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꽃피운 최순우의 삶과 우리 국보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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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연못이 있다. 달은 하늘 위에도 있고 연못 속에도 있다. 연못 속의 달은 하늘 위에 뜬 달이 있기에 가능하다. 옛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한 이상과 멋이 있기에 그 삶의 흔적이 남아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가슴에도 그 멋을 전염시킨다. 언제였던가? 그림에 반해 멋모르고 그림을 사들였던 때가...그 인연으로 내 집엔 수십 점의 이야기가 생겼다. 수십 점의 아름다움이 생겼다. 더불어 그 아름다움에 끌려 수십 권의 우리 문화재와 골동품, 미술품에 관한 책도 생기게 되었다. 한 곳을 향한 마음은 그 주변에 비슷한 것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나의 생활 속에 자리잡은 그림과 잡동사니와 책 속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품에 대한 미의식을 가졌고 멋을 가진 발굴자들의 인생이 있었고 또 거슬러 올라가 그런 멋과 미를 즐기며 살았던 선현들이 있었다.

 

  대중매체를 보면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가는 것을 느낀다. 반도체 부분과 조선업계, 특허 및 신기술, IT기술과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서 세계를 주도해가는 한국인의 자긍심의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 5000년의 예술과 미의식 및 문화에 있어서의 자긍심이 있고 한국인의 뿌리깊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예술품이 하늘에 뜬 달처럼 현실에서의 경제와 한국의 리더쉽을 이끄는 정신적 밑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일본과 미국, 선진 유럽에 정신적으로 뒤지지 않는 자긍심과 우월감이 세계 최강의 전자업계 일본도 세계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미국도 오랜 전통 속에 민주주의와 문화의 꽃을 피워왔던 유럽에게도 뒤지지 않고 세상을 선도해내는 창의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 세계 속으로 우리 문화의 자존심을 세계화시킨 분이 혜곡 선생님이다. 아주 오래 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에서 처음 뵈었고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두 번 째 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세 번 째 뵙게 된다. 그의 전기적 성격의 책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 문화재의 발굴과 체계화와 정리 또 문화사와 예술사에서 뻥 뚫린 부분들에 대한 고고학적이고도 예술사적인 연구로 한국미술사 5000년을 발굴해낸 선구자이며 한국 근대 미술사의 선구자라고 할 우현 고유섭 선생님과 간송 전형필 선생님을 스승으로 끊없는 자기 계발과 연구 노력 정성 그리고 한국미의 순례자로서 혜곡 선생님의 삶의 의미는 크다.

 

  일제 치하에서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쿠데타 등의 역사적 격동기를 겪어오면서 오로지 한국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온 마음과 열정을 다 바쳤던 혜곡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우리 미술사는 분명 수십년은 더욱 늦게 빛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앞을 내다보고 우리 예술품의 중요성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대처하는 그의 혜안이 없었더라면 우리 한국 자긍심을 살려된 미술품의 많은 것들이 전쟁의 포화 속에 사라졌거나 이데올로기의 총알 속에 가루가 되었을 것이었다. 또한 세계 전시회를 통해 한국미의 독창성과 고품격을 외부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우리 국민에게도 내부적인 자긍심을 고취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그 적은 예산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 문화재를 굳건하게 지켜나갔던 사명감이 없었던들....지금 우리가 누리는 예술적 우월감은 어느 빛이 들지 않는 땅 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전쟁의 포화속에 한 줌 먼지로 날아가버렸을런지도 모른다. 고려청자, 조선의 백자, 석탑과 불상, 우리의 그림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그의 심미안과 혜안 속에서 시대와 역사와 의미의 질서를 가지고 우리들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 책에서 새롭게 보게 된 달 항아리의 아름다움과 조선의 분청사기, 백자의 아름다움, 그리고 고려시대 청자기와의 독창성 등 새롭게 눈여겨 본 일들과 우리의 아름다움을 보아내고 글로써 다듬어내는 선생님의 심미안이 내내 부러웠다. 적어도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에 무지함을 드러내지 않게 어느 박물관에 들어서더라도 눈여겨 유물과 유적을 대하고 그림과 도자기 예술품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그 미술품 속에서 멋과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함을 절감한다. 이런 분들의 원이 있었기에 우리의 중요한 미술품과 보물들이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에게 남아 민족의 자긍심과 심미안을 열어주고 있어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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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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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였다.

시의 정체성을 끝없이 찾아간 홀로

자신의 삶을 살기위해 벼랑 끝에서 항상 몸을 던진

진정한 시를 구성하는 언어를 찾아

게으름과 안정의 욕망을 버린

우리 나라 인문정신의 꽃이었다.

시대의 총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깨우친 삶과 내면의 뻘밭에서 피워올린

연꽃이었다.

 

스스로의 팽이로 온전히 돌아가기 위해서

또 다른 팽이를 방들여서는 안되기에 그는

일체의 주의와 집단과 데마고그를

거부하며 오롯이

스스로여야만 했다.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야만

비로소 제 돌아감으로 서있는

팽이가 될 수 있다는

제 진리에 닿기까지

그는 지치지 않는 무소였다.

 

침묵의 한 걸음 앞에 놓인 시

언어의 고통 아닌 그 이전의 고통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부딪히며

삶의 진흙창에서 걷어올린

자유의 언어로서만

스스로 감동하는 시가 되기에

그는 타고난 시인이었고

그는 시였다.

 

그의 시는

나의 삶에

유효하다.

바로 지금.

 

강신주 님을 통해

김수영을 새롭게 만나니

이 정도 책이면

남부러울 것 없는

그만의 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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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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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겐슈타인은 왜 부지깽이를 들었을까? 라는 의문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비트겐슈타인과 캠브리지 학파에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관계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사상의 전개와 그의 천재성과 카리스마가 캠브리지에 새로운 철학사조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계가 유대인으로 자라서 성공한 빈의 재벌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부지깽이 사건이 물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으로 세상의 조명을 받았다면 이제 부지깽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물 속에 잠긴 거대한 빙산덩어리를 이해하기 위해 빈과 시대와 나치즘의 형성과정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 칼 포퍼의 이야기도 시작된다. 새끼줄을 꼬는 또 하나의 매듭처럼 러셀과 포퍼와의 만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같은 유대인으로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유년기를 보낸 포퍼의 삶을 들여다본다. 성공한 변호사 아버지와 많은 장서를 보유한 아버지의 서재로부터 성장한 포퍼가 오스트리아의 독일통합과 인플레이션으로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생존문제에 직면해야했던 사실에서부터 같은 뿌리를 가진 비트겐슈타인으로 향한 부러움과 분노는 동시에 발생하였던 것일까? 나치의 칼바람 속에서도 부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태인 탄압의 폭풍도 피해갔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태생적인 열등감에서부터 자신이 열망하는 학문의 중심인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교수직을 원했던 희망에서도 차순위일 수 밖에 없었고 캠브리지가 인정하고 그의 카리스마의 영향을 받았던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가졌던 이중적인 감정은 부지깽이사건의 한 층 밑에 자리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정확히 부지깽이 사건을 향해 간다.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이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각도로 세세하게 파헤쳐가는 기술적 방법이 놀랍다. 그들의 태생에서부터 유년시절 성년이 되면서 겪었던 삶의 체험들과 처지들, 그리고 그들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학문적 입장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며 수많은 가능성과 확률의 미로속을 통과해서 결국에는 부지깽이 사건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철학적 문제에 대해 '포퍼라면 이것에 대해 뭐라 말할까?'라는 물음에 어떤 답도 얻을 수 없다. 그는 한번에 하나의 특수한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어떤 답과 마주치게 된다. 그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보편적인 접근법을 그의 제자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언어의 의미는 대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제가 되고 언어적의미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는 말할 수 없어 침묵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비해 포퍼는 철학이 역사와 사회에 책임을 가지고 인간의 이성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보았다.

 

  물론 이 둘의 입장을 어느 한편의 입장에서 다른 편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우열성을 가리는 것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다만 이 부지깽이 사건의 후면과 그 철학적 의미는 독자들의 개인에게 남겨진 숙제가 될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적 문제에 대해 어떤 이는 만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천재성과 카리스마로 또 한사람은 성실성과 합리성으로 한 시대의 세상을 보는 방식을 제공했던 그들을 통해 오늘날을 보는 창 하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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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평전 미다스 휴먼북스 8
양구오롱 지음, 이영섭 옮김 / 미다스북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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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동래 향교를 찾았다. 부산의 역사와 정체성을 아는 것은 동래의 역사를 무시하고서 이루어질 수 는 없는 것이었다. 그 중 동래의 중등 공교육기관이었던 향교에는 조선 500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고 그 50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어온 부산이라는 공간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때 정책적으로 육성되었던 왜관과 남포동을 중심으로 한 부산부라는 또 하나의 근 현대의 역사와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었다. 명륜당의 대문을 지나 바로 눈 앞에 들어오는 큰 현판이 '명륜당'이란 글씨다. 윤리를 밝히는 집이란 말의 이 글이 바로 맹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맹자에 의해서 인간의 이성은 윤리적 성격을 띄게 되었고, 공자의 인 사상은 인, 의, 예, 지의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춘추시대를 살았던 공자, 자신의 사상을 펴기 위해 여러 국가를 돌아다녔지만 세상의 그 어느 곳도 자신의 이상을 제대로 펼 수 없었던 운명은 맹자에게도 숙명으로 이어졌던 것일까? 전국시대의 백가쟁명의 혼란시대에서 양주와 묵적의 관점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유가정신으로 시대의 혼란상을 통일시키려 했던 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인 맹자 역시 그 시대가 담을 수 없는 그릇이었던 것일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던 사회 속에서 군주에게 이익 대신 인의 이념으로 세상을 통치하라고 가르쳤던 그의 사상은 이미 이해관계 속에 시비와 인정도 사라져버린 세상에 대고 외치는 공허한 울림 뿐이었을까?  

   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순결한 이상을 품었던 한 사상가의 외침을 하늘과 땅은 잊지 않았다. 전국시대의 혼란 상이 지나고 대륙의 역사를 보다 길게 쓰기 위한 움츠림은 아니었을까?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의 탄압 속에서도 그의 사상은 은거했던 이름없는 선비의 가슴 속에서 가슴으로 이어졌고, 한대에서도 정증, 조기, 고유, 유희, 정현 등의 학자들에게 면면히 이어졌으니 말이다. 조기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맹자는 분량이 7편, 261장, 34,685자이다. 맹자는 여기서 천지와 만물을 두루 포괄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인의, 도덕, 성명, 화복에 대해 밝히고 있다. 제왕이나 공후가 이 가르침을 쫓으면 천하를 안정시키고, 조정을 기릴 수 있게 된다. 경대부가 이 가르침을 따르면 임금과 아비를 존경하고 충신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지조를 엄하게 지키는 자가 이것을 따르면 절개를 높이고 소인배에 맞설 수 있게 된다. 책 속에는 국풍의 시들의 지은이가 사물에 의탁한 뜻, 대아, 소아의 바른 말들이 들어있는 데, 곧으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굽어 있지만 굽히지는 않고 있으니, 그를 두고 운명에 통달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큰 인재라고 일컬을 만하다." 주희 대에 와서는 주지하다시피 맹자는 공자와 더불어 유가사상의 성인으로 추앙되었으며 우리나라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실에 대고 맹자는 말한다. 과연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이해관계에 따라 살 것인가? 감정적인 지식에 따라 충실해 살 것인가? 아니면 이성의 원칙에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몸이 가진 구멍을 막고 이성작용이 멈춘 곳에서 참된 진리를 구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 시대의 자신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올바른 길을 걷고 싶은 사람이라면 맹자의 삶의 고민 역시 우리들의 고민이 된다. 그의 사상이나 관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했고, 또 자신이 옳다 여기는 이상을 통해 혼란상의 시대를 구해보고자 했던 맹자의 마음씀을 배워보는 것은 어떤가? 자신의 욕망의 그늘에 파묻혀 주위와 세상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이 사는 우리들에게 과연 그대는 어떤 인생의 의미로 목적으로 살고 있는가? 하고 맹자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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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9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맹자를 읽으며 '측은지심'에 공감했었지요.
달팽이님 평안하시지요. 하하





달팽이 2011-08-09 12:30   좋아요 0 | URL
더운 날씨, 안녕하신지요? 측은지심은 인의 정신이니...인생을 다 살아 그것을 알 수 있다면...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오랫만에 한사님을 뵈니 좋습니다.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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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길을 걷노라면 우리는 때때로 폭풍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햇살을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연이어 찾아오는 태풍의 눈 속에 버티고 서기도 한다. 이 때 생사는 오직 의지에 달려 있다."는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편지글을 먼저 인용해야겠다. 그녀의 삶이란 아무것도 없는 사막 위에서 피어난 하나의 꽃과도 같다. 그것은 생사의 경계를 오가며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강한 의지의 씨앗에서 핀 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나의 삶, 그와 대조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몸뚱이 하나와 하루하루 주어진 자연과의 사이에서 극한 노력을 통해서만 지나갈 수 있는 아프리카의 하루. 시간으로서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비슷해보이는 하루이지만 그 하루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이 보내는 우리의 하루가 삶의 성숙함으로는 그들의 하루보다 더욱 초라해보이는 것은 왜일까? 부질없는 갖가지 고민들로 채워진 시간보다는 몸과 자연에 대한 직관과 정직해지고 맑은 정신으로 채워진 시간들이 바로 우리들의 삶에서 결핍된 것이기 때문이겠지.

  다 늙은 노인에게 시집가던 어느 밤, 그는 집을 뛰쳐나와 사막의 한 가운데로 걸어간다. 자신의 알 수 없는 삶을 찾아가며 그녀가 겪었던 많은 일들....때로는 술 취한 남성에게 성폭행당할 뻔하고 때로는 삼촌의 집 앞에서 한 남자에게 속아 몸을 빼앗기고 때로는 맹수의 눈 앞에서 삶을 포기하고 그의 한 끼 식사가 되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리카라는 소말리아 사회라는 전통과 관습이 부과한 어린 여성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큰 고통인 [여성할례]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일이 이 어린 소녀에게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녀는 더욱 강하게 성장하였다. 물 한 줌 없는 사막 위에 피는 꽃은 자신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 지를 그냥 알아지는 듯...

  런던과 파리 그리고 뉴욕의 모델 생활 속에서도 아프리카적인 삶의 정신을 놓지 않았고 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가슴 깊숙이 새겨진 삶의 태도는 무엇이기에 그녀를 물질문명의 한가운데에서도 마음만은 오염되지 않게 하였던 것일까? 삶의 모순성은 늘 삶의 비밀처럼 우리에게 주어진다. 가장 더럽고 오염된 곳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듯이 수많은 고통과 좌절과 폭력의 한가운데서도 그것을 극복하며 더욱 큰 의지와 정신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 모든 고통들을 겪게 하면서도 살아남게 하여 그녀의 운명을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과 같은 운명에 처한 소말리아 나아가 아프리카 소녀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것이 그녀를 그 깊은 위험과 좌절에서 운명처럼 벗어나서 앞에 놓여진 길로 뚜벅 내딛게 만드는 힘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삶을 적나라하게 카메라 앞에 내어 놓고 자신의 [여성할례]라는 깊은 상처를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용기는 바로 더 큰 사랑 앞에서 하나될 수 있는 것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삶의 어떤 모습보다 그 일들이 지향하는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새해에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글쓰는 행위가 나의 마음에서 어떻게 방향지워지는지를 내 마음이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를 바란다. 허공 속에서 피어난 꽃처럼...사막 속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그녀에게서 배운다. 아프리카 대륙의 뿔처럼 자리잡은 소말리아의 한 여성이 세상의 모든 편견과 욕심과 차별에 대해 그녀의 작은 뿔을 치켜세우고 들이받을 듯한 형세처럼 내 안의 게으름과 집착에 대해서도 나의 녹슬은 칼을 갈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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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달팽이님 반갑습니다.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시기를..
복도 많이 오시기를. 하하

사람이 태어난 환경이 그 사람의 삶의 양상(행, 불행 등)을 좌지우지 하는 듯합니다.
개개인의 삶의 토대가 미약함이 늘 안타깝답니다.
저같은 개인지상주의자에게는 특히..

달팽이님 새해에는 좀 더 자주 뵈요. 하하


달팽이 2010-01-04 17:40   좋아요 0 | URL
오랜 시간을 비어 두었던 자리에... 그래도 한 때 나누었던 정을 간직하여 이렇게 환대하여 주시니 시간이 지난 이 자리에 또 즐거운 마음으로 찾게 됩니다. 한사님도 올해 건강하시고 가끔씩 저에게 좋은 정보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경쾌한 웃음 그대로십니다. 하하

혜덕화 2010-01-0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돌아오셨군요.
환영합니다.^^

달팽이 2010-01-0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녕하세요.. 소박하지만 마음담은 인사..여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