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누었던 우정의 추억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다는 듯이

여기서도 그림자처럼 내 뒤를 따라 걷고 있다.

한밤중에 나를 잠에서 깨우고 새벽이 올 때까지

똑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어 피로에 지친 나는

다시 잠들 희망을 버리곤 한다.

심지어 이곳 감옥까지 따라와 운동장을 맴도는 내게

혼잣말을 지껄이게 만든다.

끔찍했던 지난 날, 내가 겪었던 고통까지도 이제는

지울 수 없는 내 기억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고통과 절망을 위해 비워 두었던 머리 한 구석에서는

그 암울했던 시절의 모든 일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험삼아 옛 사람의 좋은 문장을 살펴보면 쓰고 있는 문자의 종류가 모두 평범하고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지, 별도로 심오하고 어려운 글자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꺼내와 토론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문장은 절로 우리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이는 다만 그 마음씀과 뜻을 둠이 우리들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법은 반드시 그 마음과 뜻의 묘한 곳을 얻어 안 뒤라야 바야흐로 효과를 볼 수가 있다.

 

                                                                                         - 임상덕, 통론독서작문지법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9-2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그러니까 저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전 쉬운 문자 외에는 모르는 것이 다행인듯 합니다.
그걸 용심이라고 부르는지 첨 알았어요^^

달팽이 2005-09-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심이라는 말은 저도 첨 알았어요..

어둔이 2005-09-2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심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음씀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인생을 살펴내는 마음씀이 있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음 없는데 닿고
살피어 둘러보면 마음을 벗어나는 것이 없지요
오직 마음뿐일 때 마음을 어떻게 써야할까요?
용심도 잘못써면 욕심이 되고 망심이 됩니다.
진정한 용심이라면 그러한 욕심과 망심까지도
두루 살필 수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세상을 담아낼 수 있는 욕심으로 키워내고
일체의 마음이 없는 망심으로 길러내어야 하겠지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앗!!!

어둔이 2005-09-2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상보다는 관상이 좋아야하고 관상보다는 타고난 골상이 복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골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심상이 더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심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마음을 써는 용심만 못하다고 옛어른들은 말씀하시지요
그러니 손금 볼 생각말고 관상 때문에 마음 상하지 말고
턱깍고 키키우지 않아도 타고난 마음의 본성
그 마음을 사랑으로 써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인생의 비밀은 마음의 비밀입니다
그 마음은 누구나에게 있으니 달리 다른 곳으로 쳐다볼 필요없겠지요
사실 책도 볼 필요 없어요. 마음만 뚜렷히 볼 수 있다면
그 마음이 자비 가득 세상에 흘러 넘치게 해야겠지요.
최고의 마음이 홍익인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복받을 생각보다는 먼저 복짓는 마음을 키워냅시다
합장~ 나마스떼!!!!
세상의 모든 사람들 업장해탈하고
세세생생 인간 몸받아 선지식 잘모시고
밝은 날같이 환하게 마음복 많이 짓기를 발원합니다.^!!^

달팽이 2005-09-2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말이 많군요..ㅎㅎ

파란여우 2005-09-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둔이님은 집으로 돌아오시는 중간에
어느 주막에 들리셨던 것 같아요
주모를 잘 보셔요
혹시 감춘 꼬리를 보실 수 있는지....^^
 

  무등산은 높고도 넓어 걸쳐 있는 고을이 일곱이나 된다.

정상에 오르면 북으로는 적상산을 바라볼 수 있고, 남으로는 한라산을 굽어볼 수 있다.

월출산과 송광산쯤은 모두 손주뻘이다.

위에는 열세 봉우리가 있다.

늘 흰 구름이 지키고 있다.

사당이 있는데 무당이 관리한다.

그 말이, "우레나 번개가 치고 비와 구름이 일어나는 변화는 늘 산허리로부터 일어나 자욱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지요. 하지만 산 위에는 푸른 하늘 그대로랍니다."라고 한다.

그 산 됨이 과연 빼어나지 아니한가?

중봉의 꼭대기에 서면 표연히 세상을 가벼이 보고 홀로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픈 마음이 일어나, 인생의 고락이란 마음에 둘 것이 못됨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 정약용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9-2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내려오면
다시 산을 그리워하고
산을 오르면
비로소 커지는
이것을 무엇이라 하는지
나 또한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달팽이 2005-09-2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내려오면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산위에 올라서면
푸른 하늘 그대로랍니다.
삶의 희비애락 속에 파묻힐 때
가끔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 그대로의 모습을 찾는 것

어둔이 2005-09-2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오르지 않아도
만나는 하늘인데
산을 올라보아야 비로소
하늘을 만난듯 하고
산을 내려오지 않아도
딛고 있는 땅인데
산을 내려와서야만 비로소
땅을 바로 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산이 사람을 속이는 건가?
사람이 산을 속이는 건가?
 

논어 3장 팔월 편에 나오는 말이다.

낙이불음, 즐기되 음란하지 않는다

애이불상,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까?

즐거움과 쾌락에 빠지지 않고, 슬퍼함에 내가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것이 시경에 대한 공자의 말인 '사무사'가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해석 그대로 하자면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것을 놓고 배병삼 교수는 '기'를 한 가지 쓰임새밖에 없는 편협한 도구성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소극적으로는 '한낱 도구에 불과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 적극적인 의미로는 '그릇 속에 담기는 내용물이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고 한다.

현대적 의미로는 군자불기에서 군자는 전문가가 아닌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릇은 일정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물유본말, 사유종시의 물과 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군자는 물 그 자체가 되어야 하고 사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격물하며 자신의 마음 한 곳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해석하면 지나칠까?

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 이름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 했다. 군자는 이름에 형태에 머무르지 아니한다. 그래서 군자는 도를 이룬다. 기는 이름이다. 그래서 불기란 이름과 이름지워진 형태에 머무르지 않음이다.

군자불기...

물론 위의 배교수님의 설명에도 타당하고 현실적인 상징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도가적으로 또는 논어의 전체 맥에 맞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