로 알고 정신없이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 책을 읽고 보니 잠재의식이 닿을 수 있도록 독송도 해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지극히 하다보면 관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둔한 중생이니 그 마음을 바치고 계속 꾸준히 해야 할 일이다.

 

  금강경 공부도 신, 해, 행, 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말씀과 마음에서 올라오는 모든 분별을 부처님의 지혜광명처소에 모두 바치라는 말씀과 보다 크고 원대한 발원으로 좁은 자신의 틀을 벗어나서 부처니 시봉 잘하겠다는 원을 세워 살면서 꾸준히 마음에서 올라오는 어느 생각에도 따라가지 않고 바치고 공부하다 보면 지혜의 광명이 밝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오랜 공부로서 실생활에 펼쳐지는 공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계시다. 나아가서 한국의 미래의 밝은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신다. 특히 AI가 미래세계에서 인간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게 될 때에라도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의사결정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마음에 공감이 갔다. 어쩌면 Ai로 대표되는 미래 세계의 변화가 인간의 보다 잠재된 의식을 계발하는 세상을 이끌게 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지구상의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욱 영적으로 진화된 성숙의 학교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진화해 온 것처럼 우리들의 의식과 정신이 성숙해져서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외부적이고 힘에 의한 해결로 문제가 꼬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의식 속의 업장을 풀어내믕로써 세상 문제까지도 보다 근본적이고 성숙한 해결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인류의 숙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내가 먼저 앉은 자리에서 성숙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세세생생 금강경 독송 열심히 하고 부처님 전에 잘 바쳐서 마음 더욱 밝아져서 부처님 시봉 잘하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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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체험으로 읽는 티벳 사자의 서
강선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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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치열하게 마음 속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고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눈밝은 이들이 하는 일은 이 물질적 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르도와 무색계, 무상계 등 많은 중생들의 분노와 무지를 깨뜨리고 세상의 평화와 진리를 위해 헌신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티벳 사자의 성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빙의된 경우의 설명도 개인의 수행의 체험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을 천도하기 위한 방법과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임사체험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세지도 삶이 죽음의 관점에서 달라져야 함을 이야기한다.

 

  부처님이 마음으로 들여단 본 아이의 탄생과정은 정말 놀랍다. 어찌 그렇게 상세하고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마음 공부의 차원은 그래서 우리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점차 공부에 힘이 붙어 거친 의식들이 쉬면서 드러나는 보다 미세한 차원의 세계에 대해 스스로 경험하지 않는다면 믿기 어려운 것이 이해가 된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그 영적 차원에서 보면 정말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죽음 이후 다시 환생을 선택한 스승들은 바르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일반인들도 자신이 살았던 업에 따라 부처님의 진리의 빛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육도 윤회 속을 돌다가 인간의 업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지만 선한 업을 가지고 수행에 좋은 조건으로 원만하고 구족된 환경과 몸으로 태어나는 인간도 있고 수행하기에 힘든 환경 속에서 태어나는 인간도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게 되면 전생의 내가 원인 지은 것을 가늠할 수 있고 지금 내가 어떤 행을 하며 사는가를 바라보면 내생에 어떤 존재로 되어갈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사자의 서가 가르치는 교훈은 그것이다. 죽음과 삶은 다르지 않다. 지금의 자신의 마음의 경계는 죽음 이후의 존재의 경계로 이어진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따라서 지금 우주의 진화과정과 진리에 이르는 길을 탐구하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인간의 몸으로 환생하여 진화의 길을 걷게 될런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 지혜의 빛을 밝혀 성숙한 존재가 된다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시는 윤회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 생도 죽음 이후의 바르도도 결국엔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꿈이요 환상이요 이슬이요 구름이라는 경의 말씀처럼 지금 이 꿈을 깨는 것이 '사자의 서'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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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지혜의 서 - 샨띠데바부터 달라이 라마까지, 행복으로 나아가는 통찰의 말씀
마티외 리카르 지음, 임희근 옮김 / 담앤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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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의 스승들의 공부와 진리에 대한 잠언과 지혜의 말 그리고 그 지혜에 얽힌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마음수행의 길로 들어가기'에서 출리심을 내어 마음공부의 길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에 내용들을 적고 있다.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난 일의 소중함과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 육도윤회 속에 돌며 헛되이 보내는 인생에 대한 한스러움을 이야기한다. 인생의 무상함과 죽음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비켜갈 수 없는 업장들....결국 사성제에서 그 고통을 끊어낼 다짐을 하는 것으로부터 마음공부는 시작됨을 말한다.

 

  '마음수행의 기초다지기'에서는 깨달음이라는 지혜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그 깨달음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심는가? 하고 묻는다. 지혜에 귀의하고 이타적 자애와 자비심을 기르고 육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마음 수행을 닦기 위한 기초를 다질 수 있다. 보리심을 깊게 명상하여 늘 일상생활 속에서 보리심을 불러낼 수 있다면 이미 수행에 깊이 발을 들인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이 공부에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찌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서도 진리에 이르지 못했으니...후회가 많다. 하지만 진리의 본체인 마음의 본성이 우주에 충만한 것을 믿으며 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다르마가 나의 마음에 인연되어 언제 어느때고 내 마음만 열리면 내 마음의 굳은 껍질은 저절로 벗겨지니 그리 알고 나아갈 뿐이다. 비록 매일 인연으로 나누는 현신의 스승은 없지만 이 세상에 살아계시는 많은 스승들과 내 마음이 허락하면 언제든 그들의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열린 세상도 나의 불, 법, 승의 삼보를 내 하루 속에 둘 수 있게 한다.

 

  마음 수행 실천하기는 '마음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일상을 실천하며 공부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 나아가 일상의 흘러가는 일들에 마음을 따라가게 하지 말고 방일하지 않고 순간의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견과 명상이 힘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 출리심과 보리심의 바탕하에 '올바른 견해'의 깨달음을 갖출 때까지 멈추어서는 안되리라. 일상의 거친 의식의 흐름에 마음을 두지 말고 늘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보다 깊은 곳에 머무르려는 노력이 꾸준해지면 마음이 안정되고 서서히 지혜가 열리게 된다고 말한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장애나 분노, 어리석음, 세상에 대한 욕심은 자신의 큰 허물로 알고 그 알아차림을 통해 가라앉히거나 그 뿌리가 원래 없는 것임을 바라보며 속세의 일들에 마음이 끌리지 않도록 한다. 세세생생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리고 승가에 귀의하는 마음을 내고 수행 열심히 하여 위없는 바른 법을 깨달아 일체중생에 실제로 도움되고 힘이 되는 인연을 쓰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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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사자의 서
파드마삼바바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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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주위의 친한 사람들이 죽음의 과정을 겪어갈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고도 확신할 수 있는 가이드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음의 방황 속에 안타까운 시간들을 보냈던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티베트의 성자 파드마삼바바의 영적 제자들 또는 자신의 환생으로 티베트의 많은 동굴에서 찾아낸 죽음의 비밀에 관한 이 책이 나오면서 서양세계는 쇼크에 빠졌다. 그것이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내려오는 사후세계에 대한 밑그림과 일치하였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경험한 사후세계를 의식 속에 간직하고서 다시 태어난 그가 직접 작성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누구나 비과학적인 어떤 믿음을 갖거나 그 영적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맹목적 종교라도 그 믿음을 자신의 삶 속에서 체화하여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태어나면서 특별한 성숙함을 갖고 태어나거나 특별한 스승의 인연으로 그 길을 안내받지 않는 한 꾸준히 인생의 가치를 영적인 것으로 대치시키면서 공부의 깊이를 더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사후세계에 대한 영적 지도를 구체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인생을 수행하며 살지 못했다하더라도 죽음의 순간 밝아진 마음이 잘 인도되어지면 영원한 행복의 길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 윤회 속에 태어나 자신의 길을 모르고 살고 특히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산다. 자신의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수행을 하면 그것으로 전도되지 않은 세상의 진리를 볼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이런 깨달음을 깊이 체득한 수행자라면 죽음의 순간 초에니 바르도에서 나타나는 절대적 빛에 스며들어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라면 죽음의 순간 기절하여 마음이 수일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 깊은 잠 속에서까지 의식을 유지하는 성숙한 수행자라야 이 초에니 바르도에서 자신을 영원한 지혜와 합일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치카이 바르도이다. 이는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원소인 물, 불, 흙, 공기, 의식의 빛이 현현하여 사자 앞에 나타나는 과정이다. 이 때에라도 그 밝고 강렬한 빛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 합일을 이루면 부치님의 진리와 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평생 살아온 카르마가 스스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면 그 다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평화의 신들과 분노의 신들이다. 일주일은 평화의 신들의 출현하여 그를 구원하려 하고 그 다음은 분노의 신들의 출현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이 신들도 모두 지나치면 갈수록 영적으로 거칠고 탁한 세상으로 떨어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다시 환생을 위한 자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들도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파드마삼바바께서는 말한다. 자신의 카르마가 만들어낸 현상 속에서 자신이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는 순간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평생을 자신의 몸과 마음의 집착 속에 살아온 사자가 이를 알아차리기는 쉽지는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환생의 과정을 거쳐 다신 인간 세상이나 육도 윤회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가 죽을 때에는 가족이나 친구 그 어느누구도 나의 처지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이 겪어야 하고 나만이 헤쳐나가야 한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는 나의 윤회를 결정할 것이고 그 주사위가 던져지기 전 우리는 공부의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 바르도의 기간 중 부처님이나 영적 스승을 떠올리고 만트라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파드마삼바바님께 지극한 존경과 경의를 바친다.

 

  결국 죽음이란 삶이다. 지금 마음이 조복받지 못한 것은 바르도의 세계에서도 조복받지 못한다. 다행히 인연있는 영적 스승을 만나 바르도의 세계를 안내받을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세상의 진리는 우리 중생의 마음을 더욱 성숙하게 하려하고 또 구원해주려고 수많은 진리와 지혜의 빛이 현전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주의 실상은 모든 존재를 해탈시키는 데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밝아진다.

 

  이 책을 읽은 인연으로 마음 더욱 밝아져 부처님 전에 시봉 잘하도록 세세생생 수행 열심히 하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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