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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생을 마치려 합니다 - 유서와 자살에 관한 한 연구
우도 그라스호프 지음, 배진아 옮김 / 해토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당신은 혹시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만약 한번도 없다면 당신은 사실 자살의 위험이 큰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삶으로 빠져나오는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면역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왜 사람들은 자살을 할까? 이제까지 사회학적으로는 에밀뒤르껭의 '자살론'으로부터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렇듯 자살이라고 하는 현상이 사회적인 현상으로 사회적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업률의 증가라고 하던지, 문화적 일탈, 급격한 삶의 변화 등 ...
하지만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환경에 놓인 누구나 항상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자살로만 몰아가는 개인적인 심리현상이나 마음의 작용을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자살이라고 하는 인간적인 현상을 보다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유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죽은 이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게 한다. 그 동행에서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자살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 또는 인간관계의 파괴로 인한 극한적 좌절 속에서 이루어진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복수의 형태로서 나타나 상대방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갖고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자살의 주체인 자가 어릴 때부터 가진 마음의 상처일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쌓인, 치유하지 못한 마음의 병일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평생의 짐과 죄책감 속에서 살게 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부풀려 세상에 남기고 가게 되어 자신의 업을 더욱 증폭시키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유서란 죽어가는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마음의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서를 살펴보는 것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유서라고 하는 요식행위가 자기구속력을 가지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이미 굳어지고 난 후에야 유서를 남기게 되고, 또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유서없이 자살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유서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크고 절박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우리는 삶과 죽음의 널을 뛴다. 그러다가 최종적인 선택의 결과물로서 유서를 남긴다. 따라서 유서를 쓰고 난 후에는 그 유서로 말미암아 마음을 다시 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줄이는 방법으로 유서를 작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대안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치유받지 못한 상처받은 마음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고, 우리 삶을 바라보는 보다 넓고 깊은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삶은 반드시 스스로가 살아내면서 달성해야 할 삶의 교훈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생을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마치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상에서 이번 생에서 얻었어야 할 교훈의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 영혼의 성장에는 건너뜀이 없으니까.
나아가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고 우리들의 삶 속에 죽음을 집어넣는 노력들도 필요하다. 우리는 늘 죽음의 문화를 터부시하는데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은 죽음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서부터 비롯된다. 사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중요한 것은 무엇이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성장시키게 하는 것인지를 바로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속지 않고 우리들의 본모습을 바로 보아 우리가 이번 생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