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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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밭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모래밭 속에서 특별한 모래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바로 이해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미래의 어느 시점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행복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많은 부분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투자한다. 그리고 마음쓴다. 하지만 부모의 속을 가장 썩이는 것은 바로 그 자식이듯이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가차없이 배신해버린다. 우리의 자아는 분열한다. 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삶의 기준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세상엔 신기한 일이 참 많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태국의 앙코르와트, 만리장성, 우리 나라의 석굴암 등 과학기술수준이 그 정점에 와 있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 제작기술이 이해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하지만 더욱 신비로운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두 귀 사이에 놓인 3.5파운드 나가는 작은 물건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감각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는 것을 알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경이로워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고 먼 미래를 상상하고 행복을 꿈꾸고 온갖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또 거기에 몸이 적응하기 전에 우선 마음을 맞추어가는 미해명신비상자를 누구나가 가지고 있고 그것도 자신의 일부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4년 7월, 이탈리아 몬자 시의회에서는 '둥그런' 금붕어 어항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이례적인 조항을 발표하였다. 금붕어는 직사각형 모양의 어항에서 길러야지 둥근 어항에서 기르면 안 된다는 것이 의원들의 논리였다. 그 이유는 "둥근 어항에서는 시야가 왜곡되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금붕어에게 맛없는 먹이를 준다거나 시끄러운 펌프 소리를 듣게 한다거나 시시한 플라스틱 성을 어항에 장식으로 넣어주는 것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들의 핵심은 둥근 어항은 그 속에 사는 금붕어들의 시각 경험을 변형시켜 금붕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권리를 빼앗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인간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기억에 자신의 처지에 자신의 왜곡된 생각에 의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던가? 그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과학적으로 해명해주는 공간이 앞서 얘기한 두 귀 사이의 조그만 뭉텅이인 것이다. 그러면 왜 이 녀석이 만물의 영장류인 인간을 한낱 금붕어의 위치로 전락시키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두 이마가 붙어서 난 로리 셰플과 레바 셰플은 태어날 때부터 매순간을 서로 붙은 채로 마주보며 살아왔다. 그들은 혈액과 두개골과 뇌의 일부조직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느끼는 어떤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채며 한 사람의 몸의 이상기운을 서로가 공유한다. 이 두 사람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빨리 분리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분리되지 않고서는 평범한 가정의 아내로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로리 셰플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나아가 이 둘은 각자의 삶을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둘은 둘을 분리시키는 수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요. 온 세상의 돈을 다 준다고 해도 싫어요! 그런 수술을 우리 모두의 인생을 망쳐 놓을 거예요."

  아마 우리들의 상당수는 그들이 분리수술을 해야 진정한 개체로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오류를 갖고 있다. 우선 행복은 서로 비교 가능하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그들의 행복수준은 우리들의 행복 수준보다 낮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경험과 마음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마치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말미잘의 행복과 느티나무의 행복을 서로 단순비교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우리의 기억행위는  두가지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실제로 저장되지 않았던 부분을 스스로 채워넣거나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채우고 빠뜨리는 과정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 기억은 항상 완전하지 못하고 왜곡되게 되는데 이것은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뇌는 한번도 과거에 있었던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못하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갈무리해내고 다음 시점에 그것을 기억할 때에는 당시의 감정과 지식과 환경을 다시 재조합해서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뇌를 사기꾼 마법사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재주의'(과거를 기억할 때 그것은 현재적 요소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는 미래를 상상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데 우리는 배부를 때와 배고플 때의 마트 쇼핑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배부를 때에는 쇼핑카트에 꼭 필요한 것 몇가지만 담아서 오게 되는 데 반해 배고플 때의 쇼핑은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음식들을 사게 되어서 냉장고 구석에 쳐박혀 썩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을 때가 있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과 상상이 불완전한 것은 경험 그 자체가 가지는 모호함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백을 무의식 중에 뇌의 활동이 채우기도 하고 우리의 미세한 마음이 채우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함은 우리가 이름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우리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는 마음의 상이요 이미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건을 대하고 그 사건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이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양 받아들이게 된다. "너 오늘 그 여자 이유도 없이 화를 많이 내는 것 봤지, 아마 오늘이 그 날인 모양이야!"라고 이야기하는 두 당사자에게는 그녀의 이유없는 투정이 주어진 사실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투영된 상일 뿐이고 그 사실 여부는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몇일째 자신을 괴롭히는 변비때문에 고통스러울런지도 모른다.)그러니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한 사건을 놓고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의 사람들이 모두 달리 해석하고 그래서 백의 천의 사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친철하게도 이러한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와의 불일치를 해결하고 우리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마지막장에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 내가 미래의 나의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답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간단하고도 손쉬운 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그것은 다음의 세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첫째는 우리가 스스로를 아는 방법이 특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적인 생각과 감정을 직접 보지만 타인에게서는 오직 그들이 겉으로 하는 말과 행동만 볼 뿐이며, 이것도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만 관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자신을 아는 방식이 타인을 아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타인과 다르다고 판단한다. 둘째는 우리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보려는 동기를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 같은 존재이고 싶어하지 않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로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우리는 꼭 우리 자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 개개인의 독특성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지니는 다양성과 독특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 우리가 타인을 우리 경험의 대리인으로 사용하기를 거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눈과 뇌는 서로 합작하여 우리들의 인식을 방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가슴의 느낌으로 우리들이 가진 생각과 자아를 털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불일치를 극복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행복은 상대적으로 불행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살면서 행,불행을 겪지 않을 수 없지만 인류의 스승들은 그런 행, 불행을 만들지 말라고 하나같이 충고했다. 세상은 선, 악도 없고 시비도 없다고 했다. 그저 하루 하루 지금 이 순간은 최고의 시간이요 모두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기 까지는 우리 두 귀 사이에 놓인 신비상자와 그것을 푸는 마음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마음의 공간을 탐험하고서야 우리는 우리를 속이는 눈과 뇌의 음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제서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의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P.S : 대니얼 길버트의 글쓰기가 부럽다. 어찌 이렇게 재미있게 그리고 적절한 사례와 이야기 구성을 전개할 수 있을까?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수작을 놓치지 않고 한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비록 내 능력으로 따라가지 못해도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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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1-1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 책을 꼭 읽고 싶네요.

비로그인 2007-01-17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뇌의 직관적 통찰력과 논리적 분석능력은 서로 상보적입니다.
정확한 기억과 합리적 사고를 제약하는 본능적 차원의 심리적 장애물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요.
과학을 공부하다보면 그런 심리적 장애물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고
체득화된 과학적이며 합리적 사고의 습관이 실제와 인식의 불일치를
어느 한도까지는 보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파란여우 2007-01-1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의 '마음탐험'은 도저히 쫓아갈 수 없어요.
근데 어항 속에서 달팽이가 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여우는 밤이 좋을까요? 낮이 좋을까요?
한가한 선비님은 왜 글을 더 많이 쓰지 않으시는 걸까요?
-가끔은 씰데없는 궁금증때문에 털이 가려운 파란여우-

쳇, 리뷰 너무 잘 썼잖아요

달팽이 2007-01-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부산모임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제가 형님 대접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군요..ㅎㅎ
한사님,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과학과 합리적 사고가 해야 할 몫이 존재한다는 말씀...
여우님, 요즘 한 편씩 읽는 도덕경 맛을 음미하는 중이에요...
물론 잘 하진 못하지만,,,
그러는 여우님이야말로 리뷰를 많이 쓰시지는 않잖아요..
한가함이라고 하면 한 한가 하시는 여우님이...ㅎㅎ

2007-01-18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7-01-18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아쉽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님과 이누아님의 리뷰를 보고 어렵게 구한 책입니다.
서암스님과 같이 이 땅에 살다간 많은 그리고 겸손하기가 부처님과 다를 바 없는 선지식들이 있어 우리 어둔이의 밤길에 등불이 되어주어서...
너무 고맙습니다.
더불어 님께도...
늘 고맙습니다. _()_

yeshot21 2009-09-1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러 번 이 책을 읽었지만 서평을 참 잘 쓰셨네요. 내가 읽은 책이 그렇게 좋은 책이었던가,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라는 사람이 생각나는군요. 님의 서평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읽히고 싶네요.

달팽이 2009-09-14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러번 읽으셨군요. 할 말이 많을 터인데 짧은 글 속에 마음을 담아내었군요. 좋게 보아주어서 고맙습니다. 그저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글입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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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기사를 읽던 중 중앙일보인가? 프레시안인가? 법정 스님이 FTA에 결사반대하며 일반인들에게 이 책을 필독서로 권한 것을 읽었던 적이 있다. 가트 체제하의 무역자유주의화의 흐름이 WTO체제의 성립으로 더욱 물리적인 힘을 얻어서 미국적 이익을 전세계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가운데 칠레와의 협상과 더불어 미국과의 양자협상이 우리 사회의 도마 위에 오른 지도 이미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제조업과 공산품에 주로 부과되던 관세에 대한 이야기만을 주로 하던 각종 라운드와는 달리 FTA는 농업과 서비스업 지적 재산권 등 미국이 비교우위를 가지는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미국의 이익에 맞서 우리는 FTA협상이 가지는 의미와 그 영향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가지지 못하였고 나아가 다른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이를 어떤 관점과 철학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준비하는지에 대해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깜깜 무소식이다.

  그런 와중에서 KDI나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은 FTA 협상이 우리에게 불리한 점도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져 있는 기회의 공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80년대 밥솥시장을 일본에 개방하게 되면 우리 나라 밥솥공장은 망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더욱 좋은 밥맛을 가진 밥솥이 나와서 일본 제품들이 쫓겨 갔다는 사실과 세계 유통업계 1위 월마트가 결국 한국적 경영과 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출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FTA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비판적인 관점에 서 있는 농민과 재야 운동 단체나 민노당 계열은 FTA 협상으로 우리의 농촌은 초토화될 것이고 공기업이나 알짜 기업들은 모두 미국의 거대자본의 수중에 떨어지고 내적으로는 광범위한 중산층의 몰락과 더불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FTA도 세계화와 자본자유화라고 하는 큰 물결 중의 하나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우리는 FTA에 대해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를 가지기도 전에 우리들이 서있는 입장에서 또는 우리들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관점에서 아무런 검증없이 결론을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다. 한번쯤 FTA 현상에 대해 제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이 사실이나 그 전에 어떤 판단을 요구받거나 이야기할 기회엔 어느 정도 부정적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GATT와 IBRD 체제와 미국의 세계 금융정책이 가진 본질적 성격을 나름대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르과이라운드와 동경라운드에서의 협상 내용과 자본의 자유화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세계적 활동의 흐름이 결국은 FTA라고 하는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냈고 그래서 그 현상도 기본적인 세계 경제의 흐름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없이 선험적으로나 맹목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문제다. 우리 나라의 경제 성장에 대한 관점은 달리 내릴 수 있으나 그 경제 성장의 덕을 계급 계층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어느 정도는 보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또한 경쟁 시장이 보다 값싸고 질이 개선된 상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해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우리들이 자랄 때의 삶의 모습만 뒤돌아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만이 좋은 삶이라는 생각은 아니다. 이러한 객관적(물론 이 말도 문제거리가 될 수 있다)인 정보의 필요성으로 우선 비판적인 관점에 서 있는 이 책을 인연이 되어 먼저 들게 되었다. 이후에 반대 관점의 책까지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있으므로 어쩌면 지금은 반쪽을 결론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FTA에 대한 비판은 우선 정부가 우리 나라 내부경제와 미국 경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없이 너무 성급하게 진행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농업은 대체로 우리 나라의 농업이 일부분만 남고 거의 파괴되는 것에 대해 대세라고 수용하는 분위기이고, 중소 기업과 공기업 그리고 심지어는 대기업마저도 미국의 주주자본에 의해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정말 바보인 것이 아닌가? 다음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외교부가 그 어떤 정보에 대해서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상,하원 의회와 각 기업들이 모두 협상 내용을 검토하고 협상에 대응해서 대책을 수립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외교부를 제외하고 의회조차도 필요한 정보가 차단된 채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자국의 각 계급 계층과의 의사소통의 부재 속에 국민 전체의 운명을 담보하게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협상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정부에 대한 극심한 불신은 이미 사회에서도 깊게 각 계급 계층 간의 갈등의 골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와 국가의 발전 방향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과 판단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떻든 경제규모만 부풀리면 만사해결이라는 식의 태도이다. 이런 철학의 빈곤은 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절벽을 향해 달리는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는 트럭을 향해 돌진하는지) 그저 속도를 더욱 올리라고 하는 식의 정책운용일 따름이다. 이런 면에서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와 안전과 복지 위주의 평화주의 모델이라든지 스웨덴의 공장 중심의 사회적 합의모델을 통한 사회복지제도의 정착 또는 일본형처럼 고질적 중앙집권형 시스템의 폐해를 극복한 기술국가형이라든지 심지어는 나프타 체결 후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과정을 거친 멕시코의 교훈도 빠뜨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너무 철학도 없이 주변을 둘러봄도 없이 그저 속도만을 내고 있는 맹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봉이 6000이 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조언대로 외국으로 이민을 가야 하는가?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버려둔채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외면하는 국가를 버리고 떠나가야 옳은 것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10-20%의 상류층만이 남아서 한국의 미래를 지켜봐야 하고 또 그 중의 양극화로 또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한 국민은 이민을 가야 하고 그렇게 나중에는 국토마저도 미국에게 내어주어야 하나? 그가 내거는 마지막 대안은 조약체결을 다음 대선 이후로 미루어 정치적인 변화를 통해 협상의 내용에 변화를 주는 것이나 스위스의 경우처럼 국민투표를 통해 협상을 전면 변화시키는 안전장치를 두는 것이다. 지금처럼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행정부의 독주에 의해 유린될 때 국민들이 직접 국가의 중대사에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인 정착이 필요하다. 나아가 더욱 넓게는 국민 개개인의 욕망을 뿌리로 자라는 거대한 괴물인 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과 그것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삶으로 나아가는 철학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더욱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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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1-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생명산업의 기초인 농업의 몰락은 거대지질변동을 가져올 겁니다.
그 점 하나만 봐도 이번 협상은 바보짓이죠.
다 죽는건 아닐테지만 이번에도 그 해일의 공포는 역시나 민중에게 가해지겠지요
저는 미국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부터가 심란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새삼스럽지 않잖아요.
대통령이 한 말 중, 농민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은
정책결정권자의 지도철학이 극명하게 나타난 예입니다.
무엇보다, 현실감각, 현장감각이 그에게 존재하는지 의문이구요.
기대했던(!!)대로 달팽이님의 FTA관점은 역시나 철학! 이군요^^

달팽이 2006-11-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것 벌써 내 바닥이 드러나버렸나요?
 
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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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글쓰기에 이어 이 책도 손에 잡았다. 하지만 뭔가 더 마음을 끄는 글쓰기의 특별한 스킬같은 것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글쓰기가 늘 어렵지만 막상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놓으면 막 써내려가는 나의 글쓰기의 가벼움을 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때로는 날리는 듯한 글로써 일관성도 논리성도 결여된 빈약한 문장을 보면서 그래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최소한의 사회과학적 글쓰기에 부끄러움이 적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책을 덮는 순간 바로 컴퓨터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최소한 필기구로 하얀 종이에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간단한 전략적 사고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냥 자리에 앉은 나는 아무래도 시행착오를 더 거쳐야 하는 업을 가졌나보다. 글을 쓸 때 자신의 사고만으로 글을 이어갈 수 없는 글에는 반드시 책이나 자료, 또는 정보를 인용해야 한다. 그 인용할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여 고르고 정리하여 글의 어떤 부분에 인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끝나면 사실 글쓰기의 절반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은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과정과도 함께 한다.

  심리적 유혹이나 감정적 통제에 관한 오류도 흔히 범한다. 흑백논리에서 한 쪽에 몰입해야 한다는 유혹, 거대담론에 대한 결론의 유혹, 도식주의의 편리성이 주는 유혹과 과장, 몰입에서 오는 처리하기 힘든 감정 문제. 때로는 어느 한 쪽의 견해로 미끄러져버리는 나를 본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50%의 결론이 정해져버린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거리두고 바라보기'가 필요하다.

  수사학과 국어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꼭 필요하다. 우리 나라 사람으로써 국어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거니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담긴 원리와 의미에 대한 이해도 요구된다. 다석 선생님은 그 한글의 깊은 의미를 되살린 사람 중 하나다. 물론 한글학자 중에서도 그 의견이 분분한 것들도 많지만 이럴 경우에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바를 취하면 되겠지만 적어도 명백한 오기나 중요한 오류는 고쳐가며 쓰는 것이 필요하다. 짬짬이 우리말 바로 보고 쓰는 공부도 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시사 논쟁의 이해는 바로 내가 글쓰기에서 배워야 할 부분을 현실적으로 적용한 실전학습란이다. 고등교육을 받는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은 이런 글쓰기에 좀 더 훈련되어야 한다. 물론 실전 글쓰기에 앞서 실전 글읽기와 균형잡힌 인식이 필요하다. 양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이다. 논쟁적인 문제에 있어 상반되는 양자의 입장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이해하는 것과 그 논쟁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입장과 주장을 마음을 열어놓고 이해하는 것은 그 상충되는 의견의 합의를 이루어내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는 데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담아내는 마음의 그릇을 넓혀야 비로소 전체적인 시각과 대안이 도출될 수 있다. 나를 넘어서 타인에게로 마음이 열려야 하고 또 나와 상반되는 타인에게도 그 마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열려야 한다. 비로소 나의 입장과 그의 입장이 나의 마음에서 서로 맞물리고 감아들어 내 입장만도 그의 입장만도 극단적으로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마음은 더 나아가 서로를 고려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과 구조를 놓치지 않게 되어야 한다. 사회와 세계의 흐름과 그것이 바른 방향인가에 대한 물음은 인간 사회와 지구 그리고 우주의 관계에서 되묻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비로소 그 속에서 나의 길이 보이게 되고 세상의 모든 갈등이 관계한 인드라망을 본 후에 내가 제시하는 결론과 대안은 아무런 사심없이 마음에서 일어난다.

  너무 말도 안되는 결론인가? 그가 얘기하듯이 단순한 이념적 관점과 입장적 관점에서 벗어나 거리두기를 하면서 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관점과 사회적 구조와 흐름을 둘러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한 쪽으로 치우친 글쓰기가 되지 않고 상대방의 비판과 입장을 뻔히 알면서도 쓰는 글을 피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러려면 결국 마음이 열리지 않고서야 어찌 말의 논리만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합의를 유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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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9-1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읽으시는군요.^^ 저는 글 쓰기를 좋아하지만 자주 안 쓰고 진지하게 안 임해서 그런지 아직까지 이런 종류의 책을 일부러 읽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이 세상에 여러 종류의 글이 있고,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추측하고 산답니다. 장르를 벗어나서 그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가장 많이 생각해 보았고 가장 잘 알고, 가장 말하고 싶은 분야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요.


달팽이 2006-09-1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적으로 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다만 저의 글쓰기가 너무 엉망인 탓에 사람들이 읽기에 불편함이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아이들의 논쟁문에에 대한 수행평가를 지도하면서 그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더군요..

비자림 2006-09-1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쓰기가 엉망이라뇨? 당치 않으십니다. 근데 수행평가 지도상 책을 읽는다는 말씀에 감동이 이는군요. 좋은 선생님들이 많은 세상이에요.
저는 실업계에 있어 술러덩술러덩 넘어가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반성해야 하는데..^^ 되려 현실을 잊기 위해 장편소설들을 읽고 사는 시간들입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뛰어넘기 새사연 신서 1
김문주.김병권.박세길.손석춘.정명수.정희용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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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다수의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안고 출범했던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세력들을 하나둘씩 물리치고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한국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과 노동문제, 통일문제와 남한의 민주주의 문제, 세계화와 자본자유화에 대한 바른 대안의 부재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시민들의 열망과 희망의 압살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해묵은 NL, PD논쟁으로 분열됐고, 현실적인 사안에 대한 구체적 전망을 드러내는 능력의 부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서 더욱 떨어져나가고 더욱 자신의 삶을 죄어오는 경제적 한파에 옷깃을 여미고만 있다.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갔을 386세대, 하지만 사회와 민족의 현실에 새로운 눈을 뜬 그들이 자신의 민족과 역사에 대한 양심을 버리지 못하고 보냈던 대학생활과 그 기억들을 고이 묻어 둔 꿈과 함께 변화된 현실 속으로 묻어 두었던던 수많았던 날들... 그들이 다시 '생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돌아왔다. 우리 사회에 대한 고이 묻어둔 꿈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과 함께 다시 돌아온 것이다. 신 자유주의를 넘는 우리 사회에 대안에 대한 그들의 정리된 생각을 이 녹색커버의 책 한 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첫째 장에서 신자유주의와 주주금융자본주의에 의해 파헤쳐진 한국 경제와 민중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무지하거나 잘못된 사람들의 인식과 정부의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여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조건은 역사적 경험과 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하여 제시된다. 노동창의성과 은행의 공공화로 이어지는 두번째 장의 이야기를 보자. 자본의 형성과정과 확대과정에서 많은 국가의 지원과 혜택, 각 위기상황마다 국민의 세금으로 부활했던 대자본이 이제는 민영화, 자유화란 명목으로 공공의 이익을 내던지고 있다. 그래서 국민과 국가에 의해 공공 관리되는 자본과 공공정책이 눈없는 자본의 폭주를 막을 유일한 대안이 된다고 본다. 이러한 생각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통일문제'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일본과 미국 등의 신 자유주의적 흐름이 집약된 남한과 유럽과 러시아 중국의 반대적 흐름이 집약된 북한이 만나는 한반도에서 인류 사회의 새로운 꿈은 시작된다고 본다. 양 경제체제를 인정한 전제 위에 그 양 체제의 입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공공경제영역, 즉 통일경제영역을 만들고 그 비중을 확대시켜가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의 창출이야말로 인류적 대안이면서 우리 민족이 번영할 확실한 대안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놀랍지 않은가? 이런 상상력은 누구나가 한번씩 해보았을 그리고 하고 있는 아주 평범한 바로 그 생각이 아닌가?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원유, 그리고 기초과학분야, 군사분야의 튼튼한 기초와 남한의 기술과 자본 그리고 남북 공동의 7000만의 인간 그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최상의 삶의 대안이 아닐까?

  이 새로운 상상력을 열기 위한 남한의 노력으로 돌아와보자. 역시 대의제 민주주의의 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직접정치'라고 하는 대안을 위해 많은 구체적인 제도를 제시한다. 파리코뮨에서의 경험으로부터 국민투표제, 국민 소환제, 국민 발안제의 개념의 풍부성과 의회제도의 근본적인 개혁과 '국민의회제', 위르겐 하버마스의 '숙의 민주주의제'등 우리 사회를 여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역사적 경험들이 제시되고 검토된다.

  이런 논의들이 학계가 주축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문제의식있는 생활인이 주축이 되어서 나온 것이라는 데 더욱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대한 미래상을 그릴 수 있고 고민할 수 있고 새롭게 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정확한 사실과 정보가 주어질 때 민중들의 판단이 단순한 우민정치와는 다른 합리적이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신 자유주의에서 노동창의성 시대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과 자본의 방향을 트는 힘에 대한 설명과 정치적 개혁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더 필요하다. 언론과 이익단체, 시민단체 등등 하지만 이런 논의의 시작이 정치적 대안의 부재속에 정치적 허무주의나 무관심 속에 지내는 많은 우리들이 보다 우리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여는 상상력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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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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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할인마트에서 통근버스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대형할인점의 소비가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부들이 가장들을 할인점으로 끌어들이면서 이제 대형할인점은 가족들이 나들이하는 장소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다. 백화점과 24시간 할인점은 이에 맞서 더욱 공격적이고 절박한 판매공세를 펴야만 살아남는 현실이 조성되고 있다. 그 변화된 시장 현실에서 지역 수퍼마켓이나 상인이 살아남는 길은 연합하여 대형 할인마트를 만들거나(농협하나로마트처럼) 유기농이나 특화된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도 운이 좋을 경우에만 성공한다. 하나로마트같은 경우 경영에 대한 마인드없이 영업의 부실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스타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류를 타고 일본에서 유명 배우가 된 배용준과 최지우를 비롯해서 많은 한류 스타들과 박지성과 설기현 이영표를 비롯한 축구 스타,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등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 그리고 일본에서 활약중인 승엽짱까지...국내에서도 스타 영화배우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사람들은 "당신, 너무 돈 밝히지 말아."라고 직접 모 연예인 앞에서 말하는 현상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자신들의 피나는 노력과 실력 그리고 시장에서의 수요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한 달동안의 피나는 노력의 대가가 박찬호의 손끝을 떠난 공 하나가 포수의 글러브에 박히는 짧은 순간의 보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울컥'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 산업의 성장도 눈부시다. 이번에 수원에서 받았던 KDI연수에서 모 젊은 선생님들이 작은 노트북에다 휴대폰을 연결하여 언제 어디에서건 인터넷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받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다 디지털이 삶 속으로 밀착된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아야만 했다. 물론 나도 휴대폰을 사용한 문자메세지의 문화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변화의 속도와 삶과의 밀착이 도저히 현 세대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대중문화의 큰 흐름 두가지는 세계화로 인한 대형화 현상과 디지털화 현상이다. 물론 거기에는 세상 변화의 흐름이 담겨 있고 비판만 하기 이전에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일고 있는 이런 대중 문화 현상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심각하게 도사리고 있다는 저자의 뼈아픈 충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대형화되고 스타시스템화되버린 우리의 대중 문화에서는 건전하고 예술성있는 문화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될 수 있고 중소 영세 상인이나 중소 영세 문화 생산자의 노력과 땀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정당한 경쟁도 하지 못한 채 사장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천박한 대중주의가 유포되어 국민들의 질의 저하가 유도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문화 현상 속에서는 건전한 성찰과 반성없이 인간의 수치스러운 탐욕과 욕망을 무분별하게 표출함으로써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단절을 가져온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대중문화의 수동적 소비자로서 전락하지 말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자로서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처럼 대중 문화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주권을 행사할 때에 비로소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의 격은 한층 상승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삶에 밀접한 대중문화의 겉 모습 이면에 놓여진 속 모습에도 주목할 수 있는 성찰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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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1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은 '인물과 사상'에 나온 글만 조금 읽어 본 수준인데 님은 어려운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달팽이 2006-08-1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다는 마음없이 용감해서인가요?

파란여우 2006-08-1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각주를 달았겠죠?
그렇다면 강준만의 대중문화 속성은 '미디어가 지닌 편집'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여실히 드러난 셈이라 여겨집니다.
허긴, 현대의 모든 문화는 짜깁기라는 말이 생각나요.
그건 그렇고 저처럼 '꽃을 든 남자'도 좋아하고,
생상의 '서주와 론도카프리치오'도 좋아하는 사람의 속성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요? 짬뽕? 아, 저녁에 날씨도 꾸물꾸물한데
얼큰한 짬뽕에 거시기 한 잔~
아, 원래 이렇게 댓글 달려는게 아닌데....아시죠 제맘?^^

달팽이 2006-08-19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대중문화에 대한 여우님의 생각과 문화를 향유하는 여우님의 취향이 꼭 궁합되어야 하나요?
여우님이나 나나 세상 기준으로 무어라도 구분짓기 힘든 존재라는 게 우리들의 취약점이죠...
하지만 그게 바로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죠...ㅎㅎ
나 지금 술김에 댓글 답니다.
일종의 음주운행이죠..ㅎㅎ