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난꾸러기의 하루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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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2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귀여워요. 조 작은 엉덩이 보세요^^

달팽이 2007-03-2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노아 2007-03-2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망울이 큼직한 것이 엄청 잘 생겼군요. 예뻐요~ 책장에도 눈이 가고^^;;

달팽이 2007-03-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를 닮지는 않았습니다...
잘 보아주셔서...

니르바나 2007-03-2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 모습만큼이나 참 예쁜 이름입니다.
달팽이님이 지어 주셨나요.
'시윤, 현우'
유심하게 불러봅니다.
지금처럼 영원히 우애를 나누는 형제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빕니다.^^

니르바나 2007-03-2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의 시선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ㅎㅎ

2007-03-28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7-03-2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마음을 고맙게 받습니다.
교보로 달려 갑니다.
님의 안목이니..
그저 주문먼저 하고 보렵니다.
고맙습니다.
 
 전출처 : 니르바나 > 열정의 학자 정민 "미치지 않고 뭘 해요"




[인터뷰]<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펴낸 정 민 교수

[북데일리]정 민(47)교수의 글은 빠르게 읽힌다. 반복과 부연이 ‘덜’ 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마른’ 글은 중고생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쉽다. 그 어렵다는 연암도, 다산도 정민 교수의 손을 거치면 평이해진다.

그는 “학자들의 글은 어렵다”는 통념을 깬 저술가다.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단어 대신 보편적인 단어와 문장을 통해 고전읽기를 대중화시켰다. <한시미학산책>(솔. 1998)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2004) <다산선생지식경영법>(김영사. 2007) 모두 그가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다.

이번에 발표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휴머니스트. 2007)은 2001년부터 7년에 걸친18세기 탐구에 대한 중간 결산작업이다. 18세기의 특징적 문화현상,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 지적 경향 등을 다뤘다.

19일 그가 재직 중인 한양대학교를 찾았다. 병원 차트 보관대에 꽂힌 수백 개의 자료파일, 이중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크기의 서가. 연구실 곳곳에 붙어 있는 메모들이 치열한 연구의 흔적을 드러냈다. 정 교수는 저술법과 연구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2시간여에 걸쳐 밝힌 학문을 향한 고백은 뜨겁고, 순수했다.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의 도입부를 보면 한 분야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는 <미쳐야 미친다>에서 엿볼 수 있었던 ‘벽(癖)’의 예찬론입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벽’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벽이란 자신까지 잊는 ‘몰두’입니다. 벽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죠. 예전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해서 늘 지나친 것을 경계하고 차단했습니다. 과거에 ‘벽’이 터부시 되었다면 지금은 ‘벽’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미치지 않고 뭘 할 수 있나?”라는 자문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실로 ‘벽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18세기 지식경영의 배경, 조선지식인들을 살펴보면 이렇듯 미칠 듯한 몰두가 엿보입니다. 18세기는 외형적으로는 ‘정보화의 문화’ 내부적으로는 ‘벽의 추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교수님의 방대한 저술량을 보면 스스로도 ‘벽’ 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한시미학산책>을 쓸 때 얘긴데. 우연히 어떤 논문에 있는 새 울음소리로 만든 금언체(禽言體) 시를 보게 됐습니다. 딱 4수였는데 퍼즐을 풀 수가 없어 무척 답답했죠. 밤낮으로 그걸 고민하다 보니 같은 시기의 다른 논문집에 실린 또 다른 금언체 한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금언체 한시를 모았습니다. 논문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새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죠. 당시 대만에 교환교수로 가있었는데. 대만조류협회에가서 중국에서 새 관련 책자, CD, 테이프, 우표를 사서 공부했습니다. 일본에 가서 조류도감도 가져왔죠. 그렇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어디든 가서 찾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됩니다. 보이는 대로 자료를 모으다 보면 먼저 모이는 것이 생기죠. 그 중에서 ‘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들이 다른 것보다 먼저 책으로 만들어집니다”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을 통해 찾아낸 18세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18세기는 조선이 체험한 최초의 정보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를 실학의 코드로만 설명하는 것은 전면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학은 유용성의 담론이기 때문에 가치의 유무만 따지죠. 어찌 보면 유득공집비둘기에 몰두한 것이나, 앵무새, 화초, 꽃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실학기준으로 보면 잡학일 뿐입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정보화의 대 변혁이 일어나며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18세기는 지금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볼 때 지금은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던 정보들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판매가 되고 수요층이 있기 때문이죠. 정보의 우선순위에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 되는 것이 바로 ‘편집’의 능력입니다. 정보를 어떻게 선별하고 취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많이는 알되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박제가나 유득공처럼 급제를 하지 못한 서얼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학은 나왔지만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학문을 향한 태도만큼은 다릅니다. 시험에 관계없이 학문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던 그들과 달리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열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18세기를 정보화 하고 체득하는 과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과거 시대의 인물.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 인물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꼽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요.

“다산과 연암을 빼놓을 수 없겠죠. 10년간 연암을 연구했습니다. 다산은 미국에 가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죠. 기질로 봐서 저는 다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꼼꼼하고 소심한 편이죠.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암입니다. 연암을 알고 나서 저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공부하는 스타일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지금처럼 다양한 주제에 폭넓은 관심을 갖게 된 것 모두 연암의 영향입니다. 연암을 체험하기 전에는 전통적인 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 일 뿐이었죠. 그러다 또 이덕무에 빠져서 여러 해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덕무하면 우선 삐쩍 마른 몸. 퀭한 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인간이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죠. 책읽기와 학문을 향한 그의 성실한 태도는 배울 점이 정말 많습니다. 다산에 도착하면 또 달라집니다. 다산 역시 성실의 화신이지만 이덕무가 주는 인간적인 면은 없죠. 엄청난 절망 속에서 자신을 세우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18세기 문인들은 소통의 글쓰기를 실천했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매번 매료되곤 합니다”

- 고전읽기 붐이 일고 있습니다. 직접 쓰신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비롯해 많은 책들이 고전 읽기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공간을 초월해 가치 있게 읽히는 것이 고전입니다. 지금 수업 중에 강독하는 것이 <고전명문감상>인데 학생들이 굉장한 혼란에 빠집니다. 글이 갖고 있는 충격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고 합니다. 자꾸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학생은 책을 읽다 수업 중에 울기도 합니다. 리포트 쓰다 우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모두 자신이 새까맣게 잊었던 것을 회복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거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렇듯, 미친 듯이 열정을 쏟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모두 영어공부, 취업공부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12년간 대학에 들어오려고 공부하고, 대학 와서는 취직을 위해 공부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안 잘리려고 공부하고. 결국 자신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만 있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죠. 고전은 그 본질적 문제를 명확히, 깊숙이 찔러줍니다. 그리고 확인시켜주죠. 그러니 지금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요. 지금 지식은 전부 실용적인 것들뿐입니다. 고전에는 도구적인 것을 뛰어넘어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 600페이지가 넘는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6개 월 만에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성한 저술력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어떤 관심사가 생기면 일단 메모를 시작합니다. (병원카트에 꽂혀 있는 파일 철 세 개를 가져와서) 얼마 전에 <에도시대의 여행문화>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걸 읽으면서 왜 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이런 책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18세기 조선의 여행문화’라는 이름의 파일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지에 어떤 내용들이 가능할까 쭉 써내려 갑니다. 그러면 30개 혹은 40개에 달하는 소재들이 정리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두 장짜리 세부안을 만듭니다. 여기에는 추가적인 메모들이 곁들여집니다. 미쳐 생각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붙이고 추가 하는 작업이죠. 그 다음에는 ‘내가 왜 이 책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집필 의도를 씁니다.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면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파일 철이 (차트를 가리키며) 저기 꽂힌 것들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해서 바로 논문이나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죠. 몇 년 후에 완성될지 몰라요. 그렇지만 떠오르는 것들은 반드시 파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될 때 본격화 하는 식이죠”

- 교수님의 글쓰기는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다는 평을 받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문체의 비결, 쉽게 쓰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글은 반드시 짧게 씁니다. 퇴고 할 때 글 자르는 게 일이죠. 글이 짧으면 속도감이 생깁니다. 마냥 늘어놓으면 뜻이 접속이 안 됩니다. 관용어절을 끌고 들어가는 습관을 매우 싫어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희언니를 만났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벌써 내가 좋아하는 게 영희인지 영희 언니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글쓰기에 있어 구문의 간결성은 무척 중요합니다. ‘조선후기고문론(문장론)연구’가 제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예전 한문가들의 문장을 연구했죠. 글쓰기에 있어서 간결함, 표현의 함축성을 추구하는 것이 제 전공입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에 굉장히 예민한 편입니다. 우리나라 문장에는 ‘이다’ ‘있다’ ‘것이다’ 체가 있습니다. 모든 글쓰기의 기본은 ‘이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있다’는 늘어지고 ‘것이다’는 권위적인 느낌을 줍니다. ‘것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 ‘00은 것이었던 것이다’라는 문장까지 쓰게 됩니다. 강조하는 데 매달리게 되는 거죠. 권투로 말하자면 ‘이다’는 ‘잽’ ‘있다’는 ‘어퍼컷’ ‘것이다’는 ‘스트레이트’입니다. ‘어퍼컷’이나 ‘스트레이트’는 아무 때나 쓰면 안 됩니다. 결정타로 정말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보면 스스로가 ‘이다’ ‘있다’ ‘것이다’ 중 어느 형의 인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학자들의 글을 보면 그 세 가지 분석이 가능합니다”

- 글쓰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동어 반복을 피하는 방법도 들려주시죠.

“리듬 살리는 것에 주의하다 보면 동어반복은 피할 수 있습니다. 글에는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나’가 나오면 그 다음은 ‘반면에’로 다음은 ‘또한’으로 고쳐야 합니다. ‘00처럼 00 처럼 00 처럼’이 아니라 ‘00처럼 00이냥 00같이’로 다양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어미를 다르게 하면 완전히 다른 글이 됩니다.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은 남이 읽어주며 퇴고하는 방법입니다. 제 글의 대부분은 아내가 읽어줍니다. 듣다 보면 ‘턱’ 걸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잘못된 문장이죠. 그러면 고칩니다.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 글입니다. 읽히지 않으면 글이 아니죠. 그래서 퇴고는 아무리 해도 부족합니다.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 글쓰기와 함께 거론 되는 것이 독서의 중요성입니다. 책읽기의 필요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삶을 운영해나가는 기본적인 힘을 기르는 과정이 독서죠.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정보취득의 목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잘못된 방법이죠. 책이 잘 읽히고 않고 손이 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독서는 삶의 안목과 통찰력을 길러주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습니다. 삶의 기본을 가르치는 책을 처음부터 소리내어 읽는다면 그것이 갖는 힘은 실로 대단할 것입니다. 동종 분야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보는 자신의 관심사에 의해 ‘재배열’이 됩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실용위주의 책읽기가 아닌 자신의 자양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책읽기가 필요합니다”

- 글 쓰고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취미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덕무처럼, 정약용처럼 오직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지금의 삶에 행복을 느끼십니까.

“물론 행복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글은 주로 저녁에 씁니다. 낮에는 강의도 있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있거든요. 저녁 11시 12나 돼야 집에 갑니다. 강의실에 있을 때도 부재중으로 해놓고 문을 잠가 놓을 때도 있어요. (웃음) 토요일 일요일에도 주로 학교에 나와 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은 그때 밖에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연구실에 조용히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종종 갖곤 했는데 요즘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못 마십니다. 어떻게 보면 삶이 무미건조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묘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눌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겠지요”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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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짱꿀라 > 생명의 젖줄인 강이 죽어가고 있어요.

# 어제 신문을 살펴보다가 생명의 젖줄인 강이 죽어간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댐건설, 무분별한 건설로 기후가 변하고  자연이 파괴되어 전세계 강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자연의 파괴는 인간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제는 발벗고 환경보호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자연을 살리는 길만이 인간이 살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아울러 kbs에서 2007년 1월 20일 부터 2월 24일까지 KBS 환경스페셜로 방송되었던 '살아있는 지구'와 2007년 2월 7일에 방송되었던 '습지의 재발견'을 보시면 더욱 자세한 내용을 알 것이다. 이제 환경은 우리에게 있어서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자연을 살리는 길만이 인간이 살길이라는 것을........

 

 

 

 

(2007.3.21.조선일보) 죽음이 흐르는 강/환경파괴 심각한 10곳, 생물종 5분의1 멸종하거나 위기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강들이 죽어가고 있다.”

세계야생생물기금(WWF)은 ‘세계 물의 날’(22일)을 이틀 앞둔 20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주요 강들이 오염과 댐 건설, 기후 변화 등 인간이 초래한 자연파괴행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강에 서식하는 생물종이 빠르게 멸종하고 있으며, 인류는 앞으로 수십년 내에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WWF에 따르면 세계의 주요 강 177개 중 발원지에서 바다까지 전 구간을 자유롭게 흐르는 강은 21개뿐이다. 나머지는 댐과 각종 건설공사로 강물의 흐름이 저해됨으로써 생물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


환경 파괴에 시달리는 대표적 강은 아시아의 양쯔강, 메콩강, 살윈강, 인더스강, 갠지스강과 유럽의 다뉴브강, 북미의 리오그란데강, 아프리카의 나일강, 호주의 머리· 달링강 등 10개가 대표적이다. 이 강들에 서식하던 1만여 종의 담수어류와 식물종 가운데 약 5분의 1은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강이 파괴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양쯔강은 중국의 산업 폐수와 생활 하수 절반 이상이 흘러들어 지난 50년간 오염도가 70%나 증가했다. 다뉴브강은 해운시설 공사 때문에 강 주변 습지와 범람원(강물 범람으로 생긴 평야)의 80%가 사라졌다. 리오그란데강은 농업용수로 물을 너무 많이 빼 쓰는 바람에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 바다 물고기가 몰려들고 담수어종이 사라지고 있다. 살윈강은 현재 자유롭게 바다로 흘러가는 21개 강 중 하나이지만 앞으로 대형 댐 16개가 건설될 계획이다. WWF 보고서는 수천 년간 아프리카인들의 식수로 이용돼온 나일강도 2025년이면 기후변화 때문에 물 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WWF 담수 프로그램 책임자인 데이비드 티크너(Tickner)“세계가 처해있는 대규모 담수 위기는 기후변화 못지않게 파괴적”이라며 “강과 습지 보호는 인류 안보와 보건, 국가 경제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2007. 3. 21. 한국일보) '위기의 10대강' 타들어가는 인류의 젖줄
 
세계 물의 날(22일)을 앞둔 20일 세계야생생물기금(WWF)이 ‘위기에 처한 세계 10대 강’을 발표했다. 위기의 강에는 아시아에서 9억명의 젖줄인 양쯔 살윈 인더스 갠지스 메콩 등 5개강이 포함됐다. 유럽의 다뉴브강과 북미 리오그랜드강, 남미 라플라타강, 북아프리카 나일강, 호주 머레이_달링강 역시 위기의 강으로 진단 받았다.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두 곳이 포함된 위기의 10대 강은 종교와 탐험가들의 영감을 불어넣은 곳들이다. 지금도 전세계 인구 41%가 이 강들을 끼고 살고 있다. 그러나 WWF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강은 기후변화와 개발 탓에 물이 마르고 오염 몸살을 앓으면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미 1만종에 달하는 민물에 사는 동물과 식물의 20%가 멸종됐다. 세계의 대형 하천 177개 가운데 21개 만이 인류 손길을 피해 발원지에서 바다까지 자유로이 흘러갈 뿐이다.

 


양쯔강은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가 위기의 원인이다. 중국 산업용수와 폐수의 절반 이상을 양쯔강이 소화해 낸다. 과거 펜이 바닥까지 가라앉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깨끗했던 강물이지만 지금은 음용수 부적합 판정을 받고 있다. 이 강의 허리에 위치한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 싼샤(三峽)댐 바닥에는 생활 쓰레기부터 방사성 물질이 뒤섞인 산업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흐르는 리오그랜드강과 인도의 갠지스강은 과다한 농업, 산업, 생활용수의 사용으로 물 수위가 급격히 낮아졌다. 이로 인해 리오그랜드강에는 바닷물이 역류해 민물어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갠지스와 인더스강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히말라야의 빙하가 감소하면서 수위가 더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천년간 식수원으로 사용된 나일강도 개발과 지구온난화 탓에 2025년이면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유럽 7개국을 지나 흑해로 흘러가는 다뉴브강은 습지의 80%가 사라졌다. 한때는 유럽 어종의 50% 이상을 보유했던 이 강은 댐 건설과 수로 직선화 등으로 강 유역이 7%만이 남아 있다. 호주의 머레이강과 달릴강은 200년간 외래어종 침입으로 토종어종의 90%가 줄어들었다. 아시아 6개국을 지나는 메콩강은 어류남획이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고, 아직 개발의 손을 타지 않은 살윈강은 16개의 대형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WWF는 보고서에서 “지난 50년간 어떤 역사의 시기보다 많은 강의 생태계가 변했지만, 향후 수 십년 내 이보다 더한 변화가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결과는 지금 기후변화에 맘먹는 담수고갈 등의 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강과 습지 보호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문했다.
 

2007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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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때는

텅 빈 마음으로

먹을지니

이것이

집착없이 먹는

법이라네

 

        - 밀라레파 -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론 받기 부끄럽네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할

약으로 알고 수행을 위해

이 공양을 받는다네

 

             - 오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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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짱꿀라 > 세한도 발문(歲寒圖 跋文)

세한도 발문(歲寒圖 跋文)
 
저자 : 김정희
역자 : 김동석
 
내용   

지난 해(1843, 헌종9)에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 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사마천(司馬遷)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 하였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孔子)께서, “일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 ·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 · 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 없는 소나무 · 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아!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浮沈)에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榜)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완당 노인(阮堂老人) 씀.
 
저자소개  김정희(金正喜 : 1786(정조10)~1856(철종7))는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서화가. 자(字)는 원춘(元春), 호(號)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노과(老果)·시암(詩庵) 등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24세 때 부친 김노경(金魯敬)을 따라 연경(燕京)에 가서 청(淸) 나라의 거유(巨儒) 옹방강(翁方綱)·완원(阮元) 등으로부터 지우(知遇)를 입었다. 1840(헌종6)년에 윤상도(尹尙度)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9년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위의 글은 완당이 1844(헌종10)년에 제주에서 『세한도(歲寒圖)』를 그리고 그 끝에 쓴 발문(跋文)인데, 『완당전집』 제 4권에 “이우선에게 보냄(與李藕船)”이라는 편지로 실려있다. 이 글에 의하면 『세한도』는, 불우한 처지에서 귀양살이하는 작자 자신을 조금도 괄시하지 않고 옛날처럼 변함없이 대해주는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태도에 감동한 나머지, 그의 인품을 엄동이 된 뒤에도 잎이 지지 않는 송백(松柏)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림으로 그려준 것이다. 이상적은 역관(譯官)인데, 호가 우선(藕船)이다. 우선은 그 이듬해에 이 그림을 가지고 연경에 가서 그곳의 명사 장악진(章岳鎭)·조진조(趙振祚) 등 16인에게 보이고 그들의 찬시(讚詩)를 받아 발문에 이어 붙였다.

그 뒤 완당의 문하생 김석준(金奭準)의 찬(贊)과 오세창(吳世昌)·이시영(李始榮)의 배관기(拜觀記) 등이 다시 첨가되어 이 그림은 긴 두루마기를 이루게 되었다. 그림의 오른쪽 여백에는 작자가 큰 글씨로 ‘세한도’라는 화제(畵題)를 가로로 쓰고 작은 글씨로 ‘우선은 감상하라[藕船是賞]’라는 관지(款識)를 세로로 쓴 다음, 행을 바꾸어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쓰고 ‘정희(正喜)’라는 이름이 새겨진 도서(圖署)를 찍었다. 화면에는 수묵으로 집 한 채와 소나무·잣나무를 각각 두 그루씩 대칭을 이루도록 그렸을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백으로 처리하였는데, 고상한 문인화의 품격이 돋보이는, ‘서화(書畵)가 함께 잘 어우러진 걸작이다. 이는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문의 끝에 보이는 적공(翟公)의 고사는 이러하다.

“한(漢) 나라 때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실각하자 이내 그의 대문에는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인적이 끊기고 말았다. 그 뒤 그가 다시 정위가 되자 또 당초처럼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에 그는 대문에다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봐야 교정을 알게 되고, 사업에서 망하고 흥해봐야 교태를 알게 되며, 벼슬길에서 귀천을 겪어봐야 교정이 나타난다.[一生一死,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熊,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여 세상 사람들의 염량세태를 신랄하게 책망하였다.”(『史記· 汲鄭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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