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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사회 -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
미우라 아츠시 지음, 이화성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서양에서 시작된 포디즘의 도입과 인간의 기계화와 도구화로 단순작업의 형태는 보다 널리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뒤이은 세계화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부의 편중 및 소득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서양에서도 양극화의 진행에 대한 대안으로 일본식의 종신고용제나 사주제 등의 기업 형태가 제시되기도 한 것이 겨우 2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 역시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조사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1억 인구가 중산층이라 불리우던 일본사회, 그 사회를 안정감있게 받쳐주던 중산층의 급속한 몰락과 하류화 현상은 자본의 세계화로부터 인류가 갈 수 있는 미래상이 어떤지 그려준다.
계층화로 인해 처음 드러나게 되는 것은 소비층의 분열이다.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상품을 팔려고 했던 기업들은 하나같이 매출의 감소에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그것은 소비층에 맞는 새로운 상품의 개발과 소비전략이 부재한 탓이다. 보다 상류층에게는 더욱 차별화되고 고급화된 상품을 하류층으로 몰락한 사람들에겐 더욱 저렴하고 실속있는 상품을 개발해서 팔아야 하는 양극화 상품시대가 된 것이다. 다음은 독신자 수의 증가이다. 몰락하는 중산층들에게 있어 결혼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일본에서는 300만엔 이상을 벌지않으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지 못한다. 또한 남녀가 만날 기회도 부족해졌다. 가상세계의 활동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현실 공간에서의 만남은 더욱 협소해지고 고착화되어버린다. 그래서 2-30대 여성과 남성의 결혼율은 50 이내로 떨어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이젠 여성도 능력과 실력에 따라 전문적인 고소득 직종에 종사할 수 있게 되고, 전문직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나머지 여성들의 하류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젠 남자를 잘 만나 자신의 행복을 찾는 여성들의 비중이 더욱 줄어들고 있고, 전문직 고소득 여성들이 그와같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는 신세대 상류층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간에 누리는 문화가 비슷하고, 사고와 대화가 동질적이며, 서로간에 대한 이해도 높다. 주로 30대에 들어서서 결혼하여 아이들을 가지게 되고, 여행과 골프, 스포츠와 독서 등 광범위한 취미활동과 자아실현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어둠도 더욱 짙어지는 법! 그들의 그늘에 서 있는 대다수의 여성들의 삶은 피곤하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나와 슬럼가에서 같은 계층의 남자를 만나 덜컥 임신을 해서 결혼을 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카마야츠나 가류계 여성들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중산층으로의 삶을 꿈꾸기는 하지만 이젠 자신들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와 노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면서 300만엔 이하의 연봉으로서는 결혼을 꿈꾸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으며 혼자있는 시간을 즐겨하고 컴퓨터나 오락게임을 즐겨하며 소일한다. 나만의 개성을 찾으려고 하는 데에는 사교적인 만남이나 교류를 하기엔 그들이 가진 것이 너무 없다는 이유로해서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비정규직에 종사하며 간단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의 진정한 문제는 그들이 하류층으로 전락했다는 사실보다는 더 이상 그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짓는 것은 의지의 부족여부이다. 상류층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자신감에 넘쳐 있으며 의욕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의 차이는 다시 양극화현상을 더욱 심화된 형태로 재생산해낸다.
그렇다면 급속화되고 있는 양극화과정에서 90%에 달하는 하류층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구조개혁의 의지를 가지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이러한 의지도 부족한 것이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그것을 주어진 한도에서 행복으로 이끄는 방법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가족관계에 매이지 않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삶, 직장에 평생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관심과 직장을 옮길 수 있는 유목적인 삶, 삶의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측면도 동시에 가지는 것일까?
미우라 아츠시는 이러한 하류층이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은 이전처럼 보다 많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경대나 교토대에 하류층 자녀의 일정수를 배정하는 것이라든지 가산점 제도를 마련한다든지, 지방 학생의 대도시 대학 진학시 학비와 생활비를 제공해야 한다든지, 인터넷 수업화를 통해 지방대생이 좋은 강좌를 수강할 수 있게 한다든지 등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중산층으로의 편입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하류층을 대량 양산해내는 원인이 의식의 하류화에서 비롯되었듯이 하류층의 생활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세계는 너무나도 물질적인 삶에 치우쳐있다. 그래서 부가 없거나 소득이 적으면 행복한 삶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최소한의 물질적인 조건의 충족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마음에 있다. 물질적 삶의 과소를 떠나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행복한 삶으로 바꾸어낼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이 책이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 바로 그 부분이 아닐까?
90%의 사람들이 하류층이 된다면 주어진 형식적인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그 사회를 유지시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류층에게 보이듯이 그것이 어느 정도의 자발성을 갖추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속도의 삶과 소유의 삶을 자발적으로 버린 삶을 가진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화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전의 획일적이고 형식적인 삶에 찌들린 경험들을 회피하는지도 모른다. 영혼은 그런 이전의 경험에서부터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