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지속이다.

존재하는 것은 시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나를 이루는 본질이다.

시간은 나를 휩쓸고 가는 강이지만, 내가 곧 강이다.

시간은 나를 삼키는 호랑이지만, 내가 곧 호랑이다.

시간은 나를 소진시키는 불이지만, 내가 곧 불이다.

세상은 불행히도 리얼하고, 나는 불행히도 보르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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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0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은 많은 상처를 잊게 해 주는 바람이지만, 내가 곧 바람이다.

보르헤스의 말에 한 번 궁시렁거려 보았습니다. 이 아침 철학적인 글 만나서 반갑네요. 저는 내일 비행기 탑니다. 그리운 얼굴들 보고 오면 더 마음이 여유있고 예뻐지겠지요? 달팽이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달팽이 2006-10-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그리운 이들을 찾아 떠나는 추석여행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운 이와 좋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 해가 다가도록 방공지엔 배 한 척도 얼씬하지 않았다.

밤배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달밤을 젓는 배는 더구나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산정자에 와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 혼자만 거기다 작은 배를 띄우고 달이 뜨는 밤마다 달담을 놓치지 않았다.

성을 따라 북해판까지 오 리나 되는 물길을 나는 항상 오르락내리락했다.

산모퉁이 뒤로 올망졸망 집 몇 채, 사립을 닫고 높이 누웠는지 호롱불 하나도 뵈지 않는다.

정말 어두운 적막 속이라 자못 서글퍼진다.

나는 배 속에 대자리를 깔고 거기에 벌렁 누워 달을 보고, 동자는 뱃머리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꿈과 취기가 한 데 섞여 몽롱한 기억처럼 소리는 시나브로 흩어지고 달빛도 시나브로 부옇게 깔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노래가 그치자 잠도 덩달아 깨었다.

아물아물한 몽롱함 속에서 나도 다시 몰래 코를 골았다.

동자 또한 갸우뚱 앉아서 하품을 하다간 두  사람은 서로 엉킨 채 잠이 들었다.

배를 언덕에 대느라 툭툭 상앗대 찍는 소리에 잠이 깼다.

가슴이 후련했다.

한 점 티끌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나른해 초저녁이 되도록 늘어지게 낮잠을 즐겼다.

인간사를 모두 알랴마는 세상에 무얼 두고 '우수'라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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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말 없는 그곳(남이 모르는 속마음)

듣고 보는 이 없어도

하느님이 그대를 살피니

게으름 피우지 말 것이며

사특한 생각을 하지 말지어다.

잔이 넘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 파도가 하늘까지 넘치리라.

위로는 하늘을 받들고

아래로는 땅을 밟고 서서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인가.

누구를 속일 것인가.

사람과 짐승의 분기점이자

길하고 흉함이 나뉘는 곳인

저 어두운 구석을

내 스승으로 삼으리라.

 

 

계곡 장유는 1587-1638년 사람으로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사람이다. 제자백가, 도가, 불가, 의술, 천문, 풍수리지 등에도 두루 통달했다. 평소 "중국에는 유학 뿐만 아니라 선학, 단학, 육상산도 배우는 등 학문이 다양한데, 우리나라는 편협하게 주자학만을 고집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장유는 주자를 반대하는 육왕학파로 지적받기도 했으며, 송시열은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의리가 정자와 주자를 주로 하였으므로 그와 더불어 비교할만한 이가 없다"고도 하였다.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공신이 되었으나 권세를 탐하지 않았고, 효종대왕의 장인이 된 후에도 항상 담박하고 간소한 생활을 하여 존경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의 주화론을 설파하던 최명길과 죽마고우였고, 조익, 이시백과 친하였으며, 정두경은 어릴 저부터 장유를 따라다니며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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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5-0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경에 나오는 "상재이실, 상불괴어옥루"가 생각난다.
"그대가 방에 있는 것을 보건대, 방구석에 대하여도 부끄러울 것이 없네"

물만두 2006-05-0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은 이지누의 집이야기에도 나오는 분이네요^^

혜덕화 2006-05-02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있어도, 내 생각을 나만 알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결국 내 삶의 심판자는 나이니까요._()_

달팽이 2006-05-0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그런가요? 주파수가 맞았군요.
혜덕화님, 꾸준히 공부하시는 모습 속에 저를 둘러보게 됩니다.
방 모퉁이는 혜덕화님이기도 하고 또 내 스스로의 양심이기도 하고 또 내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파란여우 2006-05-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얘기구랴...달팽이님의 억수로 많은 사유 덕분에 호사를 누리는 건 접니다^^

달팽이 2006-05-0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후사가 두려워집니다 그려..ㅎㅎ
 

그대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지금 그대를 괴롭히고 있다면,

그 고통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그대의 관념에서 오는 것이다.

그 관념을 버리면 고통도 사라진다.

만약 그대를 괴롭히는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마음을 달리 먹으면 되는 것이다.

또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못해 괴로운 것이라면,

불평하지 말고 당장이라도 그 일을 하면 될 것이다.

그대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 일을 못하는 책임이 그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괴로워하지 말라.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인생을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될 때에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이 세상을 떠날 일이다.

이루지 못한 일은 있으나 할 일은 다하고 만족스럽게 죽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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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생겨나거나 소멸하는 일도 없고,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데에서는 아름답고 어떤 데서는 추하고 그런 것이 아니요,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추한 것이 아니요,

또 어떤 방향에서 보면 아름답고 다른 방향에서 보면 추한 그런 것이 아니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어떤 사람에게는 추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에로스에 대한 디오티마 신이 소크라테스에게 한 말로

그것은 참된 덕이요 참된 진리의 본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 향연은 천상의 향연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그저 현자나 지자가 아니라 이미 깨달은 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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