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바이올린
진창현 지음, 이정환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표지에 바이올린 사진이 하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창현 님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바이올린 선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바이올린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명과도 같은 바이올린과의 만남. 하지만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기엔 이미 늦어버린 때의 슬픔을 뒤로 하고 그는 제대로 된 바이올린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다. 전쟁 후의 극심했던 고통과 배고픔을 뒤로 하고 더욱 캄캄한 앞길을 걸어가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너던 소년의 가슴 속엔 바이올린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의 말대로 "물질적인 배고픔은 참을 수 있지만 꿈과 희망의 배고픔은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도 "당신은 영혼의 배고픔에 굶주리고 있지는 않는가? 꿈의 배고픔에 굶주리고 있지는 않는가?"하고 물어온다.

  바이올린 하나에도 온 우주가 담긴다. 나무를 고르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한 나무를 발견하고서도 그것을 그저 버려진 통나무로 만드는 것은 영혼의 집중을 깨뜨리는 한 순간에 저질러지기도 한다. 바이올린을 아는 것은 나무의 나이테를 따라 나무의 숨결을 섬세하게 느껴야 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바이올린 현을 받치는 받침대의 재질은 물론이거니와 위치와 높이 그리고 바이올린의 표면을 칠하는 니스의 종류와 색깔에 따라 천차만별의 음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는 온 우주를 한바퀴 돌아야만 했다. 삶의 어떠한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배워야만 한다. 바이올린 하나를 마스터하기 위해 그가 쏟은 열정과 노력들,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외면 속에서도 홀로 꿋꿋하게 헤쳐나가야 하는 적막한 현실, 아무리 절망스러운 현실 속을 뚫고 지나가면서도 그는 바이올린에 대한 꿈 하나로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된다. 바이올린의 그의 삶의 목표이자 삶 그 자체이다.

  그의 삶 속에서 이정표처럼 주어진 바이올린과의 만남의 순간은 그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어버렸다. 과연 그런 삶이 그의 가슴에서 어떤 일을 일으켰던 것일까? 약장수 아저씨의 악기를 따라서 그리고 아이카와 선생의 바이올린과의 만남과 스트라디바리우스와의 떨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의 주어진 내면의 길을 밝혀주었다. 그 영혼의 깊은 떨림이 그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삶의 의미였던 어머니를 떠날 수 있었고, 바다를 홀홀단신으로 아무런 보장처도 없이 건넜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홀로의 꿈을 꾸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올린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찼을 때 그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꿈으로 보기도 했고 깊은 고민의 한가운데 갑자기 펑 뚫린 듯이 빈 마음 한가운데로부터 해답을 실마리가 풀려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그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제작자 콩쿠르 상에 입상하게 되는 순간의 이야기들은 정말 감동적이다. 그의 인생의 한 획을 그으며 이젠 마에스트로로서의 삶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의 바이올린 제작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돌아간다. 어느 날 바이올린이 자신의 가슴 속으로 들어온 그 날부터 시작된 바이올린 제작자로서의 삶이 그의 마음을 채워버렸고 그 스스로 전개된 여정의 끝에 와버린 여기서 문득 정신이 들자 주위에서 들리는 박수소리에 정신이 어리둥절해진다. 6개 부문 중의 5개 부문을 그가 차지해버린 것이다. 조국 한국이 그를 낳은 땅이면 일본은 바이올린 제작자인 그를 기른 땅이고 그의 험난하고 어려운 순간마다 도움을 준 미국과 그가 바이올린에 담으려는 선율의 이야기 속에는 아프리카와 유럽과 태평양과 푸른 하늘과 땅과 흙과 푸른 나뭇잎과 빨갛게 노을 든 단풍과 대지와 들판 위로 떠다니는 구름과 바람....그 모든 우주가 필요했다.

  자신의 인생을 한 곳에 담아내는 사람은 우주도 그 속에 담아낼 수 있음을 진창현 님의 삶을 통해 우리는 다시 배운다. 무르익어가는 봄날의 비탈길에서 우주를 흔든 바이올린의 삶 속에 깃든 그의 삶을 배워본다. 다시 책의 표지를 본다. 그의 모습이 바이올린을 닮았다. 없는 바이올린이 어디서 생긴지 모르게 그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다. 그의 바이올린은 이제 해협만 건너지 않는다. 바다도 은하수도 건너 온 우주에 그의 선율이 울릴 것이다. 우주가 하나의 바이올린 아닌가? 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있다면 그 선율이 이 우주에 가득히 울리고 있을 것이다. 그 선율이 빛나게 울리고 있다는 증거는 우리들의 가슴이 이렇게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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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0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 만에 달팽이님의 리뷰를 모두 봅니다. 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잘쓰십니다.
또 한명의 글의 스승으로 모셔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빌려옵니다. 월요일 이번 시작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한주 되시기를 바랍니다.

달팽이 2007-04-10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이십니다.
늘 저는 지인들의 글을 보며 저에겐 표현력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뭐 딱히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지만...
하지만 마음만은 그대들과 나눌 수 있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판사 한기택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 엮음 / 궁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천주교 미리내 성지 옆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 옆에 '하늘문'이라고 이름붙여진 작은 봉안당이 있다. 그 봉안당 안의 오른쪽 벽 한 귀퉁이에 한기택이 있다. 앞에서 평면으로 보면 보통의 책만 한 크기다. 그 속에는 타서 재가 되어버린 한기택의 한 줌 뼛가루가 있고, 바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한기택(크리스토폴)

1959.2.17 ~ 2005.7.24

그것 뿐이다. 차관급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어울릴만한 봉분도 선배,동료,후배 판사들이 가장 존경했던 판사를 추모하는 추모비도 없다.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한기택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추천에 의해 판사의 꿈을 키우던 한기택은 "나의 꿈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라든지 "나는 나같은 놈들과 싸우고 싶다."라고 일기에 적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살필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짐승으로서의 본능적 요소와 짐승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이성적 요소를 동시에 갖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고등학생때부터 박정희 정권의 부당성을 인식했으며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판사가 되기 위한 내적인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깊이 천착하였고, 결국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음을 고백하였다.

  판사로서 피고인과 원고인의 소장을 철저하게 검토하였으며, 그들의 이면의 마음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던 판사였다. 그의 치밀하고 지극한 하지만 말없는 노력에 선,후배 판사들은 많은 감동을 느꼈으며, 그의 말은 비록 낮은 음성이었지만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의 판결에는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기본권에 충실한 판결들로 언론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 중 두가지만 살펴보자.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이 위헌이라는 원고측 변론에 대해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에 따른 것이며 국가가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제도가 부당하다고 불 수는 없다."고 밝히면서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또 하나는 고위공직자들의 존비속이 재산고지를 거부할 경우 그 사유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로서, 2002년 3월 1급이상의 고위공무원의 재산공개때 고위 공직자 36명이 부모나 자녀 등 직계존비속 1명 이상의 재산에 대한 고지를 거부하자 "고지거부 조항이 공직자들의 재산은닉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고지거부 사유의 공개를 요구했다. 이때 해당된 공직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 전윤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이종남 감사원장, 이기준 당시 서울대 총장,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 임인택 건설교통부 장관, 김승규 당시 대검 차장, 전철환 당시 한국은행 총장 등 모두 36명이었다. 이 재판으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으며 그는 목숨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작은 재판 하나하나에도 그의 혼신을 기울여 재판하는 판사였다. 그런 그가 가정에서는 어떠했을까? 그가 가정을 이루는 연애과정과 결혼 후를 보더라도 그는 단지 직업에만 매달려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했던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가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한기택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는 이상연이라는 이화여대 수학과를 다니던 학생을 대학 2년때 만나 영혼의 동반자처럼 사랑한다. 그의 식을줄 모르면서 지속되는 사랑과 그 기록물들이 그가 정성들여 쓴 편지로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다정하지만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기억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그가 보내는 생의 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삶의 깨달음을 가졌던 것일까? 두번째 장에서는 그가 일기로서 남겼던 학생시절의 기록과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통해 그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그의 신앙생활의 기록과 판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최근의 그의 마음의 기록들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그의 기록물을 보면서 많은 인간적 고뇌와 방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성찰을 길을 걸어갔던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글을 읽더라도 그와 함께 생활하고 그를 대면했던 사람들이 느꼈던 마음만큼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매 순간 매 장소에서 순간을 충실하며 살았던 인간 한기택에게 가슴 한 켠을 시큼하게끔 하는 조용한 감동과 더불어 깊은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서재지인의 페이퍼에서 유심히 보았다가 구한 책에서 나는 아쉽지만 좋은 사람 한 명을 만났다.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선 처남에게 추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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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2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권하며 좋겠지요? 보관함에 넣습닏. ^^

달팽이 2006-08-2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고시공부하는 처남에게 권하려고 하는데요...
녀석 신림동에서 진땀 꽤나 흘렸을 터인데...

파란여우 2006-08-2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밀알같은 사람을 만나 밀알의 삶을 보고 배우는 일,
황공하지요.

달팽이 2006-08-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일 화개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차를 만드는 시인 한 분을 새로이 만났습니다.
밀알같은 하지만 색다른 삶을 사는 기인 한 분을 또 만난 것 같습니다.
온갖 차들을 배터지도록 마셔보았습니다.
하루 열두번도 더 변하는 날씨와 물소리 섬진강의 넉넉함...
그리고 사람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답글이 늦었다는 변명입니다.

어둔이 2006-08-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深藏若虛, 깊이 감추어 마치 없는듯 살면서 제삶을 모두사는 사람, 안개속에서 더 잘보이는 그런 꽃과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사는 세상이 한결 행복해집니다. 그런 사람에게 머리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극한의 고통이 피워 낸 생명의 꽃
호시노 토미히로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과거의 그 : 중학교 초임 교사, 24살, 호시노 토히미노, 기계체조를 잘 함.

  현재의 그 : 목 아래의 전신마비 장애인, 어머니의 간호아래 생명을 유지함, 입으로 그림을 잘 그림.

과거의 그는 건강이라면 부러워할 것이 없는 젊음과 힘과 근육질의 몸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리고 이제 갓 발령받아 교육의 꿈을 키워가는 교사였으며, 농촌에 계신 가난한 부모아래 여러 형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농촌이 싫어 빨리 도시에서 자립하는 꿈을 꾸었고 이제 그 꿈을 이루었다. 산악동아리에 가입하여 등산을 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기계체조를 가르친다.

현재의 그는 교사 생활 2개월째 되던 어느날 체조 시범을 보이다 경추골절로 목 아래 전신마비 상태에서 숨쉬는 것, 먹는 것, 배설하는 것 등 모든 것을 어머니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점차 호전되었으나 목 아래의 근육은 영원히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절망의 깊은 늪으로부터 희망과 용기 그리고 사랑을 사람들과 나누며 살게 되었으며 특히 장애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시작한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문학인으로 살게 되었다.

  목이 부러져서 병원으로 가던 날 그는 자신의 몸의 감각을 잃어버린 절망감에서 삶의 모든 희망을 송두리채 빼앗겨버렸다. "내 손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제 난 끝장이야. 이런 상태로는 살 수 없어!" 자신의 몸을 잃고나서부터 그에게 온 상실감과 좌절은 영혼속으로 스며들어 새 생명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 그 생명의 벌거벗은 알몸에서부터 그는 어머니의 따뜻하고도 조건없는 사랑에 눈물을 흘렸으며,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며 살고 있는지, 하지만 그것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면서 살고 있는지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자신의 밑바닥의 치부를 드러내고 의존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은 생명의 바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그 더 깊은 생명의 심연으로부터 삶의 희망은 올라왔다. 그가 건강한 체육인으로 살았다면 얼마나 이기적이고 몸의 욕망을 위해서 살았을 것인가? 부모님의 사랑도 알지 못하고 철없이 늙어갔을 것인가?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참된 삶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삶이란 나누는 것임을...

  이제까지 그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에게 도움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내가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몸과 물질적 삶 너머에 영적인 삶이 존재함을 받아들이고 영혼이 몸의 삶을 이끌어갈 때 비로소 그는 조건에 관계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그는 붓을 입에 물었다. 희망을 그려나갔다. 사랑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입에서 시작된 사랑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참된 삶이 무엇인지 묻게 하고 있다.

  그의 삶이 예술적인 승화를 거쳐 더욱 성숙한 종교적 삶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그의 영적 성숙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입이 없어도 붓으로 희망을 말하지 않고서도 존재 그 자체로 행복한 날들을 그가 진심으로 맞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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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6-0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내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 하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 무딘 손보다 낫더군요. 섬세한 그림이...

달팽이 2006-06-0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토미히로의 그림과 설명이 있는 책이지요.
저도 한 번 보아야겠습니다.

어둔이 2006-06-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이없으면어떠랴
사지잘리면어떠랴
내몸아니데뭐어때
근데내게힘이된다
생명딛고핀그의꽃
 
카필라의 아침
퍼디넌드 해롤드 / 일지사 / 1981년 9월
평점 :
절판


  붓다의 생애를 이렇게 시적인 표현으로 기록할 수 있다니...책 자체가 하나의 시같이 느껴진다.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다니...분명 붓다는 시적인 삶을 산 성자였다. 또한 시적 비유가 주는 삶의 교훈만큼 진리에 근접할 수 있는 매체를 아직 보지 못했다. 저자나 역자나 자신의 마음을 이 책을 써내는데 모아서 오로지 작업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 빛나고 텅 빈 무아의 작업에서 이 책은 탄생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필라의 아침에 여명이 밝아오고 밝은 아침의 빛이 궁전의 뾰족한 첨탑 위에 비치면서 시작되어 온누리를 밝히는 햇살로 바뀌듯 진리의 햇살도 온 세상 온누리에 비친다.

  붓다의 생애를 다룬 이 책은 세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붓다의 탄생과 구도의 과정,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해 세상을 구원하는 과정,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기만하는 배신자들과 그들을 대하는 붓다의 넓은 마음, 그리고 다시 깨우침과 진리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이다. 마치 손을 뗄 수 없는 한 편의 영화처럼 책 속으로 푹 몰입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밤들이 책을 덮고 난 후에는 마치 한 편의 영화같다. 정말 꿈같다. 어젯밤 두 아들의 울음과 재촉 속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지치고 노곤했던 시간도 아침여명이 밝아오니 모두가 지나버린 한바탕 꿈일 뿐이다.

  모든 이야기의 비유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실적인 비유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내어야 되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보면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부처님의 생애보다도 더 정확한 부처님의 생애가 될 것이다. 삶은 늘 우리들에게 환영과 꿈처럼 나타났다 스러져간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인생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진짜 현실이다. 따라서 비록 짧고 문학적인 형식을 띄었지만 이 책만큼 부처님의 생애를 잘 보여준 것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의 마지막 여행에서 만난 소지기 다니야와의 대화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보고 반해버린 말이었다.

다니야는 노래했다.

이 몸은 쇠젖을 짜고 있네.

식탁에는 맛있는 식사가 기다리네.

나는 강가에서 아내와 자식과 더불어 즐겁게 지내지.

우리 집은 지붕이 튼튼해.

기둥도 튼튼해.

아궁이에서는 따뜻한 불이 타고 있지.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소지기 다니야의 노래에 붓다는 또 다른 노래로 대답했다.

 

이름은 분노를 벗어 버렸네.

어리석음을 벗어 버렸네.

나는 강가에서 하룻밤을 지내지.

우리 집은 지붕도 없고 기둥도 없다.

욕망의 불은 모두 꺼져 있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붓다와 소지기는 계속 노래를 주고 받았다.

 

쇠파리는 가축들을 귀찮게 하지 않네.

소들은 푸른 풀밭에서 맛있게 풀을 뜯고 있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나는 튼튼한 뗏목을 짰다.

해탈을 구하기 위해 저어간다.

욕망의 세찬 물결을 건넌다.

마침내 해탈의 언덕에 닿는다.

더는 뗏목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이 몸의 아내는 착하고 순결하고 진실하다

나는 아내와 수십년을 살아왔다.

그녀는 친절하고 유쾌해서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이 마음은 자비롭고 진실하다.

나는 이 마음을 수십년간 닦아 왔다.

이 마음은 친절하고 행복해서 모든 이를 가르친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나는 노예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다.

노예들에게 삵을 지급한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나는 노예가 아니다.

노예도 갖지 않는다.

이 마음이 나의 주인이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우리는 소가 있고 송아지도 있다.

소를 지키는 개도 있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내게는 소도 없고 송아지도 없다.

지키는 개도 없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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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6-04-2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니야와의 대화는 숫타니파타에서 봤습니다. 저도 인상깊게 봤어요.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하고 따라 말하고 싶었지요.

달팽이 2006-04-2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군요.
대화 후에 다니야가 붓다의 발치에 몸을 던졌던 이유이군요.
 
장욱진 이야기
최경한 외 / 김영사 / 1992년 1월
평점 :
절판


  선생님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인터넷에 올려진 서재지인의 페이퍼를 통해서였다.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서재마실을 하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앉은 그림이 좋아 유심히 쳐다보다가 퍼왔다. 아이들이 괴발괴발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뭔가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마치 먼 곳에서 지나가는 바람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그렇게 담아두고도 그 후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우연히 최근에 또 서재지인이 올린 그림을 보다가 이 책을 추천받게 되었다.

  장욱진 선생님을 존경했던 사람들은 우선 선생님의 삶에 반해버렸다. 그림에 몰두해있을 때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작업에 열중해 있다가도 작업이 없는 공백기는 그야말로 술로만 살았던 특이한 이력이면에 그의 예술세계와 삶에 대한 자세가 사람들에게 많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자화상'을 쳐다보면 시원하면서도 곁을 쳐다보지 않게 쭉 뻗은 길... 그 속에서 단정한 양복을 입고 모자와 우산을 들고서 평온한 모습으로 걸어온 한 신사....노란 논길인가 밀밭길인가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풍요로우면서도 여유로운 그의 인생길을 쳐다보게 한다. 아마 선생님의 마음이 그러했으리라. 나무 한 그루와 몇 점의 구름 그리고 새 네마리가 자유롭고 느긋하게 나는 모습...

  당신의 아내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부탁받은 지 10년이 훌쩍 넘어서는 어느 날에 화실로 들어가서 일주일동안을 식음과 수면을 전폐하고 그려낸 그림... 그리고 문을 열고 아내에게 그림을 던지면서 쓰러져서 석달동안 사경을 헤매이었던 이야기도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경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을 지켜봐야 그 사람됨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돋보인 작품이다. 경봉스님과의 만남에서 '뭐 하는 사람인가?'하는 물음에 '까치를 잘 그립니다.'라고 하는 대답 속에 자신의 지위나 명예보다는 그림 그리는 자신을 말하는 모습에서 경봉스님도 사람됨을 알아보게 된다.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부분의 작가연보에는 백성욱 선생님과도 함께 어울리었던 시간들이 도인은 도인을 알아본다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그림, 전혀 사실성과는 관계없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마음을 쫓아본다. 진묘묘의 그림을 한참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왠지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내의 자신에 대한 마음, 그것은 늘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보살의 마음이었을까? 뼈대만 남은 그의 그림은 자신의 삶처럼 일체의 군더더기를 생략하고 자신의 삶의 핵심을 위해서만 자신을 소모시켰던 그의 삶과 정신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는 도를 추구했던 것이다.  도의 그림을 담아내기 위한 일체의 형식의 생략과 치열한 구도의 삶이 그의 인생을 요약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모습이 어떠하건 그 삶을 모습 이면에 그가 추구했던 정신세계를 보는 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만나는 길이 아닐까? 다시 청명해진 봄 하늘 위에 그의 그림 하나 하나를 그려보면서 나는 그가 그림을 통해 닿으려했던 잡히지 않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잡을 수 없는 봄의 소리를 듣는다. 들을 수 없는 봄의 햇살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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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0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욱진 아내-진진묘
이 그림 아시죠?
단순의 극치입니다. 정갈함속에 꼿꼿한 단아함이 풍기는 아내의 그림이죠.
막걸리 값 대고, 화구값 대느라고 기름장사, 책장사 마다하지 않은 아내.
예술가로서의 장욱진은 좋아하지만
생활인으로서의(가장) 장욱진은 싫어합니다.^^

달팽이 2006-05-0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체의 군더더기를 생략한...
한 마음으로 만들어낸 작품인 것 같았죠...
뭐라할까?
선생님의 정신세계가 아주 단순하고도 형이상학적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여우님이 언젠가 올리신 자화상이란 그림도
가진것이 양복 한 벌, 모자하나에 우산 하나이지만 그래도 넉넉하고 풍요로운 보리밭길을 그것도 시원하고도 곁가지없는 한 길을 따라가는 자신의 삶이 바로 마음 속에 가진 세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2006-05-05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5-0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캭! 그렇군요..
왜, 진진묘를 진묘묘로 읽었을까?
근데 제가 마음으로 존경하는 분들은 어찌 그렇게
똑같이 세속의 삶으로서는 남편으로서 또는 아버지로서 꽝인지 모르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