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유영모
유달영 외 / 무애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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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근대사의 성인 다석 유영모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한 글모음이 이 책이다. 1993년 출간된 이 책은 지금 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귀한 인연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또 책 속의 귀한 말씀을 통해 다석 선생님의 가늠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의문이 내 공부의 큰 힘이 되고 있어서 고마움의 글 몇 자를 남기고자 한다. 유영모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선생님의 글을 제대로 읽은 것은 최근의 일임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공부라고하기엔 부끄러운 나의 책읽기가 몇 년을 거쳐오면서 책의 가치를 조금은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을 또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다석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가늠할 수 없이 깊은 글의 에너지가 읽는 나로 하여금 경건하고 마음을 바로세우게 한다. 한 치의 빈틈없이 아바디를 마음 속에 품었고 그래서 그 깊고 옹근 마음 한가운데에서 머무르며 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았던 다석 선생님의 진리는 " 一座食, 一言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평생 선생님의 몸가짐 하나하나에 빈틈을 찾을 수 없었던 그 모습은 범인인 나로서는 그 알 수 없는 깊이의 마음에 대한 경외로움만을 가지게 할 뿐이다.  

  일평생을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의 한 길만을 걸어가신 선생님의 자취는 내 앞을 가로막는 태산이 되어 우뚝 선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자리에 현묘한 지혜의 샘이 끊임없이 솟아났던 것일까? 선생님의 도덕경의 풀이와 불교에 대한 해석 그리고 기독교의 해석은 새로우면서도 가슴떨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살아있다. 깨달음의 빛으로 풀어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해석도 다석 선생님 스스로의 깨달음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생님의 글처럼 깨달은 이는 자신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결코 꺼지지 않을 다석 선생님의 정신적인 유산이 남아 있다. 아니 그들의 가슴을 통해 다석 선생님은 살아계신다. 촛불에서 옮겨 붙는 촛불 처럼 나누어도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양식을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 내 빛이 밝지 못해 스스로 그런 양식을 만들어낼 수 없으면 적어도 그런 양식을 얻어 먹고서 소화는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노릇이라도 하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의 양식을 구하는 동안은 적어도 인생은 허무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석 선생님을 계기로 나는 온라인 상과 오프라인 상의 고마운 인연들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마음 속의 진리의 끈들로도 이어지고 있다. 진리의 길에서 만난 다석 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 김흥호 선생님, 박영호 선생님의 길이 있었듯이 나에게도 이름을 달리한 모습을 달리한 만남들이 있다. 사람들로 만나는 것이나 책으로 만나는 것이나 그 길은 마음의 길로 나 있다. 스며듦이 깊을수록 나와의 인연도 깊은 것이다. 이 인연들이 영글어 봄날 따사로운 햇살아래 잎을 활짝 열고 피어나 온하늘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꽃잎이 되고 꽃씨가 될 것이다. 마음으로 미리 맞는 꽃천지 세상을 준비하며 이 봄을 맞는다.

  다시 책의 표지를 본다. 다석 선생님의 얼굴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한없이 고요하고 끝없이 깊은 저 눈이 응시하고 있는 곳이 어디일까? 봄날의 의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의문이 벚꽃눈처럼 온 하늘에 휘날리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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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2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어려운 책만 읽으십니다.
비록 책으로는 달팽이님을 쫓아갈 수 없으나
고마운 인연임에 감사해요

달팽이 2006-03-2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만의 말씀입니다.
비록 파란여우님의 문장을 따라갈 수 없으나
마음으로 쫓으렵니다.
그리고 감사해요. 늘...

니르바나 2006-03-2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석 유영모선생님을 사숙하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잠간 생각했습니다.
이 땅위에 인간의 아들로 오신 붓다나 예수이후
제가 만난 최고의 인간이란 생각이 앞섭니다.
마하트마 간디랑 비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게 비교가 되는 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유영모선생님이 스스로 당신 자신을 세상에서 숨기려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듭니다.
이런 분이랑 같은 하늘의 대기를 호흡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벅차오르는군요. 달팽이님^^

달팽이 2006-03-2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회에 나아가고 안나가고의 구분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간디도 사회와 민족 나아가 인류의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석 선생님이 마음 속의 진리의 자리에 더욱 깊이 머물렀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진리의 길이 자신의 온전한 삶이 되었던 분들은 하나같이 세상에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외면했던 의미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책을 읽으면서는 다석선생님의 앞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듯이 하고
생활로 돌아오면 가슴 속에 진리의 등불을 간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 무위당 장일순을 기리는 생명의 이야기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엮음 / 녹색평론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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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비가 조금 내리던 날 아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이 찌푸둥해서 산행이라도 하자는 것이었다. 그 며칠 전에 보면서 언제 금정산 산행 한번 가자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남문으로 올라가서 동문을 거쳐 북문으로 걸으면서 산아래에서 강한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안개들이 우리의 온몸을 스쳐갔다. 범어사에 들러서 경내를 구경하고 내려오다가 간단히 막걸리와 파전을 시켜놓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무위당 선생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서둘러 술잔을 비웠고 서점으로 갔다.

  친구에게 '노자이야기'라는 책을 선물하면서 이 책을 함께 샀다. 장일순 선생님의 책인줄 알았으면 이미 사야했을테지만 이 책은 선생님의 육성보다는 사후 10년을 기리는 자리에서 선생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묶여있는 것이어서 주저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뜻과 정신이 씨앗이 되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가 궁금했고, 무엇보다 장일순 선생님의 책을 본 것도 벌써 두 해가 다되어가서 다시 그 분의 책을 들고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을 대할 때 현실의 사람이든 역사적인 인물이든 그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나 업적이 무엇이었나를 보게 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살았던 삶의 지향점이 무엇이었는가를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정신은 무엇에 바탕했고 그가 가졌던 사상이나 삶의 기준이 무엇이었나에 더욱 귀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 선생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활동과 지위를 가지지 않으셨지만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를 관통해서 하나로 소통하는 깨달음에 뜻을 두셨고, 그것을 통해 많은 사회적 운동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향잡으시고 인도하셨다.

  신협, 생협운동과 한살림운동이 선생님에게서 비롯되었고, 독재시대의 반독재투쟁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천하셨다. 그리고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동학사상을 재조명했던 점들은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뜻은 깊은 진리를 향한 길을 걷는 것에 있었지 자신의 명예나 학문적이고 사회적인 성취에 있지 아니하였다. 그러했기 때문에 지학순 주교님이나 리영희 선생님. 김지하 선생님, 이현주 목사님, 이철수 씨, 이반 씨 등의 여러 사람들에게 그 사상과 철학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으리라.

  선생님의 삶을 기리는 모임이 결성이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살았던 외형의 흔적을 쫓는 것이 아니라면 될 수 있으면 소박하게 선생님의 정신과 사상을 되살려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선생님이 살면서 도달하려했던 마음의 중지가 아닐까? 위무위라는 도덕경의 말처럼 하는일 없으면서 안하는일 없게 사는 것을 추구하셨던 분, 스스로 일속자라 하여 자신을 겸손하게 하면서도 그 작은 것 속에 온 우주를 담아내었던 삶, 그리하여 삶의 깊은 지혜 속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소요유의 자세가 난을 그리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논리적으로만 치밀하여 옳고 그름을 따져서 사는데 익숙해져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보다 넓게 삶을 포용하는 자세와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생님의 삶을 보면서 나는 늘 부끄러움을 느낀다. 옛 성현들의 글이 항상 자신을 제대로 보고 내면적 성찰을 통해 성장하라는 격언을 선생님에게서 산 증인으로 배우게 된다. 선생님의 씨앗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피어날지 궁금해진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원래 대량화되다보면 그 깊은 뜻이 희석화되기 쉬운 법이다. 선생님과 인연되는 사람들이 소수일지라도 그 뜻을 최대한 살려내면서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몇 몇의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더욱 좋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표연란을 책을 넘겨가면서 마지막으로 들여다본다. 난의 기품이 서려있으면서도 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있다. 그 바람 속에서 난은 미세하게 흔들린다. 난의 기운이 강하면 바람을 살릴 수 없고, 바람이 세면 난의 기운이 살지 못한다. 이 둘을 묘하게도 살려낸 선생님의 표연란에서 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그의 삶과 정신을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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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0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노자이야기란 책, 읽고 싶어지네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엄두를 못냈었는데.그리고 님의 정신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리뷰였습니다.

달팽이 2006-02-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도덕경의 5천여자의 한자를 따라 써가면서 노자의 마음을 느껴보기를 바라며, 무위당 선생님은 노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꼭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파란여우 2006-02-0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평론사에서 발간하는 종류들의 책을 편애하는 버릇이 많아요 저는.
장일순 선생하면 이론과 실천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그분이 맡으셨던 한살림이 떠오릅니다.
아까운 분은 왜 서둘러 가시는 것인지...
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분입니다.

달팽이 2006-02-0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감히 그분의 정신을 닮고 싶습니다.

2006-02-0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2-0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다음부턴 실수하지 않을게요..
좁쌀 한알, 나락 한알 속의 우주, 노자이야기, 그리고 이 책이 아마 무위당선생님과 직접 관련있는 출판된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6-02-06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2-0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충고로 아무래도 국어 맞춤법 책도 좀 읽어야겠군요...
사소하지만은 않은 중요한 일이기도 하겠지요?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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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일생의 꿈이자 반드시 거쳐가야 할 인생의 필요조건들이 그에겐 그저 거추장스러운 여행의 짊이었을 뿐이었다. 안정적인 직장과 집, 그리고 배우자와 자식,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그에게는 한번도 눈길주지 않은 자기 밖 세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닥쳐버린 어머니의 죽음과 가족의 파괴, 실명이라는 사건은 그에게서 세상에서 움켜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결핍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언제 다시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책을 들게 하였다. 눈이 보일때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봐두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가진 것으로부터의 자유의 욕망은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였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생의 가치를 찾게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지나온 삶을 어떤 흔적으로도 남기지 않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루 하루를 새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꿈꾸지 않는 삶은 어떤 의미나 가치도 없다. 하지만 그 꿈이 허황된 상상력이 되고 말 것인지 아니면 현실로 만들어 갈 힘이 되는 것인지의 여부는 '용기'에 달려 있다. 꿈과 이상으로 부풀었던 가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고 두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꿈이 그저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기력한 발걸음으로 현실로 되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용기있는 자들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결국은 우리 마음에서 만들어낸 이미지가 현실이 된다. 무기력함은 무기력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용기는 활기차고 자신있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인생의 모든 길 위에는 철학이 있다. 삶의 의미가 있다. 그것이 어떤 길인지는 묻지 않는다. 다만 그 길을 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물을 뿐이다. 호퍼가 걸었던 길 위에서 놓여진 삶의 의미와 깨달음은 내가 걷는 길 위에도 놓여져 있다. 문제는 그 길을 걷는 나의 마음일 뿐이다. 삶은 늘 새롭다. 과거에 의존하지 않는 마음은 현재를 온전하게 느끼게 하고 그 때 하루는 새로운 날들이다. 신비함과 경이로움으로 채워진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가을 하늘 위에 산이 나타난다. 강이 나타난다. 도시가 있고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 그 하나하나의 삶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각 각 제 갈길을 간다. 그 길에서 우리는 옆 사람의 인생을 가타부타하지 않는다. 오직 내 인생만을 문제삼을 뿐이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비바람과 천둥이 치고 있을지 몰라도 나는 오직 내 삶의 비바람과 천둥만을 맞을 뿐이다. 내 하루의 투명한 하늘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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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말고 다른 호퍼 자서전을 읽었거든요.(구판)
행동하는 멋진 철학자라는 판단을 내렸답니다.

달팽이 2005-09-2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입니다. 물론 삶의 마지막 부분은 좀 더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만...
 
이건희 시대 -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왜 이건희에 대해 우리는 알아야 하는가? 현재 한국은 삼성열풍에 휩싸여 있다. "삼성에게 좋은 것은 한국에게도 좋다."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 된다." "한국의 대외경쟁력보다는 삼성의 대외경쟁력이 더 강하다."라는 말들은 우리 사회에서 삼성의 위력을 실감하게 해주는 말들이다. 순이익 100억불로 소니와 GM 등 세계의 유수기업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삼성의 변화엔 이건희가 있었고 그의 특별하고도 독창적인 경영방식과 사내의 지배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

  삼성과 이건희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비판적인 평가를 압도하는 경제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의 존경하는 기업인 1위, 취직하고 싶은 회사 1위를 차지하는 삼성은 이미 한국 내의 가장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되었고, 그 엘리트들이 입사하고 나서부터는 철저한 교육을 통해 삼성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건희의 카리스마에 복종하게 되고 자신의 창의성은 말살하게 된다. 그가 한국의 1인당 GDP를 올림으로써 국가경제의 성장과 회복에 기여한 공은 노무현의 경제정책으로 이어져 노무현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고, 그의 지배력은 경제를 넘어 언론, 문화,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제왕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삼성과 이건희에 대한 기존의 극단적이고 고정관념화된 평가를 최대한 탈피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건희의 성장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그 환경 속에서의 이건희의 성격의 형성과 이병철의 후계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의 권력다툼과 음모들의 과정속에서 자신의 보호하려는 욕구와 그것의 시스템화는 이건희라고 하는 인물의 성장과정에서 가진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그를 어떤 성격으로 만들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삼성이 우리나라 국민에게 가진 고용효과와 경제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비록 그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이 단순히 자신의 치부와 권력욕만으로 삼성을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경쟁이 치열한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앞으로 10년 또는 20년을 내다보는 업계의 현실에 끊임없이 변화해가고 발전해가기 위해 그가 쏟는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왕적 카리스마가 한국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의 재벌적 소유구조와 그것의 세습이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기업내 상명하복의 위계적 질서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부재는 이건희 후의 삼성의 앞날을 여러 가지 면에서 걱정하게 한다. 뿐만이 아니다. 기업의 영향력이 문화, 언론, 교육, 사회, 정치 전반에 확대될수록 참된 삶의 의미와 가치 사회내의 불평등과 위화감 등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남게 된다.

  기업 내의 제왕적 카리스마와 사원들에 대한 창의력과 상상력의 요구라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삼성에게 있어서나 이건희에게 있어서나 해결되지 못한 이중적인 모순이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것은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사회적 정의를 외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자신의 잇속을 다 챙기려고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삼성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이건희와 삼성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려고 하는 통로는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이중적인 성격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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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1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오늘 받았어요.
앞의 몇 장을 읽고 있습니다.
나중에 님의 리뷰를 커닝할 생각입니다.^^

달팽이 2005-09-1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여우님의 마음을 커닝..
 
암베드카르 - 인도 불가촉천민 해방자.현대 인도불교의 중흥자
디완 챤드 아히르 지음, 이명권 옮김 / 코나투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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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생이 자신의 타고난 성장배경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그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였다면 그 결정은 어떻게 승화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인도 불가촉천민의 해방자이자 사회개혁가인 암베드카르의 전기를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불가촉천민의 신분으로 태어난 그가 성장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차별과 멸시 비인간적인 대우에 모멸감을 느끼고 영혼 깊숙히 아로새겨진 상처와 내면적인 슬픔의 에너지를 인도 사회의 카스트제도의 철폐와 민주주의적 가치의 수립으로 돌려서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불가촉천민으로서의 결점을 안은채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나아가 세계의 유수한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인도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어릴 때의 결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노력을 불가촉 천민의 삶의 획기적인 개혁을 위해 한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이 마음의 결정대로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불가촉천민도 사회의 공공시설, 병원, 저수지, 도로, 공원 등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고용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없애고, 나아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정치적인 권리를 획득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갔다.

  불가촉천민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사안에서는 간디와도 대립했다. 간디는 힌두사회의 분열을 막기 위한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이었다고 한다면 암베드카르에게 있어서는 불가촉천민의 지위향상이었으므로 제헌의회 의석수를 둘러싸고 불가촉천민의 독자적인 의석수를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푸나 협정으로 간디와 화해하고 의석수를 148석으로 늘이게 되었다. 인도의 근 현대사에서 그 누구도 간디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그 역시 간디와 여러 사안에서 대립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인도 사회에서 간디의 명성 아래 숨겨져 있던 암베드카르라는 인물을 조명하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심지어는 그를 부각시키기 위해 간디를 폄하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간디가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으며 인도 전체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치우쳤다고 한다면 암베드카르는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개혁적이었으며 불가촉천민이라는 신분의 지위향상에 주로 관심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인도 사회에서 두 사람 각 각의 역할과 지위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두 사람은 충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인도의 정신적 전통에서 간디의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듯이, 인도 사회의 민주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암베드카르가 잊혀질 수 없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20세기에 있어서 간디의 정신적인 영향력은 전세계적 차원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간디가 품었던 생각이 자신이 몸담았던 집단에서 힌두교로 힌두교에서 인도 그리고 나아가 인류전체와 신으로까지 넓혀가는 정신적인 승화의 폭이 컸던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암베드카르의 정신적인 면모나 영적인 생활을 알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이 주관적인 영역의 것이기는 하지만 암베드카르가 품었던 이상이 그래도 불가촉천민에서 주로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자신의 지위와 책임에 따라 인도 전체까지로 넓혀지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그가 불교로 개종을 했던 동기와 불교의 지혜에 얼마나 가까이 갔던가 하는 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겠는데 그는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위해 그리고 사회개혁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사상을 담고 있는 종교로서 불교를 선택한 이유가 컸고, 따라서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불교를 이해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사회개혁을 위한 도구로서 학문적으로 접근했던 바가 더욱 컸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물론 인도 사회의 불가촉천민의 삶의 지위 향상에, 여성의 인권 확보와 사회적인 지위개선에, 현대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확립에 그가 남겼던 유산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암베드카르라는 인도 사회혁명가의 꽃이 열매가 되어 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가 우주의식의 발전의 정점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인 인간의식의 진화역시 기본적인 인권과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리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처럼 인도에는 암베드카르가 있었고,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인도사회에 아직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이제 인도 사회는 국제사회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인도 사회가 정신적으로 도약할 수 있게끔 사회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던 그의 뜻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의 삶을 그렇게 살다 갔다. 그러면 사회개혁가로서의 소질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는 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우주의 진화과정의 정점에 선 나는 과연 무엇으로 삶을 채울 것인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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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8-22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책 꼭 읽어야겠어요!!!

달팽이 2005-08-2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서 반갑습니다. 리뷰 쓰자마자 이렇게 댓글 달아주시다니요...

파란여우 2005-08-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를 읽다보면 민족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설명이 나옵니다. 덕분에 또 한 명의 사람을 알게 되는군요

달팽이 2005-08-2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이여 오라'요, 찾아보겠습니다.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책속에 책 2005-08-2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 저도 찾아봐야겠네요^^
달팽이님, 인사도 안 드리고 달은 제 짧은 댓글에도 불구하고 제 페이퍼에 길게 좋은 정보도 주시고, 또 이렇게 좋은 책을 두권이나 알고 가게 되서 너무 감사해요^^

달팽이 2005-08-2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지나버린 정보인걸요...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