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 - Gandhi
요게시 차다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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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인류사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타자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데 있어서의 성숙한 관점을 가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지 20세기 뿐만 아니라 서구문명의 발달과 동구사회의 근대화에서 드러난 민족과 국가간 갈등, 민족과 국가, 사회내의 갈등 인간과 인간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관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타자를 수용하는 성숙한 관점이 단지 외부적으로 강제되는 절대적 명제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역사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내면에서 보다 역사와 우주를 대하는 성숙한 관점에서 기인해야 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오늘날 간디를 다시 읽는 것은 우리 인류 역사에서 한번도 해결해보지 못한 평화와 공존의 위대한 실천을 위하여 20세기의 시대가 못다 이해한 간디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종교적인 중심을 늘 잃지 않았고, 그와 어긋나지 않게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삶을 살았던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그에게 있어 어떤 순간의 결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비워낸 자리 그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진리의 소리를 내면에서부터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종교에 있어서의 신의 자리에 진리를 갖다놓음으로써 종교적 견해의 차이와 그로 인한 인류사의 비극을 극복하려고 했으며, 그 가장 진실한 진리의 힘으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극단적인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양 종교 간의 폭력과 학살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에 바탕한 분할 정책에 반대하고, 진리와 그 진리를 향한 인간의 지향본성에 대한 신뢰로서 접근하였고, 이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인가의 문제를 떠나 마음이 지향하는 바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적인 국경 분할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현실 사회에서 내가 겪어야 할 정치적 사회적 결정에 있어서 다시 내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게 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간디의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국민회의 지도자들의 판단은 기나긴 인간정신의 발전과 영원한 진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온다. 그렇다면 간디가 지향하고자 했던 진리의 방향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 다만 인도 사회가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다만 인도 사회와 우리 세계가 간디의 성숙한 영혼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자명하다면 그리고 인도를 거쳐갔던 일련의 사건들이 인도 사회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회적 업이라고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간디 자신의 말대로 자신이 일생에 걸쳐 사티아 그라하 운동과 아힘사 운동을 펼치면서도 그것을 진정으로 실천해내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처럼......이런 경우 자신의 진리를 향한 열망과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적인 괴리로 인해 자신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처럼 말이다.

흔히 간디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문명 사회에서 종교적 열망을 정치적 결단으로 연결시켰던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종교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과연 간디의 정치적 결단과 행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내릴 수 있을까? 요게시 차다는 그 반대의 입장에서 충실하게 이 책의 서술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종교적 수행자가 아니라 학자였으므로 간디의 내면적인 변화의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하는데 한계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진정한 간디의 삶과 행동에 대한 평가에 대해 가려운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내고 나름대로 객관적이고 체계있는 책의 서술은 간디의 생애를 한번 정리해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책이라는 데에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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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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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캔버스가 있다. 화가는 그것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학자는 그 캔버스에 자신의 연구성과를 담으려 할 것이다. 종교인은 믿음을 담으려 할 것이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랑의 대상을 그리려고 할 것이다. 이렇듯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그 햐얀 캔버스에 담으려고 한다.

고흐는 참 불행한 삶을 살았다. 때문에 광기보다 더 깊은 고통을 늘 자신의 마음에 간직하며 살았다. 그 뿌리깊은 고통이 그의 그림에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림은 늘 암연에 드리워진 깊은 삶의 절망과 고통을 보여주곤 한다고 생각해왔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한 그가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려 정말 자신에게 맞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했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찾아낸 그림은 그가 자신의 인생과 영혼을 바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평생동안 의식주의 생활을 동생 테오에게 의존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놓지 않았고, 그림을 통한 상품화와 세속적인 명성과 성공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영혼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었고,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그림이 더욱 성숙되고 영혼의 빛깔을 담아내게 되었다는 것은 물질주의와 속도와 경쟁의 삶을 살아가며 영혼을 내팽개치며 사는 우리들의 삶에 비수같은 교훈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그림은 풍경과 인물을 사진처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영혼의 눈으로 담아낸 것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이다. 이러한 그의 그림에 대한 태도는 내가 그의 그림을 접할 때 생각하기에 앞서 그 그림 전체가 전달하는 느낌과 내 마음 속의 어떤 '떨림'을 찾게 만든다. 이것이 온갖 언어로 각색된 해석을 떠나 그의 그림에서 한 예술가인 고흐와 내가 직접 만나는 길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씨 뿌리는 사람', '별이 빛나는 밤', '수확하는 사람',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의 그림이 마음에 든다. 이 그림들을 통해 한 예술가인 고흐와 직접 만나는 내면의 떨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으로 변변히 동생 테오에게 대접한번 못하고, 동생의 보살핌으로부터 한 번도 벗어니지 못하고 배고픔과 가난에 쪼들린 삶을 살아야만 했지만, 결코 그림에 대한 영혼을 놓치지 않았기에 스스로의 영적 충만함을 간직했으며, 이것이 사후에라도 많은 사람들의 떨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고흐에게도 그랬듯이 나에게도 하얀 캔버스가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이 하얀 여백을 과연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에게는 어떤 "떨림"있는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 떨림이 고흐에게도 그러했듯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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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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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 또는 하나의 이념과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을 다른 사람, 집단 또는 특정한 목적, 주의, 이념과 일치시킴으로써 한 개인의 삶은 폭넓어지고 심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양자택일을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선택하고 진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너머에 있는 그 무엇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각자는 전체의 일부분이다. 이러한 보편적 진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게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다." 스콧 니어링의 철저한 삶은 바로 이와 같은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 생각에 따라서는 상류층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사람, 하지만 자신의 가족과 성장배경과 인간관계를 모두 내던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위해 철저하고도 확고한 삶을 살았던 스콧 니어링의 삶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늘 진리와 진실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과 정직성을 통해 사회와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전쟁에 반대하고 자신의 이러한 사상을 세상에 알리는데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실천적인 삶이다. 또 하나는 문명사회와 기득층으로부터 세상에 자신의 사상을 알리는 수단과 통로, 자신의 삶의 기반을 모두 빼앗겨버리고 난 후의 반문명적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한 사회에서 진실의 추구를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가족도 잃고 대학교수직도 잃고 세상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입마저 빼앗겨버린 니어링은 인류를 파괴하고 대량학살하는 문명사회에 온몸으로 반대하며 자신의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진실의 믿음으로 사회적 억압구조에 맞서 싸웠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자신의 삶의 기반마저 송두리채 빼앗기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 그 믿음에 의한 삶을 계획하고 실천해내는 의지는 그의 말대로 인간존재는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로 보기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문명적 삶을 거부하고 메인과 버몬트에서 자급자족적 삶을 영위하는 한 가운데서도 세상에 대해 진실을 말하며 그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모습은 그가 진실을 위해 살아가는 모범적이고 철저한 교사였음을 말해준다.

문명의 필연적 결과인 전쟁의 인간파괴와 그 추악한 가면(야만민족의 문명화와 국가이익이라는 허울) 속에 자리잡은 인간의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본성에 맞서 싸우고 진실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붓던 그의 삶은 물질문명이 극도록 발전한 사회, 그리고 최강의 군사력으로 자신의 지배욕구를 충족시키는 제국으로서의 미국 사회에서 정직하고도 양심적 지식인이 존재하였음을 보여 준다. 더불어 이런 삶의 전형들이 바로 미국사회를 극복하는 내부적인 힘이자 문명사회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의 전형이 되고 있음을 또한 보여준다. 산업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형성된 문명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렇게도 철저하게 사회적 삶을 살았던 인물을 또 찾아볼 수 있을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이 단순히 사회적 부조리와 문명사회의 비인간성에 대한 지식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그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에로의 연결을 통해서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이해를 갖고서도 천차만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차이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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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8-0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일종의 충격을 느꼈었죠.
이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행하며, 제대로 사는 삶이 있었구나.
이것저것 핑계대며 모든 걸 미루어대던 제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구요...
철저한 삶. 한 마디로 스콧 니어링의 삶은 이 두 마디로 압축될 수 있겠네요..

달팽이 2004-08-10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어링 부부의 삶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기는 힘들겠지요...하지만 세상이 모두 자신에게 등을 돌리더라도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위해 돌아가는 삶을 포기하고 그대로 갈 수 있는 마음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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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선생님이 투병할 때 이현주 목사님과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묶어 "노자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삶의 커다란 감동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이후 장일순 선생님의 책을 찾아보았고 그래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고 하는 녹색평론에 실었던 글모음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무위당 선생님은 유,불,선 등의 다양한 종교적 입장을 아우르면서 그것이 지향하는 같은 하나를 자신의 사상에서 찾아내었고, 이를 삶 속에서 체화시켜 낸 분이다. 김지하 시인의 소개글이 무위당 선생님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

 달통하여 늘 한가하시며 엎드려 머리 숙여

 밑으로 밑으로만 기시어 드디어는 

 한 포기 산 속 난초가 되신 선생님."

선생님의 사상은 해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동학사상이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서학에 맞서는 하나의 사상으로서 나오게 된 것을 재조명하고 재연구되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이 부인을 비롯하여 모든 여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도 해월의 사상의 영향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나아가 선생님은 사람사는 도리에 대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좋은 귀감이 된다. 한 종교를 선택하여 한 교인으로서 깊은 정신적 경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만, 선생님처럼 자신의 한 명의 교인으로서 별로 드러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면서 사랑을 남김없이 베풀며 민중들 속에서 하나의 좁쌀같은 존재이고자 했던 특별한 친근함이 있다.

좁쌀 한 알이라는 이 책을 통하여 궁금했던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기쁘다. 호를 일속자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면으로는 더욱 깊이 자신의 삶과 정신에 몰두했으며 그러면서도 밖으로는 자신을 가장 낮추어 밑바닥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그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성인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친 '난'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이미 인생에 대해 달관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베어 있다. '글'도 선생님은 고구마를 팔기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써놓은 글씨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하지만, 이미 선생님의 글에선 그 절절한 마음이 은은히 퍼져나오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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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6-1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달팽이님의 글이 먼저 올라있더군요. 반가운 맘에 코멘트를 남깁니다...같은 글을 읽고 비슷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만치 사람 마음을 울리는 게 있겠는지요. 참...흐뭇해지는 밤입니다...^^

달팽이 2004-06-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일순 선생님의 바른 삶에 배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연이 된다 생각합니다....
책 부지런히 읽으시고, 좋은 배움 공유합시다...감사합니다.

로드무비 2004-08-1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잊고 있었네요.
꼭 사볼랍니다.
그리고 달팽이라는 노래가 제 18번일 때가 있었어요.
아주 오래 된 얘기죠.^^

달팽이 2004-08-1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그랬답니다....다만, 주체할 수 없는 젊은 날의 고독과 외로움이 좋아서....하지만 이젠 속도에 지친 삶에서 놓여진 느린 삶과 그 속에서의 부활하는 정신적인 삶을 위한 상징으로 '달팽이'를 사용하고 싶군요...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구자현 외 옮김 / 중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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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류가 낳은 고독한 천재, 아인슈타인의 삶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해서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순탄하지 못한 인생에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명확히 파악하고 물리학에 대한 학자로서의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그 학문이 바탕한 정신적인 지평을 넓히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역시 위대한 사람이었다. 전문지식만을 알고 세상을 재단하는 자는 그의 말대로 훈련받은 개와 별다른 차이가 없을런지도 모르니까....

그가 바라보는 인간사회의 발전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정신문화의 꽃을 피우는데 있다. 경제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 삶의 풍요로움은 결국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개발하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그의 판단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 보다 넓은 시각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대한 입장에서도 그는 학교교육이 아이들에게 강요된 짐이 되지 않고 내면적 욕구에 의해 수용되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인류의 평화와 정신문화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통로이어야 한다는 점은 명쾌하고도 정확한 우리 교육의 대안이기도 하다.

그가 학문적 활동말고도 인류사회를 위해 지도자적 역할을 하였다면 그것은 세계대전 이후 원자폭탄의 도래와 더불어 초래될 인류절멸의 위기에 대해 초국가적 성격을 갖는 세계정부의 수립을 제안하였다는 점이다. 일국가는 경찰 병력만 갖고 군대는 세계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조직이어야 하고, 그것은 전쟁억제력을 위해 일국가의 이익도 희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이런 제안 뒤에는 원자폭탄이라고 하는 인류의 재앙에 대한 깊은 우려와 모두가 평화롭게 살며 정신적 성장을 기원하길 바라는 그의 인류애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시온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다소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다. 정의라는 이름하에 이라크에 대해 선제공격과 대량학살을 저지른 미국의 오만과 아랍과의 끊이지 않는 유혈전쟁에 휘말려있는 팔레스타인분쟁은 그가 이미 예견했던 문제이며 상대방에 대한 평화와 신뢰와 사랑만이 평화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믿었던 그의 믿음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 책은 천재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의 글이라 읽기에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걸맞게 국제정세와 미래를 내다보는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그의 논리와 예지력을 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원어를 우리말로 다듬고 잘 옮긴 역자들의 수고로움도 무척이나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쉽지 않은 글이지만 정말 감동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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